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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 who are strong thave an obligation to bear with the failings of the weak, and not to please ourselves. uLet each of us please his neighbor for his good, to build him up. For vChrist did not please himself, but as it is written, w“The reproaches of those who reproached you fell on me.” For xwhatever was written in former days was written for our yinstruction, that through endurance and through zthe encouragement of the Scriptures we might have hope. May the God of endurance and encouragement grant you ato live in such harmony with one another, in accord with Christ Jesus, that together you may with one voice glorify b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Therefore welcome one another as Christ has welcomed you, for the glory of God. 
s[Gal. 6:1]
t1 Thess. 5:14; See ch. 14:1
u1 Cor. 10:33; [1 Cor. 9:19, 22; 10:24; Phil. 2:4]
vPhil. 2:5, 8; [John 5:30; 6:38]
wCited from Ps. 69:9
xch. 4:23
y2 Tim. 3:16
zPs. 119:50
aSee ch. 12:16
b2 Cor. 1:3; Eph. 1:3; 1 Pet. 1:3; [John 20:17; Eph. 1:17; Rev. 1:6]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롬 15:1–7.


1절) 믿음이 강한 우리들은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감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무엇이든 먹을 자유가 있고, 모든 날을 같게 여기며 포도주를 마실 자유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 Those who are convinced that their faith gives them liberty to eat anything (14:2), treat every day alike (14:5), and drink wine (14:21). Even though he is a Jewish Christian, Paul aligns himself with the “strong” (14:14).
  •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319.

본문은 앞선 14장의 문제를 이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14:2에서 음식의 문제를 다룬다.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는 새 언약의 내용을 인정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있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그래서 음식을 먹거나 날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 부담을 가지고 있었고 반대로 믿음이 강한 유대인들을 이러한 규정을 강제적으로 요구하며 믿음이 약한 이들을 힘들게 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도권은 물론 강한 자들에게 있다. 
(갈 6:2, 개정)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As in 14:2 the issue is the strength of one’s faith to accept the new-covenant reality in which all foods are clean and there is no longer an obligation to observe the Jewish holy days (14:2, 5, 14). But many weakJewish Christians are unable to grasp this truth, and this has caused innumerable problems in the Roman church, not only in the deficient faith of this group but also in the overreaction of many of the strongGentile believers. So Paul must once again counsel the strong to curtail their reactions, telling them to bear with the failings of the weak,using language reminiscent of Galatians 6:2, “carry each other’s burdens, and in this way you will fulfill the law of Christ.” In fact, this is a Christian “obligation” (niv, ought to) meaning God requires them to do this. The failingsare most likely the weak faith that forces them to obey the food laws and observe the holy days.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74–375.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약한 자들의 약점을 지적하거나 비방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 그들의 약점을 직접 담당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2절) 바울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하고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삶으로 초청하고 있다. 
  • Instead of pleasing ourselves, Paul adds, each of usshould live to please his neighbor.Certainly Paul was including both the weak and the strong (the weak were judging, and the strong were showing contempt; cf. 14:10), but primarily he is addressing the strong, who had the greater obligation (v. 1). This returns their attention to the section on loving your neighbor (13:8–10) and redefines love as a desire to please. They were to accept the weak as they were and to avoid looking down on them; to understand where they were coming from and try to bring them spiritual pleasure (as in Rom 12:1, 2, the “pleasing” will of God). Paul defines this pleasure in two ways—their goodand their “edification” (14:19). This means to seek what is best for them spiritually (again 12:2), to make certain we do not bring them the type of spiritual harm that can destroy them (14:15). The goal is to help them grow in the Lord, to build them upin Christ. “Mutual edification” was also the goal in 14:19, referring to strengthening fellow believers in the Lord. So the strong were to understand the present spiritual state of the weak and help them to grow in the Lord from that position rather than to castigate them for their deficiencies and try to force them to adopt the “superior” stance.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75–376.

3절) 바울은 예수님의 예를 들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다. 마 4장에서 예수님의 시험당하시는 사건의 핵심이 이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명에 따라서 선택하시고 행동하셨다. 사단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행동할 것을 촉구했으나 실패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시 69:9을 인용하고 있다. 
(시 69:6, 개정)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본문에서 주는 하나님을, 나는 예수님을 지칭한다. 본문은 죄 많은 인류가 하나님께 쌓아 올린 모든 비방을 이제 그리스도께서 감당시켰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의 시편은 의로운 이의 시험에 초점을 맞춘 애가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 적용되었고 시편중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중의 하나가 되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이 자기 자신을 주신 가장 극적인 희생적인 행동으로 여겼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고난을 기꺼이 당하셨다. 따라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특히 강한 자들) 또한 이러한 본을 따를 것을 요청하고 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모욕을 견디셨다면 강한 이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의 자유의 일부를 포기할 수 없단 말입니까? 게다가 시 69편에서 그 비난은 적들 뿐만 아니라 친구들로부터 왔다. 그러므로 약한 자들의 심판 또한 강한 자들에게 평정을 가지고 감당해야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슈레이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큰 영광을 위해서 이러한 모욕과 죽음을 기꺼이 감당하셨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강한 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그분의 백성 가운데서 높임을 받으시기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제한 받는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 Paul turns to the example of Christ (v. 3) to anchor his argument. Christ did not please himself,that is, live his life to fit what met his own desires. This in essence was the heart of the temptation narratives (Mt 4:1–11 = Lk 4:1–13), where Satan tempted Christ to seek his own glory rather than what God wanted. It is somewhat surprising that Paul quotes Psalm 69:9 (lxx 68:10), for we would expect a statement of Jesus’ sacrificial lifestyle, especially his death for us. But for Paul the entire Old Testament pointed forward to Jesus, so to place these words on Jesus’ lips was completely valid: The insults of those who insult you have fallen on me.In this statement, yourefers to God and meto Jesus. This means that all the contempt that sinful humanity has heaped upon God has now been borne by Christ. The psalm itself was a lament psalm focusing on the trials of the righteous sufferer. It was applied to Christ and became one of the most often quoted of the psalms (Mk 15:35–36 and parallels; Jn 2:17, 15:25; Acts 1:20; Rom 11:9). Most likely these insults were especially borne by Jesus on the cross, and Paul considers this the supreme act of self-sacrificial giving (Rom 5:8, where Jesus’ death “demonstrates [God’s] love for us”). The Messiah willingly bore insult, and the Roman Christians (especially the strong) should consider this model and imitate it. If Christ endured such insults for them, could not the strong endure the loss of some of their freedoms for Christ? Moreover, in Psalm 69 the reproach came from friends as well as enemies, and there may be a hint here as well that the judgment of the weak against them should also be borne with equanimity by the strong. As Schreiner says (1998:748), Jesus was willing to suffer such indignity and death for the sake of the greater glory of God, and in the same way the strong should be willing to suffer the loss of their freedom so that God’s name will be honored among his people.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76–377.

4절) 전에 기록된 것들, 구약의 내용은 우리의 교훈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인내와 성경의 위로를 통해서 우리로 소망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구약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고 또한 폐지되었다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교훈하기 위한 경전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구약이 그리스도를 지시했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며 이 원칙들은 여전히 핵심적이다. 딤후 3:16에서 교훈은 영감받은 성서의 4가지 목적중의 첫번째이다. 따라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은 그 메시지를 주의깊게 들어야만 한다. 이 교훈의 목적은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이 소망에 관한 내용이 본문의 논점에서 벗어난듯이 보이지만 참으로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넓은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이 소망은 이미 이전의 여러 본문을 통해서 강조되었다. 교회 내외의 압력속에서 그들은 더욱 복음의 소망이 필요하다. 
그 소망의 기초는 3절에서 지적한 대로 첫번째 바로 그리스도의 사역이고 두번째는 그분에 대한 성경의 증거이다. 그 소망은 먼저 인내를 통해서 증거된다. 이는 삶의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견뎌내는 것으로 앞서 롬 5:3-4에서 본 바 있다.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어 낸다. 환난중의 인내는 소망으로 나아가는 경로이다. 소망을 가지게하는 두번째 수단은 바로 성경의 위로이다. 본문의 위로 또한 환난 가운데 성경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 로마 교회를 생각하면서 로마교회가 이러한 것을 겪고 있기에 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성경 안에서 인내와 위로를 발견했다. 이처럼 소망은 교회가 서로 다른 의견들로 나뉘어질때 위협을 받는다. 강한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들의 다름을 넘어서서 약한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됨을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성경을 함께 가졌고 이제 이것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 
  • Paul then swerves from his argument briefly to explain his use of the Old Testament text (v. 4). He wants his readers to understand that everything that was written in the past was written to teach us.While the Old Testament had been fulfilled by Jesus (Mt 5:17–20) and had been abolished as a salvific force (Eph 2:15), it still had a canonical function for the instruction of God’s people. Since the Old Testament pointed to Christ, it still had a part in God’s plan, and its principles were still essential. In 2 Timothy 3:16 “teaching” is the first of four purposes of the inspired Scriptures. So the Roman believers should listen closely to its message. The basic purpose of this is so that … we might have hope. This seems out of place in a section on internal problems, but we must remember that all of this is taking place in the broader context of living the Christian life in a difficult world, and hopehas already been emphasized in 4:18; 5:2–5; 8:20, 24; and 12:12. In the midst of pressure from outside and now inside the church, they need the hope of the gospel more than ever. The basis of that hope is first in the work of Christ and second in the witness of the Scriptures to him, both stressed in verse 3. The means by which this is manifest in the church is first through endurance,*that is, steadfastly enduring the difficulties of life. This is seen in the chain of 5:3–4, where suffering produces endurance and that in turn leads to proven character and then hope. Endurance in the midst of suffering (note the connection with the suffering of Christ in v. 3) is the path to hope. The second means by which we find hope is the encouragement of the Scriptures,which here probably means more the “comfort” or “consolation” that the Scriptures bring us in the midst of suffering. Paul’s point is that the Roman church has experienced these things together, and they have found both endurance and comfort in Christ and the Scriptures together, not as separate groups in conflict. Hope is endangered when the church is fractured by dissension. The “strong” Gentile believers are “obligated” before God (v. 1) to go beyond their differences and find unity with the “weak” Jewish Christians. They share both Christ and the Word and now must share each other.
  • *15:4Most scholars understand through enduranceto be attendant circumstances (so Cranfield 1979; Käsemann 1980; Dunn 1988b; Moo 1996), meaning that we experience hope “along with” endurance, but it is better to see the two as parallel diaphrases telling the means throughwhich hope is secured (so Godet 1969; Lenski 1945; Schreiner 1998). This is more natural and makes good sense in the context.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77–378.

5-6절) 이제 바울은 하나됨의 주제를 위해서 기도를 올린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 받아서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시고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앞서 4절의 소망의 두가지 수단이었던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 강한 자나 약한 자나 모두 자기 자신들 안에서는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만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실 수 있다. 그렇게 하나되는 방법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하나되는 방법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것, 한 마음과 한입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때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든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 바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께서 이를 이루실 수 있다. 교회가 한마음과 한입으로, 한 뜻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다면 분열이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부패한 우리의 본성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롬 1:21) 우리들에게는 다양한 교단적 배경, 신앙 방식의 차이, 정치에 대한 견해의 차이, 삶의 수준이나 방식에 있어서의 차이가 상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같은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우리는 연합을 이루어 낼 수 있다. 
본문속에서 서로는 성도들의 하나됨을 묘사하기 위해서 로마서에서 10번이나 사용되었다. 
  • This theme of unity becomes the subject of the prayer-wish (a type of liturgical prayer; cf. 2 Thess 3:5; 2 Tim 1:16; Heb 13:20–21) of verses 5–6. It combines prayer to God (the major purpose) and exhortation to the church (so Murray 1968). The two means of hope in verse 4 are now linked to endurance and encouragement,or “comfort,” with God the source of both. This is emphasized because Paul wants the Roman Christians to focus on these needs rather than on their differences. Both sides must realize that they cannot endure or find comfort in their present problems without each other. So Paul prays that God will give you a spirit of unity among yourselves.Literally, Paul asks that they learn to “think the same thing” or find a harmony of mental outlook, the very thing he commanded of the Philippians in Philippians 2:2 and 5 and of the Corinthians in 2 Corinthians 13:11. It is of course certain that he is not asking for them to come to agreement on the issues, for that is his whole theme in 14:13–18 and 15:1–2, that they learn to live with their differences. So it must mean that they learn to focus on the major issues of agreement and “agree to disagree” in the areas of conflict. They need to cultivate an attitude of thinking “with one another,” a phrase used ten times in Romans to describe the united fellowship of the saints (1:12; 12:5, 10, 16; 13:8; 14:13; 15:5, 7, 14; 16:16). The basis of this unity is that both sides follow Christ Jesusand center on the salvation he has wrought with his atoning sacrifice.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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