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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now, xyou rich, weep and howl for the ymiseries that are coming upon you. zYour riches have rotted and zyour garments are moth-eaten. Your gold and silver have corroded, and their corrosion will be evidence against you and will eat your flesh like fire. aYou have laid up treasure bin the last days. Behold, cthe wages of the laborers who mowed your fields, which you kept back by fraud, are crying out against you, and dthe cries of the harvesters have reached the ears of ethe Lord of hosts. fYou have lived on the earth in luxury and gin self-indulgence. You have fattened your hearts in ha day of slaughter. You have condemned and imurdered jthe righteous person. He does not resist you.

x Luke 6:24; [Prov. 11:28; Amos 6:1; 1 Tim. 6:9]

y Rom. 3:16

z Job 13:28; Isa. 50:9; Matt. 6:19, 20

z Job 13:28; Isa. 50:9; Matt. 6:19, 20

a Matt. 6:19; Luke 12:21; Rom. 2:5

b [ver. 8, 9]

c Job 24:10; See Lev. 19:13

d Deut. 24:15

e Rom. 9:29

f [Job 21:13; Luke 16:19; 2 Pet. 2:13]

g 1 Tim. 5:6

h Jer. 12:3

i ch. 4:2

j [Acts 3:1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약 5:1–6.

 

앞선 본문에서 상인(사업가)들을 향해서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것을 이야기하고 나서 당시 갈릴리와 로마 제국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부유한 지주들을 향해서 경고하고 있다. 야고보는 부자들의 배금주의, 잘못된 방식의 부의 축적, 노동자들의 삯을 가로채고 의로운 자들을 저주하고 죽음에 내몬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경고한다. 

앞선 4:13-17절의 내용과 5:1-6의 내용은 모두 부에 대한 세상적인 자랑과 이기심에 대해서 질책한다. 반면에 4장의 내용은 믿는 자들이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데 반하여 5장의 내용은 악독한 부자들을 정죄한다. 

4:13-17절이 교회와 세상을 향한 권면 이라면 5:7-11은 분명 교회를 향한 것이고 5:1-6은 비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것이다. 

 

악한 부자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재물의 이기적인 축적(2-3절), 일꾼들의 것에 대한 착취(4절), 방종한 삶의 양식(5절), 의인에 대한 억압(6절) 등이다. 그렇다면 왜 야고보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비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 왜 야고보는 교회를 위해 기록한 서신에 비-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러한 메시지를 선포하는가? 이에 대해 칼빈이 적절하게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주요한 목적을 설명한다. “야고보는…성도들이 부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알고 그들의 재물을 시기하지 말고,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겪는 모든 부당함을 갚아주실 것을 알고 평온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그것을 견디어내도록 그들을 권면한다.”6

  • 6 Calvin, 342. 더 나아가 Wessel은 그 선포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자주 참여하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는 예언적 시도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ISBE, 2, 965).

  •  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237–238.

 

1절) 부유한 자들을 향해서는 심판때에 울고 통곡하게 될 것이다. 이는 주의 날이 이를 때 그들의 기소에 대한 선지자적 표현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고생은 

마지막 심판때에 임할 괴로움과 형벌을 의미한다. 

weep and howl. Prophetic language for those under indictment by God when the day of the Lord arrives (e.g., Isa. 13:6; 15:3; Hos. 7:14; Amos 8:3). miseries that are coming. Referring to final judgment, rather than the miseries of this lif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98.

 

부자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부유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부자는 불의한 자에 대한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자가 정죄를 받는 것은 부의 남용때문이다. 말하자면 여기서 부자는 불의한 부자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부가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에 있어서 강력한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마 19:23)라고 지적하셨다. 

 

  • 가난과 부

“가난과 경건에 관한 구약성경과 후기 유대교 전승의 여러 요소 가운데 야고보서에서 다루지 않는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71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주제에 대한 야고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전승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가난과 경건에 대한 전승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요소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가난하고, 학대받고, 버림받은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다(시 68:5). 그 분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신다(신 10:18).

둘째,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을 따라 무력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신명기 10장은 계속해서 “(그러므로)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말씀한다. 이런 점에서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을 책망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다(암 2:6–7).

셋째, 이는 특히 시편에서 두드러지는 것으로 ‘가난한 사람’(아니, ‘ānî)을 경건하고, 의로운 자와 직접 연결시킨다는 것이다(특히 시 10;37:8–17; 72:2,4; 사 29:19). 여기에서는 사회적인 개념과 종교적인 개념이 서로 혼합되어 있어서 많은 혼란의 원인을 제공한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억압이 종교적 경건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가난한 자’는 억압을 당할 때 하나님께 구원해 주시기를 탄원한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시 40:17). 이러한 시편이 기록된 상황에서도 분명한 것은 의로운 자들 중에 많은 사람이 부자들에게 박해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약 전승의 네 번째 요소는 바로 이 점과 연관되는데, 부자와 권력자들이 악한 자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72 이 특징은 구약성경보다는 후기 유대교 문헌에서 더 두드러진다.

예수의 가르침은 이러한 구약-유대적 배경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야고보는 구약 성경뿐만 아니라, 이 예수의 가르침에도 의존하고 있다. 그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2:5)고 상기시킨다. 이 구절에는 우리 주님의 팔복 중에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라는 말씀이 반영되어 있다. 구약성경의 주제를 직접 차용하여 야고보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을 참된 경건의 기본 요소로 제시한다(1:27). 선지자들의 책망과 매우 유사한 본문에서 야고보는 부자에게 심판을 선언한다(5:1–6). 그래서 시편에 나오는 ‘가난한 자’와 마찬가지로 야고보의 독자들도 인내와 오래참음으로 주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5:7–11).

그러나 야고보도 선지자들도 부자들을 단지 그들이 부유하다는 이유 때문에 정죄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야고보는 ‘부자’들이 심판 받아 마땅한 특정한 죄를 열거한다. 여기에는 재물의 이기적 축적(5:2–3), 방종한 사치(5:5), 노동력 착취(5:4), 의인의 박해(5:6) 등의 죄악이 속한다. 야고보가 부자 자체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점은 또한 1:10–11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거기에서 ‘부자’는 그리스도인 ‘형제’(본서 해당 구절 본문 주석 참조)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의 독자들의 대다수가 가난하였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부자와 권력자에게 억압을 받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고보는 우리가 앞에서 언급 했던 성경의 풍부한 전승을 가난과 부라는 주제의 표상과 내용의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71 Mussner, 80.

72 E. Bammel, TDNT, 6, 888–902; Davids, 41–44를 보라.

 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75–77.

 

2-3절) 부한 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눅 12:33, 개정)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으로 이는 썩거나 좀먹거나 도둑질 당하지 않지만 자신만을 위하여 부를 쌓으면 필연적으로 썩고 좀먹고 녹슬고 빼앗기게 되며 궁극적으로 그것이 말세에 우리를 심판하는 불의 불쏘시개가 된다. 

The selfishness of the rich is all the worse since the Lord has already come to inaugurate the last days (Acts 2:17; 2 Tim 3:1; Heb 1:2; 2 Pet 3:3; Jude 18; see “The Consummation,” p. 2695). The selfishness of the rich is all the worse since the Lord has already come to inaugurate the last days (Acts 2:17; 2 Tim 3:1; Heb 1:2; 2 Pet 3:3; Jude 18; see “The Consummation,” p. 2695).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532.

 

야고보는 부한 자들이 취하는 세가지 종류의 재화를 언급한다. 이는 재물(부, 주로 곡식)과 의복, 금과 은을 말하는데 고대 세계에 가장 흔한 형태의 재화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모든 부가 썩고 좀먹고 녹슬게 될 것을 말하는데 이는 부가 영원할 것처럼 축적하고 이를 추구하지만 결국 없어질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땅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부는 현재에 우리의 삶에 영적 유익을 가져다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판때에 불리한 증거가 되어 유죄판결의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심판의 불의 도구가 되게 될 것이다. 

  • 부자들에 대한 첫 번째 고발은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모았던 세상 재물의 무가치성과 연관된다. 야고보는 세 종류의 재물을 열거한다. 재물(플루토스, ploutos)은 때때로 곡식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그 다음에 나오는 옷 및 금과 은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흔한 부의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그러나 재물은 모든 부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일 가능성이 더 크다. 즉 썩다(세포, sēpō)는 말은 곡식의 부패가 아니라, 모든 인간 수고의 쇠퇴와 헛됨을 의미할 수 있다(집회서 14:19). 옷이 좀먹었다는 말은 ‘땅의 보물’이 좀 먹어 망가진다는 예수의 경고를 생각나게 한다(마 6:20). 금과 은같이 귀중한 금속은 실제로는 녹슬지 않기 때문에 금과 은이 녹슬었다는 표현은 야고보의 부유하지 않은 경제적 배경을 지적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녹슬다(이오스, ios)라는 말은 이미 금과 은에 적용된 적이 있으므로(예레미야의 서신 10), 그 이미지는 가장 귀중한 금속이라도 곧 사라질 것임을 지칭하는 전통적인 표현 방식으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집회서 29:10 참조). ‘썩었고, 좀먹었고, 녹슬었다’라는 이 세 가지 표현은 사실상 썩어 없어질 물질을 의지하는 어리석음에 관한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다.

  •  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239–240.

 

  • 이러한 심판의 근거는 단순히 부자들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기보다는 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데 몰두하였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마 6:19–21 참조). 다른 한편, 성경은 부자들이 부만 축적할 뿐, 가난한 자를 돕는 데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정죄한다. 집회서 29:9–11에는 “계명대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궁핍한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라. 형제나 친구를 위해서라면 손해를 봐도 좋다. 돈을 돌 밑에 두어 썩혀버리는 것보다 형제나 친구를 위하여 손해 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지극히 높으신 분의 명령대로 네 재물을 써라. 그것이 황금보다도 너에게 더 유익하리라”라고 기록한다.

  •  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241.

 

부자들은 이땅에서 부를 쌓지만 결국 부를 나누지 않고 쌓는 이 행위는 마지막 심판날에 자신들이 당할 고생을 쌓는 것이 되는 것이다. 

 

4절) 부한 자들이 말세에 잘못된 방식으로 재물을 쌓았다. 그들은 밭에서 추수한 품꾼의 품삯을 주지 않았고 이로 인해서 하루 벌어 살아가야하는 이들의 통곡이 주님의 귀에 들리게 된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를 넘기지 말것을 명령한다. 부한 자들에게는 큰 것이 아니지만 일용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하루 품삯은 자신의 가족들의 생사가 달린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주지 않고 때로는 미룸으로 인해서 가난한 자들의 울음 소리가 하늘에 닿고 주님의 귀에 들리게 되는 것이다. 

 

  • 야고보가 부자들에 대해 던지는 두 번째 고발은 보다 더 구체적인데, 그들이 일꾼들의 품삯을 갈취했다는 것이다.8 야고보가 묘사하고 있는 상황은 실제 삶에 상당히 가깝다. 1세기 팔레스타인-특히 주후 70년 이전-은 소규모의 매우 부유한 지주들의 손에 점차로 땅이 집중되는 시기였다. 그 결과 많은 농부의 소규모 경작지가 이러한 대규모 사유지로 흡수되었고, 이 농부들은 생계를 위해 대지주의 소작농으로 전락되지 않을 수 없었다. 포도원 일꾼에 관한 예수의 비유(마 20:1–16)는 이와 유사한 시골 배경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일꾼이 날이 저물 무렵 자기의 삯을 기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실제로 율법은 이것에 대해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신 24:14–15)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경고는 여기저기서 발견되는데, 예를 들어 레위기 19:13(이는 야고보가 레위기 19장을 인용한 또 하나의 예이다)과 말라기 3:5에서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말라기 3:5에서는 품꾼의 삯에 대한 압제를 ‘과부와 고아’(약 1:27 참조)의 압제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거의 최저 생활수준에 머물며,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용할 양식’을 제공할 안정된 직업이 없는 일꾼들에게는 품삯을 제 때에 지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신용 거래가 이용될 수 없는 사회에서 일꾼의 품삯을 제 때에 지불하지 않는 것은 곧 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일과 다를 바 없었다.

  • 8 이른 연대의, 뛰어난 두 개의 사본(א과B)의 독법은 아퓌스테레오(갈취하다,aphystereō) 이나, 대부분의 사본들은 아포스테레오(주지 않는다, apostereō)로 읽는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가 불법적인 사기행각을 의미하기 때문에, 의미상의 차이는 크지 않다.

  •  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243–244.

 

5절) 부자들은 자신들이 심판을 당할 것을 알지 못한다.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은 가축을 잡기 전에 이들에게 먹을 것을 많이 주어서 살을 찌운다. 그리고 나서 이를 도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부자들은 이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함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살찌우고 있는 것이다. 

 

6절) 부자에 대한 마지막 고발은 의인을 정죄하고 죽인 것이다. 

 

  • 이 의인은 자신의 구원을 하나님께만 의탁하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을 말한다. 그 사람은 종종 사악한 부자에 의해 박해받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솔로몬의 지혜 2:6–20에 의하면, ‘가난한 의인을 억압하고’(10),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안겨주려는 것’이 내일을 생각지 않고 이 땅에서의 생을 사치스럽게 사는 악인의 욕망이다. 야고보가 여기에서 부자의 과도한 행위를 서술하기 위해 이용한 자료(약 2:5–7도 참조)가 바로 널리 퍼진 이러한 유대교 전승(시 10:8–9; 37:32도 참조)이다.

  • 부자들이 의인을 죽였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이 말은 부자들이 자기들의 소유를 나누지 못하고, 품꾼들의 삯을 지불하지 않은 실제적인 결과를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집회서 34:22에는 “이웃의 살길을 막는 것은 그를 죽이는 것이며 일꾼에게서 품값을 빼앗는 것은 그의 피를 빨아 먹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정죄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카타디카조(katadikazō)는 법정적인 용어이고, 오히려 부자들이 소유물을 축적하고, 부를 얻기 위해 나름대로 법적 절차를 이용하거나 아마도 왜곡시키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한 행위가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에서 자행되었기 때문에 예언자의 강력한 책망을 받아왔다(암 2:6; 5:12; 미 2:2, 6–9; 3:1–3, 9–12; 6:9–16 참조).

  •  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247–248.

 

불의한 부자들은 어리석게도 자신들의 재물을 불의한 방법으로 쌓아간다. 하지만 이것은 썩고 좀먹고 녹이 슬게 되며 이 녹이 증거가 되어 유죄 판결을 내리고 그들을 불태우게 된다. 부자들은 불의한 방법으로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이들의 울음소리는 하나님께 들린다. 부자들은 자치하고 방종함으로 자신을 살찌우지만 결국 살육, 심판을 당하게 된다. 또한 부자들이 가난한 의인을 정죄하고 죽인 것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코로나 19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고 정부는 적극적으로 권고한다. 하지만 정말 가난한 이들은 이를 지키고 싶고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전염의 공포속에 발을 들여놓을 수 밖에 없다. 그들도 재택 근무를 하면서 안전하기를 원하지만 하루 벌어 살아가야하는 이들은 여전히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직장으로 내몰린다. 새벽에는 녹즙을 배달하고 일과중에는 콜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엄마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싶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 기침 감기로 아파하면서도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향했을 것이다.  이후에 가난한 이들과 부유한 이들의 확진자를 비교한 통계를 볼 수 있다면 단연 가난한 이들의 확진 판정 비율이 높게 나오리라 생각된다.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는 모두에게 평등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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