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jubilee) 레 25:8-12, 16, 23
(레 25:8-12, 개정) 『[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9]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레 25:16, 개정)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많이 매기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적게 매길지니 곧 그가 소출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레 25:23, 개정)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희년은 말그대로 기쁨의 해라는 의미이다. 희년은 위 본문에서 말하는대로 일곱번째 안식년(49년)의 다음해(50년)를 말한다. 희년이 기쁨의 해가 되는 이유는 바로 그 해에 땅의 모든 주민에게 자유가 선포되기 때문이다. 이 희년에는 종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토지는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간다.
본문 16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토지법, 하나님의 토지법은 토지 자체를 사고 파는 개념이 아니라 토지의 사용권을 판매한다고 볼수 있다. 그래서 희년에서 멀수록 토지의 값을 비싸게 매겼고, 만약 내년이 희년이라면 그 토지의 가치는 싸게 책정되었을 것이다.
본문 23절은 이 희년의 개념중에 가장 중심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데 그것은 토지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본문은 분명히 토지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들은 이땅의 나그네요 거류민인것을 적시하고 있기에 이 본문을 현재 우리의 삶에 얼마나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달라질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세상이다. 하나님의 토지개념이 아니라 바알의 토지개념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이러한 주류 세계관에 어떻게 항거하며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말할수 있는가?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한다면, 또한 이 성경이 지금, 여기에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인정한다면 이 희년사상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토지개념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야 할것이다.
헨리죠지와 같은 경제학자는 "진보와 빈곤"이라는 그이 저서를 통해서 이문제를 강력하게 지적한다. 그는 주류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무명의 인쇄공에서 경제적 통찰력을 가진 경제사상가로 거듭났는데 그는 빈곤의 악순환의 근본원인에 '땅'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응시했던 사람이다.
헨리조지의 주장을 간명하게 정리하면 그렇다. 땀흘린 것에는 면세, 땀흘리지 않은 것에는 조세다. 우리 나라의 예를 들자면 헨리조지는 근로소득세와 같이 자신의 노동력으 동원하여 노력으로 일군 부에 대해서는 세금을 걷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생산의 기반이 되는 블로소득에 대해서만 세금을 걷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헨리조지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유재산제를 말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이 지점에서 들었다. 배타적인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땀흘려 일한 댓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사유제를 인정하고, 사적인 소유로 허용했을 때 오히려 시장의 건전성을 파괴하고, 부의 분배를 악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세금을 걷는 진정한 사유제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헨리조지와 헨리조지 학파는 반자본주의라는 치명적인 공격에 대해 지공주의에 의한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를 제시함으로써 반박한다. 이미 토지사유제가 정착한 곳에서 토지를 국유화하는 무리한 방식자체가 통할 수도 없을 뿐더러, 토지사유제의 문제를 주장하는 것이 도리어 진정한 자본주의의 사유제를 주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유재산제의 틀 안에서 지대만을 환수하는 방법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강남이나 목동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살던 목동의 80년대 중반의 모습은 주위에 논밭이 있었다. 홍수가 나면 안양천에 물이 범람해서 침수피해를 여러번 경험했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 목동 아파트단지가 건설되면서 몇몇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말그대로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들이 땀흘린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땅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주위에 도로가 생기고, 전기와 상수도, 하수도 시설이 확충되고, 열병합 발전소가 생기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논과 밭이 하루아침에 금싸라기 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토지공개념에서 말하는 지대조세제도는 바로 이러한 소득에 대해서 지역사회에 세금을 통해서 이익을 재분배해야한다는 개념이다.
이것이 이미 홍콩, 싱가폴, 미국의 몇개주들에서 시행되고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사회에 시행하는데는 큰 장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저항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한국의 이러한 기득권층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지금도 역사하는 살아있는 말씀을 믿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이 성경에 나오는 희년 개념을 읽을때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일까? 이것은 그저 이스라엘의 과거의 역사속에 한정된, 한시적인 그들만의 개념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쉽게 말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기득권을 가지지 않는 젊은이들부터 이부분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위의 생각은 아직 개인적으로 더 많은 연구와 묵상이 필요한 설익은 내용이다. 하지만 이시대에 구현되어야 할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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