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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마이클 호튼)

- 영적 가치 혹은 복음 전도에 얼마나 유용한가에 입각해 예술, 과학, 예능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압력은 결국 창조가 주는 선물과 복음이 주는 선물을 모두 손상하고 만다.(12)
-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확실히 ‘기독교적인’형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런 중압감은 창조에 본질적으로 잘못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신학적 전제에서 출발한다. 창조를 불완전하게 보는 전제는 기독교 모든 분야에서 복음적인 사고방식을 형성하는데 흔히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1장.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 : 하나님의 주권
- 하나님의 주권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므로 악은 결코 결정권이 없다고 확신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24)

* 종교개혁자들의 사례
가정생활 / 미술분야 / 음악분야 / 문학분야 / 과학분야 / 교육분야
 - 복음이 어떻게 전혀 다른 별개의 두 세계관을 만들어 낼수 있는가? (중세 미술과 바로크 미술) (호튼, 30p) / 중세의 종교 인물화 - 렘브란트의 인물화(종교개혁 시대의 세계관은 미술이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완전히 현세적인 작업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했다.)
- 종교개혁가들의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태도 : 예배 안에서 말씀을 해방하고 창조 질서를 방해하는 예술을 금하고 싶어했을 뿐이다.(32) / 루터는 “나는 지나치게 영적인 일부 사람들의 항의처럼 예술을 폐지해야 하고 복음의 주변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는 모든 에술과 특히 음윽을 예술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주신 분을 섬기는 데 사용하는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본다.”(33)

2장. 기독교와 문화 : 영역 주권에 대한 바른 이해
- 교회는 말씀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회복함으로써 원래 모습을 되찾고 가정은 성경에서 말하는 친교뿐 아니라 양질의 여가시간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확신을 회복함으로써 원래 모습을 되찾으며 국가는 자신에게 맡겨진 현세적 사명을 회복함으로써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55) 

* 그리스도와 문화
1) 문화에 맞서는 그리스도 : 터툴리안, 재세례파, 퀘이커교도, 톨스토이
2)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 : 
3) 문화를 초월하는 그리스도 : 그리스도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다루려 함,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
4) 문화와 역설적 관계에 있는 그리르도 : 이원론, 루터주의자
5) 문화를 변혁시키는 그리스도 : 하나님의 주권은 문화적 변혁에 큰 역할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칼빈, 개혁주의 전통

3장. 기독교와 학문 : 일반 은혜의 가치와 한계
- 바울 사도가 공격한 대상은 철학 자체가 아니라, 영지주의를 비롯한 이 세상의 지혜가 신학을 지배하는 일반적 동향이었다.(92)
- 바울 사도는 땅의일을 하늘의 일과 혼동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자연 계시를 사용해 땅에서 하늘로 이르는 사다리를 놓은 다음, 특별 계시로 문제를 직접 다루는 단계에 돌어서자마자 사다리를 내버림으로써 합의의 발판을 마련했다. / 바울 사도는 현세적 세계관에 담긴 진리를 이해하고 활용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성경을 근거로 삼아 잘못하고 있는 생각을 비판했다.(95)
- 자신이 가진 생각을 평가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든 알 수 있고 또한 반드시 알아야 하는 두가지 요소가 있는데,두 요소는 우리 생각을 형성하는 세상의 힘과, 우리 생각을 바로잡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우리에게 나타내는 성경의 진리다.(96)
-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은혜로운 섭리에 따라 유지하시기 때문에, 성경에서 하나님이 특별히 금하신 일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인에게 금지된 현세적인 활동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다니엘과 요셉의 예, 101)
- 기독교인은 일반 은혜의 분야에 반드시 종사해야 하지만, 되찾거나 회복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부여하신 소명으로 세상을 충만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종사해야 한다.(102)

4장. 기독교와 예술1 : 기독교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

- 보수적인 기독교인은 풍부한 다양성을 환원주의에 따라 단편화해서 성경을 교재로 이해하는 관점을 경계해야 한다. 
- 예수님은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실 때도 마찬가지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 예술가에게 주어진 일차 목적은 교육하거나 복음을 전하거나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고 예술적 흥취를 돋우는 것이다.(118)
- 예술을 은혜의 수단과 혼동할 때, 우리는 예술과 은혜를 모두 손상하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122)
- 종교개혁이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 나타난 특징은 기독교가 자기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예술로 하여금 주어진 소명에 따를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함으로써 성경에 입각한 종교를 예술적 노력과 가장 상응하게 만든다는 점이다.(125)
-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속보다는 창조가 예술 활동에 어울리는 신학적 근거임을 인정하면서 문화에 참여하는 태도가 기독교인에게 필요하다는 뜻이다.(135)

6장. 기독교와 과학 : 서로 가까워질 수 없을까

- 현대 문명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해 마련된 처소에 과학을 봉인하려고 애써왔다.(174)
- 카이저는 과학이 꽃피우는데 필수적인 네가지 신학적 기초가 있다고 주장한다. : 1) 세계의 이해가능성, 2) 하늘과 땅의 일체성, 3) 자연의 상대적 자율성, 4) 치유와 회복의 사역
-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므로, 우주에는 일정한 질서가 존재한다. 따라서 양식이나 법칙을 알아내려고 탐구하는 태도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179)
-루터, 칼빈 그리고 여러 종교 개혁가들은 교회의 영역과 과학의 영역이 절대적으로 자율적이지는 않지만 과학은 교회의 권위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권위로부터 자율성을 갖는다고 생각했다.(182)
- 자연과 은혜는 하나님이 실제로 세계를 다스리시는 두 개의 분리된 나라, 혹은 영역이다. 자연이라는 나라는 인간의 이성과 관찰에 바탕을 둔 기술과 과학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죄 용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결국 두 나라를 하나님 안에서 융화할 수 있는데, 자연이라는 나라는 하나님의 활동을 기반으로 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한다.(183)
- 신앙이 비합리적, 비경험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다는 과학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 두 영역을 통합하는 작업은 지적인 방법으로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결국 칸트는 신앙이 본체계(정신계)에 속하며 과학적 탐구는 현상계와 연관된다고 주장했다.(185) / 칸트는 신앙을 본체계로 안전하게 옮겨 지적, 과학적 비평의 공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종교가 무의미 하고 알 수 없는 것으로 무시당하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 상식실재론, 증거주의

7장. 기독교와 직업 : 일과 휴식
- 우리는 자신의 일터에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교회와 관련된 모든 활동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교회와 관련된 일에 자진해서 함께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해서는 안된다.(209)
- 기독교인이 월요일 아침에 일허라 가는 목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회심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정해 놓으신 자신의 소명에 종사하기 위함이다.(210)
- 가장 열정적인 기독교인이 결국 자기 일에 관심이 제일 적은 사람으로 드러날 경우가 대단히 많다는 인상은 사람을 고용하거나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신자와 불신자 모두의 마음에 대체로 남아 있다.(211)
- 성경적 관점은 현세적인 활동에 성실하라고 요청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휴식을 취하라고 우리에게 당부한다.(218)

8장. 기독교와 현대 세계 : 미쳐 버린 세계
- 결국 진보에 대한 급진적 생각때문에 영향력있는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미신과 신앙의 교의에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 헤겔의 등장으로 급진적 진보사상이 더욱 구체화되었다.(243)
- 기술은 진보의 정신에 외형을 부여했고 철학자와 상인은 모두 미래를 지향하는 공통된 성향을 보였다.
- 현대성은 도시와 영향력있는 행정 중심지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248)
- 신학자와 목회자는 현대성이 제공하는 온갖 바알에 굴복해 인종차별주의, 환경착취, 노예제도, 성차별주의, 과학 기술, 권력 숭배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기독교를 사용한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시인하고 회개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활동으로 자신을 알리신 역사의 유일한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의지해야 한다.(253)

결론 :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의 소유는 아니다. 
* 성경의 창조 교리 : 세상 안에 있다. / 세상이 사탄이나 악한 세력에 속하는 것으로 무조건 주장하려는 모든 사람과 반대로 하나님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이라고 친히 공표하신다.(시 50:12)
* 성경의 구속 교리 : 하지만 세상의 소유는 아니다. / 영지주의자는 육신, 물질적 존재, 시간, 역사, 이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구속을 바라보지만, 신구약 성경의 저자들은 시간, 역사, 이세상 안에서 육체와 영혼 모두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구원을 묘사한다.(262)
- 우리가 세속화되는 것은 펩 도나휴의 격려 연설이 설교를 대신하고, 예배가 시장 중심의 소비주의로 변모되고, 교회 안에서 확고한 성경적 핵심이 치유주의적 범주나 정치적 범주에 밀려나기 시작할 때다. 우리가 세속화되는 것은 실용적인 쟁점이 잘 훈련된 제자도를 대신하고, 가시적인 인기와 숫자적인 성공을 목회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할 때다.(263)
- 승리의 직설법(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다는 선포)뒤에는 명령법(거룩하다는 사실에 모순하지 않는 태도로 생활하라는 명령)이 따른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갖는 지위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보이는 거룩함의 진보에 따라 결코 좌우되지 않지만, 참된 신자라면 누구나 이 두가지를 모두 지녀야 한다.(264)
* 창조와 구속 :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 범속한 것과 거룩한 것의 분리를 비롯해 평범한 인가느이 삶에 닥친 이 모든 저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절망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끔 내버려 두시지 않았다. 심지어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선포하셨다.(270)
-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소유가 아닌 상태’로 있으려면, 우리는 현세적인 정의, 태도, 사고방식, 양식이 자신의 신념과 표현을 형성하도록 묵인할 때가 언제인지를 인식할 수 있을 만큼 기독교 신앙을 충분히 잘 알 필요가 있다.(275)
- 모든 삶은 거룩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평범한 것이 가치있고 훌륭한 까닭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것의 주인이듯이 범속한 것의 주인이기도 하시다.(282)
- 우리에게는 자동차 정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나 심장 절개수술을 위한 성경적 원칙이 필요하지 않는데, 굳이 기독교 음악, 기독교 서적, 기독교 미술, 기독교 사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286)
- 많은 신자는 자기 일이 구체적인 의미에서 특별히 기독교적인 특징을 갖는다고 주장함으로써가 아니라, 창조가 창조 자체의 정당한 권리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점을 상기함으로써 교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신의 소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다.(288)
- 현대성은 종교 개혁의 신학적 기초를 부인함으로써 신학이 주는 풍성한 복을 현대 사회의 재앙과 우상으로 만들었다. / 민일 우리가 거룩성에 대한 의식을 되찾기를 바란다면 거룩성의 회복은 은혜를 입으려고 우상들을 의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상들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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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세계관(양승훈, CUP)

 

 

헬라적(그리스적) 사고 : 추상적, 분석적, 사변적, 이원론적

히브리적 사고 : 실제적, 계시적, 유기적, 통합적

 

- 서구인들의 세계관에 대한 관심이 주로 서구 세속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동양의 반기독교적 사상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서구인들에게 이원론의 문제는 주로 세계를 보는 정신 세계에서 나타나는 데 비해 동양에서는 주로 생활태도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서구인들에게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이분화된 정신 세계를 통일 시키는 작업이 필요하고 동양인들에게는 기독교 세계관 내에서 일관성 있는 삶의 자세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16) 

 

1장 세계관, 세계를 보는 관점

* 한국에서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서 고려되어야할 점

1) 기독교 세계관이 공허한 철학적 사변으로 흐르지 않도록 일차적으로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2) 내용에 있어서 논리성을 가져야 하지만 지나치게 복잡해서는 안된다. 

3) 기독교 세계관과 전통 사상의 이원 대립적인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4) 이원론에 대한 바른 접근이 필요하다. 

 

-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형성(form)된 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왜곡(deform)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에 의해 개혁(reform)되어야 한다. 

 

2장 창조, 시작에 대한 커다란 믿음

- 범신론 : 피조물과 창조주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로 보며, 신을 피조 세계의 일부로 포함시킨다. 

- 유물론적 자연주의 : 하나님 없이 물질 세계만을 받아들임

- 이신론 : 창조주는 세계를 창조한후 더이상 세계를 돌보지 않는다. 피조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속사의 진행을 부정

- 이원론 : 초월적인 영역과 자연적인 영역을 이분하여 신을 초월적인 영역에 제한

- 성경의 하나님은 “내재하시면서 동시에 초월하시는 분”이다. 내재성을 강조하면 범신론으로, 초월성만을 강조하면 이원론이나 이신론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 성경의 주된 관심은 신학적이고 영적인 것에 있으며 생물학이나 지질학, 연대기 등과 같은 과학적인 해석이 아니다. 물론 이 말은 성경 기록이 역사적, 과학적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비록 성경이 현대의 역사가나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논리 전개 방법이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경은 역사적 시공의 영역에서 이들의 연구 범위를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비역사적이라기 보다는 초역사적이요, 비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초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58)

 

* 창조의 의미 

1) 창조주와 피조물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2) 만물은 의존적이다. 

3) 창조에는 목적이 있다. 

4) 하나님은 인간에게 피조세계를 다스리도록 문화명령을 주셨다. 

5)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 :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인 창조하신 만물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에 피조 세계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3장 타락, 창조주와의 결별

* 우상숭배와 관련한 성경적 견해

1) 인간은 종교적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대신 다른 것을 섬길 수 밖에 없다. / 인간은 본성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섬기지 않는 중립적인 상태에 있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무엇인가를 섬길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어거스틴은 종교적 집중이라고 불렀다. 

2)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경배하는 대상을 닮아 간다. 

3) 인간은 자기가 숭배하는 대상을 닮아 갈 뿐만 아니라 그 닮은 모습에 따라 문화를 형성한다. 

 

4장 구속, 피묻은 십자가의 수용

- 구속은 원래 상태로의 회복을 위미한다. 회복으로서의 구속이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처음의 완전하고도 무흠한 상태가 있었으며 이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파괴되었음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회복이란 말 그대로 돌아가는 것, 혹은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 개인적 구속의 의미

1) 구원은 신분의 변화를 의미한다.(죄인-의인), 하나님의 자녀가 됨

2) 구속에는 재창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3) 구속은 일종의 과정이다. 

 

- 세계관은 아르키메데스의 고정점과 같아서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기준 틀이 된다.(108)

 

5장 인간, 고개 돌린 하나님의 형상

* 유물론적 인간관 : 인간을 물질, 복잡한 기계로 여김

* 진화론적 인간관 : 모든 생물체가 물질로부터 저절로 생겨났다고 여김

* 성경적 인간관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아다는 의미

1) 인간이 인격적인 존재이며 인격적인 하나님과 교제하며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2) 인간이 존귀한 존재임을 의미

3) 인간에게 영적 특성이 남아 있음 

 

6장 죽음, 숨겨진 교만의 진실

- 죽음을 끝, 존재의 소멸이라고 보는 유물론적 혹은 무신론적 실존주의 세계관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끝없는 윤회의 한단계로 보는 세계관(불교, 힌두교)

* 성경에서의 죽음의 의미

1) 죽음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죄로 인하여 왔다.  

2) 죽음은 소멸이 아니며 죽음 후의 세계가 있다. 

3) 죽음은 절망이 아니며 죽음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해결되었다. 

4) 죽음 후의 세계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며 이 땅 위에서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7장 윤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 윤리학의 세가지 기본 질문

1) 인간 행동의 동기는 무엇인가?

2) 인간 행동의 표준은 무엇인가?

3) 인간 행동의 목표나 목적은 무엇인가?

 

- 인간을 자연 발생된 존재로 보는 유물론적, 진화론적 견해에서는 시대, 지역, 민족, 상황에 따라 인간의 필요가 변하면 도덕의 기준도 변한다고 보는데 이것을 상황윤리라고 한다.(142)

-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보는 인본주의

- 무속적 윤리 : 현세적이며 삶을 구속한다. / 기복성 / 

- 불교의 불가지론 : 선과 악은 하나

 

* 기독교적 윤리

1) 하나님은 초월적이고 주권적이며 인격적이고 도덕적이다. 

2)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달리 도덕적인 가치와 선택을 수용한다. 

3) 인간이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거룩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8장 역사, 구속을 향해 가는 달력

- 순환적 사관 : 무한 반복, 중국, 인도

- 진보주의적 사관 :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 헤겔의 변증법 /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논리적 변증법을 통해서 역사속에서 자신을 실현시켜 나가는 절대정신을 보았으나 마르크스는 절대정신을 제거해 버리고 역사는 계급간의 투쟁, 갈등, 긴장을 통해서 계급없는 사회를 향해 나간다고 보았다. 

* 기독교는 구속의 역사 : 처음부터 역사는 분명한 의미와 목적을 가진것으로 생각한다. / 역사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9장. 결혼, 하나됨의 미학

* 결혼에 대한 다양한 견해 : 진화론적 결혼관(종족 번식 본능), 기계론적 입장(화학물질, 호르몬의 분비), 쾌락주의(DINK-Double Income, No Kid), 한탕주의와 물질주의(신데렐라, 온달 신드롬), 여성해방 운동

 

* 자녀에 대한 견해

1) 저주로서의 자녀관, 2) 우상으로서의 자녀관, 3) 축복과 상급으로서의 자녀관(성경적)

 

* 성경적 결혼관에 대한 실제적 제안

1) 거룩한 삼각관계, 2) 옆으로 서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3) 레디 메이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4) 결혼은 사람과 하는 것임을 기억하라(조건만을 보지 말라)

 

10장 노동, 땀 흘리는 수고의 기쁨

- 노동 :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움직임이나 즐기기 위한 오락이 아니라 수고하여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노동이란 일정한 목적을 두고 생산성 있게 일하는 행위이다. 

 

* 노동에 대한 비기독교적 견해

1) 저주설 : 고대 그리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르크스, 불교나 힌두교, 유교나 노장사상

2) 방편설 : 생존의 방편 / 자아실현과 성취의 수단 / 노동을 헌금의 방편으로만 보는 것

 

*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는 노동

1) 신성한 하나님의 창조 법칙이요 명령이다.(문화 명령)

2) 노동을 예배의 한 부분으로 본다.(삶 전체를 예배로 보는 견해)

3)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연결된다.(소명)

4) 이웃 사랑의 표현

 

11장 국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는 제도

* 국가와 교회의 관계

1) 적대적 관계

2) 국가는 교회의 일부라는 견해 : 카톨릭

3)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 : 종교개혁전통

- 우리는 불의가 판치는 현실속에서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는 용기와 불의에 참여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

1) 정부나 모든 제도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

2)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한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3) 국가의 권세와 제도도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지만 인간의 본성적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법도를 벗어날 수 있다.

4) 세상의 권세와 제도를 보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은 어느정도 비관적일 수 밖에 없다.

 

 

12장 지식, 앎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

* 지식에 대한 견해

1) 그리스적 앎이란 : 인간의 이성은 자율적, 자충족적이고 본질적으로 선하며 그 이성을 통하여 지식과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다.(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2) 히브리적 앎(성경적 앎) : 참된 지식이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또는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믿었다.(잠 1:7; 9:10)

- 안다라는 의미의 차이 : 그리스적 지식관에서는 지식이란 차가운 이성적 추론의 결과 얻어진 관조적인 것이나 명상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히브리적 지식에서는 행함과 유리된 관념적이고 사변적 지식은 아직 아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지식의 결과 행함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식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앎과 더불어 실제적인 행함이라는 불가분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다는 히브리어 ‘야다’는 인식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 뿐 아니라 대상에 대한 책임이나 대상과의 관계성까지 포함하는 말이다.(234)

-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신 이유 : 히브리적 앎에서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안다는 말은 곧 악을 행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 성경이 보여주는 지식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행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 이원론적 사고의 문제점

1) 신앙의 개인주의화

2) 교회 중심의 종교 생활에만 열심을 내는 신앙의 형식화를 조장

3)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신앙의 형식화(구원의 확신 공식을 강조)

 

-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식도 실천과 연결되지 못하고 이론적인 지식으로 남게 된다면 의미가 없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단순히 세계를 보는 정적인 입장으로만 남아 있는게 아니라 생동감 있게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날 때 바른 지식, 살아 있는 지식이 될 수 있다.(243)

 

13장 학문, 다양한 창조 질서의 연구

- 학문이란 : 모르는 것을 배우고 의심스러운 것을 묻는 것(역경), 지혜를 사랑하는 것

 

* 학문에서 기독교적 조망이 중요한 이유(허만)

1)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든지 아니면 다른 신을 섬길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2) 사람은 자기들이 섬기는 대상의 형상에 따라 자기를 형성해가기 때문에

3)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그들이 경배하는 대상을 따라 형성되어 가기 때문에

 

- 이원론적 사고의 문제 : 아퀴나스의 영향으로 자연과 은총, 신앙과 이성이 나뉘었다. 이는 학문과 신앙, 과학과 종교, 영혼과 육신, 전도와 사회참여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기독교적 학문 연구란 : 학문의 전 과정, 즉 학문의 의미, 과정, 방법, 목적, 응용, 심지어 학문의 동기까지 기독교 세계관적 기초위에서 이루어질 때 그것은 온전한 기독교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255)  

 

14장 이데올로기, 얼굴없는 우상

- 이데올로기란 혁명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계몽주의자들이 사용한 가치, 개념, 신념, 규범의 체계 / 즉 이데올로기는 의식의 산물, 즉 관념의 체계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을 위한 프로그램

 

* 이데올로기의 특징 : 1) 자신의 존재에 근본적은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체계를 갖고 있다. 20 자신과 객관적 주변 조건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가져다주는 분석 체계를 가진다. 3) 원망과 확신에 의해서 자기의 잠재적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신념 체계, 4) 구체적인 사회적 쟁점에 대한 수단과 태도를 선택하는 행동체계를 갖는다. 

- 이데올로기는 기본적인 신관, 인간관, 윤리관, 세계의 이해에 대해서 기독교적 세계관과 충돌한다. 

- 도여베르트는 이데올로기란 다양한 양상을 가진 피조세계에서 오직 한 양상만을 확대시켜 나머지 모든 양상들을 그 양상으로 환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 기독교가 현실 문제의 해결만을 지상 목표로 삼는다거나 반대로 현실문제도 도외시하고 내세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기독교 신앙도 또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될 위험이 크다.(270) / 그러므로 초월 세계를 상실한 종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고, 따라서 다른 이데올로기를 초월적 입장에서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다.(271)

 

15장 과학, 물질계에 대한 청지기적 과업

- 과학의 급속한 발달과 엄청난 영향력 그리고 지나치게 분화된 과학과 다원화된 사회구조는 과학의 이데올로기화를 촉진시켰다. 이러한 과학에 대한 무지는 경외심을 일으키고, 경외심에서 공포가, 공포감에서 우상숭배가 시작된다.(275-6)

- 갈릴레오는 "성경도 자연현상도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유래하고 있다. 전자는 성령의 명령을 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집행한다”라고 말했다.(283)

- “극한의 가난과 처참한 30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페스트로 아내와 자식을 잃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케플러로 하여금 일생 천문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한 것은 자신의 연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는 성직자들이 성경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것처럼 자신은 천체의 운행을 연구하여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솜씨를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천문학으 제사장이라고 생각했다.”(286)

 

16장 기술, 다스리며 지키기 위하여

* 우상화된 기술 : 과학기술의 이데올로기화 / 환경파괴(지구온난화, 로마클럽 보고서) / 시스템적 세계관의 한계(문제는 굶주림에 대한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자기의 것을 기꺼이 나누려고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 기술에 대한 바른 청지기적 자세

1) 기술 이데올로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 길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2) 첨단 기술에 대한 우상숭배를 버리고 이의 도구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 과학의 절대화로 생긴 성부 과학주의, 과학주의가 낳은 성자 기술주의, 물질적 부요라는 영감으로 과학주의와 기술주의를 가속화시키는 성령 경제주의의 삼위일체

3) 기술로부터 도피하려는 자세로부터 벗어나 적극적으로 기술 분야에서 선한 청지기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더이상 이 세상에서 문화 추종자(Culture follower)가 아닌 문화 형성자(Culture former)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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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이름짓기(제임스 사이어, IVP)

 

 

코끼리 이름 짓기(세계관 개념의 역사와 재정의) 

- 세계관이란 이 세계의 근본적 구성에 대해 우리가(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관적이든 비일관적이든) 보유하고 있는 일련의 전제(부분적으로 옳거나 완전히 잘못된)다. 

 

1. 낙타, 캥거루, 코끼리

- 제임스 사이어는 그가 이전 그의 책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에서 기독교 유신론, 이신론, 자연주의, 허무주의, 실존주의, 동양 범신론적 일원론, 포스트모더니즘을 다루면서 제기한 7가지 기본 질문이 불충분하다고 여겨서 그가 생각하는 부족한 항목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 “무엇이 세계를 받치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낙타, 캥거루, 코끼리)

 

2.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 세속 철학자들이 세계관을 이해한 방식 4가지

1. 빌헬름 딜타이 : “어떤 세계관이든 궁극적 뿌리는 인생 그 자체다.”, 한 사람이 인지하는 것은 주로 본인의 정신에 달려 있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저기에 있는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우리의 정신 속에 내재된 구조를 통해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29) / 세계관은 인간의 심리적 측면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지적으로는 실재의 인식으로, 정서적으로는 삶의 평가로, 의지적으로는 능동적인 뜻의 이행으로 표현된다.(30)

2. 프리드리히 니체 : 그는 허무주의자인 동시에 실존주의자이다. / 모든 세계관이 시대와 장소와 환경에 따라 형성되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여긴다.(33)

3.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 플라톤은 존재론(존재하는 그 무엇)을 지지하고 데카르트는 인식론(어떻게 알 수 있는가?)을 주요 관심사로 주장한데 비해, 비트겐슈타인은 문법과 언어를 지도적 원리로 지명했다. 요컨데 비트겐슈타인은 세계관의 타당성 자체를 부인했다고 볼 수 있다.(34)

4. 미셀 푸코 : 세계관은 언어적 권력의 옷을 차려 입고서 궁극적 실재를 해석하는 체하는 가짜에 불과하다.(38)

 

* 기독교적 정의

1. 제임스 오르 : 완전하고 정합성 있고 이성적으로 변호할 수 있는 기독교를 제시함으로써 당대의 지적, 문화적 도전에 대처하는 것이 그의 목적(39)

2. 아브라함 카이퍼 : 그는 칼빈주의 기독교를 하나의 포괄적 세계관으로, 삶의 체계로 제시했다.(하나님, 인간, 세상과의 관계를 다루는)

3. 헤르만 도여베르트 : 그는 한사람의 세계관의 바탕에 있는 것이 이론적 사상이 아니라 마음의 종교적 혹은 신앙적 지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관은 철학적 체계가 아니라 전이론적 결단이며, 지성이 아니라 마음과 경험 그리고 실질적인 삶과 직접 접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43)

 

* 최근의 복음주의적 정의들

1) 한 개인의 전반적인 사상과 행위의 토대가 되는 전 이론적, 전제적 개념들에 뿌리박고 있음, 2) 범위가 포괄적, 3) 반드시 그런것은 아니지만 이상적으로는 논리적 정합성을 갖춤, 4) 모든 사물과 관계가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에 긍정적으로 연결되어 있음, 5) 굳이 비이성적이지는 않더라도 이성에 의해 최종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결단의 성격을 가진 신념(44)

1. 제임스 올시우스 : 세계관은 우리가 세계와 우리의 소명과 장래를 조망하는 하나의 틀 혹은 일련의 근본 신념(45)

2. 알버트 월터스 : 한사람이 사물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 신념들의 포괄적 틀

3. 로널드 내쉬 : 세계관이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일련의 신념이다. 그것은 하나의 개념적 틀로서, 그에 의거하여 우리는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정돈하고, 실재를 해석하고 판단한다.(47)

4. 존 콕 : 삶으로 실천된 세계관이야 말로 우리의 신념을 실제로 나타낸다.(47)

 

* 노글이 말하는 기독교적 세계관 : 1) 객관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인격적이며 초월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존재론적 신념을 품고 2) 주관적으로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힌 하나의 관점이며 3) 설화적 기호들로 이루어진 언어체계다. 즉 실재는 본질상 객관적이며, 인해의 측면에서는 주관적이며, 그 의미를 파악하고 전달하는 면에서는 언어적이라는 것이다.(65)

 

3장. 무엇이 먼저인가?(존재인가 인식인가?)

* 제임스 사이어가 말하는 세계관의 일곱가지 질문(68)

1) 진정으로 참된 최고의 실재는 무엇인가?

2) 외부의 실재, 즉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3) 인간은 무엇인가?

4) 인간이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5) 지식이 가능한 까닭은 무엇인가?

6)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7) 인간 역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 존재론이 우선하는 경우(유신론과 기독교적 유신론)

- 성경적 세계관에서는 무든 것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존재론이 인식론보다 앞선다.(74)

- 근본적 실재의 본질은 무엇인가? 궁극적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 곧 전지 전능하시고, 무소 부재하시며, 선하신 놀라운 인격이다.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주가 이해될 수 있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 인식론이 우선하는 경우

- 데카르트 : 자아의 자율성 - 자기존재의 확실성 - 하나님의 존재의 확실성 - 외부 세계의 존재의 확실성

 

* 결론 : 세계관의 정립에서 존재론이 인식론을 앞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세계관을 인간의 자아라는 깨지기 쉬운 구조 위에 올려 놓는 셈이다. 달리 말해서 이는 인간 이성의 자율성, 곧 각 개인의 자아 혹은 각 공동체의 의식이 지닌 자율성을 토대로 삼는다는 뜻이다.(101)

 

4장. 살과 뼈(이론적 성격과 전이론적 성격)

- 세계관은 이론적이기보다는 전이론적(직관적)이면서 전제적 성경을 갖고 있다. 

* 전이론적 : 우리의 정신적 구조의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어서 우리가 생각을 시작하면 도무지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개념

* 전제적 : 아퀴나스나 칼빈이 말하는 신 관념(파스칼 : 마음은 이성이 전혀 알지 못하는 이유를 갖고 있다.)

* 도여베르트는 세계관의 근원을 각 사람의 전이론적인 영적 중심에서 찾았다.

-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인간 경험이 하는 역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 우리의 추구 방법 등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저기에 계신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내재적 현존에 관한 지식을 우리가 선물로 받는 일이다.(124)

 

5장. 합리적 체계, 삶의 방식, 으뜸 이야기

- 각 사람의 세계관은 다른 사람의 것과 약간 다를 수밖에 없으며, 더욱이 세계관은 시간이 흐르면서 은근히 무의식적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누구나 세계관을 갖고 있다.(130)

 

* 제임스 사이어가 말하는 세계관의 일곱가지 질문(68, 132)

1) 진정으로 참된 최고의 실재는 무엇인가?

2) 외부의 실재, 즉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3) 인간은 무엇인가?

4) 인간이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5) 지식이 가능한 까닭은 무엇인가?

6)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7) 인간 역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 브라이언 왈쉬와 리처드 미들턴의 질문 4가지(135)

1) 나는 누구인가? 혹은 인간의 본성과 사명과 목적은 무엇인가?

2) 나는 어디에 있는가? 혹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3)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혹은 나의 성취를 막는 근본적인 문제나 장애는 무엇인가? 달리 말하면 나는 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4) 치료책은 무엇인가? 혹은 나의 성취를 막는 이 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달리 말하면, 나는 어떻게 구원을 발견하는가? 

 

* 삶의 방식으로서의 세계관

- 세계관은 신학이나 철학 같은 사상의 체계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관은 인식의 틀이다. / 세계관은 결코 삶에 대한 시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삶을 위한 시각이다.(138)

 

* 으뜸 이야기(거대 담론)로서의 세계관

- 성경은 규범적이고 표준적인 이야기로서 궁극적으로 전체주의화를 반대한다. 그 이유는 성경 이야기에 스며있는 고난에 대한 철저한 민감성과 그 이야기를 자기 편을 위해 편협하게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하나님의 포괄적인 창조의도 때문이다.(146)

- 레슬리 뉴비긴은 세계관을 이야기로 간주함으로써 그 실존적 적실성을 잘 전달하고 있다.

 

- 세계관에 대한 재정의 : “인간의 심리적 측면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지적으로는 실재의 인식으로, 정서적으로는 삶의 평가로, 의지적으로는 능동적인 뜻의 이행으로 표현”된다.  

 

6장 세계관(공적 측면과 사적 측면)

* 공적인 동시에 사적인 것 :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인 동시에 호모 소시우스이다. 

* 이상형으로서의 세계관

* 타당성 구조(Plausibility structure) : 타당성 구조란 사회의 대다수 사람의 마음과 생각 속에 깊이 뿌리박힌 것으로서 그들이 무의식저긍로 혹은 아주 확고하게 품고 있어서 그것이 참인지를 물어 보지도 않는 신념들의 망이다.(158) / 한 개인의 세계관이 사회의 세계관과 동일할 경우에는 자기 세계관이 참된 것임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162)

 

7장 세계관의 새로운 정의

- 다원주의(다소 상반된 세계관들이 함께 공존하는 것)는 상대주의가 아니다. 

 

* 세계관의 재정의 : “세계관이란 이야기의 형태로 혹은 실재의 근본적 구성에 대해 우리가(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관적이든 비일관적이든) 보유하고 있는 일련의 전제(부분적으로 옳거나 완전히 잘못된)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고 몸담을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는 하나의 결단이요 근본적인 마음의 지향이다.(173) 

- 마음의 성경적 개념 : 지혜(잠 2:10), 감정(출 4:14; 요 14:1), 욕구와 의지(대상 29:18), 영성(행 8:21), 지성(롬 1:21)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175) / 우리는 우리의 세계관과 더불어 그리고 그 세계관 때문에 생각을 하는 것이지, 우리의 세계관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176)

- 아브라함 카이퍼 : 모든 사상은 단 하나의 원리, 고정된 출발점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181)

- 우리가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려면 우리의 세계관에 담긴 모순적인 요소들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오르의 말처럼 우리는 “사물들을 통일체로 묶고 이해하려는 노력, 곧 단 하나의 보편적 관점을 추구해야”한다.(187) /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동시에 환생을 믿는 것(인지 부조화로 세계관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런 갈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 세계관을 재정의한 결과 

- 초점을 명제와 이야기에서 그런것을 포착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옮겼다.

- 누구든 세계관의 명시적 전제들은 잘 바뀌지 않을지 몰라도 그 전제들의 실천적 성격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 세계관의 대들보가 존재론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이 하나님이나 자연 혹은 자신에 대해 어떤 개념을 갖고 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8장 낮에 서로 부딪히는 유식한 사람들(분석 도구로서의 세계관)

- 세계관 분석이 다원주의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비슷한 동시에 왜 그토록 다른지를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196)

- 자연 과학 분야에 속한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이 전반적인 세계관은 유신론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과학적 연구를 할때는 방법론적 자연주의자가 된다.(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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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time is it? Understanding the religious-worldview spirits of our age
- Postmodernity, economic modernity and consumerism
(Michael Goheen)







현대의 숨겨진 신조 : 우리가 신이 되어서는 안되는가? 
- 베이컨 : 

지식을 가지고 피조세계를 

두가지 서구적 모더니스트들의 신조
1) 인간이 세계본성과 삶의 의미를 정의 할 수 있다
2) 과학적 이성으로 세계의 문제를 풀고 자유와 번영과 정의와 진리의 새로운 세계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18세기 서구의 변화
- 18세기까지 유럽 사회의 핵심은 기독교였다. 기독교라는 말 속에 단순히 종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텐덤에 역사적 기독교, 휴머니즘, 독일 사람들이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이세가지가 가장 강력한 세계관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18세기가 지나면서 이 주도권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유럽전체를  shaping 했던 힘이었다. 가운데서 상당한 역할을 했지만 이후에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제는 이성적인 인본주의가 유럽사회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시대를 가리켜 계몽시대라고 부른다. 현재 모든 서구 사람들은 계몽주의라는 정신아래서 교육을 받았다. 18세기가 서구 문화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되었다. 많은 서구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것은 굉장히 종교적인 의미이다. 지금 우리가 빛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이 빛이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ㅏㄷ. 이성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빛이 오니까 세계를 구성하게 되었고 구세주가 되었다. 과학적인 이성이 이 세상의 빛이 된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도 깨달은 자다라고 말했다. 고다마 싯타르타가 4가지 비밀을 깨달았을때 세상을 알게 되었다라고 했다. 모든 종교마다 세상의 빛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라는 것이 종교의 핵심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곳 세상의 빛이다라고 복음서에서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계몽주의시대에 와서 과학적 이성이 빛이 된 것이다. 계몽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적인 헌신을 하는 것이다. 

*  Passion of the western mind : 서구사회는 믿음(기독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신앙을 발견했는데 과학과 인간속에서. 많은 서구인들이 종교적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세속적이다라고 생각한다. 리차드 타나스는 휴머니즘 자체가 종교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과학의 힘으로 인간 스스로의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다. 


* 섭리 : 하나님이 밀고가시는 역사, 그런데
1)진보에 대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어거스틴 이후 서구는 역사를 어떤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것으로 이해했다. 어거스틴에게 진보는 성경의 이야기를 따르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속에서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진보가 되었다. 계몽주의의 중요한 학자중의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서구의 계몽시대에선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을 부수어 버리고 사람의 도성을 건축했다. 인간 스스로가 우리를 구원할수 있고 진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악과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2) 과학과 이성에 의해서 진보가 가능하다. : 이성이라는 것이 디시플린으로 만들어진 것이 과학이다.
3) 이러한 과학에서 기술이라는 것이 나왔다. 19세기에 와서 과학과 기술이 합쳐지게 되었다. 아주 중요한 책(린 화이트),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났는데 기술이 빠른속도로 달려가는데 그것을 밀어주는 추진력이 과학이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을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이었다. 그래서 과학에 기초한 기술이 인간의 세상을 더욱 좋게 만들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과학적 이성은 큰 힘을 가진다. 우리의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고 이전에 하나님이 다스리던 왕국은 저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성적인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 버렸다. 이제 과거의 경제적 환행들은 뒤로 보내고 이성적인 경제 시스템을 가지게 되었다가고 했다. 교회 교육은 옛것이 되어 버렸다. 학교 교육의 강화, 가장 중심적인 신념은 우리의 이성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죄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 세계관이다. 
- 진보라는 것은 우리의 이성을 기술적인 사회적인 이슈에 이성을 적용할때 일어났다. 

* 근대 
인본주의-자율적 이성
autonomous = self + law(스스로가 만든 법), 자율적 이성-기술과 조직-새로운 세상
인본주의가 자율적 이성을 고용하고 과학이라는 discipline을 활용, 물질계는 기술을 가지고 인간 세상은 이성적 조직(정치, 경제, 교육, 사회)을 가지고 지배했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 그런데 이 계몽주의의 이상에 기독교 용어를 사용했다. 하나님의 나라, 낙원(paradise)를 사용했다. 이제 인간이 만든 낙원이 올것이다라고 했다. 오랜 진보를 통해서 낙원이 올 것이라고 여겼다. 서구의 식민 제국들이 이것을 받아들였다. 지난 100년동안 유럽중심의 세계관이 퍼져나갔다. 오늘날 전 세계의 도시들을 이 세계관이 밀고나가고 있다. 서구의 교육, 정치제도, 경제의 문화가 퍼져나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서구적인 것들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묻지 않는다. 이러한 인본주의는 종교적인 세계관과 충돌하고 있다. 
- 예화 : 서울, 한국의 고등학생들에게 가장 우선순위는 교육이다. 진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이 교육이라고 여기고 있다. 교육의 중요성을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 18세기 동안에 유럽전체가 계몽주의에 의해서 지배될때 그이전 17세기동안 출판된 교육에 대한 책보다 18세기에 나온 책이 더욱 많았다. / 기독교인들도 여기에 많은 좋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우상숭배적인 요소가 있다. 이성, 과학, 인간의 능력에 대한 우상숭배가 있다. 더나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더 할 수 있다는 우상숭배가 있다. 
- 18-19세기로 가보자. 좀더 견고한 형태로 만드러 지게 된다. 존 헌터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라는 사상과 가치는 지적인 체제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모든 영역에 가장 강력하게 박혀 있다.” 지금까지 세계관이 머리속에만 있었는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공립학교를 만들었다. 모든 정치제도, 경제제도를 만들었다. 헌터는 자본주의 시스템, 민주주의 시스템, 교육에 있어서 대학이라는 시스템, 문화적으로는 미디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러한 4가지 중에 물론 좋은 것이 많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비판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 예) 나는 아이들을 홈스쿨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쳤다라고 말했다. 곳곳에 많은 학교들이 있는데, 이 학교라는 시스템이 19세기이후에 이러한 세계관에 의해서 시작된 제도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교회과 가정이 교육을 제공했다. 오늘날 모든 학교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비판적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세계관을 공부하면서 여러 세계관을 배우고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헌터는 19세기 계몽주의가 지나면서 여러 시스템 속으로 제도화되어서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역사가들은 혁명의 시대였다라고 말한다. 

* 혁명의 시대(19-20세기초)
- 세계관은 어떤 신념들의 셋으로만 남아있지 않는다. 반드시 세상을 만들어 간다. 
- 19세기에는 계몽주의 믿음을 따라서 사회가 만들어졌다. 
- 혁명은 그 이전의 것을 모두 내버리는 것이다. 과학과 이성과 기술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산업혁명, 민주혁명, 미국 혁명, 공산주의혁명 / 한때 미국이 기독교 국가였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도 기독교 국가였던 적이 ㅇ벗다. 계몽주의 신념위에 세워진 첫번째 국가이다. 독립혁명이 바로 그 결과이다. 그리고 나서 25년정도 지나서 미국의 대각성운동(1790)이 일어났다. 이때 10%밖에 교회를 가지 않았다. 굉장히 계몽화된 사회였다. 이 계몽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든 것이다. 
- 하웃츠바르트 : 종교개혁이 서구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자본주의와 진보) “계몽주의의 비전이 진실이라면 새로운 사회를 세우는 것은 지루하고 일회성적인 일이 아니라 절실한 필요와 고도의 윤리적 명제가 된다. 그런 경우 실락원으로 가는 좁은 길은 사회적 혁명의 길일 수 있다."
- 이때 기독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사실 이 문제때문에 세계관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 무슨일이 일어났는가? 타나스 : “초기의 기독교 신앙은 타락과 구속이 인간에게만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교리는 종교 개혁 이후에 이미 퇴조하고 있었고 지금은 통째로 사라졌다. 구원의 과정이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 관계에만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 종교개혁까지만 해도 복음이라는 것은 가장 넓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었다. 그런데 휴머니즘은 복음의 포괄성을 점점 좁혀서 종교를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문제로 환원시켰다. 이제는 넓은 영역의 정치, 경제, 교육, 미디어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했다. 
- 카이퍼는 인본주의의 힘이 전 유럽을 휩쓸고지나갈때 이것이 가지고 있는 위력을 깨달았다. 인본주의가 교회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점점 기도교 신앙은 축소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다시 원래의 의미로 확장하기 위해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본주의적 세계관에 대항해서 기독교 세계관운동이 시작되었다. 삶의 전 영역에 영향력이 미쳐져야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타나스와 카이퍼는 이를 깨달았다. 
- 뉴비긴의 다원주의사회에의 복음,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가치의 문제에만 관련있는 것으로 좁혀 놓았다. 

* 경제적인 면
하웃츠바르트는 경제적인 면을 가장 강조하였다. 
- 18세기 : 아담 스미스는 인본주의 정신을 경제문제에 적용했다. 국부론(1776)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를 어떻게 바꿀지를 제시했다. 궁극적인 목적은 물질적으로 부유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부유해지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의 방식이 바로 합리적인 생산의 공정을 이루고 자유시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여겼다. 우리가 이것을 허락한 것이다. 
- 19세기 : 산업혁명, 아담스미스의 비전이 이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새로운 공장, 생산라인, 과학적인 기술의 발전, 사실 산업혁명은 물건을 만드는데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것이 지배적인 세계관이 되었다. 
- 20세기 : 그로 인해 오늘날 소비주의, 경제 우상을 섬기게 되었다. 
- 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이 이상이 19세기에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 데이비드 웰스 : 자본주의는 제조와 생산, 그리고 소비를 위한 사회적 구조를 재편하였다. 그것은 우리 세계의 형태를 바꾸었다. 그리고 기술은 자본주의 과정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모든 삶을 합리화 시켰다. 
- 하웃츠바르트 : 그러자 이번에는 모든 문화의 스타일이 어떻게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이나 사회의 궁극적 의미를 조망할 것인지와 같은 종교적인 질문에 관련된다. (모든 문화의 스타일은 종교적인 질문과 연관되어 있다.) / 우리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한 계몽주의 이상때문에 지금도 더 많은 물품을 생산해서 부유하게 사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것이 깊은 종교적 확신(계몽주의)에서 나오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되면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웃츠바르트는 서구사회의 사고를 완전히 형성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육, 기술, 과학이 물질적인 번영을 위해서 맞추어져 있다. 

* 서구계몽주의사회 이후의 궁극적 의미
- 많은 것을 소비하는 것이 인간 삶의 의미라는 것이다. 
- 수단 : 시장, 경제 구조, 기술

* 사회의 경제 구조
- 여왕벌의 예화 : 모든 일벌들의 한가지 유일한 목적이 여왕벌로 하여금 알을 낳게 하는 것이다. 하웃츠바르트는 현대 인간 사회가 이와 같다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종교적인 이유가 있다. 단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되는데 물질적인 부유함과 경험의 소비로 환원되어 버린다. 
- 여왕벌의 과업은 알을 낳는 것인데 이 모든 구조와 기능이 이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현재 우리의 / 무엇이 우리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종교적인 세계관적인 힘인가? 21세기를 형성하는 종교적이고 세계관적인 힘들 세가지. 
- 포스트모더니티 : 점점 계몽주의의 믿음에 대한 도전
- 경제적 현대화와 세계화 : 오늘날 계몽주의 정신이 오늘날 경제를 만들어 냈다. 이것이 세계화 되었다. 모더니티와 세계화는 부딪힌다. 
- 소비주의 : 이 두 발전의 열매(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

* 한편 : 현대 인본주의의 실패와 붕괴
- 모더니즘이 환경을 파괴했다.
- 가난의 증가(소수는 부유해지지만 다수가 가난해졌다.) 빈부격차가 넓어지고 있다. 부유한 10억의 사람들이 가난한 10억의 사람보다 30배(1960)에서 90배 잘 산다. 
- 핵위협 : 기술의 위협, 기술로 진보를 했는데 그것때문이 인간이 전멸할 위협에 놓여있다. 
- 경제적인 문제들 : 매일 신문의 경제적 이슈들
- 심리적, 사회적 문제 : 포스트모던심리학자가 모더니즘이 가져온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했다. 이 전체 문제중에 두가지만 실제이다. / 신체에 대한 관심, 오늘날 완전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오늘날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긴 문제이다. 가정의 해체, 사회범죄의 증가, 이러한 문제들이 모더니즘으로부터 왔다는것이다. 
- 데이비드 하비 : 20세기는 죽음의 수용소와 암살단, 군국주의, 양차 세계대전,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전멸의 위협,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경험을 통해 (이전에 그런쪽으로 기울고 있던) 낙관주의를 확실하게 부셔버렸다. / 계몽주의는 과학과 기술에 의해서 좋은 세계가 올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이러한 약속이 모두 붕괴된 것이다. 
- 더 나쁜 것은 계몽주의 프로젝트가 그 스스로를 대적해서 인간 해방이라는 미명으로 인간해방에 대한 요구를 전 우주적인 업악체제로 변화시키려는 유혹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계몽주의 프로젝트를 송두리째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이것이 바로 후기 현대주의 철학사상의 핵심인데-사람들이 있다. / 계몽주의와 기대와 소망은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맞다. 

* 현대 이야기들을 믿지 말라(리요따르)
-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는 포스트모던이라는 것은 거대담론에 대한 불신이라고 정의한다. / 진보에 대한 신념, 신앙을 믿지 않는다. 과학과 기술이 더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 도전
1) 진보의 낙관에 대해 도전한다. : 이제 인간만이 절대적으로 옳다, 더나은 세계로 갈것이라는
2) 인간 이성 중심에 대한 도전 : 합리주의적인 휴머니즘에 대한 도전, 이성이 결국 인간을 진보하게 했는데 더이상 포스트모던에서는 이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3) 지식의 객관성에 대한 도전 : 대학에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큰 포스트모던 그림중의 한부분이다. 우리가 모더니티에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신뢰할만한 진리에 이를수 있다라고 말했다. 
4) 모던에 의해 만들어진 부정에 대한 도전
5) 자연주의적인 세속주의에 대한 도전

* 인간의 비이성적 측면들 :
몸, 감정, 감각, 잠재의식, 욕구와 열정, 종교심, 상상력, 직관이나 본능
- 하나님의 형상중에 이성은 한 가지일 뿐이다. 이러한 인간의 요소들이 모두 모여서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성을 모든 것을 누르고 왕좌에 앉혔을때 그 이성만을 신뢰하고 나머지를 믿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 가? 이성만 중요하고 나머지는 열등하게게 되는 것이다. 창조세계중에 한 부분을 높여서 우상을 만들게 되면 나머지 피조세계의 부분들은 멸시하게 된다. 이것은 꽉누른 스프링과 같다. 힘이 없어지면 튀어오르게 된다. 계속 누르게 될때 튀어오르게 된다. 포스트모던세계에서는 이성이 아닌 다른 것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30-40년전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I think that  ) 나는 이렇게 느낀다라고 말한다. 더이상 이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 동성애 문제 : 1) 생각보다 느낌상으로, 더이상 이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 20세기가 지나면서 지식의 객관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성이 중립적인가? 지식에 영향을 미치는 주관적 요소
- 개인적 : 느낌, 상상력, 잠재의식, 성, 계급, 인종
- 사회적 : 전통(가다머), 공동체, 언어(비트켄슈타인), 문화, 역사, 믿음
포스트모던 학자들은 객관적인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 모던이 만들어낸 부정
- 소수자에 대한 부정 : 가난, 여성, 계급, 소수민족, 게이, 다른 종교 /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것때문에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 제3세계에 문화에 대한 부정 : 경제적인 식민주의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부분도 문제가 된다. 포스트모던은 본성상 다문화적이다. / 상대주의자라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이다. 
- 가난한자에 대한(백인, 중산층, 남자)
- 환경에 대한 

* 모더니즘 세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 존재한다고 가시적 세계로 환원했다. 과학적으로 관찰가능하고 폐쇄된 인과관계안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초월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영어표현중에 Nonsense라는 말이 있다. 초월적인 세계는 난센스이다. 
- 포스트모던시대에는 종교적인 잡동사니 영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 종교적인 다원주의(모든 것이 옳다.) 뉴에이지, 점성술, 영지주의, 동방정교나 원주민 영성

*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보라는 큰 이야기를 더이상 믿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 이성을 통해 진리에 이를수 있다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 진리가 없던지 이성외에 다른 것으로 다다를 수 있다고 믿음
- 독점적인 진리주장에 대해서 의심한다. / 예수는 모든 인류의 구세주이다라고 선포하면 포스트모더니스들은 의심의 눈길로 바라본다. 
-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 진리는 다양한 버전이 있다고 여긴다. 다원주의를 
- 인간 이야기에서 부저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다. 

* 모스트모던에 대한  간략한 평가
- 두가지 방법이 있다. 인정해 주는 것과 비판하는 것
인정
- 모더니즘에서 잃어버렸던 많은 것을 회복하는 기능 : 1) 인간은 비이성적인 양상이 있다. 2) 여러요소들이 지식에 영향을 미친다.(중립적인 지식은 없다. 카이퍼가 세계관을 옹호한 이유이다.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지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상대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신앙적인 헌신이 우리의 지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복음의 진리는 신뢰할 만하다.) 3) 다양성과 복수성에 대한 선함(모더니즘에서는 모든 것을 획일화하였다. 포스트모던에서는 다양성, 다면성을 인정했다. 많은 곳을 여행해서 다양한 민족들을 만나 좋은점과 나쁜점을 본다. 비서구인들이 서구적 세계관의 문제점을 지적해주기 바란다.

비판
- 새로운 형태의 우상숭배 : 1) 다원주의 : 다원주의와 다원성(복수성)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다원주의는 진리에 대해서 차이자체를 축하한다. 2) 상대주의 : 이것과 관련된 것이 상대주의이다. 완전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 서구 그리스도인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극단적인 양극화가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포스트모던 사회의 선교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모던 휴머니즘의 승리 
- 우상숭배는 피조세계의 다양한 면에 있는데 한면을 절대화시키는 것이다. 모더니즘에도 양면이 있다.
성공적인 면 :
1) 부의 증가 성장한것이 분명하다. 과거에는 비행기타는 것을 생각하기 힘들었다. 
2) 자유, 정의, 안정의 정도 : 사법시스템(절반의 진리)
3) 과학적, 기술적 발전 : 40년전 프로젝터 없었다.  OHP, 의학의 발달, 시대가 주는 진정한 선물들, 모더니즘의 성공과 실패를 보면서 새로운 휴머니즘으로 나가는 면이 있다. 
- 경제적인 성장의 면이 20-21세기에 중요한 문제이다.(크리스토퍼 라쉬-진보의 이론) 많은 진보를 열거하면서 모든 진보는 실패하고 한가지만 남았다. 더 도덕적이고 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2차대전을 보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의적인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시대 너무나도 많은 부정의가 있다. 진리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주의가 번성하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만 성공했다. 그것은 기술적 진보와 경제적 부요함이다. “우리가 진보적인 이데올로기의 내적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곳은 아담스미스와 바로 그 전임자들에게서이다.” 그당시 기술이 경제적 진보의 초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은 진보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 “진보라는 개념은 욕구가 무한히 팽창하고 편리함에 대한 일반적 기준이 꾸준히 상승하리라는 것, 그리고 대중이 풍요의 문화에 통합되리라는 것을 가정하지 않고는 지적인 비판을 견뎌낼 수 없다.”(라쉬)  우리가 진보에 대해서 비판적인데 그래도 소수이 사람들은 경제적인 부로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셀폰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드나? 셀폰을 가지고 있는한 모더니즘 세계관이 주는 것에 대해서 예스라고 하는 것이다. 부모세대보다 얼마나 더 편안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아마 세계관의 문제가 여기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진보는 그렇지 않은데 물질적으로 풍요하게 되는 데서는 진보가 제대로 작동한다. 지난 어떤 때보다 결혼이 깨어지고 있다. 
- “진보의 사상이 20세기의 혹독함에서 생존해 온 것은 오직 이런 형태이다. 보다 사치스런 형태의 진보주의 믿음은 오래전에 무너졌다. 그러나 (진보주의의) 자유주의적 형태는 20세기 사건들로 인해 성공적으로 경영되었던 낙관론에 대한 쇼크에 놀라울만큼 잘 대항해 왔다.”(라쉬) 20세기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보라는 개념에 보디 블로를 날렸다. 그래서 진보가 쓰러졌다. 한가지 진보만 제외하고, 그 진보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냈다. 이것이 바로 기술적 경제적 진보이다. 아주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게 저항하며 무너지지 않았다. 그 진보가 바로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 경제적 세계화
- 경제적 모던 세계관은 첫번째 통합시키는 힘이다.  통합된 형태로
- 전세계 모든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 서울도 깊이 경제적 번영, 진보의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 /영어를 왜 배우려고 하는가? / 글로벌을 배우려고 어느 곳에서는 영어를 배우려고 한다.
- 세계적 경제체계나 시장
- 비대칭적인 세계화, 한쪽의 부가 창출되면 나머지 한쪽은 가난에 빠진다. 
- 빈부의 격차가 늘어난다. 
- 글로벌한 세계화에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곳이 바로 서구 사회이다. 
- 열매의 나눔이 불평등하다. 전세계의 1/5의 인구가 1/2의 소비를 하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열매를 누린다. 
라이트와 뉴비긴이 이점이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고 말한다. 

* 경제 세계화의 지배
- 흑인해방운동의 박물관 : 흑인노예들의 역사 박물관, 백인들이 어떻게 흑인들을 학대했는가? 뉴비긴과 함께 갔다. “어떻게 기도교인들이 흑인들을 이렇게 대접할 수 있는가?” 역사적인 악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이게 악인줄 몰랐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200년후에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를 보면서 말할 악은 무엇인가? 그당시 백인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 우리의 후손들이 묻게될 질문중에 어떻게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인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만히 있었는가 라고 묻지 ㅇ낳을까하고 뉴비긴이 말했다.
- (리차드 바캄) : 우리 세계의 현실은 거대 담론의 끝이 아니고 점점 증가하는 경제적 세계화이다. 이것은 새로운 제국주의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세계화는 진보의 옛 개념에서 성장해 나왔지만 진보를 경제성장으로 환원시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인간의 능력이나 자율성에 대한 같은 헌신을 하고 있다. 
- 과학에 대한 헌신
- 기술에 대한 헌신
- 과학을 통해서 사회(경제, 정치, 교육)가 형성되는 것에 대한 헌신
- 진보와 성장에 대한 헌신
- 버캄은 경제적인 목적을 섬기는 것이 첫째가 되었다. 
- 세금을 내면 90%가 

본인이 10대일때보다 경제가 지배적인 사회가 된 것을 본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것을 평가할 것인가? 비기독교적인 세계관이 제공하는 것 조차도 감사할 필요가 있다. 칼빈은 비기독교인들로부터 조차도 감사의 조건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감사의 소스가 어디에서 오든지 관계없이…, 동시에 우리를 싸고 있는 사회속에서 우리가 알게모르게 지은 우상숭배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 서울의 지하철(신국원 교수와) 서 있는데 저 모두 한 곳을 보고 있다. 충분히 비판적이지 못하다. 물론 기술의 편리함에 감사해야하지만 기술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기술과 경제문제로 모든것이 환원되면 문제가 많다. / 감사와 비판을 모두 가져야 한다. 

* 간략한 평가
- 좋은 점 : 서구문화의 유용성(인권, 과학, 기술, 민주주의)
- 나쁜 점 : 경제문제로 인한 우상숭배, 기술력으로 인한 환경의 파괴와 빈부격차에 대해 비판적이야 한다. 우리가 항상 기독교인으로서 우상숭배는 좋은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한 부분을 강조할때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선한 피조세계속에서 이 부분이 우상숭배가 되면 다른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과학이나 기술과 같은 것들은 세계관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세계를 왜곡시키게 된다. 
- (버캄) “ 그것은 가난한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 환경을 파괴하지는 않는가? 그것이 경제적인 번영만큼 중요한 다른 가치들을 파괴하지 않는가? 분명한 것은 경제적으로 세계화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과 환경을 파괴하는데 명백한 책임이 있다.” 

* 홈 스쿨링 : 부모의 가치관과 아이들의 가치관이 충돌한다. 그렇기에 어려서부터 세계관적인 삶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5살때부터 가난에 대해서 나누었다. 이런 것들을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구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보는 시각과 같이 아이가 볼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 기술에 대한 관점, 기술은 선한것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지만 가정에 들여올때 주의해야 한다. 이것을 들여올때 얻는것과 잃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가족들이 함께 이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떻게 인터넷을 지혜롭게 사용할 것인가? 이런 룰을 만드는 것, 집에 들어와서 인터넷에 매달리지 않고 먼저 해야할 것을 정한다. 인터넷 서핑은 중독적이다. 쉽게 실제세계와의 연결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이 유용한 도구가 안되고 빠져버리게 된다. / 대부분의 물건들을 중고상점에서 구입한다. 티비를 볼때 아이들 프로그램만 정해놓았다. 아이들이 티비를 볼때 아이들을 소비자로 만들기 위해서 광고를 한다. 3살때 일인데, 광고가 나올때마다 저 광고가 누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 광고를 보고서 비판적인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  /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일을 아이들과 함께 한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피닉스 아리조나에서 목회 : 아주 창의적으로 소비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문제를 다룰지를 고민하는 목회자가 있었다. 항상 새로운 어떤 것을 가져왔다. 그 상상력에 놀랐다. 블랙 프라이데이에 절대로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악마적인 소비주의에 대항하여 기도), 매주 금요일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가서 만나는 사람에게 무엇을 도와줄지를 묻는다. 추수감사절 전에 하나는 자기를 위해서, 다른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어 주었다. 3년전에 소말리아에 테러단체가 있었다. 그때 소말리아 사람들이 피닉스에 살고 있었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그들을 미심쩍은 눈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테러그룹들이 미국에 있는 소말리아 사람중에 리쿠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말리아 사람들과 가까이 친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런 식의 창의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교회 공동체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첫번째 수요일 저녁에 관심있는 토픽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소비주의, 예술, 운동…)

* 소비주의 사회
- 소비주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양쪽에 뿌리를 가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우리 삶에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삶의 의미의 빈자리에 상품과 새로운 경험을 집어 넣었다. 
- 그와같은 것을 채울 수 있는 많음 물건이 세계화를 통해서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모더니즘의 열매)
- 소비주의야말로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가장 큰 우상숭배적인 스피릿이다. 


* 스티븐 마일스 : “소비주의는 현대 생활의 핵심적인 부분이 되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종교와의 유사점도 우연한 것이 아니다. 소비주의는 거의 틀림없이 20세기 후반의 종교이다."

* 소비사회가 만들어낸 것
- (웰스)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 “만들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을 구조화 시켰다."
-  the story of stuff :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이 일어났을까? 이것은 그냥 우연히 생긴것이 아니라 디자인 된것이다.” / 소비주의는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을 지나면서 엄청난 상품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전에 테이블을 만들면 하루에 1개도 만들기 어려웠다. 하지만 산업혁명이후에 어셈블리 레인을 통해서 10명이 100개이상을 만들어 낸다. 그러다보니 점점 상품이 많아지는 것이다. 경제적인 관점으로 생산이 많아지는 것인데 소비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 생산과 소비의 갭이 증가했다. 과거에는 신발 두켤레면 충분했다(작업화, 교회갈때 신는 신발). 이제는 신발을 사게해야하는 것이다. 
- 지나치게 생산적인 우리 경제는 소비를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만들도록 요구한다. 상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것을 제사의식으로 전화시키고 우리의 영적 만족감, 자아 충족감을 소비에서 추구하도록 요구한다.(신발 생산, 자동차 생산-차를 파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파는 것이다.)

* 우리는 소비하고, 소모하고, 닳게 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폐기할 물건들을 점점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입고 타고 살도록… 그것을 점점 더 비싸게 소비하게 해야 한다.

* 소비를 삶의 방식으로 만드는 것(2가지)
- 계속해서 소비가 삶의 방식이라고 반복해서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로드티 크랩(악마는 비자를)
1) 어떤 것이 못쓰게 되는데 살때부터 얼마지나면 못쓰게 되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잘 부서지도록(커피 메이커, 잔이 부서지면 바꾸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진공청소기)
2) 못쓰게 되었구나라고 느끼도록, 생각하돌록 : 멀쩡하게 입고 있는데 이 옷이 나를 쿨하게 만들지 못한다라고 여기게 만든다. 신발도 닳지 않았는데 안좋아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현재 가지고 있는 물건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라고 여기게 만든다. 전화기사는데 사람들이 줄을 설때 전화기가 작동하지 않기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 광고
- 북미주의 사람들은 하루에 3000번정도 노출된다고 한다. 
-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낸다. / 어제까지만해도 그것이 존재하는지도, 필요한지도 몰랐다. 그런데 광고가 이것을 사면 내 인생이 달라질것 같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비행기 광고책을 보고나자 속이 메스꺼웠고, 새롭게 필요한 2가지가 생겼다.)
- 불만족을 만들어 낸다.(컴퓨터, 핸드폰의 기능 / 미를 판매)
- 좋은 삶을 파는 것이다. (자동차와 맥주 : 이것을 사면 네 삶이 멋져진다라고 계속 강조한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것을 사와서 비판을 해오라고 했다. 누구를 바보로 만드는 것인가? 

* 롬 1:18-32과 소비 문화
- 사도바울은 로마의 우상숭배문화와 인간의 죄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김” 삶의 중심에 하나님외에 우상을 두는 것이다. 서구적인 삶에서는 삶의 중심에 여러가지 다른 것을 가져다놓고 하나님을 배제하는 것이다. 
- “하나님이 내버려 두심”을 세번 반복한다. 하나님을 섬기려고 한다면 문화가 어떻게 이야기하던지 나가가야 한다. 오늘 서구사회는 부를 추구하기를 원하면 내어버려두신다. 그것에 좋은점도 있지만 멸망의 길인 것이다. 

* 소비주의
- 종교개혁전통에서 이즘을 붙이면 우상숭배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비자는 창조세계의 선한 것이지만 이것이 소비주의가 되면 악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성은 선한 것이지만 이성주의는 좋지 않다. 
- 소비는 좋은 것이다. : 피조물을 보시고 좋았더라,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즐길만한 많은 것을 소나기처럼 많이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 중요하다.  
- 문제 : 상품과 경험을 소비하도록 우상에 선점됨(젊을수록 경험을 소비하는 것이 익숙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중심에 소비가 들어오는 것이다. 호모 컨슈머-소비하기 위한 존재가 됨) / 문화의 중심속에 경제적 성장과 소비가 들어옴
- 유대인의 전통속에 거룩하게 된 소비를 배울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고 점점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 필요한 것은 반소비적인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들의 선한 청지기가 되는 것, 우리가 자원들을 책임있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 우리가 구매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선물에 대해 어떻게 청지기가 될 것인가? 이것을 즐기면서 이것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12살딸에게 코트를 사주었는데 이땅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서 이 옷을 입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좋은 것을 누리지 말라고 금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에게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소비사회를 살아가는데에 대한 묵상
1) 우상숭배적인 삶이다. 
- “다름아니라 경제주의의 문화는 삶 전체를 망라한다는 허위, 행복과 성취를 가져올 수 있다는 허위를 가진 유사종교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경제주의가 인간을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우상이라고 비판적으로 선언해야 한다."
2) 공동체적인 소비주의는 파괴적이다. / 소비주의는 파괴적이다. (가난한 자에게, 환경에 대해, 부유한 자에게도(시간 부족, 비용의 발생, 빚의 증가, 염려, 심리적 문제, 교육, 가족, 성생활, 스포츠), 경건한 성품에 대해서(담욕적, 질투, 이기적, 피상적, 만족못함, 감사못함의 문제들이 생김)) / 가톨릭 신학자들은 소비주의 자체가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한 성품을 파괴한다. 
3) 소비주의 세계관은 교회조차도 길들인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을 따르는 법) 
- 기독교인들이 실제 믿음을 살아내는데 있어 예수의 복음보다도 국가와 문화의 복음들에 더 헌신되어 있다. 기독교 신앙을 빈약하게 하고 길들이는 것이 중심문제다.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예수의 복음이 소비의 복음보다 뛰어나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포드 자동차 회사(소비주의가 복음이다라고 했다.)
- 동일하게 복음에 기초한 인간의 삶의 의미를 포괄적이고 강력한 세계관 이야기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 성경적인 세계관에 기초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 성경과 복음을 알고/ 이시대의 이야기를 알고/ 구속적 긴장을 개발하고/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는 자세/ 다음 세대를 훈련 / 공동체적 삶 / 깊은 영성

* 소비자 문화 안의 대조 공동체
- 도무지 만족할줄 모르는 세상을 살면서 만족하는 공동체
- 즉흥적인 만족을 구하는 세상에서 인내심있고 절제하는 공동체
- 점점 폭력적이고 거칠고 성적인 소비시대에서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가진 공동체
- 불만족한 세상에서 기쁘과 감사할줄 아는 공동체
- 개인적인 자율성과 실현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살마들에 대한 책임과 상호성을 강조하는 공동체
- 이기적인 세상에서 이타적으로 다른이들에게 나눌줄 아는 공동체
- 겉만 치장하는 세상에서 내면의 성품을 추구하는 공동체 
- 많은 것을 낭비하는 세상에서 충성된 청지기로 사는 공동체
- 생태학적인 부정의가 넘치는 세상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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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유혹 시험이


1.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올때에

나의 힘으론 그것들 모두 이길 수 없네  

When trials and temptations of the world descends upon me

I have no strength of my own to overcome


거대한 폭풍 가운데 위축된 나의 영혼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이고 있을때  

My soul withers in great storm and 

I don’t know which way to turn


후렴 :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Then I lift my hands to the Lord and praise

For the war does not belong to me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Praise the Lord I lift my hands in praise

The war belongs to my God


2.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찬 세상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네  

In the world full of lies and deceits

I hesitate because I don’t know where to go


공중의 권세 잡은자 지금도 우리들을

실패와 절망으로 넘어뜨리려 하네  

The ruler of the kingdom of the air

Still wants to tear us down in despair and failure


3.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듯

믿음의 눈을 들면 보이는 분 계시네  

There seems to be no one around when I behold

But when I look in faith, I see Him


지금도 내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사망과 어둠의 권세 물리치신 예수님  

He who still works in me

Is Jesus who defeats death and its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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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우리 보좌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그의 피로 우린 구원받았네
We have gathered at your throne,
praising You together.
He has given his love, his only Son.
With his blood,
we are saved.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같이 온땅에 흘러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받고 주 경배드리네
The love that was poured upon the cross
have flown like a river across the earth;
Every nation, every tribe, and every language
have been redeemed and worship the Lord.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Salvation is upon God and the Lamb
Who are high on the throne.
Salvation is upon God and the Lamb
Who are high on the th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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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부어 주소서


내안에 부어 주소서 성령의 충만한 기름을
내안에 충만케 하소서 성령의 기름으로

Pour me your oil,

with the abundant oil of the Holy Spirit.
Fill me with your oil,
oil of the Holy Spirit

내게 기름 가득할 때 주의 복음 전할 수 있네
내게 기름 가득할 때 주의 사랑 베푸네
I can proclaim the Good News,
when I am filled with the oil.
I can pour out my love
when I am filled with the oil.

그날에 우리 주님께서 밤중에 찾아오실 때에
기름 준비된 자만이 잔치 자리 들어가네
On the night when our Lord finds us,
Only those who have prepared the oil
will join the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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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Only by Faith


1. 세상 흔들리고
Though the world shakes
사람들은 변하여도
and the people change,
나는 주를 섬기리.
I serve the Lord.

주님의 사랑은
The love of the Lord
영원히 변하지 않네.
never falters.
나는 주를 신뢰해.
I trust the Lord.

오직 믿음으로
Only by faith,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by faith will I live.

2. 믿음 흔들리고
Though their faith weakens
사람들 주를 떠나도
and people leave the Lord,
나는 주를 섬기리.
I serve the Lord.

주님의 나라는
The Kingdom of the Lord
영원히 쇠하지 않네.
will never fail to prosper. 
나는 주를 신뢰해.
I trust the Lord.

오직 의인은
A righteous person will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only live by his (her)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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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부를 노래가

A Song to Sing Together


함께 부를 노래가 있었으면 해요.
I wish there were a song to sing together.

1. 그저 묵묵히 살아가고 있기만한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With our neighbours living quietly around us,
항상 살아 계셔서 일 하시는 하나님
Our living God works at all time.

2. 속셈 피아노 태권도에 시달려온 우리의 동생들과 함께
With our younger brothers and sisters who slave a day with math tutoring, piano lessons, and Taekwondo schools,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
Our God treasures child-like souls

3. 대학 입시 자격 취득 취업에 찌든 우리의 친구들과 함께
With our friends who suffer from university entrance, qualifying exams, and looking for jobs,
새벽 이슬 같은 젊음을 반겨 맞으시는 하나님
Our God welcomes young souls that are like morning dew.

4. 이젠 맘 놓고 태어나지도 못하는 우리의 아가들과 함께
Even from our babies who cannot be born freely to this world anymore,
젖먹이의 입술로도 찬양 받으시는 하나님
Our God delights in their praises from their lips.

5. 몸으로 돈을 벌어 살아가야 하는 이 땅의 딸들과도 함께
With the daughters of this world who make their living with their bodies,
마리아의 향유를 기억하고 계신 하나님
Our God remembers the nard of Mary.

6. 수 많은 외침 속에서 숨져간 겨레의 아벨들과 함께
From all the Abels of this nation who passed away with many outcries,
피에 젖은 땅의 호소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Our God listens the plea of the bloody earth.

7. 수입 개방 위협 속에 땅을 지켜온 흙의 일꾼들과 함께
With the workers of the earth who guard the soil even in the midst of the threat of open market,
얼어 붙고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는 하나님
Our God sends timely rain to the frozen, barren land.

8. 고층 아파트 빌딩 숲에 가려 그늘진 힘겨운 삶들과도 함께
With the struggling lives shadowed by the skyscrapers and high risers,
돈으로는 갈 수 없는 왕국의 주인이신 하나님
Our God reigns the kingdom where one cannot go with money.

9. 헤비 메탈 뉴에이지 가요와는 비교할 수 없는 노래
Like songs that cannot be compared to heavy metals and New Age music,
영원히 아름다운 음악이신 창조주 하나님 
Our God the Creator is the eternally beautiful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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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Jesus spoke and right before their eyes, all the water changed into wine (*2)
- 후렴 :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Jesus, Jesus, I want You to speak to me. Change me change me, Jesus want to you speak to me.

2.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메오가 눈을 떴다네

Jesus spoke and right before their eyes, Bartimaeus was no longer blind (*2)
- 후렴 : Jesus, Jesus, I want You to speak to me. Change me change me, Jesus want to you speak to me.

3.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네

Jesus spoke and right before their eyes, Lazarus came back from the grave (*2)
- 후렴 : Jesus, Jesus, I want You to speak to me. Change me change me, Jesus want to you speak to me.

4.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거친 파도가 잔잔해졌네

Jesus spoke and right before their eyes, raging waters calmed down again (*2)
- 후렴 : Jesus, Jesus, I want You to speak to me. Change me change me, Jesus want to you speak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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