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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인간을 업그레이드하라. 
 
 
<사피엔스>에서 저자는 ‘아프리카에 살던 보잘것 없던 영장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이 행성을 지배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집단 신화를 믿는 독특한 능력으로 인해 이 행성을 정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 집단 신화는 돈, 종교, 국가등을 말한다. 
<호모 데우스>에서는 이제 나아가 ‘오랜 신화들이 21세기 신기술과 만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근대 과학은 우주가 계획도 목적도 없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모든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던 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대신 과학 발전과 경제성장을 추구했고 이 과정에서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를 따랐다. 인본주의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요청했고 그 욕망을 따라 굶주림, 전염병 전쟁을 극복하고 나아가 불멸, 행복, 신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호모 데우스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기술의 발달은 사피엔스가 말하는 욕망을 따라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 그 욕망 자체를 조종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인본주의의 붕괴가 이루어질 것을 경고한다. 이제 이 시대가 따르는 종교는 ‘데이터교’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초연결 사회로 진입하면서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시대가 될 것이고 언젠가 그 결정의 권한을 인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에게 념겨주게 될 것을 경고한다. 과거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단골 주제이지만 지금의 우리의 현실을 잘 반영한다. 페이스북이나 유투브, 구글이 나의 관심사와 기호를 더 잘 파악해서 나에게 최고의 여행지나 영화, 책, 영상들을 추천한다. 그리고 그 추천은 대게 만족스럽다. 
결국 질문은 이 과정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인가이다. 기계나 컴퓨터의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만물 인터넷이 다스리는 상황속에서 인간은 어디에서, 어떻게 그 존재의 가치를 입증하면서 의미있는 삶을 살 것인가? 그 과정에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앞으로 수십년 이 세상은 데이터교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인가? 인간들의 삶의 환경이나 직업 환경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 과연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할 것인가? 또한 새로운 종교가 도래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어떤 준비들을 할 것인지? 무턱대고 이시대의 기술을 거부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필터링의 과정을 거쳐야할지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호모데우스-미래의 역사(유발 하라리, 김영사)
 
1장. 인류의 새로운 의제
인류는 지금까지 굶주림, 전염병, 폭력에 의해서 죽어갔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들은 대부분 종식되었다. 
 
체호프의 법칙 “연극의 1막에 등장한 총은 3막에서 반드시 발사된다”은 깨졌다. 역사에서 왕과 황제들은 새로운 무기들을 획득하면 곧바로 그것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지만 핵무기의 발명은 도리어 이시대 무분별한 무기사용을 억제하여 정극의 법칙과 체호프의 법칙을 깨뜨렸다. 
테러범들은 도자기 가게를 부수려는 파리와 같다. 파리 스스로 도자기 한 개도 부술 수 없지만 황소의 귀에서 앵앵거리며 황소를 충동하여 미쳐 날뛰게 함으로 도자기 가게를 부술 수 있다.(9/11 테러)
 
'역사에는 공백이 없다.’ 과거 기근과 역병과 전쟁의 자리는 반드시 다른 문제들로 대체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새로운 전선으로 호출될까?
“전례없는 수순의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고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들을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다. 굶주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극도의 비참함에서 구한 다음에 할 일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올린 다음 할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p. 39) 
 
과거에 죽음이 성직자나 신학자들의 일이었다면 지금은 공학자들이 그 권한을 인수받았다.(죽음의 이유에 대한 해석과 그 대처방법의 변화)
인류의 새로운 의제 첫번째는 죽음을 정복하고 불사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두번째는 행복의 열쇠를 찾는 것이 될 것이다. 21세기 세번째 큰 과제는 인류가 신처럼 창조하고 파괴하는 힘을 획득해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국가는 밴담이 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교육이나 복지를 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의 행복보다는 국력 강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자살률 통계(p. 56) 
땅콩 한 알로 영원한 행복을 느끼는 다람쥐는 생존경쟁에서 뒤쳐지게 된다. 도리어 계속 배고픔을 느끼는 다람쥐가 오래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겼을 확률이 크다. 
 
교육제도나 전투의 현장에서 부적응이나 우울증의 문제를 개인의 생화학적 기제의 영향으로 돌리고 있다. 
LSD(Lucy in the Sky in the Diamonds) : 비틀즈의 노래
생화학적 행복 추구 : 나쁜 조작(마약, 약물)과 좋은 조작(ADHD나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 약물에서 나아가 전기 자극이나 유전자 조작
  •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세가지 방법: 생명 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체 합성
  1. 생명공학 : 사피엔스의 몸을 가져다 유전암호를 고치고, 뇌 회로를 바꾸고, 생화학 물질의 균형을 바꾸어 새로운 팔 다리를 자라게 할 것이다. 
  2. 사이보그 공학 : 유기체를 비유기적 장치들과 융합(600만불의 사나이), 나노로봇
  3. 비유기체 합성 : 인공지능
 
시험관 아기 : 선택(문제 있는 배아를 제거), 대체(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대체, 3명의 부모), 수선(비만, 면역, 우울증의 유전자를 고침)
모든 업그레이드가 처음에는 치료를 이유로 정당화 된다. 이처럼 유전 기술의 발달에 체호프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을까?
마르크스이 이론이 실패한 이유는 자본주의자들이 그의 이론을 읽고 새로운 대체를 해나갔기 때문이다. 이는 지식의 역설을 의미한다.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행동을 바꾼 지식도 곧 용도 폐기 된다. 우리가 데이터를 더 많이 보유할 수록, 역사를 더 잘 이해할수록 역사는 그 경로를 빠르게 변경하고, 우리의 지식은 더 빨리 낡은 것이 된다.’(p.90)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해방되어 다른 운명을 상상하기 위해서이다.(잔디의 역사) 잔디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잔디가 관리되지 않은 집은 문제가 있는 집으로 여겨진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많은 노동력과 자원이 필요하기에 어떤 변화를 이룰 것인가? 잔디를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일본식 정원이나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만들 것인가?
 
호모 사피엔스의 생명, 행복, 힘을 신성시하는 인본주의가 300년 동안 세상을 지배해왔다. 불멸, 행복, 신성을 얻으려는 시도는 인본주의가 품어온 오랜 이상의 논리적 결론이다.(p. 99)
21세기 지금으로서는 불명, 행복, 신성이 최우선 의제이다. 하지만 이 목표들이 거의 달성할 무렵, 그 목표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격변들이 우리를 전혀 다른 목적지로 향하게 할 것이다.(p.100)
 
 
제 1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를 정복하다. 
2장. 인류세
호모 사피엔스가 최근 7만년 동안 게임의 규칙을 바꾸었다. 지난 40억년간 진화의 규칙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인류는 자연 선택을 지적 설계로 대체하고 샘영을 유기적 영역에서 비유기적 영역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p 108-9)
대부분 셈족 언어에서 ‘이브’는 ‘뱀’ 혹은 ‘암컷 뱀’을 뜻한다. 이런 신화에 따르면 뱀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조상이다.(p. 114)
농업혁명이 유신론적 종교를 탄생시킨 반면, 과학혁명은 신을 인간으로 대체한 인본주의 종교를 탄생시켰다.(p. 142) 유신론이 신을 내세워 농업을 정당화 했다면, 인본주의는 인간을 내세워 공장식 축산 농장을 정당화 했다.  
 
3장. 인간의 광휘
 
- 차우세스쿠의 마지막 연설 : https://www.youtube.com/watch?v=EptI9hx4h1c&t=211s
 
의미의 그물망(204) 
- 객관적 실재 : 모든 것이 우리의 믿음이나 느낌과 관계없이 존재(중력)
- 주관적 실재 : 내 개인적 믿음과 느낌에 의존(두통)
- 상호주관적 실재 : 개개인의 믿음과 느낌보다는 여러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의존
 
사피엔스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그들만이 상호주관적 의미망을 엮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동물들도 우리에게 맞서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영혼이나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러기 위해 필요한 상상을 할 수 없기 때무이다…. 이렇게 상호주관적인 실재들을 창조하는 능력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에게서 분리할 뿐 아니라 인문학을 생명과학에서 분리한다.(212-3)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들이 유전암호와 전자암호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상호주관적 실재가 객관적 실재를 삼키고, 생물학은 역사와 융합할 것이다.(215)
 
제2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4장. 스토리텔러
 
석기시대의 정령, 요정, 악마는 비교적 약한 실체였다. 
약 1만 2000년 전 시작된 농업혁명은 상호주관적 연결망을 확대하고 강화하는데 필수적인 물질적 기초를 제공했다.(훈련된 군대-지배 체제, 219)
약 5000년 전 수메르인들이 문자와 돈을 발명함으로 인간 뇌의 데이터 처리 한계를 깼다. 문자와 돈 덕분에 수십만명에게 세금을 징수하고 복잡한 관료제를 조직하고 거대한 왕국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수메르의 엔키와 이닌나 신, 이집트의 파라오(221-)
 
1940년 봄 북쪽에서 내려운 나치가 순식간에 프랑스를 장악하자, 그곳에서 살던 유대인 집단 대부분이 프랑스를 떠나 남쪽으로 도망쳤다. 국경을 넘으려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행 비자가 필요했고, 따라서 수만명의 유대인들이 생사가 걸린 종잇조각을 얻기 위해 다른 난민들의 물결에 휩쓸려 보르도 주재 포르투갈 영사관에 몰려들었다. 포르투갈 정부는 프랑스에 있는 영사들에게 외교부의 승인 없이는 비자를 발급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보르도 주재 포르투갈영사 아리스티데스 데 소사 멘데스는 그 명령을 무시했고, 그로인해 30년 외교관 경력을 날려버렸다. 나치의 탱크가 보르도로 다가오는 가운데, 소사 멘데스와 그의 팀원들은 비자를 발급하고 종이에 도장을 찍느라 잠도 못 자며 하루 24시간씩 열흘 밤낮을 일했다. 수천장의 비자를 발급한 뒤 소사 멘데스는 탈진해 쓰러졌다. 난민들을 수용할 마음이 없던 포르투갈 정부는 요원들을 보내 명령에 불복한 멘데스를 고국으로 호송했고, 그의 외교관직을 받탈했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던 관료들도 문서에는 깊은 존경심을 보였다. 그리하여 소사 멘데스가 명령을 어겨가며 발급한 비자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관료들에게 받아들여져 나치가 친 죽음의 덫에서 3만명의 영혼을 구했다. 겨우 고무도장 한개로 무장한 소사 멘데스는 홀로코스트에서 개인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구조작전을 펼쳤다. (p.230) 
‘문자 언어는 실제를 기술하기 적당한 방법으로 생겨났지만, 서서히 실제를 고쳐쓰는 강력한 방식이 되었다.”(232)
 
1958~1961년 중국 대약진 운동, 마오쩌둥은 농업 생산량 증가를 명령, 관료들은 그 생산량을 부풀려 상부에 보고, 중국 정부는 보고서만 믿고 수백만톤의 쌀을 외국에 팔아 무기와 중장비를 구입, 그 결과로 수천만명의 중국인이 기아로 죽음(231)
 
관료들은 권력을 축적하면서 실수에 무뎌진다. 그들은 실제에 맞춰 이야기를 바꾸는 대신 이야기에 맞춰 실제를 바꾼다. 그리하여 관료의 환상과 일치하는 외적 실제가 생기지만 그것은 강요된 실제일 뿐이다.(203) 아프리카의 국경선을 그은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와본 적도 없는 유럽 관료들이었다. 유럽 관료들이 종이 위에 그은 상상의 선들이 아프리카에 실제하는 국경선과 만났을 때 뒤로 물러난 것은 실제였다.(235)  
 
두 종류의 휴가 여행 패키지 
1) 석기시대 패키지
2) 현대 프로레타리아 패키지
 
5장. 뜻밖의 한 쌍
종교가 계약인 반면, 영성은 여행이다.(256) 
과학자들이 진행하는 모든 실용적 과제는 종교적 통찰에 기대고 있다.(262)
‘종교는 다른 무엇보다 질서에 관심이 있다. 종교의 목표를 사회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과학은 다른 무엇보다 힘에 관심이 있다. 과학의 목표는 연구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전쟁을 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 과학자와 성직자 개인이 다른 무엇보다 진리를 우선시할 수는 있겠지만, 집단적인 제도로서 과학과 종교는 진리보다 질서와 힘을 우선시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의외로 잘 어울리는 짝이다.’(275)
 
6장. 근대의 계약
왜 근대에 와서야 경제성장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을까? 성장이라는 개념이 우리의 육감, 진화적 유산, 세상 돌아가는 방식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들판의 토끼와 여우의 개체수, 여우는 토끼의 숫자를 늘리거나 들판의 풀의 양을 늘릴 수 없지만 인간들은 이것을 가능케 했다. 진보와 성장의 가속화는 결국 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더 많이”를 신조로 외치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성장의 신화를 멈출 수 있을까? 
 
7장. 인본주의 혁명
인본주의라는 이 새로운 종교는 인류를 숭배하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서 신이 맡았던 역할, 불교와 도교에서 자연법이 맡았던 역할을 인류에게 요구한다. 과거에는 장대한 우주적 계획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면, 인본주의는 역할을 뒤집어 인간의 경험이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한다.(307)
 
인본주의의 슬로건 :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자신에게 충실해라, 자신을 믿어라, 마음가는 대로 행동하라,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을 해라’
 
과거에는 절대자가 부여한 원칙, 진리를 따랐다면 현대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할 것을 요청한다.(혼외 정사-중세 신부들이 신으로부터 우리가 한 일이 선인지 악인지 구별했다면 현대 심리치료사들은 우리의 내적 감정에 직접 연락하도록 돕는다.) ‘자, 그래서 당신은 그 일에 대해 어떻게 느낍니까?’
 
윤리학에서 인본주의의 모토는 ‘좋게 느껴지면 해라’이다. 
정치학에서 인본주의는 ‘유권자가 가장 잘 안다’고 가르친다. 
미학에서 인본주의는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인본주의 시대의 윤리, 정치, 미학의 기준은 이제 신이 명한 준칙이 아니라 인간이 그 일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가 되었다.(경제, 교육)
  • 마르셀 뒤샹(1917년, 샘-소변기) 예술이란 무엇인가?
 
교육 제도 : 중세에는 모든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외부에 있었으므로, 순종을 주입하고 성경을 암기하고 고대 전통을 배우는데 교육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현대 인본주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라고 가르친다.(322)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하늘에서 인간의 감정으로 옮겨오면서 우주 전체의 성질이 변했다. 신, 뮤즈, 요정, 악귀 들로 바글거리던 외부 우주는 텅빈 공간이 되었다. 반면 지금까지는 날것의 감정들을 처박아두던 별 볼일 없는 공간이던 내부세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풍부해졌다.(323)
 
  • 중세 유럽(지식=성경*논리),
  • 과학혁명(지식=경험적 데이터*수학),
  • 인본주의(지식=경험*감수성)여기서 경험은 감각, 감정, 생각으로 이루어진 주관적 현상이다. 감수성이란 감각, 감정, 생각에 주목하는 것이고 그 감각, 감정, 생각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학적 양(+)과 인본주의적 음(-), 양은 우리에게 힘을 주는 반면 음은 우리에게 의미와 윤리적 판단을 제공한다. 근대 이후 세계의 양과 음은 이성과 감정, 실험실과 미술관, 생산라인과 슈퍼마켓이다.(331)
 
전근대 내러티브의 대부분은 외적 사건과 행동, 영웅적 행위에 초점을 맞췄다면, 근대 이후 인본주의적 관점에서는 예술은 행동보다 느낌과 경험에 주목하였다. 
 
장자크 발터, 브라이덴펠트 전투에 나선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1631)
 
피터르 스나여르스, 바이센베르크 전투(1620)
오토 딕스, 전쟁(1929-32)
 
토머스 리, 2000야드의 응시(1944)
 
 
인본주의의 분열
  1. 자유인본주의(개인의 감정, 이해 중시) : 자유주의 정치는 유권자가 가장 잘 안다고 믿는다. 자유주의 예술은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경제는 고객이 항상 옳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윤리학은 좋게 느껴지면 하라고 조언한다. 자유주의 교육은 모든 답이 자기 안에 있으니 스스로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 난민들의 절망과 독일인들의 불안이 충돌하는 상황(메르켈 총리와 팔레스타인 난민 소녀)
  2. 사회주의적 인본주의(정당과 노조의 이해 중시), 자유주의가 시선을 내부로 돌려 내 독자성과 내 나라의 독자성을 강조한다면, 사회주의는 나와 내 감정에 집착하는 것을 멈추고 타인들이 어떻게 느끼고 내 행동이 그들의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둘 것을 요구한다.
  3. 진화론적 인본주의(특정 민족을 인류 진보의 엔진으로 간주-히틀러와 나치), 갈등은 자연선택의 원래료로 진화를 추동한다. 전쟁은 약자를 절멸시키고 강하고 야심찬 자들에게 보상을 내린다. 니체는 이런 생각을 전쟁은 '인생의 학교'이며, '나를 죽이지 않은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뿐이다'라고 말했다.(352)
  • '마침내 누가 뭐라 해도 내 의지가 주인이었다..... 이제 나는 침착하고 단호했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제 어떤 운명이 나를 시험하더라도 내 용기는 부서지지 않고 내 이성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나의 투쟁, 히틀러)
  • 음악에 대한 평가(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5번, 록큰롤, 아프리카 전통음악, 늑대의 울음소리)
 
종교적인 그룹들(태평천국의 난-홍수전, 수단-마디)은 실패했지만 마르크스와 레닌이 성공한 이유는 그들이 철학적으로 더 정교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레닌이 당대의 기술적, 경제적 현실들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다.(376) 
 
21세기 초, 진보의 열차가 다시 정거장을 빠져나가는데 그 좌석을 얻기 위해서 21세기의 기술을 더 이해해야한다. 특히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의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주력 상품은 몸, 뇌, 마음이 될 것이고 몸가 뇌를 설계할 줄 아는 사람들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디킨스의 영국과 마디의 수단 사이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이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은 창조와 파괴를 주관하는 신성을 획득하는 반면 뒤처진 사람들은 절멸에 직면할 것이다.(378) 오늘날 마르크스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는 남아 있는 소수의 제자들에게 '자본론'을 읽을 시간에 인터넷과 인간 게놈을 공부하라고 할 것이다.  
 
과거에 종교에는 창조적인 힘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창조하는 힘에서 반응하는 힘으로 바뀐지 오래이다. 생물학자들이 피임약을 발명하는데 교황은 이 약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다. 컴퓨터 공학자들이 인터넷을 개발하는데 랍비들은 정통 유대교도가 인터넷 서핑을 해도 되는지 논쟁한다. 페미니즘 사상가들은 여성이 자기몸을 소유할 권리를 요구하는데 학식있는 무프티(이슬람 샤리아를 해석할 권한을 지닌 학자)들은 이 선동적인 사상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논쟁한다.(380)
 
인본주의가 인간의 생명, 감정, 욕망을 신성시한지 오래되었음을 고려하면 인본주의 문명이 앞으로 인간의 수명, 행복, 힘을 극대화 할 것이다.(382)
 
제3부.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
 
8장. 실험실의 시한폭탄
진화론은 자유를 관 속에 넣고 못을 박았다.(389)
유기체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을 우리가 약물, 유전공학, 직접적인 뇌 자극을 통해 그 유기체의 욕망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통제까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393)
 
저자는 과학은 자유주의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킨다고 말한다.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 이야기하는 자아는 경험의 합계를 내지 않고 경험의 평균을 낸다.(407)
라마단 때의 금식, 건강검진을 위한 금식, 돈이 없어서 먹지 못하는 배고픔 이 각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아가 배고픔에 부여하는 각기 다른 의미들은 매우 다른 경험을 불러 일으킨다.(410)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불변하는 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 것이다. 이 느낌은 내가 나눌 수 없는 개인이며, 우주 전체에 의미를 제공하는 분명하고 일관된 내면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미심쩍은 자유주의를 야기한다.(411)
 
정부, 기업들도 실패한 사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개인들도 파탄 난 결혼 생활과 앞날이 보이지 않는 직업에 매달린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과거의 고통이 무의미했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미래에도 계속 고통을 겪는 쪽을 택한다.(416) 우리들 각자는 저마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정교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
 
9장. 중대한 분리
 
인공지능과 기술이 계속 발달해 인간을 대체하게될때 “잉여 인간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 체스, 바둑, 운전, 게임, 왓슨(의학), 투자.....
  • 음악 : EMI(Experiments in Musical Intelligence:음악지능실험, 애니 / 컴퓨터가 작곡한 것을 구별하지 못함
 
알고리즘이 인간을 직업시장에서 몰아내면 전능한 알고리즘을 소유한 소수 엘리트 집단의 손에 부와 권력이 집중될 것이고, 전례없는 사회적 불평등이 생길 것이다. 아니면 그 알고리즘들이 스스로 주인이 될지도 모른다. (442)
 
  • 고용의 미래 : 20년안에 수많은 직업이 알고리즘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가 직면한 몇가지 실질적 위협
  1. 인간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쓸모없어질 것이다.
  2. 미래에 시스템이 여전히 인간을 필요로 한다고 해도 개인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3. 일부 사람들은 업그레이드되어 필수불가결한 동시에 해독 불가능한 존재로 남아 소규모 특권집단을 이룰 것이다. 
 
개인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믿음을 현대의 생명과학의 성과에의해 부정되고 있다.(449)
 
과거 20세기에는 나의 통화를 도청하거나 나의 여러가지 정보를 안다고 해도 나에 대한 예상을 정확히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21세기의 기술은 인류를 해킹해 나보다 나를 훨씬 더 잘 아는 외부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451)
 
스마트폰, 손목시계 : 혈당체크, 수면패턴, 성관계시 착용하는 생체완장(심박수, 땀의 양, 오르가즘 지속시간, 소비한 칼로리)
 
2013년 5월 14일, 안젤리나 졸리는 뉴욕타임스에 양쪽 유방절제술을 받기로 했다는 기사를 내보낸다. 이는 자신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유방암으로 사망했고 그녀에게도 그 위험 유전자가 있어서 87%의 확률로 유방암이 걸릴 것이라는 알고리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독감 진단 경로 : 병원에서 진료한 사람들의 정보을 국립보건원에서 분석해서 독감경보를 발령, 하지만 구글은 이 과정을 몇분만에 할 수 있다.(검색엔진에 두통, 열, 구토, 재채기등이 비정상적으로 검색된다면) / Google Flu Trends(구글 독감 동향)
  • 구글은 우리가 걸은 모든 걸음과 우리가 나눈 모든 악수를 실제로 기억할 것이다.(461)
  • 이성관계 상담 / 질문: 잘들어봐, 구글. 존과 폴이 둘다 나에게 작업을 걸고 있엇. 둘다 좋은데 좋은 면이 달라. 그래서 마음을 정하기가 너무 힘들어. 네가 아는 사실들을 모두 고려해 나에게 조언 좀 해줄래?”, 구글의 대답 “나는 네가 태어난 날부터 너를 알고 있었어. 네 이메일을 모두 읽었고, 네 통화를 모두 기록했고, 네가 좋아하는 영화들, 네 유전자 정보, 네 심장 기록도 모두 갖고 있어. 네가 데이트한 정확한 날자도 보관하고 있으니, 존이나 폴과 만날 때마다 네 심장박동, 혈압, 혈당수치를 초 단위로 기록한 그래프를 원한다면 보여줄 수 있어. 필요하다면 네가 그들과 가진 모든 성관계의 정확한 순위도 제공할 수 있어. 그리고 당연히 나는 너를 아는 것만큼 그들도 잘 알아. 이 모든 정보, 대 뛰어난 알고리즘, 수많은 관계에 대한 수십년에 걸친 통계자료를 토대로, 나는 너에게 존을 선택하라고 권해. 장기적으로 그와 함께 할. 때 더 만족스러울 확률은 87%야.” “나는 너를 잘 아는데, 너는 이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을 거야. 존보다 폴이 훨씬 더 잘 생겼지. 너는 외모를 중시하니까, 내가 폴이라고 말해주기를 내심 바랬을 거야. 물론 외모는 중요하지.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야.수만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진화한 네 생화학적 알고리즘은 배우자감을 전반적으로 외모에 두는 비중에 35%야. 하지만 최신 연고와 통계를 바탕으로 하는 내 알고리즘은 외모가 사랑하는 관계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14%에 불과하다고 말해. 그러니 폴의 외모를 고려한대해도 네가 존과 함께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462)
 
시스템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기만 하면 그날로 자유주의는 붕괴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런 일은 생각보다 쉽게 일어날 것이다.(465)
 
  • 페이스북 알고리즘 : 좋아요의 숫자(직장동료-10, 친구-70, 가족-150, 배우자-300)가 이 이상이면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더 잘 예측한다. 
 
신탁에서 주권으로
이제 머지않아 구글, 페이스북 혹은 다른 알고리즘들이 신탁-대리인-주권자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네비게이션 서비스의 발전) 길이 막힐때 구글맵이 1번에서 2번도로를 제안한다면 모든 사람이 2번으로 몰려 교통체증이 생길 것이다. 구글이 주권자가 되어 이 경우 절반의 사람에게는 1번을 제안하고 절반에게는 2번을 알려주면 문제가 해결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 구글 ‘나우’, 애플 ‘시리’ 아마존, 킨들 
 
생물학자들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라고 결론을 내린 순간, 유기물과 무기물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컴퓨터 혁명이 순수한 기계적 사건에서 생물학적 격변으로 바뀌고, 권한이 개인에게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알고리즘으로 이동했다.(473)
 
2016년 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62명이 가장 가난한 36억명의 부를 가지고 있다. 세계 인구가 72억명이므로 이는 62명의 억만장자들이 인류의 하위 절반이 가진 부를 보유한다는 뜻이다.(476)
 
군사적,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엘리트 집단이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20세기와 달리, 21세기의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쓸로없는 3등칸을 떼어내고 1등칸만으로 빠르게 전진하는 것이다.(478)
 
과학의 발전과 기술 발전이 인류를 쓸모없는 대중과 소규모 엘리트 집단의 엡그레이드된 초인간들로 나눈다면 혹은 모든 권한이 인간에게서 초지능을 지닌 알고리즘으로 넘어간다면 자유주의는 붕괴할 것이다. 이때 어떤 새로운 종교 또는 이념이 이 공백을 메우고 신과 같은 우리 후손들의 후속 진화를 이끌까?(480)
 
 
10장. 의식의 바다
새로운 종교는 실험실에서 탄생할 것이다. 사회주의가 증기와 전기를 통한 구원을 약속함으로써 세계를 장악했듯이, 도래하는 시대에 새로운 기술종교들은 알고리즘과 유전자들을 통한 구원을 약속함으로써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481) 이 신흥종교들은 과거 종교들이 약속한 행복, 평화, 번영 심지어 영생까지도 사후가 아니라 이곳 지상에서 기슬을 통해서 이루겠다라고 약속한다. 
 
저자는 7만년전 인지혁명을 통해서 사피엔스의 유전자에 약간의 변화와 뇌배선이 바뀜으로 일어났다고 본다. 첫번째 인지혁명이 일으킨 마음의 혁신들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가 상호주관적 영역에 접근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면 두번째 인지혁명으로 탄생할 호모 데우스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영역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은하계의 주인이 될지도 모른다.(483)
 
기술 인본주의는 유전공학, 나노기술,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의 도움으로 인간의 마음을 업그레이드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험과 의식상태에 접근하려고 한다. 
 
마음의 영역은 표준이하와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라는 서구의, 많이 배우고, 산업화되고, 부유하고 민주적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가 기술 인본주의에 자리를 내주고, 의학의 초점이 점점 환자를 치료하는 것에서 건강한 사람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의식 상태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은 손에 넣었지만 아직 마음의 스펙트럼에 대한 지도가 완벽하지 않음으로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상태이다.(492)
 
우리는 점점 냄새 맡고 집중하고 꿈꾸는 능력이 줄어들었다. 대신 점점 더 집중력 헬멧을 사용하려고 한다. 우리는 냄새 맡고 꿈꾸고 집중하는 능력을 잃었듯이 결국 혼란, 의심, 모순을 참아내는 능력을 잃을 것이다. 
 
우리는 몸과 뇌를 업그레이드 하는데는 성공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마음을 잃게 될 것이다.(497)
 
미릿속의 거슬리는 소음을 죽인다는 것은 멋진 생각처럼 보인다. 단 그렇게 해서 듣는 것이 당신 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자아의 목소리여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자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목소리를 죽이고 어던 목소리를 증폭할지 어떻게 결정할까?(500)
 
로미오와 줄리엣 : 기술은 이 희곡을 어떻게 써 나갈까?
기술은 욕망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때 구원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우주 전체가 걸린 못이 문제있는 장소에 박혀있을때, 기술은 그 못을 뽑아 다른 곳에 박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이 정확히 어디일까? 내가 우주 어딘가에 그 못을 박을 수 있다면 어디에 박아야 할까? 그리고 왜 하필 그곳일까?(501)
 
무엇이 욕망과 경험대신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될까? 바로 정보이다. 가장 흥미로운 신흥종교는 데이터교이다. 
 
11장. 데이터교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때로부터 150년에 걸쳐 생명과학은 유기체를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 보게했다. 그리고 앨런 튜링이 튜링 기계라는 개념을 탕안한 때로부터 80년동안 컴퓨터 과학자들은 점점 더 정교한 전자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데이터교는 이 둘을 합치면서 정확히 똑같은 수학적 법칙들이 생화학적 알고리즘과 전자 알고리즘 모두에 적용된다고 지적한다. 데이터교는 그렇게 동물과 기계의 장벽을 허물고, 결국 전자 알고리즘이 생화학적 알고리즘을 해독해 그것을 뛰어 넘을 것으로 본다..(503)
 
자본주의가 이기고 공산주의가 패한 것은 자본주의가 더 윤리적이어서도, 개인의 자유가 신성해서도, 신이 이교도인 공산주의라들에게 본노해서도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냉전에서 승리한 것은 적어도 기술 변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에는 중앙 집중식 데이터 처리보다 분산식 데이터 처리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509)
 
19세기와 20세기의 산업혁명은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서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상상 한 발앞에서 그 경로를 규제하고 조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의 리듬이 증기시대 이래로 크게 바뀌지 않은 반면, 기술은 1단에서 4단으로 기어가 전환되었다….정부는 밀려드는 데이터를 어쩔 줄을 모른다. 과거 정치가들은 기술의 방향을 주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512-3)
 
  • 데이터교에서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네가지 방법
  1. 프로세스의 수를 늘린다.(인지혁명, 여러 대륙에 퍼져나가 독자적으로 문화를 이룸) 
  2. 프로세서의 다양성을 늘린다.(농업혁명, 밀도 높은 지역 네트워크 구축) 
  3. 프로세서들 간의 연결을 늘린다.(과학혁명, 문자와 돈 덕분에 인간협력의 중력장이 원심력을 압도했다.) 
  4. 현존하는 연결을 따라 이동할 자유를 늘린다.(1492년의 콜롬버스의 탐험이후로 전 지구적 연결망이 점점 촘촘해져 정보가 더욱 자유롭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데이터교의 첫번째 계명 “가능한 한 많은 매체와 연결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데이터 흐름을 극대화하라.” 두번쩨 계명은 연결되기를 원치 않는 이단까자 포함해 모든 것을 시스템에 연결하라는 것이다… 우주의 한 부분도 생명의 거대한 웹과 연결이 끊겨서는 안된다. 반대로 가장 큰 죄악은 데이터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다.(523)
 
표현의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졌고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말할 인간의 권리를 보호했다. 여기에는 입을 다물 권리와 생각을 밝히지 않을 권리도 포함된다. 반면 정보의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보에 주어진다. 더구나 이 새로운 가치가 전통적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 정보가 자유롭게 유포될 권리는 인간이 정보를 소유하고 그 흐름을 제한할 권리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524)
 
데이터교 신봉자들은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하는 열쇠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데이터교 순교자 애런 스워츠, 524-6)
 
독감 예측, 공유 자동차 서비스
 
자유시장 자본주의자들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듯이, 데이터교도들은 데이터 흐름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다.(528)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
 
로크, 흄, 볼테르 시대에 인본주의자들은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데이터교가 인본주의자들에게 그들이 한 대로 똑같이 돌려줄 차례이다.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인간 상상력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18세기 인본주의는 신 중심적 세계관에서 인간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신을 밀어냈다. 21세기 데이터교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534) 
 
인본주의의 계명이 ‘네 감정에 귀 기울여라’였다면, 데이터교의 계명은 ‘알고리즘에 귀 기울여라’이다. 
 
‘종자’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이 알고리즘은 성장하면서 자기만의 길을 따라 인간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그리고 어떤 인간도 갈 수 없는 곳으로 간다.(539)
 
고대에는 힘이 있다는 것은 곧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힘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 안다는 뜻이다.(543)
 
마지막 질문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있을가?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좋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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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의 원제는 “How I Changed My Mind About Evolution”이다. 번역하면 '나는 어떻게 진화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었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판의 제목은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이다. 아마도 조금더 도전적인 제목이 되기를 원해서 이렇게 이름을 붙인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진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지적 여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둘 중에는 전문 과학자, 신학자, 목회자등 다양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 모두가 진화라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 자신의 신앙과 크게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지적 여정중에 그런 갈등의 시기를 통과한 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과 자연이라는 책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 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성경을 읽는 독법과 자연을 읽어내는 독법이 같을 수 없다. 각각의 분야의 전문가로 우리는 그것을 읽어내는 방법을 배우고 연구하고 또 새로운 내용을 찾아내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선포한다. 이제 그 창조의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고 진행되었는지를 밝혀내고 설명하는 것은 과학의 역할이다. 성경은 누가, 왜 세상을 창조했는지를 밝힌다면 과학은 언제, 어떻게 세상이 창조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창조에 대해서 성경과 과학이 서로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갈등처럼 보이는 여러 삶의 영역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아플때 하나님의 신유의 능력을 의지하여 기도하면서 동시에 병원에 가서 의상의 진찰을 받고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는다. 아프면 오로지 기도만 해야한다거나, 병원을 가야만 한다는 배타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것처럼 성경과 과학은 서로 상호 보완적이다. 

 

25명의 저자들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내용은 영국의 톰 라이트가 쓴 “영국인이 본 미국의 진화 논쟁”이라는 부분이었다. 미국에서는 1925년 스콥스 재판 이후에 ‘창조와 진화’의 대결구도가 본격화되었다. 물론 유럽도 진화론의 공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그 강도가 특별히 컸던 것이다. 이러한 근본주의의 발흥은 미국의 남북전쟁의 첨예한 편가르기의 경험이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톰 라이트는 미국 사회에서의 창조와 진화 논쟁은 단지 이 주제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이전의 역사 속에서 축적된 노예제도의 정당성, 미국 흑인들의 사회적 위상과 관련된 상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곪아 있다가 과학 대 종교 혹은 진화대 성경의 논쟁으로 촉발된 것으로 본다. 이러한 논점은 한국적 상황과 맞닿아 있다. 전세계적으로 젊은 지구론의 세력이 가장 강한 나라가 미국과 한국이라고 한다. 한국도 일제 치하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남과 북,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보수와 진보로 편가르기를 강요하는 시대적인 문화속에서 자연스럽게 전투적인 젊은 지구론, 창조론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톰 라이트의 미국에 대한 문제의식을 한국적인 상황에 적용해서 연구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논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서에 등장하는 모든 저자들이 표면적으로 혹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사상은 바로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성경의 주장과 과학의 주장이 갈등하는 것 같아도 그 갈등의 이유는 각각의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의 한계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학문을 하는 과정에서 '겸손과 상호의존'이라는 자세를 견지해야만 한다. 학문은 반드시 반증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학문이라기 보다는 도그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감추어진 하나님의 진리를 밝혀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반대하고 거부하기보다 정말로 그러한가 상고하여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진화에 대한 내 생각도 한걸음더 나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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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유발 하라리, 김영사)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2011년 히브리어로 발간된 이 책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어로는 2015년 번역되었다. 그는 과학과 역사를 융합한 시각으로 인류의 역사를 관통한다. 
그는 철저하게 진화론의 시각에서 내용을 전개한다. 하지만 인지혁명(지식의 나무, 선악과)을 이야기하면서 사피엔스가 지구상의 주인이 된데에는 허구를 상상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세가지 혁명으로 분류한다. 첫번째는 인지 혁명, 두번째는 농업혁명, 세번째는 과학혁명이다. 인지 혁명은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로 인해서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집단간의 협력이 가능해졌다고 본다. 12000년전의 농업혁명으로 수렵채집의 삶에서 문화를 형성하고 집단생활을 하게 되는 농경사회로 진입했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농업혁명의 결과가 행복이 아니라 인구 폭발과 만족한 엘리트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농부는 수렵채집인들보다 더 많이 일했지만 더 다양한 음식을 먹지도 못했고 여유로운 시간도 갖지못한 정도로 바빠졌으며 건강도 더 나빠졌다고 말한다. 또한 잉여 생산물은 특권층의 손으로 들어가서 압제에 사용되었기에 농업혁명은 역사상 가장 큰 사기극이라고 보았다. 
1500년경 과학혁명을 통해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성장했고, 글로벌화,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확대, 환경파괴가 일어났다고 보았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생명공학의 발전이 새로운 인류의 출현을 이룰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의 중요한 점은 긴 인류의 역사를 종적으로 관통하며 과학기술과 관련해서 큰그림을 조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인문학적인 책읽기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단편적인 내용의 나열이 아니라 알고 있는 역사적 혹은 과학적 사실을 다른 관점에서 읽어내는 것이 주는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저자의 견해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해석해내는 이 신선함은 여러모로 재미있고 도움이 된다. 

저자는 철저한 무신론적인 관점으로 본인의 의견을 개진한다.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때 전능한 창조주가 창세전에 그분의 위대한 계획속에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셨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역사속에 그냥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지음받은 존재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처럼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여러가지 내용들이 있지만 이 시대를 읽어내는데 있어서 비상한 시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책의 첫 부분에서 사피엔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차별점은 허구를 믿는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돈, 법, 인권, 종교 모두 허구의 산물이지만 이것을 믿는 믿음이 사피엔스를 연합하게 했고 더욱 큰 공동체, 기업, 국가에 충성을 바치게 하였다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지난 40억년간 모든 생명체는 자연법칙에 따라 진화했지만 이제 인간이 지적 설계자가 되어서 신인류를 만들어낼 분기점에 서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이 생명공학, 사이보그공학, 비유기물공학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는 마치 인류가 선악과를 따먹고 지혜로와진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을까봐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시고 그룹과 화염검으로 에덴의 입구를 막게 하셨는데 이제 그것을 돌파하고 생명나무의 실과를 얻으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현대의 기술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속도와 업적을 내고 있다. 인공지능이나 유전공학의 발전은 질병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이제 인간을 불사의 존재로, 지금의 지능과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지적능력을 가지도록 만들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 기술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가속페달을 더 밟도록 허락할 것인가? 이러한 고민을 함께 해야할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1장.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135억년전의 빅뱅-45억년전의 지구의 탄생-7만년전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12000년전의 농업혁명-1500년경의 과학혁명-18세기의 산업혁명

2장. 지식의 나무
인지혁명 이후에는 생물학 이론이 아니라 역사적 서사가 호모 사피엔스의 발달을 설명하는 일차적 수단이 되었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차이를 기술하며 그 차이가 허구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로 보았다. 이는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간의 유대와 협력이 가능한가의 차이였다. 
저자는 조심스럽게 이 인지 혁명을 지식의 나무(선악과)라고 묘사한다. 

3장.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저자는 인지혁명이 약 7만년 전에, 농업혁명이 12,000년 전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인간 공동체의 지식은 고대 인간 무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지만,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현대는 기술과 지식이 전문화 되어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다른 영역은 해당 분야의 사람들의 지식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데 반하여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서 주변 환경에 대한 지식을 폭넓게 알아야만 했다.

4장. 대홍수
아프리카, 아시아에 거주하던 사피엔스들이 호주와 알라스카를 거쳐 아메리카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해당 지역의 생태계를 교란시켰다. 
수렵채집인의 확산과 함께 멸종의 제1의 물결이, 농부들의 확산과 함께 멸종의 제2의 물결이, 오늘날 산업활동의 결과로 멸종의 제3의 물결이 벌어졌다. 

제 2부
5장. 역사상 최대의 사기
저자는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고 본다. 도리어 수렵채집인들은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던 반면 농부들을 더 많은 노동을 해야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피엔스가 식물(밀, 쌀, 감자)를 길들인 것이 아니고 식물들이 사피엔스를 길들였다라고 주장한다. 
"초기 농부들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지만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을 내다보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모유를 덜 먹이고 죽을 더 많이 먹이면 면역력이 약해져 영구 정착촌이 전염병의 온상이 되리란 사시를 알지 못했다. 또한 단일 식량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가뭄에 더욱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또한 풍년이 넘쳐나는 창고는 도둑과 적을 유혹할 것이며 이를 방비하려면 성벽을 쌓고 보초를 서는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견하지 못했다.”(p. 134)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6장. 피라미드 건설하기
농업의 도래와 함께 비로소 인간의 마음속 극장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주연배우가 되었다. 수렵채집인들은 그날 그날 먹고 살아가느라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적었지만 농업혁명이후로 계절에 맞추어 농사의 사이클에 따라 노동을 해야했고 흉년을 대비해 곡식을 저장해야만 했다. 
함무라비 법전과 미국의 독립선언문 : 저자는 철저하게 생물학적 진화를 주장하며 진화의 과정에 평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자유, 행복, 평등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중력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내일 중력은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상상의 질서는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에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개인주의-독립된 공간)
  2.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 고대 이집트의 엘리트들은 바벨론으로 여행을 꿈꾸지 않았다. 아내나 부모를 위해서 피라미드를 지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것이 경험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처럼 상상의 질서는 우리의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3.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객관, 주관, 상호 주관)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일 뿐이다. 

7장. 메모리 과부하
사피엔스의 사회질서는 가상의 것이기에 DNA의 복사만으로 전수가 불가능하다. 이를 유지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뇌는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제한적이어서 많아진 정보를 유지하고 처리하기 위해서 수메르인들은 숫자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8장. 역사에 정의는 없다.
인류는 어떻게 자신들을 대규모 협력망으로 엮었는가? 그 대답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체계를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10장. 돈의 향기
서로의 신앙에 동의할 수 없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돈에 대한 믿음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종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으라고 요구하는 반면에, 돈은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믿는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돈은 보편적 전환성과 보편적 신뢰라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11장. 제국의 비전
제국이란 정치질서의 두가지 중요한 특징(문화적 다양성과 국경의 탄력성)
첫째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서로다른 민족이나 국민을 지배해야하고 둘째 탄력적인 국경과 잠재적ㅇ로 무한한 식욕이다. 

12장. 종교의 법칙
종교는 보편적이면서 선교적이어야 한다. 
농업혁명이 미친 최초의 종교적 효과는 동식물을 영혼의 식탁에 앉는 동등한 존재에서 소유물로 끌어 내린 것이다.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불교의 가르침 :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인데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데 있다고 보았다. 

인본주의(인간성을 숭배하는 종교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 진화론적 인본주의

4부. 과학 혁명
14장. 무지의 발견
1500년대를 기점으로 과학혁명이 일어났다. 
  • 과학혁명의 고리 : 권력-자원-연구-권력
현대과학의 다른점 : 1)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기, 2) 관찰과 수학이 중심적 위 치 차지, 3) 새 힘의 획득

15장. 과학과 제국의 결혼
과학혁명과 현대 제국주의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18세기 이전 유럽은 아시아에 비해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18세기가 지나면서 그 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현대 과학과 자본주의이다. 이는 마치 높은 탑을 쌓는데 한쪽은 나무와 진흙으로, 다른 한 쪽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쌓는 것과 같다. 처음 탑을 쌓을때 나무와 진흙이 그 속도가 더 빠르지만 임계점이 지나면 첫번째는 무너져 내리고 철근과 콘크리트는 계속해서 비약적인 속도로 그 높이를 올리게 되는 것과 같다. 
유럽과 비 유럽의 가장 큰 차이는 무지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였다. 중국의 경우에 더 이른 시기에 세계를 항해했고(정화 함대) 그럴 능력이 있었지만 관심이 없었던데 반해 유럽(스페인이나 영국)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 정복을 해나갔다. 
  • 과학자들은 제국주의 프로젝트에 실용적 지식,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기술적 장치를 공급했다. 

16장. 자본주의의 교리
과거 사회 전체의 파이의 크기는 거의 균일했다. 하지만 1500년 이후 과학혁명과 진보의 개념이 도래하자 점점 파이의 크기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진보는 우리가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연구에 자원을 투자한다면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지난 500년간 진보라는 아이디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를 더욱 신뢰하게 했다. 신뢰는 신용을 창조했고, 신용은 현실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더 많은 신용의 길을 열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개인적인 수익을 늘리려는 이기적인 인간의 욕구가 공동체 부의 기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부자에게, 부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가장 신성한 제1규율인 “생산에 따른 이윤은 생산 증대를 위해 재투자되어야 한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마법의 순환(콜롬버스의 예) : 새로운 대륙으로의 항해를 포르투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에서 거절당하고 스페인의 이사벨라여왕의 지원을 받는다. 신대륙의 발견으로 엄청난 부를 제공한다. 이후 왕자들과 은행가들은 탐사의 잠재력에 큰 신뢰를 보내고 기꺼이 자신의 돈을 투자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실패의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 합자회사를 만들었다.  
상인들과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군대를 동원했고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성장이 최고이 선이 되고 다른 윤리적 고려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을 때, 그 성장은 쉽사리 파국으로 치닫는다. 

17장. 산업의 바퀴
산업혁명, 증기기관과 내연기관의 발명
자본주의-소비지상주의

18장. 끝없는 혁명
지역마다의 시간의 통일
산업혁명은 지난 2세기동안 급속하게 기존의 가족 공동체를 해체했다. 
약한 가족 공동체-강한 국가와 시장-강한 개인의 사이클
핵무기로 인한 대량학살 위협은 도리어 평화주의를 육성한다. 이로 인해 국가간 무역이 확장되고 점점 국가간의 연결망은 치밀해진다. 이제 개별 국가가 독립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갈림길에 서 있다.

19장.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예를 들어 수렵채취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바뀌어가면서  집단으로서 이들이 환경을 바꾸는 힘은 커졌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개인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 행복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법 : 사람에 따라서 행복 지수가 일정한 범위안에 세팅되어서 같은 조건에서 더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는 관점이다. 이것을 따른다면 역사, 역사의 발전은 별 중요한 변수가 아닌 것이 된다. 중세의 농부와 현대의 은행가(진흙집과 펜트하우스)
  •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p. 552) 단지 호르몬이 분비만이 아니라 인지적, 윤리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 진정한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나 주관적 느낌이나 감정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수많은 역사의 흐름이 개인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0장.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저자는 지난 40억년이 자연선택의 기간이었다면 이제 지적설계가 지배하는 새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서 그는 창조주를 지적설계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조작으로 이제 새로운 피조물(형광 토끼)를 만들어내는 인간이 지적설계를 이루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전공학의 발전은 기술적으로는 이미 지능이 높은 사피엔스, 한 배우자에게 충실한 사람을 만들어낼 수준에 이르렀다. 매머드를 복제하거나 네안데트탈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 생명의 법칙을 만들어내는 세가지 기술 :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물공학
게놈 프로젝트를 완수하는데 15년의 세월과 30억 달러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수백달러만 있으면 한 사람의 DNA지도를 만들 수 있는 시대이다.(p.  579) 
역사의 다음 단계에는 기술적, 유기적 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정체성에도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p. 584)
길가메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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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가고 설계가 온다(이재신, 겨울나무)

 

 

평소 관심있는 주제의 책이어서 단번에 읽어내려갔다. 저자는 지적설계론을 진화론을 대체할 중요한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이론또한 작업가설임을 기억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창조론 vs 진화론”의 프레임은 “신앙 vs 과학”으로 대치된다. 하지만 여기에 방법론적 자연주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과학이 객관적이라고 믿지만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사상이나 신념이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다윈의 진화론이 기존의 창조론을 붕괴시켰다면 20세기 후반 분자 생물학의 발전으로 유전자 정보가 해독되면서 도리어 이 정보를 가진 단백질 합성이 우연히 일어났다는 것이 도리어 비과학적이게 되면서 지적 설계론이 조명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어떤 유물론적이고 자연주의적 설명도 생명의 기원이나 캄브리아기 폭박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실패한 반면 지적설계는 이를 설계자가 의도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절대자의 존재를 상정하기에 지적설계론을 과학이 아니라 종교다라고 말하지만 혹시 미래에 특정화된 정보나 메커니즘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생명의 기원이 설명된다면 지적설계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유일한 원인이라는 자격을 상실할 것이기에 반증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진화냐? 혹은 설계냐? 여전히 서로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는 작업가설이기에 선제적인 전제나 선입견 없이 자연의 증거가 우리를 이끌어 가는대로 나아가면서 무엇이 더욱 받아들일만한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하다고 하겠다.

 

매우 복잡하고 오래된 논쟁의 내용을 저자는 매우 중요한 핵심만을 짚으며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적설계에 대한 흐름을 알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 이론이 자연을 관찰하여 얻어진 객관적인 증거에 철저히 기초하여 형성되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특히 생명의 기원과 진화와 같이 생명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종교적 함의를 가진 문제들의 경우에는 각 개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생관 또는 세계관은 다양한 형태로 과학자들이 관찰된 결과를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욱이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오래 전 과거 생명의 역사에게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실험실에서 직접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과거 생명의 역사에게 무슨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올바로  추론하기 위해서는 신념을 증거로부터 분리하여 철저히 객관적 증거와 자료에 기초한 합리적 추론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6)

다윈이 그의 저서 ‘종의 기원’을 통해서 말한 자연 선택은 타 개체에 비하여 자연의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형질을 가진 개체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우월한 형질을 보존하고 후대에 전수함으로써 종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는 개념이다. 그가 본래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자연선택의 개념은 우리에게 설계자 없는 설계를 가져다 주었다. 이러한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계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930-40년대에는 신다윈주의이론이 등장했는데 이는 수학적 모델을 사용하여 시간에 따른 소규모 변이와 돌연변이의 축적이 결국 대규모의 형태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면서 등장한 이론이 화학진화론이다. 이는 오파린의 가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원시 대기상태에 산소가 없었던 환원성 대기에서 화학반응에 의해서 생명체의 핵심 물질인 단백질에서 원시세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캄브리아기 폭발로 알려진 화석 기록과  20세기 후반에 들면서 분자생물학이 발달되면서 도리어 진화에 의한 생명의 창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다시금 지적설계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적설계론은 생명체 내의 많은 정교한 현상들을 방향성 없고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의 과정이 아닌 지적 원인에 의해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는 논거에 기초하고 있다. 

마이클 비히는 자신의 책 ‘다윈의 블랙박스’를 통해서 박테리아 편모와 같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부품들 중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을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이라고 명명했다. 윌리엄 뎀스키는 이른 ‘설계 추론’에서 특성화된 복잡성(specified complexity)”으로 발전시켰다. 

작동과학에서는 귀납법적 추론 방법(중력의 법칙의 적용, 현재에 재연 가능)을 사용하지만 역사과학의 경우에는 귀추적 추론 방법(화산재가 있으면 화산 폭발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추론)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현대의 진화론이 당면한, 해결해야할 질문들(126)

반증가능성 / 방법론적 자연주의 / 작업가설 / 과학의 객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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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는 1954년 쓰여진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에 기록된 과학과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을 다룬 내용이다. 세기가 바뀌는 이 기간동안 신학이나 과학 모두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 램이 이야기한 많은 내용들을 수정해야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그가 신학자로서 과학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당시 신학과 과학의 대립되는 상황들 속에서 대화를 하고자 노력했고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 내용이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한국 교회는 60여년전의 고민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젊은 지구론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유신 진화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껄끄럽게 여기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성실한 자세로 학문에 임할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기존의 학문적 성과로 인해서 양보할 필요가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여전히 다스리시고 섭리, 보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이 과학교과서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우리들의 언어로 기록한 것이기에 현대의 어떤 과학 이론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여기면 되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는, 아니 더 나아가 온 우주가운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 비밀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이 인간들의 노력에 의해서 발견된다면 우리는 도리어 이렇게 놀라운 방식으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경륜으로 인해 그분을 찬양할 것이다. 

1장. 기독교와 과학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긴급한 필요성
초정통주의가 과학을 무시하는 것 만큼이나 종교적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가 성경을 무시하는 것도 어리석은 태도다.(37)

* 과학과 기독교 사이의 긍정적 관계
1. 창조 교리는 기독교 신학과 성경 신학의 근본을 이룬다. 
2. 과학은 계시의 빛이 필요하다. 
3. 계시는 과학의 관점이 필요하다. 
4. 과학과 신학은 모두 인류의 근본적 과업이다. 

2장. 신학과 과학의 충돌에 관한 분석
과학이란 자연과 자연현상에 관해 우리가 아는 대략적 지식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순수 과학과 혼합과학이 포함된다. … 신학은 거듭난 마음과 지성이 성경을 연구하여 성경이 제시하는 진리의 체계를 밝히는 학문이다. 
- 신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자의 임무는 하나님의 작품 혹은 피조계를 탐구하는 것이고, 신학자의 임무는 성경과 자연과 역사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다…. 자연에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은 일치해야 한다.(53)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충돌
1. 신학자가 범하는 잘못
과학에 냉담하거나 의심하고 이해하지 못함 / 특정한 세계관을 과학 도는 성경과 동일시 하거나 창세기 1장의 일반적 주장에서 지나치게 많은 실증적 또는 구체적 정보를 추론 하는 것
2. 신학자와 과학자가 공통으로 범하는 잘못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어떤 과학 이론을 최종적인 것으로 선언하는 경우가 있다. / 신학과 과학 둘 다에 인간의 지식이 불완전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 과학자나 신학자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
3. 과학자가 범하는 잘못
반종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 과학주의의 환원주의적 정신을 비판해야 한다.  / 목적론적 사고에 대한 과학주의의 비합리적 편견을 비판해야 한다. /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과학주의의 편견을 비판해야 한다.

- 만일 신학자와 과학자가 신중하게 각자의 과업에 충실하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세심히 공부하고 발언했다면,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비그리스도인의 마음에서 비롯하는 불화 이외의 부조화는 그들 사이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과 구원자 사이에 가져다 놓곤 하는 쓸데없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3장. 기독교와 과학의 근본 문제들

1. 자연적 사물들에 관한 성경의 언어
1) 자연 문제에 관한 성경의 언어는 과학적 언어가 아니라 대중적 언어다. 
- 보통 사람들의 언어
2) 성경의 언어는 현상적 언어다.
- 겉모습과 관련된 언어, 해가 뜬다.
3) 자연적 사물들에 관한 성경의 언어는 비주장적이다. 
- 성경은 사물의 실제 속성에 관해 이론화하지 않는다. 
4) 성경의 언어는 성경이 쓰인 시대의 문화를 계시의 매체로 사용한다. 
- 시간, 심리학 관련 단어(심장, 간, 뼈, 창자..), 의학 언어, 수학적 내용과 도량형, 지리적 용어

* 문화적인 것과 초문화적인 것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1) 성경에서 자연적인 것과 직접 관련이 있는 모든 내용은 당대의 지배적인 문화적 개념의 기준에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2) 온전히 신학적이거나 교훈적인 내용은 초문화적 개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3) 우리는 성경의 초문화적 요소를 분명히 이해하고 언어사회학을 분명히 이해함으로써 문화적 형식 아래 있는 초문화적 요소를 판독할 수 있다. 


2. 자연에 관한 성경의 관점
1) 창조론이 매우 직설적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전능하신 창조자시다. 
2) 성경적 자연관은 또한 우주가 하나님의 섭리로 유지된다고 분명히 주장한다. 
3) 성경의 일관된 창조론과 보조를 맞추는 것은 피조물에 대한 숭배를 일절 금지한다는 것이다. 
4) 성경은 자연의 규칙성은 하나님의 불변성이며 자연 법칙은 하나님의 법칙임을 분명히 가르친다. 
- 자연의 균일성(p.96-7), 요리사가 햄을 구웠다. 오븐이 햄을 구웠다. 
5) 성경은 자연이 일과적일 것으로 전망한다. 
6) 성경은 자연을 시험과 심판의 영역으로 본다. 

3. 성경의 우주론
1) 우리의 기본 입장 : 자연적 사물들에 대한 성경 저자의 언급은 대중적이고 비장적이며 그들이 살았던 문화의 관점에서 쓰였다. 
- 우리는 과도한 열정을 품고 히브리어 단어나 표현속에서 아인슈타인의 이론이나 현대 천체물리학의 개념을 찾으려고 애써서는 안된다.(107)
2) 성경의 우주론은 체계적이거나 주장적이지 않다. 

4. 기독교 자연철학
- 기독교 자연철학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는 기독교 신학이 방향성을 제공하는, 폭넓고 포괄적인 자연 해석 방법 빛 체계다. 
1) 자연 철학의 필요성
- 자연에 대한 성경의 접근은 볼질적으로 종교적이며 신학적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분명히 강조하지만 어떻게 창조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 과학은 풍부한 실증적 결과를 도출하지만 인식론의 형이상학과 신학처럼 더 큰 문제는 다루지 못한다. 
2) 기독교 자연철학의 요소
- 하나님은 자연의 세계적 근거이시다. 
- 자연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 / 따라서 피조물을 그 운명으로 인도하고 피조물이 그 속성에 맞게 발달하도록 하며 피조물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고유한 사역이다.(아브라함 카이퍼)
- 점진적 창조
3) 요약
- 하나님의 정신안에 개념이 존재한다. 
- 그다음 공허 혹은 무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명령에 의한 즉성적 창조 행위가 일어난다. 
- 다음으로 창조과정 즉 파생적 창조가 일어난다. 

4장. 성경에 예기된 과학적 사실
성경의 무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경안에 파동이론, 원자이론, 첨단 과학 이론들이 예시되었다고 하는 여러 주장들은 성경안에 현대과학이론을 밀어넣는 것과 같다. 이는 진정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지지받기 위해서 성경의 특정내용을 오독하는 행동이 된다. 
- 성령은 성경 저자들이 살던 시대의 문화적 틀과 언어로 참된 신학적 교리를 무오하게 전달하셨고, 그들에게 현대 과학의 비밀을 알리지는 않으셨다.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 현대 과학의 비밀을 찾으려는 시도는 영감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153)

5장.  천문학
천체의 목적은 첫째로 시간을 알리고 빛을 비추는 것이며 둘째는 징조 역할이다. 
우주의 일과성을 입증하려는 가장 진지한 노력은 엔트로피 법칙에서 도출한 논증이다. 자연의 카드 섞기라고 할 수 있는 엔트로피 현상이 가리키는 것은 자연의 방향성이다. 에딩턴은 이를 시간 화살(Time Arrow)이라고 부른다. 

성경안에 등장하는 여러가시 천체의 기적들
- 여호수아의 긴 하루(수 10장)
- 아하스의 해시계(사 36장; 왕하 20장)
- 베들레헴의 별(마 2장)

6장. 지질학
경건한 태도를 지닌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자이시며 자연속에서 활동하신다는 것 그리고 자연에 목적론적 측면이 존재한다는 견해가 타당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성을 동반한 신앙은 과학이 타당하게 제기하는 질문을 수용할 넉넉한 여지를 두고 신앙의 영역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 독단적인 신학적 주장을 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198)

* 창조의 6일
1) 단순한 문자적 관점. 
- 주전 4000년 전이라고 보는 견해, 어셔는 창세기 족보와 다른 성경 자료를 취합하여 세상의 창조부터 그리스도까지 약 4036년의 시간 간격이 있다고 보았다. 이어 라이트풋은 어셔의 연대표를 살핀후 창조는 주전 4004년 10월 18일 부터 24일 주간에 일어났고 아담은 그리니치 자오선 동경 45도 기준 10월 23일 오전 9시에 창조되었다고 말했다. (201)
- 복음주의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태초의 창조가 일어난 연대가 주전 4000년 경이라는 입장을 오래전에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 비그리스도인 학자 다수는-버트런드 러셀과 오즈번같이 유명한 이들도-보수주의 기릇도인들이 주전 4004년 창조설을 믿는다고 생각한다.(200)
2) 종교적으로만 해석하는 이론
- 창세기는 신학적으로는 참된 자연관을 제공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3) 홍수 지질학
- 홍수 지질학의 부흥은 제7일안식교 지지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프라이스는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홍수 지질학의 중요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했다. 이들은 상대 이론의 논리적 오류를 드러냄으로 자신들의 이론이 옳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이론은 균일설이라는 현대의 골리앗에 당당하게 맞선 다윗으로 여겨졌기에 호응을 받았지만 그의 물맷돌에 골리앗은 쓰러지지 않았다. 
4) 연속적 격변
- 퀴비에가 주창하고 아가시가 수정한 이론으로 홍수와 같은 격변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새창조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는 이론이다. 
5) 국지적 창조
6) 시간 경과 이전 혹은 이상 시간 관점
- 성년 창조설, 하나님이 창조시에 어떤 사물들은 실제보다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셨다는 것이다. 
7) 창조-파괴-재창조 이론 또는 복구이론 또는 간격이론
- 창세기 1:1과 2절 사이에 엄청난 시간의 간격이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8) 시대-일 또는 신의 날 이론 또는 일치론
- 창세기의 날을 시대로 해석
9) 회화일(Pictorial Day) 이론 및 온건한 일치론
- 창세기의 주목적은 신학적이며 종교적으로 그 소극적 목적은 우상숭배의 금지이고 적극적 목적은 우주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고 우주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영성,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선함을 장엄하게 드러냄을 가르치는 것이다 
- 창세기는 사실 과학적이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창조기사에서 과학 자료를 찾으려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창세기의 언어는 과학적이거나 인과적이지 않으며 현상적이고 대중적이다. 
- 신학자는 하나님이 창조자시라는 것은 알지만 창조의 언제와 어떻게는 알지 못한다. 지질학자는 우주가 언제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는 알지만 누가 창조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자연의 창조자, 보존자, 지탱자, 공급자시다. 자연법칙은 하나님의 법칙이고 자연의 규칙성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반영이다. … 모든 생명, 모든 종, 모든 지질 변화, 모든 지질학 법칙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267)

노아의 홍수는 성경 이야기의 자자가 살던 지역과 그의 관찰, 그가 지닌 정보 선에서는 보편적이었다. 또한 노아의 홍수는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이 나란히 합력하여 이루어진 사건이다. 

7장. 생물학
생물철학은 진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1) 관념론 철학자 : 실재하는 모든 것은 영이나 정신, 혹은 가이스트이다. 물질 혹은 과학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은 영적 세계의 연쇄적 표상들이 유형으로 확립된 것이다. 
2) 가톨릭 생물학자 : 하나님이 없으면 영적, 지적, 물질적 운동은 불가능하다. 직접 창조인가 진화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3) 극단적 초정통주의자 : 성경의 기록대로 즉성적 창조를 믿는다. 진화가 참이라면 성경은 거짓이다. 나는 진화론과 맞선다. 

러시아의 국정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은 진화론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과학의 창조 이론으로 보고 크게 반겼다. 진화론은 무신론과 윤리적 허무주의와 반신론적, 반성경적, 반기독교적 사고를 뒷받침하는데 사용되었디.(310)

진화는 완벽하게 입증된 법칙도, 무오한 것으로 확인된 법칙도 아니다…. 진화 이론은 개연성 진술이며 절대적 진리나 영속적 진리 같은 것이 아니다. 

과학의 역사는 일반화가 부서지고 무너져 온 역사다.(천동설->지동설, 뉴턴의 운동법칙->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 진화론에 필요한 제한은 무엇인가?
1) 진화는 결코 자연의 자기 창조가 될 수 없다.
2) 진화는 결코 우주에 대한 근본 설명이 될 수 없다. 
3) 진화는 자연 내의 에너지와 설계를 고려해야 한다. 

우주의 무대 전체가 생명을 위해 꾸며지지 않았다면 태고의 물웅덩이에서는 단 하나의 생명 세포도 등장할 수 없었다. 무엇을 근거로 이런 사실들을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우주적, 화학적, 물리적 특징들-생명이 존재하려면 모두 절대적으로 필요한 특징들-이 이 행성 한 곳에서 우연히 발생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셨다는 것인가?(328)

* 인간의 초월적 특성
1) 이성적 사고 능력
2) 도덕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능력
3) 미적 체계
4)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마음

많은 과학 이론들이 반기독교적인 것이라고 선언되었지만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수용되며 아무런 악영향도 없다. : 대척점, 외과 수술, 백신 접종, 진통제와 마취제, 하수구, 피뢰침…

어떤 이론이 기독교 형이상학에 해당하는 내용을 부정할 때 반기독교적 이론이 된다.(진화론, 행동주의 심리학, 실증주의 사회학)

8장. 인류학

인류학은 시간과 공간 속의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인류의 단일성은 기독교 신학의 중요 문제이다.(창세기, 롬 5:12-17; 고전 15:21-58)

초정통주의는 화석인류 연구가 비록 과학의 이름으로 과학자들에 의해서 수행되고는 있지만 연구 과정 전체가 매우 비과학적일 정도로 추측과 짐작, 공상적인 재구성으로 가득차 있다는 인상을 만들어 냈다.(365)
필트다운 사건(두개골은 인간의 것이지만 턱뼈는 유인원의 것을 조작한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진화론을 지탱하던 지지대가 뽑혀 나갔다는 것이 아니고, 과학의 방법론이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다. 폭로가 가능했던 것은 오직 폭로에 사용된 방법론 덕분이었다.(369)

창조 기사는 전체가 비유적이다. 하지만 비유적이라고 해서 비역사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창조 기사는 신화적이다. 신화는 특정 문학 형식으로된 역사다. 

타락은 인류 역사의 조용한 전제다. 
인간이 죄를 짓기 오래전에도 자연계에는 질병과 죽음과 피흘림이 있었다. … 우리는 이 죽음과 질병과 피흘림이 모두 사탄의 타락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 생명이 생명을 잡아먹는 창조를 좋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는 좋음의 의미를 예단하는 주장이다. 자연의 순환은 놀라운 일이며 생명과 생명의 관계는 장엄한 자연의 균형을 이룬다. 

우리는 지성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이야말로 가장 많은 사실을 가장 훌륭하게 설명하는 해석이다.(407)

9장. 맺는 말
복음주의자들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어떤 신념에 대한 부정 진술
1.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세계가 주전 4004년에 창조되었다고 믿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2.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인간이 주전 4004년에 등장했다고 믿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3. 복음주의자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또는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라고 믿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4.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진화가 신앙에 반한다고 믿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5. 복음주의자들이 물리학, 천문학, 화학, 지질학, 생물학, 심리학의 구체적 세부 내용에 대한 최종 판단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긍정진술
1. 기독교를 역사와 자연에서 분리하기란 불가능하다. 
2. 성경은 최종적인 과학 이론을 가르치지 않으며, 성경의 저자가 성경을 쓰던 시대와 장소의 문화의 관점에서 최종적인 신학적 진리를 가르친다. 
3. 자연에 관한 성경의 진술은 비주장적 또는 현상적이며, 기괴하거나 신화적인 내용이 없다. 
4. 우리는 과학자가 과학을 근거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을 타당한 이유를 댈 수는 없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5. 기독교는 종교이지 과학이 아니다. 

10장. 해설(송인규)
이 책의 목적 : 과학과 성경에 대한 19세기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의 전통-과학과 성경 둘 다를 존중하는 태됴-를 다시금 살려 내야 한다는 것. 

* 램의 입장
1. 창세기 1장의 날과 관련하여 회화일 이론을 주창
2.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있어서 온건한 일치론을 견지
3. 점진적 창조야 말로 하나님의 창조 및 섭리 과정을 합당히 드러낸다고 봄.

- 성경의 언어는 일차적으로 대중적, 현상적, 비주장적이라는 점에서 비과학적이다. 물론 이는 성경의 언어가 반과적적이라는 말이 아니고 전과학적이라는 뜻이다.(443)

* 이 책의 의의
1. 이 책은 점진적 차조론의 핵심 내용을 밝혀주는 교과서같은 안내서이다. 
2. 이 책은 점진적 창조론의 전체적 면모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3. 이 책은 무엇보다도 신학자의  저술이다. 
4. 램은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도록 돕는 매우 교육적이고 유익한 접근 방식을 시도한다. 
5. 이 책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실정에 매우 적실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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