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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Therefore, having put away falsehood, let each one of you uspeak the truth with his neighbor, for vwe are members one of another. 26 wBe angry and do not sin; do not let the sun go down on your anger, 27 and xgive no opportunity to the devil. 28 Let the thief no longer steal, but rather ylet him labor, zdoing honest work with his own hands, so athat he may have something to share with anyone in need. 29 bLet no corrupting talk come out of your mouths, but only such as is good for building up, as fits the occasion, that it may give cgrace to those who hear. 30 And ddo not grieve the Holy Spirit of God, eby whom you were sealed for the day of fredemption. 31 gLet all bitterness and wrath and anger and clamor and slander be put away from you, along with all malice. 32 hBe kind to one another, tenderhearted, iforgiving one another, as God in Christ forgave you.

u Zech. 8:16; Col. 3:9; [ver. 15]

v Rom. 12:5

w [Ps. 37:8]

x See James 4:7

y Acts 20:35; Gal. 6:10

z 1 Thess. 4:11; 2 Thess. 3:8, 11, 12

a [Prov. 21:26]

b ch. 5:4; Col. 3:8; [Matt. 12:34]

c Col. 4:6; [Eccles. 10:12]

d Isa. 63:10; [1 Thess. 5:19]

e ch. 1:13

f See ch. 1:7

g Col. 3:8, 19

h Col. 3:12, 13; 1 Pet. 3:8

i [2 Cor. 2:7, 10]; See Matt. 6:1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엡 4:25–32.

 

멈춰야할 것과 시작해야할 것

 

바울은 25-32절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합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의 옷을 입은 이들로 하여금 어떤 방식의 실천하는 삶을 살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25절) 우리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사람이다. 본문의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는 표현은 슥 8:16절의 인용이다. 

(슥 8:16, 개정)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본문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의 삶이어야 한다. 바울은 그의 서신 속에서 이런 강조를 하고 있다. 

(골 4:5, 개정)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골 3:9, 개정)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너무나 당연한 요구이고, 이러한 차별성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현대 우리의 기독교가 세상속에 선한 영향력, 충격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세상이 기독교인들의 말이 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 한국의 초대교회에 기독교인들은 정직함, 진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수가 적지만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참을 말하지 않고 세상이 그런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이 회복되어야 한다. 

 

26-27절) 모든 분노가 죄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분노에 압도되지 않고 그 분노를 조절하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분을 품고 하루를 넘기는 행위가 바로 마귀에게 틈을 주는,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분을 품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기억해야할 것은 분노가 죄, 악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바울은 해가 지기전에 화해할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만약 그럴 수 없는 상황일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롬 12:19, 개정)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바울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길 것을 요청한다. 우리의 분노는 자칫 그 공정성을 잃기 쉽다. 우리가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도 그렇지 못한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짓기 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이를 맡겨야 한다. 분노가 없는 상태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일에 분노하지만 그 분노가 우리를 삼키지 못하도록 해야하고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분노를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성숙함의 증표가 된다. 

(잠 30:33, 개정) 『대저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

분노를 누르려고 하면 도리어 폭동이 일어난다. 

 

28절) 바울은 도둑을 예로 들면서 회개한 자의 삶의 실천적인 삶의 모습을 제시한다. 회개는 부정적인 것을 멈추고 긍정적인 것을 시작하는 것을 포함한다. 도둑질 하는 자는 반드시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을 멈추고 선한 일을 시작해야 한다. 도둑질은 게으름과 탐욕으로부터 기인되기에 회개한 도둑은 바로 그 정반대인 노동에 있어서 근면과 자원해서 나눔을 보여주어야 한다. 

Paul uses the thief to illustrate how repentance impacts one’s lifestyle. Repentance involves both stopping (negative) and starting (positive). The thief must stop stealing and start doing honest work. Stealing arises out of laziness and greed, so the repentant thief must display the opposite: diligence at labor and willingness to shar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69.

"도둑질 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8계명이다. 바울은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로 하여금 도둑질 하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그 손으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수고하여 선한일을 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를 미워한 자는 이미 살인한 자다. 간음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살인한 자다. 도둑질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너희에게 이르노니 가난한 자를 구제하지 않는 자는 이미 도둑질 한 자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 이웃 사랑) 

 

(마 5:21-22, 개정)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7-28, 개정)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절) 28절에 이어서 바울은 다시금 새사람을 입을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멈춰야할 것과 시작해야할 것을 말한다. 악한 말을 멈추고 덕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선한 말과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할 것을 명하고 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혀, 말은 작지만 모든 것을 불태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약 3:5-6). 이것이 사람을 죽일 수도, 사람을 살릴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셜리의 죽음)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쏟아내는 분노에 찬 말들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더러운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사프로스’라는 단어로 못된(썩은) 열매(눅 6:43) 혹은 못된(부패한) 물고기(마 13:48)을 의미한다. 

As with the “stopping” and “starting” noted in v. 28, Christians are to stop evil speech, substituting talk that is good for building up and giving grace. “Corrupting” (Gk. sapros) also applies to “bad” (rotten) fruit (Luke 6:43) or “bad” (putrid) fish (Matt. 13:48). To “give grace” in speaking means to benefit others rather than corrupt them through what is said.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69.

 

30절)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행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것을 요청하고 있다. 

(사 63:10, 개정)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특별히 25-31절에 언급된 죄는 공동체의 하나됨을 파괴한다. 그래서 공동체에 하나됨을 가져다주시는(3절)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때로 비인격적인 존재, 어떤 힘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본문에서 성령은 근심하시는 존재이다. 이는 성령께서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들로서 기뻐하시면서 동시에 슬퍼하시고 근심하신다. 

 

(엡 1:13, 개정)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치셨다. 우리에게 구원의 날에 함께 동참할 것을 보증하신 것이다.

 

32절) 서로 친절하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는 삶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하나님앞에서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이며 이는 우리의 삶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강력한 변화가 부족한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값싼 복음 때문이다. 하나님의 용서의 사건을 너무나 값싸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복음의 깊은 차원에서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죄사함을 받았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는 단지 우리의 성품이 착해서 다른이를 친절히 대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았다는 사실이 우리로 그런 삶을 살도록 추동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고후 5:19절을 말한다. 

(고후 5:19, 개정)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끊임없이 그렇듯이 아버지의 용서하시는 사랑의 값없는 은혜는 그의 자녀들이 서로를 용서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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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I the Lord do not change; utherefore you, O children of Jacob, are not consumed. vFrom the days of your fathers you have turned aside from my statutes and have not kept them. wReturn to me, and I will return to you, says the Lord of hosts. xBut you say, ‘How shall we return?’ Will man rob God? Yet you are robbing me. xBut you say, ‘How have we robbed you?’ yIn your tithes and contributions. zYou are cursed with a curse, for you are robbing me, the whole nation of you. 10 aBring the full tithe into the storehouse, that there may be food in my house. And thereby bput me to the test, says the Lord of hosts, if I will not open cthe windows of heaven for you and pour down for you a blessing until there is no more need. 11 I will rebuke dthe devourer2for you, so that it will not destroy the fruits of your soil, and your vine in the field shall not fail to bear, says the Lord of hosts. 12 Then eall nations will call you blessed, for you will be fa land of delight, says the Lord of hosts. 
tPs. 102:27; See Num. 23:19
uLam. 3:22
vActs 7:51
wSee Zech. 1:3
x[ch. 1:2]
x[See ver. 7 above]
y[Neh. 13:10]
z[ch. 2:2]
a[Prov. 3:9, 10]
bSee 2 Cor. 9:6–8
cSee Gen. 7:11
d[Joel 1:4]
2Probably a name for some crop-destroying pest or pests
eZeph. 3:19
f[Isa. 62: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3:6–12.

십일조 과연 ‘축복의 계약금'인가?


6-12절) 앞서 두번째 논쟁에서 제사장들의 실패를 논했다면 이제 말라기는 그 범위를 확대해서 온 백성들의 실패를 지적하고 있다. 6절에서 야곱의 자손들이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포로됨으로부터 돌아온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야곱은 약속의 땅과 하나님께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벧엘에 제단을 세웠고 창 28:20-22절의 맹세에 따라서 십일조를 드렸다. 이와 유사하게 야곱의 자손들이 포로 귀환 했을 때 그들은 예루살렘에 제단을 쌓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십일조를 바치는 일에 심각하게 무심했다. 이러한 무관심은 곡물의 흉작, 가뭄, 전염병 때문이라고 정당화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연 재해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의 원인이 아니라 저주받은 결과임을 밝히신다. 

6절)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는 소멸되지 않는다. 
본문은 하나님의 속성과 영원한 목적은 변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백성들의 믿음과 소망의 견고한 기초를 제공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신실하심, 불변하심은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된다. 우리 인간은 신실할려고 하지만 신실하지 못하다. 시시때때로 변하고 말그대로 믿을 놈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말씀을 통해서 그분은 어떤 의미에서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불변성이 하나님의 행동이 변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7절의 말씀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른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하심을 보여준다. 
- I the Lorddo not changeimplies that God’s character and eternal purposes do not change, which gives a solid foundation for his people’s faith and hope. However, unchangeableness in characterdoes not mean that the Lord is unchanging in his actions, for the very next verse, “Return to me and I will return to you” (v. 7), shows that God acts differently in response to different situations.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8.

본문에서 변하지 않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비한정 완료로 “나는 변하지 않았다’와 동시적인 완료로 “나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여호와 께서는 변하지 않으셨고 변하지 않으시며 변하지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애굽기 34:6–7, NKRV)
하나님께서는 위 언약에 대해서 불변하신다. 

7절) 내게로 돌아오라고 요청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이 조상의 날로부터 하나님의 규례를 떠나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하나님게서 내게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시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고 묻는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규례를 떠났고 지키지 않았다. 이는 거절과 불순종을 의미한다. 
본문의 돌아오다(return)은 ‘슈브’로 회개를 의미한다. 이는 완전한 방향 전환을 의미하는데 이스라엘의 경우에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얼굴을 돌리고 그분께 충성을 바칠 것을 다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회개의 선포는 메시야의 길을 예배한 신약의 세례요한의 사역으로 간주한다. 
- Return.Signifies repentance; repeats Zech 1:3. Repentance is an “about face,” a complete change of direction. In this case it is a shift in loyalty, a reorientation back to the God of Israel (cf. 1 Kgs 8:33; Jer 24:7). Preaching repentance characterizes the ministry of John the Baptist, forerunner of the Messiah (Matt 3:2, 11; Luke 3:3–6). The church still proclaims a gospel that calls everyone to repent and turn to God (Acts 3:19; Rom 2:4; 2 Cor 7:10; 2 Pet 3:9).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돌아오라고 요청하시는데 이스라엘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고 반문한다. 이말은 돌아가기를 원하는데 그 방법을 모른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가 떠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돌아가라는 것입니까?’라고 반문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니까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8-9절)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습니까?’라고 한다. 너희가 도둑질한 것은 십일조와 봉헌물이다. 이스라엘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본문에서 도둑질하다라는 ‘카바’동사가 4번이나 반복된다. 이 단어는 뒤따라 걷다, 속이다, 빼앗다. 강탈하다라는 의미이다.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 (잠언 22:23, NKRV)

십일조
구약에서 십일조는 일반적으로 땅의 소산의 1/10을 드리는 것;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드리는 십일조의 십일조; 3년에 이스라엘의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는 십일조로 나뉜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여호와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공급자이시며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예배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 tithes.Required tithe offerings in the OT included: a tenth of the produce of the land (Lev 27:30–33; Deut 12:6, 11, 17); the tenth of the tithe required of the priests and Levites (Num 18:21–32); and the third-year tithe given to the socially disadvantaged in Israel (Deut 14:28–29; 26:12–15). Malachi’s ambiguity with reference to specific tithes may be intentional. The giving of tithes was an act of worship acknowledging Yahweh as the Lord of the earth and the provider for Israel. offerings.Including freewill, or voluntary, offerings and mandatory gifts to the Lord or his sanctuary that may include agricultural produce, material goods, or personal valuables (e.g., Exod 25:2; 29:27; Num 5:9; 31:29; Deut 12:6). Such contributions were thank-offerings recognizing God’s goodness and generosity (see “whole tithe” in v. 10 [see also note]).
OT Old Testament
e.g. for example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8.

10절)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라. 그러면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을 것이다.
본문의 온전한 십일조는 엄밀하게 말하면 레위인들이 이스라엘에게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의미한다. (민 18:26, 느 10:38)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민수기 18:26, NKRV)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한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곳간의 여러 방에 두되” (느헤미야 10:38, NKRV)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시험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나를 시험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에 충실하심을 확증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십일조를 개인의 성공을 위한 공식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말하는 것의 핵심은 믿음과 순종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자발적인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지 십일조를 바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 whole tithe.Perhaps the tenth-part tithe and the tithe tax (or “tenth of the tithe” that the Levites were required to give on the tithes they received from the Israelites, Num 18:26; cf. Neh 10:38). If so, Malachi may be calling for reinstating the tithe tax (not the giving of additional offerings). food in my house.Food and other goods received as tithes and offerings were stockpiled in the treasury rooms (“storehouse”) of the temple (1 Kgs 7:51; 2 Chr 31:11–12; Neh 13:12). The sacrificial gifts were literally “food” for the priests and Levites, whom the gifts supported (cf. Num 18:8–21; Deut 18:1–4). Test me.The prophet’s challenge does not contradict the prohibition against testing God (Deut 6:16). It offers the priests and the people an opportunity to prove Yahweh’s covenant-faithfulness by personal experience through obedience to God’s commands. The passage is not a formula for achieving personal wealth, as some claim, although it is possible to give freely and attain more wealth (as a general principle, not a promise, cf. Prov 11:24). Context indicates Malachi has the blessings of the Mosaic covenant in mind (see Deut 28:12). These blessings are national, or corporate, in character, rather than individually centered. They are primarily agricultural benefits, but are not without moral and spiritual counterparts. The prophet recognized that turning to God in repentance and reasserting fidelity in covenant relationship with him must begin somewhere—in this case, the practical act of obedience to the Mosaic laws regulating tithes. The point of the “testing” is to probe the willingness of the community to respond to God in faith and obedience, not to manipulate God’s blessing through the giving of tithes. The theme of God’s testing and providing runs through the Bible, giving rise to names for God like “The Lord Will Provide” (Gen 22:14; cf. Deut 8:2, 16; Ps 81:7; 1 Thess 2:4. throw open the floodgates of heaven.Abundant rainfall would yield bumper crops (cf. Deut 28:12), overturning the drought and poor harvests that Haggai reports (Hag 1:6; 2:16, 19).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8.

본문에서 사용된 시험이라는 단어는 ‘바한’으로 정직한 믿음에서 나온 시험이라면 신 6:16에서 시험하지 말라라는 단어는 ‘낫사’로 오만하고 냉소적인 불신앙의 자세에서 나온 시험을 의미한다. 
- 하나님의 요구의 성격(이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보라)은 특별한 것이며18)구약 성경에서 드문 그러나 유일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도전이다.19)말라기의 명령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금한 것(신 6:16)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신명기의 문맥에서 시험이라는 말을 위한 단어(낫사, nāśā’)는 오만하고 냉소적인 불신앙의 자세로부터 온 ‘시도하다’(try) 혹은 ‘검사하다’(혹은 심지어 ‘시험하다’[tempt])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바한, bāḥan)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증하고 격려하려는 의도를 가진 정직한 의심의 태도에서 온 시험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보라’(NLT)고 초대하시는 것은 언약의 약속에 여호와께서 신실하시다는 것을 순종의 경험을 통하여 확인할 기회를 회복된 공동체에 제공하는 것이다.
표현 하늘의 홍수의 문(‘하늘 문’ 개역개정-역주)은 하나님의 언약의 복의 구체적인 표시인 풍부한 농업적인 생산과 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이는 유다 백성들이 고대해오고 있는 것이다. 학 1:6, 10–11; 2:16, 17, 19 참조). 말라기가 사용하는 열다, 창고, 하늘 같은 말들은 말라기가 신명기의 복인 풍부한 비의 복을 마음에 그리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신 28:12).20)
18)Petersen (1995:217).
19)Baker (2006:286).
NLT New Living Translation, copyright © 1996[2004, 2007]. Anglicized version, copyright © 2000
20)Baker (2006:286).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75.

11-12절) 하나님을 시험한 것에 대한 복의 증거로서 메뚜기를 금하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할 것이고 포도나무의 열매가 익기전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열방이 너희를 복된다라고 할 것인데 이는 네가 아름다운 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메뚜기로 인한 흉작, 전염병으로 인한 수확의 실패등은 모세 언약에 불순종할 때 임할 저주가운데 하니인데 이제 하나님께서 이것을 막으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땅이 됨으로 모든 이방인이 너희를 복되다 하는 것이다. 이는 이방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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