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와 제목
일반적으로 다른 선지서의 경우 그의 신분이 그의 아버지나 가문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브두엘의 아들 요엘(욜 1:1), 아밋대의 아들 요나(욘 1:1) 하지만 미가서의 경우에는 장소를 통해서, ‘모레셋 사람 미가’라고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족보가 아니라 출신지와 관련해서 자신을 밝히는 선지자로는 미가 외에 아모스와 나훔이 있다. 이 세 선지자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사역을 한 선지자들이라는 것이다. 아모스는 드고아를 떠나 북 왕국으로 갔으며, 나훔은 아시리아의 니느웨를 찾아가 말씀을 선포했고 미가는 고향 모레셋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사역했다. 모레셋은 예루살렘 남서쪽 35km에 떨어진 낮은 지역이다. 미가는 명시적으로 선지자라고 일컬어지지 않지만 그의 능력의 원천은 분명히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미 3:8, 벧후 1:20-21)
미가라는 이름은 ‘누가 주와 같은가?’라는 질문으로 번역될 수 있다(7:18).
미가 7:18 (NKRV)
18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이런 질문들은 여호와의 비할 데 없는 성품과 행동을 강조한다.
- 같은 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사역했던 미가와 이시야의 메시지를 비교해보면 한 가지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점이 었다. 이사야는 사회 윤리뿐만 아니라 여호와 종교를 부패시키는 배교행위, 정권의 외교정책, 왕족들의 횡포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만, 미가는 오직 한 가지 주제에 메시지의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지도자들의 물질에 대한 욕심과 이 경건치 못한 욕망이 빚어내는 정의에 대한 무관심만을 부각시킨다. 물론 이시야서에 비해 미가서가 짧은 책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포착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미가의 관심이 그만큼 사회정의에 편중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지자 이사야는 상류층 출신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결론이다. 그래서 그는 왕실에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었으며 당시 주요 관료들 및 제사장들과도 섞일 수 있었다. 반면에 마기는 시골에 살던 서민 출신이었다(Mason). 그렇다면 이 두 선지자가 동일하게 사회정의를 외치지만, 이사야는 상류층의 관점에서, 미가는 서민의 관점에서 메시지를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선지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다른 선지자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똑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미기는 리더들의 혹독한 정책이 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엑스포지멘터리 134)
2. 저작 연대
1:1을 보면 미가는 유다의 왕인 요담(주전 750~735년), 아하스(735-715년), 히스기야(715-687년)가 다스리던 시대에 예언했다. 이 기간은 오세아와 이사야 같은 다른 주전 8세기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기간과 일치한다. 미가는 이처럼 요담의 통치 말기와 아하스의 16년 통치, 히스기야의 초기 통치 기간에 걸쳐서 사역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계산해보면 20-25년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렘 26:18에서 그 땅의 장로들은 미 3:12를 직접 인용했다.
- Micah prophesied between 750 and 686 BC to the leaders of Samaria (the capital of the northern kingdom) and of Jerusalem (the capital of the southern kingdom). The kings of Samaria were pretenders to the throne, lacking prophetic sanction (cf. Hos 8:4), so Micah names only the kings of Jerusalem: Jotham (750–732/31 BC), Ahaz (735–716/15), and Hezekiah (729–687/86). His contemporaries were Hosea in Samaria (Hos 1:1) and Isaiah in Jerusalem (Isa 1:1). In his prophecies Micah names neither the leaders of Israel nor Israel’s enemies, except for “Babylon” (see 4:10 and note) and “Assyria” and the “land of Nimrod” (see 5:6 and note). This lack of historical specificity evokes more elevated sentiments and facilitates a more universal application. Nevertheless, some prophecies can be better understood by creating scenarios for them from Micah’s historical background. Micah predicts the fall of Samaria to Assyria (1:2–7), which happened in 722 BC. His judgment-prophecies reflect social conditions prior to Hezekiah’s reforms about 701 (Jer 26:19). Micah’s naming of “Assyria” and the “land of Nimrod” in 5:6 reflect Micah’s time, when Assyria reigned over Babylonia. His language is preexilic Hebrew. No scientific evidence disputes the claims of the book’s title.
Micah originally addressed Samaria and Jerusalem. His prophecy “Jerusalem will become a heap of rubble” (3:12) led Hezekiah to repent (Jer 26:19). In its canonical form, his prophecy about the Messiah’s birthplace guided the Magi to Bethlehem (5:2; Matt 2:1–11). The book of Micah still speaks. When the Library of Congress in Washington DC was rebuilt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prominent religious leaders, after considering notable quotes from all known religious literature, chose Mic 6:8 as the motto for the alcove of religion. His book comforts the church in sorrow, restrains her from temptation, and nerves her to fidelity in testing.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587.
- According to the first verse of the book, Micah’s prophetic ministry fell within the reigns of Jotham, Ahaz, and Hezekiah, kings of Judah. The relevant background Scriptures covering that period are 2 Kgs 15:32–20:21; 2 Chr 27–32; Isaiah 7; 20; 36–39. The following charts will be helpful in negotiating some of the chronology of Micah’s time. All dates, of course, are b.c.1
Kings of Judah
Jotham Ruled for Uzziah 750–740 Official reign 750–735 Lived three more years 735–732
Ahaz Co-regent with Jotham 744/3–735 Then he ruled 735–715 Sixteen-year reign counted from Jotham’s death 732–715
Hezekiah Co-regent with Ahaz 729–715 Then he ruled 715–686
Kings of Israel
Menahem 752–742
Pekahiah 742–740
Pekah Rival rule in Gilead 752–740 Sole reign in Samaria 740–732
Hoshea 732–722
Kings of Assyria
Tiglath-pileser III2 745–727
Shalmaneser V 727–722
Sargon II 721–705
Sennacherib 705–681
1 For historical treatments of the period from the mid-eighth century b.c. to the death of King Hezekiah in 686, see J. Bright, A History of Israel, 3d ed. (Philadelphia: Westminster, 1981), 269–309, E. H. Merrill, Kingdom of Priests: A History of Old Testament Israel (Grand Rapids: Baker, 1987), 391–430, and W. C. Kaiser, Jr., A History of Israel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7), 357–81. For a good archaeological survey of the period from 734 to 586 b.c., see E. Stern, “Israel at the Close of the Period of the Monarchy: An Archaeological Survey,” BA 38 (1975): 26–54. For the most part, I follow the chronology of E. R. Thiele for the reigns of the kings of Israel and Judah (The 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s [Grand Rapids: Zondervan, 1983]).
2 Tiglath-pileser was also called Pul in 1 Chr 5:26, where the following “and” in the KJV should be rendered “even,” “namely,” or “that is.” Appropriately the Hebrew verb that follows in that verse is singular: “He took [the Israelites] into exile.” We now know that the Babylonians called Tiglath-pileser “Pulu,” which must have been his throne name in Babylon. (Pulu has been shortened to Pul in Hebrew.)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21–22.
3. 주제
미가서의 주제는 심판과 용서이다. 여호와는 그들의 허물과 죄로 인해 자신의 백성을 흩으시는 심판자이시면서 동시에 언약적 신실함으로 그들을 모으고 보호하고 용서하시는 목자이자 왕이시다.
4. 목적, 계기와 배경
미가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죄를 고발하며 앗수르(5:5-6)와 바벨론(4:10)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
주전 8세기 초기 앗수르의 간섭에서 자유로웠던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의 통치시기에 부유한 상류층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상당한 부패를 가져왔다. 아모스가 8세기 초기 북왕국에 만연했던 경제적, 법적 불의를 정죄했던 것처럼 미가도 북왕국과 남왕국의 구체적인 죄들을 열거한다.
1) 우상 숭배(미 1:7, 5:12-14)
2) 재산 압류(2:2, 9)
3) 정치 지도자들(3:1-3, 9-10, 7:3)과 종교 지도자들(3:11) 그리고 선지자들(3:5-7, 11)의 실패
4) 개인적인 제사가 신적 정의를 만족시킨다는 잘못된 믿음(6:6-7)
5) 부패한 사업 관행 및 폭력(6:10-12)
이 당시가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시기와 겹치는데 매우 복잡한 정치적인 상황들이 계속되었다.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통치기는 신 앗수르 제국이 확장되는 시기였는데
첫째, 아하스는 유다와중에 우상 숭배 뿐만 아니라 수리아와 아람의 예루살렘 공격에 맞서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도움을 구했다.
둘째,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는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에게 함락되었을때 포로로 잡혀갔다.
마지막으로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다스리는 셰펠라의 여러 성읍과 마을을 점령했지만 결국 701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는데 실패했다.
- HISTORICAL BACKGROUND
Assyrian annals give us firsthand knowledge of the Assyrian invasions of Israel at this time. Matching those annals with biblical texts (cf. 2 Kgs 15:29–20:21) this relevant picture emerges:
1. Tiglath-Pileser III (745–727 BC) in 733 took Gilead and much of Galilee and deported the people to Assyria (2 Kgs 15:29).
2. Shalmaneser V (727–722 BC) besieged Samaria for three years and captured it in 722 (2 Kgs 17:5–6).
3. Sargon II (722–705 BC) claims to have captured Samaria, but it was more likely a mopping-up operation. He deported the large property holders, rulers, and religious leaders from Samaria.
4. Sennacherib (705–681 BC) in 701 overran Judah because Hezekiah had joined Babylon and Egypt in a revolt against the Assyrian king (2 Kgs 18–20; Isa 38–39).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1587–1588.
- (1) Purpose
It has been said that one of the purposes of the prophets was to comfort the afflicted and to afflict the comforted. Craigie puts it like this: “Micah has been called the ‘conscience of Israel,’ and certainly the substance of his message was designed to prick the conscience of those who had long since abandoned the integrity of Israel’s faith.”47 Micah appears to have had a threefold purpose: first, to present the nature of God’s complaint against his covenant people (1:2–7; 2:6–11; 3:1–4, 9–12; 6:1–16); second, to proclaim the Lord’s certain punishment of their many sins (3:8); and third, to predict God’s sure salvation to come, centering in the appearance of the Davidic Messianic Deliverer (5:2).
47 P. C. Craigie, The Old Testament: Its Background, Growth, and Content (Nashville: Abingdon, 1986), 192.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35–36.
5. 핵심 주제
1)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성품과 그의 백성의 죄는 심판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소송에 대한 선고는 압제자들의 형태와 언약적 불성실에 대해 부과되는 언약적 저주로 주어진다.
2) 목자이자 왕이신 하나님은 남은자를 모으시고 구원하신다. 새로운 다윗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이 구원자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바로 그 지역으로부터 나올 것이다(5:2-5).
3) 언약적 신실함은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정의와 자비와 신실함등 사랑의 우선적 형태의 올바른 표현에 있다.
4) 하나님은 예배의 핵심이다. 민족들은 더이상 거짓 신들에게 몰려가지 않고 시온으로 몰려와 참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 평화롭게 살 것이다.
5)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해방심키는 빛은 죄로 인한 불길한 선고를 극복한다. 용서는 그의 약속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에 기초한다.
6)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미래의 그의 구원하시는 행위에 대한 해석적인 비유들이다.
6. 구원사 요약
모든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할 것을 원하신다.(6:8) 이것이 진정한 인간다움으로 이것으로 이스라엘은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권하도록 부름받았다. 미가의 시대에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의 목적을 붙잡는 것을 거부함으로 타락했으며 이로 인해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메시야의 다스림을 통해서 세상을 복주시려는 그의 계획의 일부가 될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7. 문예적 특징들
미가서는 다양한 역사적, 정치적 상황에서 전달되 일련의 신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장르는 예언이다. 하지만 미가는 논쟁이나 애가와 같은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는데 두개의 주된 예언 형식은 심판에 대한 예언(2:1-4)과 구원 혹은 구속에 대한 신탁(5:2-5)이다. 심판의 신탁은 풍자의 형식을 따른다. 몇몇의 신탁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메시야적 환상과 재림에 대한 묵시적 환상으로 미래의 황금기를 그리고 있다. 책의 많은 부분은 시적 언어로 표현되어 은유와 직유와 같은 언어유희로 이러한 비유적 표현의 의미를 독자들로 하여금 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8. 미가 시대의 중동 지역(주전 740년 경)
미가는 사마리아 함락 직전부터 유다의 히스기야 왕 시대까지 수십년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해서 예언했다. 미가는 떠오르는 앗수르 제국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히스기야 시대에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에게서 극적으로 구하신 일도 목격했다.
미가는 ‘남왕국의 아모스’라고도 불리며 ‘작은 이사야서’라고도 불린다. 그는 남왕국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표출한다. 미가서는 정의, 평화, 메시야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를 논하고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취임식때(1977년 1월) 미가서 6:8 말씀위에 선서를 했고 취임연설에서 이 말씀을 인용했다.
미가가 활동했던 이 시기, 남왕국 유다의 웃시야 왕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시대는 이스라엘이 가장 번성하던 시대였는데 이러한 경제적 부흥은 이기주의와 우상숭배로 이어졌다. 경제적 부흥은 필연적으로 분배의 문제로 연결되는데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어 지배층들은 서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당시 앗수르의 잔인성으로 위협을 느낀 북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연합전선을 펼치며 남 왕국 유다왕인 아하스에게도 동맹에 가입할 것을 강요했다. 아하스는 그들의 요구에 거부했고 이에 이스라엘와 베가와 시리아왕 르신은 733년경에 예루살렘을 침략했다. 예루살렘이 연합군에 포위된 상황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아하스를 찾아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했지만 왕은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 왕을 믿기로 했다. 믿음이 아니라 외교적인 해결책을 동원했던 것이다. 아하스의 부탁으로 앗수르 왕은 돈을 받고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치게 된다. 앗수르는 호세아가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를 암살하고 왕이 되자 호세아로부터 많은 돈을 받고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인준해주었고 매년 큰 액수의 조공을 요구했다. 이때부터 유다는 앗수르의 지속적인 지배에 시달렸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왕 호세아가 조공을 멈추자 이스라엘을 공격해 성을 함락시키고 수많은 포로들을 잡아갔다.
이후 앗수르는 사르곤이 통치하였는데 히스기야는 주변의 이집트와 블레셋과 연합하여 반기를 들었고 사르곤의 서진을 막기위해 성읍들을 요새화하였다. 이때 예루살렘의 실로암 터널을 만들었다.
다행히 유다는 위기를 모면했는데 이는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처럼 미가의 주요 사역이 유다와 이스라엘이 앗수르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였다. 불안한 국제 정세가운데 유다 내부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이런 혼란한 시대에 미가가 활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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