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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memberthe law of my servant Moses, the statutes and rules2that I commanded him at Horeb for all Israel. 
d“Behold, I will send you eElijah the prophet fbefore the great and awesome day of the Lord comes. And he will gturn the hearts of fathers to their children and the hearts of children to their fathers, lest I come and hstrike the land with a decree of utter destruction.”3
b[Deut. 4:9, 10]
cSee Ex. 20:3–17; Deut. 4:10
2Or and just decrees
d[ch. 3:1]
e[Matt. 11:14; Mark 9:11; Luke 1:17]
fJoel 2:31
g[Luke 1:17]
hIsa. 11:4; [Zech. 5:3]
3The Hebrew term rendered decree of utter destructionrefers to things devoted (or set apart) to the Lord (or by the Lord) for destruction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4:4–6.

결론적인 4:4-6절에서는 모세와 엘리야를 소환하고 있다. 모세의 경우에는 처음 세 논쟁과 관련이 있고 마지막 세 논쟁은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 이전에 있을 선지자 엘리야의 약속된 파송과 연관이 있다. 
말라기는 모세 율법에 대한 철저한 의존, 준수를 요구하고 있으며 다가올 선지자로서 엘리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라기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중에 엘리야가 모세와 같은 메시아적인 선지자로 인식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변화산에서의 모습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마가복음 9:2–5, NKRV)

모세와 엘리야 모두 호렙과 관련이 있다.(왕상 19장) 또한 신약의 변화산과도 관련이 있다.(마 17장; 막 9장, 눅 9장)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서 있었다. 이는 모세와 엘리야가 구약에서 메시야를 대표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이 오리라 한 엘리야는 신약에 와서 세례요한이다. 세례 요한이 자신이 엘리야임을 부정했지만 이는 본인이 엘리야 본인이 아님을 나타냈거나 엘리야로 대표되는 사역의 특징적 성격(이적을 행함)을 부정한 것이다. 


4절) 너희는 나, 여호와가 호렙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게엑 명령한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율법을 기억하라는 것은 어떤 과거를 외우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4절의 여러 표현, 단어들은 신명기의 인용이다. 
- In this verse there are several words and phrases that are shared with the book of Deuteronomy. These include Remember(compare Deut 7:18; 8:18; 16:3), my servant Moses(compare Deut 34:5), statutes and ordinances(compare Deut 4:1, 8, 14), Horeb(the common name in Deuteronomy for the mountain usually called “Sinai” in Exodus; see Deut 1:2, 6, 19), and all Israel(compare Deut 1:1; 5:1).
 David J. Clark and Howard A. Hatton, A Handbook on Malachi, UBS Handbook Serie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2002), 466.

본문의 율례와 법도는 그 의미에 있어서 구분하기 어렵다. 

기억하라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무언가를 생각나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To survive the coming judgment the people must remember the law of my servant Moses.This is imperative! The Hebrew word zāḵarhas an ambivalent meaning. It is not only to be reminded of something but also to act accordingly.2To “remember” something is to “do” (ʿāśâ) it (Num. 15:39, 40; Ps. 103:18), to “keep” (šāmar) it (Ps. 119:55), to “observe” (nāṣar) it (Ps. 119:56). At the same time to “remember” is “not to turn away” (lōʾ nāṭâ, Ps. 119:51), and “not to forget” (lōʾ šaḵaḥ, Ps. 119:61; Deut. 9:7).
2Cf. W. Schottroff, “Gedenken” im Alten Orient und im Alten Testament,WMANT 15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1964), pp. 156–57.
 Pieter A. Verhoef, The Books of Haggai and Malachi,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7), 338.

5절)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본 절은 3:1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는 출 23:20절의 인용으로 보인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출애굽기 23:20, NKRV)
엘리야는 여호와의 날을 예비하는 메신저로 대표된다. 이의 성취는 바로 세례요한이다. 
- Elijah.The supreme example of an OT prophet of God: he boldly rebuked kings (1 Kgs 21:17–29), preached repentance (1 Kgs 18:18–21, 36–39), and validated his messages with signs and miracles (1 Kgs 17:17–23; cf. Luke 1:17; Jas 5:17–18). The NT identifies John the Baptist as the Elijah figure who ministered “in the spirit and power of Elijah” (Luke 1:17) and prepared the way for Jesus the Messiah by calling people to repentance (see note on 3:1; see also Matt 11:9–15 and notes). Some identify Elijah as one of the two witnesses in Rev 11:3.
OT Old Testament
cf. compare, confer
NT New Testament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91.
 
- In the NT the proposed work of this “Elijah” was applied to John the Baptist (Luke 1:17). Jesus’ answer to the question of the disciples, “Why then do the teachers of the law say that Elijah must come first?” is: “To be sure, Elijah comes and will restore all things. But I tell you, Elijah has already come” (Matt. 17:10–13 par. Mark 9:11–13, NIV); and: “If you are willing to accept it, he [John the Baptist] is Elijah who is to come” (Matt. 11:14).
In the light of the NT application it is not necessary to expect the coming again in person of the historical prophet Elijah. He was introduced in our text as a typical representative of the OT prophets. What was said about the historical Elijah who has proclaimed the divine judgment on a wicked dynasty and an apostate nation, but at the same time has called them to repentance (1 K. 18:20–46), has been applied to the Elijah of our text. He will go before the Lord “in the spirit and power of Elijah” (Luke 1:17).5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1978
5We may grant the correctness of Van der Woude’s observation that the text itself does not visualize a person other than the historical Elijah, with reference to D. G. Clark, op. cit. An essential aspect of the interpretation of a prophecy is the consideration of its fulfillment in the context of the canon. To exclude this element from the exegesis is to deprive such a prophecy of its ultimate meaning.
 Pieter A. Verhoef, The Books of Haggai and Malachi,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7), 341.

그 날이 크고 두려운 날이 되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오셔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대로 주님의 오셔서 선포하시는 메시지가 구원받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되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되는 것이다. 

6절) 오리라한 엘리야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또한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이다. 만약 돌이키지 않으면 주께서 오셔서 저주로 그땅을 치실 것이다. 
단어 마음은 구약 인류학의 모든 단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인간의 감정, 욕망, 이성, 의지의 좌소로서 종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절이 표현하는 사상은 세대 간의 화해, 회개의 실제적인 열매 혹은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향하여 돌이키는 것을 표현한다. 볼드윈은 앞으로 올 엘리야와 같은 인물의 사역을 ‘세대 간에 다리를 놓는 관점에서’ 묘사한다.10)NIV는 타당하게 번역한다. ‘엘리야가 그들의 자녀를 사랑하도록 가르칠 것이다. 그는 또한 자녀에게 어떻게 그들의 부모를 존경하는지 가르칠 것이다.’ 후기는 가족 간의 불화를 언급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여호와의 언약 갱신에 대하여 말한다. 곧 신실치 못한 후손이 신실한 조상으로 돌이키는 것 혹은 신실치 못한 조상이 신실한 후손으로 돌이키는 것의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하여 ‘완전히 돌이키기로 결단하는 것’을 가리킨다.11)비록 가족 불화의 화해가 문맥상 후기의 초점이 아닐지라도 서구 사회의 핵가족의 분열을 고려하면 이 메시지는 분명히 그와 관련이 있다. 가족의 붕괴는 부모와 자녀 안에서, 학대, 중독, 강박적인 행동 양상들에서 보여지는 광포한 역기능에서 분명히 보인다. 자기 도취로 인하여 서서히 붕괴되는 사회를 향하여 하나님께 그리고 서로를 향하여 돌이키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무엇인가?
10)Baldwin (1972:276).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copyright © 1973, 1978, 1984
11)Petersen (1995:231).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99–500.

본문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이것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그 당대에 혼합된 결혼과 이혼으로 야기된 가정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평화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야가 오는 것의 주요한 목적은 바로 새로운 사회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 According to this translation Elijah will turn the hearts of the fathers to their children, and the children’s hearts to their fathers. There are differences of opinion concerning what this really means, however. Many interpreters are of the opinion that Elijah will again pacify the family quarrels that were caused by the mixed marriages and divorces mentioned in 2:10–16. The main purpose of Elijah’s coming will therefore be to establish a new social order. This point of view is, according to Jeremias, et al., supported by ancient Near Eastern eschatology. A significant trend in this eschatology is the expectation of a renewed social order. The social disorder would be the characteristic of the time of curse.6
6See A. Jeremias, Babylonisches im Neuen Testament(Leipzig: Hinrichs, 1905), pp. 97–98; idem, The Old Testament in the Light of the Ancient East,2 vols., tr. C. L. Beaumont, ed. C. H. W. Johns (New York: Putnam’s Sons, 1911), 2:312.
 Pieter A. Verhoef, The Books of Haggai and Malachi,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7), 342.

- The threat is described in terms of the ḥērem(Vulg. anathema). The semantic domain of this term is a thing or person secluded from society and life and devoted either for destruction or for sacred use.
Vulg. Vulgate
 Pieter A. Verhoef, The Books of Haggai and Malachi,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7), 344.

말라기는 결론을 통해서 모세와 엘리야를 소환하며 우리에게 두가지를 이야기한다. 모세는 율법을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먼저 율법으로 대표되는 모세를 통해서 언약에 신실할 것을, 자신의 믿음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기억할것을 명령하고 있고 엘리야를 통해서는 이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주께로 돌이킬 것을 옥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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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or behold, rthe day is coming, sburning like an oven, when tall the arrogant and tall evildoers uwill be stubble. The day that is coming ushall set them ablaze, says the Lord of hosts, so that it will leave them neither root nor branch. But for you vwho fear my name, wthe sun xof righteousness shall rise ywith healing in its wings. You shall go out zleaping like calves from the stall. And you shall tread down the wicked, for they will be ashes under the soles of your feet, aon the day when I act, says the Lord of hosts. 
1Ch 4:1–6 is ch 3:19–24 in Hebrew
r[ver. 5; ch. 3:2]
s[2 Thess. 1:7, 8]
tch. 3:15
tch. 3:15
uIsa. 47:14; [Matt. 3:12; Luke 3:17]
uIsa. 47:14; [Matt. 3:12; Luke 3:17]
vch. 3:16
wPs. 84:11; Luke 1:78; John 1:4; 8:12; 9:5; 12:46
x[Jer. 23:6]
yIsa. 53:5
z[Jer. 50:11]
aSee ch. 3:17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4:1–3.



1절) 용광로가 불타는 것과 같은 그 날이 임활 것이다. 그 때에 모든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들은 지푸라기 같을 것이다. 그날에 그들을 불 살라서 뿌리나 가지 모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불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열, 빛, 정화, 심판이다. 
용광로라는 이미지는 말 그대로 불로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그 날, 주의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 악한 자들을 불 심판을 통해 멸망시키실 것을 보여주는 그림 언어이다. 이와 연관되어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지푸라기로 묘사하며 불로 이들을 태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불은 구약과 신약에서 심판의 상징이다. 
- the day.Shorthand for the day of the Lord (see v. 5; 3:2 and note). burn like a furnace.The imagery of using a furnace as an incinerator for destroying wicked people in the day of Yahweh’s judgment is both graphic and frightening (see 3:2–3; cf. Ps 21:9; Isa 1:31; 66:15–16). arrogant.The proud and “haughty” (Isa 13:11) who challenge God and escape, both by doing evil and then flaunting it (3:15; cf. Isa 2:12). stubble.Useless grain stalks; it is found in combination with fire in the OT as an image of divine judgment (cf. Isa 5:24; 33:11; Joel 2:5; Obad 18). fire.A frequent symbol of divine judgment (e.g., Isa 66:15; Amos 1:4; Zeph 1:18; Zech 12:6) and one aspect of Jesus’ ministry according to John the Baptist’s preaching (Matt 3:12; cf. Matt 13:30).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90.

-말라기는 단어 그루터기(‘겨’ NEB; ‘지푸라기’ NLT; ‘초개’ 개역개정-역주)를 사용함으로써 요엘 2:5에 묘사된 여호와의 날의 이미지를 다시 만들어 낸다. 불과 그루터기의 연결(4:1)은 종종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는 것을 암시한다(예를 들면 사 5:24; 33:11; 47:14; 옵 18절; 출 15:7).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88.

2절)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 올라서 치료하는 광선(날개)를 비출 것이다.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뛸 것이다. 
공의로운 해, 태양, 빛이 임하면 어둠은 사라진다. 이처럼 주의 날이 임하면 새벽이 밝아 오는 것처럼 어둠이 사라지고 회복과 치유가 임하게 될 것이다. 그 대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신원하실 것이다. 눅 1:78절도 주님을 ‘돋는 해’로 묘사한다. 
본문의 치료하는 광선은 다른 텍스트에서는 날개라는 의미이다. 새가 날개를 활짝 편것인데 이는 태양의 광선이 펼쳐지는 것으로 신적인 보호와 구원, 치유의 상징이다. 
- sun of righteousness.Usually understood as a solar epithet for Yahweh (cf. Ps 84:11; Isa 60:19–20). The expression is a word picture describing the restoration and healing that will characterize the day of the Lord, when God will vindicate his people, as bright and sure as daybreak (2 Sam 23:4; Isa 30:26; 60:1, 3). It is a title for Christ in Zechariah’s song, the “rising sun … from heaven” that shines “on those living in darkness” (Luke 1:78–79; see note on Luke 1:78). The source for this title may have been the winged sun disk that is ubiquitous in ancient Near Eastern iconography. righteousness … healing.Connotes salvation and restoration, vindicating the faithful people of God. Jeremiah longed for and promised such divine “healing” (Jer 8:15; 33:6). rays.In other contexts, this Hebrew word is often translated “wings.” The outstretched wings of a bird and the extended rays of the sun were symbols of divine protection and deliverance in the biblical world (Exod 19:4; Deut 32:10–11; Pss 17:8; 18:10). frolic like well-fed calves.The imagery suggests the freshness and renewal of divine blessing, confirming the promise of 3:10 and overturning the lament of 3:14.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90.







본문에 치료하는 광선으로 번역된 ‘카납’은 날개, 치마, 귀, 옷자락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כָּנָף: cs. כְּנַף, sf. כְּנָפִי, כְּנָפֶֽךָ; pl. cs. כַּנְפוֹת, du. כְּנָפַיִם, כְּנָפָֽיִם, cs. כַּנְפֵי, sf. כְּנָפֶיךָ, כְּנָפַיִךְ, כְּנָפָוJb 39:26, כַּנְפֵיהֶם; f.:—1. wingof var. birds Ex 19:4; ʿôf kānāfwinged creature Gn 1:21; kol-kānāfeverything that has wings Gn 7:14;—2. wingof other beings: a) of kerûb1 K 6:24; b) others: śārāfIs 6:2; women in vision Zc 5:9; a2 S 22:11; c) yhwhPs 17:8; d) muṭṭôt kenāfāywof overflowing river, or outstretched wings of eagle Is 8:8;—3. skirtof garment: kenaf me‘îlô1 S 15:27; pāraš kānāf ʿal= take to wife Ez 16:8;—4. outermost (edge): a) kenāfôt hāʾāreṣthe (4) corners or ends of the world Is 11:12, kenaf hāʾāreṣend of the w. Is 24:16; b) ʿal-kenaf šiqquṣîmDn 9:27, tech. archit. term, pinnacle of the Temple (?).
 William Lee Holladay and Ludwig Köhler, A Concis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Leiden: Brill, 2000), 160.
어미 새가 펼친 날개로 새끼들을 보호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치료의 능력이 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댁이 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 (룻기 2:12, NKSV)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기 2:12, NKRV)
위의 룻기에서도 날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 The coming day, however, will not only remove the wicked; it will also heal the righteous.135Having figuratively described the end of the wicked by means of a sequence of destructive events, Malachi unfolds a series of events by which the righteous will be rewarded. The contrast expressed by the initial “but” is not marked grammatically136but by the contrastive nature of the events and the reintroduction of the Godfearers from v. 16.137
The initial sentence of v. 2 is literally, “Then the sun of righteousness will rise/shine [zāraḥ]138for you, fearers of my name, and healing in its wings.” This confusing metaphor pictures the divine bearer of justice appearing like the dawn to those “living in the land of the shadow of death” (Isa 9:2; Matt 4:16) to vindicate his “treasured possession.”139According to David, God revealed to him that “when one rules over men in righteousness, when he rules in the fear of God, he is like the light of morning at sunrise on a cloudless morning, like the brightness after rain that brings the grass from the earth” (2 Sam 23:3–4). This passage suggests the emotional response the “sun of righteousness” will incite (cf. Jer 23:5–6). Psalm 84:11 declared that God is “a sun and shield,” and according to Ps 104:1–3, God is “clothed with splendor and majesty,” he “wraps himself in light as with a garment.… He makes the clouds his chariot and rides on the wings of the wind.” The verb zāraḥis used in the theophany of Deut 33:2, describing how “the Lord came from Sinai and dawnedover them from Seir; he shone forth from Mount Paran. He came with myriads of holy ones from the south, from his mountain slopes.” When God “put[s] on righteousness as his breastplate, and the helmet of salvation on his head” (Isa 59:17) to punish the wicked and vindicate his people, he “risesupon you and his glory appears over you,” and all the nations will be attracted to the light (Isa 60:1–3). God will make his possession no longer “forsaken and hated” but “the everlasting pride and the joy of all generations” (Isa 60:15). Then
the sun will no more be your light by day, nor will the brightness of the moon shine on you, for the Lord will be your everlasting light, and your God will be your glory. Your sun will never set again, and your moon will wane no more; the Lord will be your everlasting light, and your days of sorrow will end. Then will all your people be righteous and they will possess the land forever. They are the shoot I have planted, the work of my hands, for the display of my splendor (60:19–21).
At John the Baptist’s circumcision, his previously mute father Zechariah praised God for “salvation from our enemies and from the hand of all who hate us” and acknowledged that his son would “go on before the Lord to prepare the way for him, to give his people the knowledge of salvation through the forgiveness of their sins, because of the tender mercy of our God, by which the rising sun will come to us from heaven to shine on those living in darkness and in the shadow of death, to guide our feet into the path of peace” (Luke 1:71, 76–79, my italics). Although the light came into the world with Jesus Christ and shined on those who received him, the darkness will not be dispelled until he returns.140At that time he will “expose the motives of men’s hearts,” and “each will receive his praise from God” (1 Cor 4:5).
In the ancient Near East it was common to depict the sun’s rays as the wings of a bird (Ps 139:9), and the connection with healing comes from the imagery of a bird’s protective wings (Deut 32:11).141The healing announced here will be complete: physical, spiritual, and emotional. All that was signified by the curse of ʿiṣṣābônon the man and the woman, “pain” and “painful toil” (both translating the same word in Gen 3:16–17) will be removed, as well as death itself (Zech 14:11; Rev 22:3). The Lord had assured Israel that if they followed his Torah, he would protect them from such afflictions as the Egyptians endured, for “I am the Lord, who heals you” (Exod 15:26). Even after they sinned, if they would repent, “then will I hear from heaven and will forgive their sin and will heal their land” (2 Chr 7:14; Isa 6:10; Isa 58:8; Hos 6:1). All true healing comes from God, for “I put to death and I bring to life, I have wounded and I will heal” (Deut 32:39; Pss 103:3; 147:3). Although the Lord is a God of justice, he “longs to be gracious to you; he rises to show you compassion” (Isa 30:18) and promises a time when “the moon will shine like the sun, and the sunlight will be seven times brighter, like the light of seven full days, when the Lord binds up the bruises of his people and heals the wounds he inflicted” (Isa 30:26; cf. 57:18–19; Jer 30:17; 33:6; Hos 14:4). That healing will be total and permanent, for “he will swallow up death forever” and will “wipe away the tears from all faces; he will remove the disgrace of his people from all the earth” (Isa 25:8). The source of the healing will be the substitutionary atonement of the suffering Servant: “by his wounds we are healed” (Isa 53:5; cf. 61:1; Matt 4:23–24; Luke 7:22; 1 Pet 2:24).
135On the theology of this section see B. K. Waltke, “A Canonical Process Approach to the Psalms,” in Tradition and Testament(Chicago: Moody, 1981), 15.
136Despite Glazier-McDonald calling the initial wawa “Wawadversative” (Malachi, 234).
137Those referred to there as (lit.) “fearers of Yahweh” are here “fearers of my name” (despite the NIV’s change from “fear” to “revere”).
138H. Ringgren proposes that the basic meaning of זָרַחis “light up” or “shine forth” but that it is usually used of the sun’s literal rising (e.g., Jonah 4:8; “זָרַח, zārach,” TDOT4:141).
139I agree with M. D. Carroll R. that in the immediate context “the meaning is probably that the righteousness of God will shine forth on that day of vindication” (“Malachi,” in Eerdmans Commentary on the Bible[Grand Rapids: Eerdmans, 2003], 734). But in the broader canonical context this text is fulfilled in Jesus Christ. As Van Groningen explains, the son points to “the Messiah as the One characterized by righteousness, one acting righteously and producing righteousness” (Messianic Revelation in the Old Testament[Grand Rapids: Baker, 1990], 933).
140Luke 22:53; John 1:4–9; 3:19; 8:12; 12:35, 46; Acts 26:18; Rom 13:12; 2 Cor 4:6; 6:14; Eph 5:8, 11; 6:12; Col 1:13; 1 Thess 5:4–5; 1 Pet 2:9; 1 John 2:8–9.
141Cf. J. H. Walton et al.,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Old Testament(Downers Grove: InterVarsity, 2000), 811. Merrill points out that “there is enough inner-biblical support for the winged sun of Malachi as an apt metaphor for blessing as not to require any cross-cultural borrowing” (Haggai, Zechariah, Malachi, 447).
 Richard A. Taylor and E. Ray Clendenen, Haggai, Malachi, vol. 21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2004), 451–453.

본문에 의라는 단어는 ‘체다카’로 구약에 155번 사용되었는데 이는 공동체가 특정 규범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두번째로 공동체 내애서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본문의 경우에는 그 관계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The literature concerning “righteousness” as a key concept in the OT is extensive.25In this specific form eḏāqâoccurs 155 times in the OT. In the history of its interpretation we have two main definitions. The fundamental idea of the word suggests, on the one hand, the conformation with a specific norm, and on the other hand, the conformation with a certain relationship. According to the first interpretation “righteousness” means to act rightly in terms of the norm that is set by a specific community, while the second definition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the relationship within the community; in this case “righteousness” is the performing of the obligations of that relationship.
25Cf. my article “Sol Iustitiae Illustra Nos,” in Sol Iustitiae,ed. P. A. Verhoef, D. W. de Villiers, and J. L. de Villiers (Cape Town: N. G. Kerk Uitgewers, n.d.), pp. 1–23, with extensive literature.
 Pieter A. Verhoef, The Books of Haggai and Malachi,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7), 328.

3절) 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날에 악인들이 너의 발바닥의 재와 같이 됨으로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다. 
- 동사 밟다(‘짓밟다’ NAB)는 구약 성경에서 말라기 4:3에만 등장하는 유일한 동사이다. 동사 밟다와 발의 결합은 승리를 상징한다. 이는 아마 정복된 원수의 목이나 가슴에 발을 올려 두는 승리한 왕의 이미지를 불러 일으킨다. 이는 성경세계에서 흔한 주제이다(수 10:24; 삼하 22:39–40; 왕상 5:3; 시 110:1; 사 51:23).29)이 표현은 신명기 11:24에 요약된 이스라엘의 언약적인 운명을 숨긴 채 언급하는 것일 것이다(네 발이 밟는 모든 곳을 소유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 재(에페르, ’ēper)는 ‘먼지’(NJPS, NLT)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같은 심판의 문맥은 전자인 재로 번역하는 것을 더 낫게 만든다.
의미
NAB New American Bible, copyright © 1995 by Oxford University Press, Inc. New York
29)TDOT13:19–320; ZIBBCOT5:418.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90–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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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g“Your words have been hard against me, says the Lord. hBut you say, ‘How have we spoken against you?’ 14 You have said, i‘It is vain to serve God. jWhat is the profit of our keeping his charge or of walking as in mourning before the Lord of hosts? 15 And now we call kthe arrogant blessed. kEvildoers not only prosper but lthey put God to the test and they escape.’ ” 
The Book of Remembrance
16 Then those who feared the Lord mspoke with one another. The Lord paid attention and heard them, and na book of remembrance was written before him of those who feared the Lord and esteemed his name. 17 “They shall be mine, says the Lord of hosts, oin the day when I make up pmy treasured possession, and I will spare them as a man spares his son who serves him. 18 Then once more you shall qsee the distinction between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between one who serves God and one who does not serve him. 
g[ch. 2:17]
h[ch. 1:2]
i[Zeph. 1:12]
j[Job 21:15]
k[ch. 4:1]
k[ch. 4:1]
l[Ps. 95:9]
m[Deut. 6:6, 7]
nSee Ex. 32:32
o[ch. 4:3; Acts 17:31]
pEx. 19:5; 1 Pet. 2:9
q[ch. 4:1]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3:13–18.

3:13-4:3) 여섯번째 논쟁으로 하나님께서 선인과 오만한 악인을 구별하시는가? 하나님의 선택적 사랑이 그의 심판으로 입증되었다. 본 논쟁은 첫번째 논쟁의 내용의 메아리이다. 첫번째 논쟁에서는 그분의 백성과 그렇지 않은 자들에 초점을 맞췄다면 여기서는 그분의 백성중에 언약을 따르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에 초점을 맞춘다. 

13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습니까?”라고 반문하는 것을 고소하신다. 

14-15절) 이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고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 곡하는 자 같이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한가? 우리가 보기에 교만한 자가 복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분을 예배하는 것과 그분의 언약,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러한 행동이 헛되다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게 여겨지는 것은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보상이나 이익이 없기에 이를 헛된 것으로 여기는것이다. 반면에 교만한 자가 복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게 도전하는 자,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가 벌을 받지 않는 것같이 보여지는 것이다. 마치 이 세상을 살며 하나님은 없는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인 것이다. 

16절)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서로 말하는 것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주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분의 이름을 존중하는 자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기억책)에 기록하셨다. 
그 때에 주님께서는, 주님을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말라기 3:16, NKSV)
본문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앞의 15절의 악을 행하는 자들과 대조된다. 

- 동사 경청하다(listen)와 듣다(hear)의 결합은 여호와께서 의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들의 말에 기꺼이 주목하고 반응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는 것을 가리킨다(‘여호와께서 주목하시고 들으셨다’ NJB, NRSV; ‘분명히 들으시고’ 개역개정-역주). 상호성을 암시하는 피차라는 어구와 결합하여 말하다는 동사를 재귀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가 신실하고 의미심장한 의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리킨다(‘이것들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CEV 참조).
하늘의 책 혹은 인간의 행위와 운명을 기록하는 책의 개념은 구약 성경 다른 곳(출 32:32; 시 56:8–9; 69:28; 139:16; 단 7:10; 사 4:3; 65:6 참조)과 고대세계에도 알려져 있다.11)말라기의 기념 두루마리(‘기념책’ 개역개정-역주)는 에스더 6:1에 언급된 기록의 두루마리와 병행을 이룬다. 그런 문서들은 이름과 사건의 기록의 목록을 만든다. 여호와의 기념 두루마리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명예롭게 한 자들의 이름, 말, 행동을 포함한다. 이 두루마리는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악인들로부터 의인들을 하나님께서 키로 까불러 구별하는 근거로 사용될 것이다(18절).
그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는 것(‘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개역개정-역주)은 언약 순종을 촉진하는 것인 ‘그의 이름을 마음에 지키면서’(NEB, NJB)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하다, 소중히 하다’(value) 혹은 ‘존경하다, 높이 평가하다’(ESV, NJPS)를 의미한다. 전체 절은 여호와의 이름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한 앞의 언급과 대조를 이룬다(1:6).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84–485.

- feared.Revered. This signifies covenant loyalty to Yahweh, indicating that Malachi’s audience includes a core of faithful people. The term connotes the response of covenant obedience to God’s commands, resulting in righteous conduct and genuine worship (cf. Exod 20:20; Deut 5:29; 10:12; Ps 34:9, 11; Isa 33:6). The early church lived in this “fear of the Lord” (Acts 9:31; cf. 1 Pet 2:17; Rev 14:7). listened.Emphasizes Yahweh’s high level of interest in his people (cf. Jer 8:6; Dan 10:12). His ability to hear and respond to his people distinguishes him from the idols of the nations (cf. Ps 115:4–7; Isa 44:18–20; 46:1–7; Hab 2:18–19); he tends to the prayers of the righteous (cf. Prov 15:29; Matt 6:6; Jas 5:16). scroll of remembrance.A document, following Persian tradition, containing a catalog of names and a record of events associated with those individuals (cf. Esth 6:1). Writing the document in the presence of the Lord suggests a formal agreement affirming covenant loyalty signed by those who took council together (cf. Ezra 10:3; Neh 9:38).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9–1890.





17절)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정하신 날에 그들(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실 것이다.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끼는 사람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끼실 것이다. 

특별한 소유
- treasured possession.A covenant expression describing the privileged status of Israel as God’s elect people (1:2–3; Exod 19:5; Deut 7:6; 14:2).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90.
- 말라기는 선지서에서 발견되는 언약 관계 공식(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예를 들면 렘 31:33; 겔 36:28; 슥 8:8)을 축약했다. 이 공식의 표현은 이스라엘을 향한 언약의 약속은 변하지 않으며 언젠가 미래에는 그 약속이 완전히 실현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보증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의인들을 소중히 다루실 것이다(NEB, NIV, NJB, NLT, NRSV; ‘부드러우시다’ NJPS; ‘불쌍히 여기시다’ NAB).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이기 때문이다.12)어구 특별한 소유는 또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특권적인 상태 곧 소위 그의 ‘소중히 여기는 소유’(NJB)를 묘사하는 언약적인 용어이다. 의인이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랑받는 자녀로 구원받고 보존될 것이다.13)불쌍히 여김과 자비를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자서전적인 선언에서 여호와를 규정하는 속성들 속에 들어 있다(출 34:6–7). 말라기는 요엘 2:18을 반향한다. 요엘 2:18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다시 불쌍히 여기심의 결과로 여호와의 날에 이스라엘의 운명을 회복하시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의인들은 순종적인 자녀로 반응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의 부모를 섬기는 아들 혹은 딸과 비교된다(CEV, NLT).
12)TDOT3:378.
13)Stuart (1998:1384).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85.

סְגֻלָּה S5459 TWOT1460a GK6035 

n.f. possession, property (on format. v. BaNB § 95 bii. 1, 168);—

abs. ס׳ Ex 19:5 + 5 times; 

cstr. סְגֻלַּת Ec 2:8; 

sf. סְגֻלָּתוֹ ψ 135:4;— 

1. valued property, peculiar treasure, which י׳ has chosen (בחר) and taken to himself; 

always of people of Israel, first Ex 19:5 (E; 𝔊 λαὸς περιούσιος = Tit 2:14; 1 Pet 2:9 λαὸς εἰς περιποίησιν = περιποίησις Eph 1:14 cf. BrMP 102; MA 52, 235); 

then עַם ס׳ Dt 7:6; 14:2; 26:18; 

later ס׳ alone, Mal 3:17 ψ 135:4. 

2. treasure (very late), of kings 1 Ch 29:3 (gold and silver), Ec 2:8.


† prefixed, or added, or both, indicates ‘All passages cited.’

S Strong’s Concordance

TWOT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

GK Goodrick/Kohlenberger numbering system of the NIV Exhaustive Condordance.

n. nomen, noun.

f. feminine, feminae.

v. vide, see.

Ba J. Barth, Nominalbildung.

NB J. Barth, Nominalbildung.

Kö E. König, Heb. Gram.

ii E. König, Heb. Gram.

abs. absolute.

+ plus, denotes often that other passages, etc., might be cited. So also where the forms of verbs, nouns, and adjectives are illustrated by citations, near the beginning of articles; while ‘etc.’ in such connexions commonly indicates that other forms of the word occur, which it has not been thought worth while to cite.

cstr. construct.

sf. suffix, or with suffix.

E Elohist.

𝔊 Greek version of the LXX.

= equivalent, equals.

= equivalent, equals.

cf. confer, compare.

Br circa., Messianic Prophecy.

MP circa., Messianic Prophecy.

 Francis Brown, Samuel Rolles Driver, and Charles Augustus Briggs, Enhanced Brown-Driver-Briggs Hebrew and English Lexicon (Oxford: Clarendon Press, 1977), 688.



18절) 그때에 너희가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분별하실 것이다. 
15절에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더이상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그 때에 너희가 그 차이를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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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I the Lord do not change; utherefore you, O children of Jacob, are not consumed. vFrom the days of your fathers you have turned aside from my statutes and have not kept them. wReturn to me, and I will return to you, says the Lord of hosts. xBut you say, ‘How shall we return?’ Will man rob God? Yet you are robbing me. xBut you say, ‘How have we robbed you?’ yIn your tithes and contributions. zYou are cursed with a curse, for you are robbing me, the whole nation of you. 10 aBring the full tithe into the storehouse, that there may be food in my house. And thereby bput me to the test, says the Lord of hosts, if I will not open cthe windows of heaven for you and pour down for you a blessing until there is no more need. 11 I will rebuke dthe devourer2for you, so that it will not destroy the fruits of your soil, and your vine in the field shall not fail to bear, says the Lord of hosts. 12 Then eall nations will call you blessed, for you will be fa land of delight, says the Lord of hosts. 
tPs. 102:27; See Num. 23:19
uLam. 3:22
vActs 7:51
wSee Zech. 1:3
x[ch. 1:2]
x[See ver. 7 above]
y[Neh. 13:10]
z[ch. 2:2]
a[Prov. 3:9, 10]
bSee 2 Cor. 9:6–8
cSee Gen. 7:11
d[Joel 1:4]
2Probably a name for some crop-destroying pest or pests
eZeph. 3:19
f[Isa. 62: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3:6–12.

십일조 과연 ‘축복의 계약금'인가?


6-12절) 앞서 두번째 논쟁에서 제사장들의 실패를 논했다면 이제 말라기는 그 범위를 확대해서 온 백성들의 실패를 지적하고 있다. 6절에서 야곱의 자손들이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포로됨으로부터 돌아온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야곱은 약속의 땅과 하나님께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벧엘에 제단을 세웠고 창 28:20-22절의 맹세에 따라서 십일조를 드렸다. 이와 유사하게 야곱의 자손들이 포로 귀환 했을 때 그들은 예루살렘에 제단을 쌓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십일조를 바치는 일에 심각하게 무심했다. 이러한 무관심은 곡물의 흉작, 가뭄, 전염병 때문이라고 정당화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연 재해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의 원인이 아니라 저주받은 결과임을 밝히신다. 

6절)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는 소멸되지 않는다. 
본문은 하나님의 속성과 영원한 목적은 변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백성들의 믿음과 소망의 견고한 기초를 제공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신실하심, 불변하심은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된다. 우리 인간은 신실할려고 하지만 신실하지 못하다. 시시때때로 변하고 말그대로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말씀을 통해서 그분은 어떤 의미에서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불변성이 하나님의 행동이 변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7절의 말씀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른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하심을 보여준다. 
- I the Lorddo not changeimplies that God’s character and eternal purposes do not change, which gives a solid foundation for his people’s faith and hope. However, unchangeableness in characterdoes not mean that the Lord is unchanging in his actions, for the very next verse, “Return to me and I will return to you” (v. 7), shows that God acts differently in response to different situations.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8.

본문에서 변하지 않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비한정 완료로 “나는 변하지 않았다’와 동시적인 완료로 “나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여호와 께서는 변하지 않으셨고 변하지 않으시며 변하지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애굽기 34:6–7, NKRV)
하나님께서는 위 언약에 대해서 불변하신다. 

7절) 내게로 돌아오라고 요청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이 조상의 날로부터 하나님의 규례를 떠나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하나님게서 내게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시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고 묻는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규례를 떠났고 지키지 않았다. 이는 거절과 불순종을 의미한다. 
본문의 돌아오다(return)은 ‘슈브’로 회개를 의미한다. 이는 완전한 방향 전환을 의미하는데 이스라엘의 경우에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얼굴을 돌리고 그분께 충성을 바칠 것을 다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회개의 선포는 메시야의 길을 예배한 신약의 세례요한의 사역으로 간주한다. 
- Return.Signifies repentance; repeats Zech 1:3. Repentance is an “about face,” a complete change of direction. In this case it is a shift in loyalty, a reorientation back to the God of Israel (cf. 1 Kgs 8:33; Jer 24:7). Preaching repentance characterizes the ministry of John the Baptist, forerunner of the Messiah (Matt 3:2, 11; Luke 3:3–6). The church still proclaims a gospel that calls everyone to repent and turn to God (Acts 3:19; Rom 2:4; 2 Cor 7:10; 2 Pet 3:9).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돌아오라고 요청하시는데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고 반문한다. 이말은 돌아가기를 원하는데 그 방법을 모른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가 떠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돌아가라는 것입니까?’라고 반문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니까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8-9절)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습니까?’라고 한다. 너희가 도둑질한 것은 십일조와 봉헌물이다. 이스라엘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본문에서 도둑질하다라는 ‘카바’동사가 4번이나 반복된다. 이 단어는 뒤따라 걷다, 속이다, 빼앗다. 강탈하다라는 의미이다.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 (잠언 22:23, NKRV)

십일조
구약에서 십일조는 일반적으로 땅의 소산의 1/10을 드리는 것;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드리는 십일조의 십일조; 3년에 이스라엘의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는 십일조로 나뉜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여호와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공급자이시며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예배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 tithes.Required tithe offerings in the OT included: a tenth of the produce of the land (Lev 27:30–33; Deut 12:6, 11, 17); the tenth of the tithe required of the priests and Levites (Num 18:21–32); and the third-year tithe given to the socially disadvantaged in Israel (Deut 14:28–29; 26:12–15). Malachi’s ambiguity with reference to specific tithes may be intentional. The giving of tithes was an act of worship acknowledging Yahweh as the Lord of the earth and the provider for Israel. offerings.Including freewill, or voluntary, offerings and mandatory gifts to the Lord or his sanctuary that may include agricultural produce, material goods, or personal valuables (e.g., Exod 25:2; 29:27; Num 5:9; 31:29; Deut 12:6). Such contributions were thank-offerings recognizing God’s goodness and generosity (see “whole tithe” in v. 10 [see also note]).
OT Old Testament
e.g. for example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8.

10절)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라. 그러면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을 것이다.
본문의 온전한 십일조는 엄밀하게 말하면 레위인들이 이스라엘에게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의미한다. (민 18:26, 느 10:38)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민수기 18:26, NKRV)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한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곳간의 여러 방에 두되” (느헤미야 10:38, NKRV)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시험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나를 시험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에 충실하심을 확증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십일조를 개인의 성공을 위한 공식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말하는 것의 핵심은 믿음과 순종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자발적인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지 십일조를 바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 whole tithe.Perhaps the tenth-part tithe and the tithe tax (or “tenth of the tithe” that the Levites were required to give on the tithes they received from the Israelites, Num 18:26; cf. Neh 10:38). If so, Malachi may be calling for reinstating the tithe tax (not the giving of additional offerings). food in my house.Food and other goods received as tithes and offerings were stockpiled in the treasury rooms (“storehouse”) of the temple (1 Kgs 7:51; 2 Chr 31:11–12; Neh 13:12). The sacrificial gifts were literally “food” for the priests and Levites, whom the gifts supported (cf. Num 18:8–21; Deut 18:1–4). Test me.The prophet’s challenge does not contradict the prohibition against testing God (Deut 6:16). It offers the priests and the people an opportunity to prove Yahweh’s covenant-faithfulness by personal experience through obedience to God’s commands. The passage is not a formula for achieving personal wealth, as some claim, although it is possible to give freely and attain more wealth (as a general principle, not a promise, cf. Prov 11:24). Context indicates Malachi has the blessings of the Mosaic covenant in mind (see Deut 28:12). These blessings are national, or corporate, in character, rather than individually centered. They are primarily agricultural benefits, but are not without moral and spiritual counterparts. The prophet recognized that turning to God in repentance and reasserting fidelity in covenant relationship with him must begin somewhere—in this case, the practical act of obedience to the Mosaic laws regulating tithes. The point of the “testing” is to probe the willingness of the community to respond to God in faith and obedience, not to manipulate God’s blessing through the giving of tithes. The theme of God’s testing and providing runs through the Bible, giving rise to names for God like “The Lord Will Provide” (Gen 22:14; cf. Deut 8:2, 16; Ps 81:7; 1 Thess 2:4. throw open the floodgates of heaven.Abundant rainfall would yield bumper crops (cf. Deut 28:12), overturning the drought and poor harvests that Haggai reports (Hag 1:6; 2:16, 19).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8.

본문에서 사용된 시험이라는 단어는 ‘바한’으로 정직한 믿음에서 나온 시험이라면 신 6:16에서 시험하지 말라라는 단어는 ‘낫사’로 오만하고 냉소적인 불신앙의 자세에서 나온 시험을 의미한다. 
- 하나님의 요구의 성격(이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보라)은 특별한 것이며18)구약 성경에서 드문 그러나 유일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도전이다.19)말라기의 명령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금한 것(신 6:16)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신명기의 문맥에서 시험이라는 말을 위한 단어(낫사, nāśā’)는 오만하고 냉소적인 불신앙의 자세로부터 온 ‘시도하다’(try) 혹은 ‘검사하다’(혹은 심지어 ‘시험하다’[tempt])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바한, bāḥan)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증하고 격려하려는 의도를 가진 정직한 의심의 태도에서 온 시험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보라’(NLT)고 초대하시는 것은 언약의 약속에 여호와께서 신실하시다는 것을 순종의 경험을 통하여 확인할 기회를 회복된 공동체에 제공하는 것이다.
표현 하늘의 홍수의 문(‘하늘 문’ 개역개정-역주)은 하나님의 언약의 복의 구체적인 표시인 풍부한 농업적인 생산과 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이는 유다 백성들이 고대해오고 있는 것이다. 학 1:6, 10–11; 2:16, 17, 19 참조). 말라기가 사용하는 열다, 창고, 하늘 같은 말들은 말라기가 신명기의 복인 풍부한 비의 복을 마음에 그리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신 28:12).20)
18)Petersen (1995:217).
19)Baker (2006:286).
NLT New Living Translation, copyright © 1996[2004, 2007]. Anglicized version, copyright © 2000
20)Baker (2006:286).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75.

11-12절) 하나님을 시험한 것에 대한 복의 증거로서 메뚜기를 금하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할 것이고 포도나무의 열매가 익기전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열방이 너희를 복된다라고 할 것인데 이는 네가 아름다운 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메뚜기로 인한 흉작, 전염병으로 인한 수확의 실패등은 모세 언약에 불순종할 때 임할 저주가운데 하니인데 이제 하나님께서 이것을 막으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땅이 됨으로 모든 이방인이 너희를 복되다 하는 것이다. 이는 이방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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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ssenger of the Lord
17 dYou have wearied the Lord with your words. xBut you say, “How have we wearied him?” eBy saying, “Everyone who does evil is good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he delights in them.” Or by asking, f“Where is the God of justice?” 
g“Behold, I send hmy messenger, and ihe will prepare the way before me. And the Lord jwhom you seek will suddenly come to his temple; and kthe messenger of the covenant in whom you delight, behold, he is coming, says the Lord of hosts. But lwho can endure the day of his coming, and who can stand when he appears? For mhe is like a refiner’s fire and like fullers’ soap. He will sit nas a refiner and purifier of silver, and he will purify the sons of Levi and refine them like gold and silver, and they will bring oofferings in righteousness to the Lord.1pThen the offering of Judah and Jerusalem will be pleasing to the Lord as in the days of old and as in former years. 
“Then I will draw near to you for judgment. I will be qa swift witness against the sorcerers, against the adulterers, against those who swear falsely, against those rwho oppress the hired worker in his wages, sthe widow and the fatherless, against those who thrust aside the sojourner, and do not fear me, says the Lord of hosts. 
dIsa. 43:24
x[See ver. 14 above]
e[ch. 3:15; Isa. 5:20]
f[ch. 3:1; 2 Pet. 3:4]
gCited Matt. 11:10; Mark 1:2; Luke 7:27; [ch. 4:5; Luke 1:76]
hSee ch. 2:7
iSee Isa. 40:3
j[ch. 2:17]
k[ch. 4:5]
lJoel 2:11
mIsa. 4:4
nIsa. 1:25; Zech. 13:9
o[ch. 1:7]
1Or and they will belong to the Lord, bringers of an offering in righteousness
pEzek. 20:40
qch. 2:14; Jer. 29:23
rSee Lev. 19:13
sSee Deut. 24:17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2:17–3:5.

본문은 네번째 논쟁으로 하나님께서 여러 범죄들에 대해서 증인 되시며 그분이 다시 오실때에 정결케 하시며 심판하실 것을 말한다. 

17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심, 헌신, 희생이 없는 종교적 매너리즘에 빠진 의식적인 행동, 종교적인 의식들과 신실하지 않은 말들로 하나님을 괴롭게, 슬프게 만들고도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게 했습니까라고 반문한다. 
이스라엘이 문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오해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정의의 하나님이심을 알았으며 동시에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임을 알았다. 하지만 이것을 그들에게 바르게 적용하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합당하지 못한 예배를 드리고도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기쁨이 된다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악을 행하는 자를 좋게 보신다면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하나님께 따지고 있는 것이다. 17절의 정의(미쉬파트)에 대한 이중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 말라기의 청중은 하나님께서 행악자에게서 ‘기쁨을 찾으시거나’(NJB, NRSV) 기뻐하신다(NAB, NIV, NLT)고 고소했다. 이 보고된 청중의 말은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성전에서 합당치 않은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선언한 말라기의 두 번째 논쟁의 주제와 대조된다(1:10).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이런 잘못된 이해와 왜곡은 자신들이 이미(때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신학적인 패러다임을 뒤집는 역사적인 실재와 마주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흔히 나타난다(3:14 참조).1)
하나님의 칭호 정의의 하나님은 이사야 30:18에도 등장한다. 이사야의 선언이 위치한 문맥은 말라기의 청중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답으로 기능한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 은혜로우시며 그를 기다리는 자에게 복을 주시려고 기다리신다. 대부분의 영어 역본들은 히브리어 미쉬파트(mišpāṭ)를 추상명사 정의(justice)로 번역한다(NIV, NLT, NRSV; NAB, ‘공평한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참조). 같은 단어가 3:5의 시작에도 나타나는 것을 주목하라. 이는 네 번째 논쟁을 구성하는 구조를 부분적으로 감싸는 일종의 봉투(envelop)를 형성한다. 같은 단어가 하나님께서 행악자들을 시험하실 것이라고 가리키는 문맥에서는(NAB, NIV, NRSV; ‘내가 너를 소송할 것이다’ NJB, NLT 참조) 심판(NAB, NIV)으로 번역된다. 2:17에 제기된 질문은 미쉬파트가 이 두 가지로 번역될 수 있도록 암시하는 언어유희를 하는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정의는 하나님의 성품의 특성이며 의로운 재판장이심을 고려하면 심판의 행위는 그분께 속하기 때문이다(NJB, ‘공평한 심판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계시냐?’ 참조). 말라기의 청중은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는다(2:17). 정의의 하나님은 대답하신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3:5).
1)TDOT5:103–104.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51–452.

1절) 본문에서 길을 예비하는 사자는 세례요한을, 언약의 사자는 주님을 말한다.(마 11:10-11)
주님의 오심은 어떤 이들에게는 복을, 또 다른 이들에게는 심판을 가져온다. 1절에서 말하는 내 사자(이는 말라기와 동일한 히브리어 이다)는 만군의 여호와와는 구별된다. 이런 언어 유희를 통해서 말라기 자신은 1절의 내 사자(세례 요한)과 같이 성전에 임하실 언약의 사자의 사역을 예표함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길을 준비하다라는 표현은 말그대로 왕의 오심을 위해서 길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그림을 상기시킨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영적인 정결함, 새로움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 이사야는 고대세계에서 왕의 행렬을 위하여 평평한 표면을 얻으려고 장애물을 제거하고 굽은 곳을 펴고 경사를 완만하게 하는 관습을 언급한다(사 40:3; 57:14; 62:10).3)여호와의 메신저의 역할은 포로 후기 유다의 백성들의 특징인 자기 이익, 영적인 무감각, 불의한 행위의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여호와의 현현에 앞서 길을 정리하는 것이다.
3)McKenzie (1968:16)을 보라. Westermann (1969:38–39)은 이사야의 언어를 제의적인 행진과 왕의 대관 축제에 사용되는 바벨론의 대행진 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읽는다. 또한 Glazier-McDonald (1987:138–139)는 말 3:1에도 이것을 가정한다. ZiBBCOT5:238–239를 보라.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54.

2-5절) 주님은 오셔서 어떤 죄인들은 정결하게 하시고, 어떤 죄인들은 심판하실 것이다. 정결하게 하는 사역에는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이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이는 그 사역의 철저함과 혹독함을 강조한다. 금속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매우 높은 온도의 불이 필요하고 옷이나 천의 더러움을 씻어 내기 위해서는 잿물을 사용하여 옷을 바위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때렸다.(히 12:7-11)
- When the Lord comes, he will perform two complementary works: he will purify some sinners (vv. 2–4) and judge others (v. 5). The images used for that purifying work, the refiner’s fireand fullers’ soap, stress both its thoroughness and its severity. The heat of the refiner’s fire was intense in order to separate the dross from the molten pure metal. Similarly, the fuller washed clothes using strong lye soap, after which the clothes would be placed on rocks and beaten with sticks. If sinners prefer the Lord’s cleansing work to his judgment, this is the price that must be paid (cf. Heb. 12:7–11).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8.

2절) 그가 임하시는 날
그가 임하시는 날은 주의 날과 동의어이다. 이 미래의 날은 구약에서 항상 정의의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침투하심으로 나라들 가운데 그분의 왕국을 세우시는 특정 되지 않은 임박한 시대를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초림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시작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그리스도의 재림때에 일어날 것이다. 
- day of his coming.Another expression for the day of the Lord. It establishes the future-oriented theme of the fourth disputation. In the OT this future day is always an imminent era of unspecified duration in which the God of justice will break into human history to establish his kingdom among the nations (cf. Dan 2:44–45). The first advent of Jesus the Messiah inaugurated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Matt 4:23; 9:35; Luke 4:43; 10:9, 11). The day of God’s judgment occurs at the second coming of Christ (Matt 13; 24). For Malachi, it purifies, vindicates, and restores the righteous (vv. 2–5, 17–18; 4:2–3), and it judges and destroys the wicked (4:1).
OT Old Testament
cf. compare, confer
vv. verses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7.

말라기는 “누가 능히 당하며..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두개의 질문을 통해서 그분의 오심을 강조한다. 또한 연단하는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을 비유로 사용한다. 

3-4절) 주님께서 은은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와 같이 레위 자손, 제사 의식을 수행하는 이들을 깨끗하게 함으로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 제룸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하나님께 기쁨이 될 것이다. 
예배, 제사의 회복을 위해서는 그 제사를 수행하는 자들의 회복, 깨끗케 됨이 먼저 수행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될때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백성들이 하나님앞에 나아와 그분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지금 말라기는 과거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이상적인 언약관계에 있던 때를 마음에 그리면서 그 날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깨끗하게 되어지는 정련, 제련의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이것의 결과는 영적인 새로움,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이러한 깨끗함을 통해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 
- 말라기는 앞서 두 번째 논쟁에서 성전 종교의식을 집전하는 성직자로 그리고 모세 율법의 선생으로서 자신들의 의무를 행함에 실패한 제사장들을 책망했었다(1:8, 10, 13; 2:6–8).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순화하는 과정을 위하여 뽑혀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재자들이고 그러므로 그들은 백성들의 종교적인 타락에 책임이 있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정화는 그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15)일단 정화가 되면 ‘그들은 여호와께 제물을 가져오기에 합당하게 될 것이다’(NEB;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한 번 여호와께 받아들임직한 희생제사를 드릴 것이다’ NLT).
말라기는 지나간 날(‘옛날’ 개역개정-역주)처럼 출애굽 이후의 모세 시대를 마음에 그리고 있었거나 여호와와 히브리인의 언약 관계가 이상적이었던 시기를 마음에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2:5에 비느하스의 언급을 참고하라).16)이 둘을 함께 취하면 아마도 두 표현(‘옛날과 고대’ 개역개정-역주)은 조금 더 일반적으로 히브리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신실하게 여호와를 예배했던 이스라엘 역사에서의 그런 시기를 언급한다. 어떤 경우든 그 표현들은 포로 후기 유다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배우려고 열망할 수 있는 유산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15)Verhoef (1987:291); Baker (2006:272).
16)Baldwin (1972:266).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59–460.

5절) 17절에서 언급된 정의에 대한 탄원이 무시되지 않고 실현 될 것이다. 
주님께서 심판하러 임하실 것이다. 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않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실 것이다.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정의와 심판을 의미한다. 이 두개념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의 특성으로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은 말라기의 법정에서 다양한 역할(증인, 검사, 판사)의 역할을 맡으신다. 
- 그의 백성에 반박하는 하나님의 증언에는 언약의 위반 곧 도덕적 사회적 정의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섯 개의 특별한 기소를 포함한다. 점치는 자에 대하여는 모세 율법에 의하여 금지된 마법을 행하며 흑주술을 행하며, 비술적인 행위들을 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말라기가 언급하는 관습은 어떤 형태의 점을 치는 행위, 개인들의 이익을 위하여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17)간음하는 자는 모세 언약의 십계명에서 금한 행동인 다른 남자의 약혼자 혹은 아내와 성적인 관계를 갖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출 20:14; 신 5:18). 거짓 맹세하는 자(NJPS, NRSV; ‘거짓말하는 자’ NLT)는 문자적으로 ‘거짓으로 맹세하는 자’(NJPS, NRSV)이며, 아마도 맹세 아래 거짓말하는 자를 의미할 것이다(즉 위증죄를 범하는 것). 이 범죄들이 심각하다는 사실은 간음은 사형에 해당하며(례 20:10; 신 5:20; 22:22) 점치는 것(레 20:6, 27; 신 18:10)과 거짓 맹세(신 19:18–19)역시 사형으로 형벌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서 증명된다.
모세 율법은 노동자에게 줄 품삯을 보류하는 것을 금지했다(‘임금노동자를 압제하는 자’ NJB; ‘피고용자를 임금으로 속이는 자’ NLT. 레 19:13; 신 24:14 참조). 모세 율법은 또한 과부와 고아를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며(출 22:21–22; 신 10:18; 24:17; 17:19) 일종의 사회보장 형태로 그들에게 어떤 특권을 제공했다(신 14:29; 16:11, 14; 24:19–21; 26:12–13). 단어 외부인(NIV, NRSV; 게르, gēr; ‘나그네’ 개역개정-역주)은 ‘외국인’(NJB, NLT), ‘이방인’(NAB, NJPS), ‘거류민’(ESV)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이 단어는 어떤 이유에서 자기 고향 혹은 가문으로부터 분리된 사람을 묘사한다. 히브리어 게르(gēr) 혹은 ‘거류인’은 본토민(에즈라흐, ’ezraḥ)과 외국인(노크리, nokrî)사이의 중간 위치를 차지하며 법적인 이민자의 상태를 갖는다.18)이 절(clause)은 간단하다. 그리고 동사 ‘밀어 젖히다’(‘억울하게 하며’ 개역개정-역주)는 대개 거류인이 어떤 방식으로 정의에서 소외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개 이해된다(‘외부인의 정의를 박탈하다’ NIV; ‘외국인의 권리를 빼앗다’ NJB). 히브리인들은 그들 사이에 거주하는 외국인 혹은 이방인을 사랑하도록 의무가 부여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송사를 변호하시며 이스라엘도 이집트에 거류민으로 있는 동안 똑같은 사회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신 10:18–19).
17)ZIBBCOT5:239–240.
18)TDOT2:443을 보라.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62–463.

말라기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 여러 부류(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등을 다루는데 이것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로 수렴된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위에 언급된, 아니 언급되지 않은 범죄들을 저질러서는 안되고 저지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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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ah Profaned the Covenant
10 Have we not all rone Father? Has not sone God created us? Why then are we tfaithless to one another, profaning the covenant of our fathers? 11 Judah has been tfaithless, and abomination has been committed in Israel and in Jerusalem. For uJudah has profaned the sanctuary of the Lord, which he loves, and has married the daughter of a foreign god. 12 May the Lord cut off from the tents of Jacob any descendant5of the man who does this, who vbrings an offering to the Lord of hosts! 
13 And this second thing you do. wYou cover the Lord’s altar with tears, with weeping and groaning because he no longer regards the offering or accepts it with favor from your hand. 14 xBut you say, “Why does he not?” Because the Lord ywas witness between you and the wife of your youth, zto whom tyou have been faithless, though she is your companion and your wife by covenant. 15 aDid he not make them one, with a portion of the Spirit in their union?6And what was the one God7seeking?8bGodly offspring. So guard yourselves9in your spirit, and let none of you be tfaithless to the wife of your youth. 16 “For cthe man who does not love his wife but divorces her,10says the Lord, the God of Israel, covers11his garment with violence, says the Lord of hosts. So guard yourselves in your spirit, and tdo not be faithless.” 
r1 Cor. 8:6; Eph. 4:6
sActs 17:26
t[Isa. 21:2; 24:16; 33:1]
t[See ver. 10 above]
uSee Ezra 9:2
5Hebrew any who wakes and answers
v[ch. 1:7]
w[Zech. 7:3]
x[ch. 1:2]
ych. 3:5
z[ver. 11; Isa. 54:6]
t[See ver. 10 above]
aMatt. 19:4, 5; See Gen. 2:24
6Hebrew in it
7Hebrew the one
8Or And not one has done this who has a portion of the Spirit. And what was that one seeking?
b[Ezra 9:2]
9Or So take care; also verse 16
t[See ver. 10 above]
cMatt. 5:32; Mark 10:9, 11; Luke 16:18; 1 Cor. 7:10
10Hebrew who hates and divorces
11Probable meaning (compare Septuagint and Deuteronomy 24:1–4); or “The Lord, the God of Israel, says that he hates divorce, and him who covers
t[See ver. 10 above]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2:10–16.

오늘 본문 2:10-16절은 세번째 논쟁이다. 
결혼 언약의 증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상과 결혼한 것과 혐오에 근거한 결혼에 대해서 책망하신다. 말라기는 본문 10절에서 아버지이시며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그들의 언약을 모독하는 이스라엘의 서로에 대한 신실하지 못함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말라기는 결혼에 대한 유사한 두가지 범죄를 정죄한다. 이는 이방과의 결혼과 혐오 혹은 서로 맞지 않음에 근거한 이혼이다. 어떤 이들은 그 이혼이 이방인과 통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도 한다. 
Third Disputation: Marriage to an Idolater—and Divorce Based on Aversion—Condemned by the Lord, Who Is Witness to the Covenant of Marriage.Malachi introduces his third disputation in v. 10 with a general description of Israel’s infidelity against one another, which profanes their covenant with God, the Father (see 1:6) and Creator of Israel (Deut. 32:6). Malachi condemns two parallel (though not necessarily related) marital offenses: intermarriage with pagans (Mal. 2:11; cf. Neh. 13:29) and divorce based merely on aversion or incompatibility (Mal. 2:13–16). Some have suggested that the divorces were for the purpose of intermarriage (see note on v. 16).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6.

10절) 본문은 하나님을 한 아버지라고 또한 창조자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을 이렇게 아버지요 창조주라고 하면서 어찌하여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 one … one.The repetition echoes what will become the Shema in later Judaism, the affirmation of Hebrew monotheism (Deut 6:4–5). Father … God.The divine titles emphasize the Lord’s special role as Israel’s Father and his unique function as Creator (cf. Isa 63:16). covenant of our ancestors.The Sinai covenant (Exod 19–24), reminding postexilic Judah that the law of Moses specified their responsibilities to God and to one another (e.g., the Ten Commandments, Exod 20:1–17).
cf. compare, confer
e.g. for example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6.

본문의 '거짓을 행함’은 히브리어 ‘바가드’로 신실함지 않게 행함을 아타내는 단어인데 본문에 지속적으로 반복된다.(10, 11, 14, 15, 16절)
본문의 조상들의 언약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애매하지만 아브라함 언약, 모세언약, 레위언약으로 다양하게 해석가능하다. 

11절) 이제 조상의 언약을 욕되게 한 행동들을 나열한다. 
유다는 거짓을 행했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했고,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했다. 
본문의 가증한 일은 우상 숭배, 인신제사, 정도를 벗어난 성적 행동들을 포함한다. 이방 신의 딸들과 결혼하기 위해서 이들은 자신들의 아내와 이혼을 선택한다. 아마도 이러한 이방여인과의 결혼은 상인 조직과 무역을 통한 경제적인 이익을 위한 것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이방 신을 섬기는 여인들과의 결혼을 통해서 한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의 신앙은 점점 퇴색할 수 밖에 없었다.
- detestable thing.Abomination, a grave indictment. The term also applies to the offensive and loathsome practices of the Canaanites, including idolatry, perverse sexual acts, and human sacrifice (cf. Lev 18:21, 24, 29–30; 19:4). desecrated the sanctuary … by marrying women who worship a foreign god.Hebrew men were divorcing their wives to marry other women who practiced idolatry. Presumably these marriages were contracted to gain economic advantage in the established merchant guilds and trading cartels. The practice violated the law of Moses, which prohibits marriage to foreigners. Such intermarriage had led Israel into idolatry (cf. Deut 7:3–4; 1 Kgs 11:1–6).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6.

12절) 이러한 가증한 일을 행하는 이들은 그들이 야곱의 자손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찌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야곱의 장막가운데서 잘라내실 것이다. 
(말 2:12, 개정)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
(말 2:12, 새번역)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만군의 주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주님께서 그를 야곱의 가문에서 쫓아내실 것이다.』
- 영어로 다양하게 번역되는 것에서 관찰되듯이 어구 ‘증언 혹은 대답하는 누구든지’(NRSV)는 이해하기 어렵다. 맛소라 본문(문자적으로는 ‘깨는 자와 대답하는 자’)은 관용적으로 ‘모든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것을 하는 자’ NIV; ‘그것을 하는 모든 마지막 사람’ NLT). NRSV는 히브리어 에르 ʽēr[ru](‘일으키는 자, 대답하는 자’)를 에드 ʽēd[du]로(‘증인’ ‘증인과 변호사’ NAB, NJB 참조) 읽는다. 이 단락의 요점은 그들의 아내와 잘못되게 이혼하는 자들을 넘어서 히브리인이 아닌 자들과 혼합결혼을 하는 것을 선동하거나 지지하는 유다에 있는 자들에게까지 말라기의 저주를 확대하는 것 같다.21)이를 넘어 심지어 제의적인 희생제물을 바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려는 시도는 소용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런 합당치 않은 결혼에 참여하는 자를 말라기는 효과적으로 비난한다.22)
NRSV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Anglicized edition, copyright © 1989, 1995 by the Division of Christian Education of the National Council of the Churches of Christ in the USA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copyright © 1973, 1978, 1984
NLT New Living Translation, copyright © 1996[2004, 2007]. Anglicized version, copyright © 2000
NRSV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Anglicized edition, copyright © 1989, 1995 by the Division of Christian Education of the National Council of the Churches of Christ in the USA
NAB New American Bible, copyright © 1995 by Oxford University Press, Inc. New York
NJB New Jerusalem Bible, copyright © 1985 by Darton, Longman & Todd Ltd and Doubleday, a division of Bantam Doubleday Dell Publishing Group, Inc.
21)Hill (1998:234–235)의 논의를 보라; Sweeney (2000:36)는 히브리어 표현 ‘에르 웨오네’(ʽēr wěʽōneh. 문자적으로는 ‘깨는 자와 대답하는 자’)를 엘과 오난과 연결시킨다(창 38:1–4).
22)J. M. P. Smith (1912:51).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37–438.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포로기 이후의 매우 열악한 경제적인 상황과 연관된다. 
- 말라기가 마주대한 사회적인 병폐는 부분적으로는 유대인들이 침체된 지역 경제에 대하여 반응함에 있어서 어리석은 실용주의를 택한 결과였다. 기근과 잎마름병은 일찍이 농업 생산에 영향을 주었다(학 1:11 참조). 거주하는 외국인과의 혼합결혼(2:11),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자들에 대한 무관심(3:5), 십일조를 어김(3:9)은 포로 후기 유다가 직면한 심각한 경제적인 압력의 증상들이었다. 말라기 시대에 즈음한 혼합결혼과 이혼에 대한 것은 에스라(에 9, 10장)와 느헤미야(느 13장)의 기록으로부터 알려져 있다. 이혼을 비난하는 말라기의 언급은 결혼을 통하여 무역조합이나 사업연합에 가입하여 지역 상권에 접근하는 이익을 얻기 위하여 자신들의 아내와 이혼하고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남자들 때문이었다.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39.

13-14절) 본문은 새번역이 명확하게 번역하고 있다. 
(말 2:13-14, 개정) 『[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말 2:13-14, 새번역) 『[13] 너희가 잘못한 일이 또 하나 있다. 주님께서 너희 제물을 외면하시며 그것을 기꺼이 받지 않으신다고, 너희가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주님의 제단을 적셨다. [14] 그러면서 너희는 오히려, '무슨 까닭으로 이러십니까?' 하고 묻는다. 그 까닭은, 네가 젊은 날에 만나서 결혼한 너의 아내를 배신하였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이 일에 증인이시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너의 동반자이며, 네가 성실하게 살겠다고 언약을 맺고 맞아들인 아내인데도, 네가 아내를 배신하였다.』

말라기는 지금 아내에게 불성실한, 행음한 남편을 잘못을 지적하는 증인의 역할을 하고 계신다. 이 시대는 결혼을 단지 하나의 계약으로 전락시킨다. 계약으로서 결혼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성경은 결혼을 남편과 아내, 하나님과의 삼자관계에서의 서약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결혼 관계의 증인이시다. 이런 이유로 배우자의 정절은 영적인 건강상태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다. 결혼은 잘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커플의 기도가 막히게 될 것이다. 말라기가 제시하는 결혼관은 구약의 여러 구절을 통해서 지지를 받는다. 특별히 창 2:24에서 ‘떠나’, ‘합하여’라는 표현으로 남편의 의무를 묘사한다. 
- Malachi’s contemporaries were distressed because God refused to accept their offerings, as evidenced by his withheld blessing. Malachi explains that God was acting as a witness against husbands who were unfaithful to their wives. Marriage is not just a contract, a two-way relationship between husband and wife, but a covenant, a three-way relationship in which the couple is accountable to God, for the Lordwas witnessto that covenant (see chart). For this reason, spousal fidelity is inextricably linked to spiritual well-being: a marriage must be in good repair, or else the couple’s prayers will be hindered (see 1 Pet. 3:7; cf. Matt. 5:23–25). Malachi’s view of marriage is as radical in conception (identifying marriage as a covenant between the spouses) and in the demands placed on the husband as that put forth in the NT. Other OT passages that support Malachi’s identification of marriage as a covenant include Prov. 2:17; Ezek. 16:8–14; and especially Genesis 2, where covenantal vocabulary (“leave” and “hold fast” in Gen. 2:24) is employed to describe a husband’s duty (cf. the covenantal use of “leave” and “hold fast” in, e.g., Deut. 4:4; 10:20; Josh. 1:5), and where Adam commits himself to Eve before God by employing a formula which is attested elsewhere in covenant-ratifying contexts: “this at last is bone of my bones” (Gen. 2:23; cf., e.g., 2 Sam. 5:1).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6.

  • 말라기에서의 언약

본문에 짝이라고 번역된 ‘하베렛’은 구약에 이곳에만 등장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의 어근은 건물이나 구조물에서 이음새에 해당하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영원한 결속을 의미한다. 이는 아내가 자기가 미워한다고 해서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언약의 짝이라는 것을 말한다. 본문은 아내에 대해서 세가지로 표현한다. 어려서 맞이한 아내, 네 짝, 너와 서약한 아내라고 말하는데 이는 결혼한 배우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며 이를 배신하는 이혼이라는 행위가 더욱 가증스러움을 보여준다. 

15절) 본문도 번역에 있어서 여러 어려움이 많은 구절이다. 
(말 2:15, 개정)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말 2:15, 새번역) 『②한 분이신 하나님이 네 아내를 만들지 않으셨느냐? 육체와 영이 둘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경건한 자손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명심하여, 젊어서 결혼한 너희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라. / ②또는 '(주님께서) 그들을 하나가 되게 하지 않으셨느냐? 육체와 영에 있어서 그들은 주님의 것이다. 왜 하나냐? 주님께서 경건한 자손을 찾고 계셨기 때문이다.’』
(말 2:15, 바른) 『여호와께서는 영의 여유가 있으셨으나, 하나를 지으신 것이 아니냐? 어찌 하나만 지으셨느냐?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손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진심으로 자기 심령을 지켜서 너희가 젊어서 얻은 아내를 배신하지 마라.』
(말 2:15, 현대인)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아내와 한 몸이 되게 하시지 않았느냐? 이렇게 하신 목적이 무엇이냐? 이것은 여호와께서 경건한 자녀를 얻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마음을 지켜 젊어서 얻은 너희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라.』

16절) 본절은 구약의 본문중에서 번역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이는 크게 두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미워하는 주체가 하나님인지 남편인지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혼은 결혼 상대자에 대한 폭력적인 행동이다. 
(말 2:16, 개정)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말 2:16, 새번역) 『"나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아내를 학대하는 것도 나는 미워한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명심하여,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라."』
(말 2:16, 공동)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이르시는 말씀이다. "조강지처가 싫어져서 내쫓는 것은 제 옷을 찢는 것과 같다. 나는 그러한 자들을 미워한다.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변심하여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도록 하여라."』

개역개정은 KJV의 전통을 따라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라고 번역한다. 여기서의 초점은 이혼이라는 관행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이다. 

하지만 ESV와 같은 본문에서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 그녀와 이혼하는 자”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번역은 히브리어를 “그는 아내를 미워하고(사랑하지 않고 이혼하기 때문이다.”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 남자가 아내를 미워하는 경우는 성경에 여럿 등장하는데 이 경우 덜 사랑함, 더이상 살아하지 않음이라는 의미들이다. 이처럼 애정 상실로 인한 이혼이 구약에서 인정되기는 했지만 도덕적으로 어디에서도 인정받지는 않았다. 이처럼 말라기는 애정 상실로 인한 이혼은 결혼 언약의 위반이며 한 사람의 인격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 The Hebrew text of this verse is one of the most difficult passages in the OT to translate, with the result that the two main alternative translations proposed for this verse are strongly disputed. The ESV translation team has included in a footnote the other most common translation. Given the complexity of the linguistic issues involved, both alternatives are simply summarized briefly as follows, rather than presenting comprehensive arguments for each.
1. The ESV text reads, the man who does not love his wife but divorces her. This rendering understands the Hebrew (and the Gk. of the Septuagint) in the sense of, “For he hates (or “does not love”) [and] he divorces.” The action of “hating” and thus “divorcing” is seen also in Deut. 24:3; further, the idea of a man “hating” his wife appears in Gen. 29:31; Deut. 21:15–17; 22:13; each case in the sense of “loving less” or “ceasing to love.” The expression covers his garment with violenceis probably a figure of speech referring to the defiling of one’s character with violent wrongdoing   p 1777  (see the similar image in Ps. 73:6; 109:18; Rev. 3:4; and see the opposite in Job 29:14; Ps. 132:9; Isa. 59:17; 61:10). Although divorce based on loss of affection was recognized under the OT civic law, it is nowhere morally approved (unlike divorce based on a spouse’s sexual infidelity or desertion). This is so, as Malachi stresses, because divorce based merely on the loss of affection breaks the marriage covenant and defiles one’s character, since it is untrue to the creation ideal of faithfulness (Gen. 2:24; see note on Deut. 24:1–4).
2. The ESV footnote reads, “The Lord, the God of Israel, says that he hates divorce, and him who covers [his garment with violence].” This is similar to the rendering that originally appeared in English in the King James Version of 1611. If this alternative rendering is followed, the focus is on God’s hatred of the practice of divorce, rather than on the hatred of the divorcing man toward his wife. Also following this alternative rendering, the phrase “covers his garment with violence” is understood either: (a) with reference to a second thing that God hates in addition to divorce, namely, the person “who covers his garment with violence”; or, as some hold, (b) that God hates divorce because the act of divorce itself “covers [one’s] garment with violence.”
In either case, this passage is clear in its recognition that the biblical standard for marriage derives from the creation account (see notes on Gen. 2:23–24), which establishes the covenantal nature of marriage. (Jesus, when discussing a question about divorce, began with creation; Matt. 19:3–9.) Malachi starts from this creational base: he refers to creation (Mal. 2:10), calls marriage a covenant (v. 14), refers to the oneness of Gen. 2:24 (“union,” Mal. 2:15), and reminds the community of the purpose of marriage (“godly offspring,” v. 15). The man who would divorce the Israelite wife of his youth (perhaps even for the purpose of taking a pagan girl as his wife) thus commits a grievous offense: he violates the creation order, he breaks his covenantal relationship with his wife—and, in so doing, he deeply damages his character (“covers his garment with violence”). But the impact of divorce reaches far beyond the individual, for divorce has a ruinous effect on the vitality of the whole community (vv. 13–15) and on its ability to fulfill its calling as God’s holy people.
Again, in either case, God is opposed to the kind of divorce that is in view because of the destructiveness and pain that inevitably results when “faithless” husbands send away their wives, as mentioned in Mal. 2:13, 15. (See also the notes on Matt. 5:31–32; 19:3–9; Mark 10:10–12; 1 Cor. 7:15; and Divorce and Remarriage.)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6–1777.

- divorces.Contractually expels a marriage partner (whether divorce or separation). Malachi attempts to correct abuses resulting from misapplying the Mosaic divorce laws (cf. Deut 24:1–4). The NT allows for divorce in two situations: Jesus condemned divorce except for the grounds of marital unfaithfulness (Matt 19:1–12), and Paul allows for divorce in the case of abandonment in 1 Cor 7:15. does violence.Divorce is a cruel social crime since it fractures the divinely ordained marriage covenant and robs the woman of the dignity and protection afforded by the legal agreement. To divorce one’s wife is an act of treachery against her and the God who made her. Divorce breaks the heart, destroys relationships, violates family integrity, damages the children’s well-being, and makes for an uncertain future.
cf. compare, confer
NT New Testament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7.

- 동사 미워하다(‘혐오하다’ NJPS)는 충격적인 단어이다. 이 동사의 삼인칭형은 어색하며(‘왜냐하면 그가 미워한다…’; ‘자기 아내를 미워하고 이혼하는 남자’ NIV 2011) 대개 일인칭으로 고쳐서 읽는다(1:3처럼). 만일 동사의 주어(‘그 한분’)가 의도적으로 15절부터 생략된 것으로 가정하면 맛소라 본문 그가 미워한다는 의미가 잘 통한다(‘왜냐하면 그 한분이 이혼을 미워하신다’). 왜냐하면 이혼하다로 번역된 동사는 ‘내보내다’(‘왜냐하면 여호와께서…내보내는 것을 미워하시기 때문이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동사 ‘미워하다’와 ‘내보내다’가 신명기 24:3에 등장하는 것은 말라기가 모세의 이혼법(신 24:1–4)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시사하며 포로 후기 유다에서 모세의 이혼법을 잘못 적용함으로써 그것을 남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70인역은 이 구문을 조건절로 이해한다(‘그러나 네가 그녀를 미워하기 때문에, 네가 그녀를 내보내야 한다면 …’ NETS).
문장 ‘너희 아내와 이혼하는 것은 그녀를 잔인함으로 압도하는 것이다’(NLT; NEB 참조)는 간결하지만 해석하기 어렵다(문자적으로는 ‘그리고 그가 폭력을 그의 옷으로 가린다’). 왜냐하면 이 문장의 내적인 구조와 그 앞문장과의 관계가 학자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이해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폭력(‘학대’ 개역개정-역주)은 거친 단어이며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리는 짐승같은 통탄할 행동이다.’36)이 문장을 해석하는 한 가지 방법은 ‘누군가를 폭력적으로 공격할 때 옷에 피를 묻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상당히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37)두 번째 방법은 이 문장을 옷을 걸치는 것으로 비유하여 이해하거나(‘옷처럼 불법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는’ NJPS) 사람의 내면의 성격을 비유하는 것으로(‘그리고 나는 그의 옷뿐만 아니라 폭력으로 자신을 덮는 사람을 미워한다’ NIV) 이해하는 것이다. 이 관용적인 표현은 폭력으로 자기의 옷을 걸치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조금 더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곧 자기 아내와 이혼함으로써 자기 아내를 향하여 불공평한 행동을 하는 남자를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하다(‘여호와께서 자기 아내와 이혼할 만큼 잔인한 사람은 누구든 싫어하신다’CEV).38)말라기는 이혼을 사회적인 범죄요 폭력행위요 불공평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이혼은 하나님께서 규정한 결혼 언약의 ‘사회적 연합’을 깨버리며 이혼 당한 여인으로부터 배우자의 서약에 따라서 그녀가 합당히 받아야 할 보호와 존엄성을 빼앗았기 때문이다.39)
NJPS New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5
NIV 2011 New International Version 2011, copyright © 1973, 1978, 1984, 2011 by Biblica, Inc.
NETS A. Pietersman and B. C. Wright (eds.), A New English Translationof the Septuagint(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NLT New Living Translation, copyright © 1996[2004, 2007]. Anglicized version, copyright © 2000
NEB New English Bible, copyright © Oxford University Press an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1, 1970
36)Baker (2006:260).
37)Clark and Hatton (2002:423); Stuart (1998:1343); Baker (2006:259–260).
NJPS New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5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copyright © 1973, 1978, 1984
CEV Contemporary English Verision, Copyright © 1995 American Bible Society
38)Clark and Hatton (2002:425–426); Glzaier-McDonald (1987:111).
39)Hill (1998:252).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44–446.

말라기는 결혼에 대하여 그것을 언약 관계와 동일시함으로써 아주 고결한 견해를 지지한다. 말라기는 자기 결혼의 짝에 대하여 신실하고 충실할 것에 대한 메시지를 열정적으로 선포했다(14절) 그리고 결혼에서 믿음을 깨지 말 것을 청중들에게 경고했다(15, 16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부부를 하나로 만드셨기 때문이다(15절). 이혼은 결혼의 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미워하시며 금이 간 결혼 관계로 초래된 피해를 미워하신다(16절). 결혼 언약에 충실한 것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위한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성취하며 사회의 안정화에 공헌한다는 것을 말라기는 인식했다. 후에 예수는 결혼에 대한 창세기의 이상을 지지했다(창 2:24 참조) 그리고 이혼에 대하여 모세 율법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주셨다(마 19:1–12; 신 24:1–4 참조).
IV. 네 번째 논쟁: 여호와의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47–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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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now, yO priests, zthis command is for you. aIf you will not listen, if you will not take it to heart to give honor to my name, says the Lord of hosts, then I will send bthe curse upon you and I will curse cyour blessings. Indeed, I have already cursed them, because you do not lay it to heart. Behold, dI will rebuke your offspring,1and espread dung on your faces, the fdung of your offerings, and you shall be taken away with it.2So shall you know that I have sent gthis command to you, that hmy covenant with Levi may stand, says the Lord of hosts. My covenant with him was one of life and ipeace, and I gave them to him. jIt was a covenant of fear, and he feared me. He stood in awe of my name. kTrue instruction3was in his mouth, and no wrong was found on his lips. He walked with me in peace and uprightness, and he lturned many from iniquity. For mthe lips of a priest should guard knowledge, and people4should seek instruction from his mouth, for he is the messenger of the Lord of hosts. But you have turned aside from the way. nYou have caused many to stumble by your instruction. You have corrupted othe covenant of Levi, says the Lord of hosts, and so pI make you despised and abased before all the people, inasmuch as you do not keep my ways but qshow partiality in your instruction.” 
ych. 1:6
zver. 4
aLev. 26:14; See Deut. 28:15
b[ch. 3:9]
c[Ps. 69:22]
d[Joel 1:17; Hag. 2:17]
1Hebrew seed
eNah. 3:6
f[Ex. 29:14]
2Or to it
gver. 1
hver. 8; Num. 25:12, 13; Neh. 13:29; [Num. 3:45]
iSee Isa. 54:10
j[Lev. 16:2]
k[Deut. 33:10]
3Or law; also verses 7, 8, 9
l[Dan. 12:3; James 5:20]
mDeut. 17:9; See Lev. 10:11
4Hebrew they
n[1 Sam. 2:17; Jer. 18:15; Ezek. 22:26]
oSee ver. 4
p[1 Sam. 2:30]
qDeut. 1:17; 16:19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2:1–9.

본문은 앞선 두번째 논쟁에 있어서 제사장들에 대한 추가적인 경고의 내용이다. 

1절) 제사장들에 대해 명령하시는 하나님
여기서 명령은 ‘미쯔바’라는 단어로 권고, 명령이라는 의미인데 이 명령의 내용은 4절에서 나오는 레위 언약으로 보인다. 말라기의 이 명령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는 것, 그의 언약을 지키는 것, 야곱에게(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 여호와의 제단에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신 33:9-10) 이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면서 레위를 향하여 한 축복이다. 
(신 33:9-10, 개정) 『[9]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2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제사장들을 고소하시는 내용
제사장들이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할 것이다. 하나님게서 이미 저주하셨나니 이는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 동사 듣다는 ‘순종하다’는 의미에서 ‘경청하다’ 혹은 ‘듣다’를 의미한다(NJPS, 신 28:15 참조). 관용어구 마음에 두다는 학개, 스가랴, 말라기 전집에서 여섯 번 등장한다(학 1:5, 7; 2:15, 18 [2번]; 말 2:2 [2번]). 이 표현은 감정이 아닌 의지(will)의 문제를 가리킨다(‘결심하라’ NLT; ‘신실하게 결단하라’ NJB; ‘결단하라’ NIV 2001). 듣다의 동사 형태는 성취를 위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조건절을 가리킨다(제사장 편에서의 절박한 회개, 3:7 참조).
단어 저주는 구약 성경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단어이다(오직 신 28:20; 잠 3:33; 28:27; 말 2:2; 3:9에만 등장한다). 보내다는 동사와 결합하여 사용된 이 구문은 말라기가 신명기 28장의 저주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저주로 인하여 제사장적인 축복이 위협받음으로써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축복의 기도(민 6:24–27)39)와 성전 봉사에 대하여 제사장이 물질적인 형태로 받게 되는 보상, 이 두 가지 복이 위협을 받게 된다.40)
NJPS New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5
NLT New Living Translation, copyright © 1996[2004, 2007]. Anglicized version, copyright © 2000
NJB New Jerusalem Bible, copyright © 1985 by Darton, Longman & Todd Ltd and Doubleday, a division of Bantam Doubleday Dell Publishing Group, Inc.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copyright © 1973, 1978, 1984
39)Keil (1975:442–443).
40)Rudolph (1976:265).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20–421.

3절) 희생 제물의 똥을 그들의 얼굴에 바르고 제사장들이 똥과 함께 제함을 받게 될 것이다.
꾸짖다라는 단어는 ‘가아르’로 책망하다, 비난하다라는 의미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가라’로 수정하여 분리하다, 제거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본문의 똥은 ‘페레스’는 찌거기, 배설물, 거름등의 의미로 도살당한 희생 제물의 내장 혹은 쓸모없는 부분(소화되지 않은 위의 내용물)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구약에 의하면 희생제물을 드리는 중에 제물의 구성물, 고기와 가죽과 정강이와 내장과 똥, 곧 송아지 전체를 진영 밖에 내다 버려 불태우도록 했다. 이는 제사장들이 저주를 받아 이렇게 내침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마치 이스라엘의 희생 제물이 받아들여졌고 속죄가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복을 뻔뻔하게 빌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의 복을 저주하실 것이다. 메튜 헨리는 “하나님을 존귀케 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비행보다 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 Because they “polluted” God (1:7), he will figuratively pollute and disqualify them for service at the altar by spreading on their faces the dungtaken from their rejected sacrifices (2:3). Since that dung was to be taken away from the sanctuary and burned (e.g., Ex. 29:14; Lev. 4:11ff.), so they too will be taken away. Because they presumed to bless the people of   p 1776  God, as if Israel’s sacrifices had been accepted and atonement made, God will now cursetheir blessings. As Matthew Henry put it, “Nothing profanes the name of God more than the misconduct of those whose business it is to do honor to it.”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5–1776.

- dung.The dung or entrails of the sacrificial animals that were burned outside the camp along with the hide and flesh (cf. Exod 29:14; Lev 8:17; 16:27). Since the priests had defiled God (1:7), he will figuratively defile and disqualify them for priestly ministry. The humiliating act of God rubbing dung on the faces of the priests rendered them unfit for temple service since they were ritually unclean (cf. Lev 4:11; 8:17; Num 19:5–7). Like the dung taken away from the sanctuary and burned, they too will be carried off (e.g., Exod 29:14; Lev 4:11–12, 21).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e.g. for example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5.

4절)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
이는 이후 5절의 “생명과 평강의 언약”인데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바알 브올에 가담하여 음행한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인을 창으로 죽인 비느하스의에게 하나님께서 평화의 언약을 주셨다.(민 25:1-13)
- my covenant with Levi.Perhaps an allusion to the “covenant of life and peace” (v. 5) between Yahweh and Phinehas for his zeal in defending God’s honor against those involved in idolatry and immorality at Baal of Peor (Num 25:1–13; cf. Num 3:12–13; Jer 33:21) or more generally to the blessing of Levi by Moses (Deut 33:8–11). The ancient priestly ideal is contrasted with the disgraceful reality of an irreverent priesthood.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6.

- 여호와와 레위 지파 제사장의 조상인 레위 사이에 언약을 세운 것에 대한 언급이 없다(비록 느 13:29에 레위 지파와 제사장의 언약을 또한 언급하지만). 하지만 구약 성경은 그러한 언약에 대한 ‘암시’는 갖고 있다. 즉 출애굽기 32:26–29(시내 산에서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레위의 아들들이 우상숭배자들을 살해한 것에 대한 반응에서),46)민수기 25:11–13(바알 브올에서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머물 때에 비느하스가 영웅적으로 행동한 후에),47)신명기 33:8–11(모세가 레위 지파를 축복하는 시에서),48)예레미야 33:20–21(레위 지파와의 언약에 대한 반성 [즉 모세 언약?]).49)비록 공식적으로 언약으로 확인되지 않을지라도 말라기의 언어는 레위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과 비슷하다(신 33:8–11).50)
46)Baldwin (972:254).
47)Glazier-McDonald (1987:79–80).
48)Verhoef (1987:245)도 같은 의견이다.
49)ABD4:294–295.
50)Stuart (1998:1305).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23–424.

5졀)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레위에게, 제사장들에게 준 것은 그들로 하여금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생명(하임)과 평강(샬롬)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가져오는 은혜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복은 아론의 촉복을 통해 이스라엘로 확대된다.(민 6:24-26)
(민 6:24-26, 개정)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6-7절) 제사장들의 역할
제자상들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들이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한다. 왜나하면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이기 때문이다. 
본문에 법, 율법으로 표현된 단어는 ‘토라’로 교훈을 의미하는데 이는 모세 율법안에 뿌리를 둔 제사장의 법적이고 교육적인 기능을 말한다. 말그대로 제사장은 하나님의 규훈, 율법을 전하고 가르침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죄로부터 돌이켜 구원에 이르게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런 제사장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그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묻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자라는 단어는 ‘말라크’로 제사장이 하나님의 계시의 역할을 담당하는 천사나 선지자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 단락(2:6–8)은 세 절로 된 시인데 2:5에서 시작된 레위 지파 제사장의 역사적인 의무에까지 확장된다.58)단어 교훈(토라, tôrâ)은 모세 율법 안에 뿌리를 둔 레위 지파 제사장의 법적이고 교육적인 기능을 가리킨다(신 33:9–10; 렘 18:18; 겔 7:26 참조). 이 언약에 기초한 가르침은 구전과 기록으로부터 이끌어 왔을 것이다. 이 가르침은 종교의식이 요구하는 사항에 대한 교훈과 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규칙들 곧‘바른 삶을 위한 안내서’를 포함했을 것이다.59)레위의 참된 교훈(‘진리의 법’ 개역개정-역주)은 많은 사람들이 죄 짓도록(2:8) 하게 하는 말라기의 동시대 레위 지파의 가르침과 대조되는 것이다.
나와 동행하며라는 표현은 신학적으로 ‘하나님을 인간의 중심에 모시는’60)언약에의 순종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나의 언약이 그와 함께 있었다(2: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 개역개정-역주)와 그가 나와 동행하였다(6절)라는 표현이 나란히 있는 것은 여호와와의 언약 관계에서 상호성의 사상을 아주 잘 묘사한다.61)화평함(샬롬, šālôm)은 ‘하나님의 의지와의 완전한 조화’를 가리키며, 정직함(‘정의’ JNB)은 ‘그들(즉 제사장들)의 행위와 행동의 도덕적인 정직성’을 가리킨다.62)NJPS는 이 두 단어 화평함과 정직함을 이사일의(hendiadys)를 가리키는 말로, 즉 레위 지파 제사장들의 입장에서 ‘완전한 충성’으로 이해한다.
단어 돌이켜(슈브, šûƅ)는 회개를 가리킨다(아래의 3:7의 논의를 보라). 모세 율법에 근거한 제사장들의 교훈은 백성들로 하여금 악행을 그만두게 했으며(‘많은 사람을 불법을 삼가게 했다’ NJPS) 하나님께로 그들을 돌아가게 했다(‘개심했다’ NJB).63)
58)Stuart (1998:1320).
59)Glazier-McDonald (1987:70).
60)TDOT3:395.
61)Glazier-McDonald (1987:71).
62)Verhoef (1987:249); ‘왜냐하면 그가 나에게 순종했고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CEV.
NJPS New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5
NJPS New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5
NJB New Jerusalem Bible, copyright © 1985 by Darton, Longman & Todd Ltd and Doubleday, a division of Bantam Doubleday Dell Publishing Group, Inc.
63)Verhoef (1987:249).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26–427.


8절) 그러나 너희 제사장들은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을 거스르게 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는데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다. 
앞서 제사장들이 행해야하는 의무와 반하여 이들은 그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많은 사람을 율법의 말씀으로 이끌어야할 이들이 그 율법을 거스르게 만든 것이다. 
언약의 부패는 새로운 언약과 완전한 제사장을 필요로 한다.
- The corruption of the covenant shows the need for a new covenant (Heb. 8:8–13) and a perfect priest (Heb. 7:11–8:6).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6.

앞서 본 것처럼 제사장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율법, 토라, 교훈을 바르게 전할 때 그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반대로 제사장들이 옳은 길에서 떠나서 잘못된 교훈을 가르칠때 많은 이들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에 실패할 수 밖에 없고 그것에 거스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9절) 제사장들이 주님의 길을 지키지 않고 율법을 편파적으로 적용하였기에 하나님께서도 제사장, 너희들을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다. 
필연적으로 제사장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율법을 바르게 적용하지 않을때 생명과 평강이 아니라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될 것이다. 

- 슬프게도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건전한 가르침을 마련하지 못했으며 여호와를 예배하는 데 있어서 고결한 모범도 되지 못했다. 대신에 그들은 모세 율법에서 벗어났으며 백성들이 길을 잃도록 인도했다(8절). 그런 부패한 제사장들에 대한 말라기의 치유책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었다(7절). 그런 가르침은 합당한 예배를 일으키며 의로운 삶을 회복시킨다(5–6절). 영적부흥이 올 때까지 심고 거둠의 윤리는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즉, 제사장들은 멸시받고 굴욕당하였다. 게다가 제사장들도 자신들의 공식적 역할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명령하신 하나님까지 멸시했다(9절; 1:13 참조).
III. 세 번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3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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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 son honors his father, and a servant his master. If then I am ha father, where is my honor? And if I am ia master, where is my fear? says the Lord of hosts to you, O priests, who despise my name. bBut you say, ‘How have we despised your name?’ jBy offering polluted food upon my altar. bBut you say, ‘How have we polluted you?’ By saying that kthe Lord’s table may be despised. lWhen you offer blind animals in sacrifice, is that not evil? And when you offer those that are lame or sick, is that not evil? Present that to your governor; will he accept you or show you favor? says the Lord of hosts. And now mentreat the favor of God, that he may be gracious to us. With such a gift from your hand, nwill he show favor to any of you? says the Lord of hosts. 10 oOh that there were one among you who would shut the doors, that you might not kindle fire on my altar in vain! I have no pleasure in you, says the Lord of hosts, pand I will not accept an offering from your hand. 11 For from the rising of the sun to its setting my name qwill be2great among the nations, and in every place incense will be offered to my name, and a pure offering. For my name qwill be great among the nations, says the Lord of hosts. 12 But you profane it when you say that rthe Lord’s table is polluted, and its fruit, that is, its food may be despised. 13 But you say, s‘What a weariness this is,’ and you snort at it, says the Lord of hosts. tYou bring what has been taken by violence or is lame or sick, and this you bring as your offering! Shall I accept that from your hand? says the Lord. 14 Cursed be the cheat who has ua male in his flock, and vvows it, and yet sacrifices to the Lord what is blemished. For wI am a great King, says the Lord of hosts, and my name xwill be feared among the nations. 
gSee Ex. 20:12
hEx. 4:22; Hos. 11:1
i[Luke 6:46]
b[See ver. 2 above]
j[ver. 8; ch. 2:12; 3:3]
b[See ver. 2 above]
k[ver. 12]
l[ver. 13]; See Lev. 22:22
mSee Zech. 7:2
nSee Deut. 10:17
o[Isa. 1:13]
p[Isa. 1:11; Jer. 6:20; Amos 5:21]
q[Isa. 2:2; 56:7; 60:3; 66:19]
2Or is(three times in verse 11; also verse 14)
q[Isa. 2:2; 56:7; 60:3; 66:19]
r[ver. 7]
sIsa. 43:23; [ch. 3:14; Mic. 6:3]
t[ver. 8; Lev. 22:20]
uSee Ex. 12:5
v[Lev. 22:21]
wSee Zech. 14:9
xPs. 47:2; 76:1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1:6–14.

두번째 논쟁(말 1:6-2:9) 이스라엘의 억지로 드리는 제물에 대한 정죄
질문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사랑이다. 
- Second Disputation: Israel’s Begrudging Offerings Condemned.In his second disputation Malachi turns the tables on the complaint treated in the first. What should be questioned is not God’s love for Israel but Israel’s love for God. Malachi recognizes that all the people were guilty of dishonoring God, as revealed in their begrudging offerings (1:14). Nevertheless, he focuses on Israel’s priests (2:1–9) because it is their responsibility to guard the sanctuary from defilement and to inspect all sacrifices so as to exclude, for example, blind, lame, or sick animals (1:8; Lev. 22:17–25; Deut. 15:21; 17:1).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4.

6-14절) 결함있는 희생제물을 통한 언약의 파괴
본문에서 말라기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적절하지 못한 예배를 지적하고 있다. 

6절) 아들이 그 아버지를, 좋이 그 주인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의 아버지이신데 너희들을 나를 공경하고 어디 있는가? 또 내가 너희들의 주인인데 너희들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이에 대해서 제사장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했습니까?”라고 묻는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당신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종의 관계로 설정한다.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아버지와 주안에 대한 존경과 그분의 명예를 인정하고 높여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제사장들은 도리어 그분을 수치스럽게 대한 것이다. 
- 말라기는 포괄적인 의미로 제사장(코헨, kōhē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기능이나 지위(즉 예배에 있어서의 지도자와 교사로서의 이중 역할)에 있어서 제사장과 레위인 사이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4)학개와 스가랴처럼 말라기도 제사장을 왕정 이후에 유다의 ‘민족적인 지도자’로서 포괄적으로 이해했으며 제사장은 그 지역의 시민들을 위하여 꼭 필요한 존재들이었다.5)
4)O’Brien (1990:146–147).
5)Meyers and Meyers (1987:387).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05–406.

이 제사장들의 반응은 놀랍다. 정말 자신들이 행한 잘못을 몰라서 인지 아니면 오만에 가까운 냉소인지? 하지만 이후의 2:3에 등장하는 말라기의 책망을 염두에 둘때 후자에 가깝다. 이름이라는 단어는 두번째 논쟁에서 7번이나 등장하는 중심 주제어이다.(1:6 2번, 11절 3번, 14, 2:2, 5)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십계명에 정면으로 위배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주권과 사랑, 언약의 신실함이 바로 그분의 이름에 걸려 있는 것이기에 그분의 이름이 멸시를 당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범죄인 것이다. 

7절) 제사장들은 더러운 떡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식탁을 아무렇게나 여겨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은 누구보다 희생제물에 대한 규례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다. 하나님게 어떤 제물을 드려야하는지, 어떤 제물을 드리면 그것이 더러운 것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자들이 여호와의 식탁을 경멸한 것이다.(레 22:17-25, 신 15:21)

8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너희가 눈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않은가? 저는 것과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않은가? 그러한 결함있는 제물들을 너희의 총독에게 드려보아라. 그가 너를 기뻐하며 너를 받아주겠느냐?”
(신 15:21, 개정) 『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모세 율법은 분명히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흠이 있는 것은 여호와께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은 금하고 있다. 이러한 흠있는 제물을 드리는 이유는 바로 경제적인 이유이다. 제물을 드리는 백성이 의도적으로 흠있는 제물을 드릴 수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확인하고 관리해야할 책임이 있는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 의도적으로 부정한 희생제물을 드리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돈을 받고 부정한 제물을 희생제물로 드려도 좋다라고 판정하는 제사장들의 행태는 매우 심각하다. 
말라기는 제사장들이 모세 율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희생제물을 받아들일만하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여호와께 올리는 것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합당한 성전 제사를 감독하는 자신들의 책임을 제사장들이 소홀히 하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최근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이스라엘의 왕정이 시작되기 전에 엘리의 부패한 아들들의 이야기(삼상 2:12)에서, 그리고 에스겔에 나타나는 포로 이전(22:26) 및 에스라(9:1; 10:5)와 느헤미야(13:4–9, 22, 29–30)의 포로 후기의 보고에서도 나타난다.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08.
 
9절) 이런 상황에서 너희 제사장들이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한다면 내가 너희의 요구를 듣겠느나?
하나님은 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지금 제사장들은 기계적으로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뒤로는 하나님앞에 흠이 있는 제사를 드리면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를 무효로 만든다. 

10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제단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제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기위해서 도리어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다면 좋겠도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 드리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시면 그들이 드리는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 앞에 오염되고 부정한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성전을 닫고 예배를 그치는 것이 더 낫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예배는 언제나 형식이나 예전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마음의 문제이다.
- shut the temple doors.Better to close the temple and halt the worship of Yahweh than to offer defiled and contemptible sacrifices (see v. 12; cf. Isa 1:10–15; Jer 7:21–26; Amos 5:21–23). True worship of God has always been a matter of the heart, not form or ritual (Isa 29:13; cf. Matt 5:8; 12:30, 33).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5.

제사장들의 임무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배가 오염되고 오용되기에 성전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정하게 드려진 제물은 여호와께서 받지 않으시기에 또한 그러한 예물을 드린다고 할 지라도 드린 자에게 어떤 축복도 임할 수 없기에 무의미하다. 
구약의 희생 제사가 이러하다면 지금 우리의 예배는 어떠한가? 예배 드림이 하나님께 무의미한 행위일 뿐이라면 그 행위를 멈추는 것이 낫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 무의미한 행위를 멈출 것을 제물을 드리는 이들이, 예배자들이 요구해야 한다. 

11절) 만군의 여호와가 “내 이름이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릴 것이다.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제물은 오직 구별된 성전에서만 드려졌다. 그런데 모든 곳에서, 이방인들 중에서도 제물이 드려질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놀라운 메시지이다. 본문에서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가 중요한 표현이다. 이는 큰 축복이 임하는 미래 세대를 나타내는 예언적 언어이다. 이는 열방이 궁극적으로 접붙임을 받게 될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 Surprisingly, Malachi refers to the presentation of incense and pure offerings in many places, even among the nations, rather than exclusively in the temple in Jerusalem as Deuteronomy 12 requires (cf. Mal. 3:3–4; 4:4). A key to this controversial verse is to recognize that from the rising of the sun to its settingis standard predictive language regarding a future age of great blessing (e.g., Ps. 50:1; 113:3). Isaiah 45:6 and 59:19 include with this phrase a reference to the ultimate engrafting of the nations, suggesting that a similar meaning is implied in Malachi. This finds further definition in such texts as Isa. 19:19–25 and 66:1–21, where the nations will be made to be “Levites” and will offer acceptable offerings on approved altars to the true God. For the engrafting of converted Gentiles into Israel, cf. Ruth 1:16–17; Est. 8:17; Psalm 87; Isa. 56:6–8; Zech. 2:11; 8:23.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5.

본문에는 이름을 세번 반복해서 사용한다. 
여호와께서 크시다(5, 11, 14)는 표현은 점층적으로 14절에서 절정을 이룬다. 
11절과 14절에서 이교도의 예배를 언급한다. 

- 분향단에 분향(문자적으로는 ‘연기를 올리다’)하는 것은 제사장이 매일 해야 하는 임무 가운데 하나였다(출 30:1–10). 분향은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자인 제사장에 의하여 중보된 기도를 상징한다(시 141:2; 계 5:8; 8:3–4 참조). 분향은 성경세계에서 종교의식에서 공통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 분향은 종교의식의 일반적인 예물들에 대한 언급과 함께 이방 나라들이 여호와를 예배할 것이라는 말라기의 단언과 어울린다.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14.

12절)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상은 더럽혀 졌다.” 그 상에 드려지는 과일, 먹을 것은 경멸히 여겨도 괜찮다라고 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말 1:12, 새번역) 『그런데 너희는, '주님께 차려 드리는 상쯤은 더러워져도 괜찮아!' 하면서, 너희들도 싫어하는 음식을 제물이라고 그 위에 바치니, 너희는 지금 내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이방 민족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을 위해 분향하고 깨끗한 제물을 드리고 있는데 도리어 구별된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습관적으로 더러운 희생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13절) 하나님께 제물 드리는 것을 번거로와하며 이를 비웃는 이들
제사장들은 그들의 임무를 귀찮아 하고 따분하게 여겼다. 코웃음치는 행동 혹은 그들의 코를 높이 드는 행위는 희생 제물에 대한 오만함과 비웃음의 몸짓이다. 
- sniff at it contemptuously.The priests find their duties irksome and tiresome. The act of sniffing, or turning up their noses, at the sacrificial offerings was a gesture of insolence and derision (cf. 1 Sam 2:17).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5.

- 동사 코웃음치다(힙파템)는 ‘불다, 헐떡이다’를 뜻하며 이 형태로 여기서는 ‘콧방귀 뀌다’이다. 현대 영어 역본들은 이 표현이 오만과 조소의 몸짓을 가리킨다는데 동의한다(‘너는 그것을 비웃는다’ NAB; ‘너는 경멸적으로 나를 향하여 콧방귀를 뀐다’ NJB; ‘너는 나를 경멸한다’ NLT; ‘너는 나에게 콧방귀를 뀐다’ NRSV). 동물 희생제사(1:13b)와 관련된 부패한 관습을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은 자신들의 직임에 대한 의무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제사장들을 향하여 행해진 기소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1:8 참조). 값을 지불하지 않은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지 않겠다는 다윗 왕의 정신(삼하 24:24)은 슬프게도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에게는 없었다.31)
NAB New American Bible, copyright © 1995 by Oxford University Press, Inc. New York
NJB New Jerusalem Bible, copyright © 1985 by Darton, Longman & Todd Ltd and Doubleday, a division of Bantam Doubleday Dell Publishing Group, Inc.
NLT New Living Translation, copyright © 1996[2004, 2007]. Anglicized version, copyright © 2000
NRSV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Anglicized edition, copyright © 1989, 1995 by the Division of Christian Education of the National Council of the Churches of Christ in the USA
31)Merrill (1994:397).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16.
본문의 열등한 동물의 목록은 앞선 8절과 차이점이 등장한다. 여기서 훔친 물건은 폭력으로 빼앗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희생제물로 사용하기 위해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동물에 대한 남의 권리를 빼앗거나 도용한 것을 의미한다. 나단이 다윗의 죄를 지목하면서 부자가 가난한 자의 마지막 양을 빼앗을 것이 떠오른다. 자신에게 이미 충분한 희생 제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드리는 것을 꺼려하고 다른이의 소유를 불법적인 방벅으로 빼앗고 훔친 것은 더욱 악한 행동이다. 

14절)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우주적인 예배는 이 두번째 논쟁뿐만 아니라 구약 선지서의 중심 주제이다. 신약의 마지막도 만국이 하나님의 보좌에 둘러서서 예배하는 것을 마쳐진다. 
- my name is tobe feared among the nations.The universal worship of Yahweh is a central theme of the second disputation as well as the OT prophets generally (cf. Isa 42:4; 49:6; 66:22–23; Hag 2:7, 22; Zech 8:22–23; 14:16–17). The NT concludes with the nations surrounding God’s throne in worship (Rev 7:9).
OT Old Testament
cf. compare, confer
NT New Testament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5.

(말 1:14, 새번역) 『자기 짐승 떼 가운데 좋은 수컷이 있어서, 그것을 바치기로 맹세하고서도, 흠 있는 것으로 바치며 속이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나는 큰 임금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이방 민족들까지도 내 이름을 두려워한다.”』

- 말라기는 열두 소선지서 가운데 저주를 사용한 유일한 선지자이다. 말라기는 신명기를 따라서 저주를 사용했다(신 27:15–26; 렘 48:10 참조). 저주는 맹세를 깬 것과 관련이 있다(특히 결점있는 희생제물을 건강한 것으로 바꿔치기한 것). ‘언약에 근거한 저주는 동물로 서약한 사람만이 아니라 의식을 집전하는 자 곧 드려도 되는 제물을 결정한 결정자에게도 영향을 준다.’34)
34)Petersen (1995:187).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17.

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하시는데 이에 대해서 11절은 이방 민족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나아가 두번째 질문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에 대해서는 14절에서 여호와는 큰 임금이요 그의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될 것임을 선포한다.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지 않는 제사장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되실 것이고 두려워하는 이름이 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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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acle of the word of the Lord to Israel by Malachi.1
The Lord’s Love for Israel
a“I have loved you,” says the Lord. bBut you say, “How have you loved us?” “Is not Esau cJacob’s brother?” declares the Lord. “Yet dI have loved Jacob but Esau I have hated. eI have laid waste his hill country and left his heritage to jackals of the desert.” If Edom says, “We are shattered but we will rebuild the ruins,” the Lord of hosts says, “They may build, but I will tear down, and they will be called ‘the wicked country,’ and ‘the people with whom the Lord is angry forever.’ ” fYour own eyes shall see this, and you shall say, “Great is the Lord beyond the border of Israel!” 
1Malachimeans my messenger
aDeut. 7:8; Jer. 31:3
b[ch. 2:14, 17; 3:7, 8, 13]
c[Amos 1:11; Obad. 10]
dCited Rom. 9:13
eIsa. 34:13; Jer. 49:10, 18; Ezek. 35:3, 4; Joel 3:19
fPs. 91:8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1.

여호와의 사랑을 다시 보증하는 것은 당시 회의론이 한창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었다. 이 회의론은 말라기의 청중들이 이사야, 학개, 스가랴의 이상이(분명히) 실패했다고 해석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말라기의 임무는 포로 후기 유다가 여호와와의 언약 관계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교정하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봉신 혹은 종으로 회복된 공동체는 자신들의 영주 혹은 대군주인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요구를 할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논제의 논쟁은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이전의 역사를 깊이 생각하게 도전한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신실하셨던 것과 언약 순종에 실패할 때 심판하신 것을 깊이 생각하도록 말라기는 도전한다. 말라기가 최근에 일어난 에돔의 사건에 호소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협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복의 원인이 아니라 조건이다. 하나님 자신만이 유일한 원인이시다.1)
첫 번째 예언의 형식은 예언 문학의 재판 언어 유형(trial speech pattern)과 관련된 예언적인 논쟁이다. 논쟁의 말은 말라기를 고소와 맞고소의 형식 속에서 그의 청중과 싸우게 만든다(말라기가 그의 청중들과 실제로 대화를 하는지 혹은 문학 장치로서 가상의 논쟁인지 분명하지 않다). 말라기의 논쟁에 모두 있는 (주인공인 선지자에 의한) 세 부분으로 된 선언공식(the three-part formula of declaration, 1:2a), 부주인공인 예언의 특정한 수신자의 반박(1:2b), 선지자의 반박(1:2c–5)은 쉽게 구별될 수 있다.
1)Collins (1984:214–215)도 같은 의견이다.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391–392.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는 복식 경기와 같다. 
독신으로 살다가 결혼한 사람의 삶의 변화

1절)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여호와의 말씀의 계시라. 

본문에 경고라고 번역된 단어는 ‘맛사’라는 히브리 단어로 예언, 계시, 경고라는 의미이다. 이는 KJV에서는 짐으로, NIV에서는 예언으로,  NLT에서는 메시지로 번역된다. ‘맛사’라는 표현과 여호와의 말씀의 결합은 예언이 드문 시기에 예언의 말씀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그말씀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준다. 

말라기 전체 54절중에 절반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등의 표현으로 강조되고 있다. 24번이나 “만군의 여호와”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이는 여호와께서서 하늘의 천군천사들의 지휘관으로서의 강력한 능력을 상징한다. 아래의 리스트를 보면 구약에 사용된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중에 절반정도가 말라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학개, 스가랴, 말라기처럼 포로기 이후 선지서에서 이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당하고 포로기 이후 광대한 제국안에 작은 무리를 이루고 있던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만군의 주가 되신다는 표현만큼 위로가 되고 강력한 표현은 없었을 것이다. 엘리사와 그의 종이 아람 군대에게 둘러싸여 있을때 엘리사의 기도(왕하 6:17)이나 예수님의 기도(마 26:53)에도 이러한 불말과 불병거, 12군단 더 되는 천사등의 표현을 볼 수 있다.  

- The Lord of Hosts: Frequency and Use in the OT
Why does the title “Lord of hosts” appear more frequently in Malachi than in any other OT book, and in the time of prophetic books more than during other time periods? In the period of Isaiah, the northern kingdom was overrun and destroyed and the southern kingdom almost destroyed by the “hosts” (armies) of Assyria. God’s people had so few troops that the Assyrian King Sennacherib could mockingly challenge King Hezekiah with the offer of a gift of 2,000 horses if Hezekiah could find enough soldiers to ride them (Isa. 36:8). Similarly, in the period of Jeremiah, the southern kingdom was wiped out by the hosts (armies) of Babylon.
In the postexilic period of Malachi, the postage-stamp-sized Judah, as a tiny province within the vast Persian Empire, had no army of its own. It is precisely in such times, when God’s people are painfully aware of how limited their own resources are, that there is no greater comfort than the fact that the Lord has his invincible heavenly armies standing at the ready. It is like the comfort that Elisha prayed for his servant at Dothan when they were surrounded by the Syrian armies: “ ‘O Lord, please open his eyes that he may see.’ So the Lord opened the eyes of the young man, and he saw, and behold, the mountain was full of horses and chariots of fire all around Elisha” (2 Kings 6:17). Perhaps it is like the comfort felt by Jesus before the cross: “Do you think that I cannot appeal to my Father, and he will at once send me more than twelve legions of angels?” (Matt. 26:53).
The following chart shows the percentages of verses in a book containing at least one occurrence of the phrase, “Lord of hosts” (or related variation):
1. Malachi (43.6%)
2. Haggai (31.6%)
3. Zechariah (21.8%)
4. Amos (6.1%)
5. Jeremiah (5.9%)
6. Isaiah (4.7%)
7. Nahum (4.3%)
8. Zephaniah (3.8%)
9. Habakkuk (1.8%)
10. Micah (1.0%)
11. 2 Samuel (0.9%)
12. Psalms (0.7%)
13. 1 Samuel (0.6%)
14. Hosea (0.5%)
15. 1 Kings (0.4%)
16. 1 Chronicles (0.3%)
17. 2 Kings (0.3%)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6.

2-5절) 첫번째 논쟁 : 하나님께서 선인과 교만한 악인을 구별하시는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입증되는 하나님의 선택적 사랑. 말라기는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영적 결핍대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질문하는 동시대인들의 의심을 폭로하고 이에 대해 답변한다.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이스라엘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에서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에게 넘겼다”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싸으리라”하였지만 이에 대해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에돔,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악한 지역이라 또한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부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이스라엘은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도다”라고 할 것이다. 
 
말라기는 바벨론 포로를 경험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언약적 사랑은 여전히 유효함을 선포하고 있는데 이 관계의 핵심을 상호성이다. 

2-3절) 이 본문을 바울이 롬 9:13에서 인용한다. 이 문맥에서 사랑하였고는 애정보다는 선택을, 미워하였으며는 적의보다는 거절을 가리킨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 형제이다. 이삭과 리브가에게서 함께 태어난 이 형제중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이라 하셨고 그를 통해 메시야를 보내신다. 반면 에서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거부를 경험하게 된다. 본문속에서 말라기의 관심은 에서와 야곱이라는 개인보가 에돔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한다라는 고백에서 대해서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라고 반문한다. 그 시대 이스라엘은 누전 586년에 느부갓네살에게 멸망했고 70년동안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한 반면에 에돔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황이었기에 과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것이 맞느냐라는 질문과 의심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본문을 통해서 말라기는 렘 9:11절을 암시한다. 
(렘 9:11, 개정) 『내가 예루살렘을 무더기로 만들며 승냥이 굴이 되게 하겠고 유다의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
말라기는 이 예레미야의 예언은 에돔에게 적용시킴으로 에돔도 유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심판은 주전 550년부터 400년 사이에 나바테아 아랍인들의 활동을 통해서 닥쳤을 가능성이 높다. 나바테아 아랍인들은 에돔족속을 그들의 본포에서 몰아내어 훗날 이두매라고 불리는 한 지역에 재정착하게 했다. 이들은 반-유목인들로 그들의 양 떼를 지나치게 많이 방복함으로 이전 경작가능한 땅을 페허로 만들어 버렸다. 반면에 유다는 심판이후에 은혜로 회복되어 자기 백성에 대한 하니님의 사랑을 반영한 반면 에돔의 심판은 영구적이고 돌이킬 수 없었다. 에돔 족속 개인은 계속 존제하겠지만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은 상실했다. 
-In a classic text, which Paul quotes in Rom. 9:13, Malachi appeals to God’s elective and unconditional love of Jacoband corresponding hatred of Esau. In this context lovedrefers to choice rather than affection, and hatedrefers to rejection rather than animosity (which was explicitly prohibited against Edomites, Esau’s descendants, in Deut. 23:7). For a similar use of these terms, see Prov. 29:24; Luke 14:26; 16:13. Although Jacob and Esau were brothers, Jacob experienced God’s sovereign favor by which he was granted a privileged role in redemptive history as a bearer of the messianic promise, while Esau experienced God’s rejection in terms of this same role. Malachi’s concern, however, is primarily with the nations of Israel and Edom, of which Jacob and Esau were the representatives and progenitors. To Malachi’s contemporaries, it must have seemed that the prophet had committed a terrible blunder by citing the contrasting national fates of Israel and Edom as proof of Israel’s favored status. If God had chosen Jacob/Israel over Esau/Edom, why did he allow his people to suffer the total devastation of their country in 586 b.c. by Nebuchadnezzar and 70 years of Babylonian captivity, while Edom remained intact and seemed only to benefit from Israel’s loss? Malachi makes his point, however, by alluding to Jer. 9:11. Two centuries earlier Jeremiah announced the Lord’s impending judgment against Judah: “I will make Jerusalem a heap of ruins, a lair of jackals, and I will make the cities of Judah a desolation, without inhabitant.” By applying this same threat to Edom, Malachi makes clear that, like Judah, Edom would not escape God’s judgment. It is likely that this judgment came through the agency of Nabatean Arabs, who gradually forced the Edomites from their homeland between 550 and 400 b.c., causing them to resettle in an area later called Idumea. Being semi-nomadic, the Nabateans allowed the cities of Edom to go to ruin while their herds overgrazed and destroyed previously arable land. Whereas Judah was graciously restored after her punishment, reflecting the Lord’s love for his people, Edom’s judgment was to be permanent and irreversible (Mal. 1:4). There would continue to be individual Edomites (implied by 1:4; cf. Mark 3:8), but they had forfeited their national identity.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4.

 5절) 이스라엘은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도다” 하리라. 
눈으로 보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서 매우 중요하다. 물론 눈으로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필요한 것을 사실이지만 지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 대해 의심을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 말라기는 청중들에게 세가지 외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 말라기는 그의 청중들에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언약적 사랑을 보여주는 세 가지 외적인 증거를 제공했다. 첫째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곧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여호와의 선언이다(2절). 두 번째 지지하는 증거는 만일 백성들이 그들 주변에서 펼쳐지는 현재의 사건들을 관찰하기만 한다면 더욱 분명해진 것이었다. 곧 하나님께서 에돔을 멸하셨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사실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에돔이 한 일에 대하여 심판하시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시편 기자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시 137:7 참조). 시편 기자는 역사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기억하는 것은 믿음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효과적인 해독제라는 것을 상기시킨다(시 73:2, 16–17 참조). 세 번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의 증거는 그들 가운데 서 있다. 곧 제2성전이 재건되었다는 것이다(4절 참조).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00.
이처럼 역사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기억하는 것은 의심에 빠진 자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조치임을 상기시킨다. 
이후 바울이 롬 9장에서 인용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신실한 자들을 선택하시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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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제목
말라기라는 히브리 이름의 뜻은 “나의 사자, 메신저” 혹은 ‘말라키아’의 줄임말이라면 “여호와의 사자”라는 의미이다. 혹자들은 말라기가 이름, 고유명사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여러 고대 문헌들의 사용과 14권의 선지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서와 11권의 소선지서)에서 처음 시작하는 구절에 저자의 이름을 소개하는 패턴을 고려한다면 말라기가 이 책의 저자임이 확실하다. 따라서 3:1은 매우 중요한 언어유희를 보여준다. 
이 언어유희는 말라기 자신의 사역이 앞으로 다가오는 사자를 암시하는 것으로 의도되었다. 그는 바로 신약에서 확인된바 세례요한이다.

저작 연대
본문안에서 저작연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이 말라기서가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동시대인으로 5세기 중반쯤으로 본다. 이는 성전의 존재에 대한 언급과 총동에 대한 언급을 통해 뒷받침된다. 또한 말라기가 책망하는 범죄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언급하는 것과 유사하다. 제사장직의 부패, 우상 숭배자들과의 결혼, 약자에 대한 학대와 십일조를 내지 않음등이다. 

목적, 계기와 배경
말라기의 사역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유대인들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할 것을 명한 고레스 칙령(538년) 100년 후에 이루어졌다. 이는 학개와 스가랴가 하나님의 복과 영광스런 귀환의 약속과 함께 성전을 재건할 것을 촉구한지 80년 후의 내용이다. 이러한 예언은 말라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잔인한 조롱처럼 들렸을 것이다. 빛나는 약속과는 대조적으로 경제적 궁핍, 계속되는 가뭄과 흉작, 전염병등이 가혹한 현실이었다. 
포로 귀환이후 그들은 매우 제한적인 거주지에 거했고 페르시아의 개화된 정책을 누렸음에도 외부 세력에 대한 굴종을 느꼈고 주변 이웃들의 끊임없는 반대에 시달렸다. 유다는 더이상 독립국가가 아니었고 다윗 혈통의 통치를 받지 않았다. 
더욱 심한 것은 오실 메시야와 하나님 그분의 영광스러운 임재의 약속에도 불고하고 이스라엘은 영적인 궁핍만을 경험했다. 이전 성경들과는 다르게 포로기 이후의 책인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에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임재의 증거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솔로몬의 성전과 회복된 성전의 예언과는 대조적으로 실제 포로기 이후의 성전은 실제에 있어서나 영적으로 열등했다. 말 3:1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제2성전의 지성소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가시적인  현시가 없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당시는 하나님의 백성은 보이는 것보다는 믿음으로 살아야만 했다. 


문예적 특징들
말라기서는 예언서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구약 예언서의 표준에서 벗어난다. 이 책은 전체가 산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게다가 심판과 구원의 신탁이라는 일반적인 혁식을 취하지 않는다. 지배적인 장르는 바로 풍자이다. 공격의 대상은  선지자 시대에 만연한 다양한 형태의 마음이 나눠지고 태만한 종교적인 예배이다. 부적절한 예물, 제사장들이 장려한 거짓, 만연한 이혼등이다. 풍자는 질문과 대답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내용의 패턴은 하나님께 대한 공격적인 태도와 행동을 축적하는 것이다. 또 다른 패천은 오실 메시야와 그분이 가져오실 복의 묘사를 확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통적인 반복 패턴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의 잘못된 행위를 고발하심, 2) 백성들은 하나님께 그분의 고발이 사실인지를 물음, 3) 하나님께서 그 질문에 대답하심으로 그분의 고발을 확장시키신다. 

- 산문이라는 말로 우리가 의미하려는 것은 말라기의 문학적인 구성이 시적인 담화이면서 독특한 예언 형식에 접근해 가는 산문과 수사학적인 특징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종류의 예언적 말씀은 종종 공식 언어(formulaic language)를 특징으로 한다. 말라기에서 이런 공식적인 표현의 예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예언 말씀 공식(여호와의 말씀, 1:1), 메신저 공식(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1:8, 14; 2:4), 자기 소개 공식(self-introduction formula, 나는 여호와니라, 3:6), 회개를 요청하는 공식(call-to-repentance formula, 내게로 돌아오라, 3:7).
말라기에서 강화 단락(discourse unit)은 심판의 말씀으로 넓게 분류된다. 왜냐하면 그 단락은 청중을 고소하고 기소하고 심판을 선언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말라기의 예언이 갖는 문학 형식은 베스터만(Westermann)이 말한 ‘소송 절차’(legal-procedure 혹은 재판 언어[trial speech])와 ‘논쟁’과 연관되어 있다.229)논쟁의 언어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하나님의 백성과 전투적인 대화 속에서 싸우게 만든다. 전형적으로 말라기에서 논쟁은 다음의 특징을 보인다.
선지자에 의하여 선언된 진상에 대한 주장
청중의 편에서 행해진 질문의 형태를 띤 가정된 반박
최초의 전제를 다시 진술함으로써 선지자가 청중에게 반박
추가로 지지하는 증거를 제출
언약의 소송과 논쟁에서 기대하는 결과는 ‘피고에게 더 이상 논쟁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결정에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다.’230)논쟁은 선지자의 설교에서 대안의 형태로 발전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조금 더 전통적인 선지자의 말씀에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수사학적인 질문과 논쟁의 형식은 후기 유대교 랍비 학교의 특징인 대화적인 설명의 방법론이 일어나도록 했다(마 5:21, 27에 나온 예수의 교수 방법을 참고하라. 너희는…하였다는 것을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229)Westermann (1991:169–176).
230)Petersen (1993:303).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380–381.

개요
말라기는 표제와 결론 사이에 6개의 단락, 논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논쟁은 하나님이나 선지자의 주장으로 시작되고 이어서 “그러나 너희는 이르기를”이라는 패턴의 반론이 이어지고 이에 대해서 하나님이나 선지자가 이에 대한 더 충분한 근거로 반론을 통해 대답한다. 본서는 교차대구법이 사용된다. 

- Outline
The book of Malachi is carefully structured in terms of a heading (1:1), followed by six pericopes or disputations (1:2–5; 1:6–2:9; 2:10–16; 2:17–3:5; 3:6–12; 3:13–4:3) and a conclusion (4:4–6). Each disputation is relatively coherent and is introduced by an assertion from either the Lord or the prophet. This is followed by an anticipated challenge from those being addressed, which is invariably introduced by the expression, “But you say” (1:2, 6, 7, 13; 2:14, 17; 3:7, 8, 13). Each challenge, in turn, is answered with fuller substantiation by the Lord or by the prophet speaking on the Lord’s behalf.
The book also has an unobtrusive concentric (chiasmic) structure. One conspicuous literary indicator of this pattern is the double introductory assertion (“But you say”) and the anticipated response, which are found only in the parallel second (1:6–2:9) and fifth (3:6–12) disputations (the “B” sections below).
Heading(1:1)
A. First disputation: Does God make a distinction between the good and the arrogantly wicked? God’s elective love vindicated in his judgment (1:2–5)
B. Second disputation: Israel’s begrudging offerings condemned (1:6–2:9)
C. Third disputation: Marriage to an idolater—and divorce based on aversion—condemned by the Lord, who is witness to the covenant of marriage (2:10–16)
C′. Fourth disputation: The Lord is a witness against adultery and other moral offenses (2:17–3:5)
B′. Fifth disputation: Israel’s begrudging offerings condemned (3:6–12)
A′. Sixth disputation: Does God make a distinction between the good and the arrogantly wicked? God’s elective love vindicated in his judgment (3:13–4:3)
Conclusion(4:4–6)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3.

말라기는 아래의 사항에 관하여 회개를 요청한다. 
  • 제사장들의 부패
  • 형식적으로 반복되는 예배
  • 널리 퍼져있는 이혼
  • 무시되어지는 사회 정의
  • 경시되고 무시되는 십일조

- 말라기 설교의 요점은 ‘언약’이라는 포괄적인 주제 아래 놓여 질 수 있다. 특히 야곱(즉 족장들; 말 1:2 참조) 언약, 레위 언약(2:5), 결혼 언약(2:14), 모세 언약(4:4).233)언약의 기본적인 사상은 핵심에 있어서 의무와 책임을 수반하는 당사자 간에 관계를 세우는 조약 혹은 계약 관계이다.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 세 책이 바른 관계를 다루는 논쟁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러므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첫 번째 논쟁에서 보여지듯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라는 전제 위에서 하나님의 메신저인 말라기 선지자가 사역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주목해야 한다.
첫째, 말라기는 백성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바른 이해 곧 이스라엘의 아버지, 군주, 그리고 언약을 만드신 분으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으로 되돌아갈 것을 요청한다(1:2–5). 둘째, 말라기는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정직과 성실로 성전 희생제사에 참여함으로써 바른 예배의 실행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한다(1:6–2:9). 이혼을 비난하고 배우자에 대하여 신실할 것을 격려함으로써 결혼에 있어서 바른 관계를 언급한다(2:10–16). 바른 관계는 정직을 증진시키는 행위와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로 널리 확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공평하시기 때문이다(2:17–3:5). 사회 정의의 기초인 정직은 하나님께 바르게 드리는 것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자들에게 은혜와 관대하심으로 반응하시기 때문이다(3:6–12). 셋째, 말라기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대하여 설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대하여 신실하시며 진정한 예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3:13–4:3). 흥미롭게도 말라기에 편만한 하위주제(sub-theme)는 정직이다. 여섯 개의 논쟁 가운데 세 개가 포로 후기 유다의 백성들에게 이 미덕을 행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233)McKenzie and Wallace (1983:549–563).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383–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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