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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aTherefore let us not pass judgment on one another any longer, but rather decide bnever to put a stumbling block or hindrance in the way of a brother. 14 I know and am persuaded in the Lord Jesus cthat nothing is unclean in itself, dbut it is unclean for anyone who thinks it unclean. 15 For if your brother is grieved by what you eat, eyou are no longer walking in love. fBy what you eat, do not destroy the one for whom Christ died. 16 gSo do not let what you regard as good be spoken of as evil. 17 h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iof righteousness and j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18 Whoever thus serves Christ is kacceptable to God and approved by men.
aSee Matt. 7:1
b[1 Cor. 8:13]
cver. 2, 20; See Acts 10:15
d[1 Cor. 8:7, 10]
eEph. 5:2
f1 Cor. 8:11; [ver. 20]
g[ch. 12:17; 1 Cor. 10:29, 30]
h1 Cor. 8:8
i[1 Cor. 6:9]
jGal. 5:22; [ch. 15:13]
k[2 Cor. 8:21]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롬 14:13–18.

앞서 형제를 비판하지 말것(10-12)에 대해서 권고한다. 13절 이하의 내용에서는 특별히 공동체 안에서 강한 자들에 대해서 권고하고 있다. 특별히 약한 자들 앞에 걸림돌이나 장애물을 두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권면한다. 공동체 안에서 강한 자들은 약자들을 향해서 마음을 열고 교회안의 하나됨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본문은 교차대구법(chiasm)구조를 나타낸다. 

  • The first section ends with an admonition against judging your brother (vv. 10–12), and this section picks up this theme, beginning, Therefore let us stop passing judgment on one another.However, while the first section addressed both groups, this section centers on the strong. In verses 3 and 10 the ones guilty of judgment were the weak, while the strong were characterized as despising the weak. Here both groups are seen as judging, but in the second half of verse 13 Paul applies the admonition especially to the strong. The thesis is stated in verse 13—do not do anything that will hurt another believer (namely, the “weak”) spiritually. Several have noted a chiastic pattern here. Perhaps the most comprehensive is Dunn (1988b:816 [see fig. 5, representing discussion]).
  • This section addresses the strong, who should be leading the way to establishing unity in the church by opening themselves up to the “weaker”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65–366.




13절) 그러므로 다시 서로 더이상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형제들의 앞에 장애물이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판단하라)라고 말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강한자들에게 약한 자들을 비판하지 말고 주의할 것을 명한다. 본문에 사용된 비판하다, 주의하다라는 동사는 모두 ‘크리노’라는 헬라어 단어이다. 부정적인 비판을 하기보다 긍정적으로 분별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문의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은 사람들을 죄에 빠지게 만드는 어떤 것들을 말한다. 때로는 작은 유혹이 우리를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고 믿음의 길을 떠나 배교에 이르게 한다. 공동체 안에 이러한 일들은 빈번하다. 모두가 복음에 마음을 두고 집중하고 있을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때 우리의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이 어떤 이들에게는 걸림돌과 장애물이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자신이 이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우리 주변에 있는 이러한 걸림돌들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신앙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 stumbling block or obstacle.Originally referred to, respectively, as (1) a physical object that might cause one to trip and fall and (2) a trap or snare. The Bible widely uses both words to refer to matters that might cause a believer to stray from their commitment to God (v. 20; cf. Exod 23:33; Josh 23:13; Ps 106:36; Isa 8:14; Matt 18:7; 1 Cor 8:9; 1 John 2:10).
  •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 cf. compare, confer
  •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318.

14절) 바울은 스스로 속된 것은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자라고 가르친다. 당시는 레 11장이나 신 14장의 음식에 대한 규례가 의무적인 규정으로 강제되었던 시대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막 7:15, 19) 음식을 먹는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셨다. 또한 고전 8-10장에서도 이를 다루었다. 이후 15절 부터는 좀더 구체적으로 먹는 것을 다루고 있지만 이뿐 아니라 지금 시대의 다양한 문화에 속한 부분도 여기에 속하는 것이다. 이시대의 문화는 그 자체로는 가치 중립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신앙에 있어서 근본주의자에 속하는 이들이 음식(술, 담배), 영화, 게임, 카드놀이, 가무등을 속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틀에 갇혀서 다른 발언을 하지 못한다.  바울은 어떤 사람(강한 자)의 자유에 속한 신앙적인 행동이 항상 최선의 일이 아닐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이 가지는 신앙의 양심을 매우 중요하고 이는 매우 강력하다. 하지만 이 신앙의 양심을 다른 이에게 강요할 때 이것을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들은 어떤 사안이 속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하는 상황에서 성경을 그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구약의 음식 규정처럼 이것은 분명 성경의 기록이지만 예수님께서 폐하신 것임을 기억해야한다. 또한 이것이 문화적인 것에 속한 것인지 진리에 속한 것인지를 분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세계관에 속한 부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15-16절) 음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한 것이다. 우리의 형제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셨는데 잘못된 음식 규정으로 형제를 망하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본문에 사용된 망하다라는 단어는 영적인 파괴, 즉 그들의 신앙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학자는 이를 영원한 구원을 상실하는 ‘종말론적인 파괴’라고 칭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안에서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이를 행사할때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나의 자유가 다른 이들을 망하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을 제한 할 수 있어야 한다. 

  • So it was time for the believers in Rome to stop criticizing one another. If they felt they must reach a decision about something, they were not to place a stumbling block or an occasion to sin in the path of a weaker brother in Christ.113Paul himself was fully convinced that nothing was intrinsically unclean.114To Timothy he wrote, “Everything God created is good, and nothing is to be rejected if it is received with thanksgiving (1 Tim 4:4; cf. Titus 1:15). The old taboos on certain ceremonial foods were no longer in force. Jesus taught that it is not what goes into the mouth that makes a person unclean but what comes out   p 256  (Matt 15:10–11, 16–20). Nevertheless, Paul was concerned with the affect of this new freedom on the lives of those Christians who still felt that in some way the regulations of Judaism were not totally obsolete. Although no food is unclean in itself, if someone regards it as unclean, then for that person it is.115
  • 113Murray calls attention to the two distinct senses in which κρίνω is used in v. 13. First, κρίνωμεν means “don’t judge harshly” and then κρίνατε means “determine, decide” (Romans, 2:186). The original stem of σκάνδαλον has the idea of trapping (TDNTabr., 1036), although no reference to the “trip-stick of a trap” is documented in literature (EDNT3.249). In the latter article H. Giesen refers to πρόσκομμα ἤ σκανδαλον as a hendiadys, “stumbling block to faith.”
  • 114κοινός was a semitechnical term describing those customs of the non-Jewish world that were forbidden to the devout Jewish believer.
  • 115Bruce comments that “defilement is located in people’s minds, not in material objects” and adds that this truth has “far reaching implications” (Romans, 237).
  •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255–256.

바울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너 자신의 양심의 자유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네 형제나 자매들을 망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 

17-18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며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다.(인정을 받는다.)
의(디카이오쉬네)는 로마서의 중요 주제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이를 통해 의로운 삶이 주어진다. 
평강(에이레네)는 칭의와 성령의 임재에 대한  일차 결과이다. 바울의 목적은 분쟁의 상황속에서 평강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희락(카라)는 로마서에서는 여기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로마서를 마치면서 롬 15:13에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로마교회에 기쁨과 평강이 충만하기를 기도했다. 
오직 성령께서만이 파괴적인 분쟁의 상황속에서 의를 행함으로 교회가 평강과 희락을 이루어낼 수 있게 하신다. 바로 의와 평강과 희락은 하나님 나라의 일차적인 증거이다. 이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교회안의 강한 자들은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기보다 공동체 안의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발전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Righteousnessis the central theme of the book, referring to the justification of the believer by the atoning death of Christ and the righteous life that results (especially 1:17; 3:21–26). Peaceis the primary result of justification (5:1) and of the presence of the Spirit (8:6). Paul’s goal is to produce peace in the midst of the conflict (v. 19 below). This is the first appearance of joyin Romans, but Paul concludes this section with a prayer that “joy and peace” will “fill” the Roman church through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15:13). It is the Holy Spiritalone that can turn the destructive conflict around so that righteous behavior will predominate and the church will find the peace and joy that is the primary proof that the kingdom of God has once again triumphed. Before this can happen, however, the “strong” at Rome will have to temper their demands and start caring more about the spiritual development of the “weak” Christians than about their precious freedom.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70.

하나님 나라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이다. 자신의 양심을 위한 것이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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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And the word of the Lord of hosts came to me, saying, 19 “Thus says the Lord of hosts: The fast of the vfourth month and the fast of the wfifth and the fast of the xseventh and the fast of the ytenth shall be to the house of Judah zseasons of joy and gladness and cheerful feasts. Therefore love atruth and peace.
20 “Thus says the Lord of hosts: Peoples shall yet come, even the inhabitants of many cities. 21 The inhabitants of one city shall go to another, saying, b‘Let us go at once cto entreat the favor of the Lord and to seek the Lord of hosts; I myself am going.’ 22 bMany peoples and strong nations shall come to seek the Lord of hosts in Jerusalem and cto entreat the favor of the Lord. 23 Thus says the Lord of hosts: In those days dten men efrom the nations of every tongue shall take hold of the robe of a Jew, saying, ‘Let us go with you, for fwe have heard that God is with you.’ ”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슥 8:18–23.

18절) 7장에서 벧엘 사람 사레셀과 레겜멜렉이 질문한 사람은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다.(7:2-3) 그러나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것이 아니고 스가랴 선지자에게 그 대답의 말씀이 임하였다. 

19절) 넷째달, 다섯째달, 일곱째 달,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해야 한다.(16절) 각각의 금식의 날을 이스라엘의 역사상 비극적인, 슬픔의 순간들이다. 그런데 이 금식이 변하여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7장에서는 5월과 7월의 금식만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4월과 10월의 금식을 추가했다. 이 모두 예루살렘의 멸망과 관계있는 것으로 이제 예루살렘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Formerly, the people fasted in the fourth month, when the walls of Jerusalem were breached (2 Kings 25:3–4; Jer. 39:2; 52:6–7); in the fifth, when the city fell (Jer. 52:12–15); in the seventh, when Gedaliah was assassinated (2 Kings 25:25; Jer. 41:1–3); and in the tenth, when the siege of the city first began (2 Kings 25:1; Ezek. 24:1–2). Yet in the days ahead, these fast days would be turned to feast days, seasons of joy and gladness, celebrating the salvation and transformation that the Lord had accomplished for them. In view of this, the people are called to love truth and peace: “love” implies commitment and devotion rather than being simply an emotional respons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61.
기쁨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사손’인데 이는 잔치에서 즐겁게 먹는 것과 연관되어 있고(사 22:13) 기쁨의 잔치에도 쓰였다.(에 8:16-17) 즐거움, ‘심카’도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눌때 쓰인 단어이다.(삼상 18:6; 왕상 1:40; 사 9:3)
본문은 슬픔의 금식의 날이 기쁨과 즐거움의 절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이는 이 기쁨과 즐거움의 절기를 계속해서 유지해나가기 위해서 진리와 화평을 이루고 추구해야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8장 전체에서 진리와 화평을 말한다.(3,  8, 16-17) 모든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진실과 화평은 대단히 중요한 주제이다. 진리, 진실이 없으면 참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고 나아가 사회적 관계, 특히 공평을 실현해야할 법제가 위협받게 되고 사회 제도가 위협받고 약자들이 아픔을 당하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진리와 화평을 추구하고 사랑해야 한다. 
After a repeated, emphatic assertion that his sermon was of divine origin, Zechariah quoted God as saying that all of the former fasts would become times for rejoicing in Israel’s relationship with the Lord (see Jer 31:10–14). Zion’s great joy will cause episodes of judgment and deprivation to recede into a faded memory. Up to this point in Zechariah’s revelation, the prophet had declared that the Lord will “restore the nation” (1:16–17; 2:10; 3:9; 4:9; 8:3–8, 11–13), appoint his messianic leaders (3:5, 7–8; 4:7–8, 14; 6:12–13), and rule as sovereign over the nation of Judah as well as govern all the other nations of the world (1:10–11; 2:5, 10–11; 6:7–8; 8:8).151
151 Merrill, Zechariah, 231.
 George L. Klein, Zechariah, vol. 21B,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TN: B & H Publishing Group, 2008), 245.

Zechariah strongly conveyed the rejoicing that the future will bring by using three synonyms for joyfulness. The term “joyful” (śāśôn) means “exultation or rejoicing,” especially in light of the Lord’s favor (see Ps 51:8).156 Likewise, the Hebrew term for “glad occasions” (śimḥāh) signifies “mirth.”157 This latter expression, when describing gladness in a social setting, may refer to the fellowship that family and friends share around a meal (see Gen 31:27). If this is the case, it presents a particularly pregnant connotation in light of Zechariah’s transformation from fast to feast. Last, the Hebrew phrase for “happy festivals” (mōʿădîm) does not occur elsewhere in the Old Testament, but the expression speaks of good or pleasant assemblies. Whereas past memories of Jerusalem brought lament and pain, future memories of Zion will focus on the feasting within the city: “Look upon Zion, the city of our festivals” (Isa 33:20).
Verse 19 concludes with the imperative, “love truth and peace.” Although the injunction to love occurs in many truly significant theological texts, the command does not appear frequently in the Old Testament. In Lev 19:18, 34 (see also Matt 22:39; Mark 12:31; Luke 10:27; Rom 13:9; Gal 5:14; Jas 2:8) God commands his faithful to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Further, Deut 6:5, the Shema, requires believers to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Neither admonition refers to an “emotional” response that God expected Israel to direct either to one another or to himself. Rather, the faithfulness or obedience to the covenant God had made with his people represents the essential idea of “love.” Furthermore, the biblical use harmonizes nicely with the ancient Near Eastern covenants that use similar vocabulary to require obedience to the covenant.158 Thus, v. 19 concludes with the command for every Judahite to show covenantal faithfulness both to God and man.

156 שָׂשׂוֹן. HALOT, 1363.
157
שִׂמְחָה. HALOT, 1336–37.
158 W. L. Moran, “The Ancient Near Eastern Background of the Love of God in Deuteronomy,” CBQ 25 (1963): 77–87. Also, D. J. McCarthy, Treaty and Covenant (Rome: Pontifical Biblical Institute, 1963).
 George L. Klein, Zechariah, vol. 21B,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TN: B & H Publishing Group, 2008), 246–247.

20-22절) 앞서 금식이 기쁨의 절기가 된 것을 보고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다.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 거민에게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자하라고 할 것이고 그것을 보고 다른 성읍의 사람들도 나도 여호와께 가겠다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할 것이다. 
본문은 앞서 2:11절에 선포된 내용이다. 
본문은 이제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성읍, 민족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앞에 나아올 것을 말한다. 과거 어느 성읍 백성이 다른 성읍 백성을 찾아간다는 것은 전쟁하러 나아가는 것 밖에 없었다. 이렇게 수많은 성읍들이 공경당하고 훼파되던 것을 경험했던 이들이 다른 성읍에도 여호와의 은혜를 구하러 간다는 것이다. 또한 22절의 나라는 이방인을 가리키는 ‘고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이방인들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에서 이미 선포되었다. 
The Abrahamic covenant assured Israel that she will become the channel of blessing between the Lord and the nations of the world. Further, Gen 1–11 develops the theme of “why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need the blessing” the Lord offers.
 George L. Klein, Zechariah, vol. 21B,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TN: B & H Publishing Group, 2008), 247.

본문에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는 표현은 앞서 반복된다.
- The phrase “to entreat the Lord” (lĕbaqqēš ʾet—YHWH; vv. 21 and 22) occurs also in 7:2.165 When used in secular contexts, the expression describes appeasement, seeking mercy or favor. In the spiritual domain, the phrase portrays the preparation of the worshipper’s heart for prayer to the Lord. Typically, sacrifice also plays an important role in passages where people “entreat the Lord.”166
165 לְבַקֵּשׁ אֶת־יהוה. HALOT, 152.
166 TDOT, 4:409. Merrill illustrates the religious use of the term with Moses’ mediatorial actions in Exod 32:11–13 when he “sought the favor of the Lord” in asking God to spare the idolatrous people (Zechariah, 233–34).
 George L. Klein, Zechariah, vol. 21B,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TN: B & H Publishing Group, 2008), 249.

 
23절) 옷자락을 잡는다는 말은 상대방에게 복종하고 간구하는 표현으로 고대 근동에서 많이 사용되던 표현이다. 사울이 사무엘의 옷자락을 잡고 간청하는 대목에서도 볼 수 있다.(삼상 15:27)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옷자락을 잡는 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참된 하나님이라는 것과 이스라엘 백성의 축복이 참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 임마누엘이 은혜의 통로임을 듣고 깨달은 이들이 이제 이스라엘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또한 방언이 다른 이방의 백성 열명이 유다의 옷자락을 잡는다는 것은 바벨탑 사건에서 언어를 흩으신 하나님께서 다시금 이를 하나되게 하실 것을 말해준다. 
Moreover, Zech 8:23 declares that ten foreigners speaking the different languages of the world will stand with every Judahite. Accordingly, Zechariah’s prophecy represented a reversal of the divine decree in the tower of Babel passage (Gen 11:1–9).163 The apostle Paul continued this theme in Gal 3:8: “The Scripture foresaw that God would justify the Gentiles by faith, and announced the gospel in advance to Abraham: ‘All nations will be blessed through you.’ ”
163 Smith, Micah-Malachi, 241.
 George L. Klein, Zechariah, vol. 21B,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TN: B & H Publishing Group, 2008), 248.

본문의 그날은 앞서 2:11절을 말한다. 여호와의 날, 주님의 완전한 통치가 완성되는 날을 말한다. 

본문의 열 명을 문자적 의미라기 보다는 상징적으로 모든 인류를 통칭한다. 
Zechariah prophesied that the Day of the Lord will see ten Gentiles in Zion worshipping the Lord for every Judahite. The number ten is not literal, but rather symbolizes the totality of humanity. The symbolic use of the number ten occurs in other Old Testament passages (see Gen 31:7; Lev 26:26).
 George L. Klein, Zechariah, vol. 21B,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TN: B & H Publishing Group, 2008), 249.

The theme of seeking the Lord that stands so prominently in vv. 20–22 transforms into “grasping” him in v. 23, a topic mentioned twice in a single verse. Thus, Rom 14:11 (see also Phil 2:11) portends, “ ‘As surely as I live,’ says the Lord, ‘every knee will bow before me; every tongue will confess to God.’ ”
 George L. Klein, Zechariah, vol. 21B,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TN: B & H Publishing Group, 2008), 250.

스가랴의 전반부는 이렇게 8장으로 마쳐진다. 8가지의 환상을 말한뒤에 이스라엘의 참담한 현실로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회복의 미래의 축복을 선포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7-8장은 하나의 큰 설교로 처음 벧엘에서 몇 사람이 금식에 대하여 제사장과 서기관에게 질문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을 잘 말해준다. 유다가 멸망한 이후 과거의 멸망을 기억하며 슬퍼하며 금식하는 백성이다. 그러면서도 금식의 참된 의미를 잊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 그는 7장에서 그들이 환난당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8장에서는 자기 백성에 대한 여호와의 질투하시는 사랑 때문에 그 백성을 구하시갰다는 미래의 약속을 두번에 걸쳐 강조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두려워하지말고 진실하게 살것을 명령한다. 미래의 예루살렘의 회복과 수많은 이방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리로 나아올 것에 대한 소망을 통해서 현실을 살아갈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 As chap. 8 concludes, the prophet completes the first part of the book, leaving Judah with ample reason to have confidence in the future. The Lord’s own assurances, indeed his very presence dwelling among the people in Zion, give all the faithful great optimism for their destiny. Psalm 126 captures the nation’s changing fortunes well:
When the Lord brought back the captives to Zion,
we were like men who dreamed.
Our mouths were filled with laughter,
our tongues with songs of joy.
Then it was said among the nations,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them.”
The Lord has done great things for us,
and we are filled with joy.
Restore our fortunes, O Lord,
like streams in the Negev.
Those who sow in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
He who goes out weeping,
carrying seed to sow,
will return with songs of joy,
carrying sheaves with him.

 George L. Klein, Zechariah, vol. 21B,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TN: B & H Publishing Group, 2008), 25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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