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신앙감정론(조나단 에드워즈, 부흥과 개혁사)
 
 
이 책 신앙감정론은 예일 대학교 출판부의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27권중 1권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편집자 서문
에드워즈는 이 책을 통해서 “성령의 임재 여부를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라는 청교도 개신교의 중심적인 질문과 씨름했다. 그는 18세기 뉴잉글랜드의 종교적 부흥이 제기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1. 역사적 배경
에드워즈는 18세기 초반 자신이 경험한 여러 부흥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감정론의 내용을 전개한다. 그것은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 얻게 되는 복음 진리에 관한 새로운 감각(new sense) 또는 새로운 확신(new conviction)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감각을 통해 복음의 진리성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봄’ 또는 직접적 인식의 체험은 ‘마음의 감각(the sense of the heart)이라는 에드워즈 사상의 원천이 된다. 이 새로운 감각의 의미를 해석하는 확신 교리가 바로 ‘감정론’의 주요사상이다. 
 
에드워즈는 이 책을 통해 소극적인 증거와 적극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소극적인 표지는 부흥을 경험할 때 하나님의 손이 임재하셨는가를 판단하는 참된 기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사건이나 그 사건의 특징들이다. 반면에 적극적인 표지는 부흥 현상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어떤 통일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에드워즈는 이것들을 하나님의 성령께서 일하실 때 나타나는 확실한 표지로 규정했다. 
 
  1. 논의 : 은혜로운 감정의 열두 가지 표지
‘감정론’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언어의 정확성과 생생함이다.
우리의 과업은 에드워즈가 말하는 감정은 무엇이며 감정은 어떻게 일어나며 감정과 성령의 관계는 무엇이며 그리고 감정이 의지와는 어떤 관계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감정을 판단할 수 있는 표지나 기준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감정은 영혼이 사랑으로 하나님을 향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향하든지 그 영혼이 움직이는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다. 
감정은 성향이 지성을 통하여 표현된 것이다. 감정은 지성의 생각들과 필연적인 관계에 있으며, 일반적으로 의지의 탓으로 돌려지는 행위의 원천이다. 성향은 지성과 관계 없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향은 자아가 판단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교리나 사상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은 영혼의 깊이에만 관련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오로지 지성적인 것만은 아니다. 
“참된 믿음은 대부분 거룩한 감정 안에 있다.” : 감정은 믿음에 필수적이며, 믿음의 본질 가운데 대부분을 형성한다는 의미이다. 
에드워즈의 입장은 감정은 본질적으로 중요하지만, 참된 감정뿐만 아니라 거짓된 감정이 있기 때문에 판단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따라서 작용들과 체험들의 방식이나 순서는 신적인 본질에 대한 분명한 표지가 될 수 없다’고 결론내린다. 
 
소극적 표지
1) 감정의 정도
2) 몸의 격렬한 반응
3) 신앙과 신학에 대한 관심
4) 감정의 자가 생산 여부
5) 성경이 갑자기 떠오름
6) 사랑의 피상적 표현
7) 감정의 정도
8) 감정의 체험 순서
9) 종교적 행위와 의무의 피상적 실천
10) 찬송을 열심히 부름
11) 자신의 구원 확신
12) 타인에 의한 구원의 확신
 
적극적 표지
1) 첫째 표지 : 성령의 내주 - 영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신적인 영향에서 비롯되는 감정만이 참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원칙에 기초
2) 둘째 표지 :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에 대한 인식 
3) 셋째 표지 :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한 인식
4) 넷째 표지 : 하나님을 아는 지식 - 거룩한 감정은 빛이 없는 열이 아니며 지성이 받아들이는 어떤 지식적 정보나, 영적 가르침이나, 어떤 빛 또는 실제적인 지식에서 비롯된다. 
5) 다섯째 표지 :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
6) 여섯째 표지 : 참된 겸손 - 기준은 교만과 자기 영화를 낳는 ‘영적인 업적’이나 ‘크고도 압도적인 체험’이 아니라, 자유롭게 사랑가운데서 생겨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근본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7) 일곱째 표지 : 성품의 변화 - 이는 회심 즉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며 부패된 본성을 떠나는 것의 표지이다. 한 시간 동안 감정을 고양시키고 열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새롭고 영속적인 본성에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감정은 은혜로운 것이 아니다. 
8) 여덟째 표지 :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감
9) 아홉째 표지 : 하나님을 두려워 함
10) 열째 표지 : 신앙의 균형
11) 열한째 표지 : 하나님을 향한 갈망
12) 열두째 표지 :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 - 거룩한 감정은 그리스도인의 행위에 반드시 영향을 주어야 한다. 
 
3. 신앙, 부흥운동 그리고 신앙감정
‘감정론’이 제공하는 공헌 세가지
첫째, 신앙을 신앙이 아닌 어떤 것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막는 길을 보여준다. 
둘째, 지식이 독특한 개인의 체험을 무시하지만 않는다면, 지식은 신앙의 영역안에서 보존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해 준다. 
셋째, 부흥주의적인 신앙에 대한 현재의 관심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초를 제공해준다. 
 
 
부흥운동가들은 진리가 일반적인 수준으로 퇴락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긴급성과 심각성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에드워즈는 참된 감정은 지성의 빛이 없는 뜨거운 감정만이 아니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순진한 부흥주의자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는 배움의 노력과 수고를 간과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직접적인 계시가 진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성경은 그 의미가 아주 분명해서 사람이 뛰어가면서도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단호하게 이런 생각을 거부했다. 
 
“감정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감정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감정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728x90

A prayer of Habakkuk the prophet, according to Shigionoth.

O Lord, xI have heard the report of you,

and yyour work, O Lord, do I fear.

In the midst of the years zrevive it;

in the midst of the years make it known;

ain wrath remember mercy.

God came from bTeman,

cand the Holy One from Mount Paran. Selah

His splendor covered the heavens,

and the earth was full of his praise.

x ver. 16; [Ps. 44:1]

y Ps. 90:16

z Ps. 85:6

a [Ps. 77:9]

b See 1 Chr. 1:45

c See Deut. 33: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합 3:1–3.

 

1절) 선지자 하박국이 시기오놋에 맞춘 기도이다. 

시기오놋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데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음악적 기호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왕이나 백성들이 모여서 비나 땅의 풍작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압제로부터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선지자는 모든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하나님의 승리를 보고, 듣고 선포할 권한을 받았다.  

The title verse also contains the curious expression “shigionoth,” a transliteration from the Hebrew. Though the meaning of the word is unknown, scholars agree that it is most likely a musical notation.18 The final sentence of the chapter supports this supposition. Many similar terms in titles to the psalms are now thought to be names identifying hymn tunes or instructions concerning the playing of the music which apparently accompanied the psalm.

J. H. Eaton speculated concerning the original and later use of the psalm. Based on the elements found in the first and last verses (concerning musical instruments and the word “psalm”) and other elements such as selah,19 he affirmed its liturgical use, assigning it to the time of the Autumnal Festival at the preexilic temple.20 Eaton speculated specifically concerning the origin of the psalm. He viewed the king and people assembled to pray for salvation—for rain and fertility of land as well as deliverance from social and political oppression. God spoke through the prophet. “He was empowered to see, hear, and declare the life-giving victory of God which would eventually be seen to shape the destiny of all.” Eaton further questioned whether the prophet may have composed the psalm in advance or whether it came “as the spontaneous product of intense inspiration in this public setting.”21

18 Robertson (Nahum, Habakkuk, Zephaniah, 215) follows Keil and says it could refer to a kind of performance that would reflect the excitement that should accompany the celebration of a psalm with such a disturbing topic. HALAT 4:1314, list attempts to understand the term: (1) a lament as found in titles of prayers in Akk.; (2) an ecstatic poem or a song of an ecstatic, a meaning derived from שׁגה, “reel, stagger”; (3) to set something in great agitation or excitement, based on Arabic.

19 J. H. Eaton, “The Origin and Meaning of Habakkuk 3,” ZAW 76 (1964): 144–71. Eaton concluded that though the meaning of סֶלָה is “not yet agreed, its liturgical character can be safely assumed” (p. 159).

20 Ibid., 168–70.

21 Ibid., 168–69.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354–355.

 

2절) 여호와여 내가 당신에 대한 소식과 당신의 역사를 듣고 놀랐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수년안에 부흥케 하옵소서. 수년내에 그것을 알리시옵소서. 진노중에 자비를 기억하옵소서. 

하박국서 전체를 통해서 본절은 하나님께 무언가를 행하실 것을 간청한다. 나머지 기조의 부분에서는 과거에 하나님의 위대함과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 선지자가 가지는 조용한 자신감을 표현한다. 선지자의 간청은 본절에서 베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첫번째는 생명을 보존할 것을, 앎을 제공할 것을 그리고 자비를 기억할 것을 요청한다. 

Of the entire chapter, only this verse takes on the form of a petition for God to do something. The remainder of the prayer describes the greatness of God in the past and expresses the prophet’s quiet confidence in the work of God. The prophet’s petition is threefold: preserve life, provide understanding, and remember mercy.24

24 Ibid., 218.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355.

 

이스라엘은 어떤 신비한 경험보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그들의 종교의 기반을 두고 있다. 하박국 선지자는 과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그의 자신감과 간청에 기초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심으로 희망을 제공했고 하나님은 이후에대 계속해서 일하실 것이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홍해의 해변에 죽은 애굽인들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명백한 증거를 제공했다. 이스라엘은 결코 애굽을 탈출할 수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개입만이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그러나 하박국은 좋았던 옛날로 돌아갈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임할 최고의 것을 안다. 

Israel based its religion on the work of God rather than any mystical experience. The prophet based both his confidence and his petition on the work of God in the past. God’s leading the people of Israel out of Egypt provided hope and instilled confidence that God would continue to work in the future. Seeing the Egyptians dead on the seashore provided conclusive evidence of the protection of God. Israel could never have escaped from Egypt. Only God’s intervention saved Israel. Habakkuk does not present a desire to return to the “good old days,” however. He knows that “the best is yet to come.”26

26 W. P. Brown, Obadiah through Malachi. Westminster Bible Companion (Louisville: WJK, 1996), 95.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355.

 

하박국은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온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행하심이 역사의 구절들안에 믿음을 통해서 명확하게 보여지기를 원한다. 이 선지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한다. 그 선지자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그의 경외를 선언한다. 구약에서 여호와에 대한 경외는 지혜의 시작이고 종교에 대한 동의어이다. 신명기는 ‘듣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경험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간주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하심이 종교예식에서 암송되는 것을 들을 때 그 적절한 반응은 두려움 혹은 경외와 과거의 영광이 현재에 재연될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이다. 

Habakkuk “wants God’s purpose to be fulfilled, God’s work on earth to be done, God’s actions to be seen clearly by faith in the passages of history. This prophet concentrates on God and not on human beings.”27 The prophet declared his awe at the work of God. “I stand in awe” translates the Hebrew verb yarēʾtî, “I fear.” In the Old Testament,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nd a virtual synonym for “religion.”28 Deuteronomy shows that “hearing and fearing” may be regarded as the natural reaction to an experience with God.29 “When one hears Yahweh’s mighty work recited in the cult, the appropriate response is fear or awe and a desire to see those ancient marvels repeated in the present.”30

27 Achtemeier, Nahum–Malachi, 54–55.

28 D. D. Garland, “Habakkuk,” BBC (Nashville: Broadman, 1972), 264.

29 See Deut 13:12; 17:13; 19:20; 21:21; Robertson, Nahum, Habakkuk, Zephaniah, 216, who says, “fear is a significant indicator of the faith of the prophet.”

30 Roberts, Nahum, Habakkuk, and Zephaniah, 131.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356.

 

하박국은 과거에 행하셨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수년내에, 지금 우리의 때에 그 일을 나타내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는 과거 애굽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처럼 지금 바벨론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구원해주실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구절에서는 진노와 긍휼을 대조하고 있다. 진노라는 단어는 ‘흔들리다’, ‘떨다’라는 의미이고 긍휼은 자궁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다. 이는 하박국이 여호와 하나님께 요청한 연민과 민감함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먼저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진노가운데서 긍휼을 보이실 것을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에 대해 진노를 발하실 때조차도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보이실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에 근거해서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진노를 발하실 것이다. 선지자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잊지 말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바벨론에게 임한 심판의 순간속에서 과거 애굽을 탈출할때 베푸셨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와같은 은혜를 베푸실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3절) 하나님께서 데만으로부터 오시며 그 거룩하신 분이 바란 산으로부터 오신다.(셀라) 그의 광채가 하늘을 덮었고 온땅에 그의 찬송이 가득했다. 

본절은 구약에서 신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가장 광대하고 아름다운 표현이다. 이러한 신현은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과 영광중에 임하시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하실 때 보여졌다.(출 19)

 

히브리어의 동사의 지세는 번역자에게 그 구절의 중요성을 이해하도록 도전합니다. 신현을 표현한 대부분의 동사는 완료시제이며 대개 과거의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개역개정은 본절에서 신현의 표현을 현재로 했지만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과거형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거의 사건을 묘사하는가 아니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임할 것을 묘사하는가? 완료시제를 사용하는 한가지 방법은 '예언적 완료’나 ‘자신감의 완료’이다. 이 방법은 어떤 것을 매우 확실하게 묘사하는 방법으로 선지자가 마치 이미 성취된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는 그 사건들이 미래에 일어날 것을 묘사하면서 그 발생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번역가들이 과거인지 현재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지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분의 주권적인 목적에 따라 역사하셨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확실성을 느꼈다. 신현의 결론으로 그 선지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으로 결심했다.(합 3:16) 로버트슨은 말하기를 “심판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하바국의 대화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그 전체적인 요점은 심판의 맥락속에서 하나님 자신에 의한 구원이었다.”

The verb tenses in the Hebrew challenge the interpreter to understand the significance of the passage. Is the passage future, present, or past? Verb tenses in Hebrew do not give past, present, or future time as much as aspectual distinctions.40 Most of the verbs in the theophany are in the perfect tense, usually used in past time contexts. The NIV, following the KJV and RSV, translates the verbs in the past tense. Does this describe an event in the past or one coming at some point in the future?

One way of using the perfect tense is the “prophetic perfect” or “perfective of confidence,” a way of describing something so certain that the prophet could speak of it as already accomplished.41 A modern phrase which captures the essence of the “prophetic perfect” is to say that “it’s money in the bank,” that is, “you can count on it, it’s sure to happen.” This would mean that the events described would occur in the future while emphasizing the certainty of the occurrence.42 Achtemeier argues exegetically and theologically for a present interpretation of the theophany, saying that the tradition saw the coming at the Exodus when Israel proclaimed God as their king (Exod 15:18), while “this time he comes as King over all the earth: His glorious manifestation so illumines the heavens that all the earth responds in praise (cf. Ps 48:10).”43

Whether or not the interpreter can determine past or present, God answered the prayer of Habakkuk and acted according to his sovereign purpose. Habakkuk felt the certainty of God’s work. At the conclusion of the theophany, the prophet determined to wait for God’s redemption (Hab 3:16). As Robertson notes, “Judgment had been central to Habakkuk’s dialogue with the Almighty. But the whole point had been salvation for God’s own in the context of judgment.”44

40 For a thorough discussion see Waltke and O’Connor, IBHS §29–31. For a more concise explanation see D. W. Bailey and J. O. Strange, Biblical Hebrew Grammar (New Orleans: Insight, 1985), 51–53.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KJV King James Version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41 Waltke and O’Conner, IBHS § 30.5.1e.

42 Roberts says that the prophet has changed the perspective of his ancient models such as Deut 33:2–5; Judg 5:4–5; Ps 68:8–9; Exod 15:14–16, which portray God’s theophany as a past event. “Habakkuk portrays God’s march as though it were happening in the present, before his very eyes” (Nahum, Habakkuk, and Zephaniah, 151).

43 Achtemeier, Nahum–Malachi, 56.

44 Robertson, Nahum, Habakkuk, and Zephaniah, 219.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358–359.

 

데만은 에돔 지역으로 남부 유다에 위치한 곳이다. 데만은 비옥한 지역이고 중요한 무역로들이 교차하는 지역이었다. 이 문맥에서 데만은 에돔 지역 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바란은 시나이 반도의 유다 남서쪽의 산악지역이다. 이 두 지역은 과거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다. 율법을 주시고 광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을 때. 그러므로 이 구절은 청자나 독자들로 하여금 과거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상기하게 했다. 본문의 하나님은 ‘엘로하’인데 오래전 하나님께서 족장들을 그 땅을 통해 인도하셨고 그 백성을 광야를 통햇 인도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기억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적대자들의 관점으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으로서의 여호와가 아니라 창조자로서의 엘로하를 보았다. 

The name for God, ʾĕlôah, used in this instance is a rare and archaic name which probably evoked memories of the work of God in ancient times when he led the patriarchs through the land and the people through the wilderness.51 Patterson sees this usage as demonstrating the enemies’ perspective. They saw God “not as Yahweh, Israel’s covenant God, but as Eloah, the Creator (Deut 32:15) and the Lord of the earth (Pss 18:31; 114:7).”52

51 אֱלוֹהַ is found fifty-seven times in the Old Testament, forty-one times in the Book of Job, with most of the occurrences found in the dialogue. See H. Ringgren, “אֱלֹהִים ʾeōlōhîm,” TDOT 1:272.

52 Patterson, Nahum, Habakkuk, Zephaniah, 232.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36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