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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uBlessed is the man who remains steadfast under trial, for when he has stood the test he will receive vthe crown of life, wwhich God has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13 Let no one say when he is tempted, “I am being tempted by God,” for God cannot be tempted with evil, and he himself tempts no one. 14 But each person is tempted when he is lured and enticed by his own desire. 15 Then desire xwhen it has conceived gives birth to sin, and ysin when it is fully grown brings forth death.

16 Do not be deceived, my beloved brothers. 17 zEvery good gift and every perfect gift is from above, coming down from athe Father of lights, bwith whom there is no variation or shadow due to change.4 18 cOf his own will he dbrought us forth by the word of truth, ethat we should be a kind of ffirstfruits of his creatures.

u ch. 5:11; Matt. 10:22; 1 Pet. 3:14; [Dan. 12:12]

v Rev. 2:10; 3:11; [1 Cor. 9:25; 2 Tim. 4:8; 1 Pet. 5:4]

w ch. 2:5

x Job 15:35; Ps. 7:14; Isa. 59:4

y Rom. 5:12; 6:23

z Ps. 85:12; John 3:27; 1 Cor. 4:7

a 1 John 1:5

b Mal. 3:6

4 Some manuscripts variation due to a shadow of turning

c John 1:13

d [Gal. 4:19; 1 Pet. 1:3, 23]

e [Eph. 1:12]

f Jer. 2:3; Rev. 14:4; [Rom. 8:19–23]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약 1:12–18.

 

12절) 본문의 생명의 면류관은 앞선 2절의 응답이다. 이는 보석이 장식된 황제의 왕관이 아니라 경기의 승자나 전쟁에 승리한 황제에게 주어지는 월계수 관을 가리킨다.(고전 9:25) 이처럼 시험을 이겨내는 신실한 자에게 약속된 상은 다름아닌 모든 풍성한 복이 동반된 영원한 생명이다.(계 2:10)

 

13절) 앞선 본문 2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약 1:2, 개정)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가지 시험을 우리는 당한다. 이는 시련을 포험한 여러가지이다. 믿음의 시련은 ‘도키미온’이라는 단어로 불순물을 포함한 금이 순금이 되기위해서 거쳐야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러 시험은 테스트나 유혹, 시련을 포함한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라고 야고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신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창 22장), 이스라엘(출 16:4), 히스기야(대하 32:31)를 시험하셨다. 이는 그들을 검증하심으로 그들의 성품이 더욱 견고해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욱 굳건히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좀더 명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시험(test) 하시지만 유혹(tempt)하시지는 않는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꾀어서 그들로 죄를 저지르도록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백성들이 죄를 짓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짓는 것에 대해서 이를 하나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 13절의 하반부에는 왜 유혹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려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하나는 하나님의 속성과 연관되는데, 그 분은 악에게 시험을 받으실 수 없기 때문이다(he cannot be tempted with evil).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택하고 있는 이 번역은 드물게 사용되는 헬라어 단어 아페이라스토스(apeirastos)를 수동의 의미를 지닌 동사적 형용사로 이해하여 ‘유혹받으실 수 없는’(unable to be tempted)의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다른 두 개의 가능성도 언급될 수 있다. 호르트는 그 단어를 좀 더 자주 사용되는 유사어 아페이라토스(apeiratos)와 연관시켜 ‘전혀 경험이 없는’(inexperienced)으로 해석한다. 이 해석은 NEB에 반영되어, ‘하나님은 악과 접촉이 없으시다(untouched)’로 표현된다. 반면에 데이비스(Davids)는 이 단어를 ‘시험받아서는 안 된다(ought not to be tested)’로 번역한다. 그에

  • NEB The New English Bible, Old Testament, 1970; New Testament,21970.

  •  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106.

 

14-15절)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를 짓는 것을 미워하시고 싫어하심에도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이를 통해서 마음껏 선택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이 죄를 낳았고 이것이 자라나 사망을 가져오게 된것이다. 

본문에서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모습은 낚시꾼이 낚시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루어 낚시’가 있다. 이는 지렁이나 떡밥과 같은 미끼가 아닌 인조 미끼를 사용하는 낚시를 말한다. 보통 릴 낚시로 루어(미끼)를 멀리 던진후 릴을 감으면서 헤엄치듯 움직여 고기를 유인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욕심에 미혹된 인간은 우리를 유혹하는 거짓된 성공, 자기만족, 기쁨에 끌려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다. 결국 길을 잃고 멀리 떨어져 덫에 걸려들게 되는 것이다. 

(벧전 5:8-9, 개정)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우리는 욕심이 우리를 삼키지 못하도록 깨어서 경성해야 한다. 

본문은 3대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설명한다. 욕심이 자라나 잉태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그것이 바로 죄이다. 그리고 그 죄가 장성하여 새롭게 잉태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망인 것이다. 결국 욕심(에피티미아)-죄(하말티아)-사망(타나토스)의 사이클이 이러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이클을 끊어 내야 한다. 

 

 

James knows the origin of temptation. It is not God, nor is it Satan and Satan alone. It is instead a personal desire born of self-interest that renders us susceptible to the evil inclination and therefore, at times, to the wiles of the evil one. We may wrongly seek to blame others, Satan, or even God, but ultimately we are morally responsible. The key term here is epithymia, which means “desire.” In the New Testament epithymia generally carries a negative meaning, such as “lust,” “selfish ambition,” or “evil desire.”14

Unlike the case in 1:2–8, here peirasmos (“temptation, trial”) is clearly restricted in origin to the internal, to its source lodged within us. This source is the “evil desire,” and James must be thinking again of the yeṣer ha-ra.15 According to him, we are “dragged away” and “enticed” by evil desire. The expressions have their home in the realms of hunting and fishing. The fact that they appear in an odd order (“dragged off” is placed before “enticed”) is best explained by the predilection of the Old Testament to mesh images of snares and nets. So in Ecclesiastes 9:12 we read, “As fish are caught in a cruel net, or birds taken in a snare, so men are trapped by evil times that fall unexpectedly upon them.”

In other words, this verse contains two similar images, not a succession of action within one image. The first pictures the violent action of capture that follows setting a lure, and second the attractive bait that draws an unsuspecting victim. The extraordinary vividness of these images shows how dangerous James believes the evil impulse to be. Evil desire within us acts as both the attractive bait and as the lure. The evil desire is our own, and a bent to be attracted to it is equally our own responsibility. This deep character inclination explains the actions of the double-minded person in 1:6–8 and the wealthy person in 1:10.

14 In Matt. 5:28 Jesus speaks of “lust”; Paul in 2 Tim. 3:6 speaks of those who are swayed by “evil desires”; and Peter in 2 Peter 1:4 speaks of escaping the corruption caused by “evil desires.”

15 See pp. 18, 23–24, 56–58, above.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e variety of rabbinic views concerning the yeṣerim (sometimes it is undifferentiated, sometimes clearly evil, and sometimes clearly pure) parallels the intended ambiguity of James’s use of peirasmos.

 David P. Nystrom, Jame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73–74.

 

16-18절) 야고보는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속지 말라고 말하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서 다시 설명한다. 앞서 하나님은 시험을 받지도 시험을 하지도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했다면 이제는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시련을 당할때 그들을 죄짓도록 유혹하시는 분이 아니라 은사와 선물을 통해서 그들로 하여금 더욱 강건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인간 세상의 그 누구와 달리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복음의 말씀 고후 6:7, 엡 1:13, 골 1:5, 딤후 2:15)을 통해서 우리를 낳으셨다. 이는 거듭남을 의미한다. 이미 어머니의 태에서 출생한 우리들이 다시금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영적인 구원을 의미한다. 

본절에서 영적인 생명의 탄생을 말한다면 앞선 15절에서는 죄와 사망의 탄생을 말하고 있댜. 

  • 새 탄생은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 즉 그 분이 창조한 피조물과는 달리 전혀 변함이 없으신 그 분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이 영적 탄생을 이루신 수단이 바로 진리의 말씀인 복음이다. 그리고 이 영적 탄생의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계획의 첫 불입금(첫 열매)이 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구원이라는 좋은 선물을 모든 피조물에게 주시기를 원하신다.

  •  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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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r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flesh set their minds on sthe things of the flesh, but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Spirit set their minds on tthe things of the Spirit. For to set uthe mind on the flesh is death, but to set the mind on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For the mind that is set on the flesh is vhostile to God, for it does not submit to God’s law; windeed, it cannot. Those who are in the flesh cannot please God. 
r[Gal. 6:8]
sGal. 5:19–21
tGal. 5:22, 23, 25
uver. 13; [Col. 2:18]; See ch. 6:21
vJames 4:4
w1 Cor. 2:1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롬 8:5–8.

5-6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사람의 생각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결정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달려있다. 도덕적인 선택은 지적인 경향에 선행하고 이를 결정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동하는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윤리적인 결정은 잘못 인도된 이성보다 더 자주 오류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 People’s decisions about how they intend to live determines how they think about things. Moral choice precedes and determines intellectual orientation. People do not think themselves into the way they act but act themselves into the way they think. Ethical decision, more often than misguided reason, lies at the heart of error.
  •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177.

우리는 과연 무엇을 따르고, 추구하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결국 이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되고 우리는 그것에 따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결국은 사망이냐 생명이냐로 귀결되는 것이다. 

바울은 무엇을 생각하느냐의 결과를 극단적으로 대조하고 있다. 바클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일들이 삶을 완전히 지배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자멸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적 자살이다.” 이에 대해서 갈 6:8은 이렇게 말한다. 
갈라디아서 6:8(NKRV)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 Paul continued the contrast by pointing out the consequences that necessarily follow each way of thinking. The carnal mind132leads to death. Barclay writes that “to allow the things of the world completely to dominate life is self extinction; it is spiritual suicide.”133On the other hand, the Spirit-controlled mind leads to life and peace.134The same   p 178  contrast is found in Gal 6:8: “The one who sows to please his sinful nature, from that nature will reap destruction; the one who sows to please the Spirit, from the Spirit will reap eternal life.”135
  • 132The NIV has “the mind of sinful man” but includes in the margin the alternate “the mind set on the flesh.” The Greek text is τὸ φρόνημα τῆς σαρκός.
  • 133Barclay, Romans, 104.
  • 134Moo holds that Paul was not talking about a subjective state of mind but about the objective reality of the salvation into which the believer has entered (Romans 1–8, 520). But EDNTnotes that φρόνημα τῆς σαρκός and φρόνημα τοῦ πνεύματος describe “two fundamentally different ways of orienting one’s life and actions, corresponding to two mutually exclusive ways of standing—before faith … and in faith” (3.439).
  • 135Compare Jesus’ teaching regarding the two roads, the broad road that leads to destruction and the narrow road that leads to life (Matt 7:13–14).
  •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177–178.

영어 성경은 본문을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flesh”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헬라어의 의미는 “those who are according to the flesh.”이다. 이는 바울이 실제적으로 기능적보다는 존재론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무엇을 행하는 것보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4절이 그 걸음을 묘사했다면 5-8절은 그 걸음 배후에 있는 본성을 묘사한 것이다. 말하자면 타락한 본성, 육신은 그 본성이 갈망하는 것을 마음에 둔다. 이것은 생각과 의지의 과정을 포함한다. 그들은 무엇이 옳은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욕구에 기반해서 선택한다. 반면에 영을 따르는 사람은 영의 것을 마음에 둔다. 
  • Both contrasts deal with the mindset of two groups of people: the converted and the unconverted. The niv translates,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flesh,but the Greek says, “those who are according to the flesh.” In actuality, Paul describes the ontological rather than the functional, that is, who they are rather than what they do (contra Dunn 1988a). Verse 4 describes the walk, verses 5–8 the nature behind that walk. Those of the flesh (again, describing the fallen nature) have their minds set on what that nature desires(literally, “the things of the flesh”). This includes the thinking process and the will (indeed, the whole person); it goes back to 1:21, 28 and the fact that depravity is especially manifest in the mindset of “those who are according to the flesh.” Note that they deliberately choose not on the basis of what is right but on the basis of self-centered desires. Everything they do is controlled by the concerns of this world. In contrast, those who are characterized by the Spirit have their minds set on“the things of the Spirit” (niv translates what the Sprit desires). They are directed by the Spirit and both think and choose that which is in accordance with the Spirit. Hendriksen says (1981:248), “Those who live according to the Spirit, and therefore submit to the Spirit’s direction, concentrate their attention on, and specialize in, whatever is dear to the Spirit. In the conflict between God and sinful human nature the first group sides with human nature, the second sides with God.”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198.

6절 본문에서 생각은 단순한 생각(thoughts)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바램, 관점, 세계관(desires, outlook, worldview)을 말한다.
  • Mindhere refers not just to the thoughts but to the desires, outlook and worldview of the person. When the mindset is grounded in the flesh, deathin its broadest sense is the result. This is not just final death in eternal punishment but a state of death that rules over the unsaved throughout their lives (cf. 5:12–15; 7:10–13), ending in the “second death” of Rev 2:11 and 20:6. Morris (1988:306) says that “to be bounded by the flesh is itself death. It is a cutting off of oneself from the life that is life indeed.” Those who center on the Spirit, however, experience life and peace. Lifeis eternal life in 2:7, 5:21, and 6:22–23 and present life in Christ in 7:10 and 8:2. Here it is both. Peacewith God is the result of justification (5:1). While it could refer to the tranquility of the soul (a peaceful heart, so Dodd 1932; Morris 1988), it more likely refers to the state of being reconciled to God, of being in right relationship with him.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198–199.

7-8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하나님의 법에 굴복, 순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다. 또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본절에서 바울은 왜 육신의 생각이 사망에 이르게 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원수됨의 토대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이들은 율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굴복할 수도 없다라고 말한다. 죄의 본성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적 타락이다. 죄된 본성에 의해 의지가 굴복당한 것이다. 이러한 이들이 때로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따르기 때문이 아니라 상황으로 인한 것이다. 죄는 그들의 삶의 전 영역을 통제한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 Paul now explains why (dioti, because,omitted from the niv) the fleshly mind must be in a state of death (vv. 7–8): the sinful mind is hostile to God.The term hostiledoes not just describe a person who has become an enemy of God; rather it describes a fierce, active enmity toward all that God is and stands for. The entire mindset is directed against the things of God, and this opposition is the chief characteristic of the state of death. It desires that which pleases self rather than that which pleases God, and its actions oppose that which God demands. This of course does not mean that secular persons are incapable of doing good but does mean that they do not seek the things of God. The basis of that hostility is its refusal to submit to God’s law. God’s lawcould be the Mosaic ordinances (as in vv. 3–4) or God’s demands in general (as in 7:21, 23, though in 7:22 “God’s law” refers to the Mosaic law), but in the larger context of chapters 7–8 it most likely refers to the Torah. The hostile mind of the carnal person is completely incapable of placing itself under (the meaning of submit) God’s law. Paul intensifies this refusal by saying it is grounded in the very nature when he adds, nor can it do so.Because of the nature of sin, it is completely incapable of following God’s law, again a reflection back to 1:18–32. This of course is total depravity, the domination of the will by the sinful nature. Once more, this does not imply that unbelievers are incapable of doing good or recognizing what is good; instead, it means they cannot choose good for God’s sake. When they do good, it is due to the situation rather than to any desire to please God or follow him. Sin controls every aspect of their lives. In fact, that is the very point of the next verse. Because sinners are incapable of submitting to God’s law, they cannot please God. They are “in the flesh” (compare 7:5); that is, they have the flesh as the sphere of their existence. Thus it is impossible for them to be pleasing to God. The verb pleaserefers to a desire to please God and denotes that unbelievers exemplify an attitude of indifference, a lack of desire to bring pleasure to God, indeed an inability even to want to do so (contra Paul in 1 Thess 2:4; see Schneider 1990:151).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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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For when you were slaves of sin, you were free in regard to righteousness. 21 wBut what fruit were you getting at that time from the things xof which you are now ashamed? yFor the end of those things is death. 22 But now that you zhave been set free from sin and ahave become slaves of God, bthe fruit you get leads to sanctification and cits end, eternal life. 23 d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fre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롬 6:20–23.

자유는 우리가 섬길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주인을 섬길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다. 의는 거룩함으로 이끌고 죄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은 악으로 이끈다. 의는 죄에 의에 영향을 받은 도덕적 방향을 바꾸어 성화로 이끕니다. 이 두 경우 모두 과정이 진행중입니다. 죄를 즐기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자신이 윤리적 줄다리기로 실패할게 될 것입니다. 이 갈등의 대답은 실제적입니다. 너의 몸을 썩을 것에 드리지 말고 선하고 순결한 행동들에 드리십시오. 
Freedom is not a question of whether or not we would like to serve but the choice of which master we will serve. Righteousness leads to holiness; sin as a master promotes wickedness. Righteousness reverses the moral direction taken by sin and leads to sanctification. In both cases a process is under way. Christians who entertain sin find themselves in an ethical tug-of-war they are bound to lose. The answer to this conflict is practical; surrender your body to those activities that are good and pure rather than to those that defile.
When sin was our master, we were free from the control of righteousness (v. 20). And what benefit did we reap from that lifestyle (v. 21)?56 (We are now ashamed of how we lived.) We received no benefit at all, unless of course we consider the negative reward of death!57 But now we are set free from sin’s bondage (v. 22).58 We have become slaves of God. And is there benefit in this? Most certainly! The reward for serving God is growth in holiness and, in the end, eternal life.59 In fact, apart from holiness there is no eternal life. The author to Hebrews counseled a holy life because “without holiness no one will see the Lord” (Heb 12:14). Slavery to sin results in death. Slavery to righteousness leads to eternal fellowship with God. Or, in the words of Jesus, the broad road (the path of sin) leads to destruction, but the narrow road (the way of righteousness) leads to life (Matt 7:13–14).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158.

본문은 19절의 명령에 기반한다. 20절 초반에 '가르'라는 접속사가 사용된다. 이는 그러므로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때'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이제'를 대조한다. 
20-22절) 우리가 죄의 종이었을 때는 의에 대해서 자유로웠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부끄러워하는 그 것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그 일의 끝은 사망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페 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열매는 거룩함이고 그것의 마침은 영생입니다. 
21절과 22절은 완벽하게 대조를 이룬다. 
불신자가 죄의 노예의 상태에 있을 때 부끄러움의 열매를 맺게 되고 이것으리 결국은 사망이다. 반면에 신자들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됨으로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 되고 이것의 결국은 영생이다. 
- The transfer from the realm of sin and death to the realm of righteousness and life (vv. 20–23) is the ground for the command in verse 19. (Verse 20 begins with a gar[“for”], not translated in the niv.) Paul again contrasts the “when” of our pre-Christian past (vv. 20–21) with the “now” of our Christian present (vv. 22–23). Non-Christians often pride themselves on being free, in contrast to Christians, who in their estimation have lost their human autonomy by bowing the knee to Christ. Paul notes that non-Christians do, indeed, have a freedom—the freedom not to be able to lead righteous lives. Genuine autonomy is not an option. If one is not serving God, then, whether knowingly or not, one is serving sin.
To bring to our minds even more forcibly the negative side of our pre-Christian past, Paul reminds us of the shame we feel for what we used to do. Just how he makes this point in verse 21 is debated. The niv suggests that Paul asks a rhetorical question implying the answer “none.”5 But it is preferable to follow here the punctuation adopted in, for instance, the njb: “What did you gain from living like that? Experiences of which you are now ashamed, for that sort of behaviour ends in death.”6 The verse then matches the structure of verse 22 almost exactly:



StatusResultOutcome
Before we were Christians (v. 21):slaves of sin, free from righteousnessfruit bringing shamedeath
Now that we are Christians (v. 22):free from sin, slaves of Godfruit bringing sanctificationlife
Douglas J. Moo, Rom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2000), 212.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다. 
우리가 쌓은 죄로 인해 그 삯으로 지불된 것은 바로 사망이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사망과 영생, 얻는 것과 주는 것의 대조를 볼 수 있다. 죄인들은 죄의 충동에 순종함으로 죄의 댓가를 쌓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이자 사망이다. 반대로 의의 충동에 복종하는 것으로 신자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한 생명, 영생을 선물로 받는다. 의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 통해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의에 대한 순종이 이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 It all comes down to this: the wages paid by sin are death,60   p 159  but the gift God gives is eternal life (v. 23).61 Not only is the contrast between death and life but also between earning and giving. Sinners earn what they receive. By obeying the impulses of sin, they are storing up the reward for sinning. Their severance check is death—eternal separation from God, who alone is life. By yielding to the impulses of righteousness, believers do not earn anything. They do, however, receive a gift—the gift of eternal life, which comes by faith through Jesus Christ their Lord.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158–159.

우리는 본문에서 군대와 추수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추수때에 일군이 받는 삯, 혹은 군인이 참전의 대가로 받는 삯을 떠올릴 수 있다. 군인이 나라에 충성함으로 대가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죄의 대가는 바로 영원한 사망이다. 죄의 마지막 삯은 바로 죽음이다. 그 이전에 받는 삯은 부끄러움이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적, 영적 죽음으로 모두 포괄한다.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죄는 삯이고 영생은 선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조는 의도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반드시 그들의 행위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기초로 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는 없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만이 가능하다. 
- Paul concludes the chapter as well as verses 20–22 in verse 23, the justly well-known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With the image of wages, Paul adds another metaphor to those he has already used—baptism, the transfer from one kingdom to another, the old self, rendering a force powerless, joining an army, slavery, and harvest imagery. This is close to the harvest theme, for it denotes payment for services rendered. In fact, we again have a military image (Käsemann 1980; Schreiner 1998) denoting the wagespaid soldiers for serving their country. So sin is a ruler giving to his army what they have earned, namely eternal death (as in v. 21). This is certainly the worst wagesever paid anyone, but it is also true that this is earned by a lifetime of rejecting God and deliberately choosing sin. As Dunn says (1988a:349), death is “sin’s final payoff” (shame, 6:21, could be called an earlier payoff). In fact, deathhere is both the physical death that ends this earthly life and the eternal death that follows, though the latter is primary. While death is typified as wages,eternal life is seen as a gift.The contrast is deliberate (see also 5:21). One is judged by works (Rev 20:12–14) but cannot earn eternal life on the basis of works (see 3:20, 27–28; 4:2–5, 14; Eph 2:8–9; 2 Tim 1:9; Tit 3:5). Eternal life is God’s gracious gift. Moreover, this is all possible only in Christ Jesus our Lord,a formal title stressing his lordship that appears also in 1:4, 7; 5:1, 11, 21; 7:25; 8:39; 13:14; 15:6, 30. Here it says that the gift of eternal life is only possible in Christand his lordship over salvation.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166.

- Verse 23 not only explains the contrasting “outcomes” of death and life, but also brings the chapter to a fitting conclusion. That sin leads to death has been a background motif since 5:12. Only by remembering the dark side of life outside of Christ can we truly appreciate God’s “gift” to us, the gift of his grace that bring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As Lloyd-Jones points out, this verse makes three contrasts basic to Paul’s teaching in this part of the letter:
    the master that is served—sin versus God
    the outcome of that service—death versus eternal life
    how that outcome is reached—a “wage” earned versus a “gift” received.
Douglas J. Moo, Rom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2000),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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