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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What good is it, my brothers, if someone says he has faith obut does not have works? Can that faith save him? 15 pIf a brother or sister is poorly clothed and lacking in daily food, 16 qand one of you says to them, “Go in peace, be warmed and filled,” without giving them the things needed for the body, what good2 is that? 17 So also faith by itself, if it does not have works, is dead.

o [ch. 1:22]

p [Job 31:19, 20]; See Luke 3:11

q 1 John 3:17, 18

2 Or benefit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약 2:14–17.

 

14절) 행함이 함께 동반되지 않는 믿음은 무용하고 죽은 것이며 구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믿음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믿음 있음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 말이다. 그 믿음을 행함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그의 믿음은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입증할 수도 없다. 또한 그런 믿음은 그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의 13절 본문에서 마지막 심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와 연결되어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사람을 죄와 사망과 마지막 심판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야고보는 이런 가짜 믿음에는 행함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 속에서 바울과 야고보의 차이를 구별하려는 사람이 있다. 한편으로 야고보는 행함을 긍정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사랑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 행해야만 하는 사랑과 긍휼의 행위로 사용한다(2:8–13 참조). 다른 한편으로 바울은 ‘율법의 행위’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는데, 여기에서 율법의 행위란 특히 모세 율법의 제의 규정에 대한 율법주의적 준수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바울이 율법의 행위란 표현을 그렇게 제한된 의미로 사용했는지 의문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바울과 야고보는 ‘행함’이란 말을 동일하게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서 나온 행위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한다. 두 사람 간의 차이는 이 행함이 일어나는 상황의 차이이다. 바울이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에는 행함의 어떤 가치(공로)도 인정하지 않는 반면에, 야고보는 일단 관계가 맺어진 후에 행함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  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150.

 

행함을 의미하는 ‘에르가’라는 단어에 대해서 바울은 구약의 제의 규정과 같은 특정한 율법의 행위라고 하고 야고보의 행함은 사랑의 율법을 지키는 자선행위를 의미한다고 일반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행함의 개념은 좀더 넒은 의미로 사용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울은 회심 이전의 행위에 대한 어떤 유효성도 인정하지 않은 것인 반면에 야고보는 회심 이후의 행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구원을 위해서 행함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

 

15-16절) 이 본문은 14절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구절이다. 헐벗고 굶주린 형제나 자매가 있다고 하자. 믿음을 가지고 그들을 향해서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한다고 해서 그들의 굶주림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실제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지고 그들의 몸의 쓸것을 공급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는 현재, 명령형 수동태의 동사이다. 

 

이 예화는 앞서 2-3절에 등장하는 예화처럼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있었을 법한 상황이기도 하다. 

(사 58:7-9, 개정)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이사야의 말씀처럼 우리가 주린 자에게 양식을 주고 유리하는 자를 집에 들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도 마 25장에서 내 형제중에 지극지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요한은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것을 촉구한다.(요일 3:17-18) 

초대교회만이 아니라 이시대의 모든 교회가 들어야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행함의 자리로 초청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로만으로 끝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17절)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죽음은 아무런 생명의 조짐이 없는 상태로 무용함 그 자체이다. 죽음은 구원을 이끌어 낼 수 없다. 

믿음이 아무런 행함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죽은 것이다. 이러한 죽은 믿음은 행함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반면에 행함을 동반한 믿음은 생명을 살리고 이러한 믿음은 행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2장 14-26절까지의 본문속에서 야고보는 12, 20, 26절에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참된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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