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Therefore, having put away falsehood, let each one of you uspeak the truth with his neighbor, for vwe are members one of another. 26 wBe angry and do not sin; do not let the sun go down on your anger, 27 and xgive no opportunity to the devil. 28 Let the thief no longer steal, but rather ylet him labor, zdoing honest work with his own hands, so athat he may have something to share with anyone in need. 29 bLet no corrupting talk come out of your mouths, but only such as is good for building up, as fits the occasion, that it may give cgrace to those who hear. 30 And ddo not grieve the Holy Spirit of God, eby whom you were sealed for the day of fredemption. 31 gLet all bitterness and wrath and anger and clamor and slander be put away from you, along with all malice. 32 hBe kind to one another, tenderhearted, iforgiving one another, as God in Christ forgave you.
u Zech. 8:16; Col. 3:9; [ver. 15]
v Rom. 12:5
w [Ps. 37:8]
x See James 4:7
y Acts 20:35; Gal. 6:10
z 1 Thess. 4:11; 2 Thess. 3:8, 11, 12
a [Prov. 21:26]
b ch. 5:4; Col. 3:8; [Matt. 12:34]
c Col. 4:6; [Eccles. 10:12]
d Isa. 63:10; [1 Thess. 5:19]
e ch. 1:13
f See ch. 1:7
g Col. 3:8, 19
h Col. 3:12, 13; 1 Pet. 3:8
i [2 Cor. 2:7, 10]; See Matt. 6:1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엡 4:25–32.
멈춰야할 것과 시작해야할 것
바울은 25-32절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합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의 옷을 입은 이들로 하여금 어떤 방식의 실천하는 삶을 살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25절) 우리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사람이다. 본문의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는 표현은 슥 8:16절의 인용이다.
(슥 8:16, 개정)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본문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의 삶이어야 한다. 바울은 그의 서신 속에서 이런 강조를 하고 있다.
(골 4:5, 개정)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골 3:9, 개정)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너무나 당연한 요구이고, 이러한 차별성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현대 우리의 기독교가 세상속에 선한 영향력, 충격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세상이 기독교인들의 말이 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 한국의 초대교회에 기독교인들은 정직함, 진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수가 적지만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참을 말하지 않고 세상이 그런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이 회복되어야 한다.
26-27절) 모든 분노가 죄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분노에 압도되지 않고 그 분노를 조절하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분을 품고 하루를 넘기는 행위가 바로 마귀에게 틈을 주는,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분을 품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기억해야할 것은 분노가 죄, 악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바울은 해가 지기전에 화해할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만약 그럴 수 없는 상황일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롬 12:19, 개정)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바울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길 것을 요청한다. 우리의 분노는 자칫 그 공정성을 잃기 쉽다. 우리가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도 그렇지 못한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짓기 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이를 맡겨야 한다. 분노가 없는 상태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일에 분노하지만 그 분노가 우리를 삼키지 못하도록 해야하고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분노를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성숙함의 증표가 된다.
(잠 30:33, 개정) 『대저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
분노를 누르려고 하면 도리어 폭동이 일어난다.
28절) 바울은 도둑을 예로 들면서 회개한 자의 삶의 실천적인 삶의 모습을 제시한다. 회개는 부정적인 것을 멈추고 긍정적인 것을 시작하는 것을 포함한다. 도둑질 하는 자는 반드시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을 멈추고 선한 일을 시작해야 한다. 도둑질은 게으름과 탐욕으로부터 기인되기에 회개한 도둑은 바로 그 정반대인 노동에 있어서 근면과 자원해서 나눔을 보여주어야 한다.
Paul uses the thief to illustrate how repentance impacts one’s lifestyle. Repentance involves both stopping (negative) and starting (positive). The thief must stop stealing and start doing honest work. Stealing arises out of laziness and greed, so the repentant thief must display the opposite: diligence at labor and willingness to shar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69.
"도둑질 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8계명이다. 바울은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로 하여금 도둑질 하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그 손으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수고하여 선한일을 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를 미워한 자는 이미 살인한 자다. 간음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살인한 자다. 도둑질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너희에게 이르노니 가난한 자를 구제하지 않는 자는 이미 도둑질 한 자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 이웃 사랑)
(마 5:21-22, 개정)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7-28, 개정)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절) 28절에 이어서 바울은 다시금 새사람을 입을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멈춰야할 것과 시작해야할 것을 말한다. 악한 말을 멈추고 덕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선한 말과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할 것을 명하고 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혀, 말은 작지만 모든 것을 불태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약 3:5-6). 이것이 사람을 죽일 수도, 사람을 살릴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셜리의 죽음)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쏟아내는 분노에 찬 말들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더러운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사프로스’라는 단어로 못된(썩은) 열매(눅 6:43) 혹은 못된(부패한) 물고기(마 13:48)을 의미한다.
As with the “stopping” and “starting” noted in v. 28, Christians are to stop evil speech, substituting talk that is good for building up and giving grace. “Corrupting” (Gk. sapros) also applies to “bad” (rotten) fruit (Luke 6:43) or “bad” (putrid) fish (Matt. 13:48). To “give grace” in speaking means to benefit others rather than corrupt them through what is said.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69.
30절)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행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것을 요청하고 있다.
(사 63:10, 개정)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특별히 25-31절에 언급된 죄는 공동체의 하나됨을 파괴한다. 그래서 공동체에 하나됨을 가져다주시는(3절)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때로 비인격적인 존재, 어떤 힘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본문에서 성령은 근심하시는 존재이다. 이는 성령께서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들로서 기뻐하시면서 동시에 슬퍼하시고 근심하신다.
(엡 1:13, 개정)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치셨다. 우리에게 구원의 날에 함께 동참할 것을 보증하신 것이다.
32절) 서로 친절하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는 삶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하나님앞에서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이며 이는 우리의 삶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강력한 변화가 부족한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값싼 복음 때문이다. 하나님의 용서의 사건을 너무나 값싸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복음의 깊은 차원에서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죄사함을 받았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는 단지 우리의 성품이 착해서 다른이를 친절히 대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았다는 사실이 우리로 그런 삶을 살도록 추동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고후 5:19절을 말한다.
(고후 5:19, 개정)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끊임없이 그렇듯이 아버지의 용서하시는 사랑의 값없는 은혜는 그의 자녀들이 서로를 용서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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