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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일에 증인이라(정민영, 죠이선교회)

 

이책은 이번 선교한국대회 주제에 맞게 기획된 도서이다. 많은 사람이 선교를 이야기하지만 진정한 선교가 무엇인지,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가 어떠한 삶을 살아 내야하는지에 대해서 참으로 간결하지만 핵심을 짚어주는 책이라고 말할수 있다.

 

 

들어가며(증인이라야 증거할 수 있다.)

증거하는 행위보다 증인의 자질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입바른 소리를 한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바른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증인의 통합성, 곧 언행일치가 없다면 무의미한 소음이 되고 만다.

진리는 반드시 선포되어야 하지만 그 메시지에 증인의 인격을 담아내야 한다. 전도가 힘을 받는 것은 증인의 통전성에 달려있고 메시지의 신뢰도는 바로 메신저의 신뢰도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1. 선교적 삶(당신의 일상을 먼저 선교현장으로 전환하라)

선교에 헌신한다는 것은 장차 먼 곳에서 일어날 대단한 일에 대한 막연한 헌신이 아니라 선교적 삶이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검증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타락한 세상의 수많은 유혹, 악한 체제의 불의한 요규, 내힘으로 어찌해볼 도리없어 보이는 구조악, 부의 편중, 권력의 남용, 절대빈곤, 인신매매, 조직폭력, 마약, 매매춘, HIV/AIDS등 이 사회가 당면한 제반 문제에 대해 주님은 어떻게 대처하셨을까? 무슬림, 힌두교도, 불교도 등 타종교인을 그분은 어떻게 대하셨을까? 선교적 삶은 근본적으로 언어와 문화와 인종의 벽을 뛰어넘는 삶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주님은 '이웃'이 동질집단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세상이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이질집단을 포괄하는 개념임을 가르치셨다.

 

2. 양과 질의 균형(회심을 겨냥하라)

선교의 목표는 개종이 아닌 회심이다. 단순히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옮기는 개종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일이다. 이는 새로운 율법을 주신게 아니라 세계관의 변화, 즉 회심을 가리킨 명령이다. 세계관 및 가치관의 변화없이 계명을 지키려는 노력은 율법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의무를 선택하는 이가 참된 사람이다. 그리고 마침내 의무를 생각하지 않고, 의무라는 이름마저 잊은 채 의무를 행하게 되는 사람이 왼전한 사람이다."(조지 맥도널드)

교회당 밖에 있던 이들을 교회당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게 능사가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죄성에서 벗어나 복음적인 세계관으로 변화되는 긴 과정을 인내하며 완주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3. 바람직한 선교자의 자질(회심과 성화의 여정에 동참하라)

선교현장은 스스로 건강한 회심의 과정을 걸어가면서 타인을 그 과정으로 초청하고 인도할 수 있는 일꾼을 요청한다. 진정한 회심을 경험한 자가 남을 회심에 이르게 할 수 있고, 제자가 제자를 낳는다는 동일한 원리가 여기 적용된다. 전도와 선교는 아무나 하는 종교활동이 아니라, 회심한 증인의 진실한 증거를 통해 회심자를 낳는 일이다.

선교영이신 성령님이 오셔서 행하신 오순절의 기적은 듣는 이(선교의 대상)의 귀를 바구신게 아니라, 즉 전하는 자의 말(외래어)를 이해하게 하신게 아니라 전하는 자의 입을 바꿔 듣는 이들이 각자 태어난 지역의 말로 듣도록 하셨다. 따라서 영어나 한국어, 또는 공용어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려는 편의주의적 접근은 성경적 선교방식이 아니다.

 

4. 지속성(단거리경주 아닌 마라톤에 헌신하라)

선교의 목표가 순간의 개종이 아니라 세계관이 바뀌는 회심의 여정이라면, 당신의 선교헌신도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을 지향해야 한다. 선교를 통해 추구하는 결과는 잠시 쌓았다 허무는 모래성이 아니라 장기간 최선의 노력과 전문성을동원해 쌓아야 할 금자탑이고, 잠깐 피었다 사라지는 꽃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와 풍상을 견뎌내고 마침내 결실하여 많은 사람을 살리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선교는 속전속결로 해치울 수 있는 일거리(task)가 아니라 회심의 긴 과정을 이끌어 내고 거기 동참하는 여정(journey)이다.

 

5. 신본주의 복음(자나깨나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라)

회심은 복음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만든다. 즉 복음이란 사람이 운 좋게 그리스도를 만나 천국에 간다는 인간중심의 메시지가 아니라, 죄로 인해 망가진 인간과 삼라만상을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하심으로써 창조자의 영광을 회복한다는 신본주의 메시지이다. 토저는 그리스도가 오신 이유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덧이 오답은 아니지만 완전한 대답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은 죄인들로부터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그는 말한다.

존 파이퍼의 말대로, 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합당한 참된 예배가 역사상 단 한번도 드려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위대하신 하나나님의 영광을 향한 거룩한 현상불만족,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선교의 동인이다.

 

6. 급진적 제자도(지고의 가치에 올인(all in)하라)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대가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함부로 헌신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세계선교에 헌신하기를 바라지만, 낭만적 환상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함부로 헌신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일단 진지하게 헌신한 바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지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7. 하나님의 선교(많은 일을 하려 말고 옳은 일을 바르게 하라)

복음이 은혜이듯 선교도 은혜이다. 공로를 쌓는 사역은 반복음적인 개념으로 선교행위에 뛰어들기 전에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공로로서의 행위를 거부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을 위해 과고하게 많은 일을 하려말고 옳은 일을 바르게 해야 한다. 성공과 힘을 지향하는 '십자군의 도'를 버리고 약함을 강해지고 낮아짐으로 높아지며 죽음으로 사는 역설의 '십자가의 도'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우선순위로 요구한다. 우리 교회나 단체가 잘되고 커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확정되면 된다.

 

8. 선교와 커뮤니케이션(사랑과 존중으로 소통하라)

전도는 복음 메시지의 의사소통인데 일방통행적 선전이 아니라 인격적 교감을 동반하는 소통이다. 일방통행식 선포는 소통이 아닌 선전이다. 선포는 소통의 포기가 아니라, 진리를 타협하지 않고 온전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의미이다. 소통과 진리선포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껴안아야 할 연속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세상에 있지만(요 17:11-소통, 은혜, 연합, 상황화, 동화) 이세상에 속하지 않음(요 17:14, 16-메시지, 진리, 순결, 거룩, 반문화적 가치, 차별성)이라는 연속성의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

선교와 전도는 꼭구각시인형 제작이나 앵무새 길들이기가 아니라 그 과정에 인격적인 교감과 존중, 영향력, 역할모범, 인내, 대를 기다림 등이 포함된다. 복음의 자발적 포용과 내면화 과정이 생략된 채 전달자의 소리, 또는 전달자가 원하는 소리를 기계적으로 모방하거나 반복하게 하는 시도를 당장 멈춰야 한다.

 

9. 사랑의 힘, 사랑의 절제(영혼을 따먹으려 말고 먼저 마음을 얻어라)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우리가 사랑의 동인이 아닌 종교적 열심으로 성급하고 과격하고 무례하게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은 어떤 명목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열심의 부족이 아닌 진리부재였다.

 

10. 선교의 올바른 자리매김(조연으로 섬겨라)

처음부터 끝까지 선교의 역할은 주연이 아닌 조연이다. 강력한 힘과 부를 앞세워 무엇이든 마음대로 주도하는 파웍임에 익숙해진 현대교회와 선교는 "토착교회는 흥하여야 하겠고, 선교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외친 19세기 선교전략가 헨리 벤의 충고를 기억해야 한다. 선교현장은 자의식이 강한 야심가가 아니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막후에서 조용히 섬길 조연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업적을 세우고 드러내려는 빗나간 영웅주의를 내려놓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서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벽돌 한 장을 보태는 일이 당신의 역할임을 깨닫는 각성이 필요하다.

 

11. 남은 과업을 향하여(선교종결에 헌신하라)

왜 공평하신 하나님의 복음이 불공평하게 편중되어 특정 집단들이 독점하는가? 왜 어느곳에는 복음을 들을 기회가 수없이 널려있고, 다른 곳에는 평생 복음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는가? 선교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남은 과업에 대한 깊은 이해로 그 완수를 향해 진득한 헌신을 해야한다. 남은 과업의 우선순위는 검증된 양질의 일꾼을 선교현장으로 보내는 것이다. 남은 과업의 완수는 증인의 질과 연관된 문제이다. 증잉이 아닌 자들이 현장에 몰려가서는 안된다. 선교현장은 국내에서 할일이 없거나 실패한 사람들을 방출하는 종말처리장이 아니다. 전쟁터에는 훈련된 군인이 가야지 관광객이 드나들어서는 안된다. 끝없이 반복되는 빗나간 선교행태의 악순환의 고리를 새로운 선교세대가 과감히 끊어야 한다.

 

나가며(정금을 만드는 정금같은 일꾼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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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인가 인하대 이임하고 천안지부로 갈때 학생들이 불러준 노래. 그런데 누가 불렀는지 생각이 안나네???

 

제목 : 잡고 싶다...

무쇠팔 무쇠다리 마징가

간사님의 은혜로운 말씀

이제 더이상 들을수가 없~으니

사랑마을 어떡하란 말야

잡고 싶다 잡고 싶다

간사님의 세모난 얼굴

고마워요 내게 베푼 사랑

캠퍼스를 향한 크신 그 열정

미칠 듯 스타했던 기억이

추억들이 너를 찾고 있지만

더이상 사역이란 변명에 너를 가둘수 없어

이러면 안되지만 죽을만큼 잡고 싶다.

 

잡고 싶다 잡고 싶다.

이런내가 미워질만큼

믿고 싶다. 복된 길이라고

천안지부 부흥 시킬거라고

미칠 듯 축구했던 기억이

추억들이 너를 찾고 있지만

더 이상 사역이란 변명에

너를 가둘수 없어

이러면 안되지만 죽을만큼 잡고 싶다.

 

죽을만큼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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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1부 진단

- 감정적 흥분, 나의 과시, 예배의 공연화

Ⅰ. 음악, 록 그리고 CCM

드라마나 영화에서 음악의 중요성 : 음악을 통해 메시지에 맞는 시청자의 감정상태를 유도

1. 음악

1) 사람을 움직이는 음악의 힘 : 빠른 리듬이 멜로디를 압도할 때 멜로디가 주던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리듬이 일으키는 또 다른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2) 콘텍스트와 결합된 음악의 힘

3) 과학으로 증명된 음악의 힘

4) 음악의 긍정적 효과

5) 음악의 부정적 효과

-6)부정적 효과를 내는 음악은 나쁜 음악인가

2. 록

1) 록의 본질

2) 록의 특징 1 지속적인 반복(일정한 코드 패턴, 강한 비트, 짧은 주 멜로디, 리듬 그리고 단순한 가사)

3) 록의 특징 2 커다란 사운드(엄청난 사운드의 스트레스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호르몬 배출)

4) 록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

3. CCM

1) 찬송가(찬송가의 구별된 특징 p.58)

2) 복음성가

3) 워십송

4)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5) CCM의 정의 : 기독교 정신을 구현하려는 크리스천이 만든 현대적 노래

Ⅱ. CCM 옹호론에 대한 반론

1. 성경이 특별히 금지하는 음악 스타일은 없다는 주장에 대해

2. 전통적인 찬송가도 당시에는 CCM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 신앙의 선배들이 처한 당시의 상황

2-4세기 : 영적인 가르침을 위한 수단(첫째 하나님에 대한 찬양, 둘째 당시 창궐하던 여러 이단을 배척하기 위한 명확한 교리의 깨달음, 셋째 구체적인 이단의 문제점을 지적함)

5세기 이후 : 직접적 성경 말씀

13세기 이후 : 철저하게 의식 진행에 필요한 보조수단으로 교회음악을 제한적으로 사용

16세기(종교개혁) : 많은 사람이 쉽게 기독교의 가르침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시편을 이용한 찬양을 이용

- 찬양은 가르침을 위한 바른 목적으로 쓰여야 한다.

루터나 웨슬리가 찬양을 만든 이유는 부르는 이들의 감정적 흥분이 아닌 바른 가르침을 위해서였다.

3. 중요한 것은 가사지 음악 스타일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1) 음악은 중립적인가

새들백 교회의 릭워렌 목사, 뉴에이지 음악

2) CCM의 가사가 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

- 이유 1 록이 가진 고유의 특징, 그 중에서도 ‘반복’ 때문이다(강한 사운드가 주는 피해, 반복 신비주의 공격)

- 이유 2 기독교의 메시지와 록의 특징이 충돌한다. 기독교의 메시지(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의 회개, 비통한 마음)가 록의 메시지(흥분되고 고양됨)과 충돌할 때 록이 가사의 메시지를 압도한다.

- 이유 3 가사에 성경 구절이 많다고 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 이유 4 CCM 가사의 핵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점점 더 ‘나’를 향하고 있다

4. 한국형 CCM의 등장

Ⅲ. 오늘날 교회 속의 CCM

1. CCM이 복음 전파의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1) 어느 청소년 전도 집회의 풍경

2) 지향해야 할 복음의 메시지

복음은 나쁜 소식,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의 죄인됨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오는 것이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3) 과도한 CCM 속에 약해지는 복음의 메시지

교회에 위로받고 인정받고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오는 청소년들,

4) CCM이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없는 이유

첫째, CCM의 주된 목적이 위로함과 격려에 그 초점이 맞춰질 때 CCM은 복음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통로가 아니라 복음이라는 목적지에서 이탈하도록 하는 주범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CCM을 통해 복음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청소년들이 지쳐서 쓰러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5) CCM이 복음의 통로가 된 결과

2. CCM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1) CCM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집회의 한 풍경

2) 임재의 핵심은 반복

3)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임재

성경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값싼 공연장의 흥분으로 추락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매순간 그분이 허락하신 삶에 대한 열정으로 그분의 발 앞에서 내 존재의 향유를 부을 때 더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진리는 무엇보다 이성(mind)에 호소되어야 한다. 이성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깨달을 때 비로소 감정(affections)의 불이 켜지고 감동이 일어난다. 그런 후 의지(will)가 발동되며 그 의지는 순종으로 나타나게 된다.” 로이드 죤스

Ⅳ. 과도한 CCM이 불러온 결과들

1. 예배는 공연이 되고 공연은 필연적으로 스타를 만든다

1) 사람을 드러내는 노래

2) 사람이 스타로 드러나는 오늘날의 모습

3) 찬양 인도자는 특히 더 스타가 되기 싶다

스타가 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보다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고 바빠진다는 것입니다.

4) 왜 교회에서도 스타를 필요로 하는가

2. 청소년의 신앙 색깔을 결정한다

1) 신앙의 시작은 말씀이어야 한다

2) 음악이 없어도 되는 기도와 예배를 위해

지루한 것은 나쁘고 재미있는 것은 좋다는 널리 받아들여진 개념을 큰 소리로 거부하라. 침묵의 중요성을 인식하라.

3) 음악으로 자란 청소년의 신앙 수준

3. 세상을 향해 왜곡된 메시지를 전한다

1) 연관성의 함정

하나에 대한 양보는 결국 전체의 변화로 나타나고 그 결과 세상과의 연관성에 치중하다가 복음의 본질을 잃을 수도 있다.

2) 연관성의 함정에 빠진 결과

복음은 결코 듣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세상이 바라는 모습이 되는 것이 옳은게 아닙니다.

3)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자

4. 구원관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

1) 가짜 회심자를 만든다

2) 심각한 불신앙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결국 믿음의 근거가 되어야 할 말씀에 깊이 뿌리박는 대신 내 감정 상태에 나의 신앙을 뿌리 박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2부 치료

Ⅴ. 성경적 예배의 회복

1. 위로부터 받아 누리는 예배

1) 혼자 이루시는 언약(창 15:4-17)

2) 예배의 오염

오늘날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철저히 인간이다.

3) ‘어떻게’는 중요한가

우리는 겉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라고 하면서 실상은 어떻게든 예배를 통해 눈에 보이는 감정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 예배를 기획하는데 여념이 없다.

4) 구약의 제사(가인과 아벨-창 4장, 나답과 아비후-레 10:1-3)

5) 나답과 아비후가 추구한 창의적 예배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상한 불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아감.

6) 하나님이 정하신 ‘어떻게’를 지키는 것이 ‘진심’이다

제사와 관련해 하나님이 분명하게 지시하신 제사의 형태를 이스라엘이 순종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진심을 반영하는 가장 바른 척도였다.

7)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제사

8) 신약 시대의 예배

9) 예배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

10)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가

2.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 말씀

1) 말씀을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

2) 아이러니의 시대: 넘치는 설교와 말씀의 실종

TV를 틀어도 설교가 나오고 인터넷에 접속해도 설교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의 구원의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으신 살아있는 말씀이 역설적이게도 '넘치는 설교'속에서 실종되고 있다. 마치 홍수때에 물이 넘쳐나지만 물이 부족한 것처럼..

3) 두 가지의 설교(성경본문과 상관없는 설교와 성경 본문이 없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설교)

4) 성경이 없어도 되는 설교

5) 성경이 없으면 안 되는 설교

6) 구속사적 설교

진리는 지금 내 맘속에 무슨 일이 생기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진리는 2천년 전 저 이스라엘이라는 오래된 한 나라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에 달려있다.

7) 복음 설교

8) 오로지 하나님이 홀로 이루시는 구원

성경의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인간의 노력을 더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고 더럽히는 행위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를 도와주려는 인간의 그 어떤 시도에도 참지 않으신다. 그 인간의 시도가 본질면에서 교회적이든, 심리적이든 아니면 정치적이든지 말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인간에게 제시하시는 은혜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질투하신다.

9) 복음이 주는 자유함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 거친 돌이 되는 복음이 가감없이 설교를 통해 선포될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에 꼭 필요한 연관성을 주는 곳이 될 수 있다.

10) 신자에게도 복음은 끊임없이 선포되어야 한다

11) 연관성의 함정에서 벗어나자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환자의 취미에서 치료법을 찾지 않습니다. 설교자는 세상이 아닌 말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선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설교자에게 부여하신 영광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약속하신 진리는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12) 설교자의 자존심을 회복하자

3.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 성례

1) 의식에 대한 거부감

종교개혁은 카톨릭이 갖고 있던 겉으로 드러난 형식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믿음의 발현이었다.

2) 지나친 영적화의 위험

오직 말씀으로의 정신이 의식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으로 드러났다면 오직 믿음으로는 말씀의 모든 가르침을 철저히 영적으로 해석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3) 성례는 하나님이 직접 베푸시는 푸른 초장

4) 성례의 근거(골 2:11-14, 눅 22:14-20, 창 17장)

5) 성례는 하나님이 명하신 것

6) 드리는 예배에서 받는 예배로의 전환

7) 성례의 유익

첫째 예배는 예배를 빙자한 인간을 위한 축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진정한 축제의 장이다.

둘째, 성례를 가까운 미래에 닥칠 사이버 세상으로부터 교회를 지키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셋째, 성례는 매일 달라지는 세상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교회의 중심을 보여 준다.

4. 성도를 하나로 만드는 예배

1) 예배를 나누는 기준

2) 어머니의 생신상

3) 다양하게 준비된 예배

4) 예배를 통해 나의 취향의 만족을 추구

5) 음악으로 예배가 분열된 현실

6) 김연아의 점프

Ⅵ. 성경적 찬양의 바른 모습

1. 찬양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반응이다

1) 찬양이 말씀과 성례 수준으로 격상된 현실

2) 찬양 인도자가 예배 인도자가 된 현실

2. 찬양은 바른 신학 내용을 담아야 한다

1) 반응은 감탄사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은혜에 대한 반응이라는 면에서 기도와 찬양은 같습니다. 우리가 내용이 없는 기도를 상상할 수 없듯이 내용이 없는 찬양을 찬양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더 표현하고 싶어진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하신 일을 보면 볼수록 우리는 그 위대한 구속에 대해 더 풍부하게 표현하고 싶어진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클수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더 풍부해질 수 밖에 없다.

2) 시편은 찬양의 모범

3) 시편을 불구로 만드는 시편 인용 찬양들

4) 나를 생각하며 부르는 애국가

5) 록으로 부르는 애국가

6) 찬양을 통한 바른 배움을 추구하자

7) 서정적 멜로디의 과도한 사용: 백 뮤직

8) 바람직한 찬양의 한 사례

Ⅶ. CCM의 바른 위치

1. 워십송의 바른 위치

1) 록을 기반으로 하는 한 워십송은 예배에 쓰일 수 없다

2) 워십송은 전도의 수단이나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흥분제로 쓰여서는 안된다

3) 교회적 차원에서 워십송에 대한 선별 작업이 필요하다

2. CCM의 바른 위치

1) 바른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자, 세상의 음악과 경쟁하기 위해 음악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2) 배우 송강호 씨

3) 하나님의 주권은 교회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교회에 계시는 하나님은 인정하면서 실험실에 계신 하나님, 회의실에 계신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로 나누는 이원론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너무 작고 좁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4) 크리스천의 삶은 무엇이 다른가

5) CCM은 세상으로 나가자

6) 예술성과 신앙으로 영향력을 끼치자

 

나가면서

1. 재미 vs 팩트(재미에 중독된 사회 & 재미에 중독된 교회)

2. MBTI 검사, 혈액형 검사, Disc 검사, TJTA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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