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uBlessed is the man who remains steadfast under trial, for when he has stood the test he will receive vthe crown of life, wwhich God has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13 Let no one say when he is tempted, “I am being tempted by God,” for God cannot be tempted with evil, and he himself tempts no one. 14 But each person is tempted when he is lured and enticed by his own desire. 15 Then desire xwhen it has conceived gives birth to sin, and ysin when it is fully grown brings forth death.
16 Do not be deceived, my beloved brothers. 17 zEvery good gift and every perfect gift is from above, coming down from athe Father of lights, bwith whom there is no variation or shadow due to change.4 18 cOf his own will he dbrought us forth by the word of truth, ethat we should be a kind of ffirstfruits of his creatures.
u ch. 5:11; Matt. 10:22; 1 Pet. 3:14; [Dan. 12:12]
v Rev. 2:10; 3:11; [1 Cor. 9:25; 2 Tim. 4:8; 1 Pet. 5:4]
w ch. 2:5
x Job 15:35; Ps. 7:14; Isa. 59:4
y Rom. 5:12; 6:23
z Ps. 85:12; John 3:27; 1 Cor. 4:7
a 1 John 1:5
b Mal. 3:6
4 Some manuscripts variation due to a shadow of turning
c John 1:13
d [Gal. 4:19; 1 Pet. 1:3, 23]
e [Eph. 1:12]
f Jer. 2:3; Rev. 14:4; [Rom. 8:19–23]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약 1:12–18.
12절) 본문의 생명의 면류관은 앞선 2절의 응답이다. 이는 보석이 장식된 황제의 왕관이 아니라 경기의 승자나 전쟁에 승리한 황제에게 주어지는 월계수 관을 가리킨다.(고전 9:25) 이처럼 시험을 이겨내는 신실한 자에게 약속된 상은 다름아닌 모든 풍성한 복이 동반된 영원한 생명이다.(계 2:10)
13절) 앞선 본문 2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약 1:2, 개정)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가지 시험을 우리는 당한다. 이는 시련을 포험한 여러가지이다. 믿음의 시련은 ‘도키미온’이라는 단어로 불순물을 포함한 금이 순금이 되기위해서 거쳐야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러 시험은 테스트나 유혹, 시련을 포함한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라고 야고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백성을 시험하신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창 22장), 이스라엘(출 16:4), 히스기야(대하 32:31)를 시험하셨다. 이는 그들을 검증하심으로 그들의 성품이 더욱 견고해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욱 굳건히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좀더 명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시험(test) 하시지만 유혹(tempt)하시지는 않는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꾀어서 그들로 죄를 저지르도록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백성들이 죄를 짓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짓는 것에 대해서 이를 하나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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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의 하반부에는 왜 유혹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려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하나는 하나님의 속성과 연관되는데, 그 분은 악에게 시험을 받으실 수 없기 때문이다(he cannot be tempted with evil).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 택하고 있는 이 번역은 드물게 사용되는 헬라어 단어 아페이라스토스(apeirastos)를 수동의 의미를 지닌 동사적 형용사로 이해하여 ‘유혹받으실 수 없는’(unable to be tempted)의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다른 두 개의 가능성도 언급될 수 있다. 호르트는 그 단어를 좀 더 자주 사용되는 유사어 아페이라토스(apeiratos)와 연관시켜 ‘전혀 경험이 없는’(inexperienced)으로 해석한다. 이 해석은 NEB에 반영되어, ‘하나님은 악과 접촉이 없으시다(untouched)’로 표현된다. 반면에 데이비스(Davids)는 이 단어를 ‘시험받아서는 안 된다(ought not to be tested)’로 번역한다. 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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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B The New English Bible, Old Testament, 1970; New Testament,2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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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106.
14-15절)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를 짓는 것을 미워하시고 싫어하심에도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이를 통해서 마음껏 선택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이 죄를 낳았고 이것이 자라나 사망을 가져오게 된것이다.
본문에서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모습은 낚시꾼이 낚시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루어 낚시’가 있다. 이는 지렁이나 떡밥과 같은 미끼가 아닌 인조 미끼를 사용하는 낚시를 말한다. 보통 릴 낚시로 루어(미끼)를 멀리 던진후 릴을 감으면서 헤엄치듯 움직여 고기를 유인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욕심에 미혹된 인간은 우리를 유혹하는 거짓된 성공, 자기만족, 기쁨에 끌려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다. 결국 길을 잃고 멀리 떨어져 덫에 걸려들게 되는 것이다.
(벧전 5:8-9, 개정)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우리는 욕심이 우리를 삼키지 못하도록 깨어서 경성해야 한다.
본문은 3대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설명한다. 욕심이 자라나 잉태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그것이 바로 죄이다. 그리고 그 죄가 장성하여 새롭게 잉태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망인 것이다. 결국 욕심(에피티미아)-죄(하말티아)-사망(타나토스)의 사이클이 이러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이클을 끊어 내야 한다.
James knows the origin of temptation. It is not God, nor is it Satan and Satan alone. It is instead a personal desire born of self-interest that renders us susceptible to the evil inclination and therefore, at times, to the wiles of the evil one. We may wrongly seek to blame others, Satan, or even God, but ultimately we are morally responsible. The key term here is epithymia, which means “desire.” In the New Testament epithymia generally carries a negative meaning, such as “lust,” “selfish ambition,” or “evil desire.”14
Unlike the case in 1:2–8, here peirasmos (“temptation, trial”) is clearly restricted in origin to the internal, to its source lodged within us. This source is the “evil desire,” and James must be thinking again of the yeṣer ha-ra.15 According to him, we are “dragged away” and “enticed” by evil desire. The expressions have their home in the realms of hunting and fishing. The fact that they appear in an odd order (“dragged off” is placed before “enticed”) is best explained by the predilection of the Old Testament to mesh images of snares and nets. So in Ecclesiastes 9:12 we read, “As fish are caught in a cruel net, or birds taken in a snare, so men are trapped by evil times that fall unexpectedly upon them.”
In other words, this verse contains two similar images, not a succession of action within one image. The first pictures the violent action of capture that follows setting a lure, and second the attractive bait that draws an unsuspecting victim. The extraordinary vividness of these images shows how dangerous James believes the evil impulse to be. Evil desire within us acts as both the attractive bait and as the lure. The evil desire is our own, and a bent to be attracted to it is equally our own responsibility. This deep character inclination explains the actions of the double-minded person in 1:6–8 and the wealthy person in 1:10.
14 In Matt. 5:28 Jesus speaks of “lust”; Paul in 2 Tim. 3:6 speaks of those who are swayed by “evil desires”; and Peter in 2 Peter 1:4 speaks of escaping the corruption caused by “evil desires.”
15 See pp. 18, 23–24, 56–58, above.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e variety of rabbinic views concerning the yeṣerim (sometimes it is undifferentiated, sometimes clearly evil, and sometimes clearly pure) parallels the intended ambiguity of James’s use of peirasmos.
David P. Nystrom, Jame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73–74.
16-18절) 야고보는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속지 말라고 말하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서 다시 설명한다. 앞서 하나님은 시험을 받지도 시험을 하지도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했다면 이제는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시련을 당할때 그들을 죄짓도록 유혹하시는 분이 아니라 은사와 선물을 통해서 그들로 하여금 더욱 강건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인간 세상의 그 누구와 달리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복음의 말씀 고후 6:7, 엡 1:13, 골 1:5, 딤후 2:15)을 통해서 우리를 낳으셨다. 이는 거듭남을 의미한다. 이미 어머니의 태에서 출생한 우리들이 다시금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영적인 구원을 의미한다.
본절에서 영적인 생명의 탄생을 말한다면 앞선 15절에서는 죄와 사망의 탄생을 말하고 있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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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탄생은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 즉 그 분이 창조한 피조물과는 달리 전혀 변함이 없으신 그 분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이 영적 탄생을 이루신 수단이 바로 진리의 말씀인 복음이다. 그리고 이 영적 탄생의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계획의 첫 불입금(첫 열매)이 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구원이라는 좋은 선물을 모든 피조물에게 주시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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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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