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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dding at Cana
On hthe third day there was a wedding at iCana in Galilee, and the mother of Jesus was there. Jesus also was invited to the wedding with jhis disciples. When the wine ran out, the mother of Jesus said to him, “They have no wine.” And Jesus said to her, k“Woman, lwhat does this have to do with me? mMy hour has not yet come.” His mother said to the servants, “Do whatever he tells you.”
Now there were six stone water jars there nfor the Jewish rites of purification, each holding twenty or thirty ogallons.1 Jesus said to the servants, “Fill the jars with water.” And they filled them up to the brim. And he said to them, “Now draw some out and take it to the master of the feast.” So they took it. When the master of the feast tasted pthe water now become wine, and did not know where it came from (though the servants who had drawn the water knew), the master of the feast called the bridegroom 10 and said to him, “Everyone serves the good wine first, and when people have drunk freely, then the poor wine. But you have kept the good wine until now.” 11 This, the first of his signs, Jesus did at Cana in Galilee, and manifested qhis glory. And rhis disciples believed in him.
12 After this he went down to Capernaum, with his mother and shis brothers2 and his disciples, and they stayed there for a few days.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2:1–12.

1절) 사흘 되던 날, 이날은 주님께서 나다나엘을 만나시고 이틀 지났을때이다. (1:29, 35, 43 참조) / 갈릴리 가나는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13km 떨어진 지역이다. 

3절)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짐, 이는 영적인 황무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구약적인 배경에서 포도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에 대한 상징이다. 이시대도 포도주가 떨어진, 기쁨이 상실된 시대이다. 주님이 바로 이 시대에 기쁨을 회복시키는 기적을 자신의 첫번째 기적으로 행하고 계신 것이다. 
-  The wedding party’s running out of wine may be seen as symbolizing the spiritual barrenness of first-century Judaism, especially against an OT background that viewed wine (but never drunkenness) as a sign of joy and God’s blessing (Ps. 104:15; Prov. 3:10; cf. Matt. 26:29).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22.

4절)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여기서 내 때는 언제를 의미하는가? 요한에게 있어서 그 때는 주님의 십자가의 시간이다.  (see 7:30; 8:20; 12:23, 27; 13:1; 17:1; also note on 7:30). 결국 사람들은 주님의 때에 대해서, 그리고 주님의 사역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이 메시야로서 행하실고자 하는 사역과 사람들이 메시야로서 그분에게 기대하는 사역의 때와 모습이 달랐던 것이다. /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볼때 요한은 주님의 공적인 사역보다 그분의 개인적인 사역을 더욱 강조하여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의 삶은 긍극적으로 아버지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 목적의 중심에 그분의 죽음과 부활, 십자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를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계신 것이다. 

5절) 마리아의 반응, 하인들에게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명함, 지금 이 시점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주님의 때와 그분의 십자가의 사역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그녀는 이 문제를 주님께 토스했고 자신은 완전히 무대에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복음전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해야할 일이 바로 이러한 일들이지 않을까? 어떤 이들은 마리아와 같은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고 어떤 이들은 하인들과 같은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다. 알지 못하지만 완전히 맡기고 내려올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6절) 유대인의 결례 : 정결 예법, 두세통 드는 돌 할항아리(20-30 갤런, 1갤런-3.8리터)

11절)  주님이 행하신 처음 표적,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주님,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제자들이 믿음
- 관원의 아들을 살려주시는 주님(4:47, 49-50) / 38년된 병자를 고치심(5:5) / 오병이어(6:13) / 날때부터 소경된 이를 고치심(9:1-2)/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11:17) / 이러한 기적은 전능한 창조주와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으로서의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준다. 또한 그분의 백성들의 필요를 풍성하게 공급하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 
In each of the signs that John includes, the emphasis is on the way in which the “sign” reveals Jesus’ messianic character (cf. 12:37–40; 20:30–31) and on the exceptional and striking nature of the feat accomplished by Jesus—such as the large quantity and high quality of wine (2:6, 10), the fact that the official’s son is healed a long distance away by the sheer power of Jesus’ word (4:47, 49–50), the invalid’s recovery from a 38-year-long ordeal (5:5), the large quantity of food produced by Jesus (6:13), the man’s recovery from lifelong blindness (9:1–2), and the raising of Lazarus after four days in the tomb (11:17, 39). and manifested his glory. This miracle showed the glory of Jesus as the sovereign Creator and ruler of the material universe and also as the merciful God who provides abundantly for his people’s needs (cf. 1:14).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023.
- sign과 miracle의 차이. 
- 이 표적을 통해서 영광을 나타내시는 주님, 이로 주님을 믿는 제자들. 
But glory in John is derived from the Old Testament idea of God’s kābōd, which implies the mighty power of God evidenced in epiphanies or perceived manifestations of that power (e.g., Exod 16:6–10; 24:15–17; 33:18–23; 40:34). In John the mighty God is to be perceived as acting in Jesus. The signs therefore point the reader to the reality that the God of the Old Testament has acted anew in Christ Jesus.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157–158.

갈릴리 가나의 기적(포도주)과 이후 6장의 오병이어(떡)의 기적과 연관되어 생각하면 주님의 성만찬을 예표하는 표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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