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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존 스토트)
1장 변화하는 세계 :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는 필요한가?
* 복음주의적 사회 참여의 유산
영국과 미국의 경우 실제로 복음주의자들을 통해서 사회개혁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과 같은 피의 개혁이 영국에서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영국의 복음주의 운동으로 인한 영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윌버포스의 역할)
- 사회참여는 종교의 자식이자 복음전도의 쌍둥이 자매였다. p.25
- 찰스 피니는 복음이 사회개혁을 향한 강력한 추진력을 방출한다는 것과 교회가 사회 개혁을 소홀히 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동시에 부흥에 방해가 된다고 확신했다.
* 대역전(Great Reversal)
- 20세기 초반, 1차 세계대전이후 10년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게 된 기원
1) 20세기 들면서 유럽과 미국 교회를 휩쓴 신학적 자유주의와의 싸움, 믿음의 근본적인 정당성을 옹호하느라 사회적 관심에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
2)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의 사회복음에 대한 반발, 대표자 월터 라우센부쉬
3) 1차 세계대전이후 전쟁으로 인해 인간의 악이 폭로됨으로써 환멸과 비관주의가 만연,
-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유토피아를 꿈꾸었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됨
4) 전천년설의 만연
- 현재의 악한 세상에 대한 개혁의 노력은 의미가 없다는 가르침
5) 중산층의 부상
- 이들은 구원을 중시하며 '지금이 좋사오니’라고 생각하며 보수적이고 현재 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급급하여 고통당하는 자들에 대해서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사회적 관심의 회복
1) 칼헨리 : 크리스챠니트 투데이(현대 근본주의의 불편한 양심)
2) 1974년 스위스 로잔대회 : 온땅이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라(Let the Earth Hear His Voice),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동등하게 강조 / https://ecumenism.net/docu/lcwe.htm / 복음은 뿌리이며,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둘 다 그것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p.33
교회와 정치
1) 정치라는 단어의 정의
- 정치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다. 좁은 의미에서 통치의 학문이다. 예수님의 삶은 후자를 추구하지 않았지만 전적으로 전자,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2)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
사회 봉사(social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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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행동(social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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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움 | 곤경을 발생시키는 원인을 제거함 |
자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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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적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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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가정을 대상으로 봉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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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조를 변혁시키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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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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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이루려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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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한 교차로에서 계속 사고가 난다면 더 많은 앰뷸런스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3)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사람이 반대하는 이유
(1) 현대 교회의 정치적 강조 즉 교회가 정치문제에 몰두함으로 개인구원이나 영원한 것들에 관심을 등한시 하기 때문에,
(2) 현대 교회의 정치적 견해가 서구 부르주아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3) 현대 교회의 정치적 기여가 아마추어적이기에,
(4) 현대 교회의 정치적 기대는 너무 순진하다.(인간의 유오성과 죄를 간과)
4)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 그리스도인 개인과 집단, 교회를 구분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성실한 시민으로서 선거에 참여하고 현대의 쟁점에 정통하며, 공적 토론에 참여하고 신문에 글을 쓰고,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법안 통과 압력을 가하거나 데모에 참여하기도 해야 한다. 반면에 교회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자제해야 한다.
- 교회는 정책이 아니라 원리에 관심을 가진다.(진실성, 신중함, 정의)
- 교회는 성경적 가치를 바르게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인 개인이 각자의 신앙의 양심과 세계관에 따라서 정치적으로 행동하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다.
* 사회적 관심의 성경적 기초
-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도피 혹은 관여이다.(또하나는 적응이다.)
1) 하나님에 대한 더욱 온전한 교리
- 살아계신 하나님은 종교의 하나님일뿐 아니라 자연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칭의의 하나님 일 뿐 아니라 또한 정의의 하나님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이며, 그분이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이 세상을 돌보셨기 때문에, 우리는 억압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거짓과 기만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권력의 남용에 대항하여 섬김을 위해, 이기심에 대항하여 사랑을 위해, 파괴적인 반목에 대항하여 협력을 위해, 그리고 분열과 적대감에 대항하여 화해를 위해 일하는 데 헌신하지 않을 수 없다.” p.45
2) 인간에 대한 더욱 온전한 교리
- 인간이 진화에 따라 더 나은 존재가 될것이라는 미래의 불확실한 발전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하나님의 피조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코끼리 인간 이야기)
3) 그리스도에 대한 더욱 온전한 교리
-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의 안전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셨다.(성육신하신 주님)
4) 구원에 대한 더욱 온전한 교리
- 구원을 하나님 나라와 분리시켜서는 안된다. / 우리는 구세주 예수님과 주 예수님을 분리해서는 안된다. / 믿음과 사랑을 분리해서는 안된다.(참된 믿음은 사랑을 낳으며, 참 사랑은 섬김을 낳는다.)
5) 교회에 대한 더욱 온전한 교리
- 교회는 비회원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협동 조합이다.(윌리엄 템플) : 교회는 동호회가 아니다. 우리는 교회의 이중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거룩한 세속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증인(마르투리아)인 동시에 종(디아코니아)으로 부름받았다.
세상은 우리가 살고 사랑하고, 증거하고 섬기며,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고 죽어야 하는 장이다.
2장. 복잡한 세계 : 기독교적 사고는 독특한가?
- 헌신 없는 반성은 모든 행동이 마비된 것이지만, 반성 없는 헌신은 행동에 대한 광신이다.
- “교회는 영원한 복음에 헌신한다. ... 교회는 세부적인 행동이라는 덧없는 프로그램에 헌신해서는 결코 안된다.”(윌리엄 템플)
- 현대의 복잡한 문제들(과학기술의 발전은 더욱 이것을 복잡하게 만든다)속에서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계시아래 참을성 있게 앉아서 그분이 우리에게 본질적으로 공통된 마음을 가져다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 이러한 복잡한 사안들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해결책이 없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겉만 번지레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기독교적 지성
- 성경의 기본 전제들을 확고히 부여잡고 있으며 성경 진리에 통달한 지성을 계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 지성을 사용하는 것의 유익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2) 우리를 풍료롭게 한다. 3) 세상에서 우리의 증거를 강화시켜 준다.
- 바르게 살기 원하면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 바르게 생각하기 원한다면 새로워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일단 마음이 새로워지면 세상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롬 12:2)
* 기독교적 지성의 여섯가지 필수적 표지(해리 블레마이어스)
1) 초자연에 대한 지향, 2) 악에 대한 인식, 3) 진리에 대한 개념, 4) 권위를 받아들임, 5) 사람에 대한 관심, 6) 성례적 경향
- 데이비드 길(하나님, 역사, 사람, 윤리, 진리, 아름다움)
- 창조, 타락, 구속, 완성 / 선한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타락했고 구속을 통해 새로운 것이 되면 이어 완전한 것이 될 것이라는 안목이 요구된다.
하나님 중심성이 기독교 지성의 기본이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로서의 독특한 존엄성과 하나님의 심판아래있는 죄인으로서의 독특한 부패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 : 인간은 심한 병을 앓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을 세우고 동시에 같은 과학 기술을 이용해 정적을 고문하기도 한다.
- 성과 정치에 대한 영역에 대한 고찰
사회의 미래
- 인간에 대한 전적인 신뢰나 불신의 양극단의 상태,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4가지 선물(지성, 성경, 성령, 기독교 공동체) : 1) 생각할 수 있는 정신, 2) 우리의 사고를 지시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증거를 주셨다. 3) 진리의 영이신 성령, 4) 우리의 사고의 배경이 되는 기독교 공동체
포스트모더니티의 부속물
- 탈근대적 사고방식은 계몽주의(과학기술로 인한 인간의 발전, 유토피아 건설)를 거부한다. 세계대전과 핵위험, 환경파괴, 민족주의와 부족주의로 인해 진보에 대한 꿈은 파괴되었다. 거대담론(마르크스, 다윈, 프로이트)을 거부
3장. 다원적 세계 :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영향력이 있는가?
- 다원주의란 갖가지 인종 및 종교 집단으로 이루어진 사회로 세속화와 전쟁 직후 시행된 개방적 이민정책 때문이다.(영국의 상황)
- 강요와 자유방임
강요
- 종교재판(신앙), 미국의 금주령(행동)
자유 방임
- 유대인 학살을 방임한 독일 그리스도인들
설득
- 성경적 하나님관은 자유방임을 배제하고, 성경적 인간관은 강요를 배제한다.
정치제도
- 예수님과 제자들이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다. 1세기의 상황이 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데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노예제도 폐지의 예)
- 전제주의 : 강요의 형태, 무정부 상태 : 자유 방임의 형태, 민주주의 : 설득
- 이혼에 대한 주님의 태도 : 신적이상(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에 양보한 것이다.(막 10:5)
4장. 소외 : 우리는 과연 영향력이 있는가?
- 역사와 성경의 증거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쳐 왔다.
빛과 소금
1)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거룩하게, 다르게)
2)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 사회에 스며들어야 한다.(구별되어야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3)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인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우리는 그분의 극단적 가르침을 희석시키고, 그분의 과격한 복음을 생략하여 줄여 버리는 일을 놀랄 만큼 효율적으로 해왔다. 그것은 왜 우리가... 우리 사회의 도덕에 그처럼 당혹할 정도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가를 설명해준다.”(탐 사인)
- 밤이 왔을때 왜 어둡냐고 비난할 수 없다. 등불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패하고 어두운 세상을 비난하기 보다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4)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다운 독특성을 간직해야만 한다.
기도와 전도
-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복음이다.
- 복음이 신실하게 전파될때 방부제적 환경이 만들어지고 문화가 변혁된다.
증거와 항변
- “한마디 말은 전 세계보다 무겁기 때문이다.”(알렉산더 솔제니친)
모범과 그룹들
- 그리스도인들의 소그룹은 복음의 가시적 구현이 될 수 있다.
- 소수 집단들이 수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그들의 확신과 헌신으로 메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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