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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가치 혹은 복음 전도에 얼마나 유용한가에 입각해 예술, 과학, 예능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압력은 결국 창조가 주는 선물과 복음이 주는 선물을 모두 손상하고 만다.(12)
-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확실히 ‘기독교적인’형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런 중압감은 창조에 본질적으로 잘못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신학적 전제에서 출발한다. 창조를 불완전하게 보는 전제는 기독교 모든 분야에서 복음적인 사고방식을 형성하는데 흔히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1장.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 : 하나님의 주권
- 하나님의 주권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므로 악은 결코 결정권이 없다고 확신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24)
* 종교개혁자들의 사례
가정생활 / 미술분야 / 음악분야 / 문학분야 / 과학분야 / 교육분야
- 복음이 어떻게 전혀 다른 별개의 두 세계관을 만들어 낼수 있는가? (중세 미술과 바로크 미술) (호튼, 30p) / 중세의 종교 인물화 - 렘브란트의 인물화(종교개혁 시대의 세계관은 미술이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완전히 현세적인 작업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했다.)
- 종교개혁가들의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태도 : 예배 안에서 말씀을 해방하고 창조 질서를 방해하는 예술을 금하고 싶어했을 뿐이다.(32) / 루터는 “나는 지나치게 영적인 일부 사람들의 항의처럼 예술을 폐지해야 하고 복음의 주변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는 모든 에술과 특히 음윽을 예술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주신 분을 섬기는 데 사용하는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본다.”(33)
2장. 기독교와 문화 : 영역 주권에 대한 바른 이해
- 교회는 말씀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회복함으로써 원래 모습을 되찾고 가정은 성경에서 말하는 친교뿐 아니라 양질의 여가시간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확신을 회복함으로써 원래 모습을 되찾으며 국가는 자신에게 맡겨진 현세적 사명을 회복함으로써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55)
* 그리스도와 문화
1) 문화에 맞서는 그리스도 : 터툴리안, 재세례파, 퀘이커교도, 톨스토이
2)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 :
3) 문화를 초월하는 그리스도 : 그리스도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다루려 함,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
4) 문화와 역설적 관계에 있는 그리르도 : 이원론, 루터주의자
5) 문화를 변혁시키는 그리스도 : 하나님의 주권은 문화적 변혁에 큰 역할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칼빈, 개혁주의 전통
3장. 기독교와 학문 : 일반 은혜의 가치와 한계
- 바울 사도가 공격한 대상은 철학 자체가 아니라, 영지주의를 비롯한 이 세상의 지혜가 신학을 지배하는 일반적 동향이었다.(92)
- 바울 사도는 땅의일을 하늘의 일과 혼동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자연 계시를 사용해 땅에서 하늘로 이르는 사다리를 놓은 다음, 특별 계시로 문제를 직접 다루는 단계에 돌어서자마자 사다리를 내버림으로써 합의의 발판을 마련했다. / 바울 사도는 현세적 세계관에 담긴 진리를 이해하고 활용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성경을 근거로 삼아 잘못하고 있는 생각을 비판했다.(95)
- 자신이 가진 생각을 평가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든 알 수 있고 또한 반드시 알아야 하는 두가지 요소가 있는데,두 요소는 우리 생각을 형성하는 세상의 힘과, 우리 생각을 바로잡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우리에게 나타내는 성경의 진리다.(96)
-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은혜로운 섭리에 따라 유지하시기 때문에, 성경에서 하나님이 특별히 금하신 일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인에게 금지된 현세적인 활동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다니엘과 요셉의 예, 101)
- 기독교인은 일반 은혜의 분야에 반드시 종사해야 하지만, 되찾거나 회복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부여하신 소명으로 세상을 충만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종사해야 한다.(102)
4장. 기독교와 예술1 : 기독교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
- 보수적인 기독교인은 풍부한 다양성을 환원주의에 따라 단편화해서 성경을 교재로 이해하는 관점을 경계해야 한다.
- 예수님은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실 때도 마찬가지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 예술가에게 주어진 일차 목적은 교육하거나 복음을 전하거나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고 예술적 흥취를 돋우는 것이다.(118)
- 예술을 은혜의 수단과 혼동할 때, 우리는 예술과 은혜를 모두 손상하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122)
- 종교개혁이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 나타난 특징은 기독교가 자기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예술로 하여금 주어진 소명에 따를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함으로써 성경에 입각한 종교를 예술적 노력과 가장 상응하게 만든다는 점이다.(125)
-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속보다는 창조가 예술 활동에 어울리는 신학적 근거임을 인정하면서 문화에 참여하는 태도가 기독교인에게 필요하다는 뜻이다.(135)
6장. 기독교와 과학 : 서로 가까워질 수 없을까
- 현대 문명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해 마련된 처소에 과학을 봉인하려고 애써왔다.(174)
- 카이저는 과학이 꽃피우는데 필수적인 네가지 신학적 기초가 있다고 주장한다. : 1) 세계의 이해가능성, 2) 하늘과 땅의 일체성, 3) 자연의 상대적 자율성, 4) 치유와 회복의 사역
-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므로, 우주에는 일정한 질서가 존재한다. 따라서 양식이나 법칙을 알아내려고 탐구하는 태도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179)
-루터, 칼빈 그리고 여러 종교 개혁가들은 교회의 영역과 과학의 영역이 절대적으로 자율적이지는 않지만 과학은 교회의 권위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권위로부터 자율성을 갖는다고 생각했다.(182)
- 자연과 은혜는 하나님이 실제로 세계를 다스리시는 두 개의 분리된 나라, 혹은 영역이다. 자연이라는 나라는 인간의 이성과 관찰에 바탕을 둔 기술과 과학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죄 용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결국 두 나라를 하나님 안에서 융화할 수 있는데, 자연이라는 나라는 하나님의 활동을 기반으로 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한다.(183)
- 신앙이 비합리적, 비경험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다는 과학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 두 영역을 통합하는 작업은 지적인 방법으로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결국 칸트는 신앙이 본체계(정신계)에 속하며 과학적 탐구는 현상계와 연관된다고 주장했다.(185) / 칸트는 신앙을 본체계로 안전하게 옮겨 지적, 과학적 비평의 공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종교가 무의미 하고 알 수 없는 것으로 무시당하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 상식실재론, 증거주의
7장. 기독교와 직업 : 일과 휴식
- 우리는 자신의 일터에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교회와 관련된 모든 활동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교회와 관련된 일에 자진해서 함께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해서는 안된다.(209)
- 기독교인이 월요일 아침에 일허라 가는 목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회심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정해 놓으신 자신의 소명에 종사하기 위함이다.(210)
- 가장 열정적인 기독교인이 결국 자기 일에 관심이 제일 적은 사람으로 드러날 경우가 대단히 많다는 인상은 사람을 고용하거나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신자와 불신자 모두의 마음에 대체로 남아 있다.(211)
- 성경적 관점은 현세적인 활동에 성실하라고 요청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휴식을 취하라고 우리에게 당부한다.(218)
8장. 기독교와 현대 세계 : 미쳐 버린 세계
- 결국 진보에 대한 급진적 생각때문에 영향력있는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미신과 신앙의 교의에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 헤겔의 등장으로 급진적 진보사상이 더욱 구체화되었다.(243)
- 기술은 진보의 정신에 외형을 부여했고 철학자와 상인은 모두 미래를 지향하는 공통된 성향을 보였다.
- 현대성은 도시와 영향력있는 행정 중심지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248)
- 신학자와 목회자는 현대성이 제공하는 온갖 바알에 굴복해 인종차별주의, 환경착취, 노예제도, 성차별주의, 과학 기술, 권력 숭배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기독교를 사용한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시인하고 회개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활동으로 자신을 알리신 역사의 유일한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의지해야 한다.(253)
결론 :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의 소유는 아니다.
* 성경의 창조 교리 : 세상 안에 있다. / 세상이 사탄이나 악한 세력에 속하는 것으로 무조건 주장하려는 모든 사람과 반대로 하나님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이라고 친히 공표하신다.(시 50:12)
* 성경의 구속 교리 : 하지만 세상의 소유는 아니다. / 영지주의자는 육신, 물질적 존재, 시간, 역사, 이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구속을 바라보지만, 신구약 성경의 저자들은 시간, 역사, 이세상 안에서 육체와 영혼 모두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구원을 묘사한다.(262)
- 우리가 세속화되는 것은 펩 도나휴의 격려 연설이 설교를 대신하고, 예배가 시장 중심의 소비주의로 변모되고, 교회 안에서 확고한 성경적 핵심이 치유주의적 범주나 정치적 범주에 밀려나기 시작할 때다. 우리가 세속화되는 것은 실용적인 쟁점이 잘 훈련된 제자도를 대신하고, 가시적인 인기와 숫자적인 성공을 목회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할 때다.(263)
- 승리의 직설법(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다는 선포)뒤에는 명령법(거룩하다는 사실에 모순하지 않는 태도로 생활하라는 명령)이 따른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갖는 지위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보이는 거룩함의 진보에 따라 결코 좌우되지 않지만, 참된 신자라면 누구나 이 두가지를 모두 지녀야 한다.(264)
* 창조와 구속 :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 범속한 것과 거룩한 것의 분리를 비롯해 평범한 인가느이 삶에 닥친 이 모든 저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절망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끔 내버려 두시지 않았다. 심지어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선포하셨다.(270)
-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소유가 아닌 상태’로 있으려면, 우리는 현세적인 정의, 태도, 사고방식, 양식이 자신의 신념과 표현을 형성하도록 묵인할 때가 언제인지를 인식할 수 있을 만큼 기독교 신앙을 충분히 잘 알 필요가 있다.(275)
- 모든 삶은 거룩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평범한 것이 가치있고 훌륭한 까듥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것의 주인이듯이 범속한 것의 주인이기도 하시다.(282)
- 우리에게는 자동차 정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나 심장 절개수술을 위한 성경적 원칙이 필요하지 않는데, 굳이 기독교 음악, 기독교 서적, 기독교 미술, 기독교 사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286)
- 많은 신자는 자기 일이 구체적인 의미에서 특별히 기독교적인 특징을 갖는다고 주장함으로써가 아니라, 창조가 창조 자체의 정당한 권리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점을 상기함으로써 교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신의 소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다.(288)
- 현대성은 종교 개혁의 신학적 기초를 부인함으로써 신학이 주는 풍성한 복을 현대 사회의 재앙과 우상으로 만들었다. / 민일 우리가 거룩성에 대한 의식을 되찾기를 바란다면 거룩성의 회복은 은혜를 입으려고 우상들을 의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상들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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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적(그리스적) 사고 : 추상적, 분석적, 사변적, 이원론적
히브리적 사고 : 실제적, 계시적, 유기적, 통합적
- 서구인들의 세계관에 대한 관심이 주로 서구 세속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동양의 반기독교적 사상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서구인들에게 이원론의 문제는 주로 세계를 보는 정신 세계에서 나타나는 데 비해 동양에서는 주로 생활태도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서구인들에게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이분화된 정신 세계를 통일 시키는 작업이 필요하고 동양인들에게는 기독교 세계관 내에서 일관성 있는 삶의 자세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16)
1장 세계관, 세계를 보는 관점
* 한국에서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서 고려되어야할 점
1) 기독교 세계관이 공허한 철학적 사변으로 흐르지 않도록 일차적으로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2) 내용에 있어서 논리성을 가져야 하지만 지나치게 복잡해서는 안된다.
3) 기독교 세계관과 전통 사상의 이원 대립적인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4) 이원론에 대한 바른 접근이 필요하다.
-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형성(form)된 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왜곡(deform)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에 의해 개혁(reform)되어야 한다.
2장 창조, 시작에 대한 커다란 믿음
- 범신론 : 피조물과 창조주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로 보며, 신을 피조 세계의 일부로 포함시킨다.
- 유물론적 자연주의 : 하나님 없이 물질 세계만을 받아들임
- 이신론 : 창조주는 세계를 창조한후 더이상 세계를 돌보지 않는다. 피조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속사의 진행을 부정
- 이원론 : 초월적인 영역과 자연적인 영역을 이분하여 신을 초월적인 영역에 제한
- 성경의 하나님은 “내재하시면서 동시에 초월하시는 분”이다. 내재성을 강조하면 범신론으로, 초월성만을 강조하면 이원론이나 이신론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 성경의 주된 관심은 신학적이고 영적인 것에 있으며 생물학이나 지질학, 연대기 등과 같은 과학적인 해석이 아니다. 물론 이 말은 성경 기록이 역사적, 과학적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비록 성경이 현대의 역사가나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논리 전개 방법이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경은 역사적 시공의 영역에서 이들의 연구 범위를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비역사적이라기 보다는 초역사적이요, 비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초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58)
* 창조의 의미
1) 창조주와 피조물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2) 만물은 의존적이다.
3) 창조에는 목적이 있다.
4) 하나님은 인간에게 피조세계를 다스리도록 문화명령을 주셨다.
5)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 :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인 창조하신 만물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에 피조 세계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3장 타락, 창조주와의 결별
* 우상숭배와 관련한 성경적 견해
1) 인간은 종교적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대신 다른 것을 섬길 수 밖에 없다. / 인간은 본성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섬기지 않는 중립적인 상태에 있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무엇인가를 섬길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어거스틴은 종교적 집중이라고 불렀다.
2)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경배하는 대상을 닮아 간다.
3) 인간은 자기가 숭배하는 대상을 닮아 갈 뿐만 아니라 그 닮은 모습에 따라 문화를 형성한다.
4장 구속, 피묻은 십자가의 수용
- 구속은 원래 상태로의 회복을 위미한다. 회복으로서의 구속이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처음의 완전하고도 무흠한 상태가 있었으며 이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파괴되었음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회복이란 말 그대로 돌아가는 것, 혹은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 개인적 구속의 의미
1) 구원은 신분의 변화를 의미한다.(죄인-의인), 하나님의 자녀가 됨
2) 구속에는 재창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3) 구속은 일종의 과정이다.
- 세계관은 아르키메데스의 고정점과 같아서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기준 틀이 된다.(108)
5장 인간, 고개 돌린 하나님의 형상
* 유물론적 인간관 : 인간을 물질, 복잡한 기계로 여김
* 진화론적 인간관 : 모든 생물체가 물질로부터 저절로 생겨났다고 여김
* 성경적 인간관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아다는 의미
1) 인간이 인격적인 존재이며 인격적인 하나님과 교제하며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2) 인간이 존귀한 존재임을 의미
3) 인간에게 영적 특성이 남아 있음
6장 죽음, 숨겨진 교만의 진실
- 죽음을 끝, 존재의 소멸이라고 보는 유물론적 혹은 무신론적 실존주의 세계관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끝없는 윤회의 한단계로 보는 세계관(불교, 힌두교)
* 성경에서의 죽음의 의미
1) 죽음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죄로 인하여 왔다.
2) 죽음은 소멸이 아니며 죽음 후의 세계가 있다.
3) 죽음은 절망이 아니며 죽음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해결되었다.
4) 죽음 후의 세계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며 이 땅 위에서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7장 윤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 윤리학의 세가지 기본 질문
1) 인간 행동의 동기는 무엇인가?
2) 인간 행동의 표준은 무엇인가?
3) 인간 행동의 목표나 목적은 무엇인가?
- 인간을 자연 발생된 존재로 보는 유물론적, 진화론적 견해에서는 시대, 지역, 민족, 상황에 따라 인간의 필요가 변하면 도덕의 기준도 변한다고 보는데 이것을 상황윤리라고 한다.(142)
-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보는 인본주의
- 무속적 윤리 : 현세적이며 삶을 구속한다. / 기복성 /
- 불교의 불가지론 : 선과 악은 하나
* 기독교적 윤리
1) 하나님은 초월적이고 주권적이며 인격적이고 도덕적이다.
2)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달리 도덕적인 가치와 선택을 수용한다.
3) 인간이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거룩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8장 역사, 구속을 향해 가는 달력
- 순환적 사관 : 무한 반복, 중국, 인도
- 진보주의적 사관 :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 헤겔의 변증법 /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논리적 변증법을 통해서 역사속에서 자신을 실현시켜 나가는 절대정신을 보았으나 마르크스는 절대정신을 제거해 버리고 역사는 계급간의 투쟁, 갈등, 긴장을 통해서 계급없는 사회를 향해 나간다고 보았다.
* 기독교는 구속의 역사 : 처음부터 역사는 분명한 의미와 목적을 가진것으로 생각한다. / 역사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9장. 결혼, 하나됨의 미학
* 결혼에 대한 다양한 견해 : 진화론적 결혼관(종족 번식 본능), 기계론적 입장(화학물질, 호르몬의 분비), 쾌락주의(DINK-Double Income, No Kid), 한탕주의와 물질주의(신데렐라, 온달 신드롬), 여성해방 운동
* 자녀에 대한 견해
1) 저주로서의 자녀관, 2) 우상으로서의 자녀관, 3) 축복과 상급으로서의 자녀관(성경적)
* 성경적 결혼관에 대한 실제적 제안
1) 거룩한 삼각관계, 2) 옆으로 서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3) 레디 메이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4) 결혼은 사람과 하는 것임을 기억하라(조건만을 보지 말라)
10장 노동, 땀 흘리는 수고의 기쁨
- 노동 :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움직임이나 즐기기 위한 오락이 아니라 수고하여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노동이란 일정한 목적을 두고 생산성 있게 일하는 행위이다.
* 노동에 대한 비기독교적 견해
1) 저주설 : 고대 그리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르크스, 불교나 힌두교, 유교나 노장사상
2) 방편설 : 생존의 방편 / 자아실현과 성취의 수단 / 노동을 헌금의 방편으로만 보는 것
*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는 노동
1) 신성한 하나님의 창조 법칙이요 명령이다.(문화 명령)
2) 노동을 예배의 한 부분으로 본다.(삶 전체를 예배로 보는 견해)
3)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연결된다.(소명)
4) 이웃 사랑의 표현
11장 국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는 제도
* 국가와 교회의 관계
1) 적대적 관계
2) 국가는 교회의 일부라는 견해 : 카톨릭
3)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 : 종교개혁전통
- 우리는 불의가 판치는 현실속에서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는 용기와 불의에 참여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
1) 정부나 모든 제도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
2)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한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3) 국가의 권세와 제도도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지만 인간의 본성적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법도를 벗어날 수 있다.
4) 세상의 권세와 제도를 보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은 어느정도 비관적일 수 밖에 없다.
12장 지식, 앎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
* 지식에 대한 견해
1) 그리스적 앎이란 : 인간의 이성은 자율적, 자충족적이고 본질적으로 선하며 그 이성을 통하여 지식과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다.(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2) 히브리적 앎(성경적 앎) : 참된 지식이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또는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믿었다.(잠 1:7; 9:10)
- 안다라는 의미의 차이 : 그리스적 지식관에서는 지식이란 차가운 이성적 추론의 결과 얻어진 관조적인 것이나 명상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히브리적 지식에서는 행함과 유리된 관념적이고 사변적 지식은 아직 아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지식의 결과 행함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식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앎과 더불어 실제적인 행함이라는 불가분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다는 히브리어 ‘야다’는 인식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 뿐 아니라 대상에 대한 책임이나 대상과의 관계성까지 포함하는 말이다.(234)
-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신 이유 : 히브리적 앎에서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안다는 말은 곧 악을 행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 성경이 보여주는 지식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행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 이원론적 사고의 문제점
1) 신앙의 개인주의화
2) 교회 중심의 종교 생활에만 열심을 내는 신앙의 형식화를 조장
3)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신앙의 형식화(구원의 확신 공식을 강조)
-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식도 실천과 연결되지 못하고 이론적인 지식으로 남게 된다면 의미가 없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단순히 세계를 보는 정적인 입장으로만 남아 있는게 아니라 생동감 있게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날 때 바른 지식, 살아 있는 지식이 될 수 있다.(243)
13장 학문, 다양한 창조 질서의 연구
- 학문이란 : 모르는 것을 배우고 의심스러운 것을 묻는 것(역경), 지혜를 사랑하는 것
* 학문에서 기독교적 조망이 중요한 이유(허만)
1)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든지 아니면 다른 신을 섬길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2) 사람은 자기들이 섬기는 대상의 형상에 따라 자기를 형성해가기 때문에
3)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그들이 경배하는 대상을 따라 형성되어 가기 때문에
- 이원론적 사고의 문제 : 아퀴나스의 영향으로 자연과 은총, 신앙과 이성이 나뉘었다. 이는 학문과 신앙, 과학과 종교, 영혼과 육신, 전도와 사회참여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기독교적 학문 연구란 : 학문의 전 과정, 즉 학문의 의미, 과정, 방법, 목적, 응용, 심지어 학문의 동기까지 기독교 세계관적 기초위에서 이루어질 때 그것은 온전한 기독교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255)
14장 이데올로기, 얼굴없는 우상
- 이데올로기란 혁명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계몽주의자들이 사용한 가치, 개념, 신념, 규범의 체계 / 즉 이데올로기는 의식의 산물, 즉 관념의 체계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을 위한 프로그램
* 이데올로기의 특징 : 1) 자신의 존재에 근본적은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체계를 갖고 있다. 20 자신과 객관적 주변 조건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가져다주는 분석 체계를 가진다. 3) 원망과 확신에 의해서 자기의 잠재적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신념 체계, 4) 구체적인 사회적 쟁점에 대한 수단과 태도를 선택하는 행동체계를 갖는다.
- 이데올로기는 기본적인 신관, 인간관, 윤리관, 세계의 이해에 대해서 기독교적 세계관과 충돌한다.
- 도여베르트는 이데올로기란 다양한 양상을 가진 피조세계에서 오직 한 양상만을 확대시켜 나머지 모든 양상들을 그 양상으로 환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 기독교가 현실 문제의 해결만을 지상 목표로 삼는다거나 반대로 현실문제도 도외시하고 내세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기독교 신앙도 또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될 위험이 크다.(270) / 그러므로 초월 세계를 상실한 종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고, 따라서 다른 이데올로기를 초월적 입장에서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다.(271)
15장 과학, 물질계에 대한 청지기적 과업
- 과학의 급속한 발달과 엄청난 영향력 그리고 지나치게 분화된 과학과 다원화된 사회구조는 과학의 이데올로기화를 촉진시켰다. 이러한 과학에 대한 무지는 경외심을 일으키고, 경외심에서 공포가, 공포감에서 우상숭배가 시작된다.(275-6)
- 갈릴레오는 "성경도 자연현상도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유래하고 있다. 전자는 성령의 명령을 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집행한다”라고 말했다.(283)
- “극한의 가난과 처참한 30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페스트로 아내와 자식을 잃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케플러로 하여금 일생 천문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한 것은 자신의 연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는 성직자들이 성경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것처럼 자신은 천체의 운행을 연구하여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솜씨를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천문학으 제사장이라고 생각했다.”(286)
16장 기술, 다스리며 지키기 위하여
* 우상화된 기술 : 과학기술의 이데올로기화 / 환경파괴(지구온난화, 로마클럽 보고서) / 시스템적 세계관의 한계(문제는 굶주림에 대한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자기의 것을 기꺼이 나누려고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 기술에 대한 바른 청지기적 자세
1) 기술 이데올로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 길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2) 첨단 기술에 대한 우상숭배를 버리고 이의 도구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 과학의 절대화로 생긴 성부 과학주의, 과학주의가 낳은 성자 기술주의, 물질적 부요라는 영감으로 과학주의와 기술주의를 가속화시키는 성령 경제주의의 삼위일체
3) 기술로부터 도피하려는 자세로부터 벗어나 적극적으로 기술 분야에서 선한 청지기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더이상 이 세상에서 문화 추종자(Culture follower)가 아닌 문화 형성자(Culture former)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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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이름짓기(제임스 사이어, IVP)
코끼리 이름 짓기(세계관 개념의 역사와 재정의)
- 세계관이란 이 세계의 근본적 구성에 대해 우리가(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관적이든 비일관적이든) 보유하고 있는 일련의 전제(부분적으로 옳거나 완전히 잘못된)다.
1. 낙타, 캥거루, 코끼리
- 제임스 사이어는 그가 이전 그의 책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에서 기독교 유신론, 이신론, 자연주의, 허무주의, 실존주의, 동양 범신론적 일원론, 포스트모더니즘을 다루면서 제기한 7가지 기본 질문이 불충분하다고 여겨서 그가 생각하는 부족한 항목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 “무엇이 세계를 받치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낙타, 캥거루, 코끼리)
2.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 세속 철학자들이 세계관을 이해한 방식 4가지
1. 빌헬름 딜타이 : “어떤 세계관이든 궁극적 뿌리는 인생 그 자체다.”, 한 사람이 인지하는 것은 주로 본인의 정신에 달려 있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저기에 있는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우리의 정신 속에 내재된 구조를 통해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29) / 세계관은 인간의 심리적 측면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지적으로는 실재의 인식으로, 정서적으로는 삶의 평가로, 의지적으로는 능동적인 뜻의 이행으로 표현된다.(30)
2. 프리드리히 니체 : 그는 허무주의자인 동시에 실존주의자이다. / 모든 세계관이 시대와 장소와 환경에 따라 형성되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여긴다.(33)
3.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 플라톤은 존재론(존재하는 그 무엇)을 지지하고 데카르트는 인식론(어떻게 알 수 있는가?)을 주요 관심사로 주장한데 비해, 비트겐슈타인은 문법과 언어를 지도적 원리로 지명했다. 요컨데 비트겐슈타인은 세계관의 타당성 자체를 부인했다고 볼 수 있다.(34)
4. 미셀 푸코 : 세계관은 언어적 권력의 옷을 차려 입고서 궁극적 실재를 해석하는 체하는 가짜에 불과하다.(38)
* 기독교적 정의
1. 제임스 오르 : 완전하고 정합성 있고 이성적으로 변호할 수 있는 기독교를 제시함으로써 당대의 지적, 문화적 도전에 대처하는 것이 그의 목적(39)
2. 아브라함 카이퍼 : 그는 칼빈주의 기독교를 하나의 포괄적 세계관으로, 삶의 체계로 제시했다.(하나님, 인간, 세상과의 관계를 다루는)
3. 헤르만 도여베르트 : 그는 한사람의 세계관의 바탕에 있는 것이 이론적 사상이 아니라 마음의 종교적 혹은 신앙적 지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관은 철학적 체계가 아니라 전이론적 결단이며, 지성이 아니라 마음과 경험 그리고 실질적인 삶과 직접 접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43)
* 최근의 복음주의적 정의들
1) 한 개인의 전반적인 사상과 행위의 토대가 되는 전 이론적, 전제적 개념들에 뿌리박고 있음, 2) 범위가 포괄적, 3) 반드시 그런것은 아니지만 이상적으로는 논리적 정합성을 갖춤, 4) 모든 사물과 관계가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에 긍정적으로 연결되어 있음, 5) 굳이 비이성적이지는 않더라도 이성에 의해 최종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결단의 성격을 가진 신념(44)
1. 제임스 올시우스 : 세계관은 우리가 세계와 우리의 소명과 장래를 조망하는 하나의 틀 혹은 일련의 근본 신념(45)
2. 알버트 월터스 : 한사람이 사물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 신념들의 포괄적 틀
3. 로널드 내쉬 : 세계관이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일련의 신념이다. 그것은 하나의 개념적 틀로서, 그에 의거하여 우리는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정돈하고, 실재를 해석하고 판단한다.(47)
4. 존 콕 : 삶으로 실천된 세계관이야 말로 우리의 신념을 실제로 나타낸다.(47)
* 노글이 말하는 기독교적 세계관 : 1) 객관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인격적이며 초월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존재론적 신념을 품고 2) 주관적으로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힌 하나의 관점이며 3) 설화적 기호들로 이루어진 언어체계다. 즉 실재는 본질상 객관적이며, 인해의 측면에서는 주관적이며, 그 의미를 파악하고 전달하는 면에서는 언어적이라는 것이다.(65)
3장. 무엇이 먼저인가?(존재인가 인식인가?)
* 제임스 사이어가 말하는 세계관의 일곱가지 질문(68)
1) 진정으로 참된 최고의 실재는 무엇인가?
2) 외부의 실재, 즉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3) 인간은 무엇인가?
4) 인간이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5) 지식이 가능한 까닭은 무엇인가?
6)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7) 인간 역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 존재론이 우선하는 경우(유신론과 기독교적 유신론)
- 성경적 세계관에서는 무든 것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존재론이 인식론보다 앞선다.(74)
- 근본적 실재의 본질은 무엇인가? 궁극적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 곧 전지 전능하시고, 무소 부재하시며, 선하신 놀라운 인격이다.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주가 이해될 수 있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 인식론이 우선하는 경우
- 데카르트 : 자아의 자율성 - 자기존재의 확실성 - 하나님의 존재의 확실성 - 외부 세계의 존재의 확실성
* 결론 : 세계관의 정립에서 존재론이 인식론을 앞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세계관을 인간의 자아라는 깨지기 쉬운 구조 위에 올려 놓는 셈이다. 달리 말해서 이는 인간 이성의 자율성, 곧 각 개인의 자아 혹은 각 공동체의 의식이 지닌 자율성을 토대로 삼는다는 뜻이다.(101)
4장. 살과 뼈(이론적 성격과 전이론적 성격)
- 세계관은 이론적이기보다는 전이론적(직관적)이면서 전제적 성경을 갖고 있다.
* 전이론적 : 우리의 정신적 구조의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어서 우리가 생각을 시작하면 도무지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개념
* 전제적 : 아퀴나스나 칼빈이 말하는 신 관념(파스칼 : 마음은 이성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이유를 갖고 있다.)
* 도여베르트는 세계관의 근원을 각 사람의 전이론적인 영적 중심에서 찾았다.
-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인간 경험이 하는 역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 우리의 추구 방법 등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저기에 계신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내재적 현존에 관한 지식을 우리가 선물로 받는 일이다.(124)
5장. 합리적 체계, 삶의 방식, 으뜸 이야기
- 각 사람의 세계관은 다른 사람의 것과 약간 다를 수밖에 없으며, 더욱이 세계관은 시간이 흐르면서 은근히 무의식적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누구나 세계관을 갖고 있다.(130)
* 제임스 사이어가 말하는 세계관의 일곱가지 질문(68, 132)
1) 진정으로 참된 최고의 실재는 무엇인가?
2) 외부의 실재, 즉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3) 인간은 무엇인가?
4) 인간이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5) 지식이 가능한 까닭은 무엇인가?
6)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7) 인간 역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 브라이언 왈쉬와 리처드 미들턴의 질문 4가지(135)
1) 나는 누구인가? 혹은 인간의 본성과 사명과 목적은 무엇인가?
2) 나는 어디에 있는가? 혹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3)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혹은 나의 성취를 막는 근본적인 문제나 장애는 무엇인가? 달리 말하면 나는 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4) 치료책은 무엇인가? 혹은 나의 성취를 막는 이 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달리 말하면, 나는 어떻게 구원을 발견하는가?
* 삶의 방식으로서의 세계관
- 세계관은 신학이나 철학 같은 사상의 체계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관은 인식의 틀이다. / 세계관은 결코 삶에 대한 시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삶을 위한 시각이다.(138)
* 으뜸 이야기(거대 담론)로서의 세계관
- 성경은 규범적이고 표준적인 이야기로서 궁극적으로 전체주의화를 반대한다. 그 이유는 성경 이야기에 스며있는 고난에 대한 철저한 민감성과 그 이야기를 자기 편을 위해 편협하게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하나님의 포괄적인 창조의도 때문이다.(146)
- 레슬리 뉴비긴은 세계관을 이야기로 간주함으로써 그 실존적 적실성을 잘 전달하고 있다.
- 세계관에 대한 재정의 : “인간의 심리적 측면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지적으로는 실재의 인식으로, 정서적으로는 삶의 평가로, 의지적으로는 능동적인 뜻의 이행으로 표현”된다.
6장 세계관(공적 측면과 사적 측면)
* 공적인 동시에 사적인 것 :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인 동시에 호모 소시우스이다.
* 이상형으로서의 세계관
* 타당성 구조(Plausibility structure) : 타당성 구조란 사회의 대다수 사람의 마음과 생각 속에 깊이 뿌리박힌 것으로서 그들이 무의식저긍로 혹은 아주 확고하게 품고 있어서 그것이 참인지를 물어 보지도 않는 신념들의 망이다.(158) / 한 개인의 세계관이 사회의 세계관과 동일할 경우에는 자기 세계관이 참된 것임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162)
7장 세계관의 새로운 정의
- 다원주의(다소 상반된 세계관들이 함께 공존하는 것)는 상대주의가 아니다.
* 세계관의 재정의 : “세계관이란 이야기의 형태로 혹은 실재의 근본적 구성에 대해 우리가(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관적이든 비일관적이든) 보유하고 있는 일련의 전제(부분적으로 옳거나 완전히 잘못된)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몸담을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는 하나의 결단이요 근본적인 마음의 지향이다.(173)
- 마음의 성경적 개념 : 지혜(잠 2:10), 감정(출 4:14; 요 14:1), 욕구와 의지(대상 29:18), 영성(행 8:21), 지성(롬 1:21)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175) / 우리는 우리의 세계관과 더불어 그리고 그 세계관 때문에 생각을 하는 것이지, 우리의 세계관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176)
- 아브라함 카이퍼 : 모든 사상은 단 하나의 원리, 고정된 출발점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181)
- 우리가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려면 우리의 세계관에 담긴 모순적인 요소들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오르의 말처럼 우리는 “사물들을 통일체로 묶고 이해하려는 노력, 곧 단 하나의 보편적 관점을 추구해야”한다.(187) /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동시에 환생을 믿는 것(인지 부조화로 세계관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런 갈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 세계관을 재정의한 결과
- 초점을 명제와 이야기에서 그런것을 포착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옮겼다.
- 누구든 세계관의 명시적 전제들은 잘 바뀌지 않을지 몰라도 그 전제들의 실천적 성격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 세계관의 대들보가 존재론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이 하나님이나 자연 혹은 자신에 대해 어떤 개념을 갖고 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8장 낮에 서로 부딪히는 유식한 사람들(분석 도구로서의 세계관)
- 세계관 분석이 다원주의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비슷한 동시에 왜 그토록 다른지를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196)
- 자연 과학 분야에 속한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이 전반적인 세계관은 유신론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과학적 연구를 할때는 방법론적 자연주의자가 된다.(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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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로부터의 창조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4) 질서있는 창조
5) 그 종류대로 창조
6) 선하신 창조
"창세기 1장의 날들의 길이와 관련해서는 하나님께서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결정에 이르기에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으시기로 선택하셨다고 할만하게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성의 참된 시금석은 선한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분들에게 대해서 어느정도 관대하고 친절하게 행동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되려는지도 모른다" -그루뎀
인간의 인간됨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함의
1) 인간이 다른 동물로 부터 진화되었다는 모든 관념을 거부한다.
2) 하나님을 잘 반영하는 형상 역할을 잘 감당해야만 한다.
3)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마치 인간이 최고의 존재인 양 생각하는 인간중심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리고 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형성함에 있어서 그 출발점은 창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라고 할수 있다. 보수주의의 관점에서는 창조를 이해할때 6000년이라는 시간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무리하게 접근하기도 하고, 진화론자의 경우에는 빅뱅이나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면서 45-200억년을 도입하기도 한다. 모두 극단의 위치이고 이부분에서는 칼빈이 이야기한대로 성경이 말하는곳까지 가고,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멈춰서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의 특징들에서 나타난 하나님 창조의 특징은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부분이며, 그렇기에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창조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것과 과학적인 해석의 접근을 통해서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들과의 간극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한다.
나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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