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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선 기독교(미로슬라브 볼프)
해넘이 채화대에서(2016 간사수양회)
“세상에서 배제되는 위험과 세상 전체로 침투하는 위험 모두를 극복하는 비전”은 무엇인가?
1장. 신앙의 기능 장애
* 상승 기능 장애(기능 축소와 우상으로 대체)
- 기능 축소 : 겉으로는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여 전망하고 실천하나 실상은 그 내용과 추진하는 방법이 신앙의 핵심에 근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신앙의 핵심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 우상으로 대체함 : “어느 날 예언자들이 산에서 돌판을 가지고 내려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돌판에는 진정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와 관련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이상한 연금술을 통해 “내가 너를 승리하게 하리라”는 말로 변형되고 십자가가 적대감을 극복하는 창조적인 사랑이 아니라 파괴와 폭력의 상징이 되어 버린다.
* 회귀 기능장애
1) 신앙의 나태함 : 유혹의 미끼, 체제의 힘(개인으로서는 결코 하려고 하지 않을 일들을 부대안에서 군인은 기꺼이 하고자 한다.), 신앙에 대한 오해(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여행을 떠나게 하고, 그길을 인도하며, 우리의 걸음걸음마다 의미를 부여할 때라야 고유한 과업을 수해하는 것이다.)
2) 신앙의 강요
- 신앙이 억압의 수단이 되는 모든 경우, 사실은 신앙의 기능장애가 일어난 것이다.
- 그리스도인이 억업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보여온 이유 : 신앙의 왜소화(수단의 경시는 신앙의 왜소화로 이어진다. 그러 인해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온전히 형성하지 못하고, 신앙과 상관없는 가치에 의해 세워진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을 정당화하거나 신앙에 의해 목표를 설정하기는 하더라도 그것을 이루는 수단에는 제대로 적용되지 못한다.), 신앙이 현실에 부적절하게 보인다는 문제, 좁은 길로 가기를 꺼리는 문제
2장. 나태함
- 신앙이 나태해지는 이유 : 1)신앙인의 인격, 2)체제안에 갇혀서 생존하고 성공하기 위하여 신앙의 요구사항보다 체제의 규칙을 따름, 3)신앙자체와 관련
신앙의 네가지 기본방식 1)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 2) 어떻게 실패에 대처할 수 있는가? 3)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은 하지 않아도 되는가? 4) 왜 어떤 활동에 꼭 참여해야 하는가?
- 우리의 행동에 대한 신앙의 지침 : 개인적 측면과 도덕적 측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일을 수행하는 가운데 분별하는 것 : 전쟁을 개전함에 있어서의 정의와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정의, 한 국가는 전쟁을 일으킬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쟁 자체는 부당하게 수행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직업이라 해도 우리는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윤리적인 방법과 그렇지 않은 방법을 분간해야 하고 그러한 결정에 의거해서 행동해야 한다. 도덕적인 문제는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또한 적절하게 기능하는 신앙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일을 넘어서 도덕적으로 탁월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 하나님이 우리 일의 의미와 관계를 맺는 방식 : 고용주,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 하나님과 협력, 보존
3장. 강요
오늘날 종교의 재부상은 적어도 공적 영역에서 볼때 종교적으로 정당화된 폭력과 더불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공적 영역에서 종교를 약화 혹은 무력화 하고 더 나아가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 표층적이면서 열정적인 신앙의 실천은 폭력을 촉진하기 쉬우나 심층적이면서 전적으로 헌신된 실천은 평화의 문화를 낳고 유지된다.
* 유일신 신앙
- 유일한 신의 도덕적 형이상학적 성격에 관한 진리 주장이 보편성을 띠면 불가피하게 공적 주장이 된다. 보편적이고 공적인 주장은 특정한 주제에 관한 것이든 일반적인 주제에 관한 것이든 이와 반대되는 주장과 마주칠 때 충돌을 야기한다.
유일신 신앙으로서 기독교 신앙의 특징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구속하는 데 관여하신다는 사실을 포함한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믿음의 일부가 폭력을 이끌어내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이 폭력을 정당화 하는데 사용된다면 그것은 오용이다. 이러한 행동은 심층적이고 근본적인 신앙의 요소들을 표층적이게 만듦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예언자적 종교로서 기독교 신앙은 강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에 참여하여 우리의 노고를 축복하고 우리의 실패를 위로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도덕적인 지침이 되어 주며 우리의 삶과 활동을 지지하는 의미의 체계를 제공해준다.
* 구속
- 예수 그리스도는 폭력적인 행위로 악한 자들을 정복하러 세상에 오신게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그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죽으러 오셨다.
4장. 인간의 번영
낙관주의(푸투룸)는 과거나 현재에 이미 잠재되어 있다가 미래에 나타나는 좋은 것
희망(아드벤투스)은 외부, 즉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좋은 것과 연관
* 인간의 번영을 파악하는 세가지 단계 :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 보편적인 선행, 경험적 만족감
- 델반코는 무한하신 하나님에서 구원자 미국이라는 이상으로, 그리고 마침내 자기자신이라는 소멸점에 이르기까지 희망이 점점 줄어들었다고 주장한다.
- 예언자적 종교에는 두가지 근본적인 움직임이 있다. 하나님께로 상승하여 예언적 메시지를 받는 것과 세상으로 회귀하여 그 메시지를 따라 이땅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두 과정 모두 필수적이다. 상승이 없으면 전할 것이 없고, 회귀가 없으면 전할 대상이 없다.
* 그리스도인이 당면한 도전
1) 우리가 오늘날 직면하는 구체적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의 번영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인간의 번영을 위한 열쇠라는 주장을 실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3)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도전은 하나님이 인간의 번영에 필수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5장. 정체성과 차이
-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원화된 세상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수많은 행위자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
1) 현대사회의 네가지 주요 특성
- 자발성, 차이, 다원주의, 상대적 자족
2) 이러한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 가운데 부적절하게 보이는 세가지 방식
- 적응(자유주의적 프로그램), 순응의 방향의 반전(후기 자유주의 프로그램), 세상으로부터 철수(분리주의 프로그램)
3) 보다 나은 대안
- 떠나지 않으면서 다르게 사는 것 :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살고 있는 문화의 어떠한 요소들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주어진 문화안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한다, 문화의 요소중 그리스도인이 거부해야 할 것들이 있다.
- 그리스도인이 한 문화에서 갖게 되는 정체성이란, 크고 작은 거부, 차이, 전복들, 그리고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대안 제시와 시행을 통해, 많은 문화적인 제약을 수용해야 하는 환경속에서 이루어가는 복잡하면서도 유연한 네트워크이다.(137)
* 해서는 안되는 것 두가지와 해야하는 한가지
- 완전하게 변화시킬 수는 없다, 적응도 불가능하다 : 그렇다면 문화적 변화속에서 기독교의 정체성과 차이를 어떻게 타협할 것인가(기독교의 정체성은 외부적인 것을 거부하고 싸워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핵심요소를 포용하고 강조함으로 생긴다, 외부에 있는 대상과의 관계는 사랑으로 지배되어야 한다, 경계는 투과성이 있어야 한다)
- 참여가 답이다 :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그들의 전존재를 통해 세상에 참여하며, 이 참여는 문화의 모든 차원과 연결된다.(그리스도인의 참여는 문화의 모든 영역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 하나도 완전히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영역에서 선을 추구하고 찾아내어 그것을 보존하고 강화한다. 범위로는 전체적이지만 정도로는 제한적이다. 이러한 제한은 개인적 제도적 혹은 사회 전반의 변화에 대한 저항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성의 유한성과 연약함 때문에 나타나며 변화를 추구하면서 선한 방법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드러나기도 한다.)
6장. 지혜를 나누며
- 이 시대는 만족의 근원은 상관하지 않고 만족을 경험하는 것, 즉 자신의 만족만이 중요하게 되었다.
- 다원적인 세상에서 모든 종교의 주된 사명은 사람들이 보잘것없는 희망에서 벗어나 의미있는 사람을 살게 하고 갈등을 해결하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 지혜는 조언의 작은 조각, 삶의 방식, 거룩한 인격등의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 왜 지혜를 나누는 것이 중요한가?
- 그리스도인에게는 지혜를 나눠야 하는 의무가 있다. 지혜를 나누는 의무는 이웃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안에 거하는 지혜가 우리를 통해 다른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 지혜를 나누는 핵심적인 방법(증언)이 아닌 것은?
- 증인은 무엇을 강요하는 폭군이 아니다, 증인은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이 아니다.(무언가를 팔고자 하는 이는 상품을 구매자의 입맛에 맞게 변형해서라도 판매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이처럼 지혜를 사고 팔면 지혜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형성하기 보다 기껏해야 마음속 욕망을 만족시키는데 쓰일 뿐이다.) 뭔가를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다. 증인은 단지 산파가 아니다.
- 주는 것과 받는 것, 이 두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지혜를 나누는데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이가 그리스도인 자신이 아니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궁극벅으로 그들은 지혜를 나눠 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은 지혜를 나눈 통로가 되는 것이다.
- '예언의 역전’이 필요하다. : 그리스도인도 때로는 외부로부터 그들의 신념과 관행을 흔들어 놓을 예언적 자극과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아니 그런 도전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갖고 있는 지혜에 좀더 일치하게 순간순간을 살아갈 수 있다.
- 우리는 지혜가 사람들의 삶에 자리잡게 되는 것을 돕기 위해 사람들을 기만하고 강압해서 지혜를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된다.
- 우리는 지혜를 통해 기꺼이 회개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지혜가 매력적이고 합당하고 유용한 것임을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내야 한다.
- 우리는 신앙의 지혜를 입맛에 맞고 먹기 쉬운 지혜의 조각으로 포장하여 사람들의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려는 계획속에 삽입하여 적용하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7장. 공적 참여
종교가 그 힘을 잃을 것이라는 세속화론은 잘못되었다. 다양한 근대화의 길 가운데 경제성장, 기술발전, 그리고 지식의 증대와 전파 같은 현상이 번성하는 종교와 편안하게 공존하고 있다.
- 오늘날 빠르게 자라나는 세계관들 : 기독교, 이슬람, 불교, 세속적 휴머니즘
* 종교적 다양성
- 근대화론자들이 품었던 세속 세계에 대한 동경은 ‘기독교적인 유럽’이나 ‘기독교적인 미국’에 대한 기대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깨지게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종교
- 자유주의는 자신의 해석이 어떠하든지 각 사람의 인생관에 따라서 살아갈 자유와 개인의 인생관에 대한 국가의 중립성을 두가지 기본개념으로 하고 법 앞에 평등한 보호를 보장하는 것이다. / 자유주의는 자신이 택한 신앙이 시키는 대로 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 세속주의는 하나의 이념이 아니고 한 묶음의 연관된 가치들과 진리주장들인데 이는 부분적으로 전통에서 이어받은 것과 시장에서 생성된 것 그리고 자연과학으로부터 뽑아낸 것들로 구성된다. / 종교적 이성을 공적 결정과정에서 배제하고 정교분리를 철저히 시행할 때 세속주의는 가장 중요한 관점으로 선호되며 이는 신앙인들에게 아주 불공평하다.
- 이에 대안으로 월터스토프는 사회적 협의(consocial)라고 부르는 자유민주주의 형태를 제안한다. / 다수 공동체의 공존의 정치
* 다원주의를 정치적 과제로 지지해야할 충분한 이유
1) 신은 한분뿐이시므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
2) 유일하신 신이 중심적으로 명하시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이는 황금률에서 표현된 대로 네가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3)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는 타인의 권리를 우리와 우리가 소속된 집단을 위해 주장하지 못한다.
4) 내면적으로나 외적 행동에 있어서나 종교는 강요될 수 없다.
* 종교적이건 세속적이건 상이한 인생관으로 폭력적 충돌이 생겼을때 평화의 문화를 길러 낼 내적 자원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 자신의 종교적 목소리로 말한다는 것은 신앙의 중심으로부터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목소리를 말한다는 것은 두가지 근본적인 신념 즉 하나님은 죄지은 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과 종교적 정체성은 통과할 수 있는 경계로 둘러싸여 있음을 전제로 말하는 것이다.
- 신앙인들은 다른 종교의 경전에 대하여 ‘해석학적 호의’를 베풀고 서로 선물을 교환해야 한다.(191)
- 논쟁만 하는 것으로 행동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행동을 멈출 수 없다. 논쟁하면서 행동해야 한다. 정치체계에서 행동하는 중요한 방식은 투표하는 것이다. 논쟁하고 나서 투표하고 또 논쟁한다. 이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잘 운영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이 취하는 방식이다.
결론
- 오바마 대통령의카이로 연설(2009년)-문명의 충돌의 주장에 반대 / 새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해석하게 되면 종교적 전체주의에 반대하며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주의를 지지하게 된다.
- 현대 문화 속에서 즐거움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추진력이 사랑을 즐거워하라는 것으로 대체되어야만 진정으로 인간이 번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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