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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s says the Lord concerning sthe prophets

who lead my people astray,

twho cry “Peace”

when they have something to eat,

but declare war against him

who puts nothing into their mouths.

Therefore uit shall be night to you, without vision,

and darkness to you, without divination.

vThe sun shall go down on the prophets,

and the day shall be black over them;

wthe seers shall be disgraced,

and the diviners put to shame;

xthey shall all cover their lips,

for ythere is no answer from God.

But as for me, zI am filled with power,

with the Spirit of the Lord,

and with justice and might,

to declare to Jacob ahis transgression

and to Israel his sin.

s Jer. 23:13, 32; Ezek. 13:10

t [Jer. 6:14]

u Ezek. 12:24; 13:23

v See Amos 8:9

w Zech. 13:4; [Jer. 37:19]

x [Lev. 13:45]

y See Amos 8:11

z [Jer. 6:11]

a ch. 1:5; Isa. 58:1; [Ezek. 23:36]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3:5–8.

 

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6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어둠을 만나리니 점 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7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릴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심이거니와

8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3:5–8.

 

 

앞서 1-4절의 내용이 정치 지도자들, 판결을 하는 통치자들이었다면 이제 5-8절에서 미가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서 책망을 하고 있다. 앞의 내용과 연결해서 보자면 지금 이스라엘은 정치와 종교가 한통속이 되어 있었다. 재판관들이 착취를 일삼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선지자들에게 무언가 먹을 것을 그 입에 던져줌으로 그들이 평강을 외치기 대문이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들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의 순결을 위해서 죽음을 무릎쓰고 그 말씀을 대언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많은 돈을 내는 자들에게는 평강을, 돈을 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선포의 내용은 그들의 입에 무엇이 들어갔느냐로 결정되었다면 참 선지자의 선포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셨는지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 시대로 보자면 종교와 언론이 재벌과 검찰이 억압을 행할 수 있는 정당성의 발판을 제공해준 것이다. 본문에서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사명을 거부하고 거짓을 선포하는 것의 동기는 ‘돈’이다. 이 선지자들에게 돈은 하나님보다 더 큰 소리를 냈다.(Money talked louder than God) 

빌립보서 3:19 (NKRV)

19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5절) 내 백성(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먹을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지만 그들의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전쟁을 선언한다. 

 

본문에 이에 물 것이 있으면이라는 표현은 직역하면 ‘자기 이빨로 무는’이라는 표현으로 히브리어 ‘나샤크’라는 표현인데 이는 일반적으로 뱀에게 물린 치명적인 상처를 가리킨다.(창 49:17; 민 21:6) 도 다른 형태로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가리킨다.(신 23:19-20) 이처럼 무언가 이득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지만 이득이 없으면 전쟁을 선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행태를 지적한다. 

 

3:5 The messenger formula (“This is what the Lord says”) introduces this pericope (see 2:3).16 “Prophets” (nĕbîʾîm) normally refers to “those who are called by God to be his spokesmen,”17 but here they are counterfeits who lead God’s people astray. Such so-called prophets are also denounced in Lam 2:14: “The visions of your prophets / were false and worthless; / they did not expose your sin / to ward off your captivity. / The oracles they gave you / were false and misleading.” To the people who fed them, they proclaimed a message of “peace” (šālôm) and prosperity (cf. Jer 6:14);18 against those who did not, they declared a holy war19 and announced nothing but doom (see comments on 2:11; cf. 2 Tim 4:3–4). They made themselves God’s enemies, “whose end is destruction, whose god is their belly, and whose glory is in their shame—who set their mind on earthly things” (Phil 3:19, nkjv). “Love of filthy lucre is especially unseemly in him who exercises the sacred ministry.”20 Mays adds, “Money talked louder than God” to these false prophets.21 Brown also observes that “the perversion of the ministerial office still runs rampant today.”22 The true prophet Micah, on the other hand, rebuked Judah’s sin (v. 8) and predicted destruction and exile (v. 12; 4:10).

16 See Barker, “Zechariah,” 7:607.

17 Ibid., 605–07.

18 הַנֹּשְׁכִ֤ים בְּשִׁנֵּיהֶם֙ וְקָרְא֣וּ שָׁל֔וֹם is lit., “Those who bite with their teeth and proclaim peace.” The opposite situation is וַאֲשֶׁר֙ לֹא־יִתֵּ֣ן עַל־פִּיהֶ֔ם וְקִדְּשׁ֥וּ עָלָ֖יו מִלְחָמָֽה, which could be rendered “but against the one who does not put [something] in their mouth they declare holy war.”

19 The end of v. 5, וְקִדְּשׁ֥וּ עָלָ֖יו מִלְחָמָֽה, is lit. “they consecrate against him a war.” The expression “consecrate war” also occurs in Jer 6:4; Joel 3:9 [Hb. 4:9].

nkjv New King James Version

20 A. R. Fausset, “Jeremiah–Malachi,” in A Commentary Critical, Experimental and Practical on the Old and New Testaments, 6 vols., by P. Jamieson, A. R. Fausset, and D. Brown (Grand Rapids: Eerdmans, 1967 repr.), 4:595.

21 J. L. Mays, Micah: A Commentary, OTL (Philadelphia: Westminster, 1976), 83.

22 W. P. Brown, Obadiah through Malachi, Westminster Bible Companion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1996), 45.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77–78.

 

6-7절) 그러므로 이 거짓 선지자들은 밤을 만나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고 어둠을 만나 점치지 못할 것이다.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으로 선견자가 부끄러워지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며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므로 그들이 다 그들의 입술을 가릴 것이다. 

 

밤과 어두움은 무지로 귀결된다. 선지자들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지 못한 것을 듣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보고 듣는듯이 행동하지만 이들로 하여금 밤과 어두움을 만나게 하신다. 선지자들이 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상을 보는 때는 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들을 수 없는 밤이 임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선견자는 부끄러워하며 수치를 당할 것이다. 

7절은 수치를 당하는 것으로 입술을 가릴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앞서 4절에서도 하나님께서 통치자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7절에서는 선견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실 것임을 말한다. 부정에 노출되면 부정해진다. 이렇게 하나님의 응답이 없음으로 입술을 가리는 것과 동시에 부정함의 징표이기도 하다. 레 13장을 보면 

레위기 13:45 (NKRV)

45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나병환자는 윗 입술을 가리고 자신의 부정함을 외쳐야 했다. 이처럼 그들의 입술을 가리심으로 그들이 선지자로 누리던 모든 특권과 명예를 잃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선지자들의 힘과 능력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구해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침묵은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심판인 것이다.

 

3:6–7 “Therefore,” because the false prophets were misleading the people by promising them the light of God’s favor and peace for monetary gain, the darkness of God’s judgment will descend on them (cf. Amos 5:18–20). The Lord will give them no revelation of his word—once again the awful silence of God (see comments on v. 4). “Therefore their knowledge of God will be darkened.”23 There will be “a famine of hearing the words of the Lord” (Amos 8:11). These money-driven, peace-and-prosperity prophets used their prophetic gifts improperly, so God will take those gifts away from them (cf. Jer 14:14–15). The punishment will fit the crime. It is better not to speak at all than to declare a message that leads others astray.

In v. 7 the prophets are called “seers” (see comments on 1:1; cf. 1 Sam 9:9). They will become ashamed and disgraced because their oracles will be shown to be “delusions of their own minds” (Jer 14:14; cf. Zech 13:4). They are also called “diviners,” a reference to those who secure information or guidance from a deity by checking omens. These prophets “conjure up visions on demand just as pagan diviners create omens” (see 3:11).24 All of them will cover the lower half of their faces (lit. “their upper lip” or “their mustache”), a gesture of ceremonial uncleanness in Lev 13:45 and of grief in Ezek 24:17 but here primarily a sign of shame and humiliation (note the same thought in 7:16). The reason (“because”) for their disappointment and disillusionment is the same as that in v. 4 (“he will not answer them”)—“there is no answer from God.” “Micah’s diagnosis warns that it is still possible for a theologian to become more concerned about fees than faith, about honoraria than honor.”25

23 H. W. Wolff, Micah: A Commentary, trans. G. Stansell (Minneapolis: Augsburg, 1990), 104.

24 Mays, Micah, 84.

25 J. Limburg, Hosea–Micah, INT (Atlanta: John Knox, 1988), 177.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78.

 

8절) 오직 나(미가)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에게 그의 허물을, 이스라엘에게 그의 죄를 선언할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욕망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참 선지자는 여호와의 영으로 움직인다. 

미가는 4가지로 충만해졌다. 첫번째는 능력, 두번째는 여호와의 영, 세번째는 정의, 네번째는 용기이다. 

 

당대의 거짓 선지자들과는 달리 미가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할 것을 고백한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다. “능력이 없는 정의는 무능하다. 정의가 없는 능력은 독선적이다. 그러므로 정의와 능력은 함께 하여 정의로운 것은 능력이 있고, 능력은 정의롭도록 해야 한다.” 

본문의 능력은 ‘코아’, 정의는 ‘미슈파트’, 용기는 ‘그브하’이다. 본문에서 사용된 능력과 용기는 전쟁에서 비롯된 단어들로 위험을 무릅쓰고 원수들과 대적할 각오과 되었음을 시사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에서뿐만 아니라 손수 불의를 당하시고 승리하심으로써 정의를 완성시키셨다. 의롭지 못한 자들을 대신해서 불의를 당하심으로써 정의에 최종적인 권위를 부여하셨다.” 

 

이러한 미가의 메시지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메시지는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했다. 선지자는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서 그들이 마땅히 들어야할 메시지를 선포해야할 책임이 있다. 특별히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선포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좋은 말을 해줄 때에는 용기가 필요 없다. 하지만 허물과 죄를 고발하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The opening words of the verse, But as for me, mark a strong contrast between Micah and the false prophets. This type of contrast will be expressed in many different ways in other languages, so the translator’s main concern here should be the meaning rather than the words. For example, some languages might say “But I am not like them. Instead, I am filled.…”

The passive form of rsv “I am filled” is turned into an active in tev, with the implied actor expressed: the LORD fills me. In some languages it may not seem possible or natural to use the word for fills in the way it is used in this verse. The meaning is that God caused Micah to have these qualities in a very strong or special way, and it should be possible to find an expression which has this meaning.

Micah is filled with four things. The first is rendered power in both tev and rsv, and implies not only physical strength but moral strength as well.

The second appears in rsv as “the Spirit of the LORD.” The spelling of “Spirit with a capital” S “implies the Holy Spirit, but it is perhaps out of keeping with Micah’s time to see here a reference to a doctrine which is developed in depth only in the New Testament. The Hebrew word has a wider meaning than the English word” spirit “and also covers the area of meaning for which English uses the words” wind “and” breath.” Probably something more general than a filling by the personal Spirit of God is intended here, and the Hebrew word is translated spirit with a small “s” in tev, and “breath” in jb. To be filled with the Lord’s spirit in this sense means to share in his character, so as to be able to see contemporary society and events from the point of view of what the Lord wants people to do.

The third thing with which Micah was filled was “justice” (rsv), which is interpreted more fully in this context by tev as a sense of justice. This means the ability to tell what things are wrong in the society, and what needs to be done to make them right.

The fourth thing is courage, and this is linked closely with the task for which the prophet is sent, to tell the people of Israel what their sins are. rsv once again gives the literal form of two synonymous and parallel expressions, “to declare to Jacob his transgression and to Israel his sin.” This repetitiveness is cut out in the single clause of tev, and many translators will wish to follow this example. The false prophets failed to rebuke the sins of their patrons and even encouraged them. But the true prophet who really was sent by the Lord opposed the sins of his time and society, even though such opposition was almost certain to bring unpopularity (1 Kgs 22:8) or even persecution (2 Chr 24:21–22).

 David J. Clark and Norm Mundhenk, A Translator’s Handbook on the Book of Micah, UBS Handbook Series (London;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82), 17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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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I said:

lHear, you heads of Jacob

and rulers of the house of Israel!

mIs it not for you to know justice?—

you nwho hate the good and love the evil,

owho tear the skin from off my people1

and their flesh from off their bones,

pwho eat the flesh of my people,

and flay their skin from off them,

and break their bones in pieces

and chop them up like meat in a pot,

like flesh in a cauldron.

qThen they will cry to the Lord,

but he will not answer them;

rhe will hide his face from them at that time,

because they have made their deeds evil.

l See ch. 1:2

m Jer. 5:5; [Ezek. 22:6, 27]

n [ver. 9]

o [Ezek. 34:3]

1 Hebrew from off them

p [Ps. 14:4; Isa. 3:15]

q See Prov. 1:28

r Isa. 1:15; See Deut. 31:17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3:1–4.

 

3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2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3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4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3:1–4.

 

 

1절) 하나님께서 야곱의 우두머리,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다라고 말이다. 

미가는 지금 특별히 사법부의 지도자들을 향해서 경고하고 있다. 너희가 정의를 알아라라고 말하는 것은 이들이 정의를 알고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에서는 1절은 ‘들으라’는 말이 앞에 나온다. 이 듣다라는 단어는 ‘샤마’로 듣다. 순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창 16:11; 17:20)이시다. 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신다.(신 5:1; 6:4)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그분의 뜻, 정의를 알 수 있다. 그 말씀을 들어야만 그 말씀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들으라고 명령하시는데 이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 바로 죄이다. 

미가서가 세번의 사이클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사이클 처음에 들으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1:2, 2:1, 6:1) 

 

한 사회의 정의의 마지막 보루는 법정이라 할 수 있다.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법정의 판결이 공정하고 재판 절차에서 공의와 정의가 실현된다면,그 사회의 미래는 낙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재판관들이 썩고, 판결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매우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생명을 내걸고 공펑과 공의를 지켜나가야 할 재판관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편파적으로 판결한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들에게는 잘못된 판결에 대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위임해 주신 권위를 오용한 일에 대한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정의는 ‘미슈파트’로 결정, 판결, 공의라는 의미이다. 이는 편애, 이기심, 편견 혹은 속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성품을 말한다. 특히 법관에게 필수적인 성품이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 사람들의 사고 체계에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동일하다. 본문의 알다라는 단어가 ‘야다’로 성관계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이는 통치자들이 법적인 지식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는대로 판결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정의를 안다는 것은 공평과 정의가 하나님의 공동체를 다스리게 하여서 온 공동체가 억울함이 없이 다스려지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 정의(미슈파트)에 대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이 바로 이 내용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백성의 일상생활 전반에서 이 정의를 적용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3:1 The function of the phrase (one word in Hebrew) “then I said” could be to separate chaps. 3–5 from chaps. 1–2.1 The pericope opens with the imperative šimʿû, a call to “Listen” or “Hear” (see comments on 1:2). The same Hebrew verb form marks the beginning of the first and third cycles of judgment and salvation (1:2; 6:1). The addressees are the “leaders” or “rulers” (including judges in the courts) of Jacob/Israel, here referring to Judah (vv. 9–12) but including the northerners who had fled there. The government itself was the problem. The “establishment” was controlled by corrupt public officials who winked at (and even participated in) all the unjust and oppressive practices Micah has been condemning up to this point. The rhetorical question that follows (“Should you not know justice …?”) implies, of course, that as leaders they should know justice.2 This “use of the interrogative is altogether different from our idiom, since it serves merely to express the conviction that the contents of the statement are well known to the hearer and are unconditionally admitted by him.”3

In this context “know” is most likely “used as a technical term for recognition of the treaty stipulations as binding.”4 The treaty stipulations would refer to those of the Sinaitic covenant that pertain to the execution of justice. The leaders should recognize them as binding. “Justice” (mišpāṭ) links all three literary units in Micah 3 (see vv. 8–9). Eichrodt correctly asserts concerning “justice”:

[It] is no abstract thing, but denotes the rights and duties of each party arising out of the particular relation of fellowship in which they find themselves. In this way everyone has his own special mǐspāṭ: the king, the Deity, the priest, the firstborn son, the Israelites as a group, and so on. The task of righteousness is to render this justice, and the claims which it implies, effective in the proper way, so that the good of all those united in the one community of law may be safeguarded.5

At the broadest level, there is a sense in which justice ultimately has in view the proper ordering of all society. This more comprehensive meaning also seems called for in Isa 42:1, 4, where justice is presented as the mission of the Messianic Servant of the Lord. He will establish a proper order on earth. Lindsey maintains that “any translation less comprehensive than ‘a right order’ or a similar phrase fails to take account of the far-reaching accomplishments purposed for Yahweh’s Servant. The Servant’s task is to rectify within history all aspects and phases of human existence—moral, religious, spiritual, political, social, economic, and so forth.”6 Again he notes that mišpāṭ “describes the totality of the just order that the Servant will cause to prevail on the earth.”7 That is precisely what the rulers and leaders of Micah’s time had failed to do. In a more practical vein, “Perhaps it is not amiss to suggest that as the Lord’s servants today, we too are to strive to help bring about such a proper and just ordering of all society (cf. Mic 6:6–8).”8 Craigie observes: “ ‘Justice,’ Disraeli said in a speech to the House of Commons (1851), ‘is truth in action.’ Injustice, as Micah saw so clearly, was falsity in action throughout every key realm of society.”9

1 See also Introduction: “Literary Analysis: Structure,” pp. 33–34.

2 For other uses of ידע (“know”) with object מִשְׁפָט (“justice”) see Ps 147:20; Jer 5:4, 5; 8:7; Ezek 20:11.

3 GKC § 150e.

4 H. B. Huffmon, “The Treaty Background of Hebrew Yādaʿ,” BASOR 181 (1966): 33.

5 W. Eichrodt,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2 vols., trans. J. A. Baker (Philadelphia: Westminster, 1961), 1:241.

6 F. D. Lindsey, The Servant Songs: A Study in Isaiah (Chicago: Moody, 1985), 44.

7 Ibid., 49.

8 K. L. Barker, “Zechariah,” EBC, 7:646.

9 P. C. Craigie, Twelve Prophets, 2 vols. (Philadelphia: Westminster, 1985), 2:26.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74–75.

 

2-3절) 너희, 통치자들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였다. 이들은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꺽어 다지기를 냄비와 손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고 있다. 

 

통치자들은 공정한 판결을 통해서 정의를 실현해야 했다.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해야 했다.(암 5:15; 롬 12:9) 그런데 그들은 지금 정의를 행하지 않고 악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재판관들은 지금 정의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 판결을 굽게 하고 있다. 이것을 한가지로 표현하면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굽은 판결과 착취의 모습을 인육을 먹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에게 선한 목자가 되어서 여호와께서 맡기신 양들을 칠 것을 명하셨는데 이들은 도리어 자신에게 맡기신 양들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2-3절에서 사용된 동사들을 보면 가죽을 벗기고 살을 뜯고 그 살을 먹으며 가죽을 벗기고 그 뼈를 꺽고 냄비아 솥의 고기처럼 다졌다. 매우 리얼하게 그들의 만행을 충격적인 식인의 풍습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3:2b–3 tear … eat … flay … break … chop. The imagery of cannibalism is used to symbolize the destructive violence of the leaders against the oppressed (cf. Ps. 14:4; 27:2; Prov. 30:14; Isa. 9:19–21).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00.

 

“Tear” begins a series of figures of speech describing the cruel, brutal, and inhumane way the leaders were treating the people (note the verbs “tear … eat … strip off … break … chop”).10 Instead of shepherding them, the civil leaders are pictured as exploiting and oppressing them like animals that are being butchered, cooked, and prepared for eating (on “like meat for the pan, like flesh for the pot,” cf. 1 Sam 2:13–14). They are like the so-called shepherd-leaders of Ezek 34:2–11 and like the foolish, worthless shepherd of Zech 11:15–17.11 G. A. Smith observed, “While Micah spoke he had wasted lives and bent backs before him.… Pinched peasant-faces peer between all his words.”12

10 “Tear” translates גזל, often rendered “rob” or “seize” in other contexts, as in 2:2; Isa 10:2. It refers to taking something from someone by force (cf. 2 Sam 23:21; Job 24:9). It can also refer to stealing (Lev 5:21 [6:2]) or extortion (Lev 5:23 [6:4]). See W. R. Domeris, “גזל,” NIDOTTE 1:844–45.

11 See Barker, “Zechariah,” 679–80.

12 G. A. Smith, The Book of the Twelve Prophets, vol. 1: “Amos, Hosea and Micah” (New York: A. C. Armstrong, 1899), 394.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75–76.

 

4절)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그 때에(삼판의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않으시고 그들앞에 얼굴을 가리실 것이다. 

그 통치자들이 억울한 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처럼 그들이 심판 때에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다. 시내산 언약의 요지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리라’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아니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신다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기준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얼굴을 향하시는 것은 은혜를 베푸시겠다라는 표현이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신다라는 것은 소극적으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겠다는, 적극적으로는 진노를 부으시겠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이 재판관 앞에 나아가 부르짖는다. 그러면 재판관이 그 부르짖음을 듣고 문제를 해결해준다. 왕하 8:1-6에는 수넴 여인이 등장한다. 이전에 엘리사가 다시 살려준 아이의 엄마가 블레셋 땅에서 7년만에 돌아와 왕에게 자기 집과 전토를 돌려달라고 호소한다. 이에 왕이 이 문제를 해결해준다. 하지만 본문속의 통치자는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도리어 그들의 것을 착취했다. 이에 하나님앞에서의 이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으신다라고 말씀하신다. 

시편 34:15 (NKRV)

15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잠언 21:13 (NKRV)

13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이들은 뿌린대로 거두게 된다.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 내가 부르짖을 때에 그것을 들을자가 없는 것이다. 

 

This state of affairs could not be allowed to go on. The time must surely come when their misdeeds would catch up with them. Micah turns to consider the disaster that will overwhelm these notorious judges. He delivers a prediction of punishment to come, not speaking in God’s name, as in 1:6; 2:3, 8, but in his own; for throughout this oracle it is the prophet who speaks. He makes sinister and repeated allusion to this day of reckoning that the God of justice would cause to dawn. It would bring fitting return23 for their wickedness, an exquisite correspondence of punishment to crime. It is not difficult to read Micah’s meaning between the lines of his forecast. These judges who had turned deaf ears to the plea of orphan or widow would find God equally unresponsive to their own cries for help. The term cry out is a technical one for appeal to a judge for help against victimization. The woman of Shunem exercised this legal right of protest when she returned home after seven years in Philistia and found her farm taken over by others: she appealed to the king, who saw to it that justice was done (2 K. 8:1–6). No such equity had these judges shown. In return they would find their own appeals to God unavailing in their hour of need. They did not qualify for the promise given to the righteous that Yahweh’s “ears are inclined to their cry for help” (Ps. 34:15[16]).

“The man who shuts his ears to the cry of the poor will get no

answer when he cries out himself.” (Prov. 21:13)

For God to hide his face was a dire threat in the OT. It had associations much more ominous than the Christian conviction that “behind a frowning providence” God “hides a shining face.” It had its origin in the spiritual experience of God in worship whereby he “made his face shine” upon the believer with the radiance of grace and blessing.24 In contrast to this saving glory of God’s face was a dread alternative, which was used with a number of different nuances.25 Here it has the connotation of unavailability and refusal to help. Both these links are a reversal of such prayers in the Psalms as,

Hear, Yahweh, when I cry aloud,

be gracious to me and answer me.…

“Your face, Yahweh, I seek.”

Do not hide your face from me. (Ps. 27:7–9)

Micah takes up this familiar devotional language to drive home the truth that God will abandon them to their fate. They have no claims on God, for they have repudiated those by their irresponsibility to covenant obligations. His oracle is a cry from the heart. Through his quivering emotions is expressed God’s own disgust at corruption in the lawcourts. With rhetorical fervor the prophet attacks ethical and social defects in the handling of legal cases. He focuses attention not so much on the civil rights of the oppressed as on the moral rottenness of the judges, their cold inhumanity, and the collapse of communal solidarity. Against the perpetrators of such ills he threatens a God-forsaken end. In Micah’s words the Christian can hear echoes of his Master’s voice:

“Many will say to me on that day, ‘Lord, Lord!…’ Then shall I tell them plainly, ‘I never knew you. Get away from me, you evildoers.’ ” (Matt. 7:22f.)

“I was hungry but you gave me no food …, naked but you did not clothe me.’ … ‘I assure you, insofar as you failed to do it to one of the least of these, you failed to do it to me.’ ” (Matt. 25:42–45)

23 Heb. ka’asher, “according as.”

24 Cf. Num. 6:25 and the refrain in Ps. 80.

25 S. H. Blank, Prophetic Faith in Israel [1958], pp. 189f., analyzes the phrase into seven shades of meaning.

 Leslie C. Allen, The Books of Joel, Obadiah, Jonah, and Micah,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76), 308–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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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I will surely assemble all of you, O Jacob;

eI will gather fthe remnant of Israel;

I will set them together

like sheep in a fold,

hlike a flock in its pasture,

a noisy multitude of men.

13  iHe who opens the breach goes up before them;

they break through and pass the gate,

jgoing out by it.

Their king passes on before them,

kthe Lord at their head.

e [2 Kgs. 25:11]

f See ch. 4:7

h [Jer. 31:10]

i [2 Kgs. 25:10]

j [ch. 4:10]

k [Isa. 52:1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2:12–13.

 

12  I will surely assemble all of you, O Jacob;

eI will gather fthe remnant of Israel;

I will set them together

like sheep in a fold,

hlike a flock in its pasture,

a noisy multitude of men.

13  iHe who opens the breach goes up before them;

they break through and pass the gate,

jgoing out by it.

Their king passes on before them,

kthe Lord at their head.

e [2 Kgs. 25:11]

f See ch. 4:7

h [Jer. 31:10]

i [2 Kgs. 25:10]

j [ch. 4:10]

k [Isa. 52:1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2:12–13.

 

 

 

본문은 구원 신탁으로 보이지만 다른 이들은 이 말씀을 유다를 정복한 이방 왕이 심판을 받은 유다의 남은 자들을 모아 타국으로 잡아가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모으고 이끌고 나가는 무리가 바로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포로로 이끌고 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을 701년에 산헤립의 침략때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에게 포위된 예루살렘 성문을 깨고 남은 자들을 탈출시키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다.(사 37:32; 왕하 19:31) 또한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포로라 잡혀갔던 주의 백성들 중 남은 자들을 모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데려오시겠다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시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시는 분이 이제 길을 여시고, 그들 앞서 올라가셔서 성문을 여시고 앞장서서 가실 것이다. 그분은 왕이시며 여호와이시다. 

 

12절)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르시면서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힘주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듣는 이들에게 큰 위로와 확신,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대상은 야곱,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모아 한 처소에 둘 것인데 이로 사람들이 크게 떠들게 될 것이다. 이 소란함은 감격에 찬 흥분의 외침일 것이다. 

 

These words cannot be dated exactly (i.e., during Sennacherib’s attack), because the description is too vague to be an eyewitness account of what happens.6 The rhetorical purpose of 2:12–13 is to encourage the righteous (following the hints of hope behind 2:5), who are being oppressed in Judah. They need to know that God has not forgotten them and that there will be a radical change in their situation in the future, when God acts as king among his people (2:13).

The Lord describes what he will do in 2:12 in first-person language. Then, using third-person verbs, Micah writes in 2:13 how God will do this. God promises in strong overtones (using an infinitive absolute plus a finite verb7) that “I will surely gather all of you,” giving the listeners great assurance of the promise of God’s care. It arouses determination to walk by faith, knowing that in the future God will transform their situation. This promise is first pronounced on all of “Jacob,” and then specifically given to “the remnant of Israel.” These are not contradictory, for all that will be left of Judah after God’s judgment of the powerful leaders (2:3–5, 10) will be a remnant.

This “gathering” and “bringing together” of many people “like sheep in a pen” implies a threatening force around them, possibly the destructive forces that come from God (alluded to in Micah 1:10–16). God’s shepherding is an activity of care and guidance that was the ideal of Hebrew kings (2 Sam. 5:2; Ezek. 34:1–6) and God himself (Ps. 23; Isa. 40:10–11; Ezek. 34:11–19). God will properly shepherd his people and not abuse them like the powerful leaders in Micah’s audience. There is no indication of who will scatter the flock, how the one who scatters will be defeated, where the people will be gathered to, or when this gathering will happen.

Since the exact historical setting is hidden in the future (some think it may relate to Sennacherib’s attack on Jerusalem), the focus falls only on God’s gracious care for his people. God has not and will not forget his faithful people in the midst of their trials. The final line of verse 12 describes the noise and excitement among those who are gathered together, not “confusion” as Waltke suggests.8

6 Shaw, Speeches of Micah, 91–96, surveys the options of dating this to 722, 715, 701, but his own suggestion that it be put way back in the time of Menahem (2 Kings 15 at 738 b.c.) seems unlikely.

7 Waltke and O’Connor, An Introduction to Biblical Hebrew Syntax, 581–88, give examples of places where the infinitive absolute intensifies the verbal root; thus God says “I will surely gather.”

8 Allen, Joel, Obadiah, Jonah and Micah, 300, translates this line “bleating in fear of men,” but there is no word for “fear” in this text. The niv adds to the verse “the place” and then translates the verb ḥwm as “will throng” rather than the more usual translation “be excited, agitated, noisy.” Although this word can mean “confusion” as Waltke, “Micah,” The Minor Prophets, 653, maintains, this idea does not provide hope and seems to ignore the strong leadership of God at this time.

 Gary V. Smith, Hosea, Amos, Micah,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2001), 482–483.

 

13절) 승리의 왕이신 하나님

본문 1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고 성문을 돌파하시는 분이시며, 그들의 왕으로 앞서 가시며, 여호와로 선두에 서신다. 

13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길을 여는자이시다. 또한 성문을 여시는 분이시다. 이는 지금 남은 자들이 성안에 갇혀 있는 상태를 연상시킨다. 포로로 잡혀있는 자신의 백성들을 한곳에 모으시고 이제 그분이 그 성에 들어가셔서 그 문을 여시고 길을 여심으로 앞서서 그들을 탈출 시키시고 계신 것이다. 마치 액션 영화에서 포로로 갇힌 사람들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투입된 특공대를 연상시킨다. 

2:13 Apparently Micah’s quotation of the Lord ends in v. 12, and now Micah himself takes up the strain. He identifies the one who will accomplish Israel’s restoration as “One who breaks open,” “King,” and “the Lord” (using the redemptive covenant name of Israel’s Suzerain, Yahweh). The verse begins with a prophetic perfect in the Hebrew text (“will go up”), stressing the certainty of the action. Rabbinic interpretation refers this verse to the Messiah and Redeemer.83

The Lord is first described as “the Breaker,”84 who opens up the way and leads his people out of the lands where they have been scattered. The significance of the epithet is then explained: The Lord’s action enables his people to break through the city gate and exit the place of their confinement. Second, the Lord is described as their “King,” who “will pass through before them,” as he did when they came up out of Egypt (Exod 13:21; Deut 1:30–33; Isa 63:9). Third, he is described as “the Lord,” who will pave the way ahead of them, further emphasizing his leadership. The ultimate, complete fulfillment of vv. 12–13 extends to the future coming of the Messiah and even to his second advent and millennial reign for the final stage in the progressive fulfillment of the whole (cf. 4:1–8; 5:2–9; Ezek 20:33–44; Zech 9:9–10; Matt 24:30–31; Rev 11:15; 19:6–9, 11–16; 20:1–6).

83 K. Cathcart and R. P. Gordon, The Targum of the Minor Prophets (Wilmington: Michael Glazier, 1989), 117.

84 Participle from פָּרַץ, “break out, break through, make a breach.” The perfect tense of the verb also occurs in the second line of v. 13, translated “break through.” Cf. Gen 38:29; 2 Sam 6:8; 2 Kgs 14:13; Neh 1:3; 4:3; Job 16:14; Ps 80:12; Prov 25:28; Eccl 10:8; Isa 5:5; Amos 4:3. The word can also have the idea of “spreading out” or “overflowing” (Gen 28:14; 30:30, 43; Exod 1:12; Job 1:10; Isa 54:3). See also G. Brin, “Micah 2, 2–13: A Textual and Ideological Study,” ZAW 101 (1989): 118–24.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70–71.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이시며 승리의 왕이심을 말해준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연관이 있다. 그분은 선한 목자이심으로 당신의 남은 자들을 모아서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분이시면서 동시에 승리의 왕으로 길을 여시고, 성문을 깨뜨리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앞서서 이끌어내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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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Do not preach”—thus they preach—

w“one should not preach of such things;

xdisgrace will not overtake us.”

Should this be said, O house of Jacob?

vHas the Lord grown impatient?2

Are these his deeds?

Do not my words do good

to him who walks uprightly?

But lately ymy people have risen up as an enemy;

you strip the rich robe from those who pass by trustingly

with no thought of war.3

The women of my people you drive out

from their delightful houses;

from their young children you take away

my splendor forever.

10  zArise and go,

for this is no aplace to rest,

because of buncleanness that destroys

with a grievous destruction.

11  If a man should go about and cutter wind and lies,

saying, “I will preach to you dof wine and strong drink,”

he would be the preacher for this people!

v See Amos 2:12

w [Amos 8:11, 12]

x [Amos 8:10]

v [See ver. 6 above]

2 Hebrew Has the spirit of the Lord grown short?

y [2 Chr. 28:8]

3 Or returning from war

z [ch. 1:11, 16]

a Deut. 12:9; [Heb. 13:14]

b Lev. 18:25

c Jer. 5:13

d [Amos 2:1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2:6–11.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7 너희 야곱의 족속아 어찌 이르기를 여호와의 영이 성급하시다 하겠느냐 그의 행위가 이러하시다 하겠느냐 나의 말이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유익하지 아니하냐

8 근래에 내 백성이 원수 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기며

9 내 백성의 부녀들을 그들의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는도다

10 이것은 너희가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니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

11 사람이 만일 허망하게 행하며 거짓말로 이르기를 내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네게 예언하리라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로다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2:6–11.

 

 

6-7절) 그들(지도자)이 예언하지 말것을 촉구한다. 

아래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한다. 

미가 2:6–7 (NKSV)

6그들의 예언자들이 말한다. ‘너희는 우리에게 예언하지 말아라. 이 모든 재앙을 두고 예언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우리를 망신시키실 리가 없다.’

7야곱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주님의 영도 분노하시느냐? 주님께서 정말 그런 일을 하시느냐?’ 하고 말하느냐? 나의 말이 행위가 정직한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으냐?

 

신실하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하실리가 없기에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신다는 예언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들의 요구는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나 가르침의 문제는 이들이 말하는 내용이 반쪽의 진리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유다는 권력자들에게 엄청난 재앙이 임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심판의 메시지에 귀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은 그럴 분이 아니라고, 그 입을 다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아니라 이러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미가가 문제가 있다고 그를 매도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지, 미가가 말한 것처럼 자신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심판을 내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지자는 자기가 하고자하는 말이나 백성들이 듣고자 하는 말은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백성들이 들어야만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그 말이 그들이 듣기에 불편할지라도 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분명한 진리이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하는 반대편의 진리는 바로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라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반쪽 진리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이 반쪽 진리가 그들의 신앙생활을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의로운 분노를 발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7절에서 여호와의 영이 성급하시다라는 표현은 참지 못하고 화를 내다라는 의미이다. 반대되는 표현으로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인내심이 많은'이라는 표현이다.

잠언 14:29 (NKRV)

29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8-10절) 내 백성이 원수같이 일어나서 저지른 행위

1)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김, 난민 착취

2) 내 백성의 부녀들을 그들의 즐거운 집에서 쫓아냄, 여성 착취

3) 그들의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음, 아동 착취

이러한 행위, 힘없고 연약한 이들의 것을 착취하고 빼앗는 행위들이 만연했다. 이들은 이러한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은 무방비의 상태에서 빼앗겼고 사회적인 약자로 대표되는 부녀자(특히 과부)와 어린 아이들의 것을 빼앗았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앗수르의 군대와 같은 외부의 적들이 아니라 이처럼 내부에서 공동체를 좀먹는 사람들 때문이다. 

난민, 여성, 아동은 사회안에서 가장 연약한 자들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힘있는 자들은 이렇게 가장 연약한, 힘없는 자들을 착취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이다. 

 

2:8–9 The Lord next lists some of the specific sins of his people. First, he charges them with attacking innocent passers-by as if they were enemies—“the powerless are the prey of the powerful.”67 Their goal was to take the rich robes of their unsuspecting and helpless victims. The latter thought they were as safe as soldiers returning from a battle they had won. It is possible that the regulations of Exod 22:26–27 and Deut 24:10–13 were also being broken. Those laws specified that if someone had to give his cloak as a pledge for a loan, it had to be returned by sunset so he would have something to cover his body while sleeping. If ʾeder (“rich [robe]”) is a case of haplography (accidental scribal deletion) and the correct reading is ʾadderet, it probably should be rendered as simply “cloak” (as in 1 Kgs 19:13).68 So the “real enemies are not the Assyrian armies or any other outside force but those within the community who profit at its expense.”69

Second, in v. 9 the Lord charges the oppressors with dispossessing women of their pleasant homes (cf. v. 2). The women may have been widows; if so, the homes would be the ones they inherited from their husbands. Widows were especially vulnerable to exploitation (cf. Mark 12:40). Third, the Lord charges the rich and powerful with depriving the apparently fatherless children of the women (widows?) of his blessing permanently. They not only dispossessed women but also disinherited their children. Due to the previous action, the children were left without property, money, and security. Clark reminds us that “Micah’s declarations retain a pressing relevance in a world in which such conditions continue.”70 Covetousness and greed are still having the same devastating results for defenseless women and children and the unprotected poor.71 The oppressors “robbed men of their clothes, women of their homes, and children of their inheritance. Was God not right to send judgment against such wicked individuals?”72

67 Allen, Joel, Obadiah, Jonah and Micah, 296.

68 The root speaks of something “magnificent, majestic, splendid,” or “excellent” (C. J. Collins, “אדר,” NIDOTTE 1:275–77). Collins favors regarding ʾeder as an alternative form of ʾadderet, “which always refers to a mantle or robe” (pp. 276–77).

69 Brown, Obadiah through Malachi, 41.

70 D. J. Clark, “Micah,” IBC, 931.

71 For a fuller treatment of these weak and helpless members of society, see R. D. Patterson, “The Widow, the Orphan, and the Poor in the Old Testament and the Extra-Biblical Literature,” BSac 130 (1973): 223–34.

72 J. M. Boice, The Minor Prophets, 2 vols. complete in one edition (Grand Rapids: Kregel, 1996), 2:24.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67–68.

 

결국 10절에서 이처럼 부도덕한 사회가 더려워졌음으로 인해서 떠날 것을 명하신다. 결국 이들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이들이 자신들의 죄로 인해 멸망당하여 타국으로 귀양갈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셔서 안식하라고 주신 땅에서 쫓겨나가게 된 것이다. 그들의 죄로 그 땅이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성경은 어느 땅이든 거주민들이 죄를 지으면 그 땅이 오염된다고 한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그들이 거하던 땅은 오염되었다.(창 4장) 온인류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내리셔서 땅을 정화시키셨다. 이처럼 땅에 사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온 땅이 오염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때 땅도 회복시키시는 것이 일반적이다.(대하 7:14) 

 

어찌보면 내부적인 착취가 너무 심하고 악독해서 이들의 악행을 피해서 떠나는 것이 더욱 나은 선택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러한 내부적인 죄악으로 인해서 파멸이 가속화 된 것이다. 

 

11절) 사람들이 허망하게 거짓말로 포도주와 독주에 대해서 예언할것이다 하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될 것이다. 

미가 2:11 (NKSV)

11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이 와서 ‘너희에게 포도주와 독한 술이 철철 넘칠 것이다’ 하고 예언하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 백성의 예언자가 될 것이다!

 

앞서 6-7절에서 심판을 예언하지 말라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성급하게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하는 선지자들이야말로 허망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기꾼과 같은 선지자들이다. 그들이 예언한 내용을 포도주와 독주라고 말하는 것이다. 포도주와 독주는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사람을 속인다. 현실의 상황을 냉철하게 지적해주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하는 메시지만을 듣기를 원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시대에 대하여 이렇게 반문한 적이 었다 “예언자들은 거짓으로 예언하며, 제사징들은 거짓 예언자틀이 시키는 대로 다스리며, 나의 백성은 이것을 좋아하니 마지막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렘 5:31; 번역) 믿음의 공동체가 이렇게까지 잘못될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을 갖게 되지만, 하나님 음성 듣기를 거부하는 공동체는 항상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현실들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cf. 마 7:24-37; 12:50; 고전 6:9-11; 5:21; 딤 2:12). 미가 - 예레미야 시대를 살았던 주의 백성의 영적 문제는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었다.

 

2:11 Just as this literary unit began with false prophets, so it ends with them. Here such a prophet is called a liar and deceiver, obviously because he does not tell the truth and so leads others astray.74 His message is one of peace and prosperity (“plenty of wine and beer”).75 The sinful, covenant-breaking people deserve that kind of prophet. Anyone who promises greater affluence will gain a hearing. According to 3:5, 11 false prophets are happy to oblige with “feel-good messages” so long as their hearers feed them and pay them enough money. The tests of true prophets are given in Deut 13:1–3; 18:14–22: A prophet’s message must not contradict or disagree with the previous revelation of truth through true prophets (cf. Isa 8:19–20), and his predictions must come true. These prophets failed on both counts.

We are still plagued by false prophets and false teachers both inside and outside the church. We still have charlatans and hucksters who “peddle the word of God for profit” (2 Cor 2:17). Jesus issued a warning about them (Matt 24:4–5, 10–11, 23–24). So did Paul and John (1 Tim 4:1–2; 1 John 2:18–19; 4:1–3). Such so-called ministers may masquerade as “apostles of Christ,” but in reality they are “false apostles” and servants of Satan (2 Cor 11:13–15). They will exist as long as there are people who “will gather around them a great number of teachers to say what their itching ears want to hear” (2 Tim 4:3–4). A. T. Robertson comments, “This is the temptation of the merely ‘popular’ preacher, to furnish the latest tickle.”76

74 רוּחַ characterizes the lies of the liar and deceiver as “windy” or “empty” (BDB, 924); cf. Job 6:26; 16:3; Jer 5:13.

75 Micah uses another wordplay with alliteration and assonance: šeqer (“liar”) and šēkār (“beer”). The latter is related to Akk. šikaru (“beer”).

76 WP 4:629–30.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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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oe to those who devise wickedness

and work evil mon their beds!

When the morning dawns, they perform it,

because it is in the power of their hand.

They covet fields and nseize them,

and houses, and take them away;

they oppress a man and his house,

a man and his inheritance.

Therefore thus says the Lord:

behold, against othis family I am devising disaster,1

from which you cannot remove your necks,

and you pshall not walk haughtily,

qfor it will be a time of disaster.

In that day rthey shall take up a taunt song against you

and moan bitterly,

and say, “We are utterly ruined;

she changes the portion of my people;

show he removes it from me!

tTo an apostate he allots our fields.”

Therefore you will have none uto cast the line by lot

in the assembly of the Lord.

l [Isa. 10:1, 2]

m [Ps. 36:4]

n [Isa. 5:8]

o [Jer. 8:3; Amos 3:1, 2]

1 The same Hebrew word can mean evil or disaster, depending on the context

p [Isa. 2:11, 17]

q Amos 5:13

r Hab. 2:6; See Num. 23:7

s [ch. 1:15]

s [ch. 1:15]

t [Ps. 68:6]

u Deut. 32:8, 9; [Josh. 14:1, 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2:1–5.

 

1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2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4 그 때에 너희를 조롱하는 시를 지으며 슬픈 노래를 불러 이르기를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도다 그가 내 백성의 1)산업을 옮겨 내게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 밭을 나누어 패역자에게 주시는도다 하리니

5 그러므로 여호와의 회중에서 분깃에 줄을 댈 자가 너희 중에 하나도 없으리라

1) 히, 분깃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2:1–5.

 

 

본문에서는 미가가 이스라엘의 지도층들을 향한 재앙을 선언하고 있다. 

재앙선언의 본문은 일반적으로 4가지 양식을 취하는데 1) 재앙 선언, 2) 죄에 대한 언급, 3) 메신저 유형, 4) 파멸에 대한 예측이다. 이 지도층의 죄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힘이 곧 정의다(Might makes right)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 사람들을 착취하는 이들에게 재앙을 선언하는 것이다. 

 

1-2절) 그들(힘있는 지도자들)은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행한다. 이런 이들은 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고 구들의 남자와 그의 집과 그의 산업을 강탈한다. 

 

본문의 첫 단어는 ‘호이’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이는 화 있을 진저라고 번역되는데 이는 이와 같은 예언서에서 심판의 두려움을 나타내는 표현이다.(왕상 13:30; 렘 34:5) 

 

1절에서 그들, 그 손에 힘이 있는 이들은 죄를 꾀하고, 악을 꾸미고, 그것을 행하는 자들이다. 원어의 순서는 악을 궁리하고(devise, plan), 죄를 꾀하며(work, plot), 그것을 행했다.(perform, carry out) 이는 그들이 앉으나 서나, 침상에 누워 잠을 자면서도 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렇게 세운 계략을 날이 밝자마자 행하고 있다. 그들은 악을 고안할 지략과 그것을 행할 힘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밤에 나쁜 짓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힘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못된 권력은 공평과 정의를 위협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재벌이나 언론, 검찰을 잘 견제되어야 한다. 

 

2:1 The Hebrew for “woe” is hôy, which is used of threats in prophetic literature. Here it castigates the greed of the wealthy and powerful. Since hôy also is used in funeral laments, it suggests that such schemers are as good as dead. Three verbs characterize the land-grabbers: “plan,” “plot,” and “carry out.” Evil acts begin with evil thoughts. Two words for sin are used: “iniquity” and “evil.” “Iniquity” here refers to abuse of power in illegal and unethical machinations, resulting in social injustice. “Evil” refers to things that are wicked in God’s eyes (cf. Gen 39:9; 2 Sam 11:27).

The wealthy oppressors were so filled with greed that they were plotting their next move even before they got out of bed in the morning (something the Lord hates, according to Prov 6:18). But a better use of waking hours would have been to think about the Lord (Ps 63:6). As soon as daylight came, they carried out their evil plans to increase their riches at the expense of the poor. They could do it because they controlled the power structures of their society, believing that “might makes right.”54 The very ease with which they did what was wrong shows how evil their manipulations were. Amos likewise condemns such people (Amos 8:5–6). Mammon (money) was their god (cf. Matt 6:24; Luke 16:11–13). The more they had, the more they wanted. No wonder Isaiah pronounces a similar woe of judgment on them (Isa 5:8)! Proverbs 3:27 provides a better use of power: “Do not withhold good from those who deserve it, / when it is in your power to act.”

54 יֶשׁ־לְאֵ֖ל יָדָֽם (“It is in their power to do it”) could be more literally rendered “there is to the power of their hand.” The idiom also occurs in Gen 31:29: יֶשׁ־לְאֵ֣ל יָדִ֔י (NIV, “I have the power”), lit., “there is to the power of my hand.” On the latter text R. Wakely comments: “This text describes a classic case of the kind of imbalance of power between two parties that, humanly speaking, is almost guaranteed to lead to might prevailing over right. However, as a result of God’s intervention in favor of the weaker party, whose labor has been unjustly exploited by the one in power, justice prevails” (NIDOTTE אֵל,” 1:399). See also Deut 28:32; Neh 5:5.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63.

 

2절은 권력을 가진 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권력을 악용하여 약자들을 착취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많이 가진 이들이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것이다. 2절은 4개의 동사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지금 십계명을 완전히 어기고 있다. 

그들은 밭들을 탐하여(covet), 빼앗고(seize), 차지하고(take away), 강탈했다.(oppress) 이들은 단순히 밭과 집과 같은 땅과 재산만을 강탈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에서 땅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 사람, 가족의 정체성과 권리가 그들이 소유한 땅과 재산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땅과 재산을 빼앗긴다는 것은 사회적인 신분과 권리를 모두 빼앗기는 것을 의미한다. 

2:2 covet … seize … take … oppress. The tearing away of land and property (his inheritance) from the weak was a flagrant violation of the covenant (Ex. 20:17) and a primary reason for judgment against Ahab’s house (1 Kings 21; 2 Kings 9:24–26; cf. Mic. 6:16).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98.

The spiritual problem is that these greedy people covet (ḥmd) in their hearts what belongs to others, in direct rebellion against the tenth commandment (Ex. 20:17). Their inappropriate and lustful desires lead to actions that ignore the theological principle that God owns the land (Lev. 25:10, 23; Num. 36) and has given it as an eternal gift to each family forever.10 The powerful people rob some, oppress others, and defraud whomever they wish. The results are the same: People lose their homes and fields and become destitute. As Mays suggests: “In Israel’s social order a man’s identity and status in the community rested on his household or family, dwelling place, and land.… Lose it, and he lost all the rights which were based on its possession; he had no ‘place’ in the community.”11

10 No land could be lost to a family for more than forty-nine years, according to the laws in Lev. 25. See J. A. Fager, Land Tenure and the Biblical Jubilee (Sheffield: JSOT, 1993); J. E. Hartley, Leviticus (WBC; Dallas: Word, 1992), 425–50.

11 Mays, Micah, 64; for an extensive discussion of property rights see J. A. Dearman, Property Rights in the Eighth-Century Prophets: The Conflict and Its Background (Atlanta: Scholars, 1988).

 Gary V. Smith, Hosea, Amos, Micah,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2001), 464.

 

이처럼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고대 이스라헬 사회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재산권이자 부의 축적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해, 한 사람의 땅이 그의 가족의 테두리를 떠나는 것을 막았다. 심지어는 사람이 빚 때문에 자신을 노예로 판다 할지라도, 희년과 안식년 법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그 빚을 탕감하도록 하고 그가 소유했던 땅은 다시 그에게 돌아가도록 했다(cf. 출 21:1-11; 22:25-27; 레 25:35-38; 15:12-18; 23:19-20; 24:10-15). 심지어는 계대결혼 결혼을 통해서라도 땅의 소유권은 그 집안에 머물게 했다(신 25:5-10).

그러므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향했던 이상적인 경제적-사회적 구조는 모든 사람들이 가족을 충분히 먹일 수 있는 여력의 땅을 소유한 자유인들(free holders)로 형성된 사회였지, 빚 때문에 팔린 노예, 소작민, 종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땅 소유권은 이 공동체의 일원에게 보장된 기본적인 권리였다. 그렇다면 지금 권세가들은 연약한 자들에게서 땅을 빼앗음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있는 것이다. 즉 유다 지도층의 권력 남용은 단순히 윤리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인 문제도 통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부각시키고자 선지자는 ‘유산’(나할라)이라는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한다(2절). 유산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상속되는 것이며(창 31:14) 고대의 법이 보장하는 권한이기도 했다.

 

3-5절) 앞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악을 계획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재앙을 계획하셨다. 이 하나님의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다. 이 하나님의 재앙앞에서 조롱하는 시를 지으며 슬픈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백성의 산업을 옮겨 떠나게 하시고 받을 나누어 패역자(원수)에게 주실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회중에서 분깃에 줄을 잴 자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므로의 하나님이시다. 잘못된 방법으로 악랄하게 착취를 일삼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신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내리시는 이 재앙을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가장 부유하던 이들이 완전히 망하게 되고, 그들이 빼앗았던 산업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결국 이 심판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으로 성취된다. 가장 부유하던 이 시절은 끝장나고 이방의 손에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면 그것은 반드시 성취된다.(잠 19:21) 이 재앙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나타난다. 

2:3 “Therefore”—because of the aforementioned sins of the influential and wealthy classes of Israelite society—divine judgment was about to fall.56 In v. 1 the rich, oppressive landowners were “planning … evil”; now the Lord is “planning” (the same Hb. verb as in v. 1) “disaster” (the same Hb. root as “evil” in v. 1) against “this people.”57 “Many are the plans in a man’s heart, but it is the Lord’s purpose that prevails” (Prov 19:21). Those “who do harm will experience harm.”58 The disaster probably was the Assyrian captivity of 722–721 b.c. and perhaps the Assyrian invasion of 701 (see comment on “disaster” in 1:12). From this they would not be able to extricate themselves (lit. “from which you cannot remove your necks”). The Assyrian yoke of exile would be like a heavy ox yoke on them. As Fausset put it, “They who will not bend to God’s ‘easy yoke’ (Matt. 11:29, 30) shall feel His iron yoke.”59 Then they will no longer walk in proud defiance of God and his laws. The Hebrew word for “calamity” is the same as that for “disaster” at the beginning of the verse and is repeated at the end for emphasis.

56 For the messenger formula (“the Lord says”) see Barker, “Zechariah,” EBC 7:607.

57 “People” is Hb. מִשְׁפָּחָה, usually “family” or “clan” but here used of the entire people or nation (as in Jer 8:3). It may be used here because of the reference in v. 2 to family inheritance.

58 H. W. Wolff, Micah: A Commentary, trans. G. Stansell (Minneapolis: Augsburg, 1990), 79.

59 A. R. Fausset, “Jeremiah–Malachi,” in A Commentary Critical, Experimental and Practical on the Old and New Testaments, 6 vols., by P. Jamieson, A. R. Fausset, and D. Brown (Grand Rapids: Eerdmans, 1967), 4:590.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64.

 

The abrupt “therefore” of 2:3 marks the change to the announcement of punishment and demonstrates a connection between the crime and its consequences. The messenger formula, “the Lord says,” and the direct first-person address by God (“I am planning”) emphasize the authority and sureness of what will happen. God’s plan (counter to the plans of the wicked) is to send a severe and inescapable calamity against these wicked, oppressive people. They will no longer walk around in pride with their heads held high because of their wealth and privilege. The fact that “you will not be able to remove your necks from it, or walk upright” (lit. trans. of 2:3b) suggests that they will be under the binding yoke of someone else and will have no power or freedom (see Isa. 9:4; 10:27; Jer. 28:14). Once the wealthy are subdued, it will not be hard for this enemy to take their property away from them.

 Gary V. Smith, Hosea, Amos, Micah,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2001), 464–465.

 

5절의 본문은 포로기 이후에 다시금 회복될 때에, 권력을 이용하여 악을 행하던 이들이 그 분깃에 속하지 못할 것을 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땅을 신으로 삼았던 이들은 그것을 빼앗기될 것이다. 

2:5 “Therefore”—because the guilty parties have dealt with their neighbors’ fields unjustly—they will not have anyone left in the Lord’s covenant community (due to being in exile) who can use a measuring line to divide up the land by lot (cf. Josh 14:2; 18:8, 10). So they will be cut off from the promises of the Lord’s people. It is punishment in kind. Craigie observes: “Those who had a desperate greed for land and power had made their personal goals a kind of god. And those who would worship land in its acquisition would also learn the emptiness of land in its loss.”61

61 P. C. Craigie, Twelve Prophets, 2 vols. (Philadelphia: Westminster, 1985), 2:19.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65.

 

Verse 5 is Micah’s concluding comment after the mocking lament. When this disaster comes upon these elite leaders, they will lose all their rights to own land in the future. They will be excluded from participating in the redistribution of the land after the restoration of the people to the land. This picture imagines a reenactment of Joshua’s original division of the land by lot (Num. 26:55–56; Josh. 14:1–2; 19:51). The exclusion of these evil leaders from the assembly of the Lord implies that these covetous people will all die or be purposely excommunicated because of their treasonous deeds against the poor. Hidden behind this devastating word of judgment is also the hopeful implication that some day the faithful people of God will again inherit the land (see Mic. 2:12–13; 7:11–12); the promise to Abraham will be fulfilled in spite of the destruction God will bring on the nation in the near future.

 Gary V. Smith, Hosea, Amos, Micah,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2001), 465–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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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r this I will lament and wail;

I will go vstripped and naked;

I will make lamentation wlike the jackals,

and mourning xlike the ostriches.

yFor her wound is incurable,

and it has come to Judah;

it has reached to the gate of my people,

to Jerusalem.

10  zTell it not in aGath;

weep not at all;

in Beth-le-aphrah

broll yourselves in the dust.

11  Pass on your way,

inhabitants of Shaphir,

cin nakedness and shame;

the inhabitants of Zaanan

do not come out;

the lamentation of Beth-ezel

shall take away from you its standing place.

12  For the inhabitants of Maroth

wait anxiously for good,

because disaster has come down dfrom the Lord

to the gate of Jerusalem.

13  Harness the steeds to the chariots,

inhabitants of eLachish;

it was the beginning of sin

to the daughter of Zion,

for in you were found

fthe transgressions of Israel.

14  Therefore you shall give parting gifts2

to gMoresheth-gath;

the houses of hAchzib shall be a deceitful thing

to the kings of Israel.

15  I will again bring ia conqueror to you,

inhabitants of hMareshah;

the glory of Israel

shall come to jAdullam.

16  kMake yourselves bald and cut off your hair,

for the children of your delight;

kmake yourselves as bald as the eagle,

for they shall go from you into exile.

u [Isa. 22:4]

v See Isa. 20:2–4

w Job 30:29; Ps. 44:19

x Isa. 13:21

y [Hos. 5:13]

z 2 Sam. 1:20

a See 1 Sam. 17:4

b [Jer. 6:26]

c [Isa. 20:4; 47:3]

d See Amos 3:6

e Josh. 10:3; 2 Kgs. 18:14, 17; 2 Chr. 32:9

f [ver. 5; Hos. 13:1]

2 Or give dowry

g [ver. 1]

h Josh. 15:44

i [ch. 2:4; Jer. 6:12]

h [See ver. 14 above]

j See 1 Sam. 22:1, 2

k See Isa. 22:12

k See Isa. 22:1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1:8–16.

 

8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9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고 내 백성의 성문 곧 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10 가드에 알리지 말며 도무지 울지 말지어다 내가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렀도다

11 사빌 주민아 너는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갈지어다 사아난 주민은 나오지 못하고 벧에셀이 애곡하여 너희에게 의지할 곳이 없게 하리라

12 마롯 주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13 라기스 주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이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

14 이러므로 너는 가드모레셋에 작별하는 예물을 줄지어다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왕들을 속이리라

15 마레사 주민아 내가 장차 너를 소유할 자로 네게 이르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

16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네 머리가 크게 벗어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지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1:8–16.

 

 

앞서 사마리아에게 심판의 말씀을 선언한 미가는 이제 예루살렘에 닥칠 재앙을 생각하며 애가를 부르고 있다. 이 애가는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얼마전(BC 701년)에 선포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임할 일에 대해서 애가를 부르는 것은 이것이 예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8-9절) 미가의 애통, 애곡

미가는 자신의 슬픔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1) 애통하며 애곡할 것이다.

2) 맨발로 벌거벗고 다닐 것이다. 맨발로 다니는 것은 슬픔의 표현(삼하 15:30)이며, 벌거벗고 다닌다는 것은 겉옷과 외투를 벗고 속옷만 착용한다는 의미이다.(삼상 19:24; 사 20:2-4)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며 3년동안 속옷만 입고 다닌 적이 있다.(사 20장) 미가도 이사야처럼 속옷만 입고 맨발로 예루살렘 거리를 다녔을 것이다. 

3) 들개(자칼)와 같이 슬피 울 것이다. 욥도 자신의 슬픈 운명을 비관하며 여우처럼 구슬피 울었던 적이 있다.(욥 30:29)

4) 타조처럼 애통할 것이다. 타조는 사막 올빼미로 번역되기도 한다. 

모두 극에 달한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예레미야(렘 8:21-9:1)이나 아모스(암 7:1-6), 바울(롬 9:2-3; 10:1)과도 같다. 선지자들은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공공장소에서 이런 특이한 모습으로 슬퍼하는 미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지금 미가는 앞서 사마리아에 임한 상처가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이제 유다까지도 이르게 될 것으로 인해서 애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마리아의 멸망은 예루살렘 멸망의 전조이다. 사마리아에 임한 상처가 이제 예루살렘에도 임하게 될 것이다. 성문은 도시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성문이 무너지는 것은 도시, 국가가 멸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행히 저자는 이스라엘의 적이 성문 앞까지 임할 것을 예언한다. 성문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그 앞까지만 진군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701년 산헤립의 침략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마리아의 멸망이 확정적인 만큼 예루살렘의 멸망도 피할 수 없다. 

 

10절에서 선지자는 가드에 알리지 말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 심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드는 블레셋으로 이 심판이 이스라엘에게는 매우 슬픈 일이지만 대적인 블레셋에게는 승전보이기 때문에 적들에게 이를 알리지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미가는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이방인들이 주의 백성의 심판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이를 가드에 알리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1:8 “Because of this” refers to the coming Assyrian capture of Samaria (vv. 6–7). Now Micah perceives that Judah and Jerusalem will also suffer at the hands of Assyria (vv. 9–16). As history has shown, it would happen approximately twenty years later. So between 1:2–7 and 1:8–16 a period of two decades has been telescoped. Micah’s heart (undoubtedly reflecting the heart of God) is broken as he contemplates the fate of Samaria (v. 8). He is filled with compassion as he considers what will also happen to Judah and Jerusalem (v. 9).27 He is much like Jeremiah in Jer 8:21–9:1, like the Lord himself in Hos 11:8–9, like Amos in Amos 7:1–6, and like Paul in Rom 9:2–3; 10:1.

Going “barefoot”28 is a sign of mourning in 2 Sam 15:30. “Naked” here means stripped of one’s outer and inner robes and so clothed only in a loincloth (1 Sam 19:24; Isa 20:2–4; cf. John 21:7).29 Micah, like Isaiah, may actually have walked barefoot through Jerusalem while wearing only a loincloth. His sadness was so great that he howled like a jackal and moaned (or screeched) like an owl. The mournful, sobbing cry of the jackal30 is used symbolically of a man lamenting his bitter fate in Job 30:29, where both jackal and owl occur together again. The Hebrew word for “owl” (yaʿaʿnâ) is usually assigned the meaning “ostrich.” However, some scholars connect it to an Arabic etymological cognate with the root idea of “desert.” So the entire Hebrew phrase (bĕnôt yaʿaʿnâ) would mean literally “daughters of the desert,” hence “desert owls” or “eagle owls” or simply “owls” (REB “desert-owl”).31

27 In Hebrew the verbs “weep … wail … go about” are cohortatives of resolve.

28 The kethiv, שׁילל, occurs only here. The qere, שׁוֹלָל, which is also in the Qumran Scroll and many Hb. manuscripts, occurs in Job 12:17, 19 where it is translated “stripped.” It probably derives from שׁלל, “pull out” (BDB) but may also derive from שׁלל, “plunder” (Ibn Ezra, R. Gordis, The Book of Job [N.Y.: Jewish Theological Seminary of America, 1978], 139, and elsewhere). Its occurrence only with the verb הלך (“walk”) suggests the meaning “barefoot” as probably correct. Cf. D. R. Hillers, Micah, Her (Philadephia: Fortress, 1984), 22.

29 Cf. S. R. Driver, Notes on the Hebrew Text and the Topography of the Books of Samuel (Oxford: Clarendon, 1913), 160; B. V. Seevers, “עָרוֹם,” NIDOTTE 3:532–33.

30 “I will howl” is lit. “I will make mourning” (אֶעֱשֶׂה מִסְפֵּד), which uses the same root (ספד) as “I will weep” (אֶסְפְּדָה). מִסְפֵּד also occurs in v. 11, translated “mourning.” “The primary sense [of ספד] appears to be that of wailing” (R. W. L. Moberly, “Lament,” NIDOTTE 4:869). See also Gen 50:10; 2 Sam 1:11–12; 3:31; 1 Kgs 13:30; Jer 6:26; 22:18; 34:5; Amos 5:16.

REB Revised English Bible

31 Fauna and Flora of the Bible, 2d ed. (New York: UBS, 1980), 60–61.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54–55.

 

10-15절) 여러 성읍들에 임한 재앙

그가 애가를 부르며 10절부터 나열하는 도시는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12곳이다. 

1) 예루살렘

2) 가드

3) 베들레아브라(티끌의 집) 히브리어로 티끌이 ‘아파르’이다. 

4) 사빌 : 아름다운의 히브리어와 발음이 비슷하여 벗은 몸이나 수치와 대조를 이룬다. 

5) 사아난

6) 벧에셀 : 빼앗음의 집

7) 마롯 : 쓰라림

8) 라기스 : 히브리어로 ‘라레케시’를 직역하면 ‘준마에게’로 라기스의 발음과 기슷하다. 아이러니하게 백성들은 싸우기 위한 병거의 말이 아니라 달아나기 위한 빠른 말에 마구를 채우라는 충고를 받는다. 

9) 가드모레셋 : 이 마을은 ‘메오라사’, 약혼한 자와 연관된다. 즉 앗수르는 신부(가드모레셋)과 더불어 지참금(작별하는 예물)을 받을 것치다. 

10) 악심

11) 마레사 : 소유할 자 혹은 빼앗는 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요레쉬’는 마레사와 발음이 비슷하다. 전에는 가나안 족속의 것을 빼앗던 이들이 이제는 빼앗김을 당하게 될 것이다. 

12) 아둘람

도시 의미/소리 언어유희
Gath The sound gat The sound tag(Heb. Verb ’tell)
Beth Ophrah “House of dust" Roll in the dust
Shaphir “Pleasant/beautiful" Nakedness and shame
Zaanan (Similar sound) Not come/go out
Beth Ezel “House of taking away" Protection taken away
Maroth "Bitter" Good
Lachish (Similar sound) To the horses/team
Moresheth Gath “To be betrothed" You will give parting gifts
Aczib “Deception" Will prove deceptive
Mareshah “Conqueror/possesor" A conqueror against you
Adullam The place where David fled Glory of Israel will flee there
Maroth “Bitter" Good

처음에 열거된 가드는 사울과 요나단에 대한 다윗의 애가를 떠올리게 한다.(삼하 1:19-27) 마지막에 열거된 아둘람은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서 도망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삼상 22:1; 삼하 23:13) 이제 다윗의 후손들도 마찬가지로 적대적인 정복자에게 도망친다.

 

여기에 등장하는 도시들 대부분은 다양한 의미의 히브리어 문구와 유사한 발음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언어유희를 보여주고 있다. 각 도시들은 이름과 연관된 재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가드와 아둘람은 다윗의 삶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목록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실제로 이 도시들은 타 도시와 함께 멸망할 것은 아니다. 특히 애가가 가드(10절)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여 아둘람(15절)에 대한 언급으로 끝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가드에 았던 블레셋 왕에게 몸을 맡긴 적이 있으며, 아둘람 광야로 그를 피한 적이 있었다. 옛적에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생명에 위협을 느껴 가드와 아둘람을 찾았던 것처럼, 그의 후손들(유다의 왕족)도 위험으로부터 도주해야 한다. 물론 산혜립은 피에 굶주린 늑대처럼 이들을 쫓을 것이다. 아둘람은 세벨라 지역에 위치했던 도시였다(Wolff).

 

13절의 라기스는 유다의 가장 큰 도시들 중 하나였다.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모레셋에서 10Km 떨어져 있었다. 르호보암은 이 지역을 통해 침입히는 적군들로부터 예루살렘을 방어하기 위하여 이 도시를 요새화하였다(대하 11 :9) .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이 도시는 6m 두께의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701 년에 있었던 산혜립의 침략 때 그가 함락시킨 유다의 46개 성읍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정복한 것들 중 하나였다. 

선지자는 라기스 사람들에게 군마에 병거를 매라고 한다. 소리의 유사성을 생각해보라(lakish와 larekesh). 라기스가 유다가 저지른 죄의 근본이라는 13절 후반부는 해석하기가 어렵다. 어떻게 라기스가 시온의 죄의 근본이란 말인가? 라기스 사람들이 북 왕국 이스라엘로부터 우상숭배를 배워서 예루살렘에 전파한 것으로 풀이하는 주석가도 있다. 그러나 이 해석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아마도 예루살렘이 군마와 병거를 포함한 군사력을 의지하는 것을 요새화된 도성에서 살고 있던 라기스 사람틀에게서 배운 것을 뭇하는 듯하다(Mays ; Smith; cf. 17:16; 2:7; 31:1-2; 10:13-15;14:4).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기로 약속한 이스라엘이 군사력에 의지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마술만큼이나 언약신앙을 파괴하는 요소이다(5:10-14).

 

Verses 10–16 feature many striking wordplays that Moffatt attempts to reflect in his English translation of 1:10–16. The cities’ names are connected to their judgment:

Weep tears at Teartown (Bochim),

grovel in the dust at Dustown (Beth-ophrah),

fare forth stripped, O Fairtown (Saphir)!

Stirtown (Zaanan) dare not stir,

Beth-êsel …

and Maroth hopes in vain;

for doom descends from the Eternal

to the very gates of Jerusalem.

To horse and drive away, O Horsetown (Lakhish),

O source of Sion’s sin,

where the crimes of Israel centre!

O maiden Sion, you must part with

Morêsheth of Gath;

and Israel’s kings are ever balked

at Balkton (Achzib).

I will march the conqueror on you yet,

O men of Mareshah;

and Israel’s pomp shall perish utterly.

Israel, shave your head and hair,

in mourning for your children dear,

shave it like a vulture’s, bare;

for they are lost to you.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56–57.

 

1:13 Lachish has been identified with Tell ed-Duweir. It was one of the largest cities in Judah and was located almost thirty miles southwest of Jerusalem and only six miles southwest of Moresheth Gath. Rehoboam had fortified Lachish (2 Chr 11:9) so that it guarded the main approach to the capital city from that district. It had a massive city wall twenty feet thick and a defensive gateway comparable to the ones at Gezer, Hazor, and Megiddo. It was one of the last of the forty-six cities to fall to Sennacherib in 701 b.c. (2 Kgs 18:13; 2 Chr 32:9). The siege and the following procession of plunder are depicted on bas-reliefs found in Sennacherib’s palace at Nineveh. Later the city was rebuilt, and Jer 34:7 indicates that in 588 b.c., when King Nebuchadnezzar was leading his Neo-Babylonian army against Judah, the only fortified cities left were Jerusalem, Lachish, and Azekah. A cache of ostraca (letters written on fragments of pottery) was found at Lachish dating from this time. Letter 4 from the commander of an outlying garrison indicates that the nearby city of Azekah had already fallen: “We are watching for the fire-signals of Lachish … for we cannot see Azekah.”46 This Hebrew military communique seems to have been written in feverish haste as the Babylonian army was closing in.

The people of Lachish are told to harness the team of horses to the chariot (lit., “harness the chariot to the team”) in order to escape the onslaught of King Sennacherib’s Assyrian army. The wordplay here involves alliteration and assonance between Lachish (Hb. lākîš) and “team” (lit. “to the team,” Hb. lārekeš). The singulars are collectives, of course. The last half of the verse is difficult. But again the NIrV seems to capture the intended sense: “You trust in military power. / That was the beginning of sin / for the people of Zion. / The wrong things Israel did / were also done by you.” It is instructive that “military power” (horses and war chariots) would be demolished by the Lord (5:10). “Transgressions” (NIV) could have been more precisely rendered “rebellious acts” (see comments on v. 5). The last “you” of the verse may refer to the people of Lachish in particular or, more generally, of Judah. If the latter, “Israel” would definitely be restricted to the Northern Kingdom (in fact, it could be so restricted in either case).

46 DeVries, Cities of the Biblical World, 208–14.

NIrV New International Reader’s Version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59.

 

1:14 Moresheth-gath. The town is here associated with the word me’orasah (“one who is betrothed,” Deut. 22:23). Assyria will receive a dowry (i.e., parting gifts), along with the bride (i.e., Moresheth-gath). Achzib sounds like the noun ’akzab (“deceptive, deceitful”; cf. Jer. 15:18). The kings of Israel, expecting Achzib to provide a source of revenue from its pottery production, will be deceived.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98.

 

1:15 The Hebrew for conqueror or “dispossessor” (yoresh) sounds like Mareshah and is often used to describe Israel’s dispossession of Canaan. Those who formerly dispossessed the Canaanites will now themselves be dispossessed. glory of Israel … Adullam. The first town listed, “Gath” (v. 10), recalls David’s lament over Saul and Jonathan (2 Sam. 1:19–27). The last town listed, “Adullam,” recalls David’s flight to Adullam, where he was pursued by Saul (1 Sam. 22:1; 2 Sam. 23:13). Now David’s descendants likewise flee from a hostile conqueror.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98.

 

16절) 유다가 심판받는 날 그들의 자식들은 사로잡혀 갈 것이다. 어들은 머리털을 깍아 대머리 독수리처럼 털이 없는 머리를 내놓고 슬퍼하게 될 것이다. 이 독수리는 가나안과 이집트에 서식했던 대머리 독수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젊은 자식들이 사로잡혀 간다는 것은 이 나라의 미래도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지자는 유다의 심판에 대해서 벌거벗은 몸으로 애통하며 애곡한다. 왜냐하면 그 상처를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매우 이상한 애곡의 행위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자녀들은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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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 of the Lord that came to Micah aof Moresheth bin the days of Jotham, Ahaz, and Hezekiah, kings of Judah, which he saw cconcerning dSamaria and Jerusalem.

The Coming Destruction

eHear, you peoples, all of you;1

fpay attention, O earth, and all that is in it,

and glet the Lord God be a witness against you,

hthe Lord from his holy temple.

For behold, ithe Lord is coming out of jhis place,

and will come down and ktread upon the high places of the earth.

And lthe mountains will melt under him,

and the valleys will split open,

like wax before the fire,

like waters poured down a steep place.

All this is for mthe transgression of Jacob

and for the sins of the house of Israel.

nWhat is the transgression of Jacob?

Is it not dSamaria?

And what is othe high place of Judah?

Is it not Jerusalem?

Therefore I will make dSamaria pa heap in the open country,

a place for planting vineyards,

and I will pour down her stones qinto the valley

and runcover her foundations.

All sher carved images shall be beaten to pieces,

tall her wages shall be burned with fire,

and all her idols I will lay waste,

for from tthe fee of a prostitute she gathered them,

and to the fee of a prostitute they shall return.

a [ver. 14]

b Isa. 1:1

c Amos 1:1

d Isa. 7:9; Jer. 23:13

e ch. 3:1, 9; 6:1, 2; See Hos. 5:1

1 Hebrew all of them

f See Isa. 1:2

g Mal. 3:5

h Ps. 11:4; Jonah 2:7; Hab. 2:20

i Isa. 26:21

j Ps. 115:3

k Amos 4:13; [Deut. 32:13]

l Ps. 97:5; [Judg. 5:5; Amos 9:5, 13; Nah. 1:5]

m See ch. 3:8

n [ver. 13]

d [See ver. 1 above]

o [2 Chr. 28:4]

d [See ver. 1 above]

p [ch. 3:12]

q [1 Kgs. 16:24]

r Ezek. 13:14

s [Hos. 8:6]

t [Hos. 2:12; 9:1]

t [Hos. 2:12; 9:1]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1:1-7.

 

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야곱의 허물 이스라엘의 죄

2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3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4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5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1)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6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7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1) 다른 역본에는, 죄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1:1-7.

 

 

1:2~2:13의 내용은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심판을 다룬다. 이 심판은 겉으로 보면 사마리아가 함락되었던 722년의 내용과, 산헤립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공격당했던 시기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겪은 외부로부터의 재앙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미가는 이러한 재앙, 심판의 이유가 이들의 죄로인한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미가는 지금 이스라엘과 유다를 괴롭히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뒤에서 이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1절) 여호와의 말씀이 모레셋의 미가에게 유다의 왕들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임하였다. 이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해 그가 본 것이다. 

이 기간은 왕하 16-20장, 역대하 27-32장에 해당한다. 

 

선지자의 이름은 미가이다. 이는 미가야(왕상 22:8)의 줄임말로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아무도 여호와와 같은 분은 없다라는 정답이 정해진 수사학적인 질문이다. 미가는 열정적인 아모스의 마음과 사랑으로 가득찬 호세아의 마음을 지닌 선지자이다. 

 

2-4절) 지금 이스라엘을 고소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전에서 좁게는 이스라엘 백성들, 나아가서 열방을 향해서 자신들의 죄를 들을 것을 요청하신다. 주님께서 그분의 처소인 성전에서 나오셔서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시며 임하신다. 그분의 임재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은 갈라지는데 마치 뜨거운 불 앞의 초와 같고 비탈로 쏱아지는 물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소송을 진행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처소를 떠나 세상에 강림하신다. 그분의 임재는 과거 시내산에서 영광중에 임하셨던 하나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강하고 두려우신 하나님의 임재앞에 맞설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분의 강력한 빛과 열기앞에 모든 것은 상대화된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그분의 힘과 능력, 거룩하심 앞에서 모든 것은 낮아진다.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는 두려움과 기쁨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반한다. 죄인들에게는 두려움으로, 자녀된 이들에게는 기쁨으로 말이다. 하지만 본문의 하나님의 임재는 두려움이다. 그분의 임재로 산들은 녹고 골짜기는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이들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다. 이방을 구원하고, 이방의 행악과 싸워야 하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오시는 것이다. 

2절에서 들으라라고 사용된 단어는 1:2, 3:1, 6:1에서 중요한 전환점마다 사용되낟. 이는 히브리어로 ‘샤마’인데 듣다, 순종하다라는 의미이다. 지금 여기서 들으라라는 것의 의미는 부족한 지식을 얻으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너희들의 죄가 무엇인지, 지금 너희들의 생사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고소 당했을때 억울하면 이의를 제기하면 된다. 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빌미를 제공하실리가 없다. 

 

1:2 The pericope opens with the imperative šimʿû, a call to “Hear.” The same Hebrew verb form marks the beginning of the second and third cycles of judgment and salvation (3:1; 6:1). In most contexts (including this one) to “hear” in Hebrew means more than to receive information by ear. It means to listen, understand what is being said, and respond to it appropriately.6 The addressees are “all peoples,” a reference to all nations, as shown by the parallel (more literally “those who fill the earth”). God is about to call the nations to account. As Allen puts it, “Micah’s God is no provincial deity but the universal Overlord to whom all nations must render account.”7 Isaiah 3:13–14 (in the MT) has a similar movement from the peoples of the world to the Lord’s own chosen people. Motyer notes: “Divine judgment often has a universal setting.… The reason for this is that judgment is one aspect of the day of the Lord when his just account is settled against all without exception.”8 In view of that day Micah prophesies the impending judgments on Samaria (Israel) and Jerusalem (Judah).

The purpose of the previous summons is next stated: “that the Sovereign Lord may witness against you.”9 When Adonai (ʾădōnāy) and Yahweh (YHWH) occur together (as here), “Sovereign” is an accurate rendering of Adonai (usually Lord, in contradistinction to YHWH, usually Lord).10 As Master of everything, He rules over all (see 1:3; 4:13). “Witness” reflects the legal or court setting. The Lord of the universe will testify against “you.” Keil construes “you” as a reference to Samaria and Jerusalem (v. 1).11 But it is preferable and more natural to take the nearest antecedent: all peoples (nations). The Lord’s indictment of Israel and Judah is tantamount to an indictment of all. If he indicts his own chosen but sinful people, then certainly the other nations stand indicted; for their behavior is at least as bad, if not worse (5:15; 7:16–17). The pattern of the divine judgment motif narrowing from the broader realm to the more focused area occurs elsewhere (Isa 34:1–2, 5ff.; Amos 1–2).

God is further described as the Lord who testifies “from his holy temple.” The primary reference here is to God’s heavenly temple (v. 3; Ps 11:4; Jonah 2:7; Hab 2:20; Zech 2:13).12 The temple, as the place of God’s throne, was by definition “holy” (Ps 65:4; Jonah 2:4). The root idea of the Hebrew word for “holy” is “separate” or “set apart.”13 In Isa 6:1–5 the ascription of holiness to the Lord begins with the Lord seated as King on a throne, high and exalted. Thus the Lord is “separated” spatially from his creation. Then, too, there is a close connection between the Lord’s holiness and his kingship. Isaiah saw the Lord on his majestic throne in the year that Judah lost one of its better kings (Uzziah) after a long and prosperous reign. So the Lord is “separated” from the frailties of human rulers. Isaiah 6:3 closely associates the Lord’s regal glory (his manifested character) with his holiness. After seeing the vision, Isaiah’s first utterance declared the Lord to be King (6:5). The temple was holy in the sense that it was set apart to King Yahweh for his holy purposes and functions in his service and for his glory.14

6 BDB, 1033–34; H. J. Austel, “שָׁמַע,” TWOT 2:938.

7 L. C. Allen, The Books of Joel, Obadiah, Jonah and Micah, NICOT (Grand Rapids: Eerdmans, 1976), 269.

MT Masoretic Text

8 J. A. Motyer, The Prophecy of Isaiah: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Downers Grove: InterVarsity, 1993), 62.

9 When two volitional forms occur together, as here (imperative followed by jussive), the second signifies purpose or result (IBHS, 577).

10 K. L. Barker, “Zechariah,” EBC 7:632 n. on 4:14; note bibliographical references there.

11 C. F. Keil, “The Twelve Minor Prophets,” in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C. F. Keil and F. Delitzsch, trans. J. Martin (Grand Rapids: Eerdmans, 1949), 1:426.

12 The Hebrew word used here for “temple” (הֵיכָל) is ultimately derived from Sumerian é.gal, literally “great house” (cf. Akk. ekallu, “royal palace,” in CAD 4:52–61). In Hebrew it came to be used for either “palace” or “temple” (BDB, 228). Either is appropriate for King Yahweh, since the ark of the covenant represented his throne in his earthly temple.

13 N. H. Snaith, The Distinctive Ideas of the Old Testament (New York: Schocken, 1964), 24–32, 42–50.

14 Barker, “Zechariah,” in EBC 7:620–21.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48–50.

 

- 3절  King Yahweh now appears in a theophany as Divine Warrior in preparation for punishing his covenant-breaking people. “The Lord is coming” and “he comes down” describe his intervention in history (Pss 18:9; 96:13; 144:5; Isa 26:21; 31:4; 40:10; 64:1–3; Zech 2:10; 14:3; Mal 3:1). The participle yōṣēʾ (“is coming”) probably is best taken as indicating imminent action (futurum instans), which can be translated “is about to come.”15 The Lord’s “dwelling place” is his holy temple in heaven (v. 2). Treading the high places of the earth speaks of conquest. “High places” could refer to pagan shrines (v. 5), but in view of “mountains” (v. 4) the term probably here means “heights,” as in Amos 4:13. Since God comes down to earth, he is not just transcendent (v. 2) but immanent (v. 3). He is the sovereign Lord of history, nations, earth, and its peoples. He intervenes. He acts. He conquers and judges.

15 C. von Orelli, The Twelve Minor Prophets, trans. J. S. Banks (1897; reprint, Minneapolis: Klock & Klock, 1977), 191; IBHS, 627. B. K. Waltke states, “The participle with הִנֵּה normally denotes an imminent future situation” (“Micah,” in The Minor Prophets, 3 vols., ed. T. E. McComiskey [Grand Rapids: Baker, 1993], 2:618). Similarly, the following verbs (perfects with waw consecutive) are oriented toward the future (“will come down,” “will tread,” etc.). The כִּי before הִנֵּה introduces the theophany as further explanation of v. 2.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50.

 

5-7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찾아오신 구체적인 목적은 바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함이었다. 

5절 본문은 4개의 수사학적인 질문으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한다.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이 두 왕국이 하나님께 지은 죄를 지적하면서 선지자는 사마리아를 이스라엘의 산당으로, 예루살렘을 유다의 산당을  보고 있다. 댓구로 볼 때 유다의 산당이 아니라 유다의 죄가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이 더욱 적당해 보인다. 결국 미가가 주목하고 있는 죄는 바로 이스라엘과 유다가 여호와께 등을 돌리고 우상을 숭배하였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어쩌면 자신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자신들은 하나님을 거부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명령하셨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겼던 것이다. 

이처럼 본문 5절에는 허물과 죄라는 단어가 함께 사용된다. 허물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페사’인데 이는 의도적인 반역을 의미하는 표현이고, 죄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하타트’는 사람이 이행해야할 책임을 완수하지 않은 것으로 하나님의 법이나 성품이 금하는 것을 범하는 것이다. 미가는 지금 허물과 죄라는 표현을 모두 사용하면서 이들이 당연히 감당해야할 책임을 잘 이행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반역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두 국가의 수도이자 권력, 종교의 중심지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문제는 종교적으로 부패한 리더십임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6절에서 사마리아를 들 무더기 같게 하실 것이고 심판으로 인해 성의 기초가 드러날 것임을 말씀하신다. 사마리아의 운명은 이후의 예루살렘의 운명과 비슷하다.(3:12) 

7절에서 미가는 ‘기생의 값’이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사용한다. 이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방 신전에서 창녀들에게 주던 몸값으로 돈, 식량, 옷등을 지불했다.(창 38:17-18; 겔 16:10-11; 호 2:8-9) 

미가 1:7 (NKSV)

7새겨서 만든 우상을 모두 박살내고, 몸을 팔아서 모은 재물을 모두 불에 태우고, 우상을 모두 부수어서 쓰레기 더미로 만들겠다. 몸을 팔아서 화대로 긁어 모았으니, 이제, 모든 것이 다시 창녀의 몸값으로 나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가 신전 창녀들을 고용해서 얻은 재물이 다시금 창녀의 화대로 사용될 것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새겨진 우상들이 부서지고 불살라지며 쓰레기 더미가 될 것이다. 

요세프스는 앗수르의 손에 멸망한 사마리아가 훗날 히어카누스가 이 도시를 완전히 초토화한 일을 통해서 이 예언이 최종적으로 성취되었다고 했다. 

 

“All this” refers to the Lord’s coming in judgment (vv. 3–4). The reason for it is here said to be Jacob’s transgression and the sins of the house of Israel. The primary nuance of pešaʿ (“transgression”) is “rebellion.”19 Jacob (another name for Israel because he fathered the twelve tribes) had rebelled against the Mosaic or Sinaitic covenant and against the Lord (King) of the covenant and his rule. The key concrete idea of ḥāṭāʾ (the Heb. root behind “sins”) is “missing the mark/target, failure, falling short of the divine standard, et cetera” (Judg 20:16; Job 5:24; Prov 8:36; 19:2; cf. Rom 3:23); but it has semantically developed into the more common idea of “offense” or “sin” in general.20 The rebellious acts, sins, offenses, and failures are listed in passages such as 1 Kgs 14:15–16; 16:30–33; 2 Chr 28:1–4, 24–25. Israel and the first occurrence of Jacob theoretically could refer to either the entire nation or the Northern Kingdom alone. The second occurrence of Jacob, however, is a clear reference to the Northern Kingdom because it is coupled with Samaria and distinguished from Judah. Micah uses Israel for the whole covenant people (1:14–15; 2:12; 5:2; 6:2), for the Northern Kingdom (1:13), and for the Southern Kingdom (3:1, 8–9; 5:1, 3).

19 Snaith, The Distinctive Ideas of the Old Testament, 61–64.

20 G. H. Livingston, “חָטָא (ḥāṭāʾ),” TWOT, 277–79.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51.

 

1:6 I will expresses the Lord’s intention to act (1:7, 15; 2:3, 12; 4:6–7, 13; 5:10–15; 6:14; 7:15). Samaria a heap. A similar fate awaits Jerusalem (3:12). uncover her foundations. The threat speaks of judgment and introduces the concept of public shame (cf. 4:11; 7:10).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97.

 

1:6 Micah quotes God in vv. 6–7, pronouncing the sentence and judgment on Samaria for the transgression referred to in v. 5. The prophecy recorded here began to be fulfilled even during Micah’s lifetime when Assyria captured Samaria in 722–721 b.c. (2 Kgs 17:3–6), though complete destruction was not effected until John Hyrcanus inflicted it in 108 or 107 b.c. Destruction of any kind in 722 has been denied by some (e.g., R. L. Smith22). However, if Avigad is correct, a burned layer may be attributed to this earlier period (see comments and notes on Samaria in 1:1).23 So some destruction may have taken place, followed by rapid rebuilding, renovation, and restoration. The Divine Warrior’s use of Assyria to carry out his judgment or conquest in this pericope and the next one is similar to his use of Babylonia in 3:12; 4:9–10; 5:1 and of Alexander and Greece in Zech 9:1–8.

22 R. L. Smith, Micah–Malachi, WBC (Waco: Word, 1984), 18.

23 N. Avigad, “Samaria,” EAEHL 4:1041; cf. L. F. DeVries, Cities of the Biblical World (Peabody, Mass.: Hendrickson, 1997), 230.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52.

 

1:7 The idolatrous nature of “Jacob’s transgression” (v. 5) is elaborated in this verse and God’s intention “to abolish all forms of idolatrous worship, worship that flagrantly violated the first and second commandments (Exod 20:3–5).”24 Therefore Samaria’s idols, religious prostitution, and wealth would also be annihilated. Ahab and Jezebel had increased such idolatry and pagan worship in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1 Kgs 16:29–33), and Baalism and all its trappings continued down to the fall of Samaria. The immoral and idolatrous practices referred to here constituted a blatant violation of Deut 23:17–18.

The “temple gifts” (ʾetnan, used three times in this verse, also translated “wages”) were the gifts the people of Samaria gave to the shrine prostitutes as part of pagan fertility rites. Because of such practices, prostitution in the Old Testament is frequently a symbol for idolatry or spiritual adultery and unfaithfulness (Exod 34:15–16; Judg 2:17; Ezek 23:29–30). The NIrV makes the meaning of the last sentence of the verse clearer: “Samaria collected gifts that were paid to temple prostitutes. / So the Assyrians will use the gifts / to pay their own temple prostitutes.” That is to say, the invading Assyrians (722–721 b.c.) would transfer the wealth Samaria had acquired from its idolatry to their own temples, where it would be used again for immoral and idolatrous worship (2 Kgs 17:6–18). The divine punishment fits the crime. No wonder Israel’s covenant Lord and King decided that it was time for the Northern Kingdom to cease as a separate national entity! (For further application of the principle involved here, see Prov 1:19; Isa 33:15–16; Jas 4:13–14.)

24 W. P. Brown, Obadiah through Malachi, Westminster Bible Companion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1996), 35.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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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와 제목

일반적으로 다른 선지서의 경우 그의 신분이 그의 아버지나 가문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브두엘의 아들 요엘(욜 1:1), 아밋대의 아들 요나(욘 1:1) 하지만 미가서의 경우에는 장소를 통해서, ‘모레셋 사람 미가’라고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족보가 아니라 출신지와 관련해서 자신을 밝히는 선지자로는 미가 외에 아모스와 나훔이 있다. 이 세 선지자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사역을 한 선지자들이라는 것이다. 아모스는 드고아를 떠나 북 왕국으로 갔으며, 나훔은 아시리아의 니느웨를 찾아가 말씀을 선포했고 미가는 고향 모레셋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사역했다. 모레셋은 예루살렘 남서쪽 35km에 떨어진 낮은 지역이다. 미가는 명시적으로 선지자라고 일컬어지지 않지만 그의 능력의 원천은 분명히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미 3:8, 벧후 1:20-21)

미가라는 이름은 ‘누가 주와 같은가?’라는 질문으로 번역될 수 있다(7:18).

미가 7:18 (NKRV)

18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이런 질문들은 여호와의 비할 데 없는 성품과 행동을 강조한다. 

 

같은 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사역했던 미가와 이시야의 메시지를 비교해보면 한 가지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점이 었다. 이사야는 사회 윤리뿐만 아니라 여호와 종교를 부패시키는 배교행위, 정권의 외교정책, 왕족들의 횡포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만, 미가는 오직 한 가지 주제에 메시지의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지도자들의 물질에 대한 욕심과 이 경건치 못한 욕망이 빚어내는 정의에 대한 무관심만을 부각시킨다. 물론 이시야서에 비해 미가서가 짧은 책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포착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미가의 관심이 그만큼 사회정의에 편중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지자 이사야는 상류층 출신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결론이다. 그래서 그는 왕실에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었으며 당시 주요 관료들 및 제사장들과도 섞일 수 있었다. 반면에 마기는 시골에 살던 서민 출신이었다(Mason). 그렇다면 이 두 선지자가 동일하게 사회정의를 외치지만, 이사야는 상류층의 관점에서, 미가는 서민의 관점에서 메시지를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선지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다른 선지자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똑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미기는 리더들의 혹독한 정책이 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엑스포지멘터리 134)

 

2. 저작 연대

1:1을 보면 미가는 유다의 왕인 요담(주전 750~735년), 아하스(735-715년), 히스기야(715-687년)가 다스리던 시대에 예언했다. 이 기간은 오세아와 이사야 같은 다른 주전 8세기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기간과 일치한다. 미가는 이처럼 요담의 통치 말기와 아하스의 16년 통치, 히스기야의 초기 통치 기간에 걸쳐서 사역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계산해보면 20-25년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렘 26:18에서 그 땅의 장로들은 미 3:12를 직접 인용했다. 

Micah prophesied between 750 and 686 BC to the leaders of Samaria (the capital of the northern kingdom) and of Jerusalem (the capital of the southern kingdom). The kings of Samaria were pretenders to the throne, lacking prophetic sanction (cf. Hos 8:4), so Micah names only the kings of Jerusalem: Jotham (750–732/31 BC), Ahaz (735–716/15), and Hezekiah (729–687/86). His contemporaries were Hosea in Samaria (Hos 1:1) and Isaiah in Jerusalem (Isa 1:1). In his prophecies Micah names neither the leaders of Israel nor Israel’s enemies, except for “Babylon” (see 4:10 and note) and “Assyria” and the “land of Nimrod” (see 5:6 and note). This lack of historical specificity evokes more elevated sentiments and facilitates a more universal application. Nevertheless, some prophecies can be better understood by creating scenarios for them from Micah’s historical background. Micah predicts the fall of Samaria to Assyria (1:2–7), which happened in 722 BC. His judgment-prophecies reflect social conditions prior to Hezekiah’s reforms about 701 (Jer 26:19). Micah’s naming of “Assyria” and the “land of Nimrod” in 5:6 reflect Micah’s time, when Assyria reigned over Babylonia. His language is preexilic Hebrew. No scientific evidence disputes the claims of the book’s title.

Micah originally addressed Samaria and Jerusalem. His prophecy “Jerusalem will become a heap of rubble” (3:12) led Hezekiah to repent (Jer 26:19). In its canonical form, his prophecy about the Messiah’s birthplace guided the Magi to Bethlehem (5:2; Matt 2:1–11). The book of Micah still speaks. When the Library of Congress in Washington DC was rebuilt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prominent religious leaders, after considering notable quotes from all known religious literature, chose Mic 6:8 as the motto for the alcove of religion. His book comforts the church in sorrow, restrains her from temptation, and nerves her to fidelity in testing.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587.

 

According to the first verse of the book, Micah’s prophetic ministry fell within the reigns of Jotham, Ahaz, and Hezekiah, kings of Judah. The relevant background Scriptures covering that period are 2 Kgs 15:32–20:21; 2 Chr 27–32; Isaiah 7; 20; 36–39. The following charts will be helpful in negotiating some of the chronology of Micah’s time. All dates, of course, are b.c.1

Kings of Judah

Jotham Ruled for Uzziah 750–740 Official reign 750–735 Lived three more years 735–732

Ahaz Co-regent with Jotham 744/3–735 Then he ruled 735–715 Sixteen-year reign counted from Jotham’s death 732–715

Hezekiah Co-regent with Ahaz 729–715 Then he ruled 715–686

 

Kings of Israel

Menahem 752–742

Pekahiah 742–740

Pekah Rival rule in Gilead 752–740 Sole reign in Samaria 740–732

Hoshea 732–722

 

Kings of Assyria

Tiglath-pileser III745–727

Shalmaneser V 727–722

Sargon II 721–705

Sennacherib 705–681

1 For historical treatments of the period from the mid-eighth century b.c. to the death of King Hezekiah in 686, see J. Bright, A History of Israel, 3d ed. (Philadelphia: Westminster, 1981), 269–309, E. H. Merrill, Kingdom of Priests: A History of Old Testament Israel (Grand Rapids: Baker, 1987), 391–430, and W. C. Kaiser, Jr., A History of Israel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7), 357–81. For a good archaeological survey of the period from 734 to 586 b.c., see E. Stern, “Israel at the Close of the Period of the Monarchy: An Archaeological Survey,” BA 38 (1975): 26–54. For the most part, I follow the chronology of E. R. Thiele for the reigns of the kings of Israel and Judah (The 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s [Grand Rapids: Zondervan, 1983]).

2 Tiglath-pileser was also called Pul in 1 Chr 5:26, where the following “and” in the KJV should be rendered “even,” “namely,” or “that is.” Appropriately the Hebrew verb that follows in that verse is singular: “He took [the Israelites] into exile.” We now know that the Babylonians called Tiglath-pileser “Pulu,” which must have been his throne name in Babylon. (Pulu has been shortened to Pul in Hebrew.)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21–22.

 

3. 주제

미가서의 주제는 심판과 용서이다. 여호와는 그들의 허물과 죄로 인해 자신의 백성을 흩으시는 심판자이시면서 동시에 언약적 신실함으로 그들을 모으고 보호하고 용서하시는 목자이자 왕이시다. 

 

4. 목적, 계기와 배경

미가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죄를 고발하며 앗수르(5:5-6)와 바벨론(4:10)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 

주전 8세기 초기 앗수르의 간섭에서 자유로웠던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의 통치시기에 부유한 상류층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상당한 부패를 가져왔다. 아모스가 8세기 초기 북왕국에 만연했던 경제적, 법적 불의를 정죄했던 것처럼 미가도 북왕국과 남왕국의 구체적인 죄들을 열거한다. 

1) 우상 숭배(미 1:7, 5:12-14)

2) 재산 압류(2:2, 9)

3) 정치 지도자들(3:1-3, 9-10, 7:3)과 종교 지도자들(3:11) 그리고 선지자들(3:5-7, 11)의 실패

4) 개인적인 제사가 신적 정의를 만족시킨다는 잘못된 믿음(6:6-7)

5) 부패한 사업 관행 및 폭력(6:10-12)

 

이 당시가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시기와 겹치는데 매우 복잡한 정치적인 상황들이 계속되었다.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통치기는 신 앗수르 제국이 확장되는 시기였는데

첫째, 아하스는 유다와중에 우상 숭배 뿐만 아니라 수리아와 아람의 예루살렘 공격에 맞서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도움을 구했다.

둘째,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는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에게 함락되었을때 포로로 잡혀갔다. 

마지막으로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다스리는 셰펠라의 여러 성읍과 마을을 점령했지만 결국 701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는데 실패했다. 

 

HISTORICAL BACKGROUND

Assyrian annals give us firsthand knowledge of the Assyrian invasions of Israel at this time. Matching those annals with biblical texts (cf. 2 Kgs 15:29–20:21) this relevant picture emerges:

1. Tiglath-Pileser III (745–727 BC) in 733 took Gilead and much of Galilee and deported the people to Assyria (2 Kgs 15:29).

2. Shalmaneser V (727–722 BC) besieged Samaria for three years and captured it in 722 (2 Kgs 17:5–6).

3. Sargon II (722–705 BC) claims to have captured Samaria, but it was more likely a mopping-up operation. He deported the large property holders, rulers, and religious leaders from Samaria.

4. Sennacherib (705–681 BC) in 701 overran Judah because Hezekiah had joined Babylon and Egypt in a revolt against the Assyrian king (2 Kgs 18–20; Isa 38–39).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587–1588.

 

(1) Purpose

It has been said that one of the purposes of the prophets was to comfort the afflicted and to afflict the comforted. Craigie puts it like this: “Micah has been called the ‘conscience of Israel,’ and certainly the substance of his message was designed to prick the conscience of those who had long since abandoned the integrity of Israel’s faith.”47 Micah appears to have had a threefold purpose: first, to present the nature of God’s complaint against his covenant people (1:2–7; 2:6–11; 3:1–4, 9–12; 6:1–16); second, to proclaim the Lord’s certain punishment of their many sins (3:8); and third, to predict God’s sure salvation to come, centering in the appearance of the Davidic Messianic Deliverer (5:2).

47 P. C. Craigie, The Old Testament: Its Background, Growth, and Content (Nashville: Abingdon, 1986), 192.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35–36.

 

5. 핵심 주제

1)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성품과 그의 백성의 죄는 심판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소송에 대한 선고는 압제자들의 형태와 언약적 불성실에 대해 부과되는 언약적 저주로 주어진다. 

2) 목자이자 왕이신 하나님은 남은자를 모으시고 구원하신다. 새로운 다윗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이 구원자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바로 그 지역으로부터 나올 것이다(5:2-5). 

3) 언약적 신실함은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정의와 자비와 신실함등 사랑의 우선적 형태의 올바른 표현에 있다. 

4) 하나님은 예배의 핵심이다. 민족들은 더이상 거짓 신들에게 몰려가지 않고 시온으로 몰려와 참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 평화롭게 살 것이다.

5)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해방심키는 빛은 죄로 인한 불길한 선고를 극복한다. 용서는 그의 약속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에 기초한다. 

6)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미래의 그의 구원하시는 행위에 대한 해석적인 비유들이다.

 

6. 구원사 요약

모든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할 것을 원하신다.(6:8) 이것이 진정한 인간다움으로 이것으로 이스라엘은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권하도록 부름받았다. 미가의 시대에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의 목적을 붙잡는 것을 거부함으로 타락했으며 이로 인해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메시야의 다스림을 통해서 세상을 복주시려는 그의 계획의 일부가 될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7. 문예적 특징들

미가서는 다양한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서 전달되 일련의 신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장르는 예언이다. 하지만 미가는 논쟁이나 애가와 같은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는데 두개의 주된 예언 형식은 심판에 대한 예언(2:1-4)과 구원 혹은 구속에 대한 신탁(5:2-5)이다. 심판의 신탁은 풍자의 형식을 따른다. 몇몇의 신탁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메시야적 환상과 재림에 대한 묵시적 환상으로 미래의 황금기를 그리고 있다. 책의 많은 부분은 시적 언어로 표현되어 은유와 직유와 같은 언어유희로 이러한 비유적 표현의 의미를 독자들로 하여금 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8. 미가 시대의 중동 지역(주전 740년 경)

미가는 사마리아 함락 직전부터 유다의 히스기야 왕 시대까지 수십년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해서 예언했다. 미가는 떠오르는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히스기야 시대에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에게서 극적으로 구하신 일도 목격했다. 

 

 

미가는 ‘남왕국의 아모스’라고도 불리며 ‘작은 이사야서’라고도 불린다. 그는 남왕국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표출한다. 미가서는 정의, 평화, 메시야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논하고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취임식때(1977년 1월) 미가서 6:8 말씀위에 선서를 했고 취임연설에서 이 말씀을 인용했다. 

미가가 활동했던 이 시기, 남왕국 유다의 웃시야 왕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시대는 이스라엘이 가장 번성하던 시대였는데 이러한 경제적 부흥은 이기주의와 우상숭배로 이어졌다. 경제적 부흥은 필연적으로 분배의 문제로 연결되는데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어 지배층들은 서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앗수르의 잔인성으로 위협을 느낀 북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연합전선을 펼치며 남 왕국 유다왕인 아하스에게도 동맹에 가입할 것을 강요했다. 아하스는 그들의 요구에 거부했고 이에 이스라엘와 베가와 시리아왕 르신은 733년경에 예루살렘을 침략했다. 예루살렘이 연합군에 포위된 상황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아하스를 찾아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했지만 왕은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 왕을 믿기로 했다. 믿음이 아니라 외교적인 해결책을 동원했던 것이다. 아하스의 부탁으로 앗수르 왕은 돈을 받고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치게 된다. 앗수르는 호세아가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를 암살하고 왕이 되자 호세아로부터 많은 돈을 받고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인준해주었고 매년 큰 액수의 조공을 요구했다. 이때부터 유다는 앗수르의 지속적인 지배에 시달렸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왕 호세아가 조공을 멈추자 이스라엘을 공격해 성을 함락시키고 수많은 포로들을 잡아갔다. 

이후 앗수르는 사르곤이 통치하였는데 히스기야는 주변의 이집트와 블레셋과 연합하여 반기를 들었고 사르곤의 서진을 막기위해 성읍들을 요새화하였다. 이때 예루살렘의 실로암 터널을 만들었다. 

다행히 유다는 위기를 모면했는데 이는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처럼 미가의 주요 사역이 유다와 이스라엘이 앗수르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였다. 불안한 국제 정세가운데 유다 내부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이런 혼란한 시대에 미가가 활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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