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There was a man isent from God, whose name was jJohn. 7He came as a kwitness, to bear witness about the light, lthat all might believe through him. mHe was not the light, but came to bear witness about the light.
nThe true light, which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 10 He was in the world, and the world was made through him, yet othe world did not know him. 11 He came to phis own,2 and qhis own people3 rdid not receive him.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01), 요 1:6–11.

6-8절) 요한은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후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그를 메시야로 착각하기도 했지만 그는 분명히 자신의 소명에 대한 자각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믿게 될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내가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어떤 존재인지, 나에게 주어진 소명과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분의 명령에 불순종하는것도 문제이지만 열심이 앞서서 하나님보다 앞서갈려는 것도 큰 문제이다.
- Mandeanism : a Gnostic religion originating the 2nd and 3rd centuries that believes John the Baptist was the Messiah and that incorporates Jewish and Christian elements into a framework of dualistic beliefs
- 말씀으로 목양하는 리더들은 자신이 빛이 아니며 빛을 증거하는 자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할 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그 빛이 되고자하는 유혹에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많은 이단들이 처음부터 자신이 메시야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또한 여러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갈채를 받으면서 미혹되어 넘어간 것이다. 

9절) 신약의 가장 중요한 주제중의 하나가 바로 진리이다. true, truth

10절) 세상은 요한복음과 복음서에서 중요한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정돈된 우주로 인간이 살아가는 실제, 장소로서의 공간을 의미하지만 뿐만 아니라 인간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요한복음에서 세상은 사람을 제외한 지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분을 알지 못하는 세상 : 남녀가 알아간다는 것의 의미,  임신하여 자녀를 낳아가는 과정에서의 앎 /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알지 못하는 세상. 
Western Christians generally have lived with the concept of “knowing” as primarily related to the sphere of intellectual information (i.e., head knowledge). But they need to recognize that such a definition is a far cry from the Johannine meaning of “knowing.” Knowing is a relational idea in this Gospel. This may be illustrated from Gen 4:1, where it states (literally) that Adam “knew” his wife, and that kind of knowledge resulted in children.55 That knowledge obviously was not primarily intellectual! Accordingly, knowing the Logos in this Gospel is more than knowing facts about the Logos (see further comments on knowing and believing at v. 12). Here the point is that the world (i.e., people) has a dark relationship with its Creator and Redeemer.
55 See my comments in Great Themes from John (Buffalo: Baptist Life, 1965), 5–6, and “Thematic Preaching and the Signs of John,” Proclaim (1987): 7–8.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114.

그분을 알지 못할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분을 영접하지 않는 세상

12절) 앎(그노시스)와 믿음(피스티스)의 의미
그 이름을 믿는 다는 것의 의미 : 구약에서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 혹은 존재의 본성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아담이 이름을 짓는 직책을 받았을때 그는 그 존재에 대한 본성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그 존재에 대해 권위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의 변화, 큰 아빠라는 의미에서 열국의 아비라는 의미로 바뀐 것이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의 변화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아모스 6:10) 그래서 아도나이라고 불렀다. 
Yet like the ancients in the surrounding countries, Israel was tempted to use that name as a magical symbol of power to control the divine forces. Israelites also were worried that the name might carry bewitching power that would strike the user. So they actually ceased to use the name of God (YHWH, sometimes translated or wrongly transliterated “Jehovah”) because of such a fear (cf. Amos 6:10).68 Instead they carefully used the substitute name “Adonai” for God. But God knew the people’s ways. One of the Ten Commandments is a warning against taking the name of God in vain (Exod 20:7). Humans may have been given dominion over the created order (Gen 1:28–30), but they were never given authority over God. By their actions the people of Israel polluted and profaned the name of God (e.g., Jer 27:15; 29:21–23; Ezek 20:39; Amos 2:7). The misuse of God’s name raises the specter of judgment, but the proper recognition (believing) of God and his name brings the hope of life (cf. John 1:12).
68 Names of gods were frequently used in incantations or engraved on amulets and worn as magical protective symbols similar to the wearing of St. Christopher medals by some today or religious symbols that are attached to cars.
 Gerald L. Borchert, John 1–11, vol. 25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117–118.

13절)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방식 : 혈통, 육정, 사람의 뜻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영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믿는 믿음의 무게와 이당시 신자들이 믿는 믿음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분을 받아들이고 영접하기 위해서는 그 이름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인간적인 방식의 출산이나 관계로 가능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여야 한다. 거듭남이라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인간적인, 육신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참 빛으로 오신 주님, 그런데 세상은 그 주님을 알지도, 영접하지도 않았다. 오직 그 이름을 믿는 자들만이 그분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육신적인, 사람의 방법과 방식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