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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One person esteems one day as better than another, while another esteems all days alike. rEach one should be fully convinced in his own mind. The one who observes the day, observes it in honor of the Lord. The one who eats, eats in honor of the Lord, since she gives thanks to God, while the one who abstains, abstains in honor of the Lord and gives thanks to God. For tnone of us lives to himself, and none of us dies to himself. For if we live, we live to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to the Lord. So then, uwhether we live or whether we die, we are the Lord’s. For to this end Christ vdied and lived again, that he might be Lord both wof the dead and of the living. 
qGal. 4:10; [Zech. 7:5, 6]
rver. 23
s1 Cor. 10:30, 31; 1 Tim. 4:3, 4; See Matt. 15:36
t2 Cor. 5:15; Gal. 2:20; 1 Pet. 4:2; [1 Cor. 6:19; 1 Thess. 5:10]
uPhil. 1:20
vRev. 1:18; 2:8
wSee Acts 10:42; Rev. 20:1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롬 14:5–9.

앞서 1-4절에서 음식에 대해서 말했다면 이제 논의의 장을 날들로 확장하고 있다. 

5절) 어떤 사람(믿음이 약한 이들)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강한 자들)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 이는 각각 자기 양심에 따라 정할 것이다. 
약한 자들은 어떤 날이 다른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고 반면에 강한 자들은 모두가 똑같다라고 여겼다. 본문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날들은 안식일, 절기들과 금식의 날들를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날들을 미신처럼 지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 주제에 대해서 바울은 열려있었다. 어떤 결정을 하던지 각각 자기의 마음에 정한대로 하라고 명하고 있는 것이다. 뒤에 강조되는 중요한 원칙은 무엇을 하던지 주를 위하여 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앞서 롬 12:2의 '마음을 새롭게 함’을 기억나게 한다. 만약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이 새롭게 되어짐을 경험했다면 각각의 신자들의 생각과 고민을 통해서 각각의 이슈들에 대해서 주의하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결정은 없다. 바울은 어느쪽 편을 드는 것을 포기하고 모두를 서로 존중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시대는 이러한 다양한 논란의 주제들이 있다. 특히 교회안에 사람들은 나누는 주제들, 동성애, 낙태, 여성 안수, 은사의 문제, 보수 신학과 자유 신학의 대립등이다. 성경은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단일한 결론을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다만 오늘의 본문처럼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하라’고 명령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 In verses 5–9 Paul gives further details of the dispute. It concerns not only food but also the observance of holy days. The weak consider one day more sacred than anotherwhile the strong consider every day alike.*Literally, the weak were “judging one day more important than another” while the strong were “judging each day the same.” So the “judgmental” attitude persisted, this time on both sides. Apparently, the two sides were also divided over the observance of sacred days like the Sabbath, fast days and the Jewish festivals. Many Romans thought the observance of holy days like the Sabbath to be superstitious, but others were strongly attracted to it. In the Roman church the two sides were at odds over such requirements, but Paul says it should be an open issue: whatever conclusion is drawn, each one should be fully convinced in his own mind.In other words, both approaches were viable, and the only requirement was faithfulness to the Lord. This may go back to the “renewing of your mind” in 12:2. If the Spirit was indeed transforming the thought process of each believer, the two sides must think through the issue carefully and make a reasoned decision. Obviously, then, there is no single truth in matters such as this. Paul refuses to take sides but simply wants each group to respect the other. This could well be applied to similar issues today, though people would differ as to its application. I personally would apply it to debates regarding the rapture, the charismatic issue, women in the church and Calvinism-Arminianism among others. The Word of God is not explicit on these issues, and while each of us is indeed “fully convinced in [our] mind,” Paul calls us to respect our opponents on these issues as well.
  • *14:5The exact nature of these daysis difficult, and it could be related to the Roman practice of calendrical observance, perhaps the Greek belief that days were under “lucky or unlucky stars” (Käsemann 1980:370) or some other Hellenistic practice. But that is unlikely, and a Jewish-Christian debate is more likely. At issue may be the Jewish festivals like Passover or Day of Atonement. Reasoner (1999:147–58) believes it was a Sabbath conflict in which the weak observed “the Lord’s Day” (Rev 1:10) as a Christian celebration. He shows that the Romans thought Sabbath observance a superstition for the lazy and argues that the debate was over scrupulous demands for Sabbath worship. Yet this does not state what the strong would have believed, and it is unlikely they would have failed to observe a day of worship at all (for early worship on Sunday, see Acts 20:7; 1 Cor 16:2; Rev 1:10). If it is a Sabbath debate, it could have been between Saturday (Jewish = the weak) or Sunday (the strong) demands. This would fit the Gentile versus Jewish make-up of the larger issue, but there is too little evidence for such a debate. Most likely, it refers to tension over the observance of holy days in general, including the Sabbath (so Dunn 1988b; Moo 1996) as well as days of fasting (Cranfield 1979; Fitzmyer 1993b, due to the close connection between food and sacred days).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60–361.

6절) 날, 먹는 자들, 먹지 않는 자들 모두 주를 위하여 할 것이다. 
거룩한 날을 지키는 것이나 고기를 먹거나 먹지 않는 것 모두 주를 위하여 할 것이다. 일상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하는 모든 선택이 중요하다. 

7-9절) 본문은 6절의 ‘주를 위하여’ 사는 삶에 대한 정교한 설명, 권고를 하고 있다. 
우리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이는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던 것이다. 바로 죽은 자와 산자의 주가 되시기 위해서 이다. 
우리의 문제는 바로 강한자와 약한자들이 모두 한 공동체 안에서 기득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있다. 교회 공동체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높이고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종교적인 논쟁이나 갈등 상황은 우리의 세를 확장하는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롬 1:21을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세상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죽음에 있어서 이것은 진실이다. 하나님만이 오직 그 순간을 결정하실 수 있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께 항복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 삶의 목표는 우리의 세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님께 속해있다라고 결론맺고 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며 그분의 종으로 전적으로 그분께 속해있다. 하인이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우리는 모든 분파 논쟁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 Paul anchors his admonitions theologically in verses 7–9, as he elaborates on the implications of to the Lordin verse 6. Whether we live or die,we do it not for ourselves but for God. The problem of both the weak and the strong is that the purpose of both systems is to prove the superiority of their movement rather than to glorify the Lord. Nothing in life, let alone in death, must be done to benefit ourselves or our movements. Religious debates, and conflict between movements, might indeed benefit ourselves, for example in talking people into joining our group, but such will never glorify God. Some (Fitzmyer 1993b; Schreiner 1998) believe this goes back to Romans 1:21—those who take part in such disputes do not glorify God but have the “futile thinking” and “foolish hearts” of the world. This is especially true of our death, for God alone determines that moment, and all we can do is surrender to his will and make certain that our lives are so centered on him that our death will be as well. Our goal at all times is not sectarianism but devotion to God. Paul concludes,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We are his children (8:14–17) and his slaves (6:15–22), so we belong wholly to him. It is natural that the servant live to please the master (14:4), so we must place the glory of God over all sectarian debates.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62.

그분의 죽음은 바로 대속 제물이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식 위해서 지불하신 것이다. 이를 통해 그분은 산자나 죽은자 모든 이들의 구주가 되신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구원 역사의 하나의 사건으로 죄와 사망을 최종적으로 이기신 사건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산자와 죽은자를 주관하시고 모든 만물이 그분께 의존하고 그분을 주목한다. 만약 예수님께서 교회의 구주이시라면 이러한 마찰은 불가능한데 공동체는 위기에 처해있다. 내부적인 논쟁은 단순한 긴장이 모인 상태를 넘어선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위험스럽게 한다. 다지 말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주요한 문제와 지엽적인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 주요한 원리들(예를 들어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과 대속적인 희생)에는 징계가 요구되고 교회의 부분에 대해 용납하지 않고 영들을 시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엽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화와 관용이 요구된다. 
  • As 1 Corinthians 6:19–20 says, “you are not your own; you were bought at a price.” To place our own agenda ahead of the interests of God is one of the basic sins. This is Paul’s point in verse 9. Christ died and returned to lifefor two reasons: so that we might belong to God (v. 8) and so that he might be the Lord of both the dead and the living(v. 9). His death was a ransom payment (3:24) that purchased us for God, and through it he became Lord of all, the dead as well as the living. The cross and the resurrection are a single event in salvation history, and together they constitute his final victory over sin and death. Thus he is in control of the living and the dead, and so everything both depends on and points to him. A lot more is at stake than just community harmony; if Jesus is truly Lord of the church, such friction should not be possible. Internal disputes constitute more than simply corporate tension. They endanger both the glory of God and the lordship of Christ. Once again, we must distinguish cardinal and noncardinal issues. Cardinal doctrines (e.g., the Trinity, the deity of Christ and substitutionary atonement) demand discipline and an intolerant “test of the spirits” (1 Jn 4:1–3) on the part of the church (examples—the Judaizers in Galatians and Phil 4 or the heretics in 1-2 Timothy), but noncardinal issues demand dialogue and tolerance (as here).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62–363.

교회는 지속적으로 교인들을 말씀을 통해서 교육하고 세움으로 어떤 것이 우리의 사활을 걸만큼 중요한 문제인지, 어떤 것이 아디아포라에 속한 지엽적인 문제인지를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 가치관에 따라서 행동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을 근거로 해서 어떤 음식을 먹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을 믿음이 부족하다라고 비난한다. 또 다른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그 음식을 먹는다. 그러면서 그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을 믿음이 없다라고 비난한다. 우리의 삶 속에는 이런 식으로 칼로 자르듯 옮고 그름을 나눌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다.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 한다라는 원칙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선택들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비난하기에 앞서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그 간격을 좁혀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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