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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 men of Kiriath-jearim came and took up the ark of the Lord and brought it to the house of aAbinadab on the hill. And they consecrated his son Eleazar to have charge of the ark of the Lord. From the day that the ark was lodged at Kiriath-jearim, a long time passed, some twenty years, and all the house of Israel lamented after the Lord. 
And Samuel said to all the house of Israel, b“If you are returning to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then cput away the foreign gods and the dAshtaroth from among you and edirect your heart to the Lord fand serve him only, and he will deliver you out of the hand of the Philistines.” So the people of Israel put away the Baals and the Ashtaroth, and they served the Lord only.
Then Samuel said, “Gather all Israel at gMizpah, and I will pray to the Lord for you.” So they gathered at gMizpah hand drew water and poured it out before the Lord iand fasted on that day and said there, j“We have sinned against the Lord.” And Samuel judged the people of Israel at Mizpah. Now when the Philistines heard that the people of Israel had gathered at Mizpah,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went up against Israel. And when the people of Israel heard of it, they were afraid of the Philistines. And the people of Israel said to Samuel, “Do not cease to cry out to the Lord our God for us, that he may save us from the hand of the Philistines.” So Samuel took a nursing lamb and offered it as a whole burnt offering to the Lord. And kSamuel cried out to the Lord for Israel, and the Lord answered him. 10 As Samuel was offering up the burnt offering, the Philistines drew near to attack Israel. lBut the Lord thundered with a mighty sound that day against the Philistines and threw them into confusion, and they were defeated before Israel. 11 And the men of Israel went out from Mizpah and pursued the Philistines and struck them, as far as below Beth-car.

a 2 Sam. 6:3
b 1 Kgs. 8:48; Isa. 55:7; Hos. 6:1; Joel 2:12; See Deut. 30:2–10
c Gen. 35:2; Josh. 24:14, 23; [Judg. 10:16]
d Judg. 2:13
e [2 Chr. 19:3; 30:19; Ezra 7:10]
f Deut. 6:13; 10:20; 13:4; Cited Matt. 4:10; Luke 4:8
g [Judg. 20:1]
g [See ver. 5 above]
h [2 Sam. 14:14]
i ch. 31:13; Neh. 9:1
j Judg. 10:10
k Ps. 99:6; Jer. 15:1
l ch. 2:10; [2 Sam. 22:14, 15; Ps. 18:13]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삼상 7.

2절과 3절 사이에 얼마나 시간의 간격이 있는가? 본문 2절에서 기럇여아림에 궤가 20년동안 있었는데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한 것은 어느 시점인가? 

2절)  and all the house of Israel lamented after the Lord. 하나님으로 인한 슬픔, 근심. 뉘우침. 
하나님의 궤로 인해서 모든 이스라엘이 슬퍼 뉘우침.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3절)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Returning to the Lord)
1) 우상을 제거하고, 2) 마음을 주께로 향하고, 3) 오직 그분, 주님만을 섬기라.  (온전한 회개)
Returning here is the act of repentance, i.e., a change of direction back to the Lord. Samuel gives three commands: (1) turn away from idolatry; (2) direct the heart to the Lord; and (3) serve him alone (see Deut. 6:4–15; Josh. 24:14–28; Judg. 10:6–16). Foreign gods and the Ashtaroth refers to the totality of idols. The Baals and the Ashtaroth has the same meaning.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502.

3-6절) 사무엘의 요청에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이제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 그곳에서 물을 길어 여호와께 붓고 종일 금식하며 회개함, 이어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림/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죄를 온전히 회개해야만 한다. 미스바에서의 사무엘의 행동은 모세의 행동(출 17-18)과 비슷하다. 

7-8절)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오는 블레셋, 이로 인해 사무엘에게 구원을 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이로써 사무엘은 사사이자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한다. 

9-11절) 이제 사무엘은 제사장의 역할도 수행한다. 어린양을 가져다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블레셋에게 큰 우레를 발하심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다. 
Because the peoples of the ancient Near East believed that every military combat involved a conflict being played out on two planes, the human (terrestrial) and the divine (atmospheric), any unusual meteorological phenomenon during a military operation would naturally be interpreted as evidence of a deity at work (cf. Josh 10:11; Judg 5:4, 20–21). The loud, unexpected thunder was immediately understood by the Philistines as a bad omen, and it “threw them into such a panic that they were routed before the Israelites.”
 Robert D. Bergen, 1, 2 Samuel, vol. 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108.

본장은 이제 본격적으로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로의 역할을 공식적으로 수행하는 장면이다. 이스라엘에 공식적으로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께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또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전심으로 간구함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역사는 물리적인 궤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이 얼마나 하나님을 의뢰하고 죄에서 돌이키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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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에게 임한 재앙이 하나님에 의한 것인지 우연인지에 대한 블레셋의 시험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인한것으로 판명이 난다. 젖나는 소 둘로 수레를 끌게했음에도 이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죄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간 것이다. 
이를 본 벧세메스 사람들은 궤로 인해 기뻐하며 수레의 나무를 패고, 수레를 끌고온 암소를 잡아서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번제를 드릴때는 반드시 숫소로(레 1:3) 드려야만 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15절)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궤를 큰 돌위에 올려두어 사람들에게 전시한 것이다. 이 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중요한 성물로 감히 바라보고나 만질수 없는 것임을 알고도 그렇게 행했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한 것이다. 
- 우리의 본성,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다른이들에게 눈으로 보여주고 싶은 우리의 교만함, 인정의 욕구들. 겸손을 가장한 우리의 교만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수 있는 것이다. 

19절) 고핫자손만이 하나님의 법궤를 운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론 자손들중 제사장들을 제외하고는 궤를 만지거나 바라볼수 없었다.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도 쳐다봐서는 안되었다. 그런데 지금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가 돌아온것에 도취되어서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고 이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 
- 이 궤를 쳐다봐서 많은 이들이 심판을 당한 이야기는 창 9:23에 나오는 아비의 벗음을 본 함의 행동과 비슷하다. 마땅히 보아서는 안되는 것을 봄으로 심판을 당한 함의 이야기와 궤를 바라본 벧세메스 사람들의 이야기는 일맥상통한다. 
- 그런데 문제는 죽은 사람들의 숫자이다. 마소라 사본과 70인역에서는 하나님께서 5만 70명을 치셨다라고 나오는데 이 숫자가 그당시 고대 소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숫자와 비교할때 너무 큰 숫자이기에 NIV에서는 70인으로 축소하고 있다. 결국 이 숫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스라엘은 블레셋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4:10에서 블레셋은 3만을 죽였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도전은 5만을 죽일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삶은 오직 율법과 그분의 선자자들에 대한 순종,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만 가능하다. 

- the Beth Shemeshites behaved like the Philistines: instead of mourning penitently for their sins, they “mourned because of the heavy blow the Lord had dealt them” (v. 19; cf. 5:12) and then came up with a plan to remove the ark from their territory (cf.m 5:8–9; 6:2). Thus they demonstrated the magnitude of their spiritual darkness and so confirmed the Lord’s righteous judgments against them.
- 그런데 문제는 이 벧세메스 사람들의 행동이 블레셋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앞에서 자신의 잘못과 죄를 회개하기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신 것을 애곡했고(19절, 5:12) 자신들의 영역에서 궤를 옮길것을 계획했다.(5:8-9, 6:2) 결국 기럇여아림 사람들을 불러서 궤를 옮겨갈 것을 청한다. 

하나님을 알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때 우리도 쉽게 벧세메스의 사람처럼 실수를 하고 하나님을 이용하고 조종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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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k of the Lord was in the country of the Philistines seven months. And the Philistines called for the priests and athe diviners and said, “What shall we do with the ark of the Lord? Tell us with what we shall send it to its place.” They said, “If you send away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do not send it empty, but by all means return him ba guilt offering. Then you will be healed, and it will be known to you why chis hand does not turn away from you.” And they said, “What is the guilt offering that we shall return to him?” They answered, “Five golden dtumors and five golden mice, e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for the same plague was on all of you and on your lords. So you must make images of your dtumors and images of your mice that ravage the land, fand give glory to the God of Israel. Perhaps ghe will lighten his hand from off you hand your gods and your land. Why should you harden your hearts as ithe Egyptians and jPharaoh hardened their hearts? After he had dealt severely with them, kdid they not send the people away, and they departed? Now then, take and prepare la new cart and two milk cows mon which there has never come a yoke, and yoke the cows to the cart, but take their calves home, away from them. And take the ark of the Lord and place it on the cart and put in a box at its side nthe figures of gold, which you are returning to him as ba guilt offering. Then send it off and let it go its way and watch. If it goes up on the way to its own land, to oBeth-shemesh, then it is he who has done us this great harm, but if not, then we shall know that it is not phis hand that struck us; it happened to us by coincidence.”
a Deut. 18:10; [Gen. 41:8; Ex. 7:11; Dan. 2:2; 5:7]
b [Lev. 5:15, 16]
c ver. 9
d ch. 5:6, 9, 12
e ver. 17, 18; Josh. 13:3; Judg. 3:3
d [See ver. 4 above]
f [Josh. 7:19]
g [ch. 5:6, 9, 11]
h ch. 5:3, 4, 7
i [Ex. 14:17]
j Ex. 8:15, 32; [Ex. 7:13; 9:7, 35; 10:1]
k Ex. 12:31
l [2 Sam. 6:3]
m [Num. 19:2]
n ver. 4, 5
b [See ver. 3 above]
o Josh. 15:10
p ver. 3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삼상 6:1–9.

1절) 블레셋 지방에 궤가 일곱달 머묾, 이것이 정확한 기간인지 상징적인 숫자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7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완전, 성취”의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The Ark among the philistines
2-3절) 자신들에게 재앙이 임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 블레셋인들은 제사장과 복술자들에게 묻고, 속건제를 통해서 병도 낫고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를 알려하였다. 궁극적으로 지금 자신들의 땅에 임하는 재앙을 피하기를 원한 것이다. 

4-9절) 이에 복술자들이 방법을 알려주는데 그 방법이 이러했다. 속건제(the guilt offering)을 드리는데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마리를 명했다.
- 6:17-18절을 참고하라.  
그들은 이 종기와 쥐의 형상, 우상을 바쳐 드리는 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복술가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게, 제대로 안 것이 아니다. 주위를 통해서, 이전에 애굽을 어떻게 치셨는지를 들었고 그래서 그 재앙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 온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 철저하게 혼합주의적인 방식으로 빠져 있는 것이다. 
Interestingly, the diviners’ statements express a knowledge of certain details of the Torah’s narrative (6:6), theology (6:5), and ritual (6:3). The diviners understood, for example, that the Philistines needed to “pay honor to Israel’s god” and that one way to do that was by presenting “a guilt offering” (ʾāšām; cf. Lev 5:14–6:7; 7:1–6). However, the means they recommended was totally wrongheaded.
 Robert D. Bergen, 1, 2 Samuel, vol. 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100.

그래서 요구한 구체적인 방법이 새 수레를 준비하여 멍에를 매어보지 않은 젖 나는 암소 두마리를 끌어다가 수레를 끌게하여 하나님의 궤와 앞서 만든 우상을 싣고 이 수레가 벧세메스로 가면 이 재앙이 하나님이 내리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연히 일어난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 소들은 자기들이 늘 먹던 구유와 매일같이 젖을 먹이는 새끼들로 인해, 뿐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이스라엘 땅으로 가려고 하지 않고 틀림없이 집으로 향할 것이다. 아무도 이 소들을 끌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수레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스라엘 하나님이 이 소들의 자연적인 성향에 반하여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로 이끄신다면, 자신의 땅에 임한 재앙이 그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 한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젖나는 소들에게 멍에를 지워 새끼들을 떼어서 보내는 것은 어미 소들에게 가혹한 명령인 것이다. 즉 이같은 상황은 수레가 앞으로 진행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여러가지 조건을 이중, 삼중으로 만든 것이다. 상식적으로 한번도 멍에를 메고 수레를 끌어보지 않았고 새끼까지 있는 젖나는 어미 소가 수레를 메고 가보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스스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 새 수레와 멍에 메어보지 아니한 젓 소를 사용한 이유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기는 거룩한 종교의식에 부합한 것을 사용하려는 의도였다. 다른 용도로, 세상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수레와 소를 원한 것이다. 

Movement if the 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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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의 해’, 위기의 터널을 재치와 기지로 극복하라.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김난도 교수 외)는 2016년의 전망을 MONKEY BARS라는 10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Make a ‘Plan Z’ ‘플랜 Z’, 나만의 구명보트 전략
2. Over-anxiety Syndrome 과잉근심사회, 램프증후군
3. Network of Multi-channel Interactive Media 1인 미디어 전성시대
4. Knockdown of Brands, Rise of Value for Money 브랜드의 몰락, 가성비의 약진
5. Ethics, in the Stage 연극적 개념소비
6. Year of Sustainable Culture Ecology 미래형 자급자족
7. Basic Instincts 원초적 본능
8. All’s Well That Trends Well 대충 빠르게, 있어 보이게
9. Rise of ‘Architect-Kids’ ‘아키텍키즈’, 체계적 육아법의 등장
10. Society of the Like-minded 취향 공동체


N포 세대 :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 그에 더해 ‘내 집’과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5포 세대’, 그리고 ‘꿈’과 ‘희망’마저 포기하는 세대를 ‘7포 세대’라고 부르는데 이에 더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수인 N포 세대란 거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의미이다.

달관세대 : 일본의 장기 디플레이션 속에 생겨난 ‘사토리족’의 한국어 버전으로 높은 실업률로 희망도 의욕도 없이 무기력해진 청년들의 모습을 ‘달관’에 빗대어 달관세대 혹은 달관족이라고 부른다. 적게 벌어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만족해하며 행복감을 느끼겠다는 주관적인 성향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청년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찾은 대처방안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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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hilistines and the Ark
When the Philistines captured the ark of God, they brought it from qEbenezer to rAshdod. Then the Philistines took the ark of God and brought it into the house of Dagon and set it up beside sDagon. And when the people of Ashdod rose early the next day, behold, tDagon had fallen face downward on the ground before the ark of the Lord. So they took Dagon and put him back in his place. But when they rose early on the next morning, behold, Dagon had fallen face downward on the ground before the ark of the Lord, uand the head of Dagon and both his hands were lying cut off on the threshold. Only the trunk of Dagon was left to him. This is why the priests of Dagon and all who enter the house of Dagon vdo not tread on the threshold of Dagon in Ashdod to this day.
wThe hand of the Lord was heavy against the people of Ashdod, and he terrified and afflicted them with xtumors, both Ashdod and its territory. And when the men of Ashdod saw how things were, they said,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must not remain with us, for his hand is hard against us and against Dagon our god.” So they sent and gathered together all ythe lords of the Philistines and said, “What shall we do with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They answered, “Let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be brought around to Gath.” So they brought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there. But after they had brought it around, zthe hand of the Lord was against the city, causing a very great panic, and he afflicted the men of the city, both young and old, so that xtumors broke out on them. 10 So they sent the ark of God to Ekron. But as soon as the ark of God came to Ekron, the people of Ekron cried out, “They have brought around to us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to kill us and our people.” 11 yThey sent therefore and gathered together all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and said, “Send away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and let it return to its own place, that it may not kill us and our people.” For there was a deathly panic throughout the whole city. wThe hand of God was very heavy there. 12 The men who did not die were struck with xtumors, and the cry of the city went up to heaven.

q ch. 4:1; 7:12
r Josh. 13:3
s Judg. 16:23
t [Isa. 46:1, 2]
u [Jer. 50:2; Ezek. 6:4, 6; Mic. 1:7]
v [Zeph. 1:9]
w [Ex. 9:3; Ps. 32:4; Acts 13:11]
x ch. 6:5
y Josh. 13:3
z ch. 7:13; 12:15; Deut. 2:15
x [See ver. 6 above]
y [See ver. 8 above]
w [See ver. 6 above]
x [See ver. 6 above]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삼상 5:1–12.


하나님의 궤의 이동
5장에서의 궤의 이동 : 에벤에셀-아스돗(다곤 신전)-가드-에그론

블레셋은 궤를 탈취하여 처음에는 기뻐했지만 도리어 여호와의 능력의 증거가 되었다. 

1-3절) 궤를 다곤의 곁에 둔 이유는 탈취한 궤로 여호와 하나님이 다곤을 섬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남성적인, 그리고 전쟁의 승리를 주도했던 자신의 신 다곤이 지금 여호와의 궤앞에 엎드러져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블레셋의 5개 주요도시 :  Ashdod and Ekron were the two northernmost cities of the Philistine pentapolis (five ruling cities: Ashdod, Gaza, Ashkelon, Gath, Ekron; see 6:17).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500.

4절)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는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다곤 신상이 궤앞에 또다시 엎드려졌을뿐만 아니라 머리와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군사적 처형의 모습과 같다. 
-  Dagon’s head and hands had been “broken off” (Hb. krt; “cut off”) in a manner reminiscent of grisly military executions (cf. 17:51; 31:9; 2 Sam 4:12).65
65 W. Zwickel compares the text’s description of the statue’s broken form with archaeological data and concludes the story has been modified during the postexilic period to conform to later iconoclastic customs (“Dagons abgeschlagener Kopf [1 Samuel v 3–4],” VT 44 [1994]: 239–49). This suggestion misses the parallels noted in the other Scriptures that suggest that Yahweh was “executing” Dagon using a technique of military execution.
 Robert D. Bergen, 1, 2 Samuel, vol. 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97.

6절) 여호와의 손이 이들에게 임함
wThe hand of the Lord
w [Ex. 9:3; Ps. 32:4; Acts 13:11]
- 여호와의 손(6절, 9절-야훼), 하나님의 손(11절-엘로힘)
-  יָד yad (388d); a prim. root; hand / 주로 손, 능력(힘)의 의미를 가진다. 
prim. primary, primitive
 Robert L. Thomas, New American Standard Hebrew-Aramaic and Greek Dictionaries : Updated Edition (Anaheim: Foundation Publications, Inc., 1998).

블레셋의 여러 도시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심, 이는 마치 출애굽때 이적을 통해서 그들의 우상을 멸하심으로 하나님만이 온 우주의 창조주이심을 증거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하지만 유의할 것은 하나님의 궤 자체가 능력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수 많은 이들속에도 하나님이 없을수 있음을 유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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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th of Eli
12 A man of Benjamin ran from the battle line and came to Shiloh the same day, hwith his clothes torn and with dirt on his head. 13 When he arrived, iEli was sitting on his seat by the road watching, for his heart trembled for the ark of God. And when the man came into the city and told the news, all the city cried out. 14 When Eli heard the sound of the outcry, he said, “What is this uproar?” Then the man hurried and came and told Eli. 15 Now Eli was ninety-eight years old jand his eyes were set so that he could not see. 16 And the man said to Eli, “I am he who has come from the battle; I fled from the battle today.” And he said, k“How did it go, my son?” 17 He who brought the news answered and said, “Israel has fled before the Philistines, and there has also been a great defeat among the people. Your two sons also, Hophni and Phinehas, are dead, and the ark of God has been captured.” 18 As soon as he mentioned the ark of God, Eli fell over backward lfrom his seat by the side of the gate, and his neck was broken and he died, for the man was old and heavy. He had judged Israel forty years.
19 Now his daughter-in-law, the wife of Phinehas, was pregnant, about to give birth. And when she heard the news that the ark of God was captured, and that her father-in-law and her husband were dead, she bowed and gave birth, for her pains came upon her. 20 And about the time of her death the women attending her said to her, m“Do not be afraid, for you have borne a son.” But she did not answer or pay attention. 21 And she named the child nIchabod, saying, o“The glory has departed2 from Israel!” because pthe ark of God had been captured and because of her father-in-law and her husband. 22 And she said, “The glory has departed from Israel, pfor the ark of God has been captured.”

h See Josh. 7:6
i ver. 18; ch. 1:9
j 1 Kgs. 14:4; [ch. 3:2]
k 2 Sam. 1:4
l ver. 13
m Gen. 35:17
n ch. 14:3
o Ps. 78:61; [Ps. 26:8]
2 Or gone into exile; also verse 22
p ver. 11
p [See ver. 21 above]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1 Sa 4:12–22.

12절) 이처럼 옷을 찟고 머리에 재를 쓰는 행위는 극도의 슬픔, 공포에 대한 당시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Tearing one’s clothes, often along with putting dirt on one’s head, was the normal reaction to grief or horror in the OT (e.g., 2 Sam. 1:2, 11; 3:31; 13:19, 31; 15:32; Job 2:12).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499.

17절) 베냐민 사람, 소식을 전하는 자는 점점 심각한 상황을 점층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하여 도망을 함-백성중에 큰 살륙이 있음-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하나님의 궤를 빼앗김
18절) 이 소식을 듣고 엘리가 자신의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음
- 이 사건은 엘리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엘리의 목이 부러진 사건은 이후에 다곤 신상이 넘어지고 목이 부러지는 것과 평행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5장의 사건)
- 혹자는 " He had judged Israel forty years.”의 표현으로 신명기에서 말하는 왕권의 종결을 의미한다고 본다.
R. Polzin suggests a different significance to the death of Eli: “Eli falling backward off his throne to his death is this overture’s central event, the Deuteronomist’s view of kingship in a nutshell. Eli represents all the burden and doom that kingship brought Israel. He had ‘judged’ Israel for forty years; that is to say, in the fullness of time kingship in Israel would disappear”
 Robert D. Bergen, 1, 2 Samuel, vol. 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1절) 이가봇의 뜻은 “영광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의미이다. 
Ichabod means “where is the glory?”
본문에서 떠났다(גָּלָה galah, depart)라는 표현은 추방하다(exile)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이스라엘에게서 거두어가신 것인지, 추방된 달리 말하면 쫓겨난 것인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앞서 엘리 아들들의 행동과 장로들의 행동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자신의 영광을 거두셨을수도 있고, 앞서의 행동이 하나님을 추방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을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불의와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כָּבַד  kabob or כָּבֵד kabed, 18절의 heavy(비대한)은 히브리어 카보드의 의미인데 이는 무거운, 영광의라는 의미를 가진다. 본문에서 족장인 엘리와 두아들의 죽음, 그래서 엘리 왕가의 종말,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은 바로 이날 이스라엘에 이가봇이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영광(kid)이 부재한 것, 떠나 버린 것을 의미한다. 
With her dying gasps she named the child “Ichabod” (Hb. ʾî-kābôd, lit., “Where [is] glory?” or “Nothing of glory”). The name, a derivative of kbd (cf. discussion of v. 18), was appropriate, for with the deaths of the patriarch and his two sons the kbd—honor, weight, burden—of the Elide dynasty was gone. More than that, the glorious “ark of God” (v. 21), the Lord’s throne, had “been captured” (v. 22). For Israel on that day the kbd was gone.
 Robert D. Bergen, 1, 2 Samuel, vol. 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94.

본문을 그림으로, 영화의 한 장면으로 생각해 보라. 한사람이 달려와 전장의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듣고 온 성읍이 울부짖는다.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의 궤와 자신의 아들들, 전쟁에 대해서 걱정하던 98세의 제사장은 이 소리를 듣는다.(그는 지금 나이들어 보지 못한다.) 엘리앞에 소식을 전하는 자가 달려와서 전쟁의 소식과 아들, 궤를 빼앗겼음을 전하자 비둔한 엘리는 자신의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만다. 뿐만 아니라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도 이 소식을 듣고 조산으로 아이를 낳고 죽고 만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가봇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이스라엘, 하나님은 온전히 이스라엘의 왕이시기를 원했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했다. 또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그분을 멸시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거두어 가신 것이다. 우리들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들 가운데 거하는가? 아니면 그 영광을 쫓아내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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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On that day I will fulfill against Eli lall that I have spoken concerning his house, from beginning to end. 13 lAnd I declare to him that I am about to punish his house forever, for the iniquity that he knew, mbecause his sons were blaspheming God,1 nand he did not restrain them. 14 Therefore I swear to the house of Eli othat the iniquity of Eli’s house shall not be atoned for by sacrifice or offering forever.”
15 Samuel lay until morning; then he opened the doors of the house of the Lord. And Samuel was afraid to tell the vision to Eli. 16 But Eli called Samuel and said, “Samuel, my son.” And he said, “Here I am.” 17 And Eli said, “What was it that he told you? Do not hide it from me. pMay God do so to you and more also if you hide anything from me of all that he told you.” 18 So Samuel told him everything and hid nothing from him. And he said, q“It is the Lord. Let him do what seems good to him.”
19 rAnd Samuel grew, and the Lord was with him sand let none of his words fall to the ground. 20 And all Israel tfrom Dan to Beersheba knew that Samuel was established as a prophet of the Lord. 21 And the Lord appeared again at Shiloh, for the Lord revealed himself to Samuel uat Shiloh vby the word of the Lord.

l See ch. 2:30–36
l [See ver. 12 above]
m ch. 2:12, 17, 22
1 Or blaspheming for themselves
n ch. 2:23–25
o [Isa. 22:14]
p [Ruth 1:17]
q [2 Sam. 10:12; Job 1:21; 2:10; Ps. 39:9; Isa. 39:8]
r See ch. 2:21
s [ch. 9:6]
t See 2 Sam. 3:10
u [Josh. 18:1]
v ver. 1, 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1 Sa 3:12–21.

11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다라는 표현은 극심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the ears of everyone who hears it to tingle”—that is, to give rise to great fear and dismay (cf. 2 Kgs 21:12; Jer 19:3).
 Robert D. Bergen, 1, 2 Samuel, vol. 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87.

13절) 엘리의 책임 : 물론 그 아들들의 죄악이지만 그가 가장으로서 아들들의 죄악을 알면서도 그것을 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4절) 엘리집안의 죄안이 제물이나 예물로도 속죄함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죄악이 심하기 때문이다. 앞서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린 제물과 예물을 멸시했다.(2:29) 
15절) 사무엘이 여호와의 집 문을 열고 나온 모습은 물리적으로 새로운 아침을 알리는 표현임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역사상 새로운 선지자, 영적인 지도자의 출현을 의미한다. 

17절) 하나님의 명령을 숨길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엄숙한 형식을 이용해 표현한다. 
May God do so to you and more also if is a form of solemn appeal to the Lord, a kind of oath. Cf. Ruth 1:17; 1 Sam. 14:44; 25:22; 2 Sam. 3:9; 19:13; 1 Kings 19:2.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497.

17-18) 엘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사무엘, 엘리또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실 것을 인정하고 알고 있었다. 자신의영적 아비와 같은 엘리집안의 멸망을 예언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말씀을 대언하는 자의 사명임을 사무엘은 깨닫게 되었고 그 엄중한 명령을 시행하고 있다. 
19) 사무엘이 전하는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사무엘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있으신 분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바로 사무엘의 성공은 하나님의 성공이 되는 것이다. 
20) 사사시대 사사들의 권위나 그들의 통치는 그들이 속한 부족이나 일정한 지역에 국한 되어있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달랐다. 모세이후로 이스라엘은 처음 국가적인 선지자, 지도자를 갖게 되었다. 
-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북과 남의 한계를 전통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말하자면 온 이스라엘.
- Like Moses the prophet before him (cf. Num 12:7), Samuel was “attested” (Hb. neʾĕmān, “established,” “confirmed,” “faithful”);54 his words had passed the Torah’s test for authenticity (cf. Deut 18:22). For the first time since Moses, Israel had a national prophet.
54 In this verse yet another link is forged between Moses and Samuel, this time on the lexical level. Moses is the only person in the Torah or to this point in the Former Prophets to whom the virtuous adjectival participle נֶאֱמָן is applied.
 Robert D. Bergen, 1, 2 Samuel, vol. 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88–89.
- 본문에서 세우심을 입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נֶאֱמָן (Hb. neʾĕmān) 로 “established,” “confirmed,” “faithful”의 의미이다. 아멘이 어원이 된다. 사무엘의 지도자로 세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그리하여 사무엘도 신실한 선지자가 되었다. 
21절) 여호와의 말씀이 실로에서 다시 사무엘에게 임하였고 이 사무엘의 말은 이스라엘에게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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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rd Calls Samuel
fNow the boy Samuel was ministering to the Lord in the presence of Eli. gAnd the word of the Lord was rare in those days; there was no frequent vision.
At that time Eli, hwhose eyesight had begun to grow dim so that he could not see, was lying down in his own place. iThe lamp of God had not yet gone out, and Samuel was lying down jin the temple of the Lord, where the ark of God was.
Then the Lord called Samuel, and he said, “Here I am!” and ran to Eli and said, “Here I am, for you called me.” But he said, “I did not call; lie down again.” So he went and lay down.
And the Lord called again, “Samuel!” and Samuel arose and went to Eli and said, “Here I am, for you called me.” But he said, “I did not call, my son; lie down again.” Now Samuel did not yet know the Lord, and the word of the Lord had not yet been revealed to him.
And the Lord called Samuel again the third time. And he arose and went to Eli and said, “Here I am, for you called me.” Then Eli perceived that the Lord was calling the boy. Therefore Eli said to Samuel, “Go, lie down, and if he calls you, you shall say, ‘Speak, Lord, for your servant hears.’ ” So Samuel went and lay down in his place.
10 And the Lord came and stood, calling as at other times, “Samuel! Samuel!” And Samuel said, “Speak, for your servant hears.

f ch. 2:11, 18
g [ver. 21; Ps. 74:9; Amos 8:11]
h ch. 4:15; Gen. 27:1; 48:10; [Deut. 34:7]
i Ex. 27:20, 21; Lev. 24:2, 3; 2 Chr. 13:11
j ch. 1:9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1 Sa 3:1–10.


본문 3장은 이제 소년 사무엘이(1절) 선지자(20절)로 인정되는 장면이다. 

2절) 엘리의 눈이 어두워짐 : 육체적으로 시력이 약해지는 것 뿐만 아니라 영적인 안목도 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3절) 여호와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새벽이 오기전, 밤중이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의 궤가 있는 성전에 누워있다는 것은 장소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동반한다. 이처럼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들려지지 않는 시대속에서 어둠의 새벽을 가르는 등불과도 같은 역할을 감당한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이다. 

4절)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나님 
In a form paralleling Abraham, Jacob, and Moses’ obedient responses to divine calls (Gen 22:1, 11; 31:11; Exod 3:4), Samuel responded, “Here I am” (v. 4).
 Robert D. Bergen, 1, 2 Samuel, vol. 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86.

7절) 하나님의 부름에도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무엘,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섬기며 있었지만 아직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부름을 엘리도 뒤늦게 인지하고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할 것을 이야기한다. 
-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의 응답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일격적으로, 개인적으로, 인지적으로 알지 못할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알아가고 있는가? 또한 이렇게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지도하고 있는가? 눈이 어두워진 엘리의 모습이 내가 아닌가? 
“It was a gloomy time, poor in revelation, as in exemplary religious life. For Eli, the High-priest, was weak, his sons defiled the sanctuary, the people served idols (7:3 sq.), and the Philistines ruled oppressively. Hence it came that Samuel did not yet know how the Lord was used to reveal Himself to the prophets, the announcer of His word to men (3:1, 7)” (Nägelsbach, Herz. R.-E. XIII. 395 sq.)
 John Peter Lange et al., A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s: 1 & 2 Samuel (Bellingham, WA: Logos Bible Software, 2008), 89.

10절)  Samuel! Samuel! The Lord called other people twice by name at a crucial point in their lives; e.g., Abraham (Gen. 22:11), Jacob (Gen. 46:2), and Moses (Ex. 3:4).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497.
Jehovah came and stood, that is, before Samuel. That an objective real appearance is here meant is clear from ver. 15, “the vision” (מַרְאָה). Three factors are to be combined: the dream-state of Samuel’s soul (the internal sense), the hearing a voice on awakening, the seeing an appearance.
 John Peter Lange et al., A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s: 1 & 2 Samuel (Bellingham, WA: Logos Bible Software, 2008), 89.
10절에서의 부름은 앞선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사무엘의 이름을 두번 부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앞에 서셨다. 

하나님의 부름을 바르게 분별하여 그 부름앞에 “여호와여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바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바른 영적 분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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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rd Rejects Eli’s Household
27 And there came oa man of God to Eli and said to him, “Thus says the Lord, p‘Did I indeed reveal myself to the house of your father when they were in Egypt subject to the house of Pharaoh? 28 qDid I choose him out of all the tribes of Israel to be my priest, to go up to my altar, to burn incense, rto wear an ephod before me? sI gave to the house of your father all my offerings by fire from the people of Israel. 29 Why then do you tscorn2 my sacrifices and my offerings that I commanded for my dwelling, and honor your sons above me by fattening yourselves on the choicest parts of every offering of my people Israel?’ 30 Therefore the Lord, the God of Israel, declares: v‘I promised that your house and the house of your father should go in and out before me forever,’ wbut now the Lord declares: ‘Far be it from me, for those who honor me I will honor, and those who despise me shall be lightly esteemed. 31 Behold, xthe days are coming when I will cut off your strength and the strength of your father’s house, so that there will not be an old man in your house. 32 Then yin distress you will look with envious eye on all the prosperity that shall be bestowed on Israel, zand there shall not be an old man in your house forever. 33 The only one of you whom I shall not cut off from my altar shall be spared to weep his3 eyes out to grieve his heart, and all the descendants4 of your house shall die by the sword of men.5 34 aAnd this that shall come upon your two sons, Hophni and Phinehas, shall be the sign to you: both of them shall die bon the same day. 35 cAnd I will raise up for myself a faithful priest, who shall do according to what is in my heart and in my mind. dAnd I will build him a sure house, and he shall go in and out before emy anointed forever. 36 And everyone who is left in your house shall come to implore him for a piece of silver or a loaf of bread and shall say, “Please put me in one of the priests’ places, that I may eat a morsel of bread.” ’ ”

o 1 Kgs. 13:1
p [Ex. 3–12]
q Ex. 28:1; Num. 18:1, 7
r [ch. 14:3; 22:18]
s Lev. 2:3, 10; 6:16; 7:7, 8, 34; 10:14, 15; Num. 5:9, 10; See Num. 18:8–19
t Deut. 32:15
2 Hebrew kick at
v Ex. 27:21; 29:9
w [Jer. 18:9, 10]
x 1 Kgs. 2:27; [ch. 4:11, 18, 20; 22:18, 19]
y ch. 4:11; [Judg. 18:30]; See Ps. 78:59–64
z [Zech. 8:4]
3 Septuagint; Hebrew your; twice in this verse
4 Hebrew increase
5 Septuagint; Hebrew die as men
a 1 Kgs. 13:3
b ch. 4:11
c 1 Kgs. 2:35; 1 Chr. 29:22
d ch. 25:28; 1 Kgs. 11:38; [2 Sam. 7:11, 27]
e 2 Sam. 22:51; Ps. 18:50; [Ps. 89:20]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삼상 2:27–36.

27-28) 엘리 제사장 집안의 특권, 하나님의 사람이 찾아와 말씀하심
1) 주의 제단에 나아가 제단에 제물을 드림. 
2) 분향함
3) 하나님앞에 에봇을 입음
4) 화제를 주심, 완전히 불태워 드리는 번제를 제외하고 속건제(burnt offering), 속죄제(sin offering), 소제물(grain offering), 화목제물(peace offering)들은 제사장들이 취할 수 있었다.(레 6:14-18, 7:1-38) 

27절)  Thus the Lord has said is the regular prophetic “messenger formula.” In Samuel this formula appears also in 1 Sam. 10:18; 15:2; 2 Sam. 7:5, 8;   p 496  12:7, 11; 24:12.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495–496.
- "여호와의 말씀에” 이 표현은 일반적인 선지자적 메신저 공식이다. 

29절) 엘리 집안(자손)의 문제
- 하나님의 처소에서 하나님의 제물을 멸시하고 발로 밟음, 게다가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여겨 하나님의 것으로 자신들을 살지게 함

30-절)  Far be it from me,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께서 이미 엘리 집안에 영원히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지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은 자에 대해서 결탄코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다라고 말씀하심.

31절) Behold, the days are coming is an eschatological formula often found in the Prophets.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496.

31-34) 하나님의 심판
- 네 팔(arm & strength)과 네 조상의 팔을 끊으심, 또한 다른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이는 동안 환난을 받게됨, 죽임당하지 않은 남겨진 자들이 슬프게하고 네집의 모든 자가 칼로 죽임을 당함,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임을 당함으로 모든 이 심판의 표징이 됨. 

35) 충실한(faithful,  ne’eman)과 견고한(sure,  ne’eman)이 같은 단어이다. 하나님앞에 충실할때 하나님도 그에게 충실하게 대해 주신다. 
제사장을 세우실 것을 약속하심, 이는 사독일 것이다. 
-The faithful priest with a sure house is probably Zadok, priest under David and a descendant of Ithamar’s brother Eleazar, son of Aaron (2 Sam. 8:17; 1 Chron. 24:3; see also Judg. 20:28)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496.

36) 엘리 집안의 남은 사람이 와서 하나님의 충실한 제사장에게 떡 조각을 요청하게 될 것임을 말씀 하시는 하나님

- 결국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시고, 그가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또한 그에게 견고한 집을 세울것을 약속하심. 또한 그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원히 행할 것을 약속하심, 여기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2 Sam. 22:51; Ps. 18:50; [Ps. 89:20]을 참고.

- 엘리 가문의 심판중에도 은혜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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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 Rebukes His Sons
22 Now Eli was very old, and he kept hearing all that his sons were doing to all Israel, and how they lay with the women who lwere serving at the entrance to the tent of meeting. 23 And he said to them, “Why do you do such things? For I hear of your evil dealings from all these people. 24 No, my sons; it is no good report that I hear the people of the Lord spreading abroad. 25 If someone sins against a man, God will mediate for him, but if someone sins against the Lord, who can intercede for him?” But they would not listen to the voice of their father, mfor it was the will of the Lord to put them to death.
26 Now the boy Samuel ncontinued to grow both in stature and in favor with the Lord and also with man.

l Ex. 38:8
m [Josh. 11:20]
n Luke 2:5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삼상 2:22–26.


엘리 제사장은 자신의 아들들의 악행을 그 이전에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손대지 않았다. 이후에 그가 매우 늙었을때에 더 심각한 범죄의 사실이 들리자 그때서야 자신의 아들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만약 부모가 자녀의 잘못과 범죄에 대해서 분명하게 경고하고 책망을 했더라면… 홉니와 비느하스의 심판에 대해 엘리의 책임도 크다라고 생각된다. 

22절)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한 두 아들, 그 이전에 제사장에게 바쳐진 제물을 빼돌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 아마도 나실인처럼 구별된 여인들이거나 자원하여 그 일을 하는 여인들이었을 것이다.(민 6:2, 출 38:3) 또는 이방의 창녀들 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점점더 심각한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성전안에서 감히 누구도 그들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지적할 수 없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을 것이다. 

24절) 다양한 해석
(삼상 2:24, 개정)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삼상 2:24, 개역)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삼상 2:24, 바른) 『내 아들들아, 그렇게 하지 마라. 여호와의 백성 가운데서 내가 들은 소문이 좋지 않으니,』
(삼상 2:24, 새번역) 『이놈들아, 당장 그쳐라! 주님의 백성이 이런 추문을 옮기는 것을 내가 듣게 되다니, 두려운 일이다.』
(삼상 2:24, 쉬운) 『얘들아, 그러면 안 된다. 너희들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다. 너희가 이 백성에게 죄를 짓게 만드는구나.』
(삼상 2:24, 우리말) 『내 아들들아, 그러면 안 된다. 사람들 사이에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않구나.』
(삼상 2:24, 현대인) 『내 아들들아, 너희가 이래서 되겠느냐?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않다.』
(삼상 2:24, 가톨릭) 『내 아들들아, 안 된다! 주님의 백성 사이에 퍼지는 고약한 소문이 나한테까지 들리다니!』
- 엘리의 아들들의 악행이 여호와의 백성으로 하여금 범죄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공공연하게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죄를 묵과하는 것을 통해서 정의가 굽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담력을 얻어 자신들도 그러한 죄를 짓게될 용기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5절) 사람에게 범죄하는 것과 여호와께 범죄하는 것의 차이, 
- 충고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는 것을 멈추지 않는 두 아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심
- 정의가 하나님의 본성이기에, 그렇게 죄를 짓는 이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당연하다. 

26절) 이러한 엘리의 두아들의 악행과 대조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더욱 사랑스러워가는 사무엘
Luke 2:52를 떠올리게 한다. / 21절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점점더 악행을 행하고 반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는 것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눅 2:52, 개정)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Lk 2:52, ESV) 『And Jesus increased in wisdom and in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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