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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Walks on Water
16 When evening came, his disciples went down to the sea, 17 got into a boat, and started across the sea to Capernaum. It was now dark, and Jesus had not yet come to them. 18 The sea became rough because a strong wind was blowing. 19 When they had rowed about three or four miles,2 they saw Jesus walking on the sea and coming near the boat, and they were frightened. 20 cBut he said to them, “It is I; do not be afraid.” 21 Then they were glad to take him into the boat, and immediately the boat was at the land to which they were going.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6:16–21.

해당되는 사건은 막 6:45-52; 마 14:22-32에 함께 나온다. 그런데 위의 본문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한다. 또한 마가와 마태는 앞서 예수님이 무리와 제자들을 떠나신 이유를 기도하러 따로 피정하신 것으로 표현한데 반해서 요한은 무리들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보시고 정치적인 항거에 개입하기를 원하지 않아서 피한것으로 표현한다. 
The story of Jesus walking on the water appears in Mark (6:45–52) and Matthew (14:22–32) as well as here in John. There are a few differences from the Synoptic narratives, such as the disciples thinking at first that Jesus appeared to be a ghost. There is also an important variation in the transition statement in Mark and Matthew, where Jesus’ activity in the hills is identified as that of praying (cf. Matt 14:23; Mark 6:46).78 Whereas those Gospels focus on the aspect of Jesus’ departure as a desire for spiritual retreat, John’s focus is on Jesus’ effort to avoid involvement in political revolution.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57–258.

17절) 어두움, 시간적인 물리적인 어두움만이 아니라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낸다. 

19절) 바다위를 걸어 오시는 주님, 이는 단지 제자들을 놀래려는 의도가 아니라 주님이 모든 피조세계의 주권자이심을 나타내보여주시는 행동이었다. 
Walking on the sea is not something Jesus did just to amaze the disciples, but rather it is a powerful, visible demonstration of Jesus’ sovereignty over the world that he created (Heb. 1:3, 10). In the OT, God alone rules over the seas (Ps. 29:10–11; 89:9; 107:28–30).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34.
주님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는 제자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인간들의 온전한 반응은 이러한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e.g., John 6:19; cf. Isa 6:5; Exod 3:6; Rev 1:17; Judg 6:22).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58.

20절) “It is I”는 에고 에이미로 요한복음의 독특한 표현으로 그분의 신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는 출 3:14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모세에게 처음 계시하시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Here it may allude to God’s self-identification as “I am who I am” (Ex. 3:14) and may thus be an indication of Jesus’ divinity. This connection becomes more clear when the phrase is repeated in later verses (see notes on John 6:35; 8:24; 8:58).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34.

21절) 주님이 함께 하시자 그들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시 107:23-32절을 묵상하라. / 자신의 백성을 풍랑가운데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 
(시 107:23-32, 개정) 『[23]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24]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25]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26]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29]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3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32]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지로다』

6장의 두개의 이야기(떡과 물)은 유월절을 연상케 한다. 오병이어 사건에서는 “떡”을 물위를 걸으시는 사건에서는 “I am”형식을 사용하는데 이를 연결하면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가 된다. 
As indicated in the introduction to chap. 6, these two stories involving an eating event and the control of water provide an excellent reflection of a Passover perspective. But these two stories when set together also provide an interesting introduction to the first of the “I am” theological statements of Jesus. The feeding event supplies the theological vehicle, “bread,” and the greeting or address of Jesus in the water story supplies the familiar “I am” formula. When the two are combined, the theological assertion becomes “I am the bread of life” (6:35).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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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Feeds the Five Thousand
After this jJesus went away to the other side of kthe Sea of Galilee, which is lthe Sea of Tiberias. And a large crowd was following him, because they saw the signs that he was doing on the sick. Jesus went up on mthe mountain, and there he sat down with his disciples. Now nthe Passover, the ofeast of the Jews, was at hand. pLifting up his eyes, then, and seeing that a large crowd was coming toward him, Jesus said to qPhilip, “Where are we to buy bread, so that these people may eat?” He said this to test him, for he himself knew what he would do. rPhilip answered him, “Two hundred denarii1 worth of bread would not be enough for each of them to get a little.” One of his disciples, sAndrew, Simon Peter’s brother, said to him, “There is a boy here who has five tbarley loaves and two fish, but twhat are they for so many?” 10 Jesus said, “Have the people sit down.” uNow there was much grass in the place. So the men sat down, about five thousand in number. 11 Jesus then took the loaves, and vwhen he had given thanks, he distributed them to those who were seated. So also the fish, as much as they wanted. 12 And when they had eaten their fill, he told his disciples, “Gather up the leftover fragments, that nothing may be lost.” 13 So they gathered them up and filled twelve baskets with fragments from the five barley loaves left by those who had eaten. 14 When the people saw the sign that he had done, they said, w“This is indeed xthe Prophet ywho is to come into the world!”
15 zPerceiving then that they were about to come and take him by force to make him king, Jesus awithdrew again to bthe mountain by himself.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6:1–15.

본문은 38년된 병자를 고치시고 굶주리는 무리들을 먹이시는 장면으로 광야의 이스라엘을 연상시킨다. 앞서 5장 마지막에서 모세를 증인으로 소환했었는데 이제 6장의 사건또한 모세와 연관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유월절 사건에서 중요한 내용이 바다를 가르시고 만나를 통해 먹이신 것이다.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협으로부터 건지시고 백성의 필요를 공급하신 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Those familiar with the Psalms will also recognize that the two mercies of water control and food supply were very significant to the psalmist (cf. Ps 78:13–30). In Israel’s history, stories of food and water are indelibly attached to faith. From the tree of life in the garden, the rescue of Noah in the flood, and throughout their pilgrimage these two symbols are repeatedly rewoven into the fabric of God’s dealings with his people. It is understandable then that Paul, thinking like a Jew, also linked these two symbols in his warnings to the Corinthians about their relationship with God (1 Cor 10:1–4).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49.
마태, 마가, 요한은 유대의 관심사에 따라 오병이어의 기적과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을 함께 배치한데 반하여 누가복음은 이 패턴을 따르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복음서의 대상이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모든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이적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야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이적으로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백성에게 만나를 공급하신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The feeding of the multitude (recorded in all four Gospels; cf. Matt. 14:13–21; Mark 6:30–44; Luke 9:10–17) constitutes another of Jesus’ messianic “signs”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33.

1절) 그 후에, 앞서 5:1과 관련해서 볼때 그 시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앞선 사건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 6개월에서 1년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것으로 보인다. 

4절)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 / 본문은 요한복음에서 언급된 세번의 유월절(2:13; 11:55)중의 두번째로 갈릴리에서 유월절을 보내실때의 사건이다. 

5-9절)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빌립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본 사건을 시작한다. 반면 마가복음은 제자들이 이 문제를 제기한다.(막 6:35-37) 질문의 의도는 어떤 대답이나 정보를 얻기위해서가 아니라 예수가 누구신지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7절) 그런 의미에서 빌립의 대답은 예수에게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 해결에 초점을 두고 있다.  200데나리온,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치 품삯이다. 그래서 이것은 지금으로 따지면 일당을 5만원으로 계산하면 천만원, 10만원으로 계산하면 이천만원의 돈이 된다. 10절에서 모인 숫자가 5천명정도라고 했을때 장정 이외의 어린이들과 여인들을 고려할때 1-2만여명의 군중이 모여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적게 잡아 1만명의 군중이 모였다면 일인당 1000-2000원 정도로 간단한 식사를 제공한 것으로 계산한다면 매우 정확한 액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빌립은 계산에 빠른 제자였다. 
8절) 이런 빌립에 비해 안드레는 그것의 해결책으로 한 아이의 도시락을 가지고 나아온다. 

Parallels between John 6 and Numbers 11
Where are we to get meat/bread?John 6:5; Num. 11:13
The striking disproportion between the existing need and the available resourcesJohn 6:7–9 ; Num. 11:22
The description of the mannaJohn 6:31; Num. 11:7–9
The people’s grumblingJohn 6:41, 43; Num. 11:1
The reference to the eating of meat/Jesus’ “flesh”John 6:51; Num. 11:13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33.

10-13절) 예수께서는 이제 그 무리를 먹일 준비를 하신다. 사람들을 잔디에 50-100명씩 앉히신다.(막 6:39-40; 눅 9:14) 모인 군중을 만명으로 계산하면 50명씩 따로 앉게 할때 200개의 그룹이 만들어진다. 이 크기를 계산해보자. 
50명이 둥그렇게 앉는다고 할때 지름 10미터의 공간을 차지한다고 할때 100제곱미터이다. 이러한 그룹이 200개가 있는 것이기에 20,000제곱미터의 넓이가 요구된다. 축구장이 일반적으로 길이 100미터, 폭이70미터라고 할때 그 넓이는 7,000제곱 미터이다. 이는 축구장 3개의 면적에 해당한다. 
이제 주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게 하셨다. 이에 모든 이들이 먹고 남은 것이 12광주리가 되었다. 특별히 요한은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할 것을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후의 주님의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알리시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The concern in this chapter involves “lost” or “perishing” food (6:12, 27) and people (6:39). Indeed, later Jesus will mention in his prayer that none had been “lost,” except the son of doom (17:12). Preservation of the church (probably here symbolized in the twelve baskets) was an important concern for this evangelist (cf. a similar concern in 1 John 2:19; 2 John 8).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54.

14-15절) 사람들은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군중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을 보고 그분을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로 여겼다.
- Deut. 18:15, 18. (Cf. notes on John 1:20–21; 7:40–41. In Acts 3:22–23 Peter identifies Jesus as the fulfillment of this prophecy; cf. Acts 7:37.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34.
그래서 그분을 자신들의 임금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혼자 산으로 떠나 가셨다. 왜냐하면 주님이 이땅가운데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정치적인 독립이나 자유, 가난과 궁핍의 문제 해결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The dialogue that occurs after the sign seems to call both the sufficiency of the sign (cf. 6:30) and the meaning of the sign (6:26–27) into question.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56.
 -  Jesus did not need an earthly crown, and he certainly did not come to lead a military expedition. So instead of acceding to their desires, he headed for the hills77 and left them with their unfulfilled political expectations.
77 Undoubtedly the hills here are on the eastern side of the Sea of Galilee known as the Syrian Highlands or Golan Heights, the scene of repeated conflicts even in recent years.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57.
예수를 왕으로 세우려는 무리들과 달리 “내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결국 예수께서 무리들의 요구를 듣지 않으신 것이 이후에 그들이 예수를 송사하고 죽이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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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nesses to Jesus
30 d“I can do nothing on my own. As I hear, I judge, and emy judgment is just, because fI seek not my own will gbut the will of him who sent me. 31 hIf I alone bear witness about myself, my testimony is not true. 32 There is ianother who bears witness about me, and jI know that the testimony that he bears about me is true. 33 kYou sent to John, and he has borne witness to the truth. 34 Not that lthe testimony that I receive is from man, but I say these things so that you may be saved. 35 He was a burning and mshining lamp, and nyou were willing to rejoice for a while in his light. 36 But lthe testimony that I have is greater than that of John. For othe works that the Father has given me pto accomplish, the very works that I am doing, qbear witness about me that rthe Father has sent me. 37 And the Father who sent me shas himself borne witness about me. His voice you have never heard, this form you have never seen, 38 and uyou do not have his word abiding in you, for you do not believe the one whom he has sent. 39 vYou search the Scriptures because you think that in them you have eternal life; and wit is they that bear witness about me, 40 yet xyou refuse to come to me that you may have life. 41 yI do not receive glory from people. 42 But zI know that you do not have athe love of God within you. 43 I have come bin my Father’s name, and cyou do not receive me. dIf another comes in his own name, you will receive him. 44 How can you believe, when you receive glory from one another and edo not seek the glory that comes from fthe only God? 45 Do not think that I will accuse you to the Father. There is one who accuses you: Moses, gon whom you have set your hope. 46 For if you believed Moses, you would believe me; for hhe wrote of me. 47 But iif you do not believe his writings, how will you believe my words?”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5:30–47.

30절) 이 짧은 구절에 일인칭 단수 형태로 주님께서 직접 증거하신다. 영어에서는 8번( “By myself,” “I can do nothing,” “I judge,” “I hear,” “my judgment,” “I seek,” “not to please myself,” “who sent me.”), 헬라어에서는 9번이 사용된다. 

31절) 셀프 증거는 참된 증거로 인정 받을 수 없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다수의 증인을 요구했다. 
Jesus’ statement is in keeping with OT teaching regarding the need for multiple witnesses (Deut. 17:6; 19:15; cf. Num. 35:30).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32.

32절) 결국 이후 구절 속에서 예수님께서 증인으로 소환한 대상은 먼저는 세례 요한(33-35)이고, 예수의 역사(36) 또한 하나님 아버지(37), 성경(39) 특별히 모세 율법(45)이다. 

33-35절) 첫 증인은 바로 세례요한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요한의 정체성은 바로 불타고 비추이는(burning and shining lamp) 등불이다. 요한 본인이 빛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3:28-30) 결국 그 빛은 그분의 오심을 예비하고 비추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며 등불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마 25:3-4)
The first stories of this Gospel involved John the Baptizer, whose role was defined as that of witness (1:7) and who uttered the first significant testimony concerning Jesus,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1:29). In reintroducing this witness, the opponents were reminded that they had sought out John and that he “testified to the truth” (5:33). Their own investigation should have prepared them for this truth. But although they listened to John and willingly rejoiced (ēthelēsate agalliathēnai) during his hour (hōra), his burning testimony (5:35)43 obviously had no lasting effect upon them.
The themes of witness, light, and truth are all linked here in support of the claims of Jesus. But the reader is quickly reminded that the authority of Jesus is not dependent on human acknowledgment. If that were the case, then the hope of human salvation would be in trouble (5:34). But salvation is from God and is not based on mere human testimony.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44–245.

36절)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는 바로 예수께서 직접 행하신 역사이다. 왜냐하면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이 예수의 역사와 가르침을 보고 들으며 이러한 권세와 능력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백했다.(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의 증거) 

37-38절) 세번째 증인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이 증인은 인간들로서 인식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육체적으로 보고 듣는 것은 구약을 통해서 일부 증거되기는 했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이들 속에 거하지 않기때문이다. 구약에 직접 족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중간기를 거치면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이 없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전통을 의지하게 되었고 그들의 삶가운데 꿰뚫고 들어오신 하나님이신 주님을 받아들수가 없었던 것이다. 
In other words, Jesus turned a defense into a charge. His testimony, he argued, would not work with them because they would not let it work. Accordingly, they were unable to experience the kind of encounters (“hear” and “see” God) that marked the lives of the patriarchs, Moses, and the prophets. The maxim that often has been applied to the post-Old Testament (intertestamental) era and could apply to these opponents was: There was no new word from God to them.46 They relied on tradition and could not accept the testimony of the in-breaking of God into their lives.
46 R. H. Charles categorized the period following the OT canon and the development of the apocalyptic period by this designation. Cf. the similar idea at the time of Eli in 1 Sam 3:1 (see The Apocrypha and Pseudepigrapha [Oxford: Clarendon Press, 1913], 2. viii–ix, and esp. p. 163).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45–246.

* 예수의 증인들

1. John the Baptist5:32–36; cf. 1:7–8, 15, 19, 32–34; 3:26
2. Jesus’ own works5:36; cf. 10:25, 32, 37–38; 15:24
3. God the Father5:37–38; 8:18
4. The Scriptures, esp. by Moses5:39, 45–47
5. Jesus himself3:11, 32; 8:14, 18; 18:37
6. The Spirit14:26; 15:26; 16:8–11, 13–14
7. The disciples, esp. John15:27; 19:35; 21:24


39-40절) 성경연구 자체가 영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바로 성경이 생명을 주시는 분,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연구를 통해서 성경 지식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올바른 믿음과 이에 따라 그 말씀에 순종하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된다. 
Eleven texts of Matthew are formula texts concerning Jesus (1:22; 2:15, 17, 23; 4:14; 8:17; 12:17; 13:35; 21:4; 26:56; 27:9). Two are virtually formula texts (2:5; 21:42), and two additional texts are related to fulfillment (5:17; 21:16). Also three fulfillment texts are related to John the Baptist (3:3; 11:10; 17:10–12), and two are related to others (13:14; 15:7).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여기서 이야기하는 성경은 어떤 성경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 신,구약 66권의 성경을 가지고 이것을 통해서 영생의 말씀을 상고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성경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이었다. 

43-44절) 예수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믿음, 성경 연구가 선행되지 않을때 우리는 거짓 선지자를 따르게 된다. 예수를 송사하는 이들이 주님을 믿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고 서로 영광을 취하기 때문이다. 

45-47절) 모세를 믿었다면 예수를 믿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가 주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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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uthority of the Son
19 So Jesus said to them, “Truly, truly, I say to you, ethe Son fcan do nothing of his own accord, but only what he sees the Father doing. For whatever the Father5 does, that the Son does likewise. 20 For gthe Father loves the Son and shows him all that he himself is doing. And hgreater works than these will he show him, so that iyou may marvel. 21 For as the Father jraises the dead and kgives them life, so lalso the Son gives life mto whom he will. 22 nThe Father judges no one, but ohas given all judgment to the Son, 23 that all may honor the Son, just as they phonor the Father. qWhoever does not honor the Son does not honor the Father who sent him. 24 Truly, truly, I say to you, rwhoever hears my word and s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He tdoes not come into judgment, but uhas passed from death to life.
25 “Truly, truly, I say to you, van hour is coming, and is now here, when wthe dead will hear x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ose who hear wwill live. 26 yFor as the Father has life in himself, zso he has granted the Son also to have life in himself. 27 And he ahas given him authority to execute judgment, because he is the Son of Man. 28 Do not marvel at this, for van hour is coming when ball who are in the tombs will hear his voice 29 and come out, cthose who have done good to the resurrection of life, and those who have done evil to the resurrection of judgment.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5:19–29.

19절)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이는 앞서 언급된 17-18절의 내용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다른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신다. 여기서 아들은 아버지의 행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해서 종속성을 주장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동등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21, 22, 23절에서 동등함, 같은 역할을 행하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20절)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에게 자기의 행하는 모든 일을 보이시고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신다. 이 큰일은 바로 죽음에서 일으키시는 사건으로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포함한다. 이렇게 주님이 행하시는 큰 일들로 인해 사람들은 기이히 여기게 되고 믿게 되는 것이다. 

21절)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유일한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일을 아들도 행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Jesus’ statement that the Son also gives life to whom he will is another claim to deity, showing that Jesus does what only God can do, for the OT makes clear that raising the dead and giving life are the sole prerogatives of God (cf. Deut. 32:39; 1 Sam. 2:6; 2 Kings 5:7). This “life” is both the new “life” now given to believers (John 5:24; 11:25–26; 2 Cor. 5:17) and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t Christ’s second coming (1 Cor. 15:42–57; 1 Thess. 4:13–18; see Dan. 12:2).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31.

22-23절) 이제 하나님이 유일한 또다른 특권, 심판을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위임하신다. 이를 통해서 아들을 아버지와 동일하게 공경하고 예배할 것을 원하셨다. 그런데 이 아들을 믿지 않는자는,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이다. 

24절) 요한이 매우 강조하는 개념인 영생, 바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된다. 이는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영생이란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가는 것을 말한다. 

* 진실로 진실로
19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4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절) "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5-29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에 듣는자는 살아나고 이때 선한 일을 행한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게 된다. 

26절) 아들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이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아들로 하여금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 선포는 앞선 1:4의 내용의 확증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권세로 이러한 일(38년된 병자를 고침)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자신에게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심판하는 권세가 있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권세가 있음을 말씀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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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ling at the Pool on the Sabbath
After this there was a ofeast of the Jews, and Jesus went up to Jerusalem.
Now there is in Jerusalem by pthe Sheep Gate a pool, in Aramaic1 called Bethesda,2 which has five roofed colonnades. In these lay a multitude of invalids—blind, lame, and qparalyzed.3 One man was there who had been an invalid for thirty-eight years. When Jesus saw him lying there and knew that he had already been there a long time, he said to him, “Do you want to be healed?” The sick man answered him, “Sir, I have no one to put me into the pool when the water is stirred up, and while I am going another steps down before me.” Jesus said to him, r“Get up, take up your bed, and walk.” rAnd at once the man was healed, and he took up his bed and walked.
sNow that day was the Sabbath.
10 So the Jews4 said to the man who had been healed, “It is the Sabbath, and tit is not lawful for you to take up your bed.” 11 But he answered them, “The man who healed me, that man said to me, ‘Take up your bed, and walk.’ ” 12 They asked him, “Who is the man who said to you, ‘Take up your bed and walk’?” 13 Now the man who had been healed did not know who it was, for uJesus had withdrawn, as there was a crowd in the place. 14 Afterward Jesus found him in the temple and said to him, “See, you are well! vSin no more, wthat nothing worse may happen to you.” 15 The man went away and told the Jews that it was Jesus who had healed him. 16 And this was why the Jews xwere persecuting Jesus, ybecause he was doing these things on the Sabbath. 17 But Jesus answered them, “My Father is working until now, and I am working.”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5:1–17.

1절) 유대인의 명절, 요한복음안에 여러 명절에 관련된 내용이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은 어떤 명절인지 분명하게 명시되지는 않는다. 
Jewish Festivals Mentioned in John
Jewish Passover - 유월절2:13, 23; 6:4; 11:55; 12:1
Unnamed (possibly Tabernacles) 5:1
Feast of Tabernacles (or Booths) - 초막적7:2
Feast of Dedication (or Hanukkah) - 수전절10:22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30.

2절)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house of mercy”의 의미이다. 
양문 : 양문은 성전 근처의 북동쪽으로 도시로 들어오는 작은 문이다. 
안식일 논쟁 : 이 이슈를 통해서 예수님의 권위와 본성,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들이 다루어 진다. 

5절) 38년된 병자, 그에게는 이 기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무력함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6-7절)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이 병자는 “물이 동할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식, 기대가 전혀 없는 대답이다. 지금 그가 믿고 있는 것은 물이 동할때 첫번째로 들어가면 낫게 된다는 믿음뿐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의 원인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 베데스다 연못 가에서 물이 동하는때에 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자신도 그런 은혜를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8-9절) 그런 이런 사람을 향해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명령하시는 주님, 놀랍게도 그 병자는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아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날이 안식일 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큰 은혜를 경험한 이후에 적대자들이 의도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떠오르게 한다. 

10-15절) 유대인들의 관심은 병이 나은 놀라운 역사에 있지 않고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 안식일에 물건을 옮기는 것이 그들의 율례에 어긋난다는 것때문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병자는 누가 나를 낫게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으로 그곳에 사람이 많고 예수께서 피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후에 주님께서 이 사람을 만나시고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사람의 반응이 놀랍다. 그는 예수에 적대적인 유대인들에게 나아가서 자신을 고친 사람이, 안식일을 범한 사람이 바로 예수라고 이야기한다. 9장의 장님과는 대조적인 반응이다.(9:33) 

16-18절)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한것으로 인해서 예수를 핍박하는 사람들, 
이러한 적대자들에 대해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이러한 주님의 발언으로 인해서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게 된다. 이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이제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처음은 바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선포하고 있다. 
Carson notes that there is an interesting presuppositional agreement between the rabbis and Jesus.23 Both recognize the sense of God’s constant working in the world (defined by Christian theologians as the doctrine of providence). It is assumed that God continues to work on the Sabbath or the world would collapse.24 Yet the issue for the rabbis revolved around the fact that humans are not God and therefore must not try to act like God. But here is the point the evangelist was making. The working of Jesus is precisely the Johannine proclamation: Jesus is the Son of God and therefore the representative of God (cf. 20:28).25 So (a) if God can continue to work positively in creation on the Sabbath and not totally rest, and (b) if one can recognize that the works of Jesus are the works of God, then the question follows: Why are not the works of Jesus on the Sabbath legitimate?
23 Carson, John, 247–48.
24 For a discussion of the constancy of divine activity see Bultmann, John, 246. For a few examples of Hellenistic philosophical arguments concerning the continuing activity of the gods in the world see Haenchen, John, 1.249. For an important discussion by Sabbatarian S. Bacchiocchi on the relationship between Sabbath and God’s continuation of work see “John 5:17: Negation or Clarification of the Sabbath?” AUSS 19 (1981): 3–19.
25 For a discussion of Jesus as the Shaliach or representative of God see J. Bühner, Der Gesandte und sein Weg im vierten Evangelium … (Tübingen: Mohr-Siebeck), 1977; J. Miranda, Die Sendung Jesu im vierten Evangelium, SBS 87, ed. H. Haag, et al. (Stuttgart: katholisches Bibelwerk, 1977), and J. R. Venema, “An Apologetic Role for Agency in John Five” (Ph.D. diss., Golden Gate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1995).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35–236.

논쟁의 자리에 의도적으로 자신을 던지시는 주님,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래서 자신이 이러한 이적을 행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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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4:39–42.
4: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처음 마을 사람들이 예수를 믿은 것은 여자의 말 때문이었다. 예수가 내가 행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이를 말했기 때문에.
- 내가 예수를 믿은 것은 어떤 계기로 인함인가? 내 친구가 만난 하나님, 
하지만 예수께서 사마리아에 이틀 유하시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나서 그들의 믿음의 근거가 바뀌게 되었다. 더이상 이 여인으로 인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으로 인해서 믿게 된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여인에게 말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너의 말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친히 그분을 통해서 말씀을 들어보니 그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을 누구를 통해서 믿고 있는가? 이제 그 누군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들었기에 내가 개인적으로 만난 주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앞서 2장 갈릴리 가나에서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현장에서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가지는 믿음,
3장 니고데모의 믿음(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경험),
4장 사마리아 여인의 믿음-사마리아 마을 사람들의 믿음 /

결국 바른, 온전한 믿음을 위해서는 결정적인 만남, 깨달음, 경험이 요구되어진다. 우리의 믿음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 선교한국이라는 대회의 모든 프로그램의 준비와 진행, 당일의 집회와 여러 만남들을 통해서 입체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기회가 우리와 모든 사람들에게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하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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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Heals an Official’s Son
46 So he came again to hCana in Galilee, iwhere he had made the water wine. And at Capernaum there was an official whose son was ill. 47 When this man heard that Jesus jhad come from Judea to Galilee, he went to him and asked him to come down and heal his son, for he was at the point of death. 48 So Jesus said to him, k“Unless you3 see signs and wonders you will not believe.” 49 The official said to him, “Sir, come down lbefore my child dies.” 50 Jesus said to him, “Go; your son will live.” The man believed the word that Jesus spoke to him and went on his way. 51 As he was going down, his servants4 met him and told him that his son was recovering. 52 So he asked them the hour when he began to get better, and they said to him, “Yesterday at the seventh hour5 the fever left him.” 53 The father knew that was the hour when Jesus had said to him, “Your son will live.” And he himself believed, mand all his household. 54 nThis was now the second sign that Jesus did when he had come from Judea to Galilee.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4:46–54.


46절) 왕의 신하, 아마도 이방의 백부장이었을 것이다. 3장과 4장의 내용을 통해서 볼때 요한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유력한 유대인들의 선생), 사마리아 여인(부정한 여인), 왕의 신하(로마 정부의 관리)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을 이야기함을 통해서 이 복음전파의 대상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리기를 원했다. 
- 본문은 앞서 행해진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에 이은 두번째 이적이다. 이 두 사건은 같은 맥락속에서 진행된다. 둘 모두 주님께 간절한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책망을 하시고 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는 놀라운 반응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이 주님의 이적은 여러 사람들의 믿음을 이끌어낸다. 이것이 이 두기사의 핵심 주제이다. 
-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의 사건과 유사성과 상이성이 있다.  In the Synoptic story the problem was either a paralyzed (Matt 8:5–6) or dying (Luke 7:2) servant/slave of the centurion, not a dying son as in the Johannine story (John 4:46).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19.

48-50절) 주님께서는 먼저 이 신하와 지켜보는 이들을 향해 그들이 믿음을 위해서 표적과 기사를 구하는 것에 대해서 꾸짖으신다.  본문에서 표적은 아주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라는 표현은 여기서 신하와 갈릴리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들 모두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표적의 의미가 먼저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통해서 그분을 믿게 하는 것이었기에 이것, 표적과 기사 자체는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이것만을 좇으려는 무리들의 잘못된 신앙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 갈릴리 가나의 기적과 비교해볼때 더욱 의미가 드러난다. 
Indeed, as indicated earlier, the parallels in the two stories are striking. But here they diverge somewhat. In the first Cana story the mother immediately recognized that Jesus was in charge of his actions; therefore she said, “Do whatever he tells you” (2:5). In this story, however, the man moved a little more slowly, and in his begging he stressed the seriousness of his son’s situation (4:49). But the next stage of the stories is again similar. Both people heard Jesus’ command, and both did as they were commanded. The servants filled and drew the water/new wine for the guests (2:7–8). The official heard the word and responded appropriately (4:50).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20.
신하는 주님의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간절히 구한다. 간절함으로 자신의 아이가 죽기전에 내려와서 고쳐달라고 청하는데 이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말씀하신다. 당시 치유의 기적은 치유자가 직접 병자를 고치는 형태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반해서 여기서는 그저 주님께서는 명령하시고 신하는 그 명령에 순종해서 믿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 치유의 명령은 성취되었다. 표적을 즉시로 보지 못한다 하더라고 말씀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씀을 믿고 돌아가는 신하의 마음이 어땠을까? 분명한 확신보다는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간절함을 가지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때 자신의 집안의 종들을 만났고 아들의 회복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나은 때를 구체적으로 묻는데 이를 통해서 구체적인 확신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신앙도 이러하다. 처음부터 구체적인 확신을 가진다기 보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순종의 발걸음은 내딛으면서 그 과정에서 그 말씀이 사실이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의 약속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면서 확신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나아와서 요청하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고 확인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51-54절) 신하가 하인과의 만남을 통해서 분명하게 자신의 아이가 나은 시간을 확인하고 주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때 치유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된후에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게 된다. 여기서 이 신하의 믿음의 도약, 믿음의 단계적인 변화를 보게 된다. 앞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돌아갔던 그 믿음과, 아이의 회복을 확인한 이후의 믿음은 결코 같지 않다. 믿음은 성경적인 지식의 확장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성장해 가는 것이다. 
The mention of a multistage believing pattern on the part of the man (“believed,” 4:50, and then “believed,” after confirmation of the time, 4:53) should not trouble western readers because the evangelist was fully aware of stages within the believing pattern of persons related to Jesus. Many Christians have developed single-dimension theories of believing that in fact contradict growth patterns of believing in personal experience as well as biblical perspectives. Theology must be related to actual life patterns if it is to be authentic.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21.


Jesus’ Ministry in Galilee
Jesus spent most of his life and ministry in the region of Galilee, a mountainous area in northern Palestine. Jesus grew up in the hill town of Nazareth, about 3.5 miles (5.6 km) south of the Gentile administrative center of Sepphoris. Soon after he began his public ministry, Jesus relocated to Capernaum on the Sea of Galilee. By Jesus’ time, a thriving fishing industry had developed around the Sea, and several of Jesus’ disciples were fishermen.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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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Meanwhile the disciples were urging him, saying, k“Rabbi, eat.” 32 But he said to them, “I have food to eat that you do not know about.” 33 So the disciples said to one another, l“Has anyone brought him something to eat?” 34 Jesus said to them, m“My food is n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oto accomplish his work. 35 Do you not say, ‘There are yet four months, then comes the harvest’? Look, I tell you, lift up your eyes, and see that pthe fields are white for harvest. 36 Already the one who reaps is receiving wages and gathering fruit for eternal life, so that qsower and rreaper smay rejoice together. 37 For here the saying holds true, t‘One sows and another reaps.’ 38 I sent you to reap uthat for which you did not labor. Others have labored, vand you have entered into their labor.”
39 Many Samaritans wfrom that town believed in him xbecause of ythe woman’s testimony, “He told me all that I ever did.” 40 So when the Samaritans came to him, they asked him to stay with them, and he stayed there two days. 41 And many more believed zbecause of his word. 42 They said to the woman, “It is no longer because of what you said that we believe, for we have heard for ourselves, aand we know that this is indeed bthe Savior cof the world.”
43 After dthe two days he departed for Galilee. 44 (For Jesus himself had testified ethat a prophet has no honor in his own hometown.) 45 So when he came to Galilee, the Galileans welcomed him, fhaving seen all that he had done in Jerusalem at the feast. For gthey too had gone to the feast.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4:31–45.

32-34절) 먹을 것을 찾으러 갔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먹을 것을 드리려고 하자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할 먹을 양식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제자들은 누가 먼저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는지 서로 묻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먹을 양식은 바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여 그것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은 물이나 먹을 양식과 같은 비유를 통해서 자신이 계시하시고 알려주기 원하는 내용들을 전하셨다. 물론 이런 가르침을 제자들은 단번에 이해하지는 못한다. / 제자들의 일차적인 관심과 주님의 일차적인 관심이 달랐다. / 이처럼 주님은 이중적인 의미의 가르침을 많이 사용하셨다.(니고데모-3:4, 사미리아여인-4:11, 제자들-4:32) 
-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 (e.g., 5:23, 24, 30, 37; 6:38, 44; 7:16)
- 양식, 음식에 대한 비유는 마태복음의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사건과 일맥상통한다.  Moreover, Jesus’ comparison here of food to the will of God is, as Dodd suggested, quite consistent with the message from the first temptation in the Gospel of Matthew (4:3–4).193 Bread is there contrasted with the word that issues from the mouth of God when Jesus obviously was hungry, having fasted for the long period of forty days in the wilderness (Matt 4:4).
193 C. H. Dodd, Historical Tradition, 325–26. The Lukan temptation statement (4:3–4) is not as fully defined.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12–213.

35-36절) 물리적으로는 추수하기 위해서는 넉달이 필요하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이미 복음으로 추수할 것들을 바라볼 것을 말씀하신다. 이에 하나님을 믿는 이 과정을 통해서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쁨에 동참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마지막 때에는 뿌리는 것과 추수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36절은 암 9:13을 연상케 한다.
추수때의 의미
뿌리는 자와 추수하는 자
- 요한복음은 기쁨을 강조한다. (4:36; joy is a significant subtheme in John: cf. also 3:29; 8:56; 11:15; 14:28; 15:7; 16:20–22 20:20)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14.

37-38절) 여기 등장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 먼저 노력하여 씨를 심는 사람들은 가깝게는 주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 특히 세례요한과 그의 제자들이다. 하지만 더 넓게 생각하면 구약의 저자들이나 선지자들을 포함한다. 이들의 수고로 추수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주님의 제자들이다.
- 지금 여기서 추수하는 자와 거두는 자중에 강조하는 것은 추수하는 자이다. 그 추수하는 기쁨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39-42절) 세상의 구주. 
The confession of Jesus as “the Savior [sōtēr] of the world” (4:42) is used only once in this Gospel and only once in the Johannine Epistles (1 John 4:14). In the Old Testament the designation of Savior is applied a few times to God as the saving one (e.g., Ps 24:5; Isa 12:2; 43:3, 11; 63:8). It is used in a similar way of God in Luke (1:47), 1 Timothy (1:1; 2:3; 4:10), Titus (1:3; 2:10; 3:4), and Jude (25). It is applied to Jesus by Luke (at 2:11; Acts 5:31; 13:23) and in a few other places (Eph 5:23; Phil 3:20; 2 Tim 1:10; Titus 1:4; 2:13; 3:6; 2 Pet 1:1, 11; 2:20; 3:2, 18).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15.
처음 마을 사람들이 예수를 믿은 것은 여자의 말 때문이었다. 예수가 내가 행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이를 말했기 때문에. 하지만 예수께서 사마리아에 이틀 유하시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나서 그들의 믿음의 근거가 바뀌게 되었다. 더이상 이 여인으로 인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으로 인해서 믿게 된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여인에서 말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너의 말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친히 그분을 통해서 말씀을 들어보니 그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을 누구를 통해서 믿고 있는가? 이제 그 누군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들었기에 내가 개인적으로 만난 주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43절) 수가성에서 갈릴리까지의 거리는 약 80km정도이다. 이는 도보로 적어도 2-3일 걸리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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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Jesus said to her, “Go, ocall your husband, and come here.” 17 The woman answered him, “I have no husband.” Jesus said to her, “You are right in saying, ‘I have no husband’; 18 for you have had five husbands, and the one you now have is not your husband. What you have said is true.” 19 The woman said to him, “Sir, I perceive that pyou are qa prophet. 20 rOur fathers worshiped on sthis mountain, but you say that tin Jerusalem is uthe place where people ought to worship.” 21 Jesus said to her, v“Woman, believe me, wthe hour is coming when xneither on this mountain nor in Jerusalem will you worship the Father. 22 yYou worship what you do not know; zwe worship what we know, for zsalvation is afrom the Jews. 23 But bthe hour is coming, and is now her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cin spirit and dtruth, for the Father eis seeking such people to worship him. 24 God is spirit, and 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truth.” 25 The woman said to him, “I know that fMessiah is coming (he who is called Christ). When he comes, ghe will tell us all things.” 26 Jesus said to her, h“I who speak to you am he.”
27 Just then ihis disciples came back. They marveled that he was talking with a woman, but no one said, “What do you seek?” or, “Why are you talking with her?” 28 So the woman left her water jar and went away into town and said to the people, 29 “Come, see a man jwho told me all that I ever did. Can this be the Christ?” 30 They went out of the town and were coming to him.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4:16–30.

16-18절) 대화의 주제를 남편으로 바꾸시는 주님, 지금 주님께서는 생수와 그녀의 성윤리를 연결시키고 있다. 그녀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를 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녀의 죄악된 삶에 대한 내용을 다루어야만 했다. 그녀는 자신과 관련된 이 문제를 다루기 싫었다. 그래서 애써서 이 주제를 피하기 위해서 남편이 없다고 대답했음에도 주님께서는 그녀로 하여금 이 문제에 직면하게 하신다. 유대 관습에서는 3명의 남편이 허락되었다. 
남편이 없다는 여인의 대답에 대해서 꾸짖음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으로 네 말이 옳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녀의 내밀한 비밀을 말하시는 주님, 이 대답을 통해서 그녀의 죄와 주님의 전지하심을 드러내고 있다.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다.” 앞서 5명의 남편들이 죽었는지 아니면 이혼을 한것인지 알수 없지만 지금 결혼관계에 있지 않고, 지금 함께있는 남자도 공식적인 결혼관계를 거치지 않은 상태인 것을 지적하셨다. 결국 이 대답을 통해서 그 여인은 주님을 선지자로 인정한다. 왜냐하면 선지자와 같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는 자신의 이러한 내밀한 문제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주님께서는 대화의 주제를 영적인 부분으로 이끌기를 원하셨고 이제 여인의 관심이 예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19-20절) 주님을 선지자로 인정하는 여인,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을 유대인들은 모리아산에 성전을 지었다. 

21절) "이산(그리심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예배를 위해서 특정한 도시에 있는 성전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계신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믿는 자들가운데 내주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모든 장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새로운 성전이 될 것이다. 
-  Jesus is inaugurating a new age in which people will not have to travel to a physical temple in one city to worship but will be able to worship God in every place, because the Holy Spirit will dwell in them, and therefore God’s people everywhere will become the new temple where God dwells (cf. 1 Cor. 3:16–17; Eph. 2:19–22).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28.

영적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주님이 사용하신 비유

Physical Item
Spiritual Truth
References
Light
true knowledge and presence of God; moral purity
1:4–5, 7–9; 3:19–21; 8:12; 9:5; 11:9–10; 12:35–36, 46; cf. 1 John 2:8–10
Jerusalem temple
Christ’s physical body
2:19–22
Physical birth
spiritual birth: being “born again”
1:13; 3:3–8; cf. 6:63; 1 John 3:9; 4:7; 5:1, 18
Wind
the Holy Spirit
3:8
Water
the Holy Spirit within believers
4:7–15; 7:37–39; cf. 1 John 5:6, 8
Food
doing the will of God
4:31–34
Bread
Jesus himself, his life and death
6:32–51, 58
Flesh and blood
Jesus’ death
6:53–56; cf. 1 John 1:7; 5:6, 8
Door
path to eternal life in Jesus
10:1–9
Shepherd
Jesus’ sacrifice and care for his people
10:11–18, 26–28; 21:15–17
Vine
Jesus in relationship to his followers
15:1–11
Cup
God’s wrath toward sin
18:11
Breath
the Holy Spirit coming upon the disciples
20:22


24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 이는 하나님께서 어떤 물질적인 요소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대단히 놀라운 방식으로 어떤 한 장소에 제한되어 예배를 받으신는 분이 아니셔서 모든 곳에 존재하신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우상을 만드는,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이유로 그분은 어떠한 사물로 형상화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25-26절) 주님은 자기 자신을 자주 계시하시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여인과의 대화에서 주님께서 내가 보로 네가 말하는 메시야, 그리스도다라고 답변하신다. 
-  In response to her reply, Jesus immediately seized the opportunity and declared (lit.), “I am [egō eimi; 4:26], the one speaking to you.” In John the use of egō eimi is an important theological theme that is used in the mouth of Jesus as a self-identifying vehicle for announcing some important theological idea concerning him.182 Normally the expression is accompanied by some thematic description such as “bread of life” (6:35), “light of the world” (8:12), “door of the sheep” (10:7), “good shepherd” (10:14), or “resurrection and life” (11:25). But in a few places like the present one egō eimi is used without such an accompanying description (cf. also 6:20; 8:58; 18:5). In these texts the shocking reality of a confession of the divine-human presence is being highlighted, and there is no need for discussion with Jesus about who he is. Elsewhere the egō eimi statement by itself is used to emphasize that Jesus is the startling presence of the divine, and in one case it highlights the fact that resistance to him is impossible (18:5). The particular force of the statement here needs to be noted. The conversation is finished!
182 For a discussion concerning the use of ἐγώ εἰμι here, see E. Freed, “Ego Eimi in John 1:20 and 4:25,” CBQ 41 (1979): 288–91.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209–210.

27절)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는 제자들, (그녀는 여자였고 사마이라인이었고 게다가 평판이 좋지 않은 여인이었다.) 하지만 주님에게 이러한 조건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주님은 모든 이들의 구주이시며, 죄인들의 구주이시기 때문이다. 

28-30절)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가 이전에는 그토록 보기 싫어하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난 주님을 소개하며 “와 보라”라고 초청한다. 내가 이전에 행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분, 그분은 선지자 이자 메시야다라는 확신속에서 그들을 초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그 여인의 초청에 마을 사람들이 응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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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and the Woman of Samaria
Now when Jesus learned that the Pharisees had heard that Jesus was making and bbaptizing more disciples than John 2(although Jesus himself did not baptize, but only his disciples), he left Judea and departed cagain for Galilee. dAnd he had to pass through Samaria. So he came to a town of Samaria called Sychar, near the field ethat Jacob had given to his son Joseph. Jacob’s well was there; so Jesus, fwearied as he was from his journey, was sitting beside the well. It was about the sixth hour.1
A woman from Samaria came to draw water. Jesus said to her, f“Give me a drink.” (For his disciples had gone away into the city to buy food.) The Samaritan woman said to him, “How is it that you, a Jew, ask for a drink from me, a woman of Samaria?” (gFor Jews have no dealings with Samaritans.) 10 Jesus answered her, “If you knew the gift of God, and who it is that is saying to you, ‘Give me a drink,’ you would have asked him, and he would have given you hliving water.” 11 The woman said to him, “Sir, you have nothing to draw water with, and the well is deep. Where do you get that living water? 12 iAre you greater than our father Jacob? jHe gave us the well and drank from it himself, as did his sons and his livestock.” 13 Jesus said to her, “Everyone who drinks of this water will be thirsty again, 14 but kwhoever drinks of the water that I will give him lwill never be thirsty again.2 The water that I will give him will become m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15 The woman said to him, “Sir, ngive me this water, so that I will not be thirsty or have to come here to draw water.”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4:1–15.

4장의 사마리아여인과의 대화는 앞서 요한이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물과 성령, 씻음과 정결예법이라는 2-3장의 내용과 주제를 생각나게 한다. 
1-2절) 본문은 앞서 2:23-25절의 내용을 상기시킨다. 
3-5절)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시는 중에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서 한 여인을 만나신다. 
주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신 이유, 본문은 통행하여야 했다(had to pass)라고 기록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적인 작정속에 있는 그분의 계획이었다는 의미이다. 
Jesus’ itinerary was subject to the sovereign and providential plan of God (“had to” translates Gk. dei, “to be necessary,” which always indicates divine necessity or requirement elsewhere in John: 3:7, 14, 30; 9:4; 10:16; 12:34; 20:9).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27.
사마리아는 과거 앗수르의 정복으로 인해 생긴 혼혈로서 부정하게 여겨졌다.(왕하 17:5-6, 24) 에스라 9-10장에 보면 바벨론 포로이후의 이스라엘은 순결하고 하나님께 충성된 백성으로서의 열망속에서 사마리아와 다른 혼혈족과의 관계를 금하도록 했다. 

6절) 행로에 피곤하신 주님이 야곱의 우물에 앉아서 쉬셨다. 이는 주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11:35, 19:28) / 그 시간이 제육시, 정오의 가장 더운, 뜨거운 시간이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이 더위를 피해 아침이나 저녁의 서늘한 시간에 물을 길러 오지 못한, 않은 이유는 이후에 주님과의 대화에서 밝혀진다. 

7절) 대화의 주도권을 주님이 가지시고 대화를 시작하신다. 우물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대화의 주제인 물을 달라는 것을 대화를 열어가시는 주님
- 성경안에서 우물은 만남의 장소이다. 아브라함의 종과 리브가의 만남(창 24:11) 야곱과 라헬의 만남(창 29장)

9절)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부정한 사람들이라고 여겼고, 그러한 정결 예법에 의해서 그들이 사용한 물건을 사용하거나 음식을 먹는 행위는 신앙심 깊은 유대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유대인들은 지름길인 사마리아를 통하는 길을 거치지 않고 의도적으로 먼길을 택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 앞서 2장의 포도주 사건에서 정결 예법에 대한 부분이 반복되어 강조된다. 

10절) 주님이 여인에게 말씀하시는 생수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말 그대로 신선한 물의 의미와 동시에 신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의미하는 것이다. 
Jesus’ words about living water again involve double meaning (see notes on 3:14; 8:24; 11:50–51; 19:19; cf. also 3:7–8). Literally, the phrase refers to fresh spring water (Gen. 26:19; Lev. 14:6), but John 7:38–39 identifies this “living water” as the Holy Spirit dwelling within a believer (cf. Jer. 2:13; Ezek. 47:1–6; Zech. 14:8; also Isa. 12:3).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27.

12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의 이야기를 듣고 여인은 주님을 야곱보다 더 큰 분입니까라고 묻는다. 이는 여인에게 야곱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자신들이 야곱의 진정한 후손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이 주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이해는 왜곡되어 있다. 

Tangible Images of Believing
John vividly illustrates what it is to believe in Jesus through the use of a number of physical images.

Drinking living water
4:10–14; 7:37–38
Eating the bread of life
6:35, 47–48, 50–51, 53–58
Eating Jesus’ flesh and drinking his blood
6:53–56
Walking in and having the light
8:12; 12:35–36
Abiding/remaining in Jesus and his Word
6:56; 8:31; 15:7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27.

15절)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생생한 비유들을 사용하시는데 도리어 이 비유들이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생수의 비유를 들은 여인은 바로 그 생수를 내게 달라고 주님께 강력히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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