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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하나님의 해결책과 나의 응답

 

우리는 지난 시간 세상이 깨진 이유와 죄의 본질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죄로 가득찬 세상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 심리적, 정서적, 육체적인 어려움, 사회적인 불의와 부정의의 문제로 인한 고통을 겪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문제로부터 인류와 사회 공동체의 문제 속에서 살아가며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깨어진 이 세상속에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해결책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겟습니다. 

 

1. 하나님의 해결책

앞서 말한대로 우리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은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존재의 중심이신데 그 분을 그 자리에서 몰아내고 내가 그 자리에 앉아서 주인되려고 하는 자기 중심성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개인과 사회와 인류전체가 심각한 문제 속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스스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담당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성육신 하심으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이 겪을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이 하신 일 첫번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주심.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신이시므로 인간과 다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한계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우리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우리와 소통하셨습니다. 바로 성경의 복음서는 그 예수님의 이야기로 충만합니다. 그분이 오셔서 인간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 거니시고, 우리의 생사고락을 경험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남녀노소, 온갖 병자들, 평범한 농부와 어부들, 사회의 저명인사와 부자와 거지, 창녀와 매국노,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셔서 모든 이들은 인격적으로 대하셨습니다. 깊은 연민과 사랑으로, 해학과 눈물로, 촌철살인의 깨우침과 무서운 경책으로 이들을 대하셨습니다. 

이 모든 대화와 가르침, 이적을 행한 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2) 예수님이 하신 일 두번째,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심

자신의 인격과 삶, 사역과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드러내신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온 궁극적인 목적은 세상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깨진 세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회복은 예수님이 예고한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놀랍게도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기록한 복음서의 기록중에 30-40%가 그분의 생애 마지막 일주일에 집중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고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예고하셨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가 반복해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한 것은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가장 중요한 미션이 바로 그분의 죽으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배반학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혀서 주인 행세하는 우리의 죄에 대한 모든 대가를 예수님 자신이 대신 지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셔야 했을까요?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실컷 나 중심으로 살다가 갑자기 ‘아 하나님 이제 하나님이 다시 내 주인이 되어주세요’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심각한 죄를 지었는데 ‘아 그것 없던 걸로 해주세요’라고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성품중에 정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정의의 입장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덮어놓고 용서를 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반드시 그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그 죄의 대가를 치를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대신 그 죄의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살려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2. 인격적 반응과 그에 따르는 축복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만으로 나와 인간사회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을 닮은 인격적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적인 선택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당신의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우리의 인격적인 반응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이야기를 복음, 기쁜 소식(gospel, good news), 좋은 소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성경을 통해서, 교회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나에게 유효해지기 위해서는 이것을 나의 이야기로 인격적으로 반응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생명을 바쳐서 너희를 사랑했다. 내 사랑을 받아주겠니?’라고 물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초대는 단지 우리를 사랑해서 초대하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잘못에 대한 정의로운 대가를 자신이 지불하셨으니, 이제는 우리에게서 정의로운 분노를 거두시고, 우리에게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이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더 이상 너희 잘못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 내가 다 책임졌으니, 너희는 이제 자유롭게 나에게 반응해라. 내 사랑을 받아들여 나의 선한 다스림 아래서 살아가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 첫번째, 무조건적인 사랑

거대한 우주 속의 우리, 빅뱅 이론, 무한한 우주 속에서 우리 인간을 택하신 하나님

 

태양 앞에서 모든 빛이 상대화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게 되면 우리는 더이상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아도 됩니다. 절대적인 존재가 나를 사랑하시고 가치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나의 배경, 학력, 외모, 능력, 연봉, 직장, 건강 그 무엇으로도 평가받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가는 내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내면에 들어와서 그것을 누릴 수록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 두번째, 궁극적인 삶의 목적

우리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누리기 시작하면 당연히 우리 안에는 새로운 의욕과 동기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 아픈 세상에서, 이 깨진 세상에서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하다 죽을까? 무엇을 해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계획 속에 동참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온 세상 구원 계획에 우리가 동참하도록 초청하고 계십니다. 

 

3. 우리의 인격적인 반응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속에 함께 동참하는 여정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격적인 반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우리를 이 여정에 끌어들이지 않으십니다. 

1)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 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

- 죄, 자기 중심성을 인정하는 것

 

2) 죄인된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셔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모든 죄책을 대신 져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 회개는 방향 전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설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대신 책임을 지시고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3) 이제 하나님께 돌아서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서 살아가는 것,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가운데 내주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4.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반응

1) 기뻐합니다.(rejoice)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알기에, 그 놀라운 기쁜 소식을 인해서 기뻐합니다. 

 

2) 재헌신합니다.(recommit) 

우리들은 과거에 하나님을 정말 받아들이고 그분을 주인으로 여기고 따라가면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어떤 시점에, 어떤 계기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되어 세상의 성공을 좇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복음의 소식을 듣고 다시금 주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재헌신하는 것입니다. 

 

3) 영접합니다.(receive) 

영접이란 지금가지 나눈 모든 이야기를 내면에 온전히 심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원래 계획, 그리고 깨진 세상과 그 원인인 죄, 하나님이 주신 해결 방법에 진실로 동의해서 마음의 주인 자리에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거듭났다’, ‘중생했다’라고 표현삽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정말 자신이 하나님앞에서 왜 죄인인지 깨달아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을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새로운 삶의 살겠다고 무릎 꿇은 적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결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 일생일대의 아주 중요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4) 좀더 탐구합니다.(research)

하나님의 원래 계획과 깨진 세상, 하나님의 해결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하나님께 인생을 드리기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 있다고 아직도 고민이 좀더 필요한 것 같다고, 아직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실한 질문과 탐구는 귀한 일입니다. 억지로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탐구하고나서 믿겠다는 것은 믿지 않겠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믿지 않겠다는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평생 동안 읽고 공부해야 할 책입니다.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는 성경의 방대한 이야기를 축약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앞에서 결단하기 위해서 들어야 할 이야기는 모두 이미 들었습니다. 정말 결정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탐구를 택하지 말고 하나님의 초청에 진지하게 반응해야 할 것입니다. 

 

5) 거절입니다.(reject)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인격적인 선물이기 때문에 거부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강제로 줄 수 없습니다. 받는 쪽이 감사와 기쁨으로 반응해야 사랑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할 수는 있지만 그 거절의 책임은 당연히 내가 져야 합니다. 

 

5. 기독교의 기본진리

1) 하나님이 나와 세상을 만드셨고 나와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2)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주인의 자리에서 내몰아 버리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자기 옳은 대로 살아가 심각한 문제에 빠졌고, 이렇게 하나님을 거절하고 자신이 중심이 된 상태를 성경에서는 죄라고 말합니다.

3) 이 죄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이 누구인지 보여주시고 이 죄의 대가를 대신 지고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4)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진실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감히 하나님께 돌아설 수 있는데, 이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게 돌아선다는 것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것인데 이 이후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새로운 삶을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무조적적인 사랑과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복음을 다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Rejoice, recommit, receive, research, reject 5R중에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에 동참하시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들여 이 깨지고 상처받은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깊은 다스림과 보살핌 가운데 성장해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 나눔 질문

1. 당신의 과거와 현재 상태를 정직하게 돌아보십시오. 당신의 삶의 주인은 누구였으며, 어떠한 삶의 여정을 걸어왔습니까?

 

2. 당신은 다섯가지 반응(Rejoice, recommit, receive, research, reject)중 어떤 반응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 반응에 따르는 인격적 결단을 내리고, 인도자와 함께 나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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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진정한 행복의 두가지 조건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신이 있다, 신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신념이나 세계관, 전제에 관한 문제 라고 했습니다. 만약 신이 있다라고 전제하더라도 그 신이 소통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나뉘고, 소통하지 않는 신의 경우에는 인간이 스스로 그 신을 찾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먼저 소통하시고 급기야 자신이 인간이 되심으로 이땅에 오셔서 우리와 소통하셨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이 누구신지 알아야할 내용을 텍스트의 형식으로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모든 것의 근본이요 근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측면에서도 하나님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는 논리적 궁구로, 예술가는 감성적 언어로, 농부는 진솔한 이야기로 하나님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실존적인 추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1. 행복, 모든 인간의 소망

어제,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과 만나는 사람들과 어떤 표정으로 만나셨습니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같은 아파트나 주택의 엘리베이터나 계단에서 만나는 이들의 얼굴을 어떤 표정이던가요? 아니 여러분들은 그사람들에게 어떤 표정을 보여주셨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고 편안하기를 원하는데 우리 얼굴 표정은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모든 인간은 행복하기 원합니다. 만약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에 깊은 병이 든 사람일 것입니다.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마음은 깊은 좌정과 무기력이 가져 온,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저점의 마음일 것입니다. 사실 이러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인류의 소망이신 주님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행복을 논하며 행복을 추구해왔습니다.(수렵-농경-산업-4차산업)

 

행복을 얻기 위한 네 가지 추구(4 pursuits : 4P)

Pleasure, prestige, power, property

1) 쾌락(pleasure)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보고 입는 것들, 성적인 추구등을 통해서 쾌락, 즐거움을 누리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쾌락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 쾌락이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쾌락의 문제는 쾌락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강력한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먹고 마시는 쾌락, 쇼핑 중독, 성적인 쾌락은 적정선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점점더 강력한 자극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그 쾌락이 인간됨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또 자신만이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동시대에 살고 있는 이웃, 가까이에 있는 자기 가족의 즐거움까지 무시하거나 그들의 안전에 위협을 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신의 쾌락을 좇다가 다른 사람들을 파괴하게 되는 것입니다. 쾌락은 우리에게 재미와 편리함 등을 선사할 수는 있지만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습니다. 

 

2) 명예(prestige)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은 인기, 명예를 추구하지만 명예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혹 여러분들은 '나는 정치인도, 연예인도 아닌데 내가 무슨 명예를 추구하나?’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명예는 자기 이름값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던지 나라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필요한 존재야, 가치있는 존재야’라는 평가를 받을 때 행복합니다. 이런 평가를 받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 꼰대질, 갑질

그렇다면 우리가 명예를 얻으면 참된 행복에 이르게 될까요? 약간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사람들의 평가는 언제나 완전하지 않습니다. 늘 진심을 알아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최근 배구계 쌍둥이 자매의 몰락

 

3) 권력(power) 

세번째는 권력입니다. 우리들은 ‘나는 정치가가 아니라서 권력은 필요없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모두 권력을 추구합니다. 권력이란 다른 사람에게 조종되지 않는 정도의 힘, 내지는 다른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직장에 들어가면 대다수 조직의 맨 아래에서 시작하여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승진하기를 원합니다. 통제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임원이 되어서 시키는 일만 하지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일정 정도 힘, 권력으로 그 관계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더 많은 힘을 가지면 더 안전하게 느끼고 자신감도 더 생길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선생님이 학생에게, 사장이 직원에게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힘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을 세우고 섬길 수도 있지만 이것이 잘못 사용되면 사람을 조작하거나 조직을 망가뜨리고 나아가 본인도 망가지게 됩니다. 

- LH 상황

 

4) 재산(property) 

네번째는 재산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산이 많으면 앞선 세가지를 모두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돈만 있으면 쾌락도, 명예도, 권력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파트 평수가 얼마인가, 어느 지역에 사는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가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고, 이런 저런 휴가를 갔다 오면 다른 사람이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건강도 돈으로 살 수 있고, 미모도 돈으로 만들어 낼 수 있고, 교육도 돈으로 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초등학생들의 꿈이 건물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부자되세요’라고 덕담합니다. 그러나 돈이 사람들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참된 관계, 건강, 교육, 사랑, 참된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2005년 삼성 이재용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 씨가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자살을 했습니다. 지금도 이것이 타살이다라는 루머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재벌가 딸의 죽음앞에 누구도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뭐가 부족한게 있어서? 호상에 겨워서?’라고들 했습니다. 이미 본인 명의의 수천억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었기에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은 그렇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우리들도 이 4P(쾌락, 명예, 권력, 재산)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뼛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런 것들을 갖는다고 해서 궁극적인,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약간의 기쁨과 즐거움을 줄수는 있습니다. 재미, 편리함 같은 것을 얻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근원적인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근원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2. 행복의 조건

각자가 진정한 행복의 조건으로 여러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저는 오늘 두가지를 이야기할려고 합니다.

1) 무조건적인 사랑

사람은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해집니다. 엄마의 품안에 있는 아기를 보십시오. 연애를 하며 사랑에 빠진 사람을 보십시오. 그들은 왜 행복해 보일까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군가가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원히 뜨거울 것 같았던 이성간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시들해집니다. 

이 무조건적인 사랑에 가장 가까운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이런 사랑을 받는 아이는 행복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엄마도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더 크다고 이야기하지만 좀 다르게 생각해보면 거꾸로 아이의 무조건적인 사랑때문에 엄마가 아이를 그렇게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 있습니다. 완전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이 늘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진정으로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2) 삶의 의미, 삶의 목적

사람에게는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사랑만으로 행복해지지는 않습니다. 행복의 또 다른 축은 삶의 의미와 목적입니다. 우리는 삶의 목적을 찾으면 행복해집니다. ‘아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이렇게 살 때 내 삶이 의미있고 내 존재가 가치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 사람들은 행복해집니다. 

과거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 많은 사람이 독재에 항거하다가 죽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독재에 항거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렇게 자신의 몸을 바침으로 역사가 진보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 전태일, 이한열 / 미얀마의 민주화 항쟁

자신의 삶을 의미 있는 일에 바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과격한 종교나 국가주의에 세뇌되어 잘못된 삶의 목적에 자신의 생명을 바친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폭탄 테러에 자신을 바치면서, 수많은 이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몰아넣으면서 자신들은 자신의 종교에, 국가에 충성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목적을 따랐던 것입니다. 이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앞서 살펴본 4p가 바로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이런 쾌락, 명예, 권력, 재산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이처럼 바른 삶의 목적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잘못된 삶의 목적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시는 것

제가 오늘 이렇게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 이 두가지, 무조건적인 사랑과 삶의 의미, 목적을 주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쾌락, 명예, 권력, 재산 이런 것들을 가지면 행복해진다고 말하며 여러 종류의 모조품 행복과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장난감으로 우리를 기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삶의 의미를 주고 싶어 하신다고, 이미 주셨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두가지이고, 이것을 제대로 갖출 때 나머지 쾌락, 명예, 권력, 재산이 자기 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고 가치있게 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바로 제가 성경에서 만난 하나님입니다. 

 

* 나눔 질문

1. 행복을 얻기 위한 네 가지 추구 중 나에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2.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 ‘무조건적인 사랑’과 ‘삶의 목적’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합니까? 당신은 이 두가지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또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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