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임무 1) 사회에 끼친 복음주의자들의 영향을 살펴보는 것, 2) 복음주의적인 종교가 환경에 의해서 형성되는 방법들에 대해 연구
‘종교는 하늘에서 내려온 순수한 형태로 존재한 적이 없다. 종교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동시에 주변 환경에 의해서 언제나 영향을 받아왔다.’(에드워드 기본)
역자 서문
이 책은 영국의 복음주의 자체의 변화와 복음주의가 영국사회에 끼친 영향을 연구하는 것과 동시에 영국 대중 문화가 복음주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다.
베빙턴이 정의한 복음주의의 4가지 특징
회심주의(conversionism) :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삶이 바뀌어야 한다.
행동주의(activism) : 복음을 실현하려고 노력
성경주의(biblicism) : 성경의 권위를 강조
십자가 중심주의(cruicentrism) :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를 강조
웨슬리를 중심한 18세기 복음주의자들은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는 중에 회심을 강조하며 복음 전파를 강조했고, 에드워드 어빙을 비롯한 19세기 전반기 복음주의자들은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전천년설과 성경 문자주의등 기독교의 초자연적인 측면을 강조했고 이 낭만주의는 19세기 후반에 케직파 모임을 중심으로 전개된 성결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19세기에는 복음을 실현하려는 행동주의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서는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의 등장으로 성경의 권위가 강조되었다. 20세기의 은사 운동은 초현실주의 예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베빙턴은 분석한다.
제1장 복음의 설교 : 복음주의 신앙의 본질
복음주의의 특징들
베빙턴이 강조하는 우선권의 사각형(회심주의, 행동주의, 성경주의, 십자가 중심주의)
존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죽음을 통한 우리 죄의 용서인 칭의와 회심의의 시기에 우리 타락한 인간 본성의 갱신인 신생을 근본 교리로 강조했다.
회심주의
회심에 대한 요청은 복음의 내용으로 회개해서 죄로부터 돌아서고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회심의 수단과 관련된 정통적인 교훈은 참된 회심은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찰스 피니와 같은 대중 부흥운동의 주도자들은 회심에 있어서 성령의 간섭을 부정하고 ‘자력-회심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활동주의
회심을 경험한 이들은 다른 영혼의 회심을 위하여 노력하고 헌신한다.
복음주의에 속한 이들이 다른 어떤 이들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헌신적으로 섬기고 봉사했다.
여기서의 활동은 목회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성도들을의 섬김을 포함하는데 이는 봉사활동, 전도활동, 심방과 설교, 선교활동으로 이어진다.
“행동이 덕의 생명이고 세상은 행동의 극장이다.”(한나 모어)
성경주의
성경에 대한 그들의 헌신은 모든 영적 진리가 성경 안에서 발견될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의 결과이다.
존 웨슬리는 “나로 한권의 책의 사람이 되게 하라”고 선언했다.
십자가 중심주의
존 웨슬리는 “속죄 교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이 정당하게 이신론과 기독교 사이에 구별점이다.”라고 말했다.
십자가 이외의 어떤 다른 주제를 신학적 체제의 지렛대로 삼는 것은 복음주의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일 것이다.
그리스도는 범죄한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칼빈주의자들을 오직 선민을 위하여 죽으셨다라고 말하고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논쟁속에서 복음주의자들은 구원은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특수하다라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회개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데서 옳았고, 칼빈주의자들은 거룩한 은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서 옳았다.
이 내용은 마틴 로이드 존스가 당시의 복음에 대한 변질과 왜곡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1971년 IFES 컨퍼런스에서 세 차례 강의한 내용이다. 그는 이 강의를 통해서 자신이 염려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복음주의의 참된 본질을 제시하면서 복음주의의 토대를 다시한번 강조한다.
1강 염려하는 이유
(유 1:1-3, 개정)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본문에서 유다는 믿음 전체가 공격 당하고 훼손당하는 상황에서 한가롭게 진리와 교리의 특정부분을 말하는 것이 무익한 일이라고 말하며 믿음의 뿌리로, 근원을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복음주의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이유
과거의 역사 곧 오랜 세월을 걸쳐 내려온 교회의 역사가, 교회의 삶에 고정된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든 제도는 상반된 제도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 루터교-루터교 스콜라주의 / 개혁주의-주지주의 / 시작이 바르다고 해서 그후로도 계속 바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 19세기 고등비평운동(좀과 동록)-변화는 은밀하게, 하지만 치명적으로 진행된다.
기독교의 진리가 영광스러운 이유는 많은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부분이 다른 모든 부분에 속해있기 때문에 주변부의 사소해 보이는 변화라도 그 영향이 곧 중심부까지 파급된다.(23)
잘못된 구분에 따르는 위험
복음주의를 지나치게 좁고 엄격하고 상세하게 정의할때 교회의 분열로 이어진다.
고전 12장에서 그들은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다름때문에 갈라졌다. 설교자에 대한 선호(바울, 아볼로, 게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문제, 영적 은사에 관한 문제 / 분열은 신앙의 중심 교리에는 일치하면서도 구원에 본질적이지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은 문제들로 서로 나눠져 다투는 것이다.
복음주의를 지나치게 넓고 개방적이고 느슨하게 정의하려는 시도
교회일치(에큐메니컬) 운동의 시대 /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대회(가능한 모든 대상들과 협력함, 미묘한 변화가 발생) / 칼 바르트, 말콜 머거리지, C. S. 루이스 이들은 복음주의자가 아니다
은사체험 운동의 위험성
자유주의자들도 교회 일치 운동에 반대하는 한가지 목적에 일치하여 복음주의자와 손을 잡으려고 한다. 나와 같이 적과 싸운다고 해서 상대방이 모두 내편인 것은 아니다.
2강 복음주의자들의 특징
복음을 보존함 : 믿음을 정의하고 그것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역사에서 배움 : 역사를 무시해서도 역사에 노예가 되어서도 안된다.
부정적인 점들을 견지함 : 갈라디아인들은 복음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할례를 덧붙이고 비본질적인 것들을 추가시켰다.
빼지도 말고 더하지도 말아야 : 목회자가 복음적인지 아닌지는 그가 설교시간에 무엇을 전하지 않는가를 보면 된다. 잘못된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문제는 해야할 내용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는 ‘한 권의 책에 속한 사람’이다.
항상 깨어 있는 사람이다.
이성을 신뢰하지 않음. 철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성과 이해를 신뢰하며 철학자는 모든 진리를 포괄하려고 한다. 이성과 학문, 철학을 제 위치에 두라.
이성의 위치 : 이성은 우리가 믿는 내용을 결정해서는 안되고 이성의 할 일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다. 성경에 복종하지 않고 과학과 철학과 그 밖의 다른 학문을 의존할 때 문제가 생긴다.
복음주의자들은 성례에 관해 특별한(낮은) 견해를 취하고 역사와 전승을 비평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복음주의자는 연속성의 원리가 아니라 불연속성의 원리를 믿는다. 복음주의자는 언제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복음주의자는 항상 모든 것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사람이다.
복음주의자는 언제나 교회의 교리에 관심을 둔다.
최상의 관심사들
중생을 대단히 강조 : 기도모임과 거룩한 삶의 방식
부흥에 대한 관심
설교에 우선권
전도에 관심을 갖는 사람
3강. 복음주의의 토대
우리는 과거에 물려받은 신앙고백서와 신조들을 단순히 맹목적으로 채택하고 동의하고 계속해서 변호하는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이 진술들이 우리 시대와 우리 세대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입증해내야 한다.
성경에 관한 교리 : 성경은 최고의 권위일뿐 아니라 유일한 권위이다. 성경의 계시는 전적으로 부여된 것이며 같은 방식으로 영감은 전적으로 성령의 통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성경이 명제적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 성경에 초자연적 요소가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 구약과 신약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의 문자적 진실성과 역사성을 믿어야 한다. 성경 전체를 믿어야 한다.
우리의 입장과 성경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과학적 선언들 위에 세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가? 과학적 선언들은 가변적이고 항상 움직인다.
첫사람의 역사적 타락 사실, 대홍수의 사실성을 강조해야 한다. 마귀와 그에게 속한 영들의 존재를 믿는다. 사람이 영적으로 죽어있고 영적인 선을 행할 능력이 조금도 없다.
속죄의 대속적 측면과 요소, 대리 형벌을 특별히 강조해야 한다.
교리와 성례의 순수성, 권징을 믿어야 한다.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사효성(성례 자체와 그것의 자동적 효능)을 믿지 않는다.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 문제들 때문에 서로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도록 노력해야 한다. 구원에 필수적이지 않는 것들이다. 많이 깨달았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지와 우리의 여러가지 현실적 한계와 죄성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았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선택과 예정 또한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본질적인 범주에 넣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깨달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세례받을 수 있는 연령과 세례를 집례하는 방식을 비본질적인 것들의 범주에 넣었다. 교회 정치의 문제도 비본질적인 것이다. 예언에 대한 해석 문제(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도 비본질적인 것이다. 성화의 방식에 대한 신조들, 성령 세례와 카리스카타(영적 은사)의 문제
이 강의의 목적은 복음을 수호하고 복음주의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영혼 구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기독교 교회가 널리 퍼져 나가게 하려는 것이다.
복음주의적 신앙은 최근에 개발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는 오래된 것, 사도와 모든 경건한 스승이 우리 앞서 가르쳤던 것들을 다시 가르치고 확립하는 것이다.(루터)"
복음주의적 신앙은 기독교의 정통적인 신앙으로부터 이탈한 것이 아니다.
복음주의적 신앙은 근본주의와 동의어가 아니다.
인간의 생각 : 반지성주의-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
성경의 성격 : 문자주의-다양한 방식의 해석 인정
성경의 영감 : 기계적 영감-이중 저작설(유기적 영감)
성경의 해석 : 성경의 본문을 자신들에게 직접 적용 - 본문의 문화적 맥락을 파악하여 재상황화
에큐메니컬 운동 : 교회 연합 운동을 무비판적으로 반대 - 분별력을 발휘
교회 : 분리주의적인 교회론 - 온전한 순결은 이 세상에서 성취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
세상 : 세상으로부터 고립, 분리 - 구별되려고 노력, 세상에 침투
인종 : 인종적 분리주의 - 인종 평등
기독교 선교 : 선교와 전도가 동의어로 교회의 소명은 복음 선포 -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분리시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식
그리스도인의 소망 : 미래에 대해 교조적인 입장 - 재림을 사모하지만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자로 남음
복음주의의 분파와 신조
피터 바이어하우스 교수의 견해
신복음주의자 : 빌리 그래함을 포함한 이들, 최대한 협력
엄격한 근본주의자 : 분리주의적 태도, 타협을 불허
고백파 복음주의자 : 신앙고백과 현대의 교리적 오류를 거부
오순절주의자와 은사주의자
급진적 복음주의자 : 사회-정치적 헌신
에큐메니컬 복음주의자 : 교회 연합 운동에 참여
복음주의 핵심 진리에 대한 집중 연구(제임스 패커와 베빙턴)
제임스 패커(복음주의 영국 국교도의 정체성 문제)
4가지 일반적인 주장 : 복음주의는 실천적인 기독교, 순수한(순전한) 기독교, 연합하는 기독교, 이성적인 기독교
6가지 특수한 확신(복음주의의 근본 진리) : 성경의 최고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장엄하심, 성령의 주되심, 회심의 필요성, 전도의 우선성, 교제의 중요성
데이비드 베빙턴(영국의 복음주의)
주된 특징 : 회심주의(삶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확신), 행동주의(복음을 표현하고자 노력), 성경주의(성경을 특별히 여김), 십자가 중심주의(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을 강조)
존 스토트
스토트는 위의 패커나 베빙턴의 주장속에서 핵심 진리와 주변 진리를 구분한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적 진리(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말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속하시며(십자가),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변화시키심(성령))와 인간의 경험을 구분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고전 15:1-5절을 통해서 복음은 기독론적이다. 성경적이다. 역사적이다. 신학적이다. 사도적이다. 개인적이다.
복음의 기원은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이고 그 내용은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그 효능은 수사학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달려있다. 따라서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며 성령에 의해 확증된다.
하팍스(단번에-칭의, 롬 6:10; 벧전 3:18)와 말론(더욱더-성화, 빌 1:9; 살전 4:1)
1장. 하나님의 계시
계시, 영감, 권위
계시
계시는 이제까지 베일 속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볼 수 있도록 드러내는 객관적인 행동을 묘사한다.(고전 1:19021; 고전 2:7-10)
일반 계시 또는 자연 계시 : 대부분의 인류에게 자연을 통해 주어진 계시(피조물과 양심을 통해, 이세상의 합리성, 짜임새, 아름다움, 옳고 그름, 의무와 실패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통해)
특별 계시 또는 초자연적 계시
점진적 계시(사 28:13; 히 1:1) : 구약의 제사 제도, 삼위일체 교리
인격적 계시(계시와 조명)
영감
영감이란 그분이 자신을 알리신 방법, 즉 적어도 특별계시에서 인간 저자들에게 말씀하신 방법을 말한다.
성경의 이중 저작권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말로서, 인간의 말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딤후 3:16, 2. 성경은 또한 인간의 말이다.(역사적 이야기, 문학적 스타일, 신학적 강조점, 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말이다.
성경은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무릎꿇고 겸손하고 경외하는 태도로 읽어야 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말이기에 비평적으로 읽어야 한다. 성경 비평에는 본문 비평, 역사 비평, 문헌 비평, 편집 비평이 있다.
성경에 대한 경건한 접근
권위
성경은 성령의 영감에 의한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권위를 가진다. 하지만 이 세상은 권위를 거부하고 있다.
로마 카톨릭은 교회의 교권, 전통을 통해 교회를 다스린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의해 조명된 개인의 이성과 양심을 통해서나 또는 교육받은 자들의 일치된 의견을 통해서, 영국 국교회의 답변은 그리스도께서 성경, 전통, 이성의 삽겹줄을 통해서, 복음주의는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통해 그분의 교회를 다스리신다고 말한다.
교회가 역사적으로 성경에 복종해 온 이유는, 그리고 복음주의자들이 계속해서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권위와 성경의 권위는 함께 속해 있다.
제자들의 삼중적인 독특성은 예수님으로부터 그들이 직접 위임을 받은 것과 그분을 직접 목격한 경험과 그들에게 부어주신 성령의 특별한 영감에 있다.
성경에 대한 복음주의의 견해에 속한 세 단어
명료성 : 구원을 위해 우리가 꼭 알고 믿고 지켜야 할 것들은 성경의 여러부분에서 분명히 설명되어 있고 또 열려져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충족성 : 성경이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충족하다.
무오성 :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따라서 온전히 참되고 믿을 만한 것임을 인정한다."
우리는 필사자의 실수와 해석자의 실수에 대해서 신적인 권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직 원문의 권위를 인정한다. 우리는 최초로 주어진 것과 바르게 해석된 것으로서의 성경의 전적인 권위를 인정한다.
2장. 그리스도의 십자가
갈 6:14
헬라어 ‘카우카스타이’는 ~을 자랑하다, 영광으로 삼다라는 의미아다. ‘카우케마’는 우리가 집착하는 대상이다. 바울의 카우케마는 바로 십자가였다.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다.
롬 5:8; 고전 15:3; 갈 1:4; 엡 1:7; 히 10:19-22; 벧전 3:18; 요일 4:10; 계 5:9
성경은 인간이 죄인이라고 단언한다.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한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속량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분의 대속적 형벌이 필요한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궁극적인 계시이며 결정적인 악의 정복이다.
칭의의 다섯가지 측면
칭의의 원천 :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롬 3:24)
칭의의 근거 :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롬 5:9)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
칭의의 영역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갈 2:17)
칭의의 수단 : 믿음으로 밀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롬 3:28; 5:1; 갈 2:16; 빌 3:9)
칭의의 열매 : 칭의는 선행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선행을 향한 것이다.(엡 2:8-10)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으며,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갈 5:6)
칭의와 성화의 다섯가지 근본적인 차이점
칭의는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인 판결이고 성화는 죄인을 의롭게 만드시는 그분의 도덕적 행동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죄인들을 의롭다고 하시고 성령의 중생케 하심과 내주하심을 통해 그들을 성화시키신다.
칭의는 즉각적이다. 하지만 성화는 점진적이다.
칭의는 완전하다. 하지만 성화는 불완전하다.
칭의는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성화는 믿음과 행위로 이루어진다.
일상적인 삶을 통한 제자도
십자가는 용서의 길일 뿐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그는 그에게 와서 죽을 것을 명하신ㄷ.”(본 회퍼, 나를 따르라)
우리의 선교와 메시지
기독교 교회는 선교로 부르심을 받았다. 세상을 위한 우리의 메시지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구원에 있어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이 이룬 것들을 자랑할 것인가 십자가를 자랑할 것인가?
3장. 성령의 사역
복음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계시,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령의 사역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의 여섯 단계
그리스도인의 시작
그리스도인의 시작에 대해 생각할 때 회심이 아니라 중생을 복음주의의 핵심으로 지적해야 한다.
신생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신생은 갑작스러운 것이다. 신생이 반드시 의식적인 경험일 필요는 없다. 신생은 세례와 동일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확신
예수님의 사역은 공간에 제한을 받으셨고 외부적이었다면 성령의 임재는 예수님의 임재를 보편화하셨고 내면화시키셨다.
성령의 내주는 놀라운 특권이다. 이것은 구약에 나타난 성령의 사역과 신악에서의 사역 사이에 가장 주된 차이점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새롭게 경험하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확신하는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리스도인의 거룩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활동의 다섯 단계 : 1) 지성의 측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하신다.(Discern), 2) 의식의 측면에서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게 하신다.(Distinguish), 3) 하나님의 뜻을 향해 불타는 소원을 갖게 하신다.(Disire), 4) 하나님의 듯을 따를 것을 결단하게 하신다.(Determine), 5) 행함이 이루어지게 하신다.(Do)
성령과 그리스도인 공동체
모든 복음주의자들은 가시적인 교회와 비가시적인 교회의 차이를 인정한다. 교회의 순결을 하나님이 정하신 합당한 목표로 여긴다. 우리는 '포용성의 원칙'을 지지하면서 ‘비원칙적인 혼합주의’를 거부한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태(또는 성령이 내주하시는 자는 누구도 성령을) 자신에게만 가두어 둘 수 없다. 성령은 계신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흘러나가신다. 흘러나감이 없다면 그분이 거기 계시지 않은 것이다."
성령 충만한 교회의 필수적인 표지는 그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를 향한 열정적인 전도와 세계 선교를 향한 진지한 헌신이다.
전도와 사회활동의 문제, 전도와 기적의 문제, 전도와 부흥의 문제
그리스도인의 소망
성령의 선물은 상업적(계약금), 농업적(첫 추수), 사회적(전채 요리)와 같다. 성령은 선물인 동시에 약속이 되시고, 최초의 경험인 동시에 미래의 소망이 되신다.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긴장 사이에서 인내와 열심을 가지고 기달려야 한다.
신생은 성령으로 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성령의 내적 증거로 인한 것이며, 거룩은 성령의 열매이고, 교회는 성령의 교제이며, 그리스도인의 선교의 동력은 성령으로부터 나오고,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추리의 최후 상속을 위한 최초의 보증금이 되신 성령의 선물로 인해 불일 듯 일어나는 것을 인정한다.
결론 : 복음주의 신앙의 도전
복음주의적 온전함을 향한 부르심
즉 합당한 삶을 산다는 것은 공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일치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고백하는 것과 우리가 행하는 것 사이에 우리의 말과 우리의 존재적 상태 사이에, 결코 이중성이 있어서는 안 되며 오직 근본적인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복음주의적 안정성을 향한 부르심
안정성의 주된 기초는 거룩한 성경, 복음주의적 진리라는 바위이다.
복음주의적 진리를 향한 부르심
우리는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복음을 변호하고 확증해야 한다.
복음주의적 연합을 향한 부르심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권위에 순복하고자 하는 열정이 동일하게 강렬한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경우, 우리는 성경이 그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명시하지 않는다면 서로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아디아포라에 해당되는 12가지 항목 : 서례, 성만찬, 교회의 정치 기관, 예배, 은사들, 여성도들, 교회 연합운동, 구약의 예언들, 성화, 국가, 선교, 종말론
일차적인 진리들은 특별히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에 정의된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에 관계된 진리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성경의 탁월한 권위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오직 믿음을 통해 오직 은혜로만 가능한 죄인의 칭의, 그리고 성령의 필수불가결한 사역등을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우선적 진리에서의 연합과 이차적인 문제에서의 자유를 사랑안에서 추구한다.. “진리에서는 연합을, 의심스러운 문제에서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경우에 사랑을”(루퍼트 멜데니스)
복음주의적 인내를 향한 부르심
복음을 위해 협력하는 삶속에는 반드시 대적들이 존재한다.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삶가운데 인내가 요구되어진다.
후기 ; 겸손의 탁월함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장 으뜸가는 신조들은 바르게 이해되기만 한다면 필연적으로 겸손으로 향할 수 밖에 없다. 복음주의적 확신들은 하나님의 참된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에 인간의 헛된 영광을 무너뜨리게 되어 있다.
존 스토트는 계시(revelation), 구속(redemption), 중생(regeneration)을 주장하면서 계시는 성부에게, 구속은 성자에게 중생은 성령에게 연관시켰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탁월한 권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효력 그리고 성령의 필수 불가결한 사역을 증거하기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