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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God So Loved the World
16 “For hGod so loved ithe world,9 j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kperish but have eternal life. 17 For l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mto condemn the world, but in order that the world might be saved through him. 18 nWhoever believes in him is not condemn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is condemn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obelieved in the name of the only Son of God. 19 pAnd this is the judgment: qthe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and rpeople loved the darkness rather than the light because stheir works were evil. 20 tFor everyone who does wicked things hates the light and does not come to the light, ulest his works should be exposed. 21 But whoever vdoes what is true wcomes 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clearly seen that his works have been carried out in God.”
16 “For hGod so loved ithe world,9 j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kperish but have eternal life. 17 For lGod did not send his Son into the world mto condemn the world, but in order that the world might be saved through him. 18 nWhoever believes in him is not condemn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is condemn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obelieved in the name of the only Son of God. 19 pAnd this is the judgment: qthe light has come into the world, and rpeople loved the darkness rather than the light because stheir works were evil. 20 tFor everyone who does wicked things hates the light and does not come to the light, ulest his works should be exposed. 21 But whoever vdoes what is true wcomes 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clearly seen that his works have been carried out in God.”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3:16–21.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표현은 이스라엘에게는 대단히 놀라운 선언이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앞서 15절에서 “저를 믿는 자마다, whoever believe in him”의 근거가 된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저 감정적인, 감상적인 고백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행동과 연결되는데 그것은 바로 그 외아들을 주신 것이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주신 하나님, 그 희생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이것의 의미는 “영원한 심판에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된다는 것이다.” 이 영원한 생명, 영생은 풍성한 기쁨과 하나님의 현존 속에서의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영원히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그 아들을 믿는 것이 영벌과 영생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생은 언제 얻고 누리는 것인가? 이것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현재 우리의 삶가운데 의미있는 수준으로 누리고 경험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사랑을 강조하는 반면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누구든지, whoever”,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을 강조한다.
17절)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신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통해서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이다.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낸 분을 나타내고 그가 맡긴 메시지를 선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고 예수님이 바로 보냄을 받는 자인 것이다. 16절과 연속해서 심판, 멸망이 아니라 영생,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일반적으로 본문을 통해서 구원의 긍적적인 부분, 하나님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데 구원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면, 심판에 대한 부분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 요한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반복, 강조한다.
John’s favorite designation of Jesus is that of the Son “sent” by the Father (see also vv. 34–36; 5:19–26; 6:40; 8:35–36; 14:13; 17:1).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25.
이제 주님이 보내는 분으로 그분의 제자들을 보내신다.(9:7, 20:21-22)
18절) 심판의 기준은 그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나누어 진다. 세상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외의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오직 그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여타 다른 종교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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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verse also refutes the assertion that a sincere person following any religion can have eternal life with God (cf. 14:6; Acts 4:12; Rom. 10:13–17; 1 Tim. 2:5–6; regarding OT believers who looked forward to Christ, see John 8:56; Rom. 4:1–24; Heb. 11:13, 26).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25.
-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 믿지 않는 자는 독생자를 믿지 않음으로 이미 심판을 받았다. 이는 불신자들에게 임할 심판, 정죄가 아니라 이미 현존하는 심판, 정죄를 피해야할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앞으로 임할 심판이 아니라 이미 임한 심판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16-18절은 본문 이해를 위해서 함께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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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e 16 serves as a statement of fact involving the agency (the Son) God used to bring salvation to the world. Verse 17 expands on God’s intention and clearly identifies God’s Purpose in sending the son. Verse 18 provides a pointed reality statement concerning the present nature of judgment, a reality no reader should fail to understand. Only when the three verses are allowed to hang together does the reader begin to grasp the full meaning of the coming of Jesus and the Johannine message of salvation expounded here.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183.
19-21절) 이미 임한 심판은 바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지 아니함으로, 그것의 심판으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두움을 사랑하기에 믿지 않고, 믿지 못하는 것으로도 연결된다.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믿으면 빛을 사랑하게 되고, 빛을 사랑하면 믿게 된다는 것이다. / 세상은 예수를 미워하고 악을 행한다.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 중심적인 사람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다. a
- 이는 믿음과 행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우리에게 준다.
The coordination of works and faith in Jas 2:14–26, which Luther found so difficult to accept, is an integral part of New Testament thought (e.g., Eph 2:8–10; Phil 2:12–13; Heb 9:14; 2 Pet 2:8).111 The
111 Luther’s hostility to works stemmed from his historical revulsion at the church’s view of penance and from a misunderstanding of Paul’s rejection of the “works of the law” as a basis for justification. Paul did not attack law per se but the wrong perception of the role of law.
111 Luther’s hostility to works stemmed from his historical revulsion at the church’s view of penance and from a misunderstanding of Paul’s rejection of the “works of the law” as a basis for justification. Paul did not attack law per se but the wrong perception of the role of law.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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