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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s Good Purposes

15 When Joseph’s brothers saw that their father was dead, they said, “It may be that Joseph will hate us and pay us back for all the evil that we did to him.” 16 So they sent a message to Joseph, saying, “Your father gave this command before he died: 17 ‘Say to Joseph, “Please forgive the transgression of your brothers and their sin, because they did evil to you.” ’ And now, please forgive the transgression of the servants of fthe God of your father.” Joseph wept when they spoke to him. 18 His brothers also came and gfell down before him and said, “Behold, we are your servants.” 19 But Joseph said to them, “Do not fear, for ham I in the place of God? 20 As for you, you meant evil against me, but iGod meant it for good, to bring it about that many people2 should be kept alive, as they are today. 21 So do not fear; jI will provide for you and your little ones.” Thus he comforted them and spoke kindly to them. 

 

The Death of Joseph

22 So Joseph remained in Egypt, he and his father’s house. Joseph lived 110 years. 23 And Joseph saw Ephraim’s children kof the third generation. The lchildren also of Machir the son of Manasseh were mcounted as Joseph’s own.3 24 And Joseph said to his brothers, “I am about to die, but nGod will visit you and bring you up out of this land to the land othat he swore to Abraham, to Isaac, and to Jacob.” 25 Then pJoseph made the sons of Israel swear, saying, “God will surely visit you, and you shall carry up my bones from here.” 26 So Joseph died, being 110 years old. They qembalmed him, and he was put in a coffin in Egypt. 

 

f ch. 49:25

g [ch. 37:7, 10]

h ch. 30:2; [2 Kgs. 5:7]

i ch. 45:5, 7

2 Or a numerous people

j ch. 45:11; 47:12

k [Job 42:16; Ps. 128:6]

l Num. 32:39; 1 Chr. 7:14, 15

m [ch. 30:3]

3 Hebrew were born on Joseph’s knees

n ch. 15:14; 46:4; 48:21; Ex. 3:16, 17; [Heb. 11:22]

o ch. 15:18; 26:3; 28:13; 35:12; 46:4

p Ex. 13:19; Josh. 24:32

q See ver. 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50:15–26.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이 죽다

22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50:15–26.

 

 

15-17절)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에 요셉이 자신들이 행한 악에 대해서 복수할까봐 두려워하여 전령을 보내어 아버지가 죽기 전에 하신 말씀이라면서 말을 전했다. 이는 형들이 요셉 네게 악을 했했을지라도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도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청했다. 이 메시지를 전해들은 요셉은 이 말을 듣고 울었다.

 

요셉의 형들은 어린 요셉을 미워했다. 아버지의 편애, 말도 안되는 꿈으로 자신들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제간에 서로 싸우고 미워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해를 가하는 것, 죽이려고 시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런데 그것을 형제들은 실행했고 이로 인해서 요셉도 자신들을 미워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죄의 문제는 이처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판 일로 인해서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렸고 두려워하였다. 요셉은 하나님의 안목에서 이미 형들을 용서했지만 그들은 아직 용서받지 못했다. 

 

16  Rather than face Joseph directly, the brothers send a message to him. Writing letters and sending messages, rather than facing one’s foe directly, is one way to avoid direct confrontation with one’s adversary. David did this (2 Sam. 11:14, 15), and so did Jezebel (1 K. 21:9) and Jehu (2 K. 10:1, 6). The closest parallel to Joseph’s brothers sending a message to Joseph, rather than going themselves, is to be found with Jacob sending messengers with a message to Esau (Gen. 32:4ff. [Eng. 3ff.]). In both cases the one sending the message (Joseph’s brothers, Jacob) is extremely apprehensive about how the offended brother (Joseph, Esau) will react when at last the two groups meet.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702.

 

요셉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고 그래서 하나님의 원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믿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형제들을 사용하셔서 자신을 이렇게 이끌어 오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형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한 것 같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악을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심을 삶으로 경험한 사람과 그런 체험이 없는 사람의 신앙이 같을 수 없다. 그래서 형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였기에 요셉이 복수를 할까봐 드려워했던 것이다. 

형들의 전갈을 전해 들은 요셉은 울었다. 50장에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서 울었고(1절) 이제 형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요셉의 눈물을 어떤 의미일까? 요셉은 자신의 생애 속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억울함과 괴로움, 처량한 신세로 인한 슬픔과 서러움, 외로움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동생 베냐민과 아버지를 만나서 재회의 기쁨의 눈물도 흘렸다. 그리고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 순간 요셉은 또 한번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자신이 지난 17년간 형제들에게 마음을 다해서 형들을 용서했다라고, 또한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신 것이다라고 말했음에도 형들이 자신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으로 인한 아쉬움과 슬픔의 눈물이었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가족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함으로 인한 외로움이었을 수도 있다. 

 

18-21절) 앞서 메신저를 보냈다면 이제 그의 형들이 직접 요셉을 찾아와 요셉앞에 엎드려 '우리가 당신의 종들입니다'라고 하였다. 말그대로 이전의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37:8 (NKRV)

8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그러자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며 대답한다. 두려워하지 말것을, 또한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음을 말한다. 형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며 자신이 형들과 형들의 자녀들을 기를 것이라고 약속하며 그들을 위로하였다.

 

19절에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용서해달라고 요청하는 형제들에게 요셉은 ‘내가 당신들을 용서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을 용서했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표현은 창세기에서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표현들이다.(15:1; 21:17; 26:24; 46:3) 유일하게 라헬의 산파가 라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고 이것이 두번째 예이다. 

또한 요셉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선악과 사건을 통해서 뱀은 여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창세기 3:5 (NKRV)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네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다라는 말이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라고 유혹했다.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는 이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려고 했다면 이제 창세기의 마지막에서 요셉은 자신은 결코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아담과 하와는 그 선을 넘으려고 했지만 요셉은 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지 그분을 대신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19  In his response Joseph nowhere says: “I forgive you,” as they had requested. He has already forgiven them. The past is water over the dam as far as Joseph is concerned. What he does do is attempt to allay their fears with his Do not be afraid (lit., “fear not”). He does not upbraid them for asking for reconciliation. There is no “ask not,” but rather “fear not.” This expression occurs in Genesis usually in God’s mouth (15:1; 21:17; 26:24; 46:3). Once it is used by Rachel’s midwife to Rachel (35:17). It is the second time the brothers have heard ʾal-tîrāʾû. Much earlier Joseph’s steward had to put them at ease with the same words (43:23).

Joseph follows his words of reassurance with a rhetorical question: God’s surrogate am I? This is the second time this question appears in Genesis. When provoked by his wife to father children for Rachel or else, Jacob responded: haṯaḥaṯ ʾĕlōhîm ʾānōḵî (30:2), exactly as we have in 50:19 (except Joseph uses the pronoun ʾānî). There are two differences between Joseph’s question and Jacob’s, both of which are addressed to family members. One is the interesting difference in the way LXX renders the Hebrew in 30:2 and 50:19. The Greek translation of 30:2 parallels the Hebrew (Mḗ antí theoú egṓ eimi). The Greek translation of 50:19, however, is considerably different. It reads “for I am God’s” (toú gár theoú eimi egṓ). In other words, LXX has Joseph saying to his brothers: “You need have no fear of retribution, for I have God’s view of things, and am therefore above retaliation.”

The second difference is that Jacob qualifies his question: “Am I in God’s place, who has restrained you from having children?” “Am I God,” asks Jacob, “who has power to close and open your womb?” But Joseph leaves his question dangling. It could have been extended to say: “Am I in God’s place to impose retribution? Vengeance is Yahweh’s. He will repay, if necessary” (cf. Deut. 32:35; Rom. 11:19).

While the phrase taḥaṯ ʾĕlōhîm is not explicit in the text, it is implicit in the serpent’s question to Eve. In essence, he tantalizes her with, “Would you like to be in God’s place?” “Would you like to be your own God?” There is a considerable contrast between Adam and Eve and Joseph. Genesis begins by telling us about a primeval couple who tried to become like God, and ends by telling us about a man who denied he was in God’s place.27 Adam and Eve attempted to wipe out the dividing line between humanity and deity. Joseph refuses to try to cross that line. Joseph will only be God’s instrument, never his substitute.28

LXX Septuagint

LXX Septuagint

27 See B. T. Dahlberg, “On recognizing the unity of Genesis,” TD 24 (1976) 363.

28 Lowenthal, Joseph Narrative in Genesis, p. 156.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704–705.

 

이미 요셉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남은 자손들을 보존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먼저 애굽에 보내셨음을 알고 고백했다.(45:7-8)

창세기 45:7–8 (NKRV)

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20절에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심을 강조한다. 이것의 완전한 성취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사람들은 구원자로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완전한 악을 행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들의 악을 온몸으로 받으시고 죽으셨다. 하지만 그 죽음에 굴복하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그 죽음, 악을 깨뜨리시고 그 죽음의 굴레에 매여있는 이들을 해방시키셨다. 완전한 악을 완전한 선으로 갚으신 것이다.  형들이 요셉을 시기히여 그를 죽이려고 하다가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서 오랜기간 고생을 했지만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된다. 그가 총리가 됨으로 말미암아 많은 백성이 구원을 받았다. 여기서 많은 백성은 일차적으로는 야곱의 가족들, 이스라엘을 말한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요셉으로 말미암아 애굽의 모든 백성들과 인근의 많은 민족들이 기근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 큰 그림 속에서, 많은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에 보내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큰 그림의 종국에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메시야가 오시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처럼 악을 선으로 바꾼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다니엘, 에스더, 룻뿐만 아니라 유다의 배신 또한 십자가에 필수적이었다. 요셉의 형제들의 악행이 요셉을 통한 구원에 필수적이었다면 유다의 배신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필수적이었다. 

 

20  Only once before has Joseph explained to his brothers his experiences in a decidely theological, reflective way. In 45:7–8 he testified that it was God who sent him to Egypt ahead of them to preserve a remnant among Jacob’s descendants.

Joseph states that his brothers have done something malicious against me (ašaḇtem ʿālay rāʿá).29 The brothers’ evil intentions and imaginations against Joseph parallel similar evil inner thoughts and plannings among Noah’s contemporaries (weḵol-yēṣer maḥšeḇōṯ libbô raq raʿ, 6:5).

In contrast to the brothers’ evil machinations is the something beneficial God has done for Joseph (ʾĕlōhîm ḥašāḇá leṭōḇá). It may well be that we need to follow Brueggemann’s suggestion and look to the Psalter for the full explication of this verse, rather than to wisdom literature as von Rad has done.30 It is especially in Psalms of lament that one reads frequently of God who defeats and frustrates the plans (maḥšeḇôṯ) of the wicked. Indeed, ḥāšaḇ in the Qal occurs more often in Psalms (11 times) than in any other book except Jeremiah (12 times).

As attractive as it is, Brueggemann’s proposal overlooks one point. The text reads literally, “You planned [or ‘reckoned,’ or ‘did’] against me evil; God planned [or ‘did’] it for good.” That is, the second occurrence of ḥāšaḇ (now with God as the subject) has a pronominal suffix (3rd fem. sing.) attached to it. The antecedent for “it” can only be rāʿá or an implied maḥašāḇá. It appears then, that Joseph states that God took the evil his brothers planned against him and turned it into good.

What is this good? The last part of v. 20 answers that question: the survival of many people. We cannot be certain who is meant by many people (ʿam-rāḇ).31 To be sure, it includes Jacob’s family. The suffering and humiliation inflicted on Joseph by Jacob’s family becomes the means of the salvation of Jacob’s family. One speculates whether many people might also include the citizenry of Egypt.32 They too survived because of Joseph, or, better, because of what Joseph’s God did with and through Joseph. Because of God’s providential turning of sour events into divinely used events in the life of one man, the chosen survive, and the unchosen survive. God sends his blessings on the just and the unjust (Matt. 5:45).

Of von Rad’s famous dictum about v. 20—“Such a bold mixture of divine activity and guilty human deeds was never attempted again by the teachers”—we find the last part most interesting.33 Now, by “teachers” von Rad refers to the teachers of the wisdom schools. However, the theme of a beneficent divine plan at work through calamity and confusion is by no means confined to Gen. 50:20. One thinks of Daniel, Esther, Ruth, and many others who illustrate the same theme.

Perhaps the best parallel to Gen. 50:20 is the case of Judas Iscariot in the NT. He is both evil and important (much as there are others who are good and important). In lifting up his heel against his friend, Judas is marked as the archetypal traitor. He is additionally a figure of sinister importance in the working out of the divine will. Judas is to Jesus what Joseph’s brothers were to Joseph.

29 For other instances of ḥāšaḇ ʿal … rāʿâ cf. Jer. 48:2; Mic. 2:3 (with God as subject!); Hos. 7:15 (Piel, but using the preposition ʾel). Close to ḥāšaḇ rāʿâ is ḥāšaḇ ʾāwen (Ezek. 11:2; Mic. 2:1; Ps. 36:5 [Eng. 4]).

30 See W. Brueggemann, “Genesis L 15–21: A theological exploration,” Congress Volume: Salamanca, 1983, ed. J. A. Emerton, VTSup 36 (Leiden: Brill, 1985), pp. 40–53, esp. pp. 47–49; repr. in Old Testament Theology: Essays on Structure, Theme, and Text, ed. P. D. Miller, Jr. (Minneapolis: Fortress, 1992), pp. 203–18; von Rad, Genesis, pp. 435–39, esp. pp. 438–39. N. Niehoff (“Do Biblical Characters Talk to Themselves? Narrative Modes of Representing Inner Speech in Early Biblical Fiction,” JBL 111 [1992] 579) draws attention to the threefold use of the verb ḥāšaḇ in Genesis when attributed to humans: Laban considering his daughters Rachel and Leah as outsiders (31:15); Judah mistakenly taking Tamar for a harlot (38:15); Joseph’s brothers plotting harm against Joseph (50:20). Niehoff notes that in these three instances the verb does not “describe a conscientious deliberation of an individual but rather refers to one’s illusionary perception of reality.… In all of these cases the narrator subsequently shows how the figures’ own conceptions are wrong and contradict God’s plan for the world.”

fem. feminine

sing. singular

31 Cf. ʾāḏām rāḇ in Job 36:28 for a kindred expression.

32 See H. W. Wolff, “Kerygma of the Yahwist” (tr. W. A. Benware), in W. Brueggemann and Wolff, The Vitality of Old Testament Traditions, 2nd ed. (Atlanta: John Knox, 1982), p. 59.

33 G. von Rad, Wisdom in Israel, tr. J. D. Martin (Nashville: Abingdon, 1972), p. 200.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705–707.

 

50:18–21 Probably encouraged by news of Joseph’s reaction to their message, the brothers also came and fell down before him. Once again, their obeisance and words, Behold, we are your servants, fulfill Joseph’s dreams (37:5–10). Echoing what he had said previously (see 45:5–9), Joseph stresses that God transformed their evil into good and that as a result, many people have been kept alive. This principle that God ultimately overrules human sin for his glory and the ultimate good of mankind is important in Scripture. The crucifixion is the prime example of it (Acts 3:13–26; Rom. 8:28). Joseph’s gracious, forgiving attitude unites the family. Like the lives of Jacob and Esau, Joseph’s life was marred by deadly hatred between brothers. In both cases the story ends with the offended brother’s offering full forgiveness to those who had mistreated him (Gen. 33:4).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6.

 

22-23절) 요셉이 야곱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110세를 살았다. 요셉은 에브라임의 자손 3대를 보았고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다. 마길은 훗날 므낫세 지파중 가장 유력한 족장이 된다. 

요셉은 17살까지 가나안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 이후 93년을 애굽에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를 떠나 보낼 때 요셉의 나이는 56세쯤 이었다, 그는 54년을 더 살고 110세에 죽었다. 당시 애굽 사람들은 가장 이상적인 수명이 110세라고 여겼다. 

창세기에서 이렇게 요셉과 야곱의 죽음을 명시하지만 다른 형제들이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24-26절) 요셉이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형제들에게 자신은 이제 죽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형제들을 돌보실 것이며, 이땅에서 인도하여내셔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들이 이곳에서 나갈 때 자신의 해골을 가지고 갈 것을 맹세시켰다. 이에 요셉이 110세에 죽었고 앞서 야곱에게 향으로 처리한것처럼 요셉의 몸에 향 재료를 넣어 방부 처리하였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다.

24절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내용으로 이는 자손들에게 지속적으로 전해졌고 결국 성취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신실하신 분으로 이 신실함은 그리스도에게서 가장 놀랍게 표현되고 성취된다.(고후 1:20)

50:24 God’s promises stand firm through generations (12:7; 15:13–14). His faithfulness is expressed climactically in Christ (2 Cor. 1:20).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7.

24  Joseph may live to see his great-grandchildren, but he will not live forever. He speaks to his brothers (all of them?). Although he is the second youngest of thirteen children, some of his siblings may outlive him. For all his obedience and faithfulness to God, he does not enjoy longevity beyond that of his brothers.

Joseph’s last words to his family are a testimony: God will surely come to your assistance [lit., “visit,” pāqaḏ],19 and bring you up from this land to the land that he promised on oath to Abraham, to Isaac, to Jacob (i.e., his great-grandfather, grandfather, and father).20 There is not a hint that God will give the land to Joseph’s family because of any merits they have. The land is theirs because of divine grace and promise only. Gen. 50:24 is much like Deut. 6:10, “And when the Lord your God brings you into the land which he swore to your fathers, to Abraham, to Isaac, and to Jacob.…” This kind of verse is more striking in Deuteronomy than it is in Genesis. Deuteronomy, we recall, brims with the teaching that land acquisition is a reward, a blessing for obedience. But is this always the case? Deut. 6:10 suggests there are other explanations—unmitigated grace and promise, for example.

19 On pqd as an act of the favor of Yahweh according to an earlier promise (cf. 21:1), see G. André, Determining the Destiny: PQD in the Old Testament, ConBOT 16 (Lund: Gleerup; Uppsala: Almqvist & Wiksell, 1980), pp. 207–8.

20 Note in this brief pericope (vv. 22–26) Joseph stands in the middle of a seven-generation span: Abraham, Isaac, Jacob, Joseph, Manasseh, Machir, sons of Machir. Joseph is the grandson of a grandfather, and the grandfather of a grandson.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711.

 

야곱은 자신의 매장지를 특정하였지만 요셉은 이를 특정하고 있지는 않는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지키심으로 그들을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돌려 보내실 것을 알았고 그때 자신의 시체를 가지고 갈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후 모세가 출애굽을 하면서 이 명령을 성취한다.

출애굽기 13:19 (NKRV)

19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결국 요셉은 세겜에 장사된다.

여호수아 24:32 (NKRV)

32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50:24–26 With death imminent, Joseph makes arrangements for his bones to be taken to Canaan. Unlike his father Jacob (see 49:29–32), Joseph does not focus on the burial site at Machpelah. Rather, he confidently affirms that God will lead the Israelites out of Egypt to Canaan. When this happens, Joseph wants his bones to be transported there. Later, Moses fulfills this instruction (Ex. 13:19), and Joseph’s remains are eventually buried at Shechem (Josh. 24:32). embalmed. See note on Gen. 50:1–3. Now the first audience of Genesis has the relevant parts of the backstory to the book of Exodus, which relates events much closer to their own time and indeed part of their own experienc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7.

 

이렇게 요셉의 파란만장한 삶이 끝났다. 견디기 힘든 외로움과 슬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원통함과 억울함으로 얼룩졌던 그의 일생이 막을 내렸다. 이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잠히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야곱도, 요셉도 언젠가는 그분이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실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들은 이들이 남긴 말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창세기를 이어 펼쳐지는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마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며 꿈틀거리는 듯한 이스라엘의 구속역사의 다음 장이 된다. 이런 면에서 히브리어 사본으로는 창세기를 마무리하고 있는 마지막 단어가 ‘이집트’(미스라임)이라는 점이 우연이 아닌 듯싶다. 

 

 

 

 

 

THE NEW TESTAMENT APPROPRIATION

a. The Joseph Narrative and Acts 7:9–16

Two sections of Stephen’s lengthy speech in Acts 7 are given over to a discussion of Genesis material: vv. 2–8, Abraham; vv. 9–16, Joseph. Stephen focuses on the first and last generation in Gen. 12–50, omitting completely Isaac, and mentioning Jacob only as a footnote to his son Joseph.

Interestingly, Stephen refers to the brothers of Joseph as “patriarchs.” Because they were jealous of Joseph (zēlóō, and see Gen. 39:11), they sold him into Egypt. Stephen says nothing about the involvement of the Midianites and Ishmaelites, even though 37:28 speaks of the brothers (or the Midianites) selling Joseph to Ishmaelites, and 37:36 speaks of Midianites selling Joseph into Egypt (the exact phrase used in Acts 7:9b). Ignoring the material in Gen. 37, Stephen uses instead Joseph’s statement of Gen. 45:4. It is clear from the outset that Stephen is drawing a line of vivid contrast between Joseph and his patriarchal brothers.

Because God was with Joseph (Acts 7:9c), God delivered Joseph out of all his afflictions (thlípseōn). What Reuben could not do for Joseph, God did for Joseph. Stephen goes on to use words that, although accurate, do not appear in Genesis. Note, for example, Stephen’s assertion that God gave wisdom (sophían) to Joseph before Pharaoh, and that Pharaoh appointed Joseph “ruler” (hēgoúmenon) over Egypt (v. 10).1

In v. 11 Stephen makes the point that “our fathers” (i.e., Joseph’s patriarchal brothers) could find no food or sustenance (chortásmata) when the famine came. He says nothing about the Egyptians’ inability to find food. Furthermore, Stephen refers to this famine as a time of “great tribulation” (thlípsis megálē) for the brothers, the word the writer used two verses earlier for Joseph’s own sufferings. God delivered Joseph from his tribulations (thlípseis, v. 10). How will he deliver the brothers from their tribulation (thlípsis, v. 11)?

Stephen recalls subsequent visits of family members (v. 13), including Jacob (vv. 14–15), to Egypt. But Stephen does not comment on how God (through Joseph) delivered the patriarchs from death; nor is there any reference to the congenial arrangements for settlement in Goshen. He even mentions the death of Joseph’s brothers (v. 15b), something Gen. 50 does not do.

The remark in v. 16 that the bodies of Jacob and his sons (“our fathers”) were brought back to Shechem and placed in the tomb that Abraham had bought from the sons of Hamor at Shechem is of particular interest for two reasons. First, the reference to Jacob and Joseph’s brothers being buried in Shechem does not seem to agree with Gen. 49:29–33 and 50:13, which claim that Jacob was buried in the cave of Machpelah at Hebron, although one might assume that the subject of the verbs of v. 16a refers only to the sons of Jacob, not including Jacob himself. Second, nowhere does the OT refer to Abraham purchasing property at Shechem, but Gen. 33:19 does tell of Jacob purchasing a plot of land at Shechem from the sons of Hamor. Has Stephen confused Shechem with Hebron, and Abraham with Jacob? It is difficult, but not impossible, to harmonize these traditions.2 Could it be that Acts 7:16 reflects the possibility of a Samaritan tradition, especially with the reference to Shechem, which Luke has used in Acts 7:16?3 The weakness with that argument is that elsewhere the Samaritan Pentateuch clearly records the burial of Abraham, Isaac, and Jacob at Hebron. Thus it is unlikely that the replacement of Hebron by Shechem in Acts 7:16 betrays Samaritan influence. We are left then only with the explanation that Stephen has telescoped two purchases of land, one by Abraham in Shechem, one by Jacob in Shechem.4

Throughout the pericope (vv. 9–10) Joseph is in bold contrast with his brothers. Near the end of his speech Stephen accuses his audience with “as your fathers did, so do you” (v. 51). Since “fathers” (in a negative light) are so prominent in Acts 7:9–16 (cf. vv. 11, 12, 14, 15), and elsewhere in the speech, it may be that Stephen means to connect the brothers of Joseph with his murderous audience. They wanted to kill Joseph, and Stephen’s audience wishes to kill Stephen. In a broader sense, Joseph is also a forerunner of Stephen—God is with both, and upon both, and upon both shines the glory of God.5

b. The Joseph Narrative and Heb. 11:21–22

The writer of Hebrews devotes but one verse each to Jacob (v. 21) and to Joseph (v. 22) in his list of heroes of faith in the OT, and both are deathbed scenes. V. 21 goes back to Gen. 47:31 (LXX), and v. 22 goes back to Gen. 50:24–25.

On his deathbed Jacob, by faith, blessed the two sons of Joseph (whom the writer does not name). Joseph on his deathbed made mention of the Exodus of the Israelites, and gave directions concerning his burial.

What Jacob’s faith and Joseph’s faith have in common is their future orientation, the deep conviction that God has a future for his people beyond the circumstances of the present. Jacob’s hands and Joseph’s bones6 will play some part in that future.7

c. The Joseph Narrative and Matt. 12

While Matt. 1–2 does not refer explicitly to the OT Joseph, Matthew appears to make the case that the NT Joseph is reliving the experiences of the OT Joseph. Both Josephs receive revelation in dreams, and both go down to Egypt. Both are involved with a king (Pharaoh, Herod). Both are followed by children who are destined to be saviors and rescuers of the oppressed. Thus the parallel is: OT Joseph-dreams-wicked Pharaoh-infant Moses :: NT Joseph-dreams-wicked Herod-infant Jesus.8

d. The Joseph Narrative and Matt 21:33–46; Mark 12:1–12; Luke 20:9–19

While it is unlikely a conscious appropriation of material from the Joseph story, one cannot help but notice the parallel between the words of the wicked tenant farmers in the parable when they saw the son of the vineyard sent by his father to collect the landlord’s share and the words used by Joseph’s brothers after he has been sent to them by his father. In both instances the larger group say among themselves, “Come! Let us kill him,” deute apokteínōmen autón (Gen. 37:20; Matt. 21:38; Luke 20:14).

1 The problem here is the absence in LXX of Gen. 41:40, 43 to any equivalent to hēgoúmenon. See E. Richard, “The Old Testament in Acts: Wilcox’s Semitisms in Retrospect,” CBQ 42 (1980) 333–34.

2 As does W. H. Mare, “Acts 7: Jewish or Samaritan in Character?” WTJ 34 (1971) 19–20, using strained arguments.

3 C. H. H. Scobie, “The Use of Source Material in the Speeches of Acts III and VII,” NTS 25 (1979) 407–8.

4 F. F. Bruce, Book of the Acts, NICNT, rev. ed. (Grand Rapids: Eerdmans, 1988), p. 137 n. 35; L. Johnson, Acts of the Apostles, Sacra Pagina (Collegeville, MN: Liturgical, 1992), p. 119.

5 See E. Richard, “The Polemical Character of the Joseph Episode in Acts 7,” JBL 98 (1979) 255–67; J. J. Kilgallen, “The Function of Stephen’s Speech (Acts 7, 2–53),” Bib 70 (1989) 181.

LXX Septuagint

6 M. Wilcox, “The Bones of Joseph: Hebrews 11:22,” in Scripture: Meaning and Method: Essays Presented to A. T. Hanson, ed. B. P. Thompson (Hull: Hull University, 1987), pp. 114–30.

7 G. W. Buchanan, To the Hebrews, AB (Garden City, NY: Doubleday, 1972), pp. 196–97; H. W. Attridge, Hebrews,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89), pp. 336–37; F. F. Bruce, Epistle to the Hebrews, rev. ed.,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90), pp. 305–7.

8 R. E. Brown, The Birth of the Messiah (Garden City, NY: Doubleday, 1977), pp. 111–12; idem, A Coming Christ in Advent (Collegeville, MN: Liturgical, 1988), pp. 34–35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71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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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Joseph vfell on his father’s face and wept over him and kissed him. And Joseph commanded his servants the physicians to wembalm his father. So the physicians embalmed Israel. Forty days were required for it, for that is how many are required for embalming. And the Egyptians xwept for him seventy days.

And when the days of weeping for him were past, Joseph spoke to the household of Pharaoh, saying, y“If now I have found favor in your eyes, please speak in the ears of Pharaoh, saying, ‘My father made me swear, saying, “I am about to die: in my tomb zthat I hewed out for myself in the land of Canaan, there shall you bury me.” Now therefore, let me please go up and bury my father. Then I will return.’ ” And Pharaoh answered, “Go up, and bury your father, as he made you swear.” So Joseph went up to bury his father. With him went up all the servants of Pharaoh, the elders of his household, and all the elders of the land of Egypt, as well as all the household of Joseph, his brothers, and his father’s household. Only their children, their flocks, and their herds were left ain the land of Goshen. And there went up with him both chariots and horsemen. It was a very great company. 10 When they came to the threshing floor of Atad, which is beyond the Jordan, bthey lamented there with a very great and grievous lamentation, and he cmade a mourning for his father seven days. 11 When the inhabitants of the land, the Canaanites, saw the mourning on the threshing floor of Atad, they said, “This is a grievous mourning by the Egyptians.” Therefore the place was named Abel-mizraim;1 it is beyond the Jordan. 12 Thus his sons did for him as he had commanded them, 13 for dhis sons carried him to the land of Canaan and buried him in the cave of the field at Machpelah, to the east of Mamre, which Abraham ebought with the field from Ephron the Hittite to possess as a burying place. 14 After he had buried his father, Joseph returned to Egypt with his brothers and all who had gone up with him to bury his father.

v ch. 46:4

w ver. 26; [2 Chr. 16:14; Mark 16:1; Luke 23:56; John 19:39, 40]

x [ver. 10; Num. 20:29; Deut. 34:8; 1 Sam. 31:13; Job 2:13]

y ch. 47:29; See ch. 33:15

z 2 Chr. 16:14; Isa. 22:16; Matt. 27:60

a See ch. 45:10

b [2 Sam. 1:17; Acts 8:2]

c [ver. 3]

1 Abel-mizraim means mourning (or meadow) of Egypt

d ch. 49:29, 30; [Acts 7:16]

e ch. 23:16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50:1–14.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4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5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6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8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9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10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11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2)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2) 애굽인의 곡함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50.

 

 

1-3절) 야곱의 죽음에 요셉이 몸을 굽혀 입맞추고 요셉을 수종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야곱의 몸, 시체를 향으로 처리하게 하였다. 이것이 40일이 걸렸고 애굽 사람들이 야곱(이스라엘)을 위하여 70일간 애곡하였다. 

 

야곱의 시체를 향으로 처리한 것은 애굽의 종교적인 예식으로 그 몸이 부패하지 않도록 미이라로 만드는 것으로 매우 섬세한 작업이었기에 요셉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들에게 이를 진행하도록 요청했다. 야곱의 시체를 그의 유언에 따라 헤브론으로 옮기기 위해서 그의 시체의 부패를 지연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몸을 향으로 처리하는 행위는 사후의 삶을 바라는 종교적인 행위로 귀족들에게 이러한 예식을 치렀다. 이는 제사장들이 하는 것이었는데 요셉은 이를 의원들에게 맡기고 있다. 이는 향으로 처리하는 이 예식이 지닌 종교성과의 거리를 두기 위한 요셉의 조치였다. 

야곱 이외에 성경에 시신을 향으로 처리한 인물은 요셉이 유일하다.(50:26)  또한 70일간 애곡하였다는 것은 애굽의 왕실에서 행해지던 관습으로 당시 요셉이 애굽에서 매우 존경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경우 애곡하는 기간이 보통 7일이었고 길게는 30일(아론의 경우 민 20:29; 모세의 경우, 신 34:8)이었다. 

이 70일은 아마도 향으로 처리하는데 40일, 애곡하는데 30일을 더해서 70일이 된 것으로 보인다. 

디오도루스의 기록에 의하면 애굽의 왕을 애곡하는 기간이 72일 이었다고 한다. 거의 왕에 준하는 기간동안 애굽 전체가 애곡했다는 것은 요셉이 애굽땅에서 가지고 있는 지위를 알 수 있다. 

50:1–3 Joseph arranges for Jacob’s body to be embalmed (v. 2). This was necessary in order to delay the normal process of putrefaction and so enable Jacob’s corpse to be transported to Hebron. Mummification was not practiced by the Hebrews, and so Joseph entrusts the task to Egyptian physicians (v. 2). Since embalming was normally a religious practice involving priests, Joseph may have deliberately chosen to use physicians in order to distinguish his father’s beliefs from those of the Egyptian priests. Apart from Jacob, the only other person in the Bible who was embalmed is Joseph (see v. 26). The seventy days of mourning reflects Egyptian royal practice according to some ancient sources (e.g., Herodotus, History 2.86; but 72 days in Diodorus of Sicily, Histories 1.72), suggesting that Jacob is being shown very high honor; for the Israelites the period of mourning was normally between seven and 30 days. It is unclear, however, whether the two periods mentioned are consecutive or concurrent.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6.

 

2  Joseph gives orders to have his father embalmed, and those to whom this assignment is given are called physicians (hārōp̄eʾîm, lit., “the healers”). The LXX rendered the Hebrew word with hoi entaphiastaí, “those who bury.” However, embalmers are not those who bury a body, but those who prepare a body for burial. There is no evidence that physicians officiated at the embalming, although they may have gained valuable knowledge of physiology and anatomy for their practice of medicine from the embalming practices of the Egyptians. This procedure was mostly a religious observance, and therefore a priestly function. But in view of the frequent use of magical incantations and spells as a part of the praxis of ancient medicine, it is likely that Egyptian physicians served in some kind of a priestly capacity. Embalming was, above all, a religious ritual, and one in which such medical/priestly personnel would be involved.

One of the first acts in the embalming process was cutting a long slit down the side of the abdomen so that certain viscera could be removed. According to the first-century b.c. Roman historian Diodorus (Histories 1.91), the person who made this cut was called “the so-called one who slits” (legómenos paraschiótēs). This was this person’s only responsibility in the embalming process. Is this where Gen. 50:2 gets its designation “physicians”—associating those who make an incision into the body with the art of medicine? That is unlikely; in such a case the writer, if referring to those who make the incision, could easily have used a derivative of any word meaning “cut.”

The Egyptian verb for “embalm” is, as noted above, wt. In the medical literature of Egypt this verb has another meaning. It may be used to describe wrapping the mummy in bandages. The Egyptian medical profession adopted this word as a way of saying “bind up with a bandage” or “wrap with a poultice.” The noun designates a “binder [of wounds].” Applied to Gen. 50:2, it is possible to see that in the sense they were “bandagers,” the morticians who embalmed Jacob could be called physicians.13

LXX Septuagint

13 I have gleaned most of my information on v. 2 from W. A. Ward, “Egyptian Titles in Genesis 39–50,” Bib Sac 114 (1957) 55–59. See also Redford, Study of the Biblical Story of Joseph, pp. 240–41; Vergote, Joseph en Égypte, pp. 197–200; C. R. Youngblood, “The Embalming Process in Ancient Egypt,” Biblical Illustrator 14/2 (1988) 80–83.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91–692.

 

4-6절) 곡하는 기간 70일이 지나고 요셉이 바로에게 말하여 야곱이 자신에게 유언한대로 가나안 땅에 묘실에 장사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 요셉은 직접 본인이 바로에게 나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이를 전달한다. 이는 상주인 그가 주검에 접해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장사후에 자신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이에 바로가 이를 허락한다. 

느 2:6에서는 먼저 왕이 느헤미야에게 성을 건축한 후에 다시 돌아올 것을 요청한다. 요셉이 이렇게 자신이 분명히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허락을 구하는 것은 바로가 그를 얼마나 총애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4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이라는 표현은 앞서 요셉이 47:29에 했던 표현과 일치한다. 느헤미야도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이렇게 표현한다.(느 2:5) 

느헤미야 2:5 (NKRV)

5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Joseph’s if you would do me the kindness (lit., “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eyes”) is the same expression his father used with him on his deathbed, and with which he prefaced a request (47:29). In preparation for my comments on Joseph’s effective use of quotation in v. 5, note that he has shifted Jacob’s ʾim-nāʾ māṣāʾṯî ḥēn (47:29), part of Jacob’s entreaty to Joseph, to his own entreaty to Pharaoh, rather than including it in the quotation.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93.

 

7-9절) 바로의 허락을 받은 요셉은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의 사람들과 함께 야곱을 장사하러 올라갔다.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았고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함께 올라갔다. 

지금 애굽땅을 떠나 가나안을 향하는 야곱의 장례 행렬은 말 그디로 엄청난 규모였다. 수많은 인파들과 이를 호위하는 군대가 대동하여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7–9  Three different groups participate in Jacob’s funeral procession: (1) high-ranking members of Pharaoh’s bureaucracy, v. 7; (2) male survivors of Jacob’s family, v. 8 (what of Leah and his concubines—are they still living?);15 (3) a military escort, v. 9. The largeness of the procession is reinforced by the threefold use of kōl in vv. 7 and 8. The third group is particularly interesting. The chariots (reḵeḇ) and horsemen (pārāšîm), who accompany the deceased Israel to his place of burial as a sign of respect and honor, may be compared with later chariots and horsemen who pursue Israel (the nation) as they leave for Canaan, with the intent of overtaking them (Exod. 14:9, 17, 18, 23, 26, 28).

That the military escort is described as hammaḥaneh kāḇēḏ meʾōḏ, a very large retinue (lit., “camp”), has earlier echoes in the Jacob narrative. While he was still alive, Jacob found himself in the midst of other military camps (cf. 32:3, 8, 9, 11 [Eng. 2, 7, 8, 10]), one a divine camp, the other a camp of his own making. There is also a contrast between this Egyptian retinue that accompanies Jacob, and a later maḥanēh miṣrayim that wishes to capture Jacob’s descendants (Exod. 14:20).

15 See n. 5 above.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96.

 

10-11절)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위하여 7일간 애곡하였다. 그 땅 가나안 백성들이 이 곳의 애통을 보고 이를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다. 이것의 의미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 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번역본에 따라서 요단강 건너편이라고 하기도 하고 요단강 동쪽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타작마당은 일반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다. 왜냐하면 알곡과 가라지를 바람에 의해서 분리해야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곳에 위치한 사람들을 매우 놀랐을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애굽의 군대와 장례 행렬이 와서 7일간 큰 소리로 애곡하는 모습에 그들은 그 땅의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고 하였다. 

10  The procession makes its way from Egypt to Canaan. A number of well-known sites might have been mentioned as falling within the itinerary, but no famous cities are mentioned. The only place at which the funeral march halted was Goren-ha-atad. Here they remained for seven days while Joseph mourned his father’s passing. Seven days was the normal period for mourning (see 1 Sam. 31:13 par. 1 Chr. 10:12; 2 Sam. 11:27; Job 2:13; Jdt. 16:24; Sir. 10:12).16 The thirty days of mourning for Moses (Deut. 34:8) and for Aaron (Num. 20:29) are exceptional. Other texts refer to fasting as part of the mourning ceremony. For example, 2 Sam. 1:12 records a one-day fast by David after the death of Saul and Jonathan, and 1 Sam. 31:13 speaks of a seven-day fast performed by the residents of Jabesh-gilead after the burial of the bones of Saul and his three sons. Perhaps mourning included a number of acts, of which fasting would only be one, and hence the reason for not mentioning it explicitly in v. 10.17 I fail to see any significance in the fact that the entourage’s expression of grief is conveyed by the noun mispēḏ (lament), while Joseph’s own expression of grief is conveyed by ʾēḇel (mourning).18 The camp’s number is “great, very large” (kāḇēḏ, v. 9), as is their lamenting (kāḇēḏ, v. 10). The Canaanites also perceive the grieving to be “great, grievous” (kāḇēḏ, v. 11).

The site Goren-ha-atad is unidentifiable. This is the only place in the OT where it is mentioned. It is described as being beʿēḇer hayyardēn, for which most translations have “beyond the Jordan,” that is, Transjordan or East Jordan. If we retain that translation, then that means that the funeral march did not take the normal route from Egypt to Canaan, but—for some unknown reason—took a detour and traveled around the Dead Sea and up the east side of the Jordan, much as a later march of Jacob’s descendants did under Moses’ leadership. After the seven-day grieving period, the party continued on to Hebron, by either crossing the Jordan or by swinging around the lower tip of the Dead Sea.

16 The seven days of mourning may be compared with the seven days of birth preceding circumcision (17:12), the seven days of marriage (29:27), and the seven days of consecration of the priests (Lev. 8:33), all of which seem to refer to what today would be called rites of passage. See J. Milgrom, Leviticus 1–16, AB (New York: Doubleday, 1991), p. 538.

17 See H. A. Brongers, “Fasting in Israel in Biblical and Post-Biblical Times,” OTS 20 (1977) 4.

18 For ʾēḇel to express a son’s mourning for his father, see Gen. 27:41. For the two words in parallelism cf. Mic. 1:8cd, RSV: “I will make lamentation [mispēḏ] like the jackals, and mourning [weʾēḇel] like the ostriches.”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96–697.

 

12-14절)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야곱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로 삼은 곳이었다(23장).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들과 장례를 위해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과 함께 돌아왔다. 

13–14  The sons carry out their father’s last wish. They bury him in the cave of Machpelah where Jacob’s father, and grandfather, and one of his wives (Leah) are buried. Thus Jacob leaves one part of his family and joins another part of his family. Perhaps the recall of Abraham’s purchase22 of this real estate from Ephron the Hittite (see Gen. 23) is prompted by the use of the word ʾaḥuzzá (“burial site”). For the last seventeen years Jacob has lived on an ʾaḥuzzá in Egypt, courtesy of Pharaoh (47:11). Now Jacob is giving up not only one part of his family for another part of his family, but one ʾaḥuzzá for another ʾaḥuzzá. “Life in the land first becomes possible through a grave; through a grave the group put down roots in the land. The grave is the maternal origin and the final refuge.”23

22 Throughout Gen. 23 the verb nāṯan is used for buying (23:4) and selling (23:11) property, and means “give for money.” Other references (29:10; 49:30; and here in 50:13) use the verb qānâ, “to buy, purchase,” making clear that Abraham acquired his grave site by purchase.

23 H. Gese, Essays on Biblical Theology, tr. K. Crim (Minneapolis: Augsburg, 1981), p. 37.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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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All these are the twelve tribes of Israel. This is what their father said to them as he blessed them, blessing each with the blessing suitable to him. 29 Then he commanded them and said to them, “I am to be ogathered to my people; pbury me with my fathers qin the cave that is in the field of Ephron the Hittite, 30 in the cave that is in the field at Machpelah, to the east of Mamre, in the land of Canaan, rwhich Abraham bought with the field from Ephron the Hittite to possess as a burying place. 31 sThere they buried Abraham and Sarah his wife. There tthey buried Isaac and Rebekah his wife, and there I buried Leah— 32 the field and the cave that is in it were bought from the Hittites.” 33 When Jacob finished commanding his sons, he drew up his feet into the bed and breathed his last and uwas gathered to his people.

o ver. 33; ch. 25:8

p ch. 47:30

q ch. 50:13; [ch. 23:9]

r See ch. 23:16–18

s ch. 23:19; 25:9

t ch. 35:29

u ver. 29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49:28–33.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1)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1) 또는 열조에게로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49:28–33.

 

 

28절) 이 구절은 1-2절에 상응하는 결론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로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한 것이다. 이는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한 것이다. 저자는 축복이라고 말하지만 내용은 분명 축복과 저주의 내용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 축복, 예언의 내용은 상당부분 아들들의 인격과 삶을 반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 그들은 자신의 삶속에서 심은 대로 거두고 있는 것이다. 

본절은 야곱의 세번째 축복이다. 첫번째는 바로(47장)에게 두번째는 요셉의 자녀들(48장)에게 그리고 이제 야곱의 아들들을 향한 축복이다. 

28  This verse summarizes vv. 1–27, and clearly designates what Jacob has said to his sons as blessing. Three times some form of brk is used: wayeḇāreḵ, keḇirḵāṯô, bērēḵ. The narrator’s statement also identifies, in colophon style, the sons of Jacob as the tribes of Israel. The distinguishing traits of the ancestor of the tribe extend into the life-style of the tribe that emanates from him. This is the third in a triad of Jacob’s blessings. First was on Pharaoh (ch. 47), second on Joseph’s children (ch. 48), and last on Jacob’s sons.7

7 On the phenomenon of testamental blessings as a category of person blessing person, see C. W. Mitchell, The Meaning of BRK “To Bless” in the Old Testament, SBLDS 95 (Atlanta: Scholars, 1991), p. 112. See also R. E. Clements, In Spirit and in Truth. Insights from Biblical Prayers (Atlanta: John Knox, 1985), pp. 27–37, who notes the often thin line in the OT between prayer and prophecy.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88.

 

29-33절) 자신의 아들들에게 마지막으로 축복을 한 야곱은 이제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고 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바로 자신을 선조들의 무덤, 즉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해달라는 것이었다.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으로 아브람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로 삼은 것이었다.(23장) 

이 굴에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장사 되어있고 야곱이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다. 특이한 것은 사라를 아브라함의 아내,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라고 표현하면서 레아를 나의 아내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야곱의 마음의 유일한 사랑하는 아내는 라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것은 이 마지막에 야곱은 자신의 시신을 레아와 함께 묻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31절에서는 ‘거기’, 삼마라는 표현이 세번이나 반복되어 사용된다. 야곱은 아직 성취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성취될 하나님의 땅 약속을 믿으며 그 땅에 묻히기를 원해서 ‘거기’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야곱은 지금 그의 침상에서 아들들에게 둘려서 마지막 숨을 거두고 그의 백성, 조상에게로 돌아갔다. 본문의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다라는 표현은 죽음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야곱의 인생은 험악했지만 마지막은 은혜가 넘쳤다. 죽었던 줄만 알았던 요셉의 품에서 또한 모든 아들과 손자들을 축복하고 이제 복된 안식처를 향해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 표현은 아브라함(25:8), 이스마엘(25:17), 이삭(35:29)에 공통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야곱의 죽음을 나타내는 본문에는 직접적으로 ‘죽다’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는다. 이는 강조점이 죽음에 있지 않고 그의 백성,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라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 49:29–33 In his last instruction to his sons, Jacob asks to be buried with his fathers in the cave purchased by Abraham from Ephron the Hittite   p 136  (v. 29). The account of the cave’s purchase is recorded in ch. 23 (see notes). The burials of Abraham (49:30) and Isaac (v. 31) are recounted in 25:8–10 and 35:27–29. While Jacob indicates that Rebekah and Leah were also buried at Machpelah (49:30), this information is not recorded elsewhere in Genesis. was gathered to his people (v. 33). This idiom, commonly used in connection with dying, seems to reflect a belief in being reunited with others in the afterlif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5–136.

 

29–32  Unfortunately, most commentators (e.g., Westermann) isolate their discussion of 49:1–28a from 49:28b–33. Whether or not the two units go back to separate traditions, which is by no means certain, they share a common feature with each other (via contrast), and that is their time orientation. Vv. 1–28 focus primarily on Jacob’s knowledge of the future, on the destiny of the tribes named for his sons. Vv. 29–32 focus on Jacob’s recall of the past. He recalls the names of patriarchs and a matriarch, and even of a Hittite foreigner of two generations ago. He recalls the name of places (the cave at Machpelah), geography (east of Mamre), and business transactions expedited by his grandfather. Jacob is as sharp on his control of family history (vv. 29–32) as he is on his control of family prophecy (vv. 1–28). He is clear both about the distant future of his family and its descendants (vv. 1–28), and his own immediate future (vv. 28–33). In particular, Jacob’s mention of the land of Canaan (v. 30) is significant; by now in the Joseph story this expression has become “the trump-card of the narrator, who uses this card to impress on his readers that Israel really has to settle in the land of Canaan and in no other country.”8

8 N. P. Lemche, The Canaanites and Their Land, JSOTSup 110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1991), p. 112.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88–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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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hen Jacob called his sons and said, “Gather yourselves together, that I may tell you what shall happen to you xin days to come.

“Assemble and listen, O sons of Jacob,

listen to Israel your father.

“Reuben, you are ymy firstborn,

my might, and the zfirstfruits of my strength,

preeminent in dignity and preeminent in power.

Unstable as water, you shall not have preeminence,

because you awent up to your father’s bed;

then you defiled it—he went up to my couch!

b“Simeon and Levi are brothers;

weapons cof violence are their swords.

Let my soul come not into their council;

dO my glory, ebe not joined to their company.

For in their anger they killed men,

and in their willfulness they fhamstrung oxen.

Cursed be their anger, for it is fierce,

and their wrath, for it is cruel!

I will gdivide them in Jacob

and scatter them in Israel.

“Judah, hyour brothers shall praise you;

iyour hand shall be on the neck of your enemies;

jyour father’s sons shall bow down before you.

Judah is ka lion’s cub;

from the prey, my son, you have gone up.

lHe stooped down; he crouched as a lion

and as a lioness; who dares rouse him?

10  The mscepter shall not depart from Judah,

nor the ruler’s staff nfrom between his feet,

until tribute comes to him;1

and to him shall be the obedience of the peoples.

11  Binding his foal to the vine

and his donkey’s colt to the choice vine,

he has washed his garments in wine

and his vesture in the blood of grapes.

12  His oeyes are darker than wine,

and his teeth whiter than milk.

13  p“Zebulun shall dwell at the qshore of the sea;

he shall become a haven for ships,

and his border shall be at Sidon.

14  r“Issachar is a strong donkey,

crouching between the sheepfolds.2

15  He saw that a resting place was good,

and that the land was pleasant,

so he bowed his shoulder to bear,

and sbecame a servant at forced labor.

16  t“Dan shall ujudge his people

as one of the tribes of Israel.

17  Dan vshall be a serpent in the way,

a viper by the path,

that bites the horse’s heels

so that his rider falls backward.

18  I wwait for your salvation, O Lord.

19  x“Raiders shall raid yGad,3

but he shall raid at their heels.

20  z“Asher’s food shall be rich,

and he shall yield royal delicacies.

21  a“Naphtali is a doe let loose

that bears beautiful fawns.4

22  “Joseph is ba fruitful bough,

a fruitful bough by a spring;

his branches run over the wall.5

23  The archers cbitterly attacked him,

shot at him, and harassed him severely,

24  yet dhis bow remained unmoved;

his arms6 were made agile

by the hands of the eMighty One of Jacob

(from there is fthe Shepherd,7 gthe Stone of Israel),

25  hby the God of your father who will help you,

by ithe Almighty8 jwho will bless you

with blessings of heaven above,

blessings of the deep that crouches beneath,

blessings of the breasts and of the womb.

26  The blessings of your father

are mighty beyond the blessings of my parents,

up to the bounties kof the everlasting hills.9

May they be lon the head of Joseph,

and on the brow of him who was set apart from his brothers.

27  m“Benjamin is a ravenous wolf,

in the morning devouring the prey

and at evening ndividing the spoil.”

w For ver. 1–27, see Deut. 33:6–25

x Num. 24:14; Deut. 4:30; 31:29; Isa. 2:2; Jer. 23:20; Dan. 2:28; 10:14; Hos. 3:5

y ch. 29:32

z Deut. 21:17

a ch. 35:22; 1 Chr. 5:1

b ch. 29:33, 34

c ch. 34:25, 26

d [Ps. 16:9; 57:8]

e [Ps. 26:9]

f Josh. 11:6, 9; 2 Sam. 8:4

g See Num. 3:5–13; Josh. 19:1–9; 1 Chr. 4:24–39

h ch. 29:35; [ch. 27:29]

i [Job 16:12]

j 1 Chr. 5:2

k Rev. 5:5; [Deut. 33:22; Hos. 5:14]

l [Num. 23:24; 24:9]

m Num. 24:17; Zech. 10:11

n Deut. 28:57

1 By a slight revocalization; a slight emendation yields (compare Septuagint, Syriac, Targum) until he comes to whom it belongs; Hebrew until Shiloh comes, or until he comes to Shiloh

o Prov. 23:29

p [Deut. 33:18, 19]; Josh. 19:10, 11

q [Deut. 1:7; Josh. 9:1; Judg. 5:17]

r Judg. 5:16; [1 Chr. 12:32]

2 Or between its saddlebags

s Josh. 16:10

t [Deut. 33:22]

u ch. 30:6

v Judg. 18:27

w Ps. 25:5; 119:166, 174; Isa. 25:9; Mic. 7:7; [Luke 2:25]

x [Deut. 33:20]

y See 1 Chr. 5:18–22

3 Gad sounds like the Hebrew for raiders and raid

z [Deut. 33:24]

a [Deut. 33:23]

4 Or he gives beautiful words, or that bears fawns of the fold

b ch. 41:52; Josh. 17:14, 18

5 Or Joseph is a wild donkey, a wild donkey beside a spring, his wild colts beside the wall

c [ch. 37:24, 28; 39:20]

d Job 29:20

6 Hebrew the arms of his hands

e Ps. 132:2, 5; Isa. 1:24

f Ps. 23:1; 80:1

7 Or by the name of the Shepherd

g Isa. 28:16; Eph. 2:20; 1 Pet. 2:4; [Deut. 32:4]

h ch. 35:3; 50:17

i ch. 17:1; 35:11

8 Hebrew Shaddai

j Deut. 33:13

k Deut. 33:15; Hab. 3:6

9 A slight emendation yields (compare Septuagint) the blessings of the eternal mountains, the bounties of the everlasting hills

l Deut. 33:16

m [Judg. 20:21, 25; Ezek. 22:27]

n Zech. 14:1; [Ezek. 39:10]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49:1–27.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49:1–27.

 

야곱은 자신의 12아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축복과 예언을 하는데 아들들이 태어난 순서에 따라 복을 빌어주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순서에 따라 복을 빌어주고 있다. 먼저 레아를 통해 얻은 아들들을 그리고 두 첩 빌하와 실바를 통해 얻은 아들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헬을 통해 얻은 요셉과 베냐민을 축복해주고 있다. 특이한 것은 첩 빌하를 통해 얻은 두 아들 단과 남달리가 실바를 통해 얻은 아들들인 갓과 아셀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았다. 

 

 

1-2절) 요셉과 에브라임, 므낫세를 축복한 다음 야곱은 이제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아들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해준다. 이는 자식들에 대한 야곱의 바램과 후일에 벌어질 일에 대한 예언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야곱의 축복과 예언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로 그들의 당대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고 부정적인 내욛들 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3-4절) 르우벤 :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로서 능력과 기력의 시작으로 특별한 지위를 가졌지만 아버지의 첩, 빌하를 범했기에(35:22-23) 그 지위를 잃어버렸다.

르우벤은 장자로서의 첫 열매요 탁월함을 가졌지만 그의 무모함은 물의 끓음, 불안정한 거친 물, 파도와 같다고 했다. 이러한 거친 무모함이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힘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게 된다. 그는 탁월했지만 탁월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르우벤을 향한 축복은 저주에 가깝다. 르우벤은 가인, 이스마엘, 에서, 엘 등 처럼 죄로인해 장자의 특권을 잃었다. 

 

5-7절) 시므온과 레위 :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의 폭력성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중에서 나뉘어지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창 34장에서 시므온과 레위는 여동생 디나가 세겜 사람들에게 강간을 당한 것에 분노해서 그곳의 사람들을 진멸시켰다. 이러한 분노와 잔혹함으로인해 이스라엘이 곤란에 빠지게 하지 않위해서 이들은 이스라엘 지파중에서 나뉘어지게 된다. 실제로 레위지파는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 지파로서 각 지역으로 나뉘어져서 48성읍에 살게 된다. 시므온 지파는 유다에 속한 지역에 몇몇 성읍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둘은 함께 언급되고 있다. 이 둘은 연합하여 세겜의 히위족을 진멸했다.(35:25) 연합하여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공모하여 잔인한 일을 행한 것이다. 6절에서 야곱은 이들의 죄의 연합에 동조하지 말것을 말한다. 이들은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 힘줄을 끊으면 소가 움직이지 못하며 무용지물이 된다. 화가 난다고 이렇게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8-12절) 유다 : 유다는 여러 긍정적인 축복을 받는다. 형제들이 그를 찬송할 것이고 유다의 손이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며 야곱의 아들들,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너의 앞에 절하게 될 것이다. 야곱의 축복은 주로 요셉과 유다에게 주어지는데 유다는 다른 형제들에게 높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야곱은 유다에게 영원한 왕권, 주권, 번영, 모든 형제를 통치할 권한을 빌어준다. 

특히 유다를 사자 새끼로 비유하고 지휘봉(규, 홀)과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의 발 사이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사자의 용맹함을 또한 규와 지팡이는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유다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권이 이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다. 실제로 다윗과 메시야가 유다지파를 통해서 오게 된다. 사자는 야생 짐승 중 가장 강하고 위엄있는 짐승으로 권위와 힘의 상징이자 왕권의 상징이었다. 

10절에서 '실로가 오시기까지’라는 표현을 ESV에서는 ’tribute comes to him’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그에게 조공, 공물이 올 것이다라는 표현이다. 그런데 개역개정은 실로가 오시기까지로 표현한다. 이는 그 통치자가 실로에 오기까지로 번역할 수 있다. 실로는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의 언약궤가 옮겨진 곳을 말한다. 이는 이스라엘을 지도하던 에브라임 지파를 대신해서 이제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이 모든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는 것을 가리킨다.(시 78:59-72) 또한 장차 통치자가, 메시야가 오셔서 다스리심으로 풍요로와 질 것인데 많은 포도 수확이 있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그림은 다윗 왕가의 풍요로움을 농경의 풍성함으로 묘사하는 것과 일치한다.(시 72:16, 암 9:11-15) 결국 이 예언은 신약에서 메시야의 오심으로 성취된다. 

11절은 풍성함을 비유하는데 겉옷을 포도주로 세탁을 한다는 것은 귀한 포도주가 허드렛물처럼 흔해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Judah receives a long and positive blessing from his father, permeated with statements that highlight positive qualities of leadership. As with the other blessings, Jacob’s remarks project the personal qualities that Judah has already displayed onto his future descendants. Remarkably, while royalty has been associated chiefly with Joseph from ch. 37 onward, Judah is portrayed as being held in high esteem by his brothers—his father’s sons   p 134  shall bow down before him (49:8). More than this, the nations will bring tribute to him, and to one of his descendants shall be the obedience of the peoples (v. 10). In these words Jacob predicts the great empire of David, and the greater kingdom of Christ, the second David. This sets the tone for the chief aspect of messianic expectation in the OT: the way that Abraham’s blessing will come to the Gentiles will be by the ultimate heir of David reigning and incorporating the Gentiles into his benevolent empire. This explains why the installation of Jesus as the Davidic king is so important in the NT, with the implication that the long-awaited time of enlightening the Gentiles has finally arrived (e.g., Matt. 28:18–20; Rom. 1:1–6; 15:12). By way of emphasizing Judah’s potential royal status, he is compared to a lion (Gen. 49:9). In addition, one of his descendants will hold a scepter and ruler’s staff, the symbols of kingship (v. 10). If the phrase until tribute comes to him (v. 10) is taken to mean “until Shiloh comes” (see ESV footnote), then it could be an allusion to the departure of the ark of the covenant from Shiloh in the time of Samuel, when the tribe of Judah, in the person of David, replaced the tribe of Ephraim as Israel’s leading tribe (see Ps. 78:59–72, which summarizes the events recorded in the books of Samuel). Associated with the future Judahite king is a time of prolific grape harvest (Gen. 49:11). The picture presented here accords with later statements that link the Davidic dynasty with agricultural prosperity (e.g., Ps. 72:16; Amos 9:11–15). The royal line of Judah culminates with Jesus Christ (Matt. 1:1–16).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3–134.

 

10  The crux in vv. 8–12 is v. 10, particularly the third line of the verse. The first two lines suggest that Judah will continue to enjoy eminence,26 the tribe will never lose its place of primus inter pares, until he possesses that which belongs to him.

Without emending the Hebrew text in any way, one may read this line as “until Shiloh comes.” But this reading is strange for several reasons. First, it combines a feminine subject (“Shiloh”) with a masculine verb (“comes”). More importantly, what would such an expression mean? As a person, whom would Shiloh represent? Elsewhere in the OT Shiloh is only a place. Why represent an individual by a city, and why represent someone in a message to Judah by a city that falls within the territory of Ephraim?

It is also possible to read the Hebrew phrase as “until he [i.e., Judah] comes to Shiloh.” Taking Shiloh as a representative term for northern Israel, the verse would point to the extension of the Davidic kingdom in Judah to include the northern tribes. In other words, the phrase foretells a great future for David and his kingdom.27 A modification of this interpretation suggests that the verse originally foretold the expansion of Judean tribes over Israel as well. When Solomon’s empire broke up and this expansion became less and less of a possibility, however, some annotator inserted the sarcastic remark, “until a man of Shiloh comes” (ʿaḏ kî-yāḇōʾ ʾîš šîlōh, i.e., inserting ʾîš, which had dropped out through haplography).28 The problem with the first interpretation is that the people of Israel never did become monotribal although they were for a while a united kingdom. The problem with the modification is that it is arbitrary, since it has no textual support. Even if it be granted that the placement of these blessings in the mouth of the patriarch Jacob is entirely fictive, what would be accomplished by this blatant anachronism, by having the patriarch speak of Shiloh, a city that, unlike others nearby such as Bethel and Shechem, had no apparent significance before the conquest?

The early versions were as baffled by the phrase as are modern commentators. For example, the LXX could easily have read “until Shiloh comes.” Instead, it read “until there come the things stored up for him” (héōs án élthē tá apokeímena autṓ). This reading presupposes Heb. šellōh for MT šîlōh, that is, “that which belongs to him” (the relative particle še plus the preposition le plus the pronominal suffix, and the “him” would be a coming scion of Judah). How did the LXX come up with this reading? Did the Alexandrian translators, familiar with the targumic and rabbinic traditions on Gen. 49:10, create a redaction of the Hebrew text so as to produce a messianic sense?29 Or is this an instance where a biblical word was explained according to its meaning in Aramaic or postbiblical Hebrew? That is, at the time of the tranlators, šel was used in places where Biblical Hebrew employed ʾašer le.30

There is no doubt about how the Qumran community understood Gen. 49:10. In 4Q Patriarchal Blessings (4QPBless) the interpretation of Gen. 49:10 reads as follows“A ruler shall not depart from the tribe of Judah while Israel has dominion. There will not be cut off a king [lit., ‘enthroned one,’ ywšb] in it belonging to (the line of) David. For the staff [hmḥqq] is the covenant of the kingship; the thousands of Israel are the feet, until the coming of [ʿd bwʾ] the Messiah of Righteousness, the branch of David, for to him and to his seed has been given the covenant of the kingship over his people for everlasting generations.”31

Both LXX and 4QPBless would agree then that the phrase be understood as “until he comes to whom it [the scepter, the kingship] belongs.” The Hebrew would have to be read as “until that which is his comes.” If that is what Gen. 49:10 is saying, then we are faced with a Hebrew grammatical anomaly for which the Hebrew Bible offers no parallel.

Other scholars have attempted to isolate in šîlōh some word meaning “prince” or “ruler.” This sense is accomplished by appeal to the Akkadian word šēlu, “ruler, counselor,”32 or by emending to mōšelōh, “his (or its) ruler” (cf. mōše in Isa. 52:5 [Ketib], and in Jer. 30:21). This second suggestion assumes that the text is corrupt (a mem has dropped out). So, the colon reads, “until its ruler comes.”33

Yet another viable option is faithful to the consonantal pattern of 49:10: š(y)lh. The cluster may be divided into šy and lh. Reading šy as šay and lh as lōh, the result is “tribute to him.” If yāḇōʾ is revocalized as a Hophal (yûḇāʾ), then the phrase would read, “until tribute is brought to him.” Thus the phrase forecasts the tribute and the subjection of the world to Judah, or to one of Judah’s own.34 šay indicating a gift offered as homage is present in Isa. 18:7; Ps. 68:30 (Eng. 29); 76:12 (Eng. 11).

There are, then, four major approaches to Gen. 49:10c: (1) attempt to make sense of MT by retaining “Shiloh”; (2) follow the reading of the ancient versions (“that which is his”); (3) emend šîlōh to šay lōh (“tribute to him”); (4) discover in “Shiloh” some Semitic word meaning “ruler” or “prince.” Of course, many other interpretations have been suggested, including those who see Judah’s son Shelah in Shiloh, and those who resort to yet other redivisioning of the consonants.35

26 šēḇeṭ and meḥōqēq are interchangeable, parallel words, and do not represent two distinct emblems, at least in the sense that one can attribute a distinct shape or function to each. Both words indicate some kind of staff or rod used by one in authority. For pictures of kings holding such emblems before them see ANEP, no. 379 (Egyptian); nos. 442, 447 (Mesopotamian); no. 461 (North Syrian). Particularly apropos to Gen. 49:10 is the bas-relief of Darius, king of Persia, on his throne with his mace between his feet (ANEP, no. 463). It is possible that Ezekiel’s dirge over the princes of Israel (19:1–14) has Gen. 49:8–12 in mind. In addition to the word šēḇeṭ (vv. 11, 14), Ezek. 19 shares the following words with Gen. 49:8–12: leḇîyāʾ, “lion(ness)” (Ezek. 19:2, evidently a variant of lāḇâʾ, Gen. 49:9); rāḇaṣ, “crouch”; gûr, “cub”; ʿālâ, “raise”; ʾaryēh, “lion”; gep̱en, “vine”; and ṭārap̱ ṭerep̱, “catch prey.” Unlike the lionesque Judah in Gen. 49, the lions of Ezek. 19 are rapacious and cruel. Noting the metamorphosis that the figure of the raging lion underwent in prophetic Scripture, M. Greenberg remarks: “Jacob’s endowment of Judah with royalty evidently hovered in Ezekiel’s consciousness as he composed this dirge over Judah’s rulers” (Ezekiel 1–20, p. 358).

27 See J. Lindblom, “The political background of the Shiloh oracle,” in Congress Volume: Copenhagen, 1953, VTSup 1 (Leiden: Brill, 1953), pp. 78–87, who suggests that the oracle dates to the time when David was king in Hebron. See also J. Becker, Messianic Expectations in the Old Testament, tr. D. E. Green (Philadelphia: Fortress, 1980), pp. 35–36; J. A. Emerton, “Some Difficult Words in Genesis 49,” in Words and Meanings, Fest. D. Winton Thomas, ed. P. R. Ackroyd and B. Lindar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1968), pp. 83–88.

28 See M. Treves, “Shiloh (Genesis 49:10),” JBL 85 (1966) 353–56. Close to Treves’s interpretation is that of L. Sabottka, “Noch einmal Gen. 49, 10,” Bib 51 (1970) 225–29: “His throne will indeed come to Shiloh” (“Sein Thron wird wahrlich kommen nach Silo”). Sabottka’s solution is questionable at two points: his reading of ʿaḏ as “throne” (on the basis of Ugaritic), and his reading of as an emphatic (wahrlich) instead of a conjunction. See B. Margulis, “Emendation and Exegesis: A Reply to L. Sabottka (Bib 51 [1970] 225–229),” Bib 52 (1971) 226–28.

LXX Septuagint

MT Masoretic Text

LXX Septuagint

29 See L. Monsengwo-Pasinya, “Deux textes messianiques de la Septante: Gn 49, 10 et Ez 21, 32,” Bib 61 (1980) 357–76.

30 See E. Tov, The Text-Critical Use of the Septuagint in Biblical Research (Jerusalem: Simor, 1981), pp. 125–26. H. Cazelles (“Shiloh, The Customary Laws and the Return of the Ancient Kings,” in Proclamation and Presence: Old Testament Essays in Honour of Gwynne Henton Davies, ed. J. I. Durham and J. R. Porter [London: SCM, 1970], pp. 248–49) defends the reading of the MT as šellōh (and thus the LXX’s rendering too) by appealing to the orthography of Qumran, which indicates the doubling of a consonant by preceding it with a mater lectionis: hence š-y-l-h = š-l-l-h.

31 Translations of 4QPBless are found in Millar Burrows, More Light on the Dead Sea Scrolls (New York: Viking, 1958), p. 401; J. M. Allegro, “Further Messianic References in Qumran Literature,” JBL 75 (1956) 174–76; G. Vermes, Scripture and Tradition in Judaism (Leiden: Brill, 1961), p. 53 and notes. Cf. D. R. Schwartz, “The Messianic Departure from Judah (4Q Patriarchal Blessings),” TZ 37 (1981) 257–66, who interprets the text as prophesying the exile of the legitimate Davidic monarchic line. The Davidic messiah will depart this exile and establish his kingship.

LXX Septuagint

32 Although not original with him, this suggestion gained popularity when G. R. Driver advanced it in “Some Hebrew Roots and their Meanings,” JTS 23 (1922) 70. For some unexplained reason Driver vocalized the Hebrew text as šayyālōh, and did not follow the vocalization of the Akkadian cognate that he discerned. W. L. Moran (“Gen 49, 10 and Its Use in Ez 21, 32,” Bib 39 [1958] 406ff.) has dismissed this connection, for in his judgment Akk. šēlu/šilu never has the meaning “prince, ruler, king.” Rather, in the vast majority of instances it means “hole,” (cf. W. von Soden, Akkadisches Handwörterbuch, 3 vols. [Wiesbaden: Harrassowitz, 1965–81], 3:1237).

33 Many scholars have advanced similar approaches, e.g., most recently, Westermann, Genesis, 3:219, 231.

34 See Moran, Bib 39 (1958) 405–25. In agreeing with Moran one need not agree with all his reasons for rejecting the reading “Shiloh.” For example, Moran’s suggestion (p. 411) that “Shiloh” cannot be meant in 49:10 because nowhere else in the OT is it spelled šylh is weak, for Shiloh is spelled several different ways in the MT (šilô, šîlô, šilōh) and therefore another variant spelling is hardly suspect.

MT Masoretic Text

35 For the former see n. 24 above; for the latter see B. Margulis, “Gen. XLIX 10/Deut. XXXIII 2–3,” VT 19 (1969) 202–10: ʿāḏēḵā yāḇōʾ bʾlšay li/wt liqehal ʿammîm, “unto thee [Judah] shall come the son-of-Jesse, to become a community of nations.” To reach this reading Margulis must (1) combine ʿaḏ kî into ʿāḏēḵā; (2) restore bʾi because of haplography (ybʾ bʾ); (3) take b as equal to ben, “son of” and (4) understand Jesse’s name to begin with an aleph (a spelling present in 1 Chr. 2:1). Vulg.’s reading qui mittendus est (“the one to be sent”) is championed by H. Kruse, “David’s covenant,” VT 35 (1985) 154–55, who reads šylh as šylḥ (which he connects with šilḥô, “his root, his offspring,” in Cant. 4:13), and thus translates “until the coming of his offspring.” But one cannot so easily dispatch an h from the text by arbitrarily replacing it with a .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58–661.

 

13절) 스블론 : 야곱은 스블론을 잇사갈 보다 먼저 언급하며 해변에 거주할 것이고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 이를 것임을 말한다. 이후의 12지파의 영토를 보면 실제로 스블론이 해변(지중해)와 잇닿아 있지는 않지만 주요 도로가 스블론 지파와 연결되어 있다.(지중해 해변은 스블론 지파의 경계에서 약 16km떨어져 있다) 스블론 지파는 이 도로를 통해서 해변의 항구와 연결되어 수입과 수출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

 

14-15절) 잇사갈 : 야곱은 잇사갈을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라고 표현한다. 이는 잇사갈 자손의 힘을 강조하는 것이다. 

 

16-18절) 단 : 단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에서 시판, 판단을 뜻한다.(30:6) 단지파는 이후 삿 18장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라이스 주민을  학살한다. 이는 단의 뱀과 같이 교활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 지파는 요단강 동편 최 북단에 정착하여 길의 뱀처럼 외롭게 하지만 맹독을 품은 뱀처럼 원수들에게 위협을 가할 것을 예고한다. 

자식들을 축복하던 야곱이 18절에서 잠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한다. 야곱은 주의 구원을 기다린다고 기도한다. 본문의 구원은 히브리어로 ‘예수아’이다. 

 

19절) 갓 : 갓은 용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갓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길르앗 지역을 차지하게 된다. 갓은 종종 모압과 암몬의 침입을 받게 되는데 갓 지파는 숙련된 전사들로 외세의 공격을 물리쳐야 했다. 

 

20절) 아셀 : 아셀의 자손이 미래에 기름진 것을 먹을 것을 비유함으로 번성하게 될 것을 말한다. 

 

21절) 납달리 : 납달리는 앞사슴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낼 것으로 비유한다. 이들은 갈릴리 지역의 북부에 위치하여 번영을 누릴 것이다. 

 

22-26절) 요셉 : 야곱은 요셉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복을 언급한다.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로 그 가지가 담을 넘었고 그의 대적 활쏘는 자가 그를 쏘았지만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의 힘을 의지하여 여전히 요셉의 활은 굳세고 팔에 힘이 있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실 것이며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이는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다. 이는 하늘에서 비가 제 때 내일 것이고 지하수도 풍부하여 그들의 산업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젖이 충분하고 잉태하는 축복을 받을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야곱은 요셉에게 임할 축복이 선조들, 즉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임한 것보다 더 많을 것을 구하고 있다. 

 

22절- 번성하는 가지는 다산과 풍요로움의 상징으로 에브라임의 언어유희이다. 이 가지는 샘 옆에 있어서 충분한 물을 공급받아 담을 넘고 있다. 요셉의 자손들이 영토를 확장시켜갈 것을 말하고 있다. 번성으로 번역된 ‘파라’는 열매를 맺다라는 의미와 나귀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새번역은 아래와 같이 번역하고 있다. 

창세기 49:22 (NKSV)

22요셉은 들망아지, 샘 곁에 있는 들망아지, 언덕 위에 있는 들나귀다.

야곱은 자식들에게 축복을 하면서 모두 짐승들로 비유했기에 본문을 나귀, 망아지로 번역하게 되면 이는 풍요로움보다는 자유를 빌어주는 것이 더욱 타당한다. 이처럼 가지로 번역하면 풍요로움을, 나귀로 번역하면 자유를 의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2  I have chosen to translate the opening phrase in v. 22 as an animal metaphor rather than as a vegetation metaphor. Apart from the linguistic data noted above, my decision is encouraged by two other factors. One is the plethora of animal metaphors found elsewhere in the poem (Judah/lion, v. 9; Issachar/bony ass, v. 14; Dan/serpent, v. 17; Naphtali/hind, v. 21/; Benjamin/wolf, v. 27). The botanical metaphor would be unique. Second, the animal metaphor forms a better bond with the following verse. Archers do not shoot at fruitful branches, but they do take aim at wild animals grazing on hills (“a rocky rim”) and around drinking spots (“spring”). This, then, is Jacob’s designation of Joseph. Joseph, once bēn rāḥēl (son of Rachel, son of a ewe), is now bēn pōrāṯ, son or foal of a wild she-ass.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83–684.

 

23-24절- 야곱은 요셉을 보호하실 하나님을 전능자, 반석, 목자로 부르고 있다. 평생을 목자로 살았던 야곱이 선한 목자, 참 목자이신 하나님이 요셉을 보호해주실 것을 빌고 있는 것이다. 반석은 흔들림 없는 굳건함을 의미한다. 

 

Jacob reserves his longest blessing for Joseph, confirming his special standing among the brothers. The references to God (using a variety of divine titles), along with the emphasis on blessing, give this pronouncement an added dimension. By describing Joseph as fruitful (v. 22), Jacob may be subtly alluding to Ephraim, whose name means “twice fruitful” (see note on 41:50–52). In spite of his brothers’ hostility toward him (49:23), Joseph has survived, sustained by the Mighty One of Jacob (v. 24). Anticipating the future, Jacob prays that Joseph’s descendants will experience blessing upon blessing, blessings that exceed those shown to Abraham and Isaac (vv. 25–26). who was set apart from his brothers (v. 26). Jacob’s final remark may compare Joseph to the Nazirites, the holiest laypeople in Israel (Numbers 6), or it may simply be referring to his leading role among his brothers.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5.

 

27절) 베냐민 :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가 될 것인데 이는 이들이 용감한 전사가 될 것임을 말해준다. 

Using the image of a wolf, Jacob reveals that the descendants of Benjamin will be aggressive warriors (e.g., 1 Chron. 8:40; 12:2).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5.

 

 

야곱의 축복 창 49:1–28에서 야곱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했던 작별의 의미가 담긴 축복의 메시지.

이 본문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이야기에서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전환 장치로 작동한다. 일련의 예언들은 이어지는 이스라엘 족속의 역사에서 실제로 형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Fretheim, “The Book of Genesis,” 656); 예언들은 앞으로 펼쳐질 사건들에 대한 예언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족속의 운명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 (Gibson, Genesis, 312). 이 예언들은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 이루어진 가나안 정복 전쟁 이후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12 지파들의 발전과 성장을 가장 잘 반영한다 (Gibson, Genesis, 312). 야곱의 축복이 보여주는 이 시적인 언어는 내용상 크게 3개의 장르로 구분될 수 있다: 임종 전통, 지파 시 및 고별사(Hartley, Genesis, 355). 이 장르들의 확연히 구분되는 문학적 스타일은 이 시적인 구절들이 서로 다른 배경 속에서 기원했으며 창세기로 편입되기 전에 각기 독립적으로 구전되던 것들이었음을 시사한다 (Hartley, Genesis, 355).

해석

하나님의 뜻을 따른 일종의 천명과도 같은 야곱의 축복은 그의 큰 아들들에 대한 고발로 작동하는데, 그들은 사회적인 힘을 조절하는데 실패했다 (Walton, Genesis, 713). 마찬가지로, 이들 세 아들들 이룬 지파들은 훗날 탁월하지 못하게 된다. 이 축복에서 야곱은 정식으로 장자로서의 르우벤의 지위가 박탈된다 (Janzen, Abraham, 189–90). 르우벤 지파는 겨우 요단강 동편의 작은 영토만을 차지했다 (수 13:23). 시므온과 레위는 동일하게 지파들을 이끌기에는 부적합 판정을 받고, 야곱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흩어져 살도록 했다 (창 34:26). 시므온의 분깃은 원래 유다 지파의 영토 중 일부였으며, 사라지게 될 첫 번째 분배였으며 (수 19:9), 레위인들은 결코 독립적인 영토를 수여받지 못했다 (수 13:33).

야곱은 유다가 열방과 그의 형제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사자 새끼, 홀, 지팡이의 왕적 이미지는 남쪽에서 유다 지파의 미래적 탁월함 뿐만 아니라 유다의 개인적 역사를 모두 반영한다. 이 예언은 또한 다윗 왕권과 미래적 메시아의 때를 바라본다 (49:10–12). 이 구절은 왕정 시대에 삽입되었거나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기에 왕권과 지배권을 획득하려는 유다 지파의 시도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Westermann, Genesis 37–50, 232). 단을 제외하고, 야곱이 선포한 신탁의 순서는 남부에서 북부까지의 가나안 초기 정착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Wenham, Genesis 16–50, 469). 단에 대한 신탁은 그 후손들에게 할당된 분깃을 정복할 능력이 그들에게 없음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삿 18:1). 스불론에 대한 축복은 의문이 남는데, 그 이유는 스불론의 영토가 해변에 위치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바다를 인접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셉은 유산으로 두 배의 분깃을 받았는데, 이는 형 므낫세보다 더 큰 축복을 받는 에브라임을 묘사하는 이전 장과 연결시킨다 (48:5–22). 야곱의 축복에 관한 이 이야기는 후일의 역사적 사건들을 합법화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실제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들은 그 숫자와 영토 면에서 다른 지파들을 능가한다 (Westermann, Genesis 37–50, 191). "에브라임"이 북 이스라엘 왕국의 명칭이 되었기 때문에, 자료 비평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파의 격상된 지위가 사사 시대의 기간 동안 여호수아가 보여준 탁월함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혹은 여로보함 왕과 북 이스라엘 왕국 10 지파들에 대한 그의 통치의 반영이라고 주장한다 (Friedman, Who Wrote the Bible, 65–66). 여로보함의 수도는 또한 야곱이 요셉에게 준 산 비탈인 세겜에 위치해 있었다 (창 48:22; 왕상 12:25). 여호수아나 여로보함은 모두 에브라힘 지파 출신들이다. 벤야민은 "물어 뜯는 이리"이며 이 지파의 전쟁같은 치열함을 반영한다 (삿 20:15–17).

창 49:28의 요약적 진술은 이스라엘의 정착 시기와 가장 잘 부합한다. 이것은 그분의 약속들이 성취될 것을 고대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증거이다 (창 12:1–3; 28:13–15). 이스라엘 열조의 선포으로서의 각 지파들을 향한 신탁들은 그것들을 보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격상된 지위를 부여하고 사사들의 시대와 족장들의 시대 모두를 하나로 묶고 있다 (Westermann, Genesis 37–50, 243).

 Lena M. Schewe, “Blessing of Jacob,” ed. John D. Barry, Lexham 성경사전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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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Israel saw Joseph’s sons, he said, “Who are these?” Joseph said to his father, f“They are my sons, whom God has given me here.” And he said, “Bring them to me, please, that gI may bless them.” 10 Now hthe eyes of Israel were dim with age, so that he could not see. So Joseph brought them near him, iand he kissed them and embraced them. 11 And Israel said to Joseph, j“I never expected to see your face; and behold, God has let me see your offspring also.” 12 Then Joseph removed them from his knees, and he bowed himself with his face to the earth. 13 And Joseph took them both, Ephraim in his right hand toward Israel’s left hand, and Manasseh in his left hand toward Israel’s right hand, and brought them near him. 14 kAnd Israel stretched out his right hand and laid it on the head of Ephraim, who was the younger, and his left hand on the head of Manasseh, lcrossing his hands (for Manasseh was the firstborn). 15 And he blessed Joseph and said,

“The God mbefore whom my fathers Abraham and Isaac walked,

the God who has been my shepherd all my life long to this day,

16  nthe angel who has oredeemed me from all evil, bless the boys;

and in them let pmy name be carried on, and the name of my fathers Abraham and Isaac;

and let them qgrow into a multitude3 in the midst of the earth.”

17 When Joseph saw that his father rlaid his right hand on the head of Ephraim, it displeased him, and he took his father’s hand to move it from Ephraim’s head to Manasseh’s head. 18 And Joseph said to his father, “Not this way, my father; since this one is the firstborn, put your right hand on his head.” 19 But his father refused and said, r“I know, my son, I know. He also shall become a people, and he also shall be great. Nevertheless, shis younger brother shall be greater than he, and his offspring shall become a multitude4 of nations.” 20 So he blessed them that day, saying,

“By you Israel will pronounce blessings, saying,

t‘God make you as Ephraim and as Manasseh.’ ”

Thus he put Ephraim before Manasseh. 21 Then Israel said to Joseph, “Behold, I am about to die, but uGod will be with you and will bring you again to the land of your fathers. 22 Moreover, I have given to vyou rather than to your brothers one mountain slope5 that I took from the hand of the Amorites with my sword and with my bow.”

f [ch. 33:5]

g ch. 49:25, 26; Heb. 11:21; [ch. 27:4]

h [ch. 27:1]

i ch. 27:27

j [ch. 37:33; 45:26]

k ver. 17

l ver. 19

m ch. 17:1; 24:40

n ch. 28:15; 31:11, 13, 24; Ex. 23:20

o Isa. 44:22, 23; 49:7; 63:9; [2 Sam. 4:9; Ps. 34:22; 121:7]

p Amos 9:12; Acts 15:17

q [Num. 26:34, 37]

3 Or let them be like fish for multitude

r ver. 14

r [See ver. 17 above]

s Num. 1:33, 35; 2:19, 21; Deut. 33:17

4 Hebrew fullness

t [Ruth 4:11, 12]

u ch. 46:4; 50:24

v Josh. 24:32; John 4:5

5 Or one portion of the land; Hebrew shekem, which sounds like the town and district called Shechem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48:8–22.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1)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1) 또는 한몫을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48:8–22.

 

 

8-11절) 이스라엘(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들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야곱이 나이가 많아(147세) 시력이 쇠퇴하여 이들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전에 이삭이 눈이 어두워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축복하였었다.(27:1) 이에 요셉은 이들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아들들임을 밝히자 야곱은 손자들을 축복하기를 원하여 나아오게 했고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고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자 야곱에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았다. 야곱은 손자들을 안은 상태에서 요셉을 축복한다. 요셉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손자들 까지 보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다.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보면서 이들이 누구냐라고 물은 것은 육체적으로 시력이 나빠져서 일 수도 있고, 법적인 입양 절차를 시작하면서 이들의 신분과 순서를 확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에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아들들이라고 말하며 입양식을 시작했고 야곱이 그들을 안고 입맞추며 요셉을 축복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 손자들이야말로 야곱에게 있어서, 또한 요셉에게 큰 선물이었다. 야곱은 자신의 생애에 다시금 요셉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또한 지금 자신 앞에 두 손자를 데리고 나아온 것이다. 야곱은 이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야곱은 이 입양식을 위해서 자신의 무릎에 이 두아이를 앉히고 입맞추고 안고 있는데 이는 사랑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에 의하면 ‘내아들들이다’라는 상징성을 지녔다고 한다. 말하자면 야곱이 이 손자들을 아들들로 입양했음을 뜻하는 행동인 것이다. 

 

10  In the later years of his life Jacob has the same problem as did Isaac his father—failing eyesight (27:1). Therefore, Joseph brings his sons right up to Jacob, within arm’s reach, so that he may bless them. Jacob, first the subject of blessing (47:7, 10), then the object of blessing (48:3), is again the subject of blessing. Before Jacob blesses his grandchildren he shows his affections for them by kissing and embracing them. (These two verbs were used in 33:4 when Esau and Jacob were united with each other after a long separation.) Jacob may be losing his eyesight, but he is not losing his emotional attachment to his family.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verbs in 33:4 and 48:10 is their sequence. In 33:4 the sequence is “embraced” (wayeḥabbeqēhû), then an intervening verb, then “kissed” (wayyiššāqēhû). The same sequence for these two verbs occurs in 29:13, when Laban greeted Jacob and embraced and kissed him. 48:10 reverses this sequence. The embrace is a sequel to the kissing, not a prelude, indicating Jacob’s desire to hold his grandsons in his embrace for an extended period.26

26 Both sequences occur in the Ugaritic texts: y[ḥb]q wynšq, “he embraced and kissed (her)” (UT, 1 Aqht [= CTA, 19].63–64, 70–71); bm nšq whr bḥbq ḥmḥmt, “from kissing and conception, from the embrace of pregnancy” (UT, 52 [= CTA, 23].51, 56); bm nšq aṯth bḥhqh ḥmḥmt, “in the kissing of his wife [she’ll conceive], in his embracing became pregnant” (UT, 2 Aqht [= CTA, 17].I.40–41). These Ugaritic passages are cited by Avishur, Stylistic Studies of Word-Pairs, p. 356.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34.

 

12-20절) 입양식이 끝나자 요셉은 아이들을 할아버지 야곱의 무릎에사 나오게 하고는 아버지 야곱에게 엎드려 절했다. 입양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행동이었다. 이어서 요셉은 첫째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손에, 둘째 에브라임을 야곱의 왼손에 오도록 이끌고 세웠다. 그런데 야곱이 자신의 손을 어긋나게 하여 오른손으로 둘째 에브라임을, 왼손으로 첫째 므낫세를 축복하였다. 

야곱은  이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축복했던대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구했다. 이 복은 이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며 합법적인 자식들임을 선언함과 동시에 세상에서 번성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오른손으로 둘째 에브라임을 축복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아서 아버지을 옮기려고 했으나 야곱이 이를 거절한다. 자신도 이를 알고 있는데 이렇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아우가 장자보다 더 큰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이미 이스마엘과 이삭의 관계에서, 에서와 야곱의 관계에서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16절에서 야곱은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본문의 번식되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다가’로 수가 늘어나다. 증가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물로기와 연관되어 사용되는 단어로 성경에서 여기에 단 한번 등장하는 단어이다. 이 야곱의 축복은 실제로 훗날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통해 증명된다.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생활을 시작되는 시점에 이 두 지파의 성인 남자의 수는 72,700명(민 1:32-35)이었는데 끝날때는 85,200명(민 26:28-37)에 달했다. 이와 비교했을때 르우벤과 시므온 지파에 속한 장정들의 숫자는 105,800명에서 65,930명으로 줄었다. 

 

14절에서 야곱은 팔을 어긋나게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다. 이는 그의 눈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영성은 어두워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요셉은 아버지가 눈이 보이지 않기때문에 아버지를 도와 친절하게 오른손에 첫째 므낫세가 오도록, 왼손에 둘때 에브라임이 오도록 위치하고 아버지께서 축복하도록 했지만 지금 야곱은 애써서 팔을 어긋나게 해서 축복을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야곱이 듣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에 순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가인, 이스마엘, 에서, 르우벤의 경우에는 그들의 행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그 축복을 넘기셨다면 본문에서 므낫세가 특별히 그의 장자권을 빼앗길 만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4  To the surprise of everybody, Jacob crosses his hands and places his right hand on the younger boy and his left hand on the older boy. From this action of Jacob comes the eventual precedence of Ephraim over Manasseh. Jacob may be losing his sight, but he is not losing his insight. For some undisclosed reason Jacob ignores the law of primogeniture. Manasseh thus joins a long list of firstborn in Genesis who for one reason or other are passed by—Cain, Ishmael, Esau, Reuben, and Zerah. The text is strangely silent about the stimulus for Jacob’s surprise move. How does he know to cross his hands and bless with the right hand the younger boy? Is he guided by “a supernatural impulse”?30 Does he do a right thing inadvertently?31 In any case, “the blind patriarch shows an insight into the future denied to his clear-sighted (and occasionally clairvoyant) but for once earthbound son.”32

In the case of Ishmael and Isaac, God told Abraham directly that Isaac was to be his “firstborn” (21:12). In the case of Esau and Reuben, they forfeited their firstborn position because of their behavior. Here, however, Manasseh has done nothing to lose his position, and Jacob has received no revelation of Ephraim’s elevation. Perhaps we have here another instance from the Ancient Near East of a (grand)father’s right to disregard the law of primogeniture, and choose his own “firstborn.”33 (If such was practiced in Canaan, it was later prohibited by law—see Deut. 21:15–17.)

The act of hand imposition in this incident is conveyed by the verb šîṯ (vv. 14, 17) and by the verb śîm (v. 18), both of which mean “put, place.” In contrast, throughout priestly literature, wherever there is a laying on of one hand (Lev. 1:4) or of both hands (Lev. 16:21), the verb that is consistently used is sāmaḵ. It is possible that šîṯ/śîm and sāmaḵ are synonyms. But it is also possible that šîṯ/śîm may refer to laying one’s hands on the head of another lightly, while sāmaḵ implies the use of more pressure.34 If this distinction can be maintained, then we have a Jacob who earlier “embraced” Ephraim and Manasseh (i.e., a strong, sustained, physical touch), but who now lightly places his hands on their head in an act of blessing. Through placing his hands on Joseph’s children, Jacob simply engages in an act by which he designates who the recipients of blessing are, and an act by which the actual blessing is bestowed.35

30 So Skinner, Genesis, p. 505; cf. Speiser, Genesis, p. 360.

31 Cf. Brueggemann, Genesis, p. 363.

32 Sternberg, Poetics of Biblical Narrative, p. 353.

33 See I. Mendelsohn, “On the Preferential Status of the Eldest Son,” BASOR 156 (1959) 38–40.

34 The distinction is made by J. Milgrom, Leviticus 1–16, AB (New York: Doubleday, 1991), pp. 150–51, on the basis of a few passages in the OT where śāmaḵ (yaḏ) means “to lean on/against” (Judg. 16:29; Amos 5:19), i.e., exert pressure, and on postbiblical Jewish traditions. For a contrary view, see D. P. Wright, “Hands, Laying on of,” ABD, 3:47–48.

35 See C. W. Mitchell, The Meaning of BRK “To Bless” in the Old Testament, SBLDS 95 (Atlanta: Scholars, 1987), p. 84.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36–637.

 

15-16절을 보면 야곱은 두 아들에게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의 복을 빌어주었다. 나를 기르신 하나님은 영어로 ’the God who has been my shephard’라는 표현으로 주의 백성들을 목자가 양을 돌보듯 돌보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평생을 목자로 살았던 야곱이 하나님께서 이들의 참 목자가 되어주시기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라는 표현은 ’the angel who has redeemed me from all evil’이라고 표현되어있다. 이는 천사들이 자신을 모든 환난, 악으로부터 구원할 구원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백성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구원자,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역사하셨던 천사들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이 손자들에게도 있기를 빌어주고 있는 것이다. 

 

본문의 목자는 ‘로에’, 천사는 ‘말락’, 건지다, 구원하다는 ‘고엘’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창세기에서 천사는 여러번 등장한다. 광야의 하갈에게,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든 아브라함에게, 다른 나라로 주인의 명을 받아 떠난 종에게,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를 만났다. 

Jacob does not continue his testimony with “and the God before whom I walked.” Rather, when he comes to this autobiographical section he shifts the emphasis from himself and anything he has done to God and what he has done for Jacob. If Abraham and Isaac walked before God, God has walked before Jacob. When describing his fathers’ behavior before God, Jacob uses a verb form that conveys completed action (hiṯhalleḵû), which is what one expects. But when Jacob describes God’s behavior toward Jacob, he uses participles, which express continuous action, either in present time or in past time, and here are an equivalent to a relative clause. God has shepherded (rōʿeh) him, and delivered (gōʾēl)36 him. From Rebekah’s womb to his deathbed in Egypt, Jacob testifies that God has been there with him, leading him, liberating him.

In one breath Jacob refers to God (v. 15b) and in the next breath to The angel (v. 16a). In the Genesis narratives an angel, or heavenly messenger, appears at moments fraught with danger and turmoil—Hagar alone in a desert (16:7–11); Hagar with a near-dead son in the desert (21:17); Abraham holding a knife over Isaac (22:11–18); a servant making a long journey to another country (24:7, 40); Jacob preparing to leave his father-in-law (31:11); Jacob alone by a river, running from Laban and frightened by the prospects of meeting Esau (32:25–31 [Eng. 24–30]). No wonder then that Jacob would here speak of the angel who delivers him from every distress (mikkol-rāʿ).37

36 This is the only occurrence of the root gʾl in Genesis. As one would expect, it is used frequently in the Psalter in laments and songs of thanksgiving, but much more frequently in collective psalms than in individual ones. Gen. 48:16 is a rare instance of this verb used by an individual about himself. See N. P. Lemche, Early Israel, VTSup 37 (Leiden: Brill, 1985), pp. 344–48.

37 Some commentators have drawn a parallel between Jacob’s threefold invocation of deity (“God … God … angel”) with the prayer of Aaron: “May Yahweh bless … May Yahweh make … May Yahweh lift up” (Num. 6:24–26). See Westermann, Genesis, 3:189. The correspondence shows “the link between patriarchal tradition and the liturgy of Israel.”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37–638.

 

21-22절)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복을 빌어준 야곱은 이제 요셉에게 자신이 이제 죽겠지만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심으로 너희를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요셉에게 세겜 땅을 줄 것을 약속한다. 

본문의 세겜 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고유명사로소의 세겜 인지 아니면 한 몫, 어깨라는 의미인지 말이다. 

 

- 야곱은 마지막으로 요셉에게 무언가를 주겠다고 하는데 (22절), 그가 무엇을 주겠다고 하는지가 정확하지 않다. 이 구절을 형성하고 있는 히브리어 텍스트가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야곱이 요셉에게 주겠다는 ‘세캠’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이 단어는 도시 세캠을 뭇히는 고유명사 해석될 수 있고, 어깨를 뭇히는 일반 명사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말 번역본틀 중에는 개역개정과 새번역과 공동번역이 고유명사 세캠으로 번역했다. 반면에 개역성경은 야곱이 요셉에게 형제들보다 ‘일부분[한 몫]’ 더주었다고 번역했다. 주요 영어 번역본들은 모두 ‘어깨/몫’으로 번역했다-(NlV;NAS; NRS ; TNK). 이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최소한 세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Waltke) 

(1) 야곱이 형제들보다 더 우위인 요셉에게 세캠과 딸린 모든 샘을 주고 있다; 

(2) 야곱이 요셉에게 약속의 ‘땅의 어깨/등성(산악지대)을 주고 있다; 

(3) 야곱이 요셉에게 다른 형제보다 한 몫을 더 주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들 가장 유력한 것은 세캠을 고유명사로 취급하는 첫 번째 해석이다. 이 해석이 가장 자연스러우며, 세캠은 야곱과 요셉에게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cf. Mathews).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의 만행으로 인해 세캠에서 야밤에 도주해야 했고, 훗날 요셉의 뼈는 이곳에 묻히게 된다'(cf 24:32)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는 야곱이 형제들보다 더 우위인 요셉에게 세캠을 주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셉은 이 약속이 먼 훗날 그의 후손들에게서 실현될 것을 기대하고 믿을 뿐 현실적인 중요성은 별로 없었다. 우리는 아주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확실하게 붙잡기 전까지는 결코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Calvin).

야곱은 세캠을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라고 한다(22b). 그러나 이때까지 창세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야곱은 이곳을 쳐서 정복한 적이 없다. 야곱이 하몰의 아들들로부터 이곳에 땅을 산 적은 있었다(33 : 19). 그러므로 이 말은 그가 시므온과 레위의 만행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그의 아들들의 칼과 창으로 그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을 이렇게 표현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Waltke). (엑스포지멘터리 805)

 

22  To conclude, Jacob gives to Joseph a piece of property (šeḵem) above and beyond what he is giving to his other sons. Part of the enigma of this verse is the qualifying phrase which I captured from the Amorites with my sword and bow. It was equally a conundrum for the targumists. Thus Targ. Jonathan reads, “which I took from the hands of the Amorites when you entered it [i.e., Shechem], and I stood by and helped you with my sword and with my bow.” Targ. Neofiti I is most interesting: “and I took it from the hands of my brother Esau neither with my sword nor with my bow, but rather with my merits and my good deeds.”21 The targumists were well aware of the fact that Jacob had looked with disgust on his sons’ raid on Shechem (34:30; 49:5–7). How then could this passage be read as attributing bellicosity to Jacob in seizing šeḵem? We do know of military adventures by Abraham (ch. 14), but none by Jacob.

Historians have tried to recover the incident to which this verse refers. For example, de Vaux points to Abimelech’s conquest of Shechem as the only conquest of Shechem by Israelites mentioned in the OT (Judg. 9). He sees the verse as a legitimation for Abimelech’s action.22 Gottwald sees in 48:22 a reference to an original Josephite seizure of land around Shechem. By contrast, Gen. 34 describes an earlier ʿapiru or proto-Israelite contact with Shechem.23 It is very unlikely that Gen. 48:22 is to be connected with 33:19 (cf. Josh. 24:32) which tells us about some property in Shechem Jacob bought from the locals for one hundred pieces of money.24 It is impossible to be certain about the event to which the last half of this verse refers. It has not been recorded in Genesis. In the light of the fact that the OT has no other record of a conquest of Shechem, and that Joshua supervised a covenant renewal service there (Josh. 24) but never had to conquer it, Gen. 48:22 may be a crystallized reference to a pre-Mosaic conquest of Shechem.25

In a chapter given over to a narration of the preferential status of of Ephraim over his brothers, the concluding note is one about Joseph’s preferential status over his brothers. Joseph is to his eleven brothers as Ephraim is to Manasseh. Although the family is miles away from Canaan, Jacob deeds a bit of it to Joseph. Jacob started a lot of problems by an extra gift to Joseph—the multicolored coat, which created friction. For a second time Jacob gives to Joseph an extra gift: one mountain slope.26 We know how the brothers reacted to the coat. We do not know how they reacted to the gift of real estate.

Targ. Targum

Targ. Targum

21 See M. Klein, “Converse Translation: A Targumic Technique,” Bib 57 (1976) 525–27. M. Aberbach and B. Grossfeld (Targum Onkelos to Genesis [New York: Ktav, 1982], pp. 278–79) note that some versions of Targ. Onqelos read the last phrase as “by my prayer and my supplication” by connecting beqaštî, “my bow,” with the verb bāqaš (to seek, request [in prayer from God]). The authors also note that “during the Talmudic age purely military exploits, which had signally failed to overcome Roman domination of Palestine, were discredited, and even the glorious victories of the Hasmoneans are virtually ignored in the Talmud” (p. 279).

22 De Vaux, Early History of Israel, pp. 637–38.

23 Gottwald, Tribes of Yahweh, pp. 541–42, 551–52.

24 Noth (History of Pentateuchal Traditions, pp. 83–85) believes that 48:22 and 33:19 do refer to the same piece of land. While in the present context the story in 48:22 takes place in Egypt, according to Noth this context is wholly artificial. In the “original” story Jacob died in Canaan surrounded by his descendants, and the setting is probably Shechem.

25 See G. E. Wright, Shechem: The Biography of a Biblical City (New York: McGraw-Hill, 1965), pp. 131–32; Sarna, Genesis, p. 330; R. G. Boling and G. E. Wright, Joshua, AB (Garden City, NY: Doubleday, 1982), p. 252. There are other explanations. For example, Lowenthal (Joseph Narrative, p. 143) cites the medieval Jewish commentator Abrabanel and his view that Jacob is here speaking sarcastically, esp. in reference to his sons. Jacob’s own “sword and bow,” by contrast, were ways of peace. It has also been suggested that the claim in 48:22 is purely fictional, concocted in circles that reacted against the idea of purchasing property from Canaanites (Gen. 33:19ff.). Josh. 24:12 (“it was not by our sword or bow”) would be a theological reaction against the militaristic and self-congratulatory statement of Gen. 48:22 and a harmonization with Gen. 33:19ff. Cf. E. Nielsen, Shechem: A Traditio-Historical Investigation (Copenhagen: Gad, 1959), pp. 283–86. Nielsen also suggests, but not too strongly, that lāqaḥ mîyaḏ means “to receive from one’s hand, to buy,” elsewhere (2 K. 5:20; Prov. 31:16), and if one understands the preposition be to mean “in exchange for, in return for,” a possible reading would be “which I have received from the hand of the Amorite by placing in return my military capacity at his control.”

26 It is possible to connect Jacob’s gift to Joseph with § 165 in Hammurapi’s Code, which speaks of a gift that a father makes to ablišu, “his heir,” as a sign of his special favor. While the translation in ANET, p. 173, identifies the heir as the firstborn, G. R. Driver (The Babylonian Laws, 2 vols. [Oxford: Clarendon, 1952–55], 1:345–46) thinks otherwise. He identifies ablišu as the favorite son, who may or may not be the firstborn. The law states that the gift is of landed property alone (as in Gen. 48:22). It cannot be movable property; it must be “a field, orchard, or house.”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4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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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After this, Joseph was told, “Behold, your father is ill.” So he took with him his two sons, Manasseh and Ephraim. And it was told to Jacob, “Your son Joseph has come to you.” Then Israel summoned his strength and sat up in bed. And Jacob said to Joseph, z“God Almighty1 appeared to me at aLuz in the land of Canaan and blessed me, and said to me, ‘Behold, I will make you fruitful and multiply you, and I will make of you a company of peoples and will give this land to your offspring after you bfor an everlasting possession.’ And now your ctwo sons, who were born to you in the land of Egypt before I came to you in Egypt, dare mine; Ephraim and Manasseh shall be mine, as Reuben and Simeon are. And the children that you fathered after them shall be yours. They shall be called by the name of their brothers in their inheritance. As for me, when I came from Paddan, to my sorrow eRachel died in the land of Canaan on the way, when there was still some distance2 to go to Ephrath, and I buried her there on the way to Ephrath (that is, Bethlehem).”

z See ch. 17:1

1 Hebrew El Shaddai

a ch. 28:13, 19; 35:6, 9

b ch. 17:8

c ch. 41:50–52; 46:20

d Josh. 13:7; 14:4; 17:17

e See ch. 35:9–19

2 Or about two hours’ distance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48:1–7.

 

48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7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48:1–7.

 

 

1-2절) 본문에서 이 일은 아마도 47장 마지막 부분에서 야곱이 요셉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허벅지 아래 손을 넣고 자신을 애굽에 장사지내지 말고 조상의 묘에 장사할 것에 대한 요청에 대한 내용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애굽땅에서 17년간의 시간을 보냈고 147세로 이제 기력이 많이 쇠하여 병들었다라는 소식, 임종의 순간이 가까와온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이 자신의 두 아들 므낫세(잊음)와 에브라임(번성)을 데리고 아버지를 방문한 것이다.(41:50-52) 본문 1절에서는 장자인 므낫세를 먼저 기술하고 있다. 손자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이 힘을 내서 침상에 앉아서 이제 이들에게 말하고 있다. 

 

2절 본문에 '이스라엘(야곱)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라는 표현을 보면 ‘앉아'라는 단어가 47:27의 ‘거주하다’라는 단어와 같다. 이는 ‘에셉’으로 17년전 애굽의 고센에 거주했던 야곱이 세월의 무게를 이가지 못하고 이제는 침상에 거주해야함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야곱은 쇠약해졌다. 

2  Only Joseph’s arrival is announced to Jacob. Nothing is said yet about his two grandsons who have also come. Someone informed Jacob—again the text is silent about who announces Joseph’s appearance in Goshen. Joseph’s arrival is enough to rally bedridden Jacob. Jacob had to exert himself: he rallied his strength (wayyiṯḥazzēq), for it took a great effort for him even to sit up. Jacob has deteriorated from “dwelling” in Goshen (yēšeḇ, 47:27) to “dwelling” in bed (yēšeḇ, 48:2).17

17 The prepositions that follow the verb allow for a different English equivalent. In 47:27 yāšaḇ be means “to dwell, reside in,” while in 48:2 yāšaḇ ʿal means “to sit on/up.”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28.

 

Upon hearing of his father’s condition, Joseph went to Goshen, accompanied by his two sons. The two sons are listed in the order of their birth: Manasseh and Ephraim. A few verses later (v. 5) Jacob will mention them in reverse order (Ephraim, Manasseh), pointing to the special blessing for the second-born. Although the account of Joseph’s sons’ birth is described in 41:50–52 (before the start of the seven-year famine), and although Joseph is reunited with his father from whom he has long been separated in 46:29, and although Jacob’s time in Egypt amounted to seventeen years (47:28), 48:1ff. is the first passage to delineate any intercourse between grandfather and grandsons via Joseph (cf. Jacob’s inability to recognize his grandsons in v. 8, caused perhaps by physical handicap).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28.

 

3-7절) 야곱은 세가지 특별한 내용을 지금 요셉에게 말하고 있다. 

첫번째는 3-4절의 내용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신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28:13-15)

창세기 28:13–15 (NKRV)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8:19 (NKRV)

19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가던 도중에 하나님을 만나서 복을 얻는 장면이다. 본문에서 자손이 번성할 것을, 또한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을 약속하셨는데 이곳의 이름이 바로 벧엘, 루스였다.(28:19, 35:6) 

4절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질 것을, 이로 많은 백성을 나게 할 것을 또한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 본문의 이 땅은 ‘가나안 땅’으로 지금 야곱과 그 자손들이 기근을 피해서 애굽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바로 그들의 약속의 땅, 영원한 소유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고센은 잠시 머무는 곳이고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이렇게 요셉에게 자손과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는데 왕들에 대한 약속(35:11, 17:6, 16)은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창세기 35:11 (NKRV)

11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왕에 대한 약속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이 약속은 유다에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49:9) 야곱은 요셉에게 가나안 땅 분배의 장자의 권리를 넘겼다면, 왕들의 몫은 유다에게 물려준 것이다. 

 

두번째는 5-6절의 내용으로 야곱이 자신의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신의 것, 즉 손자가 아니라 르으벤과 시므온처럼 자신의 아들로 대접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실제로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야곱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축복을 할때 그 복은 받았고, 이후에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때 독립된 지파로 인정을 받아서 각각의 몫을 받게 된다. 말하자면 요셉은 자신의 두 아들을 통해서 두 몫을 분배받게 된 것이다. 이는 당시 장자에게는 다른 아들들과 달리 두배의 몫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었는데 르우벤이 아니라 요셉이 장자의 역할을 물려받은 것이다. 또한 5절에서는 요셉의 두아들의 이름의 순서가 바뀌어져 언급되고 있다. 이는 이후의 사건에 대한 복선이라고 할 수 있다.(13-19절) 

 

세번째로 야곱은 요셉의 어머니인 라헬의 죽음을 회상한다.(7절) 야곱이 외삼촌 라반이 살던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밧단아람(28:2)을 떠나서 가나안 땅(벧엘)으로 돌아올 때 라헬은 야곱과 같이 왔다. 이후 벧엘에서 에브랏으로 가는 도중에(35:16)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그곳에서 죽게 된다. 본문 7절의 밧단은 밧단아람을, 에브랏은 베들레헴의 옛 이름이다.(삼상 17:12) 이처럼 야곱은 요셉이 바로 자신이 사랑하던 라헬의 아들임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7  Again Jacob relives a past event, the death of his beloved wife Rachel as they traveled from Paddan(-aram) back to Canaan (35:16–20). A dying man talks about a dead woman. It is not clear why Jacob recalls Rachel’s death and shares it with Joseph. Jacob does not repeat that Rachel died in giving birth to Benjamin, Joseph’s brother. Are these two people (Joseph and Rachel) the individuals for whom Jacob has the highest affection? Jacob has just talked to Joseph about his sons. He follows that by talking to Joseph about his mother. Jacob has recently spoken of his own future burial (qāḇar, 47:29–30). He buried his spouse in Canaan. Will not Joseph bury his father there too?

It may be that we should see some connection between Jacob’s appropriation of Joseph’s children as his own and his recall of his wife’s death. Had Rachel lived longer, she would have given birth to other children. In taking Joseph’s two children, Jacob increases (posthumously) Rachel’s offspring to four. If that is the case, then Rachel’s prayer at the birth of Joseph (“May Yahweh add another son for me,” 30:24b) has been answered with Benjamin, and again with Ephraim and Manasseh.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30.

 

Paddan. Short for Paddan Aram (see note on 25:20). Ephrath. Earlier name for Bethlehem; later, David is known as an Ephrathite (1 Sam 17:12).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98.

 

본문에서 야곱은 장자권을 둘로 나누어 요셉과 유다에게 나눠준다. 요셉에게는 장자에게 주는 유산의 몫으로 두 몫을 주었고 이후에 형제들을 지배하는 장자권은 유다에게 주어진다. 유다나 요셉이 형제들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이들은 아니었다. 동생들이 형들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일이 창세기에서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뚀한 야곱은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가 아니라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복을 빌어준다. 나이가 많은 장자에게 장자의 복을 빌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당대의 전통이다. 그런데 성경은 애써서 이러한 전통을 물리치고 차자를 장자로 세우고 있는데 이는 결국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서 사람들을 세우고 계심을 말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우연히 또는 인간의 계획과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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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Thus Israel settled in the land of Egypt, pin the land of Goshen. qAnd they gained possessions in it, and were fruitful and multiplied greatly. 28 And Jacob lived in the land of Egypt seventeen years. rSo the days of Jacob, the years of his life, were 147 years.

29 And swhen the time drew near that Israel must die, he called his son Joseph and said to him, “If now tI have found favor in your sight, uput your hand under my thigh and vpromise to deal kindly and truly with me. wDo not bury me in Egypt, 30 but let me lie with my fathers. Carry me out of Egypt and xbury me in their burying place.” He answered, “I will do as you have said.” 31 And he said, “Swear to me”; and he swore to him. Then yIsrael bowed himself upon the head of his bed.2

p See ch. 45:10

q ch. 46:3

r [ver. 9]

s Deut. 31:14; 1 Kgs. 2:1

t See ch. 33:15

u ch. 24:2

v ch. 24:49

w [ch. 50:25]

x ch. 49:29; 50:5, 13

y ch. 48:2; 1 Kgs. 1:47; [Heb. 11:21]

2 Hebrew; Septuagint staff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47:27–31.

 

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47:27–31.

 

 

27절) 앞서 애굽과 가나안 온 땅의 사람들이 기근으로 고생하며 바로왕의 종이 될 때에 이스라엘 족속은 고센땅에 정착하여 그곳에 거주하며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볼 때 확연히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요셉의 도움으로 적절한 양식을 공급받았을 뿐만 아니라 바로의 청으로 왕의 가축을 칠 수 있게 되어 분명한 생업을 얻게 됨으로 기근을 피하고 도리어 번성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도, 자연적인 기근의 재해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족속은 번성하게 된다. 그 어떤 시험도 하나님을 막을 수 없다. 

본문의 ‘생욱하고 번성하다’라는 표현은 1:22, 28절에 처음 등장한 표현으로 창세기 전체에서 하나님께서 복주심과 연결된 언급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고센 땅에서 그 숫자가 심히 번성하여 출애굽기에서는 당시 애굽의 왕이 위협을 느끼고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이유가 된다.(출 1:7-10)

 This brief statement encapsulates the positive experience of Jacob’s family in Egypt. The motif of being fruitful and multiplying first appears in 1:22, 28 and recurs throughout Genesis, usually in association with divine blessing (see 9:1, 7; 17:20; 28:3; 35:11; 48:4).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1.

 

28-31절) 야곱이 애굽땅에 17년을 더 거주하였는데 그가 도착하여 바로를 만난 것이 130이었기에 지금 그의 나이는 147세였다.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운 것을 알고 아들 요셉을 불렀다. 그리고 요셉에게 ‘네가 나에게 은혜를 베풀려거든, 효도를 할려거든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나를 애굽에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라고 청한다. 이제 자신이 죽거든 자신의 시체를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할 것을 부탁하자 요셉이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겠다라고 약속한다. 야곱이 또다시 이를 맹세할 것을 요청하자 요셉이 맹세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당시 애굽에서는 110세가 가장 이상적인 기대수명이었다. 요셉이 바로 110세에 사망했다.(50:22) 그런데 야곱은 이것 보다 37년이나 더 오래 살았다.   

아브라함의 나이 175=5*5*7

이삭의 나이 180=6*6*5

야곱의 나이 147=7*7*3

그런데 각각의 숫자를 더하면 17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28  In Jacob’s thinking, he did not live unusually long—something he earlier admitted to Pharaoh (v. 9). But by Egyptian standards he outlived the law of averages. Egyptian literature has many references to 110 years as the ideal span of life for an Egyptian (see 50:22, 26 for Joseph).12 Jacob’s life exceeds that limit by thirty-seven years.13

12 References to such an ideal life span in Egyptian texts are documented in Vergote, Joseph en Égypte, pp. 200–201; cf., e.g., the instructions of Ptah-hotep, the vizier of King Izezi of the 5th Dynasty in the mid-2400s b.c., to his son: “What I have done on earth is not inconsiderable. I attained one hundred and ten years of life which the king gave me, with favor foremost among the ancestors, through doing right for the king up to the point of veneration” (translation of J. Wilson in ANET, p. 414).

13 Sarna (Genesis, p. 324) notes that the life spans of the patriarchs may be factored in the following manner: Abraham, 175 = 5 × 5 × 7; Isaac, 180 = 6 × 6 × 5; Jacob, 147 = 7 × 7 × 3. Each time the squared number increases by one, and the coefficient number decreases by two. Also, 17 is the total of these factored numbers for all three patriarchs (5 + 5 + 7; 6 + 6 + 5; 7 + 7 + 3). Sarna states, “Through their factorial patterns, the patriarchal chronologies constitute a rhetorical device expressing the profound biblical conviction that Israel’s formative age was not a concatenation of haphazard incidents but a series of events ordered according to God’s grand design.” Working from a different direction, i.e., sexagesimal mathematics, D. W. Young (“On the Application of Numbers from Babylonian Mathematics to Biblical Life Spans and Epochs,” ZAW 100 [1988] 335, 350, 351, 359) reckoned that Jacob’s 147 years is the sum of the reciprocals of the numbers 1 to 6 (60 + 30 + 20+ 15 + 12 + 10). Such a number, as common to ancient Babylonian children in their early mathematical training as 144 (12 × 12) would be to children today, is but one way in which the author highlights Jacob, the progenitor of Israel’s tribes.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23.

 

야곱은 요셉의 손을 자신의 허벅지 아래 넣게 했다. 본문의 허벅지는 성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 29 To guarantee that Joseph will fulfill his request, Jacob asks Joseph to place his hand under Jacob’s thigh (genitals?)16 and promise to take Jacob’s remains from Egypt. Before Joseph places his hands on Jacob’s eyes (in death), Jacob wants Joseph to place his hand under his thigh (in life). Jacob appeals to Joseph’s sense of loyalty (ḥeseḏ). Obviously Jacob cannot compel Joseph to do this, for Jacob will be dead at the time! All that the father can appeal to is his son’s sense of loyalty to him. Joseph has already shown so much ḥeseḏ to Jacob and his family. In his father’s death will Joseph cease to display that loyalty?

16 See M. Malul, “More on paḥad yiṣḥāq (Genesis XXXI 42, 53)” VT 35 (1985) 196–200, on “an oath by the thigh.” For “thigh” as a euphemism for the genitals, see Gen. 46:26; Exod. 1:5; Judg 8:30; and cf. M. Malul, “Touching the sexual organs as an oath ceremony in an Akkadian letter,” VT 37 (1987) 491–92; R. D. Freedman, “ ‘Put Your Hand Under My Thigh’—The Patriarchal Oath,” BAR 2:2 (1976) 3–4, 42; Z. W. Falk, “Gestures Expressing Affirmation,” JSS 4 (1959) 269. On false swearing, which has the consequence of infertility, the withdrawal of procreative power, see J. Khanjian, RSP, 2:375–76.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24.

야곱은 요셉에게 인애와 성실함(헤세드와 에메트)를 요구한다. 에메트는 헬라어로는 ‘알레데이아’로 번역된다.

אֱמֶת (ʾĕmet), 명사. 확고함, 안정성, 바름, 지속성, 진리, 신실함. 헬라어 등가: ἀλήθεια (79).

명사. 명사

 Rick Brannan, ed., Lexham 히브리어 성경 어휘사전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20).

 

야곱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이제 자신이 죽고나면 가나안 땅, 아버지의 묘실에 묻히기를 소망한다. 이는 49:29-50:14에 자세히 언급된다. 

앞서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얻기 위해서 떠나기 전에 이미 아브라함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맹세한 바가 있다.(24:9) 

야곱은 왜 애굽에 묻히기를 거부하고 가나안으로 애써서 자신의 시체를 옮겨 조상의 묘지에 묻히기를 원했을까?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애굽이 자신과 후손들의 영원한 거처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애굽은 야곱과 그의 가족들에게는 기근이라는 홍수를 피하기 위한 노아의 방주에 불과했던 것이다. 

But why even be concerned about the transportation of one’s corpse to the homeland, except for sentimental purposes? Jacob knows that there is to be no permanent residence in Egypt for his people. Egypt is to Jacob and his family what the ark was to Noah—a temporary shelter from the disaster on the outside. Even if represented only by his decayed remains, he wants to be a part of that redemptive act of God.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25.

 

31절의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 절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개역개정은 이것에 대해서 침상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했다라고 표현하지만 원문에는 ‘하나님께’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개역개정의 표현대로 하나님께 경배했을 수도 있고, 아들 요셉에게 감사를 표했을 수도 있다. 이는 실제로 37장에서 야곱이 아들에게 절을 하는 요셉의 꿈의 성취인 것이다. 또는 야곱이 노쇠하여 힘이 없어서 몸을 굽힌 것일 수도 있다. 이것에 대해서 히 11:21을 이렇게 언급한다. 

히브리서 11:21 (NKRV)

21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브리서 기자는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지팡이라는 히브리어가 ‘함마텟’이고 침대라는 표현이 ‘함미탓’으로 매우 비슷하다. 

Jacob’s imminent death, at the age of 147, dominates the final episodes of Genesis. His desire to be buried in Canaan is later fulfilled, a detailed description being given in 49:29–50:14. put your hand under my thigh (47:29). See note on 24:9. bowed himself upon the head of his bed. Jacob bows—possibly in worship, or possibly in gratitude to Joseph (which would fulfill Joseph’s predictive dream in 37:9–11; see note there), or possibly because of frailty. By not explaining why Jacob bowed, Genesis allows all these interpretations. Hebrews 11:21 refers to this, citing the Septuagint, which has Joseph bowing on “the head of his staff” (see ESV footnote; the difference between the words in Hebrew is very small, since they have exactly the same consonants and only two vowels are different: Hb. hammittah is “the bed,” while hammatteh is “the staff”).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1.

 

47:31 worshiped as he leaned on the top of his staff. Either Israel bowed down out of respect for Joseph, a motif that would be in keeping with Joseph’s earlier dream (37:9–10), or Israel worshiped God in thankfulness for Joseph’s response to his request to be buried in Canaan.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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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and the Famine

13 Now there was no food in all the land, for the famine was very severe, so that the land of Egypt and the land of Canaan languished by reason of the famine. 14 iAnd Joseph gathered up all the money that was found in the land of Egypt and in the land of Canaan, in exchange for the grain that they bought. And Joseph brought the money into Pharaoh’s house. 15 And when the money was all spent in the land of Egypt and in the land of Canaan, all the Egyptians came to Joseph and said, “Give us food. jWhy should we die before your eyes? For our money is gone.” 16 And Joseph answered, “Give your livestock, and I will give you food in exchange for your livestock, if your money is gone.” 17 So they brought their livestock to Joseph, and Joseph gave them food in exchange for the horses, the flocks, the herds, and the donkeys. He supplied them with food in exchange for all their livestock that year. 18 And when that year was ended, they came to him the following year and said to him, “We will not hide from my lord that our money is all spent. The herds of livestock are my lord’s. There is nothing left in the sight of my lord but our bodies and our land. 19 Why should we die before your eyes, both we and our land? kBuy us and our land for food, and we with our land will be servants to Pharaoh. And give us seed that we may live and not die, and that the land may not be desolate.”

20 So Joseph bought all the land of Egypt for Pharaoh, for all the Egyptians sold their fields, because the famine was severe on them. The land became Pharaoh’s. 21 As for the people, he made servants of them1 from one end of Egypt to the other. 22 lOnly the land of the priests he did not buy, for the priests had a fixed allowance from Pharaoh and lived on the allowance that Pharaoh gave them; therefore they did not sell their land.

23 Then Joseph said to the people, “Behold, I have this day bought you and your land for Pharaoh. Now here is seed for you, and you shall sow the land. 24 And at the harvests you shall give a mfifth to Pharaoh, and four fifths shall be your own, as seed for the field and as food for yourselves and your households, and as food for your little ones.” 25 And they said, “You have saved our lives; nmay it please my lord, we will be servants to Pharaoh.” 26 So Joseph made it a statute concerning the land of Egypt, and it stands to this day, that Pharaoh should have the fifth; othe land of the priests alone did not become Pharaoh’s.

i ch. 41:56

j ver. 19

k [Neh. 5:2, 3]

1 Samaritan, Septuagint, Vulgate; Hebrew he removed them to the cities

l [Ezra 7:24]

m ch. 41:34

n See ch. 33:15

o ver. 2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47:13–26.

 

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17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8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21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47:13–26.

 

 

13-17절) 기근이 더욱 심하여져서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여졌다.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 들여 바로의 궁으로 가져갔다. 

애굽과 가나안땅에 돈이 다 떨어져 백성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하였다. 이에 요셉이 그들의 가축을 낼 것을 요청하고 이에 그들이 말과 양떼와 소떼와 나귀를 가져와 먹을 것으로 바꾸어서 그 해 동안 기근을 면하였다. 

 

18-19절) 다음해가 되어 무리가 요셉에 와서 이제 돈도 다 떨어졌고 자신들의 가축떼도 모두 당신의 것이 되었으므로 몸과 토지외에는 남은 것이 없다고 하소연하였다. 이에 기근을 면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몸과 토지로 먹을 것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토지와 함께 자신들이 바로의 종이 될것이니 종자를 주어 살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요셉은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곡식(세버, 14절)을 주었다. 이후에 가축을 받고 먹을 것(레헴, 17절)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땅과 그들 자신을 받고 종자(제라, 23절)을 주었다. 

Each time the citizenry give Joseph something of theirs, he gives something back of value. In exchange for their money, Joseph gives them rations (šeḇer, v. 14).39 In exchange for their cattle he gives them food (leḥem, v. 17).40 In exchange for their land and persons, Joseph gives them seed (zeraʿ, v. 23). The first two will meet their immediate needs. The third will meet their future needs.

Joseph is not a callous, unethical taskmaster. True, the people forfeit ownership of their land to Pharaoh, but Joseph allows them, when this measure can be put into practice, to keep 80 percent of the harvest for themselves. Only 20 percent remains Pharaoh’s. (Cf. the 10 percent that is Yahweh’s in OT religion.)41 The people are evidently grateful for this arrangement, for they say to Joseph, You have rescued our lives (v. 25). Joseph is a nondiscriminating savior. His concern for Egyptians is no less than his concern for his own family. And apparently Joseph’s reforms were acceptable to later Egyptians as well, or at least to later Pharaohs. Joseph’s decree was still a law in Egypt in the writer’s day (still in force today, v. 26).42 Joseph’s reforms outlived Joseph.

39 šeḇer has appeared in the Joseph story in 42:1, 2, 19, 26; 43:2; 44:2, all in reference to what Joseph gave to his own family. The noun is formed from the verb šāḇar, “to break (in pieces),” hence šeḇer is that which is broken, i.e., threshed—“grain.”

40 leḥem, “(prepared food/bread”) occurs only in this chapter in the Joseph narrative (vv. 13, 15, 17, 19).

41 Lowenthal (Joseph Narrative, p. 193) asks, “And what kind of ‘serfdom’ is it that grants four-fifths of the produce to the ‘serf’?”

42 Cf. B. S. Childs, “A Study of the Formula, ‘Until This Day,’ ” JBL 82 (1963) 283–84, for the particular force of etiologies that follow the waw-consecutive imperfect of a transitive verb with direct or indirect object. Childs notes that in such instances “the formula appears almost as a gloss, and serves as a witness to the extension in time of the phenomenon rather than indicating its causality.”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18–619.

 

20-26절) 이에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쳤다. 기근이 심하여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않았는데 이는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아서 생활했기에 그들은 토지를 팔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백성들에게 종자를 주며 그들의 땅에 이를 뿌리고 소출의 1/5를 바로에게 상납하고 나머지 4/5로 가져가 양식을 삼을 것을 명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이러한 요셉의 조치를 기쁘게 여기며 자진하여 바로의 종이 되겠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애북의 토지법이 되었는데 1/5는 바로에게 바치고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는 것이었다. 

With no money and no livestock, the Egyptians resort to selling their land and themselves, as debt-slaves, to Pharaoh. They also ask for seed in order to sustain themselves for the future. Joseph willingly grants these requests. While some scholars believe that Joseph exploits the people’s poverty, the response of the people, You have saved our lives (v. 25), shows that in these terrible circumstances the Egyptians view Joseph positively. From their perspective, Joseph provides seed on the understanding that they may keep for themselves four fifths of the harvest (v. 24). While Pharaoh’s share of one fifth may seem excessive, this must be viewed in light of the people’s having no other means of sustaining themselves. In such circumstances a less scrupulous administrator might have placed an even heavier burden on the poor.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1.

 

애굽땅과 가나안의 모든 이들은 기근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곡식을 찾았고, 요셉앞에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돈으로, 나중에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축으로 마지막에는 자신들이 소유한 땅과 자신을 담보로 곡식을 구하였다. 결국 이들의 모든 땅은 바로의 소유가 되었고 바로는 새로운 토지법을 세우게 된다. 

우리는 본문속에서 요셉이 기근을 이용하여 너무나 매정하게 사람들의 것을 빼앗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이들의 땅마저도 강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굽 사람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살렸다고(25) 그를 칭송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발적으로 바로의 종이 되기를 원했고, 도리어 요셉이 1/5만을 바로에게 바치고 나머지를 그들 자신의 양식으로 삼으라고 한 조치를 기쁘게 여겼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 20%의 세금은 매우 낮은 수준의 세금이었다. 일반적으로 함무라비 법전에 보면 농부가 생산한 것에서 비용을 제외한 후에 1/3에서 1/2를 정부가 거두어 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바벨론에서도 일 년에 20%의 이자는 흔했으며 농업자금 융자는 33.3%에 달했다. 이로 보건대 요셉이 백성들에게 요구한 세금의 수준은 그리 과한 것은 아니었다. 

 

The unit underscores that the Egyptians are saved and Pharaoh prospers because of the measures taken by Joseph. Emphasis is on the latter result. In the immediately preceding paragraph (vv. 7–12) we encountered twice the fact that Jacob blessed Pharaoh (vv. 7, 10). No further commentary was provided on that double blessing. Might it be possible to read vv. 13–26 as the fruit of that blessing?49 Pharaoh spared Joseph. He promoted Joseph to a position of authority in his empire. He sent a personal invitation to Joseph’s family to settle in Goshen. He permitted the sending of grain to them in Canaan in their time of need. Upon their arrival in Egypt, he extended to them a royal welcome. Jacob’s response to all these displays of compassion is to bless Pharaoh. The result of that blessing is the transference to Pharaoh of resources not previously at his disposal. The giver now becomes the receiver. The one who gave land (47:1–12) is in return given land (47:13–26). It is significant, however, that vv. 1–12 come before vv. 13–26. Had that order been reversed, and had the text told first of Pharaoh’s getting land, and then giving land, then the door would have been opened to the possibility that Pharaoh gave only because he received. His motive could then have been interpreted as returning one favor for another, rather than as sheer gratitude and compassion. In some ways, then, the pharaoh of the Joseph story comes across as a caring, magnanimous, and charitable individual. But even more important, ch. 47 attributes much of the pharaoh’s holdings not to his magnanimity but to the blessing of Jacob (vv. 1–12) and to Joseph’s wise management in times of potential chaos (vv. 13–26).

49 See B. A. McKenzie, “Jacob’s Blessing on Pharaoh,” WTJ 45 (1983) 395–98.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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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So Joseph qwent in and told Pharaoh, “My father and my brothers, with their flocks and herds and all that they possess, have come from the land of Canaan. They are now in rthe land of Goshen.” And from among his brothers he took five men and spresented them to Pharaoh. Pharaoh said to his brothers, t“What is your occupation?” And they said to Pharaoh, u“Your servants are shepherds, as our fathers were.” They said to Pharaoh, v“We have come to sojourn in the land, for there is no pasture for your servants’ flocks, for the famine is severe in the land of Canaan. And now, please let your servants dwell win the land of Goshen.” Then Pharaoh said to Joseph, “Your father and your brothers have come to you. The land of Egypt is before you. Settle your father and your brothers xin the best of the land. yLet them settle in the land of Goshen, and if you know any zable men among them, put them in charge of my livestock.”

Then Joseph brought in Jacob his father and stood him before Pharaoh, aand Jacob blessed Pharaoh. And Pharaoh said to Jacob, “How many are the days of the years of your life?” And Jacob said to Pharaoh, “The days of the years of my bsojourning are 130 years. cFew and evil have been the days of the years of my life, and dthey have not attained to the days of the years of the life of my fathers in the days of their bsojourning.” 10 And Jacob eblessed Pharaoh and went out from the presence of Pharaoh. 11 Then Joseph settled his father and his brothers and gave them a possession in the land of Egypt, in the best of the land, in the land of fRameses, gas Pharaoh had commanded. 12 And Joseph hprovided his father, his brothers, and all his father’s household with food,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ir dependents.

q ch. 46:31

r See ch. 45:10

s Acts 7:13

t ch. 46:33

u ch. 46:32, 34

v ch. 15:13; Deut. 26:5

w ch. 46:34

x ch. 45:18

y ver. 4

z Ex. 18:21, 25

a ver. 10

b 1 Chr. 29:15; Ps. 39:12; 119:19, 54; Heb. 11:9, 13

c Job 14:1; [Ps. 39:4, 5; James 4:14]

d ch. 11:32; 25:7; 35:28

b 1 Chr. 29:15; Ps. 39:12; 119:19, 54; Heb. 11:9, 13

e ver. 7

f Ex. 1:11; 12:37; [ch. 45:10]

g ver. 6

h ch. 45:11; 50:21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47:1–12.

 

47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47.

 

 

1-6절) 요셉이 먼저 바로에게 가서 자신의 가족, 아버지와 형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으로부터 와서 지금 고센땅에 이르렀음을 고한다. 그리고 나서 형들중에 5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데리고 온다.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그들의 직업을 묻자 앞서 준비한대로 자신들은 대대로 목자라고 대답한다. 이어서 가나안땅에 기근이 심하여 양떼를 칠 곳이 없어서 이곳에 거류하기 위해서 왔는데 고센땅에 살게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바로가 요셉에게 너의 가족들이 왔으니 애굽 땅의 좋은 곳에 가족들이 거주하게 하되, 고센땅에 거주하고 가능하다면 왕의 가축을 관리하게 할 것을 명한다. 

 

요셉의 이야기에서는 숫자 5가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요셉은 베냐민에게 다섯 배의 음식을 주었고(43:34) 베냐민에게 옷 다섯벌을 주었다.(45:22) 요셉이 형들을 만났을 때 기근이 아직 5년 남아 있었다.(45:11, 22) 바로의 꿈을 해몽해준뒤 풍년이 들 때 그들에게 소출의 1/5를 거두어 비축할 것을 권면했고(41:34), 훗날 배고픈 백성에게 곡식을 주며 작물의 1/5을 바로에게 바칠 것을 조건으로 삼았다.(47:24) 

 

실제로 형제 5명은 누구였을까? 본문은 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지만 어떤 학자는 형제들중에 외모가 출중한 이들을 뽑앗을 것이라고 혹은 너무 늠름한 형제들을 데리고 가면 그들을 군인으로 삼을까봐 연약하고 왜소해보이는 형제들을 데려갔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요셉의 형제들이 바로 앞에서 물러난 뒤에 야곱이 바로 앞에 서게 된다. 

2  On his own Joseph picks five (or “several,” or a “few”)12 of his brothers to present them to Pharaoh. Which five? Why only five? What are the criteria for selection? Those whom he believes would make the best impression on Pharaoh? Following A. B. Ehrlich, Speiser is inclined to think that Joseph took the more outstanding brothers because “the context is made emphatic through inversion” (i.e., lit., “from the edge/extremity of his brothers he took five”).13 Rabbinic tradition takes the opposite position. For example, Gen. Rabbah 95:4 has the interpretation that he took five of the more inferior, less formidable brothers, fearing that Pharaoh would make soldiers out of the stronger brothers had Joseph taken them. According to that tradition, Joseph took with him Reuben, Simeon, Levi, Benjamin, and Issachar.

It makes most sense to translate the verbs in this sentence as pluperfects (hence had selected … had presented). Joseph does not travel from Goshen to Pharaoh’s palace, announce the arrival of his family in Egypt, return to Goshen, select five of his brothers, then make a second trip to Pharaoh.

12 See n. 1 above.

13 Speiser, Genesis, p. 350.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06–607.

 

7-10절) 이어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바로에게 인도하여 소개한다. 야곱은 바로에게 축복한다. 7절과 10절에서 야곱은 바로에게 축복하는데 이는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축복의 인사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의 전체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복이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지금 야곱이 애굽의 바로에게 복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는 야곱의 나이를 묻는다. 당시 장수를 하나님 혹은 신의 축복으로 여겼기에 이를 물어보았을 것이다. 야곱은 자신의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라고 말하면서 내 나이가 얼마 못되어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고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대답한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175세, 이삭은 180살을 살았다. 이것과 비교하면 자신은 그 연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그네 세월동안 수많은 험악한 사건들이 있었음을 회고하고 있다. 여기에서 야곱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는 지금 과거 자신이 형인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고 삼촌 라반의 집에서 생활하던 서러움을, 자신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강간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했던 일을, 약속의 땅에 돌아오자마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은 일, 장자 르우벤이 자신의 첩을 범했던 일, 자신의 아들들이 요셉을 팔아넘기고 죽었다고 자신을 속였던 일들을 기억에 떠올렸을 것이다. 이 험악한 세월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의지하여 바로에게 축복을 하고 있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실제로 자신의 삶이 고정된 거주지에 정착을 하지 못하고 이동하여 다니며 생활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나그네 인생길이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고, 우리는 잠시 인생길을 나그네로 영원한 본향을 소망하면서 살아간다.(히 11:10) 

47:7–10 Joseph introduces his father Jacob to Pharaoh. The record of this meeting is framed by the repeated comment that Jacob blessed Pharaoh (vv. 7, 10). While this could be interpreted as merely denoting words spoken by way of greeting and saying farewell, the image of Jacob blessing Pharaoh takes on special significance when viewed within the context of Genesis as a whole. Genesis presents the special line associated with Abraham and his seed as mediating God’s blessing to others (see Introduction: History of Salvation Summary). How many are the days of the years of your life? (v. 8). Pharaoh’s inquiry about Jacob’s age may have been motivated by the belief that longevity was a sign of divine favor. Few and evil have been … the years of my life (v. 9). In this response Jacob perhaps alludes to those events that have made his life less than happy: e.g., his treatment of Esau, and his sons’ deception of him regarding Joseph. While Jacob is now 130 years old, Abraham and Isaac lived to be 175 and 180, respectively. The Hebrew term translated sojourning implies that Jacob and his fathers had no permanent abode. This concept is developed along theological lines by the author of Hebrews, who views the patriarchs as looking forward to inhabiting a “city that has foundations, whose designer and builder is God” (Heb. 11:10). Jacob’s comments may indicate that he anticipated something better to com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0.

 

7  When Joseph presented his brothers to Pharaoh (v. 2), the narrator used the verb yāṣaḡ (Hiphil; see 43:9). When Joseph presents his father to Pharaoh, the narrator uses the verb ʿāmaḏ (Hiphil; see 43:15 for the Qal). No great inference may be extracted from this divergence, except to note that ʿāmaḏ (Hiphil) lip̄nê is a common expression in priestly contexts where somebody or something (a leper, Lev. 14:11; a goat, 16:7; an animal, 27:11) is brought before somebody else (the king, Yahweh, the priest).

Pharaoh’s conversations with the sons (vv. 3–6) and with the father (vv. 8–10) differ in some respects. For one thing Pharaoh’s conversation with Jacob is preceded and followed by Jacob blessed Pharaoh, something the sons did not do. The trend among some translators of the Hebrew text of Genesis has been to render bāraḵ in vv. 7, 10 not with the traditional “bless” but with “paid respects to” (Speiser, NAB, NJB) or “greeted” (NJPS) in v. 7, and “took leave” (Speiser, NJB) or “bade farewell” (NAB, NJPS) in v. 10.7 Now it is true that sometimes in the OT bāraḵ means “greet.” For example, Prov. 27:14 says, “He who blesses [i.e., greets] his neighbor with a loud voice, rising early in the morning, will be counted as cursing” (RSV).8 Cf. also Ruth 2:4, where the reapers’ words to Boaz, “May Yahweh bless you [bāraḵ, Piel],” should be understood as a greeting formula between employer and employees. Again, one finds the Piel of bāraḵ to express a greeting in 2 K. 4:29 (“do not salute him; and if anyone salutes you …” [RSV]), and in 2 K. 10:15 (“and he greeted him” [RSV]). Both Gen. 47:7 and 2 K. 4:29 have in common the use of bāraḵ (Piel) for two parties in which the speaker and the addressee are total strangers.

I prefer the translation “bless” in Gen. 47:7, 10 [46:7, 10], or at least “greet with a blessing.”9 This is something the sons would hesitate to do (and hence its absence in v. 2), but it falls within the jurisdiction of the paterfamilias. Here is one of the relatively rare places in the OT where we find the pattern A (the inferior) blessing B (the superior).10 Jacob is inferior to Pharaoh as regards position, but may be superior to Pharaoh in the matter of age, and at least is well beyond the Egyptian ideal of the 110-year life. Perhaps Jacob prayed that the pharaoh may be blessed with a long life. The OT has several instances of a subject entering the presence of royalty and exclaiming “O king, live forever!” (2 Sam. 16:16; 1 K. 1:31; Dan. 2:4; 5:10; 6:7 [Eng. 6]). Such a blessing might also explain why in the next verse Pharaoh inquires about how long Jacob has lived.

Pharaoh has enriched Jacob’s family. He has promoted son Joseph to a prominent position in Egypt. On several occasions he has sent much-needed grain back to Canaan with Jacob’s other sons. He has invited Jacob and his family to Egypt with freedom to settle anywhere. Jacob is profoundly grateful for the assistance Pharaoh has provided. The appropriate response is to bless Pharaoh. “He has enriched us. May God enrich him.” Vv. 13–26, which detail Joseph’s agrarian reforms, serve as a stunning illustration of the consequence of Jacob’s blessing on Pharaoh.

Blessing has surfaced repeatedly in Genesis, and most often the dispenser of blessing is God. Here is one of the few places where both the subject and object of “bless” are human beings. Jacob blesses Pharaoh. Jacob knows what it means to be the object of blessing. Chs. 27 and 28 provide most of the instances in Genesis of one person (Isaac) blessing another person (Jacob). Jacob, once the recipient of blessing, now becomes the source of blessing.

NAB The New American Bible

NJB New Jerusalem Bible

NJPS New Jewish Publication Society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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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The following versions retain “bless” in both verses: AV, NKJV, RSV, NRSV, NEB, REB, JB, NIV (with a footnote that the verb may be translated “greeted” in v. 7 and “said farewell to” in v. 10).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8 See H. C. Brichto, The Problem of “Curse” in the Hebrew Bible, JBLMS 13 (Philadelphi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1968), p. 190, for the rendering of the Piel of bāraḵ in Prov. 27:14 as “greet, salute.” See also C. W. Mitchell, The Meaning of BRK “To Bless” in the Old Testament, SBLDS 95 (Atlanta: Scholars, 1987), pp. 106–8.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9 See B. A. McKenzie, “Jacob’s Blessing on Pharaoh: An Interpretation of Gen. 46:31–47:26,” WTJ 45 (1983) 390–95, for this interpretation of bāraḵ in Gen. 47:7, 10.

10 See J. Scharbert, “brk,” TDOT, 2:291–92. Apart from Gen. 47:7, 10, the only other cases of subjects blessing the king are Exod. 12:32 (Moses and Pharaoh); 1 K. 8:66 (the people and Solomon); Ps. 72:15 (the psalmist and the king).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10–611.

 

9  Jacob’s response is something of a surprise. He has lived 130 years (and will have 17 more to go for a total of 147 years [47:28]).12 Thus his life span will be somewhat less than the 180 of his father Isaac (35:28) and the 175 of his grandfather Abraham (25:7), but is the difference great enough to call his years “few”? Note that in his response Jacob shifts Pharaoh’s “How many years have you lived?” (lit., “like what are the days of the years of your life”) to “My year as a sojourner” (lit., “the days of the years of my sojourning”). That is, he exchanges “sojourning” for “life” in his answer, thus giving to the former “the elegian connotation that for him [viz., Jacob] life on earth is but a sojourn.”13

Jacob’s concern is not that he will apparently fail to live longer than either his father or grandfather. What does concern him is that his life thus far has been difficult. Just as the sons answered Pharaoh’s question, then supplied unsolicited information, so Jacob answers Pharaoh’s question, then supplies an autobiographical summary of his life. When we first encountered Jacob, he was struggling inside his mother’s womb with his twin brother. As we come to the end of Jacob’s life, he is struggling for his life in a famine-devastated Canaan. In between these first and last moments of struggle have been many trying experiences for Jacob. His life has had more sorrow than joy.

This is not the kind of information a stranger would share with Pharaoh. What, we would like to know, was his response to this tiny but personal revelation from Jacob? What about Joseph, who certainly overheard it?

12 I noted in the genealogy of 46:8–27 the prominence of seven. Note that Jacob’s 147 years may be factored as 3 × 72. See further the commentary on 47:28.

13 Lowenthal, Joseph Narrative in Genesis, p. 124.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11–612.

 

왜 요셉은 형제들 뒤에 야곱을 소개했을까? 바로에게 고센땅을 허락받는 이러한 요청은 형제들의 몫으로 맡기고 아버지는 바로에게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는 존귀한 사람으로만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징적으로 지금 애굽의 왕과 이스라엘의 왕이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바로에게 자신들을 ‘당신의 종들’이라고 세번이나 말하지만 야곱은 단 한 차례도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축복했다. 

애굽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죽음 이후의 삶을 두려워하여 피라미드를 짓고 사후를 대비하기도 했다. 애굽 사람들은 인간이 이상적으로 살 수 있는 나이를 110세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금 야곱은 130세이니 대단히 장수한 인물인 것이다. 

 

11-12절) 요셉은 바로의 명령대로 아버지와 혀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었는데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람세스)를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온 가족에게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다. 

그들이 살게 될 땅은 고센땅이었다. 그런데 본문에 라암셋이라는 좋은 땅을 주었다고 말한다. 라암셋(람세스)는 주전 13세기 애굽의 위대한 왕 람세스 2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고센땅을 포함하는 지역이 라암셋이었는지 아니면 요셉시대에 고센땅이라고 불려진 이곳이 이후에 라암셋으로 대치되었을 수도 있다. 

47:11–12 Joseph allocates land to his family in the land of Rameses. Previously, the designation “land of Goshen” has been used to denote the territory where they were to dwell (e.g., 45:10; 46:28). The name “Rameses” is most often associated with the great thirteenth-century-b.c. Egyptian king Rameses II. While it is possible that the actual name “Rameses” goes back to the time of Joseph, this may be an example of a later term’s being substituted for an earlier name (see, e.g., the use of “Dan” in 14:14; also Introduction: Author, Title, and Dat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30.

 

11–12  Following Pharaoh’s orders, Joseph settles his family in Goshen, identified here as the region of Rameses. This phrase appears to be an editorial comment,14 for this terminology was not used until the thirteenth-century pharaohs of the 19th Dynasty. The region of Rameses (cf. Exod. 1:11; 12:37; Num. 33:3, 5) may be identified with Qantir or Tanis in the northeastern delta of the Nile. It became the residence city of the kings of the 19th Dynasty and was built by and named after Ramses II (1304–1227 b.c.). The only way to defend the presence of this place name as early as the setting of the Joseph story, that is, as something other than an editorial insertion or an anachronism, is to suggest that the city bore this name prior to the Ramesside Dynasty, a name that simply meant “Re has created it.”15

Joseph exceeds the brothers’ original request. They would be content to sojourn (gûr) in Goshen. Instead, Joseph gives them property (ʾaḥuzzá). All of this confirms God’s promise to Jacob that he would make of Jacob a great nation in Egypt (46:3). This Hebrew word has already appeared in Genesis: when God so spoke to Abraham (17:8), when Abraham requested property in which to bury Sarah (23:4, 9, 20), and in reference to Edomite territory (36:43). It will be used again in 48:4 (Jacob quoting God Almighty to Joseph); in 49:30, in a reference back to ch. 23; in 50:13, also a reference back to ch. 23. Unlike naḥa, which refers to inalienable property transmitted by inheritance, ʾaḥuzzá refers to inalienable property received from a sovereign, or at least from one who has the power to release or retain land.16 That is why this noun is often used with the verb “give” (Gen. 47:11; Lev. 14:34; Num. 27:4; 32:5; Deut. 32:49; etc.).

How different is Jacob’s descent to Egypt from his grandfather’s (ch. 12)! Both seek out the safety of Egypt because of famine. To save himself Abraham engages in deceit. To save his family Jacob engages in blessing. The Pharaoh at Abraham’s visit was only too happy to see Abraham return to his own country. The Pharaoh at Jacob’s visit insists that Jacob stay and settle on some choice land. Abraham retreats from Egypt. For Jacob Egypt is his new home. Abraham leaves Egypt alive (and happy to be so!). Jacob will leave Egypt dead.

14 See K. A. Kitchen, “Joseph,” ISBE, 2:1129.

15 See R. W. Pierce, “Rameses,” ISBE, 4:39.

16 See J. Milgrom, Leviticus 1–16, AB (New York: Doubleday, 1991), pp. 866–67; idem, Numbers, JPS Torah Commentary (Philadelphia: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90), p. 231.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1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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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 and Joseph Reunited

28 He had sent Judah ahead of him to Joseph to show the way before him in Goshen, and they came iinto the land of Goshen. 29 Then Joseph prepared his chariot and went up to meet Israel his father in Goshen. He presented himself to him and jfell on his neck and wept on his neck a good while. 30 Israel said to Joseph, k“Now let me die, since I have seen your face and know that you are still alive.” 31 Joseph said to his brothers and to his father’s household, l“I will go up and tell Pharaoh and will say to him, ‘My brothers and my father’s household, who were in the land of Canaan, have come to me. 32 mAnd the men are shepherds, for they have been keepers of livestock, and they have brought their flocks and their herds and all that they have.’ 33 When Pharaoh calls you and says, m‘What is your occupation?’ 34 you shall say, m‘Your servants have been keepers of livestock nfrom our youth even until now, both we and our fathers,’ in order that you may dwell oin the land of Goshen, for every shepherd is pan abomination to the Egyptians.”

i See ch. 45:10

j [ch. 45:14]

k [Luke 2:29, 30]

l ch. 47:1

m ch. 47:3

m [See ver. 32 above]

m [See ver. 32 above]

n ch. 37:12

o ver. 28

p ch. 43:32; Ex. 8:26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46:28–34.

 

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46:28–34.

 

 

28절)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요셉이 자신들을 맞을 준비를 하도록 한다. 첫째 르우벤이 아니라 유다를 보내는 것은 이미 유다가 형제들 가운데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야곱은 유다에게 축복을 내린다.(49:8-12) 

이전에 유다는 앞서서 요셉을 죽일 것이 아니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넘기자라고 했었다. 결국 유다가 야곱과 요셉을 만나지 못하게 했던 장본인이었는데 이제 야곱과 요셉의 만남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28  Judah precedes the party heading to Egypt both positionally and syntactically. Special prominence is given to Judah in this verse by his placement at the very beginning of the sentence, even though he is the direct object. It is ironic that Judah is selected to play the lead role, to be the mediator in the forthcoming reuniting of long-separated father and son, for he earlier had played the lead role in separating father from son (37:26ff.).10 After this mention, Judah plays no further role in the meeting between Jacob and Joseph. Judah is sent by his father as a courier to Joseph, to be a liaison between the two. Jacob knows from previous experience what it means in an intense moment to send a party ahead (šālaḥ lep̄ānāyw) to meet a family member one has not seen in a good while. Recall the events surrounding the preparation for his meeting with Esau (32:4 [Eng. 3]). There it was Esau. Here it is Joseph. Some twenty years have separated brother from brother and father from son. In both instances Jacob sends a party ahead of him to meet the relative.

10 See Sarna, Genesis, p. 317; Humphreys, Joseph and His Family, p. 85.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01.

 

29-30절) 아버지가 애굽으로 오시는 것을 알고 요셉은 그의 수레를 갖추어 고센으로 올라가서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는다. 아버지의 목을 껴안고 얼마동안 눈물을 흘리자 이스라엘(야곱)이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고 내가 너의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좋다’라고 말했다. 

 

요셉은 유다의 기별을 받고 급하게 자신의 마차를 끌고 야곱을 맞으러 나갔다. 아버지와 아들의 23년만의 재회인 것이다. 야곱은 피묻은 채색옷을 보며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살아있는, 게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제 자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고백은 그의 진심이었다. 이런 감동적인 만남에 요셉은 다시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야곱도 눈물을 흘렸다. 이전에 야곱은 요셉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면 이제 살아있는 요셉을 만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29  Joseph is clearly most eager to be reunited with his father. He goes to see his father rather than waiting for his father to come all the way to his residence. Joseph harnesses his own chariot rather than delegating that work to his subordinates, much as his great-grandfather Abraham earlier had saddled his donkey himself before making a trip involving a family member, something the two servants with him would normally do (22:3).

As some scholars have observed, the phrase When he saw him (wayyērāʾ ʾēláw) may also be translated “when he appeared to him.” At least six other times in Genesis this expression describes a divine appearance to a patriarch (to Abraham: 12:7; 17:1; 18:1; to Isaac: 26:2, 24; to Jacob: 35:9); this is the only place in Genesis that it describes the meeting of two people. Its use here does not, however, convey the same nuance one finds in the other citations (i.e., a solemn occasion in which a superior discloses himself to an inferior). If Joseph is the subject of the following verbs (“he flung”; “he wept”), then seeing is the prelude to the emotional reunion of father and son. Seeing plays the same role here as in Jesus’ parable of the two sons: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Luke 15:20).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02.

 

30절에서 야곱은 요셉의 얼굴을 보았다. 이전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을때 브니엘이라고 하며 그가 살았다면 요셉의 얼굴을 보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더 생존한다. 17살에 요셉을 잃었었는데 이제 요셉을 만나고 17년을 생존한 것이다. 

Jacob had a previous experience of seeing a face, the result of which he was never again the same. The face that time was God’s. He named that place Peniel. He had seen God’s face, yet he continued to live. Having seen Joseph’s face, he needs to live no longer.

Jacob may feel he is now prepared to die, but he will have seventeen more years of life before that moment comes (47:28). Earlier he had seventeen years with Joseph (37:2). After a long hiatus he has another seventeen years with Joseph.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02–603.

 

31-34절) 아버지와의 만남이후에 요셉은 그의 형들과 가족들에게 바로를 만나서 어떻게 이야기할지를 조언한다. 먼저 자신이 올라가서 바로에게 가나안 땅에 있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이 왔는데 그들은 목자이고 목축하는 사람들로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습니다라고 할 것이니 이후에 바로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어릴때부터 목축하는 자들이라고 대답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애굽사람들이 목축을 가증히 여김으로 고센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요셉이 자신의 가족들이 목축하는 사람임을 강조한 이유는 이들이 애굽에 어떤 위험을 줄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또한 목축을 애굽인이 혐오하였기에 애굽인들과 따로 떨어져서 지낼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이렇게 애굽의 주류 사회와는 따로 떨어져 그들이 생활할 것이기에 그들은 애굽에 대해서 어떤 정치적 야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애굽 사람들과 결혼하는 일도 없을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을 찾은 것은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 온 것이지 그들이 직업을 바꾸어 애굽의 주류 사회로 편입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게다가 요셉은 그들이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가지고 왔음을 밝힌다. 이는 형제들이 빈손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내려왔음을, 그리고 애굽인들이 멸시하는 목축업을 하기 위해서 분리된 변두리 공간이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In Exod. 8:22 (Eng. 26) Moses stated that offering sacrifices in Egypt would be an abomination in the eyes of the Egyptians. Both Exod. 8:22 (Eng. 26) and Gen. 46:34 use the word tôʿēḇá (see also its use in 43:32) to point out what Egyptians considered abhorrent, i.e., pastoral pursuits. Precisely why the Egyptians would so view the sacrifices from the flocks of the Hebrews is not stated. In any case, Joseph is encouraging his family to be absolutely honest with Pharaoh regarding their occupation. They are not to try and be something they are not. Dishonesty is an issue that long plagued Jacob and his family. It is Judah who shows his family the way to Goshen. But it falls to his brother Joseph to make it possible for his family to settle in Goshen.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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