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But above all, my brothers, udo not swear, either by heaven or by earth or by any other oath, but let your “yes” be yes and your “no” be no, so that you may not fall under condemnation.
u Matt. 5:3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Jas 5:12.
12절) 야고보는 다시금 ‘내 형제들아’라고 부른 후에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 것을 말한다. 본문의 내용이 앞선 7-11절과 연결되는 것인지 야고보서 전체의 결론에 해당되는 것인지는(But above all이라는 표현은 전형적인 결론의 공식이다.)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혀의 죄와 그 결과 9절에서 말하는 원망을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도 맹세에 대해서 여러번 언급하셨다. 마 5:33-37과 마 23:16-22절을 보면 맹세하지 말 것을, 예 혹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그 말만으로도 충분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이스라엘은 맹세가 허용되었다. 그리고 맹세한 사람은 반드시 그 맹세를 지켜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고 서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맹세를 이행하지 않을때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것이 되기에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레 19:12은 거짓맹세 하지 말것을 명한다.
(레 19:12, 개정)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마 5:33-37, 개정)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 23:16-22, 개정)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자신이 말한 것을 강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에 대해서 야고보는 경계한다. 성경은 맹세 자체를 부정하거나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 맹세를 금지하고 경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시지만 인간은 자신이 말한 것을 이루어낼 능력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맹세할 당시 우리의 마음은 정말로 그러했지만 그것을 이루어낼 힘과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황이 바뀌면 너무나도 쉽게 자신이 말하고 맹세한 것은 변개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
The point at issue in this verse is the taking of an oath, that is, invoking the name of God in order to buttress the truthfulness of what one has said. Here James is fully in line with the teaching of the Old Testament that false swearing and the giving of oaths is forbidden. Leviticus 19:12, for instance, says, “Do not swear falsely by my name and so profane the name of your God. I am the Lord” (cf. also Jer. 5:2; Hos. 4:2; Mal. 3:5).
-
But the issue is not entirely without wrinkle. In Genesis 22:16 God swears by his own name (cf. Heb. 6:13–18). In the passage from Leviticus just cited, “false swearing” is prohibited, leaving “truthful swearing” an open question. In the Ten Commandments the taking of an oath is not strictly prohibited, but it is limited to those matters that one can accomplish (see Ex. 20:7). Here too the issue is to avoid invoking the name of God in an oath that is false. God, after all, is the one whose words always accomplish his purpose (Isa. 55:11). Human beings, on the other hand, utter words that “will not stand up” (8:10) and that “fall to the ground” (1 Sam. 3:19).
-
To invoke God’s name falsely, then, is to involve God in a falsehood. The problem is, of course, that sometimes human beings utter falsehoods knowingly, but at other times we are unable to accomplish what we intend. The prohibition recognizes this and serves to limit and to exclude these unintentional infelicities. Certainly the Old Testament reveals a developing problem with conscious falsehood (see Jer. 5:2; 7:9–10).
-
David P. Nystrom, Jame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301.
마태복음의 기록이 야고보의 진술보다 더욱 자세한 것을 볼 수 있다.
야고보가 맹세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설명하는 이유는 1) 입다와 같이 어리석은 맹세를 통해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2)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의 맹세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3) 모든 말과 진술에서 높은 진리의 수준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4) 우리가 의도한 바를 성취할 수 없을 경우라도 우연히 하나님께서 이 거짓에 개입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서이다.
-
Why does James offer this counsel? (1) to avoid the situation of Jephthah, who swore an oath that bound him to disastrous consequences (Judg. 11:30–39); (2) to ensure that Christians are not influenced by pagan oath-swearing formulae; (3) to maintain a high standard of truth in all speech; and (4) to avoid involving God in a falsehood if, by chance, what we intend we are unable to accomplish. The consequences for each of these is to fall under the judgment of condemnation, and this James wants us to avoid.
-
David P. Nystrom, Jame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303.
-
예수와 야고보가 정말 모든 맹세를 금했는지의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종교개혁 시기에 재세례파 전통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극단적으로 해석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법정에서나 그 어디에서도 맹세(서약)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것은 또한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신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수든 야고보든 공적인 맹세, 즉 정부 당국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맹세까지도 금한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두 사람에 의해 언급된 맹세는 일종의 자발적인(voluntary) 맹세로 보인다. 이러한 경우에도 모든 맹세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참된 진실(truthfulness)을 회피하고자 하는 맹세만을 금지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마태복음 23:16–22에서 예수가 다루는 특정한 맥락이나, 바울 자신이 그의 서신에서 맹세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롬 1:9; 고후 1:23; 11:11; 갈 1:20; 빌 1:8; 살전 2:5, 10)를 보면, 일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야고보가 마태복음 5장처럼 논쟁의 맥락이 아닌 경우에도 예수의 가르침을 다시 반복한 이유는 맹세의 금지가 단지 거짓 가르침과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바울의 ‘증인’ 공식도 실제로 맹세의 범주에 들어가는지의 여부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예수도 야고보도 모든 자발적인 맹세를 금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261–262.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맹세의 무분별한 사용은 도리어 자신의 맹세의 무게를 약화시킨다. 본문에서 맹세는 우리가 말한 것의 진실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는 이와 비슷하게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라든지 ‘엄창”같은 말로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에는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것이든, 더 중요한 것이 나타났을때 자신이 말한 바를 지키지 않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무엇을 통해서든지 맹세하지 말고 또한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성경묵상 > 야고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 5:13-20 믿음의 기도, 의인의 간구 (0) | 2020.04.24 |
---|---|
약 5:9-11 서로 원망하지 말고 인내하라. (0) | 2020.03.17 |
약 5:7-8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0) | 2020.03.16 |
약 5:1-6 들으라 부한 자들아 (0) | 2020.03.12 |
약 4:13-17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라 (0) | 2020.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