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eCount it all joy, my brothers,2 when you meet trials fof various kinds, 3 for you know that gthe testing of your faith hproduces steadfastness. 4 And let steadfastness have its full effect, that you may be iperfect and complete, lacking in nothing.
e See Matt. 5:12
2 Or brothers and sisters. In New Testament usage, depending on the context, the plural Greek word adelphoi (translated “brothers”) may refer either to brothers or to brothers and sisters; also verses 16, 19
f 1 Pet. 1:6
g 1 Pet. 1:7
h Rom. 5:3; [ch. 5:11; Heb. 10:36; 2 Pet. 1:6]
i 1 Thess. 5:23; See Matt. 5:48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약 1:2–4.
2절) 내 형제들아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서 전체에서 “내 형제들아”라는 호칭은 서신 전체에서 14번 등장한다. 이중 세번은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사용된다. 이 표현은 새로운 단락을 도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험중에 기뻐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볼때 시험은 영적인 성숙을 가져다 주기에 이를 기쁘게 여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세상적인, 혹은 일시적인 기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상 만물을 지배하시는 주님안에서의 완전한 기쁨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의 인생가운데 닥쳐오는 다양한 시험, 고난, 역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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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의 첫 권면이 바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count it all joy)는 것이다. 이 권면은 어떤 상황에서든 기쁨의 태도를 선택해야 함을 암시하는 무조건적인 성격을 띤다. ‘기쁨’을 수식하는 ‘모든’(all)은 다른 어떤 감정과도 섞이지 않는 기쁨, 즉 ‘기쁨 외에는 없는, 오로지(only) 기쁨으로만 여기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기쁨의 양 보다는 기쁨의 질이 더 강조된다. 즉 ‘더할 나위 없는 행복’(supremely happy, NEB역)으로 여기라는 뜻이다. 이 권면의 놀라운 점은 이 권면이 전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야고보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이라고 말한다. ‘시험’으로 번역된 헬라어 페이라스모스(peirasmos)는 신약에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로 그 단어는 다음과 같이 죄를 짓게 하는 내적 유혹을 가리킬 수가 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 둘째, 외부의 고난, 특히 박해를 의미할 수 있다(벧전 4:12 참조). 몇몇 경우에는 그 단어가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예를 들어 마 26:41과 병행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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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당하다’(meet)는 동사가 사용된 것과 페이라스모스를 3절에서 ‘시련’(testing)으로 대치한 것을 미루어 볼 때, 후자의 의미, 즉 외부의 고난이나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여러 가지’라는 수식어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흔하게 일어나는 고난과 그리스도인이 믿음의 결과로 직면해야 할 특정한 역경 모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질병(5:14 참조), 재정적 어려움(1:9 참조),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박해(2:6 참조) 등이 모두 여러 가지 시험에 포함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모든 시험(시련)은 성도들이 기뻐해야만 할 상황으로 여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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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B The New English Bible, Old Testament, 1970; New Testament,2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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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86–87.
3절) 우리가 기쁘게 여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믿음의 시련, 믿음의 시험이 인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시험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본문의 시련이라도 번역된 단어는 ‘도키미온’이라는 단어로 어떤 사람의 진정한 믿음을 만들어내기위한 의도로 진행되는 긍정적인 시험을 의미한다.(벧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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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도키미온(dokimion)은 매우 드물게 사용되는데, 신약성경의 경우 이곳을 제외하면 베드로전서 1:7에만 나오고 70인역에서는 시편 11:7(개역개정은 시 12:6)과 잠언 27:21에 나타난다. 베드로전서 1:7에서 이 단어는 시험 과정의 결과, 즉 ‘너희 믿음의 확실함’을 가리킨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70인역의 두 부분에서 이 단어는 은이나 금을 불로 단련하는 ‘과정’(process)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후자의 의미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즉 고난은 믿음을 역경이라는 불로 연단하여, 모든 찌꺼기를 제거하고 정화해서 단단 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시험이 한 사람의 믿음의 소유 여부를 결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시험은 이미 주어진 믿음을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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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J. 무 지음, 야고보서, trans. 이승호, 초판., vol. 16, 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3), 87–88.
그 결과는 바로 인내이다. 이는 어려움과 고통가운데서도 신실하게 견뎌내는 삶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내(휘포모네)는 견고함, 내구력, 영웅적 인내들의 의미이다. 이 인내는 상황에 대한 연약하고 수동적인 굴복이 아니라 기독교의 자족하는 현실이 실천으로 입증되는 강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반응이다.
결국 성숙한 신앙인의 지표는 인내라는 것이다.(롬 5:3-4, 벧전 1:6-7) 그런 의미에서 이 인내는 단지 이를 꽉 깨물고 참고 버티는 수준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려움과 고통속에서 주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Testing of your faith defines the meaning of a trial for the Christian: as Jesus was “tested” in the wilderness (Matt. 4:1–13), so believers are tested. The Greek dokimion (“testing”) denotes a positive test intended to make one’s faith “genuine” (cf. 1 Pet. 1:7). The result is steadfastness, a life of faithful endurance amid troubles and afflictions.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91.
4절) 인내가 충분히 발휘되게 하여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표현은 ‘인내로 하여금 온전한 효력을 갖게 하라’라는 의미이다. 인내는 궁극적으로 온전함, 완전함으로 이끈다. 신자들은 거룩함안에서 성장하지만 아직 그것의 완전함에 이르지는 못한다. 이러한 완전함은 예수님의 재림때에야 비로서 실현될 것이다.
지금 야고보는 자신의 서신을 처음 열면서 사랑하는 형제들을 향하여 첫 권고를 하고 있다. 그 권고의 내용은 바로 너희가 당하는 시험의 이유를 바로 알라는 것이다. 지금 여러가지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있는 이들이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하는 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야고보는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인내를 이루고 인내를 통하여 온전함과 완전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는 사실을 힘주어 설명한다.
우리가 기도하고 추구해야할 삶은 시험의 부재의 삶이 아니라 시험 속에서 온전히 기쁨으로 이를 통해서 온전함에 이르는 삶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시험에 대한 패배적인 굴종의 자세가 아니라 그 시험을 뛰어넘어 구별됨으로 그 시험에 영향을 받지 않는 다른 차원의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많은 시련을 기쁨을 견지하며 통과한 사람은 그 삶을 통해서 인내가 온전히 열매를 맺고 효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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