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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삶으로의 초대(김형국, 비아토르)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을 그것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다. 

드라마, 아이돌 그룹, 운동을 좋아하는 분들은 만나면 그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그 드라마를 함께 보자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함께 듣자고, PT나 축구를 같이 하자고 초대한다.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는 그런 책이다. 회심을 경험하여 생명가운데에 자라고 그 풍성한 삶을 누리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 풍성한 삶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초대한다. 초대해야 한다. 이 책은 그 풍성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어 그곳으로 오리를 초대한다. 

풍성한 삶으로 나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소통하시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며 그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속에서 하나님과 자신, 이웃과 세상과 어떤 관계를 원하시는지 하지만 인간의 죄로 인해서 이 깨어진 관계, 깨어진 세상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게 만든 죄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이며 이것을 받아들인 이들의 반응과 이후에 이 영적인 여정을 어떻게 해 가야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공동체(교회)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하나님나라의 풍성한 삶을 맛본 사람만이 그 풍성함을 알기에 그것을 자랑하고 그 풍성한 삶으로 초대할 수 있다. 

 

저자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성경의 기준으로 우리의 삶과 세상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적인 가르침이기도 하다. 누군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아래의 질문을 해보면 알 수 있다. 

1)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2) 나는 어디에 있는가? Where am I?

3) 무엇이 문제인가? What is the problem?

4)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What is the remedy?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중요한 가이드를 제공해준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세상가운데 살고 있으며 그 세상속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살아가야하는지를 설명해준다. 

 

물론 이것은 경주의 시작점(start line)에 우리를 서게 해주는 것이다. 경주로 우리를 초대하고 목표가 어디이며 그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경주가 시작된 이후에도 이것이 단거리 경주가 아니기에 지속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중간 중간 물과 음식물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경주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풍성한 삶으로의 경주에 초대한다. 

 

 

 

1강. 세 가지 문과 세 가지 장애물

영적 여정, 진지한 구도의 출발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여정, 인생의 의미, 하나님을 찾아 들어오는데는 세 가지 문이 존재한다. 

 

 

1. 세 가지 문

1) 생활 양식 : 모태 신앙, 입에 십자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 태어날 때부터 그냥 기독교인이 되어 문화적으로, 생활의 일부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

2) 경험, 체험, 위기 : 인생의 위기나 어떤 특별한 경험, 영적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함. 이들은 세상에서의 실패, 어려운 관계, 건강 악화등으로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거나 인생의 고통을 경험하고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또는 실존적인 경험이나 아주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게 된다. 

3) 탐구, 추구 : 어떤 생활 양식이나 체험도 하지 않았지만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구도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느 문을 통해서 들어왔던지간에 이 세가지 요소는 영적인 여정 가운데 모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태 신앙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스갯 소리로 신앙생활을 잘 못해서 ‘못해신앙'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문화적으로만 기독교인이지 지적으로 동의하지도 않고, 특별한 경험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초, 중, 고등학교 정도까지는 부모님을 봐서 교회에 출석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기독교가 이들에게 어떤 삶의 의미를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체험을 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봅시다. 특별한 치유의 경험이라든지 영적인 체험은 강력하지만 그것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강력한 자극이나 체험을 추구하다가 잘못된 가르침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좀더 진지하게 내가 믿는 내용을 지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과정을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구도자로서, 추구를 통해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에 체험이 더해지지 않고 삶의 양식이 바뀌지 않으면 머리만 커진 기독교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게 될 것입니다. 냉철한 머리는 가졌을지 모르지만 뜨거운 가슴이 없기에 냉랭한 신앙이 되어버릴 확률이 큽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진리는 통합적이라는 것입니다. 생활양식, 영적 체험, 탐구 등 어떤 문으로 들어왔든 상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모든 것이 선순환의 과정을 통해서 심화되어가며 균형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의 중요성

 

2. 장애물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여정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장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세가지 장애물을 소개합니다. 

 

1) 기독교인과 교회가 만들어 놓은 장애물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기독교인들의 모습, 위선적인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세상속에서의 모습이 일치 되지 않는 신앙인들

또한 기독교인이나 교회가 자신들이 어떤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진리를 알고 있다는 자세로 다른 종교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매우 무례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인터콥, BTJ, 대적기도-땅밟기)

말만 있지 실제 삶의 모습이 없는 한국 교회, 이 시대의 소망이 되어야 하는 교회가 이 시대의 짐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목욕물과 함께 아이를 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구정물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순결한 아기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구정물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 한국 사회안에서 기독교가, 교회가 제대로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통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며 또한 이 구정물 안에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이 구정물은 진리 자체에서 온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오용하고 악용한 타락한 사람들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정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아주 건강하고 아름다운 진리가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건재해 있습니다. 이 진리대로 살아내기 위해서 애쓰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2) 지적 장애물

인간의 지성사는 게속 변해갑니다. 문화 역시 지속적으로 새로운 옷을 갈아 입으며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토에서 사람들은 진리를 이해하려고 시대마다 다양한 시도들을 해 왔고, 이러한 수고가 인간의 철학사, 문명사, 종교사, 과학사에 축적되어 나타납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이성이 지배하는 합리주의적 세계관이 주도하는 시대에는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의 시대에서는 절대권위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일한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라고 외치는 포스트모던 시대가운데 기독교는 유일하고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주지 않고 ‘무조건 믿어라’라고 강요하는 것은 지적 폭력이자 지적 태만입니다. 

- 창조와 진화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걸만한 가치있는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 질문에 성실하게, 진실되게 답변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그냥 믿어지는 내용이 누군가에게는 믿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실존적 장애물

우리의 인생은 겉으로는 다 멀쩡해 보이지만 내면에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나 혹은 불가항력적인 고통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나의 인생에 이런 고통이 있을 수 있는가? 선하신 하나님이 왜 이런 고통과 악을 허용하시는가? 하나님은 사랑이라면서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실존적 고통의 경험은 우리들 모두에게 존재합니다.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만 이 고통을 통해서 수많은 인간들의 진보가 가능했습니다. 철학과 예술, 종교적 추구가 이 고통때문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고통은 우리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성숙하게도 만들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실존적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과 인생과 세상을 정직하게 볼 수 있게 합니다. 실존적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가운데 나아가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지만 디딤돌, 도약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영적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서 문을 통과해서 여러 장애물을 거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솔직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솔직한 질문을 하면 솔직한 답변이 주어진다.’ 우리는 성경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세, 하나님에 대해서 언제든지 솔직하고 자유롭게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서 솔직한 답을 발견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나눔 질문

1) 당신은 ‘세 가지 문’중에 어느 문을 통해 들어왔습니까? 지금은 어떤 과정에 있습니까? 

2) 당신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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