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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로부터의 창조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4) 질서있는 창조

5) 그 종류대로 창조

6) 선하신 창조

 

"창세기 1장의 날들의 길이와 관련해서는 하나님께서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결정에 이르기에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으시기로 선택하셨다고 할만하게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성의 참된 시금석은 선한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분들에게 대해서 어느정도 관대하고 친절하게 행동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되려는지도 모른다" -그루뎀

 

인간의 인간됨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함의

1) 인간이 다른 동물로 부터 진화되었다는 모든 관념을 거부한다.

2) 하나님을 잘 반영하는 형상 역할을 잘 감당해야만 한다.

3)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마치 인간이 최고의 존재인 양 생각하는 인간중심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리고 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형성함에 있어서 그 출발점은 창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라고 할수 있다. 보수주의의 관점에서는 창조를 이해할때 6000년이라는 시간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무리하게 접근하기도 하고, 진화론자의 경우에는 빅뱅이나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면서 45-200억년을 도입하기도 한다. 모두 극단의 위치이고 이부분에서는 칼빈이 이야기한대로 성경이 말하는곳까지 가고,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멈춰서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의 특징들에서 나타난 하나님 창조의 특징은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부분이며, 그렇기에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창조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것과 과학적인 해석의 접근을 통해서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들과의 간극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한다.

 

나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

 

-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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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간사소식 86(2012-9-17)

 

지금 창밖에는 비와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제 16호 태풍 산바가 현재 남해안에 상륙하여 북상중이기 때문입니다. 태풍은 많은 피해를 일으키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번 볼라벤으로 인해 강풍으로 인해 낙과피해가 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태풍으로 인해서 4대강 녹차라테라고 불리던 녹조현상이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이처럼 태풍은 강이나 바다, 대기를 완전히 뒤집어서 자연을 깨끗하게 정화시킵니다. 우리 인생에 고난이라고 불리우는 태풍도 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고난을 통과했을 때 인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안목의 확장,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지경이 넓어짐은 피해 못지않게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은 둘째 한솔이의 두돌되는 생일입니다. 원래 오늘부터 죠이 디렉터들과 대표간사들의 제주도 리트릿 일정이 잡혀있었는데 태풍으로 인해서 일정을 내일로 변경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조촐하게 한솔이 생일파티를 해주려고 합니다. 둘째는 첫째 한결이에 비해서 더 에너지가 넘칩니다. 짧은 거리를 갈 때도 절대로 걷는 법이 없습니다. 어찌나 뛰어다니는지... 그리고 가끔 때리고 야단을 쳐도 주눅들지 않습니다. 잠깐 심각한척 하다가 곧바로 웃으면서 안기면 계속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참 사랑스럽습니다. 더 건강하게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사랑스러워 갈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캐나다 출국 준비

일전에 말씀드린대로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TWU(Trinity Western University)에 소속되어있는 ACTS Seminary에서 진행하는 MACS(Master of Arts in Christian Studies)중의 VIEW과정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기도편지 이후에 하나, 둘 필요한 절차들을 진행했습니다. 캐나다 대사관에서 비자 신청을 하고 신체검사까지 진행했고 모두 문제없이 통과되었습니다. 보통 이 기간이 4-8주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2주만에 모두 마쳤습니다. 캐나다 신체검사의 경우 지정된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하고 마닐라에 있는 센터로 결과를 보내서 그곳에서 통과여부를 캐나다 한국 대사관으로 보내서 메일로 결과가 오는 절차라서 조금은 번거롭고 복잡하더라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결과가 빨리 나왔습니다. 그래서 11월 16일 출국을 계획하고 티케팅중입니다.(그곳에서의 첫 학기는 1월 초에 시작합니다.)

제가 계획한 것과는 다르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며 그것에 순종하면서 귀기울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3년의 시간을 우리 가족들과 잘 누리려고 합니다. 한결이(5살)와 한솔이(3살)는입니다. 해외에서의 경험이 아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또한 아내에게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재충전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대로 제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하고 함께 출국합니다. 저의 경우 사역을 하면서 아내 덕을 많이 보고 살았습니다. 아내가 우리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을 많이 책임졌기에 큰 어려움없이 제가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학을 나가게 되면 아내로부터의 재정적인 부분이 끊어지게 되는 상황입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십니다. 물론 이 시간을 통해서 또한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청년들을 위한 귀한 사역의 자리에 부르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의 필요를 지금까지 제 아내를 통해서 채우셨다면 이제 다른 방식으로 또한 채우실 것을 믿습니다. 출국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서 제 후원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합니다. 제가 공부하는 기간동안 재정적인 부분으로 돕기 원하시는 분은 꼭 연락바랍니다.

 

죠이 커피학교

죠이 회관에서 간사들을 대상으로 커피학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커피는 현대인의 기호식품으로 이제 우리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식품이 되었고 이것은 현대사회 문화의 한축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기동 죠이 회관에 오시면 사무실마다 핸드드립을 위한 커피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커피믹스로 만족했었는데 이제는 원두를 주문해서 커피를 내려마시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디 우리 간사들만 그러겠습니까? 요즘 청년들을 만나면 식사비용에 준하는 정도의 비용을 거뜬히 지불하면서 좋은 카페를 찾습니다. 이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나라들의 관심이 커피로, 다음 스텝을 와인으로 향한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와 이제 중국만해도 커피가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코드가 된것이지요. 그래서 먼저 간사들을 대상으로 커피문화를 이해하고 좀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먹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주목표로 하고, 나아가서 우리의 사역에 커피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이 과정을 준비했습니다. 강사로는 현재 신촌의 커피 MBA라는 바리스타학원에서 이사로, 드림커피학교장으로 섬기고 있는 최영하 형제를 섭외했습니다. 인하죠이 후배로 순전히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해서 부탁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 대해서 재료비만 받고 기쁘게 섬겨주기로 했습니다. 영하 형제는 커피와 선교라는 주제를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커피를 통한 창의적인 연구가 더욱 일어날 수 있는 점촉점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캐나다 출국준비(11/16일 출국 예정)

2. 출국전에 개인 후원 목표를 잘 채울 수 있도록

3. 커피학교 프로그램 준비와 진행을 위해서

4. 가족들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서

 

2012년 9월 17일 제기동 죠이 사무실에서

박기모 간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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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이 커피학교 1th

 

1. 목 적

- 커피에 관심이 있는 분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필요한 부분을 압축하여 배우는 커피의 기초과정으로 기존에 교양으로 접하기 어려웠던 내용을 본 과정을 통하여 경험하고 커피에 관심이 있는 분은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도록 Open한 커피 교양 기초과정입니다.

- 커피는 현대인의 기호식품으로 이제 우리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식품이 되었고 이것은 현대사회 문화의 한축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피의 주산지인 나라들이 대부분 창의적 접근지역으로 선교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기에 이슬람권 선교에 있어서 커피가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에도 커피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죠이 커피학교는 일차적으로 커피문화를 이해하고 좀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먹는 방법을 배움과 동시에 이차적으로는 우리의 사역에 커피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일시 및 장소

- 2012년 10월 9일, 16일, 23일, 30일(매주 화요일) 15:00-17:00

- 죠이선교회 회관(동대문구 제기동 274-6)

 

3. 대상

- 죠이선교회 간사들

 

4. 강사

- 최영하 이사(커피 MBA, 드림커피학교장)

 

5. 강의 일정 및 상세 프로그램

구분

1주차(10/9)

2주차(10/16)

3주차(10/23)

4주차(10/30)

이론

유래/품종

로스팅

핸드드립

에스프레소 및 수료

실습

수망로스팅

핸드드립

아메리카노/카페라떼/캬라멜마끼아또

 

6. 회비

- 1인당 2만원(실습비, 간식비, 수료증, 교재비, 강사비 포함)

 

7. 주최 : 죠이선교회 해외사역부

- 필요한 문의사항은 박기모 간사에게(010-2887-9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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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의 특징

1) 신양과 생활의 최고 권위가 성경이라고 믿는 성서주의

2) 회심과 믿음으로써 개인이 철저히 변화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평생 주님으로 모시는 것이 참된 기독교라고 믿는 회심주의

3) 경건한 삶과 예배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십자가 중심주의

4) 복음주의와 사회참여를 통해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활동주의

5) 기독교 교리의 위대한 전통을 존중하는 것(저자 첨부)

 

5장. 복음주의자는 성경을 사랑한다.

복음주의자는 책의 사람이며, 대로는 단 한 권의 사람이다.

* 성경에서 문자대로 해셕할 것과 비유로 해석해야 할것을 어떻게 구분할수 있는가?

1) 이책이나 본문에 나타난 글의 양식은 무엇이며, 이 본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2) 성경이느 본문의 신학적 요점에 주목하고 문자대로 해석하지 않을 경우, 성경의 중요한 내용이나 신학적 메시지를 잃게 되는지 물어야 한다.

 

6장. 종교적이지도 세속적이지도 않은

오늘의 참된 복음주의는 사명을 품고 위험을 무릅쓰면서, 우리의 전도나 삶의 변화로도 복음이 드러나지 못한 이웃에게 찾아가는 것이다.

오히려 종교가 하나님을 중심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전통과 안위, 조직을 채우는 바람에 종교는 세속적으로 되고 말았다.

 

7장. 지배가 아닌 문화변혁

문화를 변혁하기 위해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 스스로 교회가 되어야 한다. 복음주의자는 사회를 바꾸기 전에 개인주의와 소비주의, '지금 여기서 최고의 삶을 누리자'는 식의 긍정의 기독교를 버리고 먼저 개인과 교회, 조직을 개혁하여 급진적인 공동체로서 죽음의 세상을 믿음과 소망, 사랑의 빛으로 밝힐수 있어야 한다. 불행히도 세상을 비난하면서도 세상의 가치와 윤리를 수용하는 복음주의 교회와 기관들이 너무나 많다.

 

8장. 사회주의가 아닌 부의 재분배

미국 보수주의자의 한가지 믿음 : 정부가 복지와 규제에 큰 관여를 하지 않는 자유 시장경제를 지지한다. 미국에서 참되고 충성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곧 반공주의자와 반사회주의자, 친자본주의자가 되는 것이었다.

- 사회주의에 기대지 않고 어떻게 부를 재분배할수 있겠는가? 높은 비율의 누진세, 직업 교육과 취업 알선, 가는한 노동자의 자녀들을 위한 무상보육지원에 집중된 정부의 복지정책,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 등이 그것이다. 이는 터무니없거나 비기독교적인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를 돌보라는 성경 말씀과 일치한다.

- 사 3:14, 겔 22:12, 약 5:1-6 참조

경제에 관해서는 복음주의자가 보수주의를 버릴 때 더 복음주의자 다울 수 있다.

 

9장. 신학을 포용하는 상대화

웨슬리 신학의 4대원리 : 성경, 전통, 이성, 경험

성경과 전통은 신학의 두가지 원천과 규범이고 이성과 경험은 성경과 전통을 불류하고 이해하는 해석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 복음부의 신학자들의 신학을 대하는 태도 두가지

1) 신학을 철옹성처럼 지키는 태도, 하나님에 관한 가장 중요한 물음은 이미 풀렸다고 믿고 복음주의 전통의 교리에 대해 새로운 발견이나 수정을 의심

2) 순례자적인 태도, 신학자는 탐험이나 순례에 나선 사람이다. 성경과 전통을 지도와 가이드에 비유할때 가이드는 대체로 믿음직 스럽다. 하지만 절대로 옳은 것은 아니다. 절대로 옳은 것을 지도이다. 그런데 지도는 복잡해서 독법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신조와 신앙고백, 교리 체계가 신학적으로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전통의 권위가 가장 높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통은 성경의 권위 밑에 있다. 전통으로 질리를 가릴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 종교개혁은 새롭고 충실하게 성경을 해석했던 예이다. 루터는 그당시의 교회가 하나님 말씀의 끝나지 않은 드라마를 현실에서 또 미래를 향해 출실하게 이어가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감독(교황)과 배우(사제와 신학자)들은 줄거리에서 빗나가고 있었다. 루터는 전통을 향해 과감하고도 단호하게 안돼라고 외쳤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그는 새 배우들을 모집해 그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드라마를 충실히 이어가고자 했다. 옛 드라마(성경)를 새롭게 보고 그가 감독에게 배우고 믿었던  모든 것을 고쳐서 바로잡게 한 것은 루터의 체험이었다. 그는 감독의 지시로 배우들과 공연을 하면서 동선을 놓쳤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발견한 사실을 철회하고 끝나지 않은 드라마를 자기 식대로 이어가지 말 것을 루터에게 요구했던 종교 재판관의 노릇을 오히려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이 더 자주 한다는 것은 모순과도 같은 비극이다. 모든 개신교도가 따르는 개혁교회는 늘 개혁해야 한다는 원칙은 종교개혁에서 비롯됐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요구할 때마다 늘 교리와 관습이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 윌리엄 윌버포스의 노예제도 폐지 주장에 대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는 노예제도를 비난하는 내용도 없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노예를 풀어주라는 명령도 없다며 노예 제도를 정당화했다. 그는 이러한 전통이 간과한 것을 보았다. 그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다는 것,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 그리스도인 주인들은 종들을 형제로 대접하라는 것(빌레몬서)을 발견했다. 윌버포스를 비롯한 여러 노예 제도 폐지론자들은 성경의 원리를 가져와 성경의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보수주의는 모든 새로운 사상에 맞서 최종적으로 전래된 신앙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복음주의자는 옛것을 고집하는 대신 성경을 새롭고 충실히 읽으면서 발견한 새로운 사상에 열려 있을수록 더 복음주의자다운 것이다. 복음주의자에게 성경은 전통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 복음주의자가 신학적 보수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의 권능으로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체험을 굳건히 붙들고 전통보다 높은 성경의 권위 위에 든든히 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기독교 교리의 위대한 전통을 존중하면서 필요하다면 기꺼이 고칠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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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jubilee) 레 25:8-12, 16, 23 

 

(레 25:8-12, 개정) 『[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9]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레 25:16, 개정)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많이 매기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적게 매길지니 곧 그가 소출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레 25:23, 개정)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희년은 말그대로 기쁨의 해라는 의미이다. 희년은 위 본문에서 말하는대로 일곱번째 안식년(49년)의 다음해(50년)를 말한다. 희년이 기쁨의 해가 되는 이유는 바로 그 해에 땅의 모든 주민에게 자유가 선포되기 때문이다. 이 희년에는 종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토지는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간다.

 

본문 16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토지법, 하나님의 토지법은 토지 자체를 사고 파는 개념이 아니라 토지의 사용권을 판매한다고 볼수 있다. 그래서 희년에서 멀수록 토지의 값을 비싸게 매겼고, 만약 내년이 희년이라면 그 토지의 가치는 싸게 책정되었을 것이다.

 

본문 23절은 이 희년의 개념중에 가장 중심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데 그것은 토지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본문은 분명히 토지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들은 이땅의 나그네요 거류민인것을 적시하고 있기에 이 본문을 현재 우리의 삶에 얼마나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달라질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세상이다. 하나님의 토지개념이 아니라 바알의 토지개념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이러한 주류 세계관에 어떻게 항거하며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말할수 있는가?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한다면, 또한 이 성경이 지금, 여기에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인정한다면 이 희년사상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토지개념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야 할것이다.

 

헨리죠지와 같은 경제학자는 "진보와 빈곤"이라는 그이 저서를 통해서 이문제를 강력하게 지적한다. 그는 주류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무명의 인쇄공에서 경제적 통찰력을 가진 경제사상가로 거듭났는데 그는 빈곤의 악순환의 근본원인에 '땅'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응시했던 사람이다.

 

헨리조지의 주장을 간명하게 정리하면 그렇다. 땀흘린 것에는 면세, 땀흘리지 않은 것에는 조세다. 우리 나라의 예를 들자면 헨리조지는 근로소득세와 같이 자신의 노동력으 동원하여 노력으로 일군 부에 대해서는 세금을 걷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생산의 기반이 되는 블로소득에 대해서만 세금을 걷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헨리조지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유재산제를 말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이 지점에서 들었다. 배타적인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땀흘려 일한 댓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사유제를 인정하고, 사적인 소유로 허용했을 때 오히려 시장의 건전성을 파괴하고, 부의 분배를 악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세금을 걷는 진정한 사유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헨리조지와 헨리조지 학파는 반자본주의라는 치명적인 공격에 대해 지공주의에 의한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를 제시함으로써 반박한다. 이미 토지사유제가 정착한 곳에서 토지를 국유화하는 무리한 방식자체가 통할 수도 없을 뿐더러, 토지사유제의 문제를 주장하는 것이 도리어 진정한 자본주의의 사유제를 주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유재산제의 틀 안에서 지대만을 환수하는 방법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강남이나 목동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살던 목동의 80년대 중반의 모습은 주위에 논밭이 있었다. 홍수가 나면 안양천에 물이 범람해서 침수피해를 여러번 경험했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 목동 아파트단지가 건설되면서 몇몇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말그대로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들이 땀흘린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땅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주위에 도로가 생기고, 전기와 상수도, 하수도 시설이 확충되고, 열병합 발전소가 생기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논과 밭이 하루아침에 금싸라기 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토지공개념에서 말하는 지대조세제도는 바로 이러한 소득에 대해서 지역사회에 세금을 통해서 이익을 재분배해야한다는 개념이다.

 

이것이 이미 홍콩, 싱가폴, 미국의 몇개주들에서 시행되고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사회에 시행하는데는 큰 장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저항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한국의 이러한 기득권층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지금도 역사하는 살아있는 말씀을 믿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이 성경에 나오는 희년 개념을 읽을때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일까? 이것은 그저 이스라엘의 과거의 역사속에 한정된, 한시적인 그들만의 개념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쉽게 말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기득권을 가지지 않는 젊은이들부터 이부분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위의 생각은 아직 개인적으로 더 많은 연구와 묵상이 필요한 설익은 내용이다. 하지만 이시대에 구현되어야 할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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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감독)의 자격(딤전 3:1-7)

 

감독은 보통 elder, overseer, bishop, presbyter 등으로 번역됩니다. 초대교회때 사도들이 교회를 치리하고 감독하기위해서 집사를 세웠고 이후에 감독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교회에 엄밀히 말하면 평신도란 있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거룩한 직책을 각각의 책임과 은사의 차이에 따라서 맡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감독의 자격(조건)을 말하면서 감독(overseer, 장로)가 되려는 것은 선한일을 사모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1Tm 3:1, NIV) 『Here is a trustworthy saying: If anyone sets his heart on being an overseer, he desires a noble task.』

 

아래 2-7절에서는 감독의 자격으로 15가지를 언급합니다.

(딤전 3:2-7, NIV) 『[2] Now the overseer must be above reproach, the husband of but one wife, temperate, self-controlled, respectable, hospitable, able to teach, [3] not given to drunkenness, not violent but gentle, not quarrelsome, not a lover of money. [4] He must manage his own family well and see that his children obey him with proper respect. [5] (If anyone does not know how to manage his own family, how can he take care of God's church?) [6] He must not be a recent convert, or he may become conceited and fall under the same judgment as the devil. [7] He must also have a good reputation with outsiders, so that he will not fall into disgrace and into the devil's trap.』

 

감독(장로)의 자격(15가지)

1. 책망할것이 없음(above reproach, blameless)

2. 한 아내의 남편(the husband of but one wife)

- 아프리카에는 일부다처제가 인정되고, 현재 이혼으로 인해서 배우자가 여러번 바뀌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속에서 한 아내의 남편됨은 참으로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배우자가 아닌 다른 관계속에서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능력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 세상의 가치를 거부하것이 중요한 기준이라고 할수 있다.

3. 절제하며(temperate, vigilant)

- 헬라어 nephaleos로 술 취하지 않는, 온화한, 제정신의 의미이다.

4. 신중하며(self-controlled)

- 헬라어 sophron으로 분별있는, 제정신의라는 의미이다. 갑작스런 충동에 좌우되지 않고 매사에 분별력있게 행동해야 한다.

5. 단정하며(respectable)

- kosmion은 질서있는 예의바른, 정중한의 의미이다.

6. 나그네를 대접하며(hospitable)

- 나그네를 사랑하는

7. 가르치기를 잘하며(able to teach)

- 딤전 3:2과 딤후 2:24에 본 표현이 모두 가르치기를 잘하며(able to teach)로나온다. 그런데 원래의 의미는 apt to teach(teachable)로 가르치기 쉬운, 잘 배우는의 의미이다. 이 didaktikon이라는 단어는 위 두군데 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오로지 바울과 동시대의 Pholio라는 유대 학자만이 사용했는데 후대의 번역자들에 의해서 '잘 배우는(teachable)'이라는 의미에서 '잘 가르치는(able to teach)'로 바뀐 것이다. 위 두가지 의미 모두 교회의 직분자로서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교회안에 많은 문제들을 볼 때 어떤 직책과 역할이 주어진 이후에도 잘 배우고 수용할줄 아는 자세가 참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8.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not given to drunkenness)

- paroinon이라는 헬라어는 para와 oinos(포도주)의 합성어로 술 곁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9, 구타하지 아니하며(not violent)

- 성질이 급하여 물리적인 폭력을 쓰는 행위만이 아니라 자기 주장만 일삼는 언어의 폭력까지를 포함

10, 관용하며(gentle)

- '에피에이케'는 호의적인, 친절한, 참을성 있는, 동정심 많은, 관대한, 다정한등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말은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지 않는다면 어떤 손해나 아픔이라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11. 다투지 아니하며(not quarrelsome)

- 앞의 관용과 통하는 말이며 자기주장만 내세우지 아니하고 타인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자세

12.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not a lover of money)

- 부정적인 태도로 치부하지 않으며(딤전 3:8) 재물을 모으는 것은 생의 첫번째 목표로 삼지않는 사람을 말한다.

13. 자기집을 잘 다스려(manage his own home well)

- 다스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이스타메논'은 앞에 서다 또는 앞에 두다를 뜻하는 동사로 앞서서 행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감독이 모든 일에 자녀들의 모범이 될때에 자녀들은 신뢰를 가지고 부모를 공경하며 예의범절을 지킨다.

개인적으로도 가정에서 인정받고 신앙적으로 존경받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신앙으로 다스리려고할때 무엇보다 그의 가정을 보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할수 있다.

14. 새로 입교한 자가 아닌(not be a recent convert)

- '네오퓌톤'은 새롭게 씨를 뿌린이라는 뜻으로 최근에 개종하여 교회가 받아들인 사람을 말한다. 새신자에게 감독과 같은 중직을 맡길 경우 오만과 야심에 곧장 휩쓸리게되고 교만하여질수 있다. 교만하여져서로 번역된 '튀포데이스'의 문자적 의미는 연기에 싸이다이다. 확실한 소명의식이나 지휘 능력이 없는 새로운 개종자는 갑자기 확보된 지위에 의하여 교만의 연기에 싸이기 쉽다.

15.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받은자(have a good reputation with outsider)

-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기때문에 세상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벧전 2:12)

 

교회안의 장로는 가르치는 장로(목사)와 치리하는 장로(장로)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므로 본 장로(감독)의 자격은 이시대의 목회자와 교회안의 중직들에게 모두 필요한 덕목, 자격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15가지 덕목을 모두 충족시키는 완벽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최대한 이 기준에 맞추어 사람을 찾되 먼저 이렇게 교회안에 일군은 훈련시키고 준비하는것이 우선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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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안다는 것

 

(요일 5:20, 개정)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1Jn 5:20, NIV) 『We know also that the Son of God has come and has given us understanding, so that we may know him who is true. And we are in him who is true--even in his Son Jesus Christ. He is the true God and eternal life.』
(요일 5:20, KJV) 『And we know that the Son of God is come, and hath given us an understanding, that we may know him that is true, and we are in him that is true, even in his Son Jesus Christ. This is the true God, and eternal life.』
(1Jn 5:20, MSG) 『 And we know that the Son of God came so we could recognize and understand the truth of God--what a gift!--and we are living in the Truth itself, in God's Son, Jesus Christ. This Jesus is both True God and Real Life.』

 

본문에서 두번의 알다(Know)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한글이나 영어로는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지만 헬라어로는 서로 다른 단어가 사용됩니다.

 

첫번째는 eido라는 헬라어로 객관적인 앎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지성을 사용해서 어떤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것, 우리의 인지능력을 활용해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헬라어 단어는 이 본문에서만 know라는 단어로 단한번 사용됩니다.

 

 eido


Definition
1. to see
   a. to perceive with the eyes
   b. to perceive by any of the senses
   c. to perceive, notice, discern, discover
   d. to see
     1. i.e. to turn the eyes, the mind, the attention to anything
     2. to pay attention, observe
     3. to see about something
       1. i.e. to ascertain what must be done about it
     4. to inspect, examine
     5. to look at, behold
   e. to experience any state or condition
   f. to see i.e. have an interview with, to visit
2. to know
   a. to know of anything
   b. to know, i.e. get knowledge of, understand, perceive
     1. of any fact
     2. the force and meaning of something which has definite meaning
     3. to know how, to be skilled in
   c. to have regard for one, cherish, pay attention to (1 Thessalonians 5:12)
For Synonyms see entry 5825

 

 Translated Words
  KJV (70) - behold, 16; cannot tell + (3756), 8; know, 1; know how, 7; look, 5; misc, 19; perceive, 5; see, 3; wist, 6;

 

 

두번째 ginosko라는 단어는 좀더 주관적인 앎을 말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특별히 경험을 통한 앎, 특히 남녀간의 성적관계를 통한 앎의 상태를 의미할때 사용하곤 합니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하나님을 알다라고 할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ginosko

 

Definition
1. to learn to know, come to know, get a knowledge of perceive, feel
   a. to become known
2. to know, understand, perceive, have knowledge of
   a. to understand
   b. to know
3. Jewish idiom for sexual intercourse between a man and a woman
4. to become acquainted with, to know
 
Translated Words
  KJV(223) - know, 196; misc, 10; perceive, 9; understand, 8; 

 

이런 의미에서 요일 5:20 본문을 다시 번역해보면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것과 우리에게 지각을 주신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참되시며 우리가 참되신 그분안에 , 곧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분은 참되신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앞의 그분이 오셨다는 사실과 지각을 주신것에 대해 아는 것은 객관적인 앎이고  뒷부분의 하나님, 곧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좀더 주관적인 앎이라고 할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객관적인 앎의 과정이 더 자연스럽고 선행되어질수 있는 반면 어떤 이들에게는 주관적인 경험, 주님과의 실제적인 경험, 인격적인 만남이 더 앞설수 있다. 그 무엇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신앙의 삶이 더욱 오래될수록,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이것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수 있다. 또한 나와 다른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가진 사람을 인정하고 용납하는것도한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나의 인지력 너머에 계신 광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알지 못하기에 그런 하나님은 없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제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힘써 하나님을 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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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파 이야기중에서(폴린 해밀턴 지음, 죠이선교회)

 

이책은 중국에서 30여년 사역한 OMF소속 폴린 해밀턴 선교사의 자서전이다. 그녀는 어린시절 방황하다가 자살을 결심했지만 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녀의 생명을 지켜주시고나서 주님을 영접한다. 그후 펜실바니아 의과대학에 첫 여학생으로 입학하여 생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스미스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OMF 선교사로 지원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1) 하나님은 자신을 내버려두시 않으셨다.

2) 하나님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3) 하나님은 자신의 헌신을 영원한 것으로 받으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중간 중간 이 자서전을 읽으면서 위대한 선교의 세기인 20세기에 중국선교를 위해서 보장된 안전과 확보된 기득권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한걸음, 한걸음 순종하며 나아간 이러한 위대한 선교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일을 이루고 계심을 확증하게 됩니다. OMF의 정책인 Faith Mission답게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께서 드라마틱하게 개인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역사하신 이야기가 이 책에 가득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전에 책읽기와 관련된 어떤 내용중에 지적 성장을 위한 딱딱한 책과 가슴을 뜨겁게 해줄 전기나 위인전을 교대로 읽을 것을 제안한적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해주는 그런 책입니다. 

분명 우리는 변화된 21세기에 살고, 현재의 선교방식은 과거 20세기 초와는 분명히 달라진것이 사실이지만 그녀의 전 삶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실의 모습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뜻에 진정으로 순종하고자 한다면 기도는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인도하시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항상 형통케하시는 주님을 바란다. 하지만 진정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일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에 반하는 일에 대해서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온전한 순종의 기도는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험한 것이다. 주님께서 여러가지 루트를 통해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애써 외면하고 "주님, 이것말고 다른것은 없나요?"라고 묻고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눈물이 없는 곳, 승리만 있는 곳

하나님의 나팔소리 크게 울릴 때

자기 일을 다한 자 위해

달려갈 길을 다 간 자를 위해

이제 영광의 면류관이 있네.

 

"잘 하였도다. 들어오라."

위엄 있는 주의 음성

하나님의 빛, 그분 자녀 눈을 비춰

죄와 육신에서 풀릴 때

온 하늘 밝게 빛나네.

 

박기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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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s from a Mountain Valley(토레이 신부)중에서

 

아래 내용은 Letters from a Mountain Valley, 영문판 3권으로 그중에 나온 내용을 읽고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묵상한 내용입니다.

 

세가지 서로 다른 유형의 믿음(Three Different Types of Faith)

개신교와 카톨릭의 성경을 보는 관점과 신앙에 대한 한 청년의 질문에 대해 토레이 신부는 세가지 유형의 믿음을 통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1. 아브라함 유형(Individualistic, 알렉산드리아)

아브라함 유형 신자들은 성령이 각각 개별의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인도한다고 강조한다.

(요 16:13, 개정)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Jn 16:13, NIV) 『But when he, the Spirit of truth, comes, he will guide you into all truth. He will not speak on his own; he will speak only what he hears, and he will tell you what is yet to come.』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이 의미는 그에게는 모델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에게는 실제로 보고 따를 기록된 성경이 없었다.(엄밀히 말하면 아브라함에 앞선 성경은 창 1:1-11:27의 원역사의 내용이지만 이조차도 아직 기록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개별적으로, 개인적으로 다루셔야만 했고 이것은 정당하다.

 

2. 모세 유형(Catholic, 로마)

모세 유형 신자들은 성령이 교회를 하나되게 하시는 것(성령의 교통하심)을 강조한다.

(고전 12:13, 개정)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Co 12:13, NIV) 『For we were all baptized by one Spirit into one body--whether Jews or Greeks, slave or free--and we were all given the one Spirit to drink.』

모세는 아브라함으로부터 5-6세기 이후 출신으로 상황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애굽에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은 2-3백만의 숫자로 늘어났고, 레위인들을 통한 제사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수여하심으로 제도(정부, 경제, 종교)를 갖추게 하시고 백성들로 하여금 오늘날 교회라고 불리우는 이 제도에 순종하도록 요구하셨다. 그런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삶, 신앙에서는 개인적인 신앙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데 반해서 모세의 삶, 신앙에서는 개인주의는 도리어 신앙의 파괴를 가져온다. 그런의미에서 모세 유형의 키워드는 "질서(order)"이다.

 

3. 에스라 유형(Evangelical, 안디옥)

에스라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성경의 영감자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벧전 1:10-11, 개정)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벧전 1:10-11, NIV) 『[10] Concerning this salvation, the prophets, who spoke of the grace that was to come to you, searched intently and with the greatest care, [11] trying to find out the time and circumstances to which the Spirit of Christ in them was pointing when he predicted the sufferings of Christ and the glories that would follow.』

에스라 신앙은 모세와 선지자, 시편을 통해 나타난 성령을 통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아는 것이다. 성경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읽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또한 토레이 신부는 이 세 유형을 세 도시와 연관시켰다.

안디옥은 유다이즘의 중심지로서 성경을 중시했고 이는 에스라 유형이다. 오늘날의 복음주의(Evangelical), 한국 개신교의 main line이기도 하다.

알렉산드리아는 유대주의의 중심지로 성경이 처음  Greek으로 번역된 곳으로 철학이 발달된 곳으로 개인주의가 발달되었으며 이는 아브라함 유형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신앙이 경험을 강조하는 은사주의(charismatic)와 이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liberal)로 나타난다.

로마의 그리스도인은 라틴어를 말하며 안전과 질서를 강조했다. 이들은 모세유형이다. 이 전통은 Catholic tradition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세유형의 신앙은 여전히 현대 교회안에 존재하고 있으며 마치 진자의 추 처럼 움직이고 있다. 교회가 너무 개인주의적(individualistic, 아브라함 유형)이 되거나 전통적(catholic, 모세유형), 복음주의적(evangelical, 에스라 유형)이 될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밀어낸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러한 유형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교회를 견고한 터인 예수그리스도위에 바로 세우고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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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선교(손창남 지음, 죠이선교회)

 

"선교는 선교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선교는 누구라도 해야한다. 그렇지만 선교사라는 명칭을 아무에게나 부여한다면 매우 많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요리가 요리사의 전유물이 아닌 것과 같다. 많은 사람이 요리를 ㅎ나다. 가정주부는 거의 모두 요리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요리사라고 하는 타이틀을 지닌 사람은 제한적인 것과 동일하다."

 

본서는 학문적인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단순한 수필집이나 자서전도 아니다. 1부에서는 직업선교사가 필요한 이유와 사도행전에 나타는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모델과 풀뿌리 선교모델을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직업과 관련된 다섯가지 타입을 다룬다. 이는 필자가 직접 대학교수와 선교사의 이중적인 직무를 함께 하면서 여러해동안 전문인 선교사로서의 질문과 고민을 심플하게 도표화 한것으로 국내외 선교계에 훌륭한 기준이 될것으로 생각된다. 3부는 일과 증거의 관계를 4가지 타입으로 분류하면서 자신이 직접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대학교수로서의 신분을 가지고 어떻게 사역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속에서 사도행전에 나타는 선교모델을 다룰때는 성경신학적인 접근을 한다. 직업과 선교를 5가지 유형으로 나눈 내용을 읽을때는 신선한 insight를 제공하는 논문 한편을 읽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주로 3부에서 저자 개인의 사역의 경험을 나눌때는 가슴을 뜨겁게하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저자 개인이 목사타이틀을 가진 선교사가 주류로 인정되어지는 한국의 선교계에서 여전히 평신도 선교사의 타이틀을 고집하며, 목회자도 신학자도 아닌채 직업과 신앙, 직업과 선교라는 주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이시대의 수많은 일반 평신도들과 평신도 사역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해주는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자가 이야기하는대로 풀타임 선교사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창의적 접근지역과 같은 복음에 적대적인 나라나 문화속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와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하며 직업을 통하여 살아내고, 그것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의 역할이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가지고 이것을 선교라는 대위임령과 연결시키기를 고민하는 이땅의 수많은 청년들과 직업인들을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죠이선교회 해외사역부 박기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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