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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shall come to pass oin the latter days

that the mountain of the house of the Lord

shall be established as the highest of the mountains,

and it shall be lifted up above the hills;

and peoples shall flow to it,

and many nations shall come, and say:

“Come, let us go up to the mountain of the Lord,

to the house of the God of Jacob,

that he may teach us his ways

and that we may walk in his paths.”

For out of Zion shall go forth the law,1

and the word of the Lord from Jerusalem.

He shall judge between many peoples,

and shall decide disputes for strong nations far away;

and they shall p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more;

qbut they shall sit every man under his vine and under his fig tree,

rand no one shall make them afraid,

sfor the mouth of the Lord of hosts has spoken.

For tall the peoples walk

each in the name of its god,

but uwe will walk in the name of the Lord our God

forever and ever.

The Lord Shall Rescue Zion

vIn that day, declares the Lord,

wI will assemble the xlame

and gather those who have been driven away

and those whom I have afflicted;

and the lame I will make ythe remnant,

and those who were cast off, a strong nation;

and zthe Lord will reign over them ain Mount Zion

from this time forth and forevermore.

And you, O tower of the flock,

hill of the daughter of Zion,

to you shall it come,

the former dominion shall come,

kingship for the daughter of Jerusalem.

o For ver. 1–3, see Isa. 2:2–4

1 Or teaching

p [Joel 3:10]

q See 1 Kgs. 4:25

r Isa. 17:2

s See Isa. 1:20

t [Jer. 2:11]

u [Zech. 10:12]

v [ver. 1]

w See Ezek. 11:17

x Ezek. 34:16; Zeph. 3:19

y ch. 2:12; 5:7, 8; Joel 2:32; Zeph. 2:7

z Isa. 24:23; [Dan. 7:14; Luke 1:33]

a Ps. 2:6; Heb. 12:2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4:1–8.

 

4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오리라

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7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

8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4:1–8.

 

 

앞선 1-3장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혹독한 비난과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3장 12절에서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가 된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 끝날에 예루살렘 성전은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이 곳으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 

 

미가 4:1-3은 이사야 2:2-4과 비슷하다. 누가 누구의 것을 인용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이사야 2:2–4 (NKRV)

2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서에서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이방인보다 올바르게 살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책망하는데 사용된다. 반면 미가서에서는 이 말씀을 이스라엘과 열방을 차별화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열방은 자신들의 우상을 섬기지만 다윗 왕조에 속한 왕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기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 섹션은 바로 앞에서 선포된 메시지 (3 :9 -12)로부터 매우 드라마틱하게 전환하고 있다. 예루살렘이 순식간에 폐허에서 가장 숭고한 자리로 부상한다. 매우 가혹하기만 했던 분위기에서 구원에 대한 기대로 메시지를 듣는 대상이 부패한 예루살햄의 지도자들이었던 것으로부터 신실한 남은 자들로 변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앞 섹션과 구체적인 연결 고리들도 있다. 첫째, 앞의 메시지에서는 시온이 죄로 물들었으므로 (3:10) 완전히 파괴될 것(3:12)이 선포되었지만, 본문에서는 시온이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으로 가득찬 곳이 될 것이다(4:2). 둘째, 성전의 산은 광야와 같이 되었지만(3: 12), 그날이 오면 여호와 전의 산이 세상에서 가장 으폼이 되는 산이 될 것이다(4:1). 셋째,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들’의 악행은 세상에서 으뜸이었지만( 3: 9,11), 시온은 세상의 모든 산들의 ‘꼭대기’가 될 것이다 (4:1). 넷째, 비록 이스라엘은 시온을 죄인들의 소굴로 만들었지만(3:10),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자신의 가르침의 중심지로 삼으실 것이다( 4:1-2). 다섯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뇌물을 수수하여 부당한 판결을 일삼았지만, 여호와의 통치는 공명하고 합리적이어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것이다(4:2-3). 이러한 대조는 주의 백성이 갈멍해야 할 진정한 통치자는 오직 여호와이심을 강조하고 었다. 본문이 예언히는 여호와의 통치는 선지자의 메시지를 듣고 었던 자들에게는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먼 미래의 마지막 날’에 있을 일이다(1 절).(엑스포지멘터리 194)

 

1-2절) 끝날에 이르러서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언덕들위로 들려지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방 나라들이 가며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라 할 것이다. 

 

본문의 끝날이 종말의 날인지 단순히 미래의 날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메시야가 도래할 날 이러한 놀라운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1절에서는 시온이 물리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여호와의 전의 산이 높임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 메시야,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곳을 무시학 파괴하던 이방이 이제 시온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심을 보고 여로와의 도를 배우기 위해서 달려나오게 될 것이다. 

고대 근동에 신전이 있는 산은 그 높이나 규모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이 있기에 구별되었다. 이는 그 산이 여러 종교적인 상징을 지니기 때문이다. 1) 신이 그의 백성과 함께 함, 2) 신의 혼돈에대한 지속적인 군림, 3) 신의 하늘 처소로 가는 관문, 4) 신이 다스리는 영토에서의 주권. 이 시온의 위대함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함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존귀한 이유는 바로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하며 역동하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백성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본문 1절에서는 사람들(암)이 몰려갈 것이고, 2절에서는 많은 이방 사람들(고이)들이 와서 여호와를 경배할 것을 말한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의 모든 나라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것은 열방의 선택이다. 이처럼 열방이 여호와를 왕으로 섬긴다는 것은 주인 바꾸기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신들이 숭배하던 신들에게서 왕관을 벗겨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일ㅇ르 위해서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와야 한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나아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의 고향, 본거지를 떠나야 한다. 떠나지 않고서는 새로운 곳에 도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익숙하고 편안한 자리를 벗어나야만 새로운 것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1절은 민족들이 여호와의 전의 산이 있는 곳으로 몰려갈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이 표현은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곳을 묘사하는 것으로 파생 명사는 강을 의미한다. 지금 그들은 범람하는 강물이 밀려오듯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 율법에 대한 경외로 그들은 단숨에 예루살렘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2절에서는 많은 이방 사람들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간다. 본문의 야곱의 하나님의 전, 올라가다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으로 순례를 위해서 나아갈 때 자주 사용하던 제사적인 표현이다. 열방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그들이 있던 곳에서 떠나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이 있는 곳으로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받기 위해서 광야를 지나 하나님의 산이 시내산에 오른 것처럼, 열방이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오르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었던 놀라운 특권이 온 열방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 전에 이르면 그분이 그분의 도를 가르치실 것이고 우리가 그의 길을 행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은 필연적으로 이를 듣고 행하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맘씀을 듣고도 여전히 죄악의 자리에서 앉아 있다면 그는 말씀을 제대로 들은 사람이 아니다. 들은바 말씀은 행함으로 연결되게 된다. 

 

The time of the prophecy’s fulfillment is set in “the last days.” The phrase can refer to the general or undetermined future (e.g., Gen 49:1; Num 24:14; Deut 31:29, “in days to come”), but in contexts like this one it usually appears to have in view the Messianic age. “In a real sense the last days began with the first coming of Christ (see Acts 2:17; Heb 1:2) and will be fulfilled at his second coming.”41

“The mountain of the Lord’s temple” is equivalent to “the temple hill” (i.e., Mount Zion/Moriah) in 3:12. It was first exalted when David brought the ark of the covenant there (symbolizing the throne of King Yahweh among his kingdom people) and when Solomon built “the Lord’s temple” there. But the time will come when it will be even more exalted as the most important mountain of all (cf. Ps 48:1–3, 8).42 Is “be raised above the hills” to be understood literally or figuratively? In view of the topographical changes prophesied in passages like Zech 14:4–5, 10, Delitzsch argues for both. He insists that “it is not merely an exaltation of the temple mountain in the estimation of the nations that is predicted, but a physical and external elevation also.”43 Thus Mount Zion and its temple will be elevated probably both physically and in prominence. Finally, the verse indicates that “peoples will stream to it.” Doubtless “peoples” is to be understood here in the same essential sense as the Isaiah parallel: “all nations.” The Hebrew for the verb “stream” has the same root as the Hebrew word for “river.” The picture is that of people from “many nations” (v. 2) rushing like a great river toward Jerusalem. This is elucidated further in the next verse.

41 NIVSB, Isa 2:2 n. Hill adds, “According to some, the phrase connotes those ‘latter days’ when God fulfills the prophecies concerning the restoration of Israel, the judgment of the nations,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messianic kingdom” (A. E. Hill, “אַחֲרִית,” in NIDOTTE 1:362).

42 The “as” in “as chief” (בְּרֹ֣אשׁ) represents beth of essence, identity, or equivalence in the Hebrew text (cf. IBHS, 198).

43 F. Delitzsch, Biblical Commentary on the Prophecies of Isaiah, 2 vols., trans. J. Martin (1877; reprint, Grand Rapids: Eerdmans, 1965), 1:114.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3–84.

 

3-4절)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판결하실 것이다. 무리가 갈을 보습으로, 창을 낫으로 만들 것이다. 이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인데 왜냐하면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미가는 산과 작은 산(언덕), 민족과 이방, 도와 길, 칼과 창, 보습과 낫의 쌍을 이루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앞서 말씀을 들은 이들은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이루어 낸다.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는 것으로 그런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는 이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농기구로 바꾸어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간다. 미가가 꿈꾸는 세상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다스리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손의 칼을 내려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자신들의 칼과 창을 농기구인 보습과 낫으로 만들고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곳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갈망하는 곳이라면 교회의 본질은 공평과 정의여야 한다. 연약한 자들이 보호받고 그 안에서 안전과 평안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4절에서 미가는 각 사람이 자신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라고 표현한다. 포도와 무화과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세 흔히 재배되던 열매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했고 무화과 역시 이스라엘의 삶에 중요한 실과였다. 이것들은 땅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이 풍요로움은 사치스러운 것은 아니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풍성하게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찌보면 지금 현대를 관통하는 소비주의를 극복하게하는 표현이다. 이 시대는 남들이 소유하지 않은 특별한 아이템을 소유해야만 행복할 것이라고 광고한다. 그래서 명품을 입고 사용해야만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날이 이르면 검소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그네로 이땅을 살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 그리스도인으로 궁상을 떨며 살 필요는 없지만 가난으로 인해서 두려워하거나 사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궁핍에 처해서도, 풍요에 처해서도 일체의 자족함의 비결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 3절)  The result of the Lord’s action in vv. 2–3a is next stated, so that the waw consecutive prefixed to the Hebrew perfect tense could be translated “So” or “Then”: “So they wi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Because of the Lord’s direct intervention, weapons of warfare will become useless. “Here is synecdoche where the abandonment of two weapons—swords and spears—stands picturesquely for total disarmament.”51 The arms race will be over. Precisely the opposite picture is portrayed in Joel 3:10.52 “What is here called a plowshare was actually an iron point mounted on a wooden beam. Ancient plows did not have a plowshare proper.”53 The verse closes with the prophecy that one nation will not use its weapons (“sword”) against another nation. People will not even train for war anymore. The “West Points” of the world will no longer be necessary. Instead of learning the art of war, the nations will learn the art of peace. When they all submit to “our Lord and his Christ” (Rev 11:15; cf. Ps 2:1–3, 10–12), peace (Shalom) will break out.

This is a description of Messianic, and even millennial, conditions. Yet how different the situation will be until then, with wars and rumors of wars and nation rising against nation (Matt 24:6–7)! Although this vision of universal peace (v. 3b) is the United Nations’ motto, in a world of sin, fallenness, and depravity there can be no lasting external peace until the Prince of Peace returns to establish his Davidic kingdom fully and forever and rule it himself (cf. 2 Sam 7:12–16; Ps 89:3–4, 19–29, 33–37; Isa 9:6–7; Ezek 34:23–24; Dan 7:13–14, 27; Zech 9:9–10; 14:9; 1 Cor 15:20–28; Eph 1:9–10; Heb 2:5–9; 10:12–13; Rev 19:11–20:6). Such rule rightfully belongs to him, and one day the obedience of the nations will be his (see Gen 49:10; Ezek 21:27). However, that does not mean that we should not do everything in our power in the meantime to bring about as much external peace (in addition to personal, internal peace) as is humanly possible (see Matt 5:9; Rom 12:18; 1 Tim 2:1–8; Jas 3:17–18).

51 A. B. Mickelsen, Interpreting the Bible (Grand Rapids: Eerdmans, 1963), 187.

52 See D. A. Garrett (Hosea, Joel,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7], 385), who interprets the expression there as “a proverbial call to arms.”

53 NIVSB, Isa 2:4 n.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5–86.

 

4:4 The vine and the fig tree are intended to picture proverbially the security, prosperity, and contentment of God’s peaceable kingdom (1 Kgs 4:25; Zech 3:10; cf. Isa 11:6–10; 16; 65:20–25). Fear will be a thing of the past (Zeph 3:13). “Fig trees were valued for their fruit and for their shade. Like the vine, fig trees became a symbol of security and of prosperity.”54 Embry adds “personal peace” to the symbolism.55 And all this will happen because the Lord Almighty has spoken it. “The Lord Almighty” is a good rendering of Yahweh Sabaoth (traditionally “the Lord of hosts”). Equally good would be “the Lord who rules over all.”56

54 R. Gower, The New Manners and Customs of Bible Times (Chicago: Moody, 1987), 118.

55 E. M. Embry, “Tree, Plant, Root, Branch,” in NIDNTT 3:865–66.

56 See my chapter, “The Lord Almighty,” in The Making of the NIV, ed. K. L. Barker (Grand Rapids: Baker, 1991), 107–8, 161.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6.

 

5절) 만민이 각각 자기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세상은 각자 자신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살아간다. 자기의 배를 신으로 섬기기도 하고, 돈을 맘몬으로 섬기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성공과 권력, 성과 쾌락을 추구한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반드시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안에 거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고 불가능한 일이다. 

 

6-8절) 그날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는 자를 모으시고 쫓겨난 자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으실 것이다. 발이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시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고 여호와께서 시온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실 것이다. 

 

6절의 '그 날에는이라는 표현은 앞서 1절의 ‘끝날에’를 상기시킨다. 본문은 메시야가 도래하셔서 통치사히는 그 날에 누가 하나님나라에 거하게 될 것인지, 누가 메시야 왕국의 백성이 될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6-7절은 저는 자, 쫓겨난 자, 환난 받게 한자. 발이 저는 자와 같이 가장 소외당하고 약한 자들을 불러내시고 그들을 남은 자, 강한 나라가 되게하시겠다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결단을 표현하는 의지형의 표현을 사용하고 계신다. 이렇게 연약한 자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될 때 세상의 강한 자들보다 더 강한 자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오해할 수 있는 것은 연약한 자들을 불러모으는 행위가 강한 자들에 대한 의도적인 배제, 혹은 배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강한 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남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연약한 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가장 쉽게 희생당하고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그 날에 메시야의 다스림과 통치가 임하게 될 때에는 ‘저는 자, 쫓겨난 자, 환난 받게 한 자, 발을 저는 자’와 같은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7절에서 여호와께서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하나님 나라의 백성, 소외된 자들)을 다스리실 것임을 선포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다. 이는 칼빈이 주장한 성도의 견인’이다. 

8절에서 돌아올 것에 대한 약속은 시온의 회복과 연관되어 있다. 실제로 당시의 백성들은 이방의 압제로 멸망의 위협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온이 회복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시온과 예루살렘이 황폐해지고 멸망을 경험할 것이지만 그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이다. 

 

이 회복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저는 자들과 쫓겨난 자들을 모으실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 그들을 강한 나라가 되게 하시고 시온 산에서 다스리실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의 나라가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그분이 일하셔야만 우리의 인생이 반전이 가능하다. 그래야만 인간의 구원이 가능한 것이다. 결국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4:6 In context “In that day” probably is generally equivalent to “In the last days” (v. 1).65 “Jerusalem,” “mountain,” and “Zion” are mentioned in both the preceding salvation oracle and this one, linking the two oracles quite closely in theme and motifs. Micah quotes the Lord directly in vv. 6–8, using “declares the Lord” to stress that the origin of his message is God himself, thus giving divine authority to the prophetic utterance. God’s people are portrayed as weak, wounded, scattered sheep in exile among the nations without a shepherd. Although he is the one who, because of their sin, afflicted them and brought them to such grief (for the meaning of the Hb. root used here, see 1:12; 2:3), as the good royal Shepherd he will rescue, gather, and restore them (cf. 2:12; Isa 40:10–11; 54:7; Jer 23:3–4; 31:7–14; Ezek 11:16–17; 20:34–44; 34:11–16, 23–24; Zeph 3:19–20; Zech 10:8–12). Although the word “exiles” may reflect the Assyrian and Babylonian captivities as background, it has primarily in view the Diaspora (dispersion of the Jews) that followed the Roman destruction of Jerusalem in a.d. 70. Thus the restoration in view probably is the final, future one.66 Fausset makes a contemporary application of the principle: “Affliction is the discipline appointed to train the believer for coming glory.”67 So the best is yet to come for the faithful remnant of Israel (Rom 11:26).

65 For a discussion of “In that day” see Barker, “Zechariah,” 619–20 (on 2:11–12).

66 Ibid., 672.

67 Fausset, “Jeremiah–Malachi,” 599.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8–89.

 

4:7 The Lord promises to make the “lame” of v. 6 into a faithful remnant (for “remnant” see comments on 2:12). Indeed, he will make them into a “strong nation,” though “strong” also could mean “populous” (see comments on v. 3). The weakling of v. 6 will be able to say, “I am strong!” (Joel 3:10; cf. 1 Cor 1:26–31). Micah may be the speaker in the second half of the verse (note the change from first person to third), yet it is not uncommon for the Lord to refer to himself in the third person. The Lord will rule over the restored faithful remnant and strong (or populous) nation in Mount Zion, the site of the temple that contained the ark of the covenant, representing the Great Shepherd-King’s earthly throne. According to Zech 14:9 he will reign not just over “them” but also over “the whole earth.” The last colon of the verse indicates that his reign will never end (cf. Ps 146:7–10). So the Messiah (God’s “Anointed” King) will rule over a universal and eternal kingdom (see also Isa 9:6–7; Dan 7:14, 27; Luke 1:32–33; Rev 11:15).68

68 For “The Lord will rule” see comments on Zech 2:10 in Barker, “Zechariah,” 619.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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