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우리가 이일에 증인이라(정민영, 죠이선교회)

 

이책은 이번 선교한국대회 주제에 맞게 기획된 도서이다. 많은 사람이 선교를 이야기하지만 진정한 선교가 무엇인지,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가 어떠한 삶을 살아 내야하는지에 대해서 참으로 간결하지만 핵심을 짚어주는 책이라고 말할수 있다.

 

 

들어가며(증인이라야 증거할 수 있다.)

증거하는 행위보다 증인의 자질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입바른 소리를 한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바른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증인의 통합성, 곧 언행일치가 없다면 무의미한 소음이 되고 만다.

진리는 반드시 선포되어야 하지만 그 메시지에 증인의 인격을 담아내야 한다. 전도가 힘을 받는 것은 증인의 통전성에 달려있고 메시지의 신뢰도는 바로 메신저의 신뢰도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1. 선교적 삶(당신의 일상을 먼저 선교현장으로 전환하라)

선교에 헌신한다는 것은 장차 먼 곳에서 일어날 대단한 일에 대한 막연한 헌신이 아니라 선교적 삶이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검증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타락한 세상의 수많은 유혹, 악한 체제의 불의한 요규, 내힘으로 어찌해볼 도리없어 보이는 구조악, 부의 편중, 권력의 남용, 절대빈곤, 인신매매, 조직폭력, 마약, 매매춘, HIV/AIDS등 이 사회가 당면한 제반 문제에 대해 주님은 어떻게 대처하셨을까? 무슬림, 힌두교도, 불교도 등 타종교인을 그분은 어떻게 대하셨을까? 선교적 삶은 근본적으로 언어와 문화와 인종의 벽을 뛰어넘는 삶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주님은 '이웃'이 동질집단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세상이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이질집단을 포괄하는 개념임을 가르치셨다.

 

2. 양과 질의 균형(회심을 겨냥하라)

선교의 목표는 개종이 아닌 회심이다. 단순히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옮기는 개종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일이다. 이는 새로운 율법을 주신게 아니라 세계관의 변화, 즉 회심을 가리킨 명령이다. 세계관 및 가치관의 변화없이 계명을 지키려는 노력은 율법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의무를 선택하는 이가 참된 사람이다. 그리고 마침내 의무를 생각하지 않고, 의무라는 이름마저 잊은 채 의무를 행하게 되는 사람이 왼전한 사람이다."(조지 맥도널드)

교회당 밖에 있던 이들을 교회당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게 능사가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죄성에서 벗어나 복음적인 세계관으로 변화되는 긴 과정을 인내하며 완주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3. 바람직한 선교자의 자질(회심과 성화의 여정에 동참하라)

선교현장은 스스로 건강한 회심의 과정을 걸어가면서 타인을 그 과정으로 초청하고 인도할 수 있는 일꾼을 요청한다. 진정한 회심을 경험한 자가 남을 회심에 이르게 할 수 있고, 제자가 제자를 낳는다는 동일한 원리가 여기 적용된다. 전도와 선교는 아무나 하는 종교활동이 아니라, 회심한 증인의 진실한 증거를 통해 회심자를 낳는 일이다.

선교영이신 성령님이 오셔서 행하신 오순절의 기적은 듣는 이(선교의 대상)의 귀를 바구신게 아니라, 즉 전하는 자의 말(외래어)를 이해하게 하신게 아니라 전하는 자의 입을 바꿔 듣는 이들이 각자 태어난 지역의 말로 듣도록 하셨다. 따라서 영어나 한국어, 또는 공용어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려는 편의주의적 접근은 성경적 선교방식이 아니다.

 

4. 지속성(단거리경주 아닌 마라톤에 헌신하라)

선교의 목표가 순간의 개종이 아니라 세계관이 바뀌는 회심의 여정이라면, 당신의 선교헌신도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을 지향해야 한다. 선교를 통해 추구하는 결과는 잠시 쌓았다 허무는 모래성이 아니라 장기간 최선의 노력과 전문성을동원해 쌓아야 할 금자탑이고, 잠깐 피었다 사라지는 꽃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와 풍상을 견뎌내고 마침내 결실하여 많은 사람을 살리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선교는 속전속결로 해치울 수 있는 일거리(task)가 아니라 회심의 긴 과정을 이끌어 내고 거기 동참하는 여정(journey)이다.

 

5. 신본주의 복음(자나깨나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라)

회심은 복음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만든다. 즉 복음이란 사람이 운 좋게 그리스도를 만나 천국에 간다는 인간중심의 메시지가 아니라, 죄로 인해 망가진 인간과 삼라만상을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하심으로써 창조자의 영광을 회복한다는 신본주의 메시지이다. 토저는 그리스도가 오신 이유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덧이 오답은 아니지만 완전한 대답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은 죄인들로부터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그는 말한다.

존 파이퍼의 말대로, 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합당한 참된 예배가 역사상 단 한번도 드려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위대하신 하나나님의 영광을 향한 거룩한 현상불만족,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선교의 동인이다.

 

6. 급진적 제자도(지고의 가치에 올인(all in)하라)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대가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함부로 헌신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세계선교에 헌신하기를 바라지만, 낭만적 환상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함부로 헌신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일단 진지하게 헌신한 바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지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7. 하나님의 선교(많은 일을 하려 말고 옳은 일을 바르게 하라)

복음이 은혜이듯 선교도 은혜이다. 공로를 쌓는 사역은 반복음적인 개념으로 선교행위에 뛰어들기 전에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공로로서의 행위를 거부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위해 과고하게 많은 일을 하려말고 옳은 일을 바르게 해야 한다. 성공과 힘을 지향하는 '십자군의 도'를 버리고 약함을 강해지고 낮아짐으로 높아지며 죽음으로 사는 역설의 '십자가의 도'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우선순위로 요구한다. 우리 교회나 단체가 잘되고 커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확정되면 된다.

 

8. 선교와 커뮤니케이션(사랑과 존중으로 소통하라)

전도는 복음 메시지의 의사소통인데 일방통행적 선전이 아니라 인격적 교감을 동반하는 소통이다. 일방통행식 선포는 소통이 아닌 선전이다. 선포는 소통의 포기가 아니라, 진리를 타협하지 않고 온전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의미이다. 소통과 진리선포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껴안아야 할 연속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세상에 있지만(요 17:11-소통, 은혜, 연합, 상황화, 동화) 이세상에 속하지 않음(요 17:14, 16-메시지, 진리, 순결, 거룩, 반문화적 가치, 차별성)이라는 연속성의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

선교와 전도는 꼭구각시인형 제작이나 앵무새 길들이기가 아니라 그 과정에 인격적인 교감과 존중, 영향력, 역할모범, 인내, 대를 기다림 등이 포함된다. 복음의 자발적 포용과 내면화 과정이 생략된 채 전달자의 소리, 또는 전달자가 원하는 소리를 기계적으로 모방하거나 반복하게 하는 시도를 당장 멈춰야 한다.

 

9. 사랑의 힘, 사랑의 절제(영혼을 따먹으려 말고 먼저 마음을 얻어라)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우리가 사랑의 동인이 아닌 종교적 열심으로 성급하고 과격하고 무례하게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은 어떤 명목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열심의 부족이 아닌 진리부재였다.

 

10. 선교의 올바른 자리매김(조연으로 섬겨라)

처음부터 끝까지 선교의 역할은 주연이 아닌 조연이다. 강력한 힘과 부를 앞세워 무엇이든 마음대로 주도하는 파웍임에 익숙해진 현대교회와 선교는 "토착교회는 흥하여야 하겠고, 선교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외친 19세기 선교전략가 헨리 벤의 충고를 기억해야 한다. 선교현장은 자의식이 강한 야심가가 아니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막후에서 조용히 섬길 조연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업적을 세우고 드러내려는 빗나간 영웅주의를 내려놓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서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벽돌 한 장을 보태는 일이 당신의 역할임을 깨닫는 각성이 필요하다.

 

11. 남은 과업을 향하여(선교종결에 헌신하라)

왜 공평하신 하나님의 복음이 불공평하게 편중되어 특정 집단들이 독점하는가? 왜 어느곳에는 복음을 들을 기회가 수없이 널려있고, 다른 곳에는 평생 복음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는가? 선교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남은 과업에 대한 깊은 이해로 그 완수를 향해 진득한 헌신을 해야한다. 남은 과업의 우선순위는 검증된 양질의 일꾼을 선교현장으로 보내는 것이다. 남은 과업의 완수는 증인의 질과 연관된 문제이다. 증잉이 아닌 자들이 현장에 몰려가서는 안된다. 선교현장은 국내에서 할일이 없거나 실패한 사람들을 방출하는 종말처리장이 아니다. 전쟁터에는 훈련된 군인이 가야지 관광객이 드나들어서는 안된다. 끝없이 반복되는 빗나간 선교행태의 악순환의 고리를 새로운 선교세대가 과감히 끊어야 한다.

 

나가며(정금을 만드는 정금같은 일꾼들을 기대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