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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As for mthe one who is weak in faith, welcome him, but not to quarrel over opinions. 2 nOne person believes he may eat anything, while the weak person eats only vegetables. 3 Let not the one who eats despise the one who abstains, and olet not the one who abstains pass judgment on the one who eats, for God has welcomed him. 4 pWho are you to pass judgment on the servant of another? It is before his own master1that he stands or falls. And he will be upheld, for the Lord is able to make him stand.
mch. 15:1; 1 Cor. 8:9–11; 9:22
nver. 14
oCol. 2:16
pJames 4:12
1Or lord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롬 14:1–4.
헬라어 원문에서는 14장에 그러나라는 헬라어 ‘데’로 시작된다.
1절)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환대하고 그들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당시 로마 교회는 강한 자와 약한 자로 나뉘어져서 서로간에 싸움이 있었다. 그들을 향해서, 먼저 강한 자들을 향해서 믿음이 약한 자를 받아들 것을, 그들이 함께 그리스도와 한몸을 이루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3절) 먹는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성경에 모든 문제의 정답이 제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디아포라’는 성경이 요구하지도 금지하지도 않는 관습, 행동을 말한다. 대부분의 많은 문제는 문화에 속한 것들이어서 이것을 받을 믿음이 있는 사람은 행할 수도 있고 반면에 어떤 인들은 이것을 행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신앙에 불편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명환한 정답을 주기 어려운 질문들이 많이 있다.
본문에서 사용된 표현에 유의하라.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비웃거나 경멸하는 반면에 약한 사람들은 정죄하거나 판단한다. 식사 규정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이들은 먹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음식법들을 제거하셨다는 것을 알고(막 7:19) 이를 모르는 무지한 자들에게 경멸감을 느꼈다.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주님의 율법을 어겼다고 느껴지는 이들을 심판에 넘겼다. 한 사람은 교만의 죄를 범했고 다른 하나는 판단의 죄를 범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다른 이들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3절은 1절과 수미쌍관을 이룬다. 1절에서 강한 자들이 약한 자를 받아들일 것을 명령했다. 이제 약한 자들을 향해서 강한 자들을 받아들일 것을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계시다. 하나님께서 이 둘모두, 강한자나 약한자나 받으셨기에 우리 모두는 서로를 받아야 하는 것이ㅏㄷ. 하나님께서 받으신 이들을 거절하는 것은 죄이다. 다양한 사안에 대해서 교회는 강한자와 약한자들로 나뉘어진다. 영화, 카드, 춤, 사교를 위한 음주. 은사주의에 대한 이쥬, 휴거와 전천년주의, 칼빈주의자와 알미니안주의와 같은 교리적인 논쟁에 의견이 나뉘어진다. 이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교리들은 아니다. 하지만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양자를 모두 받으셨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서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동안에도 서로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 The dissension caused by this is explored in verse 3—the strong look down onor “despise” the weak while the weak condemnor “judge” the strong. Paul probably chose his verbs carefully. Those who had no convictions about dietary restrictions felt contempt for those who did; they understood that Christ had removed all food laws (Mk 7:19) and so felt disdain for the ignorant others. Those with strong convictions would naturally pass judgment on those they felt broke the laws of the Lord. The one committed the sin of pride, the other the sin of judgmentalism. So Paul reminds them that God has acceptedthe other. There is inclusio with verse 1, which began with the command to the strong to acceptthe weak. Now the weak are told that God has acceptedthe strong. Therefore both groups are warned to accept each other because God has accepted both (so Käsemann 1980). It is a sin to reject those whom God has accepted. This is a frequent problem in the church today. The closest parallel would be legalistic divisions over movies, cards, dancing and social drinking, but similar would be divisive quarrels over doctrines like the charismatic issue, the rapture/millennium and Calvinism-Arminianism. We must learn to agree to disagree over such noncardinal issues. It is not that they are unimportant doctrines (see the discussion of predestination at 8:28–30 and the conclusion to chapter 10). However, like the Christians in Rome, we must realize that God has accepted both sides, and so we must accept each other even while disagreeing.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59.
4절)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하인이 서 있거나 넘어지는 것이 모두 자기 주인에게 있는데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하인은 가정의 노예를 말하며 집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당시 로마세계에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이의 하인의 문제에 참견하는 것이 가장 최악의 매너였다. 그 주인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실때 이것이 얼마나 진실인가? 하나님만이 우리의 서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의 기준이 되신다는 것은 참으로 진리이다. 최종적인 판단은 오직 주님께만 있음을 알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약한 자들이 그들이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에 대해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문제이다. 야고보는 이를 차별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약 2:1-13) 강한 자들은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는다.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는그들의 외적인 행동(먹는 것)에 기초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내적인 신뢰에 있다. 그들의 주인인인 주님께서 강한 자들의 뒤에 계시기 때문에 누가 심판 중에 그들 위에 설 약한자인가! 이는 오늘날 관용의 중요성의 심각한 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불필요한 이슈들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멈춰야 하고 하나님께서 양쪽을 모두 받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중요한 문제는 불필요한 문제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를 아디아포라라고 하는데 성경이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 문제들이고 역사적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안들인 것이다. 이 시대의 문화와 과학 기술이 점점 발달해 갈수록 이런 문제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 Paul concludes the first section with a strong rhetorical question, Who are you to judge someone else’s servant?As in verse 3, this is addressed especially to the weak who judge(the same term is used in vv. 3–4) the strong (compare 2:1, 3 of the proud Jews), but it encompasses both groups. Servantis the word used for household slave, and the master of the house is certainly God. In the Roman world, it was the worst kind of manners for a person to interfere with someone else’s slave. How much more true is it when that master is God himself. Paul adds that the slave stands or falls*only with respect to his own master,that is, all approval/acceptance or rejection comes from God himself, the eternal Master of us all, not from other Christians. The only approval that matters comes from our Master, and it would be wrong for anyone else to meddle. The error here concerns the weak who are passing judgment upon those with whom they disagreed. This constituted what James (2:1–13) calls “discrimination,” and they became “judges with evil thoughts” (Jas 2:4). This is all the more true because it was absolutely certain that the strong also would standor be approved, because the Lord is able to make [them] stand. As Peter says, they are “shielded by God’s power until the coming of the salvation that is ready to be revealed in the last time” (1 Pet 1:5). The strong are not merely accepted but shielded by his power (is able to= “has the power”). God’s presence in their lives is based not on their external conduct (what they eat) but upon their internal trust in God. Since the Lord, their master, is behind the strong, who are the weak to stand over them in judgment! This is a critical example of the importance of tolerance in our day as well. Christians must stop fighting over nonessential issues and realize that God accepts both sides. The difficult question, of course, is what constitutes a nonessential issue. The answer is twofold: these are doctrines that are not clear in Scripture (that is, passages seem to support both sides), and they have never been settled in the history of the church (that is, Bible-believing groups continue to follow both sides)—more on this below.
- *14:4The majority take stands or fallsto be a reference to the present spiritual life (Barrett 1957; Murray 1968; Käsemann 1980; Morris 1988; Fitzmyer 1993b), but a few (Moo 1996; Schreiner 1998) believe there is also a reference to the last judgment that alone will determine whether one ultimately stands or falls.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59–360.
당시 로마 교회안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유산이 의식법과 관련된 내용들을 포기해야할지 말지에 대해서 유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안의 믿음이 구약의 규정들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알지 못했다. 또 다른 이들은 과거에 대해서 지나치게 민감한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안의 새로운 자유를 받아들였다. 바울은 첫번째 그룹을 약한 자로 후자를 강한 자로 묘사한다. 그래서 첫번째 그룹들,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채소만을 먹었는데 강한 자들은 이들을 비판했다.
현대의 교회도 이렇게 강한 자와 약한 자로 나뉘어 질 수 있다. 그것은 사안마다 다를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강한 자나 약한 자 모두를 받으셨다라는 것이다. 아디아포라의 문제에 대해서 교회는 쉽사리 그것의 판결을 내리는 것을 유보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법기관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먹을 자유가 있는 사람들은 채소만 먹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먹지 않는 자들은 먹는 이들을 비난한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러한 양 극단이 존재한다. 자유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새로운 신앙과 이전 성향의 정신적, 감정적 압력 사이에서 여전히 있는 사람들을 모욕하거나 경멸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나에게 틀린 것을 쉽게 모든이들에게도 틀렸다라고 여긴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하인을 판단할 수 없다. 이러한 권한은 오직 모든 종들의 주인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은 오직 하나님 이시다. 약한 자들 뿐 아니라 강한자도 주님께서 그들을 세우실 수 있기 때문에 설 수 있다.
- Paul identified two classes of believers in Rome: the “strong,” whose faith allowed them to eat whatever they wanted, and the “weak” (the overscrupulous), who ate nothing but vegetables. The tendency of those p 252 who eat whatever they want is to look down on those who for reasons of conscience are unable to exercise the same freedom.95Freedom in such matters tends to create an attitude of superiority. It is tempting to hold up for ridicule those whose lifestyle is more restricted than one’s own. In the broad spectrum of Christianity those to the right are often caricatured as hopelessly fundamental. The problem is that one person’s “overly scrupulous neighbor” is another person’s “libertarian.” It all depends upon where you happen to stand along the spectrum. The Christian is not to despise or treat with contempt those who are still working throug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ir new faith in Christ and the psychological and emotional pressures of a previous orientation.
- On the other hand, the person who does not eat everything must not sit in judgment upon the one who does (cf. Matt 7:1). A natural consequence of the more restricted perspective is to condemn those who are enjoying greater freedom.96What is wrong for me translates easily into what is wrong for everyone. But the fact that God has received them ought to temper one’s tendency to criticize. Since God has found room for them in the fellowship, any attempt on our part to exclude them will fail to meet with God’s approval. It is not up to us to judge the servant of another (cf. Jas 4:12). That prerogative belongs exclusively to that person’s own master. And that master is God. The strong as well as the weak will stand because the Lord is able to make them stand.
- 95ἐξουθενέω is a strong word meaning “to despise, disdain” (BAGD, 277). In a passage like Luke 23:11 it means “to treat with contempt.”
- 96Denney says the sharpness of the rebuke in v. 4 shows that Paul with all his love and consideration for the weak was nevertheless “alive to the tyranny of the weak.… It is easy to lapse from scrupulousness about one’s own conduct into Pharisaism about that of others” (“Romans,” 701).
-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25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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