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And mhe gave the napostles, the prophets, the oevangelists, the pshepherds3 and teachers,4 12 qto equip the saints for the work of ministry, for rbuilding up sthe body of Christ, 13 until we all attain to tthe unity of the faith and of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uto mature manhood,5 to the measure of the stature of vthe fullness of Christ, 14 so that we may no longer be children, wtossed to and fro by the waves and carried about by every wind of doctrine, by human cunning, by craftiness in xdeceitful schemes. 15 Rather, yspeaking the truth in love, we are to zgrow up in every way into him who is athe head, into Christ, 16 bfrom whom the whole body, joined and held together by every joint with which it is equipped, cwhen each part is working properly, makes the body grow so that it builds itself up in love.
m [1 Cor. 12:5, 6]
n See 1 Cor. 12:28
o Acts 21:8; 2 Tim. 4:5
p Jer. 3:15; [Acts 20:28]
3 Or pastors
4 Or the shepherd-teachers
q See 2 Cor. 13:9
r ver. 16, 29
s See 1 Cor. 12:27
t [ver. 5]
u Heb. 5:14
5 Greek to a full-grown man
v ch. 1:23
w [Matt. 11:7; Heb. 13:9; James 1:6; Jude 12]
x ch. 6:11
y 1 John 3:18; [ver. 25]
z ch. 2:21
a See ch. 1:22
b Col. 2:19
c [ver. 7]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엡 4:11–16.
11절) 은사를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행 2:33절은 이렇게 말한다.
(행 2:33, 개정)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의 오른 손으로 그 아들 예수를 높이셨고 약속하신 성령은 아들에게 주심으로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주신 것이다.
고전 12:28절에 등장하는 은사의 리스트에는 첫째가 사도, 둘째가 선지자, 셋째가 교사들이다. 오늘 본문에는 복음 전하는 자가 선지자와 교사(목사와 교사)의 중간에 등장한다. 앞선 엡 2:20에서 사도와 선지자가 교회안에 근본적인 은사로 말하고 있다. 이후의 은사의 순서는 서로 상이한 것을 볼 수 있다.
(고전 12:28, 개정)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위 은사는 하나님의 교회에 주신 은사이다. 그런데 복음 전하는 사역은 엄밀하게 말하면 교회안에서 행하는 사역이 아니라 외부의 믿지 안는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이므로 고전 12장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교회를 생각해보면 여전히 교회안에도 복음 전하는 자가 필요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목사와 교사가 바로 그 역할을 해야한다. 말씀을 선포함으로 복음을 전해야할 뿐 만 아니라 말씀을 가르침을 통해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본문에서 목사는 헬라어로 ‘포이멘’이다. 이 목자에 대한 비유는 구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사용된다. 이스라엘을 유목민으로 여러곳을 이동하면 양을 기르는 일을 했기에 목자의 삶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잘 아는 시 23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목자이심을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진실한 목자이시다. 신약에서는 이 단어가 18번 등장하는데 그중에 17번은 목자로 사용되는데 명사로서의 기독교 지도자로서의 목자는 여기에만 등장한다.
신약의 공관복음의 증언에 따르면 예수는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야닉 목자이다.
According to the witness of the Synoptics in partic., Jesus is the messianic shepherd promised in the OT. There is only one ref., in the language of parable, to God as shepherd (Luke 15:4–7 par. Matt 18:12–14). The shepherd’s joy at finding his lost sheep after an anxious search is compared to God’s joy at one repentant sinner over against ninety-nine righteous. However, the Synoptics claim for Jesus the promise of the coming messianic shepherd in three ways:
(a) Jesus begins to fulfill this function by gathering the lost sheep of the house of Israel (Matt 9:36; 10:6; 15:24; cf. Luke 19:10 with Ezek 34:15). His coming marks the dawning of the era of salvation announced by the prophets. V 4, p 85 He is the promised ruler of Israel who gathers the shepherdless flock (Matt 2:6; 9:36; Mark 6:34; cf. Ezek 34:5; Mic 5:4 [MT/LXX 5:3]).
(b) But Jesus must first die for his flock and rise again (cf. Matt 26:31–32; Mark 14:27–28). Here Jesus takes up the words of Zech 13:7 and claims to be the promised shepherd to which the OT looked forward, the shepherd whose representative death ushers in the time of salvation (cf. also Isa 53, where the image is that of a lamb rather than a shepherd).
(c) The era of salvation during which the flock, the people of God, is gathered under the Good Shepherd, reaches its climax in the day of judgment. When “all the nations [πάντα τὰ ἔθνη]” are brought before him, Jesus, sitting in judgment on his glorious throne, will separate them, putting “the sheep on his right and the goats on his left” (Matt 25:31–33). The latter “will go away to eternal punishment, but the righteous to eternal life” (25:46).
partic. particular(ly)
OT Old Testament
ref. reference
par. (and) parallel(s)
cf. confer (compare)
cf. confer (compare)
MT Masoretic text
LXX Septuagint
cf. confer (compare)
OT Old Testament
cf. confer (compare)
Moisés Silva,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and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4), 84–85.
가르침은 목회사역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승천하신 주님께서 마지막 지상명령을 통해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셨다. 케리그마는 복음 전도자에 의해 선포된 것이라면 디다케는 교사들에게 맡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행 13:1에는 안디옥 교회의 리더들중에 선지자와 교사로 명명된 이들이 등장한다.
12절) 교회안에 다양한 은사를 주신 이유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All Christians have spiritual gifts that should be used in ministering to one another (1 Cor. 12:7, 11; 1 Pet. 4:10).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68.
본문을 해석하면서 성도를 온전케 함, 봉사의 일을 하게 함,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을 각각의 구문으로 보기도 하고 첫번째 구, 성도를 온전케 함에 이후의 내용이 종속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 개역 개정은 후자로 성도를 온전케 함으로 봉사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The three prepositional phrases in this verse are not coordinate one with another, as might be suggested by the RSV rendering (“for the equipment of the saints, for the work of ministry, for building up the body of Christ”);77 the second and third phrases are dependent on the first, as is indicated by their being introduced by a different preposition from the first.78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77 The first phrase is introduced by πρός (πρὸς τὸν καταρτισμὸν τῶν ἁγίων), the second and third by εἰς (εἰς ἔργον διακονίας, εἰς οἰκοδομὴν τοῦ σώματος τοῦ Χριστοῦ). In such a construction these two prepositions are interchangeable, but the variation suggests that the three phrases are not coordinate, and this is borne out by the sense of the sentence.
78 On ministry in the early church see (in addition to works listed on p. 38, n. 2, and p. 304, n. 141) J. B. Lightfoot, “The Christian Ministry,” in St. Paul’s Epistle to the Philippians (London, 1868), pp. 181–269 = Dissertations on the Apostolic Age (London, 1892), pp. 137–246; T. M. Lindsay, The Church and the Ministry in the Early Centuries (London, 1902); H. B. Swete (ed.), The Early History of the Church and the Ministry (London, 21921); B. H. Streeter, The Primitive Church (London, 1929); C. Gore (ed.), The Church and the Ministry (London, 21936); J. V. Bartlet, Church-Life and Church-Order during the First Four Centuries (Oxford, 1943); K. E. Kirk (ed.), The Apostolic Ministry (London, 1946); T. W. Manson, The Church’s Ministry (London, 1948); A. Ehrhardt, he Apostolic Ministry (Edinburgh, 1958); E. Schweizer, Church Order in the New Testament, E.T. (London, 1961); K. Kertelge, Gemeinde und Amt im Neuen Testament (München, 1972); H. Merklein, Das kirchliche Amt nach dem Epheserbrief (München, 1973).
F. F. Bruce, The Epistles to the Colossians, to Philemon, and to the Ephesi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4), 349.
13절) 다양한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신자들의 하나됨, 연합을 가능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교리를 배우는 것이 본질적으로 나뉨을 가져온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지식(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고 그분이 행하신 것과 가르치신 것을 깨닫는 것)은 사랑안에서 이루어질 때 덕을 세우고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한다. 은사를 받은 사역자들의 사역은 사변적이고 이상한 자신만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리스도 숭심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장성한 분량, 성숙함의 모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의 제자훈련이나 가르침의 방향과 목표는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다.
The diversity of gifts serves to bring about the unity of Christ’s people. Mature manhood extends the body metaphor used earlier for the church and contrasts with “children” in the next verse (see Heb. 5:11–14). Some people think that the learning of doctrine is inherently divisive, but it is people who divide the church, whereas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both knowing Christ personally and understanding all that he did and taught) is edifying and brings about “mature manhood” when set forth in love (Phil. 3:10). The work of the gifted ministers (Eph. 4:11) was to proclaim and teach the word centered on Christ rather than on speculative or eccentric teachings of their own (cf. 1 Cor. 2:2). measure. Christ Jesus is the standard of the maturity to which the church must aspire. Christ’s fullness is the full expression of his divine and human perfection (see Eph. 1:23; 3:19; Col. 1:19; 2:9).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68.
하나됨, 연합은 사랑과 인내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 이상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이 연합, 하나됨의 시작점이자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방법이다. 본문의 온전한 사람은 다음전 14절의 어린아이와 대조된다.
앞서 5절에서 '믿음도 하나이다’라고 선포했다. 그리스도의 백성이 그분에게 연합되어 있으며 그에게 연합되는 것은 믿음에 의한 것으로 그들은 서로간의 연합을 깨닫게 된다.
14절) 앞서 충만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 믿는 일과 아는일에 하나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요한 이유는 진리를 아는 일에 어린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기독교 교리, 진리에 있어서 미성숙함은 교회를 마치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의 풍조, 바람과 파도에 쉽게 흔들리고 동요되는 어린아이와 같게 한다. 본문에서는 어린아이의 연약함, 미성숙함, 쉽게 미혹되고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Immaturity in the truths of Christian doctrine makes the church like gullible children tossed helplessly by the waves and wind of cunning and deceitful schemes of false teachers (1 Pet. 2:1; 1 John 4:1–3; Jude 4; Rev. 2:2).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68.
미성숙함의 특징은 모든 종류의 잘못된 가르침에도 영향을 받고 흔들리는 것이다. 팩트, 진리에 기반한 앎이 부재할 때 우리는 가짜뉴스에 흔들린다.
검경 개혁과 언론 개혁을 외치는 이유도 이러하다. 꼭 신앙과 관련된 이슈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속에서는 다양한 가치가 혼재되어 저마다 자신이 진리라고 외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불혹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바라보고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나는 믿음 안에서 어린아이인가 성숙한 어른인가?
성경에는 어린아이, 젖먹는 아기에 대한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신앙안에서 갓 태어난 초신자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들의 성장을 위해서 영적인 우유가 필요하다. 어린 아이, 유아는 방어할 수 없고 그들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 영적인 삶에 있어서 그들은 거짓 선생들의 먹이가 되기 쉽고 진리의 길로 부터 그들을 이끌어 길을 잃게되기 쉽다. 마치 조종할 적절한 수단이 없는 바다위의 배와 같다. 그들은 파도에 의해서 그리고 이를 일으키는 엄청난 바람에 의해서 흔들린다. 성숙함은 여러 종류의 가르침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다 준다. 무엇이 받아들여할 진리이고 무엇이 거부해야할 거짓된 진리인지 말이다. 성숙한 자는 선과 악을 분별해내는 능력을 훈련한 자이다.
More than once the NT writers use the term “infants”83 to denote spiritual immaturity—an immaturity which is culpable when sufficient time has passed for those so described to have grown out of infancy. Paul tells the Corinthian Christians that, for all their cultivation of “knowledge,” he could not address them as spiritual men and women but as “infants” in Christ,” still needing to be fed with milk rather than solid food (1 Cor. 3:1–2). Similarly, the writer to the Hebrews tells his readers that “everyone who lives on milk is unskilled in the word of righteousness, for he is an infant” (Heb. 5:13). No blame is attached to the people addressed in 1 Peter for being “newborn babes,”84 because they are recent converts; but they are urged to develop an appetite for “the pure spiritual milk” and thus “grow up to salvation” (1 Pet. 2:2). It may be that the people addressed in Ephesians have been “infants” in this sense thus far, but they must not be content to remain at this stage. Infants are defenseless, unable to protect themselves; in the spiritual life they are an easy prey for false teachers and others who would like to lead them astray from the true path. Like ships at sea without adequate means of steering, they are tossed about by the waves and carried this way and that according to the prevailing wind.85 Maturity brings with it the capacity to evaluate various forms of teaching, to accept what is true and reject what is false. The mature “have their faculties trained by practice to distinguish good from evil” (Heb. 5:14).
83 Gk. νήπιοι. For natural infancy as a parable of spiritual infancy see Gal. 4:1, 3. See W. Grundmann, “Die νήπιοι in der urchristlichen Paränese,” NTS 5 (1958–59), 188–205.
84 Not νήπιοι but ἀρτιγέννητα βρέφη. It may be that the people addressed in 1 Peter were younger in the faith than those addressed in Ephesians.
85 Gk. κλυδωνιζόμενοι (from κλύδων, “wave,” “rough water”); cf. Jas. 1:6, κλύδωνι θαλάσσης ἀνεμιζομένῳ καὶ ῥιπιζομένῳ (“a wave of the sea that is driven and tossed by the wind”).
F. F. Bruce, The Epistles to the Colossians, to Philemon, and to the Ephesi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4), 351.
15절) 앞서 어린아이를 미혹함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온갖 속임수와 유혹의 풍조에 흔들리는 교회를 양육하는데 있어서 사용되는 진리는 순종을 요구하는 몽둥이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함으로 자라가도록 양육하고 도와야 한다. 사랑안에서 진리를 말함이 우리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 진리는 그리스도인을 성숙으로 인도하며 여기서 성숙의 목표는 바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것이다.
The truth must not be used as a club to bludgeon people into acceptance and obedience but must always be presented in love. The truth leads the Christian to maturity, which is defined here as growing up into Christ. As head, Christ leads, directs, and guides the body (see 5:23; 1 Cor. 11:3).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69.
우리의 목표는 사랑안에서 진리를 말함으로 머리이신 그분안에서 범사에 자라가는 것이다. 인간의 몸의 성장과 관련해서 볼때 어린 아이일때 머리가 상대적으로 크다. 하지만 시간이 자라서 장성하게 되면 몸이 더욱 커져서 균형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는 몸과 머리의 관계를 그분의 백성과 그리스도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다.
In truth and love together, then, the readers are exhorted to grow up in all parts of their being so that the body of Christ may be properly proportioned in relation to the head. This idea of the growth of the body of Christ until it matches the head has been compared to the normal development of the human body: in infancy the body is small in comparison with the head, but it grows until it attains the proportions which the body bears to the head in a fully grown human being.90 This analogy may be helpful up to a point, but the language used here about the interrelation of body and head is conditioned by the relation existing between Christ and his people. They grow up to the measure of his full stature, but at the same time it is from him that they draw the resources necessary for growth. Christ is the head, but the full man comprises both head and body, so Christ the head is also, from another point of view, Christ corporate.91
90 Cf. R. A. Knox, Saint Paul’s Gospel (London, 1953), p. 84.
91 Cf. H. Schlier, Christus und die Kirche im Epheserbrief, pp. 38–39.
F. F. Bruce, The Epistles to the Colossians, to Philemon, and to the Ephesi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84), 352.
16절) 바울은 계속해서 몸의 비유를 통해서 교회의 성숙을 묘사하고 있다. 모든 몸의 기관은, 교회의 모든 멤버는 각자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고 각자의 분량대로 역사함으로 그 몸을 자라게하고 몸을 세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이는 그 어떤 그리스도인의 성숙이나 사역도 없다(고전 13장).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사역은 이것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할 때 그 몸을 자라게 하고 스스로를 세워나간다.
joint. Paul continues the body metaphor to describe the church’s maturity. Every member (i.e., every believer, viewed as a limb, or unit, in Christ’s body) plays a crucial role in this growth. in love. There is no Christian maturity or true Christian ministry without love (1 Corinthians 13), and every act of love in the name of Christ is valued and remembered by him, as each part is working properly (illustrated in Eph. 4:25–32; cf. Matt. 25:31–43; 26:6–13).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269.
본문은 엡 2:21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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