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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But refuse to enroll younger widows, for when rtheir passions draw them away from Christ, they desire to marry 12 and so incur condemnation for having abandoned their former faith. 13 Besides that, they learn to be idlers, going about from house to house, and not only idlers, but also sgossips and tbusybodies, saying what they should not. 14 So I would have uyounger widows marry, bear children, vmanage their households, and wgive the adversary no occasion for slander. 15 xFor some have already strayed after Satan. 16 If any believing woman has relatives who are widows, let her care for them. Let the church not be burdened, so that it may care for those ywho are truly widows.
r [Rev. 18:3, 7, 9]
s 3 John 10 (Gk.)
t 2 Thess. 3:11; 1 Pet. 4:15
u [1 Cor. 7:9]
v [Titus 2:5]
w ch. 6:1; Titus 2:5, 8
x [ch. 1:20]
y ver. 3, 5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전 5:11–16.
 
11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전 5:11–16.
 
11절) 원문에는 역접 접속사 ‘데’가 포함되어 있다. 앞서 명부에 올린 과부에 대한 내용을 9-10절에 언급했다면 본절부터는 젊은 과부들을 명부에서 제외시키라고 명령한다. 
‘젊은’으로 번역된 ‘네오테라스’는 문맥상 60이하의 과부를 말한다. ‘올리지 말지니’로 번역된 ‘파라이투’의 원형 ‘파라이테오마이’는 ‘~에서 부터, ~에 거슬러, ~ 옆에’를 의미하는 전치사 ‘파라’와 ‘요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이테오’의 합성어로 ‘~에 거슬러 요구하다’는 뜻이며 ‘멀리하다, 사양하다’로 번역된다. 한글 개역에서는 이를 ‘거절하라’라고 번역하였다. 문맥상 당시 교회안에서 교회가 도울 과부의 명부를 작성하는데 있어서 ‘젊은 과부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명부에 올려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를 거절하라’는 의미이다. 
바울이 젊은 과부들을 명단에 올리지 말것을 명령한 이유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거슬러 정욕에 이끌리면 결혼을 하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5:11
11As for younger widows, do not put them on such a list. For when their sensual desires overcome their dedication to Christ, they want to marry.
 The New International Versi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1), 딤전 5:11.
 
디모데전서 5:11(새번역)
11젊은 과부는 명단에 올리는 것을 거절하십시오.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슬러 정욕에 이끌리면 결혼을 하고 싶어할 것이고,
 
본문에서 '정욕으로 배반할’로 번역된 ‘카타스트레니아소신’은 ‘성적 욕망의 충동을 느끼다’라는 의미인 ‘카타스트레니아오’의 가정법 표현이다. 이는 ‘~에 거슬러, 대항하여’의 뜻을 지닌 접두어 ‘카타’와 ‘육욕적인 생활을 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스트레니아오’의 합성어로 성적인 욕망이 강력하여 결혼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에 대한 충성과 봉사의 맹세를 능가하게 되는 것을 지칭한다. 바울은 이런 이유로 젊은 과부를 명단에 올리는 것을 거절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고 성경이 과부의 재혼을 금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고전 7:39) 특히 구약의 룻과 보아스의 재혼의 경우 아름다운 모델이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젊은 과부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충성하겠다라고 서약한 젊은 과부들이다. 그렇게 서약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재혼하는 것이 마땅한 바인데 교회에 충성을 서약했으나 이후에 육적인 정욕에 이끌려 이 서약을 파기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이 되기에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5:11 The strong disjunction between this section (vv. 11ff.) and the previous (vv. 9, 10) is indicated not only by δέ, but also by the contrasting contents. In vv. 9 and 10 elderly widows are to be put on the list (καταλεγέσθω). In vv. 11ff. “younger widows” are to be “refused” (παραιτοῦ) enrollment. Although who would be a “younger” widow (νεωτέρας, the comparative form of νέος) is implied by the age requirement of at least sixty (v. 9), the primary focus appears in v. 14 with the counsel to remarry and and bear children.
The clause comprising the remainder of v. 11 and v. 12 gives the first reason for this prohibition: When those who have been enrolled want to marry they thereby fall under the judgment of having broken their pledge of serving Christ as widows. The ὅταν (“when”) clause indicates a very likely possibility that provides the condition on which the following clause, “they want to marry,” depends. These two clauses then become the condition on which the judgment of v. 12 is based.
καταστρηνιάζω** (a biblical hapax) is a compound verb composed of στρηνιάζω and κατά, in the sense of “against,” which requires that the object be genitive. The meaning of the uncompounded form expresses the strong impulse of sexual desire, which naturally makes such young widows “want to marry.” This desire to marry means that they will need to set aside or annul the commitment they have made to serve Christ as widows. Thus Paul gives the main objection to enrolling younger widows in the very compact statement καταστρηνιάσωσιν τοῦ Χριστοῦ: “they feel the impulse of sexual desire that alienates from Christ” (see Rienecker-Rogers, Linguistic Key, ad loc.). This compacted statement is then unpacked in what follow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225–226.
 
12절) 젊은 과부가 결혼을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처음 믿음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믿음이 아니다. 이는 젊은 과부들이 평생 독신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이전의 서약, 맹세를 의미한다. 
‘저버렸으므로’로 번역된 ‘에데테산’은 ‘거절하다, 띄어 놓다’라는 뜻을 지닌 ‘아데테오’의 부정 과거형이지만 여기서는 젊은 과부의 서약 파기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자신의 서약을 저버린 자에게 정죄, 심판이 임할 것을 선언한다. 여기서의 ‘정죄’는 ‘크리마’인데 이는 ‘영원한 저주로서의 심판’이 아니라 ‘책망’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러한 맹세, 서약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젊은 과부들을 명부에 올리는 것을 주의하고 거절하라는 것이다. 
 
13절) 본절은 젊은 과부들을 명단에 올리지 말아야 할 또다른 이유를 제시한다. 
바울은 그들을 명부에 올려줄 경우 그들이 게을러져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을 경고한다. ‘익혀’로 번역된 ‘만다누신’은 본래 ‘배우다, 학습하다’라는 뜻을 지닌 ‘만다노’의 현재형으로 게으름을 배우고 몸에 익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본문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게으름을 배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젊은 과부들이 명단에 올라가면 일하지 않게 되고 이로 인해서 남는 시간에 이집 저집 돌아다니게 되고 이로 인해 게을러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돌아 다니고’로 번역된 ‘페리에르코메나이’는 ‘~주위에, 두루’를 의미하는 전치사 ‘페리’와 ‘가다, 오다, 들어가다’라는 의미의 동사 ‘에르코마이’의 합성어로 ‘이리 저리 두루 돌아다니다’라는 ‘페리에르코마이’의 현재분사형이다. 이렇게 두루 돌아다니면서 상담과 조언을 할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경우에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쓸데없는 말을 하며’로 번역된 ‘플루아로이’는 ‘거품을 일으키다’라는 뜻의 동사 ‘플뤼오’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공허하고 어리석은 말을 하는, 잘 지껄이는’의 의미를 지닌다. 
 
‘일을 만들며’로 번역된 ‘페리에르고이’는 ‘~에 대하여. 둘레에’를 의미하는 전치사 ‘페리’와 ‘행실, 일’을 의미하는 명사 ‘에르곤’의 합성어이다. 
데살로니가후서 3:11
11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처럼 게으름은 규모없는 삶을 살게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트러블메이커를 만들어낸다. 
 
‘마땅히 아니할 말’은 교회의 덕을 해치는 말로 중상모략, 뒷담화, 악담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게으름을 몸에 익힌 젊은 과부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쓸데 없고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할 때 교회는 분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명단에 올리지 말라고 한 것이다. 
 
5:13 Paul’s second and concomitant reason for refusing enrollment to younger widows is introduced with “and at the same time also” (ἅμα δὲ καί; BAGD s.v. ἅμα 1a indicates that the word is used as an adverb “denoting the coincidence of two actions in time”; Phm. 22 is the only other Pauline occurrence of the three words together). This reason is that they may become “idle” (ἀργαί) and, even more than idlers, “gossips and busybodies” (φλύαροι καὶ περίεργοι), saying things they ought not say.
“They learn through experience” (μανθάνουσιν, see v. 4) to be (εἶναι understood, see BDF §146.2; BAGD s.v. μανθάνω 4) “idle” (ἀργαί; Kelly suggests that the inferred infinitive is not necessary and suggests the idiom “they qualify as such and such” with a “touch of sarcasm implied”; so also Lock and Simpson). For Paul, to be “idle” or “lazy” (“inactive” in this sense) is inherently contrary to the Christian calling to serve God and is thus wrong (cf. 2 Thes. 3:6–12, where he refers to those not working as “busybodies,” as here).
Paul says that such women “learn to be idle” περιερχόμεναι τὰς οἰκίας, literally, “going around the houses.” One understanding of this clause is that they would be “misusing their opportunities in visitation” (Guthrie, similarly White). Another is that they are, as the RSV puts it, “gadding about from house to house” in the sense of wasting their time and that of others and even perhaps intruding (cf. Fee). Since φλύαροι καὶ περίεργοι are connected syntactically with μανθάνουσιν and περιερχόμεναι τὰς οἰκίας as much as ἀργαί is, the former understanding is most likely correct in that it provides not only the occasion to “learn to be idle” but also, if not even more so, the occasion to learn to be “gossips and busybodies.”
Paul continues with an “and not only … but also” (οὐ μόνον δὲ … ἀλλὰ καί) conjunctional combination, which adds to his concern that the women become idle a concern that they become φλύαροι καὶ περίεργοι. φλύαροι** (a biblical hapax; see Spicq, Notes II, 949) designates those who are “gossips,” i.e., as Paul indicates further, those “saying things they ought not to” (NIV). περίεργοι (see 2 Thes. 3:11: περιεργαζομένους, “busybodies”) means here “busybodies,” i.e., those who pay attention to things that do not concern them (see BAGD) and who busy themselves about the concerns of others. Possibly Paul is using a wordplay here between ἀργαί and περίεργοι, as possibly also in 2 Thes. 3:11 (μηδὲν ἐργαζομένους ἀλλὰ περιεργαζομένους). “λαλοῦσαι τὰ μὴ δέοντα expresses the positively mischievous activity of the φλύαροι, as περίεργοι” (White). τὰ δέοντα (the neuter plural participle of the impersonal verb δεῖ; according to Abbott-Smith, Lexicon, s.v. τὰ μὴ δέοντα = ἃ οὐ δεῖ) indicates the things that ought to be. With the negative μή and the participle λαλοῦσαι, the phrase indicates things that ought not be said.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BDF F. Blass and A. Debrunner, A Greek Grammar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and rev. R. W. Funk from the 10th German ed. Chicago, 1961.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227–228.
 
14절) ‘젊은이’로 번역된 ‘네오테라스’는 ‘젊은’을 의미하는 ‘네오스’의 비교급 여성 복수형으로 원래 ‘더 젊은 여인들’을 의미하지만 본절에서는 60세이하의 젊은 과부를 가리킨다. 바울은 앞선 13절의 폐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재혼할 것을 본절에서 명한다. 바울 자신은 독신을 선호했지만 그렇다고 결혼이나 재혼을 금지한 적은 없다. 
바울은 젊은 과부들로 하여금 재혼을 해서 새가정을 돌보게 함으로써 교회를 대적하는 자에게 비방의 구실을 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는 일은 매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결국 이렇게 가정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게 함으로 대적이 틈타서 미혹할 기회를 주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교회는 문제가 생겼을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해야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바울은 젊은 과부들을 명부에 올리지 말고 가능하다면 재혼하여 가정을 돌보는데 힘쓰라고 명하고 있는 것이다. 
 
5:14 Paul encourages young widows to marry, enter fully into family life, and thus eliminate the aforementioned occasions for temptation and criticism (the inferential οὖν links this consequent command, or exhortation, to the preceding). He uses the verb βούλομαι (“I want” in NASB, “would have” in RSV, “my wish” in NEB, “I counsel” in NIV) to express his apostolic direction. The direct personal involvement signified in first person singular βούλομαι is not unusual for Paul (this form in Phil. 1:12; 1 Tim. 2:8; Tit. 3:8; imperfect in 2 Cor. 1:15; Phm. 13; nominative singular participle in 2 Cor. 1:17). Paul directs this counsel to the νεωτέρας, used here without χήρας, which appears in v. 11, but with it still understood: “the younger (widows).” The counsel is “to marry” (γαμεῖν, Pl.* 12x, 9x in 1 Corinthians 7, 3x in 1 Timothy: 4:3; 5:11, 14).
It might appear that Paul is contradicting 1 Corinthians, where singleness is commended (7:7, 8, 28, 32–35), specifically even for widows (vv. 39, 40). Although Paul thus desired that others serve the Lord with the undivided attention of single persons, he recognized that whether God has given one the gift of singleness or the gift of marriage is decisive (1 Cor. 7:7). At the conclusion of 1 Corinthians 7 he is still expressing his own “opinion” (v. 40), which he has earlier expressed as a “wish” (v. 7), which he knew would not be right for all men and women. In 1 Cor. 7:39, 40, Paul expresses the judgment that a widow is “free to be married,” but then expresses again his wish (see vv. 7, 8) that some be able to live unmarried, as he does, and serve the Lord in the happiness of undivided attention.
Now in 1 Timothy 5 the principle of acting in accordance with God’s gift to the individual (cf. 1 Cor. 7:7) comes to expression as a general rule, without Paul’s feeling the necessity to express the exception that he made in 1 Corinthians 7. Thus both passages express the same principle. The application in 1 Timothy 5 of Paul’s own principle is that he now recognizes more clearly that being married before (i.e., being a widow) is, as a general rule, an indicator of how God has gifted one with reference to marriage and thus a reason to counsel remarriage (cf. already 1 Cor. 7:9). Paul may also be opposing the encouragement given by the culture to remain unmarried by its praise for the “univira” (see Lock and Fee at 1 Tim. 5:10).
The younger widow is not only counseled to remarry but also to “bear children” (τεκνογονεῖν,** a biblical hapax not found in Greek before this occurrence) and to “keep house” (NASB) or “manage their homes” (NIV, οἰκοδεσποτεῖν,** another biblical hapax not found earlier). The benefit of such a course of action is that it would “give the enemy no occasion for reproach” (μηδεμίαν ἀφορμὴν διδόναι τῷ ἀντικειμένῳ λοιδορίας χάριν). The infinitive διδόναι, “to give,” is used in a parallel construction with the preceding infinitives, but in meaning it is dependent on them in the sense that, if the first three things are done (marry, bear children, and manage one’s home, especially the first), then “no occasion for reproach” is left to be given. μηδεμίαν is used here as an adjective meaning “no.” ἀφορμή means literally “the starting-point or base of operations for an expedition” and in our literature “occasion, pretext, opportunity for something” (BAGD). Paul does not want the widows’ situation to provide such to “the one opposing,” “the opponent, enemy” (BAGD s.v. ἀντίκειμαι). The singular participle may be generic, or it may refer to the devil. Paul uses the word elsewhere of humans and of the Antichrist. Here the context is not conclusive. Whatever the reference, the λοιδόρια** (“verbal abuse, reproach, reviling,” BAGD; also in 1 Pet. 3:9) here would seem to be communicated by humans (cf. 4:1). Paul wants to remove the occasion “for” (χάριν, a preposition almost always appearing after the noun it governs) such “reproach.”
NASB New American Standard Bible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NEB New English Bible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Pl. Paul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NASB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228–229.
 
15절) 원문에는 원인과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가 있는데 한글 번역은 이를 제외했다. 본절은 14절의 이유에 해당한다. 이미 교회안에 그렇게 대적의 비방거리가 된 이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한다는 것이다. 
‘돌아간’으로 번역된 ‘엑세트라페산’의 원형 ‘엑트레포’는 본래 다리나 발목을 접질리거나 삐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본문에서는 ‘스스로 길을 잘못 들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탄이 이끄는 길로 인도된 이들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이처럼 사탄에게 돌아간 젊은 과부들은 천박하고 부도덕한 행위에 빠지게 되고 교회 공동체에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결국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은 젊은 과부들로 교회에 충성을 서약한 것을 어긴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부름에 불순종하고 거짓의 아비 사탄을 따르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의 원인을 알았다면 이를 미연에 제거해야 한다. 
 
16절) 우리 본문에서는 ‘믿는 여자’로 번역되지만 ‘표준 원문’에서는 ‘믿는 여자와 남자’라고 번역한다. 이처럼 과부를 돌보는 책임은 단순히 여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본문의 믿는 여자는 ‘개인적인 경제력을 갖춘 여신도’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이들은 마땅히 자신이 돌볼 수 있고 돌봐야 하는 과부를 교회에 떠넘기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교회로 하여금 참 과부, 정말로 더욱 도움이 필요한 궁핍한 이들을 돌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3절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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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a widow be enrolled if she is not less than sixty years of age, having been nthe wife of one husband,1 10 and having a reputation for good works: if she has brought up children, has nshown hospitality, ohas washed the feet of the saints, has pcared for the afflicted, and has qdevoted herself to every good work.
n [ch. 3:2]
1 Or a woman of one man
n [See ver. 9 above]
o See Gen. 18:4
p ver. 16
q [ch. 6:18]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전 5:9–10.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전 5:9–10.
 
9절) 과부의 명부에 올릴 자, ‘명부에 올릴 자’로 번역된 ‘카탈레게스도’는 영어에서 ‘명부, 목록’이란 의미인 ‘카탈로그(catalogue)’의 어원이 되는 단어이다. 이는 ‘~에 관하여’라는 의미의 전치사 ‘카타’와 ‘글로 쓰다, 말하다’란 의미의 동사 ‘레고’의 합성어로 ‘~에 대하여 쓰다, 등록하다, 공문서에 기재하다’라는 동사 ‘카탈레고’의 현재 수동태 명령형이다. 직역하면 '과부가 등록되게 하라'이다. 이렇게 과부를 명부에 올리는 이유는 교회가 어떤 대상에게 돌봄 혹은 재정적인 지원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과부가 교회에 재정적인 지원만을 받는 대상은 아니었다. 그들은 교회의 구제를 받음과 동시에 이미 선한 행실로 잘 알려진 자들로 교회안의 여러 봉사, 구제와 섬김을 위해서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대상들이었다. 이런 대상들을 적극적으로 도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은사를 잘 활용하여 섬김을 하도록 하는 것은 목회자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2세기 초 교부 이그나티우스는 서머나에 있는 ‘과부라 불리는 처녀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이는 교회 안에 과부로 구성된 봉사단이 존재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이 뚜렷하게 구별되었던 고대에 남성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 봉사하기 위해서 특별하게 선발되어 구성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교회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도 이러한 봉사에 더욱 전심 전력했을 것이다.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이는 나이가 육십 이상이 되어야함을 강조하기 위한 이중 부정의 표현이다. 왜 육십 이상의 여성만을 명부에 올리도록 한 것인가? 먼저 육십이 넘은 여성의 경우 노동 능력이 상실되어 외부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며 교회안에서 봉사하는데 있어서도 이정도의 나이가 되어야 깊은 애정과 경험을 통해서 다른 이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보다 어린 나이의 경우에 재혼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14절)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 이는 앞서 바울은 감독과 집사의 자격 조건으로 ‘한 아내의 남편’외 되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면 이제 과부의 명단에 올리기 위해서는 ‘한 남편의 아내’이어야 함을 강조한다.(3:2, 12) 
디모데전서 3:2
2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디모데전서 3:12
12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그렇다면 재혼한 이후 두번째 남편까지 잃은 여인, 과부는 포함되지 않는 것인가? 종교적인 이유로 재혼을 삼가도록 한 경우(안나, 눅 2:36-37, 84년 동안 재혼하지 않음)도 있지만 바울은 젊은 과부들에게 재혼할 것을 권우한다. 그러므로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라는 표현은 단순히 재혼한 경험이 없는 과부를 명단에 올리라는 의미보다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중에 정절을 지켰는가를 지칭하는 것이다.
 
5:9 To be enrolled on the list a woman must already be a “widow” (χήρα). In accordance with vv. 3 and 4, she must be a “widow indeed” in having no family to care for her (cf. v. 16). She must also be “not less than sixty years old” (μὴ ἔλαττον ἐτῶν ἑξήκοντα γεγονυῖα). “Sixty was the recognized age in antiquity when one became an ‘old’ man or woman” (Kelly; for documentation see Spicq; Str-B III, 653) and would be the age at which remarriage becomes less likely as a general rule (cf. vv. 11, 12). Indeed, Paul makes this stipulation because he does not want to exclude or discourage remarriage as the normal, natural course that a widow might follow (vv. 11, 12; cf. v. 14).
Since a woman is already a widow when she is put on the list, the qualification “the wife of one man” must refer to her past life and conduct rather than to her present situation. The phrase ἑνὸς ἀνδρὸς γυνή appears only here in the NT (see above on the counterpart μιᾶς γυναικὸς ἄνδρα, 3:2, 12; also in Tit. 1:6). This phrase cannot be proscribing polyandry since women did not have more than one husband in that society at that time. Some (Bernard, Ellicott, Kelly) have maintained that it means that a woman must have been married only once and have appealed to both Jewish (Judith 16:22) and non-Jewish writings, as well as to tombstone inscriptions praising this as a virtue (see Kelly and Spicq and the illustrations in Wetstein). “Yet,” as Lock says, “the permission to remarry (v. 14) points the other way; the writer would scarcely exclude from the official list a widow who on his advice had remarried and again became a widow.” Therefore, Theodore of Mopsuestia’s comment says it well: “If she has lived in chastity with her husband, no matter whether she has had only one, or whether she was married a second time” (II, 161). Thus the phrase demands a life of sexual and marital fidelity. NIV captures the meaning of the phrase with the words “has been faithful to her husband.”
Str-B H. Strack and P. Billerbeck, Kommentar zum Neuen Testament aus Talmud und Midrasch I–V. 3rd ed., München, 1956.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223.
 
5:9–10 Paul begins to explain what qualifications a widow must meet in order to warrant financial support from the church. Having been the wife of one husband (Gk. henos andros gynē) is the feminine form of a phrase in the requirements for overseers and deacons (see note on 3:2–3). Some interpreters think the point here, as in ch. 3, is marital faithfulness. Others think that, while Paul is not discouraging a second marriage after the death of one’s husband (cf. 5:14; 1 Cor. 7:39), simply as a practical matter he wants to focus the church’s help on widows who have the fewest relatives to support them. good works. The list of qualifications provides a picture of a godly older woman, something for younger women to aspire to.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32.
 
10절) 앞서 명부에 오를 조건 두가지, 60세 이상이며 한 남편의 아내이어야 함을 이야기했다. 본절에서는 세번째 조건으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의 선한 행실을 이야기한다. 
‘선한 행실의 증거’라고 번역된 ‘엔 에르고이스 칼로이스 마르튀루메네’에서 ‘에르고이스’는 ‘행위, 행실, 일’을 의미하는 ‘에르곤’의 여격 복수형이며, ‘칼로이스’는 ‘선한, 훌륭한’을 의미하는 ‘칼로스’의 복수형이다. ‘증거’로 번역된 ‘마르튀루메네’는 ‘증언하다, 증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마르튜레오’의 현재 수동태 분사 단수 주격 여성형이다. ‘목격자, 증인, 순교자’라는 표현은 '마르티스’로 여기에서 영어로 순교자(martyr)이 나왔다. 여기서 언급되는 선한 행실은 선한 과부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의 삶속에서 실천해야할 내용들이다. 특히 인생의 연륜이 있고 평판이 좋은 과부들이라면 더욱 적합한 일들이었다. 
 
본절의 모든 동사는 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 3인칭 단수 동사 표현이다. 
1) 자녀를 양육하며, ‘에이 에테크노트로페센’, ‘아이, 자손’을 의미하는 ‘테크논’과 ‘먹이다, 양육하다’를 의미하는 ‘트로페’의 합성어인 ‘테크노트로페오’의  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 표현이다. 
2) 나그네를 대접하며, ‘에이 엑세노도케센’, ‘손님을 환대하다, 잘 대접하다’라는 동사는 ‘제노도케오’이다. 이는 영접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데코마이’와 ‘나그네, 이방인, 외국인’을 의미하는 ‘세노스’의 합성어이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감독의 자격(3:2)에도 나온다. 초대 교회에서 나그네, 특히 순회 전도자들을 대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처럼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하고 주님의 사역자를 영접하는 일이다. 왕상 17:9의 사르밧 과부나 왕하 4:8-11에 언급된 수넴 여인, 행 16:40에 루디아와 같은 여인들이 대표적인 실례이다. 
 
3)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하기온 포다스 에닙센’, 씻으며로 번역된 ‘에닙센’은 ‘씻다’라는 동사 ‘닙토’의 부정과거형이다. 여기서 발을 씻는 행위는 교회의 공식적으로 행하는 세족식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나그네들을 환대하는 차원에서 행하는 일이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이 노예들이 담당하던 천한 일이었는데 여기서는 '과부들이 나그네들, 특히 순회 복음전도자들을 극진히 겸손하게 섬겼다’라는 의미이다. 이 발을 씻는 행위의 본은 예수님이시다.(요 13:14)
 
4)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들로보메노이스 에페르케센’, 환난은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인해서 온갖 핍박과 환난을 당했다(요 16:33; 살전 1:6; 살후 1:4). 여기서 '환난당한 자들’이라는 표현은 ‘좁다, 에워싸다, 우겨싸다’라는 의미의 동사 ‘틸리보’라는 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이것의 명사형은 ‘들립시스’로 ‘환난, 고통, 괴로움’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포도가 압착틀에서 눌러지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바울은 이렇게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할 것을 명한다. 
‘구제하다’로 번역된 ‘에페르케센’은 ‘충분한 도움을 주다’라는 ‘에파르케오’의 부정과거형이다. 이 표현은 신약에서 본절과 16절에만 사용되는 표현이다. 구체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이들에게 충분한 도움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교회는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도우면서 생색내기를 해서는 안되고 전심으로 실제적으로 충분하게 도와야 한다. 
 
5)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판티 에르고 아가도 에페콜루데센’, ‘행한 자’로 번역된 ‘페페콜루데센’은 ‘바짝 뒤따르다’라는 ‘에파콜루데오’의 부정과거형이다. 이는 강의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접두어 ‘에피’와 ‘따르다, 추구하다’라는 동사 ‘아콜루데오’의 합성어로 단순히 평판만 아니라 실제적인 삶 속에서도 선한 일에 열심으로 전심 전력했어야 함을 강조한다. 제자훈련의 핵심을 선생의 뒤를 따라 가는 것이다. 부지런히 앞선 이의 뒤를 바짝 따라가면서 그 자리를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의 제자, 일군들에게 요구되어지는 덕목이다. 
앞서 선한 행실의 증거라는 표현에서는 ‘칼로이스’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아가도스’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앞선 선한 행실은 증거, 평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선한 일’에서는 행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5:10 Such a woman must also be “well attested in good deeds” (BAGD). Some of these good deeds are specified, and the list is concluded by a final general reference to a woman having “devoted herself to every good deed.”

 

ἐν ἔργοις καλοῖς μαρτυρουμένη, “having a reputation for good works,” is followed in the remainder of the verse by εἰ clauses (εἰ with aorist active indicative for “simple” conditions that are assumed to be the case; BDF §371; Robertson, Grammar, 1004–27). These are connected grammatically to the main verb καταλεγέσθω (v. 9) and function as indications of what “good works,” among others, are required of a woman to be enrolled. The last item, “if she has devoted herself to every good work,” also suggests that the list is cumulative.
The first of these specific qualifications is the condition that “she has brought up children” (τεκνοτροφέω, a NT hapax), i.e., “care[d] for them physically and spiritually” (BAGD). Whether they were her own or orphans is not said. The other conditions that follow are oriented primarily, if not exclusively, to those outside the woman’s family (e.g., “shown hospitality to strangers”), and the children mentioned here may well also be other than family members. ἐξενοδόχησαν** (a NT hapax) means “she has shown or given hospitality,” which most likely includes hospitality to traveling Christians, particularly to those who come teaching and preaching (cf. the concern for hospitality in Mt. 10:40; 25:35; Rom. 12:13; 16:23; Heb. 13:2; 1 Pet. 4:9; 3 Jn. 5–8).
The next condition is that “she has washed the saints’ feet” (εἰ ἁγίων πόδας ἔνιψεν). This requirement reminds one of Jesus’ washing his disciples’ feet (Jn. 13:5, 12, 14), thus doing what a gracious host was to do or have done (Lk. 7:44), and it indicates a woman’s willingness to serve in a humble capacity in other ways (cf. 1 Sam. 25:41). Apparently Paul is not referring to something that had become part of the liturgy of the Lord’s Supper, because then it would not serve as a unique qualification at all. Rather, he is referring to concrete deeds of care for weary and dusty travelers who are fellow Christians (ἁγίων, “saints,” used as a substantive for Christians because they are regarded as holy in Christ and consecrated to God; see, e.g., the salutations of Paul’s letters: Rom. 1:7; 1 Cor. 1:2; 2 Cor. 1:1; Eph. 1:1; Phil. 1:1; Col. 1:2; Phm. 5).
The last specific condition is that “she has assisted those in distress” (εἰ θλιβομένοις ἐπήρκεσεν). ἐπαρκέω** means “help” or “aid.” Its usage in v. 16 (twice, the only other NT occurrences) indicates that the “aid” to be given is providing for the needs of others and caring for them (cf. v. 4), as in the provision of food and care for widows in Acts 6:1, 2. θλιβομένοις (present passive participle of θλίβω, “put under pressure, bring about distress,” passive “be under pressure, be in distress”) is best rendered here “those in distress” (NEB). Although this “distress” or affliction may well include persecution (as it does in Paul, e.g., 1 Thes. 3:4; 2 Thes. 1:6, 7), it would seem to be used in a more comprehensive sense here, as elsewhere in Paul (2 Cor. 4:8; 7:5, 6).
The concluding condition, “if she has devoted herself to every good work,” indicates in general terms what must characterize the widow to be placed on the list and in effect indicates that the preceding were examples of those good works. Plural ἔργοις καλοῖς at the beginning of the verse is now replaced by singular παντὶ ἔργῳ ἀγαθῷ. παντί means “every,” thus making this reference as broad and inclusive as the earlier one but also giving it a more intense and specific focus, i.e., “every good work,” without exception. BAGD’s suggestion (s.v. πᾶς 1a β) is particularly apt for this phrase occurring in the final and summary position: “including everything belonging, in kind, to the class designated by the noun every kind of.… ἐπακολουθέω is used here in the figurative sense of “follow after,” i.e., “devote oneself to” (BAGD). The NIV captures this with its rendering “devoting herself to all kinds of good deeds.”
The qualifications taken together depict one who is clearly past the time one usually remarries and past an age where she is likely to be able to care for herself, who is known for marital and sexual fidelity and purity, for good works, and especially for caring for children, for those in need of hospitality, for those in special need, and finally who devotes herself to not only these but to every kind of good work that God requires of his people. In short, the widow to be put on the list is an elderly, faithful, and godly Christian for whom the church should regularly and faithfully care and to whom the church could entrust, if the need arises, tasks she has already performed.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BDF F. Blass and A. Debrunner, A Greek Grammar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and rev. R. W. Funk from the 10th German ed. Chicago, 1961.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NEB New English Bible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22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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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 widows dwho are truly widows. But if a widow has children or grandchildren, let them first learn eto show godliness to their own household and to make some return to their parents, for fthis is pleasing in the sight of God. She gwho is truly a widow, left all alone, has set her hope on God and hcontinues in supplications and prayers night and day, but ishe who is self-indulgent is jdead even while she lives. kCommand these things as well, so that they may be without reproach. But if anyone does not provide for his relatives, and especially for lmembers of his household, he has mdenied the faith and is worse than an unbeliever.
d ver. 5, 16
e Matt. 15:4–6; Mark 7:10–13; Eph. 6:1, 2; [Gen. 45:9–11]
f ch. 2:3
g ver. 3, 16
h [Luke 2:37; 18:1–5]
i James 5:5; [Ezek. 16:49]
j Rev. 3:1
k ch. 4:11; 6:2
l See Gal. 6:10
m Rev. 2:13; [2 Tim. 3:5; Titus 1:16; 2 Pet. 2:1; Rev. 3:8]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전 5:3–8.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전 5:3–8.
 
1-2절을 통해서 교회안의 연령과 성별에 따라서 목회자로서 어떤 태도와 자세를 보여야할지를 다룬후에 3-16절은 특히 과부를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를 다룬다. 
 
3절) 참 과부인 과부를 존재하라, ‘참’으로 번역된 ‘온토스’는 ‘참으로, 실제로’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로 눅 23:47, 고전 14:25에 사용되었다. 
‘과부’로 번역된 ‘케라스’는 원형 ‘케라’의 복수형이다. 이는 남편이 죽은 여자를 의미하는데 본문에서 의미하는 ‘참 과부’는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를 의미한다. 이는 남편이 죽음으로 스스로 살아갈 만한 능력이 없거나 지참금이나 자신을 돌보아 줄 친척이 없는 궁핍한 과부를 의미하는 것이다. 행 6:1-6에서 볼 수 있듯이 초대교회시절 교회내의 빈곤 계층을 대표하는 집단이 바로 이런 과부들이었다. 
 
사도행전 6:1–6
1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이처럼 초대교회시설 집사들이 선출된 이유가 바로 구제의 필요가 많이 있었고 이를 효과적으로 감당할 인물들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사도들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과부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셨다. 
마가복음 12:43–44
43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막 12:42-43에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헌금한 가난한 과부, 눅 7:11-17에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죽음, 눅 18:3-5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
 
구약 신 10:18; 24:17; 시 68:5; 사 1:17에서도 구체적으로 과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들, 소자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존대하라’로 번역된 ‘티마’는 ‘경외를 표하다, 존경하다, 가격을 매기다라는 의미의 동사 ‘티마오’의 현재 명령령이다. 이는 ‘가치, 값, 지참금’이란 뜻을 지닌 명사 ‘티메’에서 파생되었다. 본절에서 바울이 과부를 존재하라고 언급한 것은 단지 존경과 존중을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과부들을 위한 실제적이고 경제적인 도움을 베풀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말뿐인 동정이 아니라 실제로 생계의 문제를 책임져주고 함께 나누는 구체적인 실천인 것이다. 이러한 과부를 돌보는 것이 교회의 마땅한 책임이라는 것이다. 
 
5:3 With the second person singular imperative “honor” (τίμα), it might appear that Paul is continuing to instruct only Timothy, as he has in vv. 1 and 2. A closer examination reveals that he is instructing the church through Timothy. This inclusive note is sounded with the plural verbs in vv. 4 and 7 (“let them learn,” “they may be above reproach”), with the repeated indefinite (“any”) of vv. 4, 8, and 16, and finally with the explicit reference to the church in the summarizing words of v. 16b. Furthermore, the key terms that begin and end the section are plural (“widows,” vv. 3, 16), which implies that others are in view. Paul may have been influenced by the second person singular imperative in the fifth commandment (LXX τίμα in Ex. 20:12 and Dt. 5:16, as here) and may have assumed that its application to all God’s people would be as obvious here as it is in the Ten Commandments.
Paul’s charge to “honor widows” (χήρας τίμα) echoes the repeated concern for widows found in the OT (Ex. 22:22, 23; Dt. 10:18; 14:29; 24:17–21; 26:12, 13; 27:19; Jb. 24:3, 21; 31:16; Pss. 68:5; 94:6; 146:9; Pr. 15:25; Is. 1:17, 23; Je. 7:6; 22:3; Zc. 7:10; Mal. 3:5), which is reflected elsewhere in the NT (especially Acts 6:1–6; Jas. 1:27). χήρα has as its basic meaning a “woman left without a husband” (see the excellent article by G. Stählin, TDNT IX, 440–65). Paul specifies that he is using the term with the properly attendant and necessary connotations when he adds “who are widows indeed” (τὰς ὄντως χήρας; the phrase appears in the NT only in vv. 3, 5, and 16). He will indicate what he means by the phrase in v. 5.
Paul’s use of τιμάω here is surely influenced by its use in the fifth commandment. Moreover, the only other Pauline occurrence of the verb is a direct quotation of this commandment (Eph. 6:2), and use of the verb in the Synoptics most often reflects this commandment (6 of 10x: Mt. 15:4, 6; 19:19; Mk. 7:10; 10:19; Lk. 18:20). τιμάω means here not only “respect or revere” but “includes material provisions as well” (J. Schneider, TDNT VIII, 179; cf. also Jeremias). This is evidenced by several considerations: The duty to which children are called with reference to widows involves material provision, so that the church will not have to provide such aid (implied in v. 4, stated in v. 16). V. 16 encourages a woman to help any widows in her family so that the church will not be financially burdened and may help those without such help. The passage immediately following v. 16 uses the cognate noun (τιμή) for compensation (vv. 17, 18). Furthermore, the church already understood its responsibilities to widows in this way (Acts 6:1–6). Moreover, Jesus indicated that the injunction to honor parents included material help (cf. Mt. 15:5, 6).
τὰς ὄντως χήρας has been translated in various ways. “Who really are all alone” (TEV) is too restrictive (so Fee), “widows indeed” (NASB; cf. RSV: “real widows”) is an accurate translation, and the paraphrase “widows who are such in the full sense” (NEB) catches the point. ὄντως is not being used to deny that others are widows in the normal sense of the word, but rather to signify those who qualify for the church’s care. Paul will remind family members that they should care for their widows (vv. 4, 8, 16) so that the church can have the ability to care for ταῖς ὄντως χήραις (v. 16). His description in v. 5 will explain the phrase.
LXX Septuagint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TDNT G. Kittel and G. Friedrich, eds.,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 G. W. Bromiley, I–X. Grand Rapids, 1964–76.
TEV Today’s English Version (Good News Bible)
NASB New American Standard Bible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NEB New English Bible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215–216.
 
4절) 교회는 구제에 힘써야 한다. 하지만 제한된 자원을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 먼저 효괴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같은 과부라고 해도 그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집에서 과부인 어머니를 모시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양할 자녀나 손자들이 있다면 그녀는 참 과부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라는 부사, ‘프로톤’을 사용한다. 이는 ‘시간적이거나 순서적인 면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라는 뜻으로 만약 자녀나 손자들이 있는 과부인 경우에 교회가 그 과부를 돌보기 보다 자녀들로 하여금 효를 실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녀들이나 손자가 있는 과부들의 경우 가정의 효가 선행되어야 하는가? 이는 자식으로서 마땅한 도리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뿐아니라 약속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이다. 바울을 이를 통해서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은 강조한다. ‘보답하기를’로 번역된 ‘아모이바스 아포디도나이’에서 ‘아모이바스’는 ‘보상, 보답’이라는 의미이다. ‘아포디도나이’는 ‘되돌려주다’라는 의미의 원형 ‘아포디도미’의 현재 부정사로 ‘계속해서 꾸준히 되돌려주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이 보답의 행위가 단회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계속해서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녀나 손자들이 있는 과부들이 일차적으로 자신의 집에서 그들의 따뜻한 봉양을 받아야 하는 것은 그 자녀들과 손자들로 하여금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한다는 면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바울은 이보다 좀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를 여기서 언급하고 있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문에서는 이 문장에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가 포함되어 있어 이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이를 직역하면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가 된다. 말하자면 효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인 태도와 결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Guthrie). 십계명의 제5계명인 부모 공경의 명령은 자녀된 자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계명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대리인의 자격으로 부모를 세우셨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력이 없는 과부를 자식이나 손자가 봉양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 만한 것이다.
 
5절) 본절은 참 과부의 조건을 언급한다. 
1) 도와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자
2)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
3)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
‘외로운’으로 번역된 ‘메모노메네’는 ‘홀로’라는 의미의 ‘모노스’에서 파생된 동사 ‘모노오’의 완료 수동태로 직역하면 ‘홀로 남겨진’의 의미이다. 이는 남편이나 자녀 혹은 다른 친척이 없어 돌볼음 받지 못하는 상태의 과부를 말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에서 ‘소망을 두어’로 번역된 ‘엘피켄’은 ‘엘피조’의 완료 능동태로 ‘하나님께 계속해서 희망을 걸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비그리스도인 과부와의 결정적 차이이다.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인데 ‘간구와 기도’로 번역된 ‘데에세신’과 ‘프로슈케이스’ 앞에 정관사 ‘타이스’가 동반된다. 이는 이 간구와 기도가 바로 그녀 자신들의 것임을 분명히 해준다. ‘항상 한다’로 번역된 ‘프로스메네이’는 이것이 일상적으로 몸에 밴 태도임을 상기시켜 준다. 본절의 내용을 가장 잘 보여준 이는 과부로 메시야를 기다리며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였던 여 선지자 안나(눅 2:36-38)을 들 수 있다. 
누가복음 2:36–38
36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6절) 한글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문에는 ‘그러나’를 의미하는 ‘데’라는 접속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참 과부와 대조되는 인물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향락을 좋아하는 자’들이다. ‘향락을 좋아하는’으로 번역된 ‘스파탈로사’는 본래 ‘방탕하게 살다’라는 의미의 ‘스파탈라오’의 현재 분사형으로 마치 소돔의 딸들 처럼(겔 16:49) 사치스럽고 방탕하게(약 5:5)사는 과부들에게 적용되었다. 이 표현은 지나친 행동과 신체적 욕구에 무절제한 탐닉을 나타내는 의미인데 바울 당시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했던 과부들이 생계를 위해 부도덕한 매춘 행위를 자행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육체적 쾌락에 탐닉하는 태도는 그녀들이 잠시 누렸던 영적인 기쁨이나 환희를 망각하게 하고 육체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죽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5:6 In contrast (δέ) with the “widow indeed” (ὄντως χήρα), another widow is described. Two things are said about her: (a) what she lives for, and (b) what her spiritual condition is. σπαταλάω** (also in Jas. 5:5 [see Hort’s special note ad loc. in his James]; in the LXX see Ezk. 16:49; Sir. 21:15) means “give oneself to pleasure, live for pleasure,” “live luxuriously or voluptuously,” “live in indulgence.” The specifics of this hedonistic and sinful life-style are not named. Whether it involved sexual sin cannot be said for certain, though this would be a temptation for a widow and a way to provide for financial needs. The contrast with the godly widow is striking: The godly widow trusts in God and seeks first his kingdom; this widow lives only for herself. Although this widow would likely think that she is really “living it up” and that the godly widow’s life is really “dead,” Paul’s verdict is just the opposite. While being physically alive (ζῶσα; cf. 2 Tim. 4:1), she is as a matter of fact already spiritually dead (τέθνηκεν, perfect tense: “have died, be dead”; cf. Mk. 4:19; Mt. 13:22). The implication is that the selfindulgent widow is not a “widow indeed” (ὄντως χήρα), one who should be honored and cared for by the church.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LXX Septuagint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219–220.
 
7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것을 명하여’라고 하는데 여기서 ‘이것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앞서 3-6절의 내용으로 참 과부를 보살필 것에 대한 당부를 의미한다. 디모데는 참 과부들을 존재해야 하고, 만일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일차적으로 보살필 의무가 있음을 알려주어야 했으며, 또한 참 과부를 구별하여 그들로 하여금 육체적인 향락을 일삼지 않고 영적인 것을 추구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원문에는 ‘히나’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목적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그들로 하여금 책망받을 것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라고 번역할 수 있다. 
‘책망 받을 것이 없게’라는 표현은 ‘아네필렘프토이’로 앞서 3:2에서 감독의 자격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책망할 것이 없다’로 번역된 ‘아네필렘프톤’은 부정의 의미를 지닌 ‘아’와 ‘붙잡히다’라는 의미의 동사 ‘에필람바노’의 합성어로 ‘붙잡히지 않는’이란 뜻이다.
디모데전서 3:2
2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디모데전서 5:7
7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디모데전서 6:14
1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이는 전혀 흠이나 잘못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 눈에 띄게 흠 잡을 것이 없는이라는 의미이다. 
 
8절) 바울은 앞서 4절에서 자녀나 손자들로 하여금 과부된 이들을 돌볼 것을 이야기했다. 8절에서는 이를 행하지 않는 이들을 향한 언급이다. 
‘자기 친족’으로 번역된 ‘이디온’의 원형 ‘이디오스’는 ‘자기 자신의’란 뜻으로 자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자를 지칭한다. 직계 가족만 인지 방계(사촌 숙모, 숙부) 가족을 포함하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본문 속에서 ‘자기 가족’은 직계로, '자기 친족’은 방계 혈족으로 볼 수 있다. ‘자기 가족’으로 번역된 ‘오이케이온’의 원형 ‘오이케이오스’는 ‘집’을 의미하는 ‘오이코스’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결국 바울은 직계가족은 물로 친족도 돌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돌아보지’로 번역된 ‘프로노에이’는 ‘~전에, ~앞에’란 전치사 ‘프로’와 ‘알다, 주의를 기울이다’라는 의미의 동사 ‘노이에오’의 합성어로 ‘돌보다, 공급하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자신의 친족이나 직계 가족을 ㄷ로보지 않는 자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한다. 
‘배반한 자요’로 번역된 ‘에르네타이’는 ‘거절하다, 부인하다, 배반하다’라는 동사 ‘아르네오마이’의 완료형으로 말로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의 결여로 자신의 신앙 고백이 허위임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했으나 자신의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결국 태만의 죄로 스스로의 믿음을 부인, 배반하는 것이다,
‘불신자’로 번역된 ‘아피스투’의 원형 ‘아피스토스’는 ‘믿음없는, 신실하지 않은’의 의미이다. 이는 ‘아’라는 부정접두어와 ‘신실한, 충성된’을 의미하는 ‘피스토스’의 합성어이다. 
당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받은 로마의 법에도 과부들에 대한 책임이 명시되어 있다. 하물며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예수의 사랑의 법을 배우고 누리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 믿지 않는 이들도 행하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더 악한 자들인 것이다. 
 
5:8 Here Paul expresses the terrible implications of not caring for one’s own: It amounts to a denial of Christianity and an action and attitude worse than that of an unbeliever. δέ joins this verse to the preceding either as “a simple connective … without contrast” so that “it cannot be translated at all” (BAGD; so RSV and NIV) or as a contrast rendered with the word “but” (NASB, NEB, TEV). If the latter, then the contrast is between being irreproachable by caring for one’s own, or being a faith-denier and worse than an unbeliever by not caring for one’s own. The εἰ δέ τις construction states the matter as a general principle both by its conditionality (εἰ) and by its indefiniteness (τις, “anyone”; see vv. 4, 16). So from beginning (v. 4) to end (v. 16), as well as here in the middle (v. 8), Paul is setting forth principles for the care of widows.
The sin is that anyone does “not provide” (οὐ προνοεῖ) for one’s relatives and one’s family. τῶν ἰδίων καὶ μάλιστα οἰκείων is Paul’s way of delineating those who should be cared for (τῶν ἰδίων, οἰκείων), together with a note of special responsibility (καὶ μάλιστα) for the latter. ἴδιος in the plural as an articular substantive (elsewhere in the NT at Jn. 1:11; 13:1; Acts 4:23; 14:23) denotes those who are “one’s own” and here especially one’s “relatives” (see BAGD s.v.). Contrasted with οἰκείων by means of the emphasis provided by καὶ μάλιστα, τῶν ἰδίων refers to the larger family relationship and corresponds to the reference to “grandchildren” (ἔκγονα) in v. 4. Similarly, plural οἰκείων** (Gal. 6:10; Eph. 2:19; 1 Tim. 5:8) has the meaning here “members of the household” in the sense of “his immediate family” (NIV; cf. “his own family” in RSV, “his own household” in NEB). The καὶ μάλιστα** combination (Acts 25:26; cf. μάλιστα δέ in Gal. 6:10; Phil. 4:22; 2 Pet. 2:10) has the meaning here “and especially,” highlighting within the larger family relationship the special responsibility to one’s immediate family (cf. v. 4).
The apodosis states a twofold consequence. The first is that such failure to care indicates that that one “has denied the faith” (τὴν πίστιν ἤρνηται; note the perfect tense with its implications). ἀρνέομαι (Pl.* 6x, all in the PE*; see Riesenfeld, “ἀρνεῖσθαι”) means here “deny,” i.e., “repudiate” or “disown,” in the sense of apostasy from the Christian faith. Denial is demonstrated by culpable failure. That which is denied is “the faith” (τὴν πίστιν), here referring to Christianity as that which one professes to believe (on this objectivizing of πίστις see on 3:9 above).
Paul joins (καί) to this appraisal the evaluation that such a person “is worse than an unbeliever” (ἔστιν ἀπίστου χείρων). χείρων, “worse,” is a comparative of κακός used with the genitive of comparison ἀπίστου. ἄπιστος means generally “unbelieving” (or “faithless”). Here, correlated with τὴν πίστιν, i.e., the Christian “faith,” an ἄπιστος is a “non-Christian” (the significance in all the Pauline occurrences). Such a person is “worse than an unbeliever” because Paul regards unbelievers as having “the word of the law written on their hearts,” and therefore even unbelievers are known to “do instinctively the things of the Law” (Rom. 2:14, 15; cf. also 1 Cor. 5:1). Thus for a professed believer who has God’s law (“honor your father and your mother”) to fail to do what even many unbelievers instinctively do warrants the verdict that he is “worse than an unbeliever.”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NASB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EB New English Bible
TEV Today’s English Version (Good News Bible)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NEB New English Bible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Pl. Paul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PE Pastoral Epistle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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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o not rebuke an older man but encourage him as you would a father, cyounger men as brothers, older women as mothers, younger women as sisters, in all purity.
b [Lev. 19:32]
c Titus 2:6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전 5:1–2.
 
5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전 5:1–2.
 
본장에서는 교회안의 다양한 지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다루는데 늑히 1-2절은 연령과 성별에 따른 태도를 설명하고 있다. 
 
1절)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늙은이’로 번역된 ‘프레스뷔테로’의 원형 ‘프레스뷔테로스’는 ‘나이 많은’을 의미하는 남성 형용사로 연로한 남자를 지칭한다. 신약 성경에서는 주로 교회의 ‘장로’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17, 19절; 딛 1:5). 1절에서는 말그대로 나이 많은 사람을 의미한다. 
‘꾸짖지’로 번역된 ‘에피플렉세스’의 원형 ‘에피플렛소’는 ‘~위에’란 의미의 전치사 ‘에피’와 ‘치다, 때리다’라는 의미의 ‘플렛소’의 합성어로 본래 ‘주먹으로 치다, 언어로서 폭력을 가하다, 심각하게 화가나서 질책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본절에서는 ‘매우 공격적으로 심하게 질책하고 나무라다’의 의미이다.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어린이나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노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노인들이라고 목회자가 봐주고 넘어갈 수 없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바르게 지도해야할 책임이 있는 자이기에 나이가 많은 이들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처를 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공격적인 언사를 사용해서는 안되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하듯하는 태도를 취하라는 것이다.
 
 
‘권하되’로 번역된 ‘파라칼레이’는 ‘~곁에서’라는 의미의 ‘파라’와 ‘부르다, 청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칼레오’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 ‘옆에서 말하다’라는 의미인데 ‘위로하다, 충고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파라칼레오’의 현재 명령형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연장자에게 따뜻한 권면의 방식으로 충고하고 위로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권하는 태도는 단지 노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 늙은 여인, 젊은 여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태도인 것이다. 연장자에 대한 태도가 겸손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록하고 당연한 것이지만 특히 기독교안에서 노인과 부모를 공경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레위기 19:32
32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바울은 늙은이에게 목회자로서 바람직한 태도를 가르친 후에 이어서 젊은이에 대한 태도를 가르치고 있다. ‘젊은이’로 번역된 ‘네오테루스’는 ‘새로운’이라는 뜻을 지녔다. ‘청년(마 19:20)’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형용사 ‘네오스’의 비교급으로 여기서는 디모데 자신보다 더 젊은 사람을 의미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들을 형제처럼 대할 것을 권면한다. ‘형제’로 번역된 ‘아델푸스’의 원형 ‘아델포스’는 ‘같은, 동일한’이란 의미의 접두어 ‘아’와 ‘자궁’이라는 의미의 명사 ‘델퓌스’의 합성어로 ‘같은 자궁에서 나온 사람’, 즉 혈연 공동체로서 한 가족의 구성원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모시는 교회 공동체 구성원을 부르는 호칭으로 자연스럽게 차용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바울 서신에서 ‘형제들라, 아델포스’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남자만이 아니라 ‘형제와 자매들아’라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서 젊은 사람들을 형제처럼 대하라는 것은 무엇보다 그들과 함께 우애가 포함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의미와 더불어 그들을 같은 믿음을 가진 동역자로 여기라는 것이다. 물론 평등함이나 신앙적 동질성에 대한 의식이 목회자로서의 권위를 배제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목회자로서 권면해야할 바를 간과하지 말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인 젊은이들을 사랑과 관용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To command respect it is wise to show respect. Do not rebuke. Applies to all four kinds of people mentioned in vv. 1–2. exhort. A way of steering and encouraging people. This task will be more fruitful if the pastor approaches older men like a father, not a subordinate, and if he treats peers as brothers. In the household of God (see 3:15 and note), it should be natural to regard others as family members.
vv. verses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74.
 
5:1 So v. 1 admonishes, “do not sharply rebuke” (μὴ ἐπιπλήξῃς). ἐπιπλήσσω,** a NT hapax (variant reading in Mt. 12:15f.; Lk. 24:43), means “strike at” or “rebuke” in the sense of “rebuke sharply” with a note of severity (MM). Such sharpness and severity are prohibited to Timothy. The prohibition extends to Timothy’s relations with all the groups named in view of the fact that exhortation is given as the proper alternative course of action (ἀλλὰ παρακάλει) and is the operative verb for all the groups.
Paul begins this list of groups with the “older man.” The singular is generic, as is evidenced by the plurals used for the following three groups. πρεσβύτερος (Pl.* 5x, all in PE: 1 Tim. 5:1, 2, 17, 19; Tit. 1:5; a comparative of πρεσβύς functioning here as a substantive) designated both age and office in that day as the equivalent word “elder” does today (used of age in Lk. 15:25; Jn. 8:9; Acts 2:17; see BAGD). Although some have thought that πρεσβύτερος is used here for church officers (as in 5:17), most commentators have recognized that the corresponding categories of “younger men” (νεωτέρους) and “older women” (πρεσβυτέρας) point to this as a category of age and sex rather than of office. The papyri contain several examples of this use of πρεσβύτερος in settings similar to that found here with advice given as to how one should relate to various groups that are older, the same in age, or younger (see MM; Dibelius-Conzelmann; Wetstein, NT Graecum, ad loc.).
Although Paul does not want Timothy to “sharply rebuke” an older man or anyone else, he does very much want Timothy to minister to them (cf. the adversative ἀλλά indicating a contrast to what precedes). Present imperative παρακάλει indicates the ongoing action demanded. παρακαλέω (see the data at 1:3) carries a spectrum of meanings that can be partially spanned by the translation “appeal to” (see BAGD). This occurrence of the verb follows a use of the related noun παράκλησις that is correlated with teaching (4:13), so its usage here is probably influenced by that association. Furthermore, the meaning of the verb here is also likely to be that found in 1 Tim. 6:2 (ταῦτα δίδασκε καὶ παρακάλει) where παρακαλέω is also associated with teaching. In both contexts, that which is taught is also to be urged upon and applied to the hearers. Thus here also the note of “appeal” or “exhortation” is in view.
Such pastoral admonition must be done, and with the respect due to one who is older. Thus Timothy must treat older men as (ὡς) he would treat his own father (ὡς πατέρα). πατήρ is used here in the sense of one’s natural father, and Paul probably has in mind the command to honor one’s parents (Ex. 20:12; Dt. 5:16; cf. Lv. 19:32; La. 5:12b).
“Younger men” (νεωτέρους, comparative of νέος) are to be exhorted “as brothers” (ἀδελφούς). Regarding disciples as family members is established by Jesus in the Gospels (Mt. 12:49, 50 par. Mk. 3:34, 35; Lk. 8:21; cf. Mk. 10:30). Timothy is reminded that in coming with the authority of a minister of Christ he is to regard those “younger,” not as younger or inferior, but as family peers, i.e., “brothers,” and conduct himself toward them in that way (ὡς ἀδελφούς).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MM J. H. Moulton and G. Milligan, The Vocabulary of the Greek Testament. London, 1930.
Pl. Paul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Paul or in the Pastoral Epistles are cited
PE Pastoral Epistles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MM J. H. Moulton and G. Milligan, The Vocabulary of the Greek Testament. London, 1930.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par. parallel Gospel passages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213–214.
 
2절)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1절에서 늙은이와 젊은이를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면 이제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를 대하는 자세, 태도를 가르치고 있다. ‘늙은 여자’로 번역된 ‘프레스뷔테라스’는 ‘장로, 어른, 늙은이’를 의미하는 ‘프레스뷔테로스’의 여성형 표현이다. 늙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늙은 여자에게 어머니에게 하듯 할 것을 권한다. ‘어머니’는 ‘아버지, 파테르’에 대응되는 표현으로 ‘메테르’의 복수형 ‘메테라스’가 사용되었다. 롬 16:13을 보면 
로마서 16:13
13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존중했다.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젊은 여자’라는 표현은 ‘형제’에 대응되는 표현으로 ‘네오테라스’이다. ‘자매’로 번역된 단어는 ‘아델페’는 앞서 형제(아델포스)에 대응되는 표현이다. ‘필라델피아’는 ‘형제 사랑’을 의미한다. 
젊은 여자를 대하면서는 젊은 목회자였던 디모데를 의식해서 한가지 권면을 추가한다. 그것은 ‘온전히 깨끗함으로’이다. 이는 ‘엔 파세 하그네이아’라는 표현인데 여기서 ‘하그네이아’는 앞서 4:12에서 ‘정절’로 번역되었다. ‘하그네이아’는 본래 ‘깨끗한, 정결한, 순전한”이라는 의미의 ‘하그노스’에서 파생된 명사로 ‘정결, 순결, 깨끗함’을 의미하는데 사상과 행위에 있어서,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철저한 순결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하기오스’ ‘거룩한 자, 성도’라는 표현이 나왔다.
여기서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는 권면은 디모데에게 젊은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성적 유혹을 조심하라고 권면하는 것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몸과 마음 전체에 있어 하나님의 도덕률에 합치하는 정결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순결한 태도는 젊은 여자에게뿐만 아니라 모든이에게 요구되는 것이지만 젊은 여인과의 관계에서 더욱 중요하게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women. Like men, they are members of God’s household with claims on their pastor’s attention, care, and instruction. Timothy should not ignore, patronize, or exploit them. purity. Note the same word in 4:12; it does not exist in isolation in the pastor’s inner life. Timothy’s heart and motivations must be clean, like they would be if he were dealing with his own “sisters.”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74.
 
5:2 “Older women” (πρεσβυτέρας,** a NT hapax, the feminine plural counterpart of the masculine singular form found in v. 1) are to be exhorted “as mothers” (ὡς μητέρας). μήτηρ is used here in the sense of one’s natural mother (cf. especially Rom. 16:13). “Younger women” (νεωτέρας, the feminine counterpart of the masculine form in v. 1, found only here; 5:11, 14 in the NT; cf. τὰς νέας in Tit. 2:4) are to be exhorted “as sisters” (ὡς ἀδελφάς).
Although it is possible that ἐν πάσῃ ἁγνείᾳ qualifies Timothy’s relationship with all four groups, it is more likely that it qualifies the last named relationship. ἁγνεία** (4:12) has the general meaning “purity” but more specifically can have the meaning “chastity,” i.e., purity in the sexual realm (BAGD, LSJM), which would seem to be the nuance intended here. Paul, with perceptive realism, gives this special word of caution for the situation where a male minister is called on to deal personally and privately with younger women (cf. 1 Thes. 4:3ff.; Mt. 5:28ff.). To heighten this concern he adds the word “all” (πάσῃ, rendered with ἁγνείᾳ, “absolute purity,” by NIV).
Extrabiblical documents that give advice on how to relate to various groups have been referred to above (cf. MM s.v. πρεσβύτερος; Dibelius-Conzelmann). Two important differences mark Paul’s words here in comparison with such documents: First is Paul’s command that Timothy “appeal to” or “exhort” the various groups, especially the older members. The other documents are concerned only with the honor to be given and the proper relationship of younger to older, and do not even consider the question of instruction by one who is younger. The keynote of this passage is the responsibility and authority of a minister of God to give such instruction, albeit to give it with respect, and this makes it different from those accounts in its most central aspect. Secondly, the other documents speak of three categories, those older, peers, and those younger, whereas this passage speaks of only two categories, those older and those younger. The other documents say that younger men are to be treated as sons; in our passage they are to be treated as brothers. Here the Christian teaching of the brotherhood of believers is evident. The differences are more significant than the similarities.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 all occurrences of the word or phrase in the New Testament are listed or it is identified as a New Testament hapax legomenon
BAGD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W. F. Arndt and F. W. Gingrich. 2nd ed. rev. and augmented by F. W. Gingrich and F. W. Danker from Bauer’s 5th ed. (1958), Chicago, 1979.
LSJM H. G. Liddell and R. Scott, A Greek-English Lexicon, rev. and augmented by H. S. Jones and R. McKenzie, with a Supplement by E. A. Barber. Oxford, 1968.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MM J. H. Moulton and G. Milligan, The Vocabulary of the Greek Testament. London, 1930.
 George W. Knight,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Carlisle, England: W.B. Eerdmans; Paternoster Press, 1992), 21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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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uDo not neglect the gift you have, which was given you vby prophecy when the council of elders wlaid their hands on you. 15 Practice these things, immerse yourself in them,3 so that xall may see your progress. 16 yKeep a close watch on yourself and on the teaching. Persist in this, for by so doing you will save zboth yourself and ayour hearers.
u See 1 Thess. 5:19
v ch. 1:18
w See Acts 6:6
3 Greek be in them
x Phil. 1:12
y [Acts 20:28]
z Ezek. 33:9
a See Rom. 11:1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전 4:14–16.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전 4:14–16.
 
14절) 바울은 13절에서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할 것을 명한 후에 이어서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잘 활용할 것을 권면한다. 
여기서 ‘은사’로 번역된 ‘카리스마토스’인데 이것의 원형은 ‘카리스마’이다. 이것의 어근은 ‘카리조’라는 동사로 '기뻐하다, 즐거워하다’라는 의미인데 여기서 은혜(카리스)라는 표현과 카라(기쁨, 즐거움)이라는 표현이 나왔으며 또한 ‘거저 주다, 탕감하다, 베풀다’라는 의미의 동사 ‘카리조마이’라는 동사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은사, ‘카리스마’’라는 표현은 자신의 의지대로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해서 베푸시는 은혜와 능력, 자애로운 호의의 표시로 주는 영적 선물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디모데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틀림없이 교회를 세우고(칼빈), 가르치며 교회를 다스리고(알포드), 참된 자들과 거짓된 자들을 분별해서 그들을 권면하고 가르치고 인도하는(헨드릭센) 은사일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가 이 은사를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본문에 ‘장로의 회’로 번역된 ‘프레스뷔테리온’은 현재 영어로 장로교회를 뜻하는 ‘presbyterian’이다. 이는 ‘노인, 장로’를 뜻하는 ‘프레스비테로스’에서 파생된 명사로 눅 22:66과 행 22:5에서 예루살렘 최고 공의회인 산헤드린을 지칭할 때도 쓰였으나 여기서는 교회 내의 원로, 장로들의 협의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디모데는 언제 안수를 받았을까? 혹자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당시 루스드라에서 있었다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디모데에게 부탁하면서 그곳을 떠날때에 장로들이 그에게 안수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여기서 ‘안수’로 번역된 표현은 ‘에피데세오스 톤 케이론’인데 ‘에피데세오스’는 ‘얹어 놓다’라는 의미의 ‘에피티데미’에서 파생된 명사 ‘에피데시스’이다. ‘케이론’은 ‘손’을 의미하는 ‘케이르’의 복수형이다. 결국 안수는 손을 누군가의 위에 얹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행위는 안수 하는 자를 통하여 안수 받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 권위, 능력이 전달되는 것을 상징한다. 바울은 이 안수의 과정을 통해서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예언을 통하여 임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통하여’로 번역된 전치사 ‘디아’는 ‘~에 의해’라는 의미보다 ‘~과 함께’로 번역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결국 이 은사가 디모데가 안수를 받는 동안 예언과 함께 동반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디모데가 안수를 받을 때에 안수에 동참한 장로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예언을 통하여 은사가 베풀어진 것이다. 
 
바울은 이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명령한다. 가볍게 여기다라는 표현은 ‘아멜레이’인데 이는 부정 접두어 ‘아’와 ‘조심하다’라는 뜻을 지닌 ‘멜레이’의 합성어로 '조심하지 않다. 상관하지 않다, 부주의하다’라는 의미이다.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이를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멸시한다라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하여 교회를 세우는데 사용하는 것이 바른 은사의 활용의 태도인데 받은바 은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가볍게 여기는 것은 바로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땅속에 묻어두는 태도를 의미한다. 
 
4:14 gift … given you. As Paul had a distinctive apostolic gift of divine grace given to him (Rom 12:3; Gal 2:9; Eph 3:7; more broadly see 1 Cor 14:18–19), so did Timothy. This is a work of the Holy Spirit, who gifts all believers so they may serve one another and glorify God (Rom 12:6–8; 1 Cor 12; 1 Pet 4:10–11). When Timothy was set apart for his ministry (cf. Acts 13:1–2), someone present prophesied, perhaps confirming Timothy’s “gift” and calling. laid their hands on. See 2 Tim 1:6; Acts 6:6; Heb 6:1–2; this gesture expressed divine approval as well as congregational endorsement.
cf. compare, confer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73.
 
This verse is the most problematic in this section, as we shall soon see. Neglect translates a verb that means to overlook, to forget, to be unconcerned, to fail to use. The positive equivalent of the negative expression do not neglect is “attend to” at the beginning of verse 13 and the two positive imperatives in verse 15, “practice” and “devote yourself.” Another way of expressing Do not neglect is “You must continually use.”
Gift is a word that can be used in general for any gift, but it refers in a specific way to spiritual gifts or gifts from the Holy Spirit (so TEV “spiritual gift”). Another way of rendering this is “gift (or, ability) which comes from the Holy Spirit.” The gift you have is literally “the gift that is in you” (so TEV; once again, TEV is more literal than RSV). While the gift is not specified, the context suggests that it has something to do with Timothy’s role as a minister and church leader. Two alternatives are possible: either to understand gift as the Holy Spirit, since it was the belief at that time that the Holy Spirit was received at the time of the laying on of hands; or a particular gift or talent from the Holy Spirit that makes Timothy effective in his duties of exhortation and teaching. If a translator understands that the gift was the Holy Spirit, one may render the gift you have as “the Holy Spirit which is in you”; but if a translator follows the second interpretation, one may translate “gift (or, talent) which comes from the Holy Spirit” or “… which the Holy Spirit gave you.” All in all, though, the second interpretation is the more likely one.
For prophetic utterance see 1:18. In fact 1:18 is parallel in content to the present verse, since both seem to refer to the time when Timothy was commissioned for his task in the church.
The practice of laying hands on people was common in the early church for several functions, among which are: (1) healing (see, for example, Mark 8:23); (2) bestowing a blessing (see, for example, Mark 10:16); (3) making it possible for people to receive the Holy Spirit (see, for example, Acts 8:17); and (4) setting people apart for certain functions (see, for example, Acts 13:3). This last function is in focus in the present context. In the history of the church, the laying on of hands has become an important part of the rite of ordination, that is, of setting apart certain people for specific church offices. It is not altogether certain, however, whether in the present context the formal ordination of Timothy is meant or, less formally, his commissioning to a certain task. This is complicated by the fact that, while various church offices are discussed in the letter, nowhere is Timothy’s particular office mentioned, nor his relationship to the church officers that are mentioned.
At any rate it was through prophetic utterance that the spiritual gift was bestowed on Timothy at the time that the elders laid their hands on him. The relationship of these three events (the prophetic utterance, the receiving of the spiritual gift, and the laying on of hands) is not at all clear. The text seems to suggest that the laying on of hands was not the means by which the spiritual gift was bestowed; it was only an action that accompanied the bestowing of the gift. Since these prophetic utterances occurred at Timothy’s ordination, it is very likely then that these were uttered by Christian prophets who were present at that time; some of them may even have been elders themselves.
TEV Today’s English Version
TEV Today’s English Version
TEV Today’s English Version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Daniel C. Arichea and Howard Hatton, A Handbook on Paul’s Letters to Timothy and to Titus, UBS Handbook Serie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95), 105–106.
 
15절) ‘이 모든 일’은 앞서 언급된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일과 읽는 것과 권하는 것, 가르치는 것, 그리고 은사를 사용하는 일 모두를 의미한다. 이 모든 일에 자신의 전 존재를 푹 담그고 몰두할 것을 권하는 것이다. 
‘전심 전력하다’으로 번역된 ‘멜레타’는 ‘신경쓰다, 관심을 기울이다, 실행하다’라는 뜻을 지닌 ‘멜레이’에서 파생된 동사 ‘멜레타오’의 현재 명령형으로 ‘이 일을 실행하기를 꾸준히 하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일에 너 자신을 푹 담그라, 마음과 영혼을 다해서 그것들에 네 자신을 헌신하라는 의미이다. 
‘성숙함’으로 번역된 ‘프로코페’는 ‘똑바로 나아가다, 전진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프로콥토’의 명사형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은사의 활용을 통해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성숙함, 진보를 나타내는 것이 중요한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직무를 성실하게 감당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성숙함을 모두에게 보여줄어야 한다. 
 
Practice is the positive equivalent of “Do not neglect” in the preceding verse. The word itself has the meaning “to attend to carefully,” “to put into practice (so NRSV),” “to cultivate.” These duties is literally “these things” and most probably refers back to the immediately preceding verses, particularly verses 12–14. In certain languages it will be helpful to translate “Carefully put into practice the duties I have just mentioned.”
Devote yourself to them is literally “be in them,” with the meaning of being completely immersed or absorbed in these things. Appropriate equivalent idioms are “being up to his ears,” “being wrapped up,” “being immersed in,” or “throwing oneself into.” These two imperative verbs taken together make the command very emphatic.
The purpose of all this is so that all may see your progress (literally “your progress may be manifest [or, evident] to all”). All again refers to fellow Christians with whom Timothy has dealings. Progress includes the idea of advancement or furtherance; it is suggested by some that the word arose out of the practice of people cutting trees and shrubs in order to prepare the way for the advance of an incoming army. The progress being referred to here may refer to Timothy’s spiritual advancement in general (that is, his progress in the Christian life), or specifically to the development of the gifts and talents that are related to his function as a church leader.
NRSV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Daniel C. Arichea and Howard Hatton, A Handbook on Paul’s Letters to Timothy and to Titus, UBS Handbook Serie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95), 107.
 
16절)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살펴’로 번역된 ‘에페케’는 ‘주의하다’라는 뜻을 동사 ‘아페코’의 현재 명령형이다. 개역 한글에서는 이를 ‘삼가’러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계속해서 주의하고 살펴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대상은 바로 ‘네 자신과 가르침’이다. ‘네 자신’은 디모데의 삶 자체, 성품과 행동을 의미하며, ‘가르침’은 교리, 즉 다른 사람들을 교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자신의 성품과 행동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 어느 것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자신을 살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이 일을 계속하라’라고 명령한다. ‘계속하라’로 번역된 ‘에페메네’는 문자적으로 ‘어떤 사람이나 일의 옆에 붙어 서 있다’라는 의미를 지닌 ‘에피메노’의 현재 명령형ㅇ,로 ‘곁에 머물라, 그것들에 집착하라, 그 일을 끝까지 관철시키라’는 의미를 함축한다.(롬 6:1; 골 1:23) 
원문에는 문장 사이에 ‘가르’라는 접속사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왜냐하면, for’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디모데의 삶과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자신에게 듣는 자의 구원 여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를 행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디모데의 삶과 가르침의 본을 통해서 타인이 그 은혜 가운데 나아올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주의하고 계속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구원은 오직 하나님 한 분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진리를 전하는 자들이 있음으로 인해서 이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울은 롬 10:14에서 
로마서 10:14–15
14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라고 말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그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이 인간의 수고와 인내를 통해서 성취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This last verse is an appropriate summing up of the preceding verses. Take heed to yourself refers back to verse 12 and perhaps verse 14 as well; … your teaching refers back to verse 13; and as we shall see later, hold to that may refer back to verse 15. The word Take heed pertains to being attentive, holding on, paying attention (so NRSV “Pay close attention”). For teaching see verse 13. Here what is being referred to is not only the actual activity of teaching but also what is being taught. Hold to that is literally “remain in them” (so NRSV “continue in these things”), with “them” referring to the duties and obligations he is supposed to discharge as a teacher, pastor, and leader of the congregation (so TEV “Keep on doing these things”). If this interpretation is correct, then this part of the verse repeats the ideas emphasized in verse 15. An alternative translation model for the first part of this verse is “Watch (or, be careful about) your conduct (or, the way you live) and the things you teach. You must keep doing these things I have instructed you to do.”
The result of Timothy’s persistence and faithfulness is the salvation of himself and those who listen to him. By so doing is literally “by doing this,” with “this” conveniently summing up all the activities and obligations that Timothy has been admonished to perform. For save see 1:15. It is possible that what is meant here is that by doing these things Timothy will save himself and his hearers from the false teachers. It is more likely, however, that the focus is perhaps on the final salvation at the end of the age. Understood in this way salvation includes being free from judgment and from the power of death. The recipients of this salvation are Timothy himself and those who hear him, that is, those who listen as Timothy exercises his duties of exhortation and teaching. The statement you will save both yourself and your hearers should not be taken literally, since in the New Testament the objects of salvation are sometimes spoken of as the agents (see, for example, Rom 11:14; 1 Cor 7:16; 1 Cor 9:22; James 2:14; 5:15, 20; Jude 1:1–23). In this letter the function of saving is assigned primarily to God, and this theological truth should influence the interpretation of the present verse. What is meant is not that Timothy is the one who will save himself and his hearers, but that he is the means by which he and his hearers will receive this eternal salvation. In languages that must indicate what Timothy and his listeners are saved from, one may say, for example, “you will save both yourself and your hearers from judgment” or “you will prevent both yourself and those who listen to you from having God judge you.”
NRSV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NRSV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TEV Today’s English Version
 Daniel C. Arichea and Howard Hatton, A Handbook on Paul’s Letters to Timothy and to Titus, UBS Handbook Serie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95), 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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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ommand and teach rthese things. 12 sLet no one despise you for your youth, but set the believers tan example in speech, in conduct, in love, in faith, in purity. 13 Until I come, devote yourself to the public reading of Scripture, to exhortation, to teaching. 14 uDo not neglect the gift you have, which was given you vby prophecy when the council of elders wlaid their hands on you. 15 Practice these things, immerse yourself in them,3 so that xall may see your progress. 16 yKeep a close watch on yourself and on the teaching. Persist in this, for by so doing you will save zboth yourself and ayour hearers.
r ch. 5:7; 6:2
s 1 Cor. 16:11; [2 Tim. 2:22; Titus 2:15]
t Titus 2:7; 1 Pet. 5:3
u See 1 Thess. 5:19
v ch. 1:18
w See Acts 6:6
3 Greek be in them
x Phil. 1:12
y [Acts 20:28]
z Ezek. 33:9
a See Rom. 11:1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전 4:11–16.
 
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전 4:11–16.
 
11절) 앞선 7-10절이 목회자가 참 교사로서 힘써야할 일에 대한 권면으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할 것에 대한 명령이라면 11-12절은 가르치는 자로서 신앙과 행실에서 모범이 되라는 명령이다. 
여기서 ‘이것들’을 지시하는 지시 대명사 ‘타우타’는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가? 바울이 앞서 언급한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며 좀더 확장하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알려준 내용들 일체인 것이다. 앞서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어 양육을 받고 경건에 이르기에 힘쓰라는 것인데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는 것이다. 
‘명하고’로 번역된 ‘파랑겔레’는 ‘명령하다’라는 의미의 ‘파랑겔로’의 현재 명령형이다. ‘가르치라’로 번역된 ‘디다스케’역시 ‘디다스코’의 현재 명령형이다. 명하고 가르치는 이 모든 내용이 현재 명령형으로 기록된 것인데 이는 디모데로 하여금 에베소 교회에 대해 지속적으로 명하고 가르치는 사역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특히 ‘파랑겔로’라는 표현은 ‘권위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도록 지시 내리거나 지도하다’라는 의미로 주로 군대에서 사용되던 용어이다. 
12절의 내용과 연결지어서 볼때 바울은 디모데가 비교적 어린 나이에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로서 사역하는데 있기에 더욱 귄위를 가지고 명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나이가 어리더라도 진리의 말씀대로 살도록 촉구하고 권하는 것은 목회자로서 당연히 해야할 자세이다. 그렇기에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권위를 가지고 에베소 교인들을 훈육할 것은 권하는 것이다. 
 
4:11 Timothy was possibly a diffident, timid young man. His timidity could hinder a bold assertion of Christian truth. Paul used the term “command” in v. 11 to indicate the authoritative transmission of a message. He wanted Timothy to speak with authority. In teaching, Timothy was to urge his words onto the thinking of the listeners in order to make obedience easy. In the Pastorals, Paul frequently pressed this charge of teaching and exhorting on both Timothy and Titus (1 Tim 6:2; 2 Tim 2:2; Titus 2:15).
What were the things Timothy was to “command and teach”? They included primarily the words of 4:6–10 which urge warnings against “old wives’ tales” and put stress on the importance of genuine godliness.
 Thomas D. Lea and Hayne P. Griffin, 1, 2 Timothy, Titus, vol. 34,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2), 137.
 
12절)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당시 디모데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정확한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본문에 사용된 ‘연소함’을 나타내는 표현인 ‘네오테스’라는 표현은 ‘어림, 젊음, 연소함’이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 이후와 성년기 이전의 삶의 시간’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의 경우 군대에 입대할만큼 자란 나이에서부터 40세까지의 연령층을 포괄한다. 막 10:20에서 한 부자 청년의 고백
마가복음 10:20
20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이 고백에서 보는 것처럼 상당히 어린 시절을 의미한다. 이런 유대 관습속에서 볼때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정도로 본다. 에베소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이처럼 젊은 목회자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를 존중하지 않고 경솔히 대하거나 업신 여기는 태도로 그의 가르침에 유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디모데 이전에 에베소의 전임 사역자가 바울이었음을 고려할 때 성도들이 디모데를 업신여겼을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디모데의 연소함은 사역의 걸림돌이 되었고 이에 대해서 바울은 연소함으로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 본이될 것을 명하고 있다.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본문의 구조는 명확하다. 원문은 ‘엔 로고 엔 아나스트로페 엔 아가페 엔 피스테이 엔 하그네이아’이다. 
디모데는 어떤 부분에서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했는가? 
첫째 ‘말’이다. 이는 ‘로고스’로 공적인 설교뿐만 아니라 사적인 이야기까지를 포괄한다. 
둘째 ‘행실’이다. ‘아나스트로페’는 일반적인 행동 뿐만 아니라 습관이나 품행 및 삶의 방식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과 관계되는 모든 행동을 의미한다. 말과 행동이 이어서 나오는 것은 언행일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셋째 ‘사랑’이다. ‘아가페’는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적 사랑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보이신 희생적인 사랑, 원수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사랑이다. 
넷째 ‘믿음’이다. ‘피스티스’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를 의미한다. 사랑이 사람들 사이의 수평 관계에서 적용된다면 믿음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수직 관계에 적용된다. 
다섯째 ‘정절’이다. ‘하그네이아’는 본래 ‘깨끗한, 정결한, 순전한”이라는 의미의 ‘하그노스’에서 파생된 명사로 ‘정결, 순결, 깨끗함’을 의미하는데 사상과 행위에 있어서,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철저한 순결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하기오스’ ‘거룩한 자, 성도’라는 표현이 나왔다.
 
 
‘본이 되어’, 명하고 가르치는 자로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이 명하고 가르친 내용대로 자신이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본’으로 번역된 ‘튀포스’는 ‘때리다, 두드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튑포’에서 파생된 명사로 문자적으로 두들겨서 생긴 자국을 의미한다. ‘유형, 틀, 본보기’라는 의미로 널이 사용된다. 바울은 이 표현을 즐겨 사용했는데 
디도서 2:7–8
7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라고 권면했다. 
베드로전서 5:3
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목회자에게 있어서 강력한 가르침은 다름 아닌 자신의 삶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삶속에서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본이 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향기가 드러날 때 그의 메시지와 가르침, 명령은 더욱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4:12 your youth. From an analysis of other uses of this word (Gk. neotēs) and the chronology of Timothy’s life to this point (starting in Acts 16:1), commentators estimate Timothy’s age to be somewhere from his late 20s to mid-30s, with most favoring the mid-30s.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32.
 
4:12 Paul expressed some of the emphases that were to characterize Timothy’s ministry in 4:12–16. First, Timothy was to live as a spiritual example of what a believer truly can be. His practice of godliness and the demonstration of Christian character could compensate for the lack of calendar years. The term “example” signifies a pattern or a model. Paul desired that people in Ephesus develop godliness by modeling Timothy. These words produced encouragement in Timothy himself, but they could also set in order some dissident, fault-finding elements of the congregations. After all, Paul was bestowing his full blessing on Timothy, and he wanted the Ephesians to learn from what the young disciple did.
We need not take Paul’s description of Timothy as “young” to picture him as a teenager or a young adult in his early twenties. Acceptable estimates of Timothy’s age could easily place him between thirty and thirty-five years old.107 Some Christians in Ephesus could chafe at receiving instructions from a man even this young.
The traits listed by Paul (“spirit” is absent from most modern translations) divide into two groups. The terms “speech” and “life” are outwardly observable or public traits. “Speech” refers to all types of verbal expression, and “life” describes general behavior. Paul wanted Timothy to be known for wise words rather than for rash, impetuous drivel. The second group, consisting of “love,” “faith,” and “purity,” refers to inner traits. Paul desired a love that demonstrates itself for both God and others. The term “faith” is anarthrous in the Greek and likely represents an attitude of faithfulness or trustworthiness rather than right belief. The call for “purity” demands both sexual purity and integrity of heart.
107 Fee suggests that Timothy’s age was thirty to thirty-five and defends it by suggesting 49–50 as a date for his joining Paul and 62–64 as the date for writing 1 Timothy. Irenaeus (Against Heresies 2.22.5) says, “The first stage of life embraces thirty years, and that this extends onwards to the fortieth year, everyone will admit.”
 Thomas D. Lea and Hayne P. Griffin, 1, 2 Timothy, Titus, vol. 34,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2), 137–138.
 
13절)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바울은 11-12절에서 어린 목회자로서 중책을 맡은 디모데에게 가르치고 명하는 자로서 신앙에 있어서 본이 될 것을 명했다. 이제 13-14절에서 주어진 은사를 활용하여 무엇에 전념해야하는지를 권면하고 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이 로마 감옥 생활에서 풀려나 다시금 디모데에게 이를 때까지 성경을 읽는 것과 권면하고 가르치는 일을 주력하라고 권면한다. 
‘읽는 것’으로 번역된 ‘아나그노세이’는 ‘공중 앞에서 큰 소리로 낭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헬라 문헌에서는 유언이나 청원서, 급보, 보고서 등을 읽는 것을 묘사하는데 쓰였고 성경에서는 에스라 시대에 제사장들이 율법을 낭독하던 것(느 8:8)이나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던 것(눅 4:16)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회중 앞에서 성경의 말씀을 읽는 것을 의미한다.(살 5:27; 골 4:16) 
‘권하는 것’은 ‘파라클레세이’로 ‘부르다’라는 의미의 ‘칼레오’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옆에서 부르고 청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의 동사가 ‘파라칼레오’이다. ‘파라클레토스’가 ‘중보자, 보혜사’라는 의미이다. 목회자가 권하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상담등을 통해 연약한 자들이나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들을 격려하고 돌보는 것을 지칭한다. 
‘가르치는 것’은 ‘디다스칼리아’로 ‘교훈, 가르치는 일’을 의미하는데 이는 ‘가르치다, 지도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디다스코’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목회지는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이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라 서로 연속선 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내용을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즉 목회자의 권면과 가르침은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을 읽고 그 읽은 내용을 토대로 이를 설명하고 강해하는 것을 통해서 성도를 세우는 것이 목회자, 설교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고 이에 전념해야 한다. 디모데가 자신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전념하라’, 이는 ‘프로세케’라는 표현으로 ‘~을 향하여, 가까이에’라는 전치사 ‘프로스’와 ‘가지다, 소유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에코’의 합성이로 ‘마음을 ~로 향하게 하다, 마음을 ~ 가까이에 두다’라는 의미에서 ‘열중하다, 전념하다
라는 뜻이 있다. 개역은 이를 ‘착념하라’로 번역하였다. 본문에서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능동적으로 계속해서 전념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울은 이를 통해서 목회자가 가장 집중해야할 사역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디모데에게 가르치고 있다. 
 
4:13 Until I come. Paul plans a visit soon (3:14). This may explain why some of his instructions are not more detailed: he can clarify in the near future in person. Scripture. Primarily what we call the OT. Some of what became NT documents could also be in view (see 5:18 and NIV text note; see also 2 Pet 3:15–16). Regular and extended public Scripture reading was a formative heritage from OT and synagogue practice. Private copies of Scripture were rare due to cost, and many people could not read. Reading, hearing, and remembering (Ps 119:11) would reinforce Christian identity in contrast with deceivers. preaching. Scripture-based exhortation (Acts 13:15; Rom 15:4–5; 1 Cor 14:3; Heb 13:22). teaching. See notes on vv. 2, 11.
OT Old Testament
NT New Testament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OT Old Testament
vv. verses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73.
 
4:13 A second emphasis Paul wanted Timothy to make involves proclaiming God’s message. Until Paul arrived back on the scene, Timothy was to apply himself to reading, preaching, and teaching. The very brevity of these instructions indicates their genuineness. If these words had come from the second century, the list would have been longer and would have included some reference to the ordinances. Some interpreters see these instructions as a model for public worship patterned after the synagogue. Fee points out that public worship also included prayers (2:1–7), singing (cf. the hymn in 1 Tim 3:16), words of testimony (1 Cor 14:26), and the Lord’s Supper (1 Cor 11:17–34).108 Public worship was much more than reading, praying, and teaching. These instructions are not merely a pattern for worship, but they present a positive method of opposing false teaching.
“Reading” refers to the public reading of Scripture. Scripture included at least the Old Testament, but it may have referred also to the rapidly growing collection of New Testament writings (see 2 Pet 3:16). The command to read would presuppose a wise selection of passages for reading and an alertness to guard against the reading of suspicious or erroneous words. At a time when believers lacked personal copies of God’s Word, such a practice was essential to promote knowledge of the divine message. “Preaching” includes moral instruction that appeals to the will (e.g., Acts 13:15). “Teaching” makes an appeal to the intellect and informs listeners about the truths of the Christian faith. (See Rom 12:7–8, where Paul mentioned teaching and encouraging together.)
108 Fee, 1 and 2 Timothy, Titus, 69.
 Thomas D. Lea and Hayne P. Griffin, 1, 2 Timothy, Titus, vol. 34,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2),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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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f you put these things before the brothers,1 you will be a good servant of Christ Jesus, being trained in the words of the faith and of the good doctrine that you have jfollowed. Have nothing to do with irreverent, ksilly myths. Rather ltrain yourself for godliness; for while mbodily training is of some value, godliness nis of value in every way, as oit holds promise for the present life and also for the life to come. The saying is ptrustworthy and deserving of full acceptance. 10 For to this end we toil and strive,2 because we have our hope set on the living God, qwho is the Savior of all people, especially of those who believe.
i [2 Tim. 3:14, 15]
1 Or brothers and sisters. In New Testament usage, depending on the context, the plural Greek word adelphoi (translated “brothers”) may refer either to brothers or to brothers and sisters
j 2 Tim. 3:10
k See ch. 1:4
l Heb. 5:14
m [Col. 2:23]
n [ch. 6:6]
o Ps. 37:4, 9, 11; 84:11; 112:2; 145:19; Prov. 19:23; 22:4; Matt. 6:33; Mark 10:30; 1 Pet. 3:9
p See ch. 1:15
2 Some manuscripts and suffer reproach
q See ch. 2:4; John 4:4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전 4:6–10.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전 4:6–10.
 
1-5절에서 바울은 배교자들에 관하여 예언하며 그들의 거짓 교훈에 대하여 경계했다. 먼저 바울은 이 내용으로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된 이들을 깨우쳐야 한다고 말한다. 
 
6절) ‘네가 깨우치면’으로 번역된 ‘휘포티데메노스’는 ‘~아래의’를 의미하는 ‘휘포’라는 전치사와 ‘두다, 놓다’라는 뜻의 동사 ‘티데미’의 합성어로 본래 ‘아래에 놓다, 밑에 내려놓다’라는 의미의 ‘휘포티데미’의 현재 분사형이다. 어디 아래에 두는 것인가? 바로 진리 아래에 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대로 권고하지 않으면 거짓 교훈에 휩쓸려 갈 믿음의 형제들으로 올바른 진리의 교훈아래 두는 것이 바로 그들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휘포티데미’라는 표현은 본절과 롬 16:4에 두번 사용된다. 본절에서는 ‘마음에 전하고 제시하다’라는 의미로 롬 16:4에서는 ‘죽을 가능성에 자신의 목을 내어 놓다’라는 표현이다. 본절에서는 이어 ‘그리스도의 예수의 좋은 일꾼’과 연결해서 보자면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진리의 기초를 놓은 건축가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하는 이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좁게는 앞선 1-5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거짓말하는 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 것들을 따르고 가르치라는 것이다. 
 
여기서 ‘일꾼’으로 번역된 ‘디아코노스’는 앞서 3:8, 12절에서 ‘집사’라는 의미를 사용된 표현이다. 여기서는 집사라는 직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포괄적으로 교회안의 여러 역할을 감당하는 봉사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디모데는 앞서 1-5에서 거짓 일꾼들과 대조적으로 선한 일꾼을 강조한다. 거짓 교사들, 악한 일꾼들은 거짓 교훈으로 사람들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지만 좋은 일꾼은 좋은 교훈으로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한다.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여기서 양육을 받는 주체는 ‘형제들’이 아니라 ‘디모데'이다. 교회의 일꾼으로 바른 진리로 형제들을 깨우게하고 인도하면 그 결과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양육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교육의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자임을 우리는 잘 아록 있다. ‘양육을 받으리라’로 번역된 ‘엔트레포메노스’는 ‘키우다, 양육하다’라는 뜻을 지닌 ‘엔트레포’의 현재 수동태 분사형이다. 이 수동태 표현은 예수의 좋은 일꾼은 스스로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현재 분사형은 양육을 받는 것이 지속적인 과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은 양육받는 수단으로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을 언급한다. ‘네가 따르는’으로 번역된 ‘파레콜로데카스'는 ‘파라콜루데오’의 현재 완료 능동태이다. 이는 ‘~곁에’의 ‘파라’와 ‘같은, 동일한’이란 뜻의 ‘아’, 그리고 ‘길’이란 의미의 명사인 ‘켈류도스’의 합성어로 ‘함께 같은 길에 있다’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말로 주로 ‘친밀하게 뒤따르다’라는 강조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디모데가 좋은 교훈, 선한 교훈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매우 친근하게 따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거짓이 없는 믿음’을 배우고 이를 따르는 삶을 살았다. 
디모데후서 1:5
5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교회가 거룩하게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을 따르도록 양육을 받고 이것을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고 이 과정에서 더욱 성장해나가는것이다. 
 
4:6 these things. Refers at least to the preceding paragraph (see also v. 11; cf. v. 15; 3:14; 5:7; 6:2b). minister. Servant; the same Greek word refers to “deacons” in 3:8, 12. Pastoral leadership is not dictatorial. Christ became a “servant” (Rom 15:8), and Apollos and Paul were “servants” (1 Cor 3:5). nourished. For Timothy to flourish in shepherding the church, he himself must be properly “nourished on the truths of the faith and of the good teaching.” It is vital that he internalize and pass along Paul’s counsel. truths. See note on Titus 1:14.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cf. compare, confer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73.
 
7절) ‘망령되고 허탄한 신회를 버리고’, 앞서 6절에서 목회자 디모데가 참 교사로서 형제들을 깨우처야 하는 것을 언급한 다음 7-10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디모데로 하여금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할 것을 명령한다. 
당시 에베소 지역의 상황속에서 우상 숭배 및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좇고 끝없는 족보에 착념했던(딤전 1:4) 것을 염두에 두면서 목회자로서 디모데 자신이 먼저 본을 보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망령되고’로 번역된 ‘베벨로스’는 ‘어떤 것의 거룩한 특징을 침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허탄한’으로 번역된 ‘그라오데이스’는 ‘늙은 여자의 특징을 가진’의 의미로 마치 늙은 노파가 자신의 어린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속여서 만들어낸 이야기로 미신의 범주에 속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거룩한 교회에 해를 입히는 것이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어리석은 교훈임을 강조하며 이를 버리라고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버리고’로 번역된 ‘파라이투’는 ‘~에 대항하여, 거슬러’라는 뜻의 전치사 ‘파라’와 ‘않다, 유하다’라는 뜻의 동사 ‘카디조’의 합성어로 ‘반대되는 지점에 앉다, 단호히 거절하다’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단호히 이러한 거짓 가르침을 버려야 한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변론을 일으키게 된다(딤전 1:4) 이에 바울은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할 것을 당부한다. ‘연단하라’로 번역된 ‘귐나제’는 ‘벌거벗다’(히 4:13)란 뜻을 지닌 ‘귐노스’에서 파생한 동사로 ‘벌거벗고 연습하다’라는 ‘귐나조’의 현재 명령법이다. 오늘날 체육관을 의미하는 ‘짐나지움(gymnasium)’도 이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달리기나 격투기 선수들은 옷을 벗고 연습하며 시합에 참여했다. 이처럼 바울은 디모데가 당시 올림픽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처럼 최선을 다해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버리고’와 마찬가지로 연단하라는 표현도 현재 명령법이다. 
‘경건’으로 번역된 ‘유세베이아’은 신약에 총 15번 등장하는데 그중 목회서신에서 10번이 사용된다. 특히 디모데서에 9번이 집중적으로 사용된다. 혹자는 이 경건을 ‘순결한 양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마음’(칼빈)이라고, 또한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시믕로 변화하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경험한 이들’의 영적 특성(존 스토트)라고 말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시편 16:8
8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8절) ‘육체의 연단’, ‘소마티케 귐나시아’, ‘소마’는 몸을 의미한다. 육체적인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 앞서 7절에서 연단이라는 표현을 설명한 것처럼 옷을 벗고 열심히 땀흘려 연습하는 것은 경기에 승리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이 과정이 의미있지만 이 육체의 연단과 영적인 경건에 이르기 위한 연단을 비교하여 대조하는데 여기서 ‘유익이 있다’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모두 유익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차이는 현격하다. 육체의 연단은 ‘프로스 올리곤’, 약간, ‘작은 부분에만'이라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은 ‘프로스 판타’로 범사에, '모든 부분에’에 유익하다. 최근 들어서 육체의 건강을 돌보는 것은 점점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하지만 본문은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연습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으 유익하다고해도 그것이 경건의 유익과 비교할 때 약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차이는 육체의 연단은 현재의 삶에 영항을 주지만 경건의 연습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여기서 ‘금생(테스 뉜)’은 현재의 삶을 가리키며 ‘내생(테스 멜루세스)는 다가오는 미래의 삶을 의미한다. 이처럼 경건은 현재의 삶뿐만 아니라 내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에 너무 중요하다. 
 
4:8 some value. Could also mean “value for a little while” (the same Greek phrase in Jas 4:14 is translated “for a little while”), i.e., for the present age. We should not underestimate the physical toughness of someone like Paul, who walked thousands of miles/kilometers on his journeys and endured extreme physical deprivation over decades (2 Cor 11:23–27). Timothy would have trekked his share of miles/kilometers alongside Paul. The point is not to denigrate fitness but to contrast its (temporal) utility with the eternal worth of “godliness” (see note on 2:2).
i.e. that is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73.
 
9절) ‘미쁘다 이 말이여’(피스토스 호 로고스), 1:15에서도 ‘미쁘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본문에서 지칭하는 내용은 8절의 내용이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는 말씀이 당시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말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믿음직한, 믿을만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약속은 실망을 줄 수 있지만 자신의 말을 식언치 않으시는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시지 않으신다. 
 
‘받을 만하다도다'라는 표현은 ‘아포도케’로 ‘받아들임, 수납, 승인’을 의미하는데 ‘데코마이’(영접하다, 맞이하다, 받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10절)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수고하고’로 번역된 ‘코피오멘’은 ‘수고하다, 애를 쓰다’라는 뜻의 ‘코피아오’의 현재형으로 바울은 이와 동일한 표현을 자신이 육체 노동을 지칭하거나(고전 4:12; 엡 4:28; 딤후 2:6; 살전 1:3; 2:2; 살후 3:8) 복음 선포 사역을 지칭할 때(롬 16:12; 고전 5:10; 갈 4:11; 빌 2:16; 살전 5:12; 딤전 5:17) 사용했다. 또한 이 표현이 빌 2:16에서는 운동선수의 노고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힘쓰는 것은’으로 번역된 ‘아고니조메다’의 원형 ‘아고니조마이’는 ‘혼신의 힘을 다하다’라는 의미로 바울이 주로 사용한 표현이다(고전 9:25; 골 1:29; 4:12; 딤전 4:10; 6:12; 딤후 4:7). 수고하다, 힘쓰다는 같은 의미의 동사로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스스로의 복음 사역을 통해서 누구보다 수고하며 힘쓰는 삶을 살았다. 왜냐하면 미쁘신 그 말씀이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것이며 또한 우리의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이다. 우상은 약속을 하지만 그것을 지킬 수 없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경건이 금생과 내생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약속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수고와 애씀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은 이유는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이다. ‘소망을 두다’로 번역된 ‘엘피카멘’은 ‘엘피조’의 현재 완료형이다.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구주가 되시면서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를 근거로 혹자들은 보편 구원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본문에서 ‘특히’로 번역된 ‘말리스타’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말로 하자면’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선 ‘모든 사람’을 ‘믿는 자들’로 제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본문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진 모든 자들의 구주 되심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빠짐없이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딤전 2:4)
위 내용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1)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만 구원받는 다.
2) 비록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들에게 제시되었다. 
3) ‘특히’라는 표현 ‘말리스타’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 즉 믿는 사람들의 구주’라는 의미이다. 이는 모든 믿는 사람을 바로 믿는 자들로 제한하는 것이다. 
4) ‘모든 종류의 사람들, 유대인만이 아닌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의 구주’라는 의미이다. 어느 경우이든 강조점은 구원받지 못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속에서 바울은 모두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보편적 선교의 기초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4:10 to this end. The goal of Paul’s labors is that people attain “godliness” (v. 8) and its eternal “value.” Toil and strive is typical of Paul’s description of gospel ministry (cf. 5:17; Rom. 16:6, 12; 1 Cor. 15:10; 16:16; Gal. 4:11; Eph. 4:28). The statement that God is the Savior of all people, especially of those who believe could seem to teach universalism, that every person will eventually go to heaven. However, the rest of Scripture clearly denies this idea (see note on 1 Tim. 2:4). There are several other possible explanations for this phrase: (1) It means that Christ died for all people, but only those who believe in him are saved. (2) It means he is offered to all people, though not all receive him. (3) It means “the Savior of all people, namely, those who believe” (a different translation of Gk. malista, based on extrabiblical examples). (4) It means “the helper of all people,” taking Greek Sōtēr, “Savior,” to refer not to forgiveness of sins but to God’s common grace by which God helps and protects people in need. (5) It means “the Savior of all kinds of people, not Jews only but both Jews and Greeks.” In any case, the emphasis is on God’s care for the unsaved world, and in the flow of the letter Paul is stressing once more (cf. 2:3–5) that God’s will that people would be saved is the basis of the universal mission (cf. Matt. 28:19–20). On God as “Savior,” see note on 2 Tim. 1:8–10.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31.
 
Spiritual Priorities (4:6–10) Of course, there are many things that could rightly be identified as “spiritual priorities.” Here Paul selects three that are most essential for the development and maintenance of a sound spiritual life.
1. Nourishment from God’s Word (4:6). Perhaps the most basic of all is the first, spiritual nourishment. The good minister, the one who will faithfully and ably confront false teachers, will have been brought up in the Christian faith. This might be mistaken as limiting the ministry to those reared in a Christian family, but that is not the meaning. The image is of taking nourishment, and the present tense emphasizes continual action or lifestyle. However, this lifestyle is rooted in firm decisions made in the past, for the good minister has followed the teaching of the faith into the present. Both the faith and the good teaching* identify the true gospel or faith in contrast to the perverted doctrines current in that church. This includes not just doctrine but also the practical principles for godly living.
The implication is clear: the Christian leader must be one who has habitually taken nourishment from God’s Word and continues to do so. Yet reports from an alarming percentage of pastors and missionaries, among other Christian workers, show that under the weight of ministry responsibilities time spent in the Word of God (and in prayer) becomes irregular and haphazard. This passage makes the dangers of this neglect clear; God’s servants must reverse this trend to maintain spiritual health. At the same time, the mature leader must choose carefully the spiritual food to be taken. Godless myths and old wives’ tales (v. 7*), a certain reference to the false teaching identified in 4:1–3, must be avoided. This does not mean that the minister should be unaware of the competing claims of other popular movements and religions. In fact, Christians ought to understand clearly the trends of thought that are influencing society and its values. But it must be an understanding arrived at and constantly examined through a careful weighing of these trends against God’s values. In order to carry out this evaluation, the minister and all believers must be absorbed daily in the good teaching of the faith.
2. Training in godliness (4:7–9*). The second priority is that of spiritual training—that is, training in godliness (4:7). The heretics’ false teaching (the myths and wives’ tales) supported a system of asceticism (the abstinence from certain foods and disparagement of marriage, 4:3). Godliness for them apparently had mainly to do with knowledge of “spiritual” things. The body, they held, could be controlled by rigorous self-denial (physical training, 4:8). But genuine godliness is the life of faith strengthened by training in the Word of God (4:7)—that is, a lifestyle lived in obedience to the good teaching. Paul admits that physical training does have a certain limited value; by means of it one can learn to control physical urges. Godliness, on the other hand, has unlimited value, for it is that life in the power of the Spirit (compare Gal 5:16–24) in which the “whole” believer, in body and spirit, comes to experience the resurrection life of Christ (compare Phil 3:10). Through it the physical passions and propensity to sin can be brought under control, and the reality of the Holy Spirit’s operation in the life of the believer becomes evident.
This genuine godliness holds promise for both the present life and the life to come (4:8*). So strong was the emphasis on the pursuit of this life in the Spirit in the early church that verse 8 had become a widely ac cepted saying: the trustworthy saying* referred to in verse 9 is verse 8.
3. Mission (4:10*). It is the reality of this life-changing salvation that forms the third priority of the good minister and every faithful Christian—the spiritual goal of mission. Spiritual nourishment and spiritual training draw meaning from the hope of salvation. All of the minister’s efforts (for this we labor and strive, v. 10) are to be tied to the certain hope in the God who saves. Labor and strive ought not to be placed in parentheses in verse 10 (as in the NIV); these Greek terms together express the idea of “making every possible effort,” which suggests a very urgent goal. And, just as in 2:3–4, it is the universal scope of God’s plan of salvation (Savior* of all men) that compels participation in the mission. Again, as in the earlier passage, the salvation of all is not automatic or unconditional. The qualification that follows (and especially* of those who believe) links the execution and success of the mission to the preaching and specifically belief in the gospel (see notes as well as 2:4 commentary). An undertaking of this magnitude urgently requires the participation of every Christian. Why “urgently”? Because all people must be given the opportunity to respond to God. As Paul wrote elsewhere, “How, then, can they call on the one they have not believed in? And how can they believe in the one of whom they have not heard? And how can they hear without someone preaching to them? And how can they preach unless they are sent?” (Rom 10:14–15).
The protection of the church from dangers such as heresy, as well as its return to order, has much to do with the soundness of its leaders. Paul advises his readers to concentrate on the basics: steady nourishment from the Word of God, pursuit of the godly life in the Spirit and the priority of mission. The false teachers in Ephesus had established different priorities as they pushed the church to the brink of destruction.
* The good teaching (didaskalia), more often described as “sound” (1 Tim 1:10; 2 Tim 4:3; Tit 1:9; 2:1), envisages proclamation directed to the believing community (1 Tim 4:13, 16; 5:17; Tit 2:1, 7, 10). Distinctions between preaching and teaching (see 1 Tim 5:17) have more to do with audience and emphasis than with content.
Brought up in [entrephomenos] the truths of the faith employs a metaphor connected with the raising and nurturing or nourishing of children. With it Paul characterizes the faith and the good teaching as spiritual nourishment (compare 1 Cor 3:2).
* 4:7 The phrase godless myths and old wives’ tales actually describes the false teaching alluded to in 4:1–3 from two perspectives (literally “godless and old wives’ myths,” or “myths that are godless and characteristic of old women”). Godless (bebēlos) can mean “secular” but here stresses the false doctrine’s unholiness or distance from God (1 Tim 6:20; 2 Tim 2:16). Old wives’ (graōdeis) is a pejorative term drawn from philosophical polemic, which, like the modern epithet, described a story or teaching as beyond belief because its source (the proverbial gullible and superstitious “old wife”) would believe anything. Whatever the term’s origins, it had ossified into a common saying that conveyed no intentional chauvinism.
* 4:7–8 The training imagery is drawn from athletics. Physical training (sōmatikē gymnasia; 4:8) refers to the asceticism of the heretics, which, lacking any spiritual benefit, is of minimal value (see Kelly 1963:100; Pfitzner 1967:171-77). The saying of verse 8, which contrasts physical training with godliness, was probably quoted to underscore the advice to train … to be godly (gymnaze … pros eusebeian) in verse 7. For an example of this sentiment in the secular (Cynic) context, see The Epistles of Crates 3: “Take care of your soul, but take care of the body only to the degree that necessity requires.”
* 4:9 Some interpreters understand the trustworthy saying to be verse 10 (in whole or part), because of its theological content (Guthrie 1957:95-96; NIV; NEB). Others consider the saying to be verse 8 in its entirety (Knight 1992:198; Barrett 1963:69-70) or the second half of verse 8, because it is more clearly aphoristic in tone (Fee 1988:104-5; Kelly 1963:101). The contrast between physical training and godliness and the double reference to “profit” suggest that the original saying consists at least of the first two clauses of verse 8; the explanation holding promise for both the present life and the life to come may be Paul’s own addition, for the language is characteristic of the Pastorals (1 Tim 6:17; 2 Tim 4:10; Tit 2:12).
* 4:9 Some interpreters understand the trustworthy saying to be verse 10 (in whole or part), because of its theological content (Guthrie 1957:95-96; NIV; NEB). Others consider the saying to be verse 8 in its entirety (Knight 1992:198; Barrett 1963:69-70) or the second half of verse 8, because it is more clearly aphoristic in tone (Fee 1988:104-5; Kelly 1963:101). The contrast between physical training and godliness and the double reference to “profit” suggest that the original saying consists at least of the first two clauses of verse 8; the explanation holding promise for both the present life and the life to come may be Paul’s own addition, for the language is characteristic of the Pastorals (1 Tim 6:17; 2 Tim 4:10; Tit 2:12).
* 4:10 The living God is a designation that sets God off from dead idols (Acts 14:15; Rom 9:26; 1 Thess 1:9).
* On Savior see notes on 1:1.
* The qualifying term especially (malista), which occurs here and in 5:17 and 2 Timothy 4:13, is absolute, providing specific definition for a more general statement. It is bettertranslated “in other words,” “I mean” or “to be precise”; see Skeat 1979:173-77. The qualification limits the scope of the preceding statement in a way similar to the limits implied by the phrase and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which follows the affirmation of God’s desire to save all people in 2:4. See 2:4 commentary.
notes 2:4 Appeal to God’s will to enjoin proper conduct was normal for Paul (1 Thess 4:3, 18; 1 Tim 5:4; Tit 3:8).
The condition of the faith-response is close to hand in other New Testament affirmations of the universality of salvation (see Jn 1:12; 3:16–17; 1 Tim 4:10; 2 Pet 3:9).
With the formula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2 Tim 2:25; 3:7; Tit 1:1; compare 1 Tim 4:3), Paul emphasizes the rational aspect of belief, thereby creating a visible link between belief and correct doctrine (truth).
 Philip Towner, 1–2 Timothy & Titus, vol. 14,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4), 딤전 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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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xthe Spirit expressly says that yin later times some will depart from the faith by devoting themselves to zdeceitful spirits and teachings of demons, through the insincerity of aliars whose consciences are seared, bwho forbid marriage and crequire abstinence from foods dthat God created eto be received with thanksgiving by those who believe and know the truth. For feverything created by God is good, and gnothing is to be rejected if it is ereceived with thanksgiving, for it is made holy hby the word of God and prayer.
x See John 14:17
y [2 Thess. 2:3–9; 2 Tim. 3:1]; See 1 Cor. 11:19
z 1 John 4:6 (Gk.); See Matt. 7:15
a [1 Thess. 2:3; 2 Thess. 2:11]
b [Dan. 11:37; Heb. 13:4]
c See Col. 2:16
d Gen. 1:29; 9:3
e See Rom. 14:6
f Gen. 1:31
g See Acts 10:15
e [See ver. 3 above]
h Gen. 1:25, 31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전 4:1–5.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전 4:1–5.
 
일반적으로 바울 서신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대부분 전반부가 교리적인 설명이라면 후반부는 삶의 구체적인 적용과 관련된 내용이다. 디모데전서의 경우 1-3장에 해당하는 전반부는 목회자로서의 직무에 대한 본질을 다룬다면, 후반부는 이 목회 직무를 수행하는 목회자의 자세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다루는 주제는 모두 목회 직무에 대한 것인데 후반부는 그 직무를 다루는 목회자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선 3:15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선언하며 복음의 핵심을 선언했다. 이제 후반부를 시작하면서 그런 교회 내부에 도사리는 거짓 가르침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1절) 1절은 분명히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를 것임을 선언하는데 그것을 말씀해주시는 분은 다름아닌 성령이시다. 인간적인 지혜나 경험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신 것이다. 
‘밝히’로 번역된 헬라어 ‘레토스’는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된 방식으로, 분명하게, 명시적으로’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언제 성령께서 바울에게 이렇게 분명하게 교회안에 배교자들의 출현을 알려주신 것일까?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셨다(마 24:10-12; 막 13:22). 
마태복음 24:10–12
10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가복음 13:22
22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또한 바울도 에베소 교회의 이단 침투에 대하여 교회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예언한바 있다. 
사도행전 20:29–30
29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후일에’로 번역된 ‘엔 휘스테로이스 카이로이스’는 ‘말세, 그 날’ 즉 심판의 때를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재림의 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적인 배교의 때를 포괄한다. 즉 주님의 초림에서 재림으로 이어지는 시기 속에 나타나는 배교의 사건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이 경계하는 사건은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것이다. ‘~에서 떠나’로 번역된 ‘에포스테손타이’는 ‘떠나다, 거절하다, 떼어놓다’라는 의미의 ‘아피스테미’의 미래형이다. 이는 70인역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성실을 나타낼때 자주 사용되었다.(창 14:4; 신 7:4; 신 13:10; 신 32:15; 대하 26:18; 시 6:9; 집회 7:2; 토비 4:21; 렘 3:14; 렘 6:8; 단 9:90
 
믿음에서 떠나게 될때 필연적으로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게 된다. ‘미혹하는 영’으로 번역된 ‘프뉴마신 플라노이스’에서 ‘플라노이스’는 ‘방황’을 의미하는 ‘플라네’에서 파생된 형용사로 ‘방황하게 하는, 길을 잃게 하는’이란 의미로 본절에서는 ‘속이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국 이는 속이고 미혹하고 거짓말하는 존재인 사단이 역사하는 영의 세력들을 가리킨다.(요 8:44) ‘귀신의 가르침’역시 사람들을 믿음애서 떠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귀신’으로 번역된 ‘다이모니온’은 ‘악령, 귀신’은 창조된 초자연적인 존재로 하나님과 그와 연합한 모든 사람들에게 반항하고 적대적이다. 결국 여기에 등장하는 미혹하는 영이나 귀신은 사단의 지배를 받는 마귀들로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인간보다는 지력이나 능력이 뛰어난 존재들로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이끌어 간다. 결국 바울은 교회 안에 믿는 이들 중에 믿음에서 떠나는 일이 사단으로 비롯된 영적인 싸움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The means by which the Spirit … says is not made clear. It may have been something the Holy Spirit revealed directly to Paul (cf. Acts 20:29–30) or a prophecy that came through others. expressly. Explicitly, clearly. The later times (Gk. hysterois kairois) in view here clearly include Timothy’s day (see the similar phrase in 2 Tim. 3:1). As is typical in the NT, “later times” refers to the time that began with the outpouring of the Spirit after the work of Christ. Those who hold to the false teaching depart from the faith, which shows that this teaching is outside the bounds of true Christianity. Furthermore, the source of the error is demonic, for these teachers follow deceitful spirits. The false teaching and resultant apostasy are no surprise. God said this would happen, so his church should not panic but should carry on in faithfulness (see 2 Tim. 2:17–19).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31.
 
2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화인 맞아서'로 번역된 ‘케카우스테리아스메논’은 ‘불사르다, 뜨겁다’라는 동사 ‘카이오’에서 유래한 동사로 본래 ‘시뻘겋게 불에 단 인두로 낙인을 찍다’라는 뜻을 지닌 ‘카우스테리아조’의 완료 분사형이다. 이는 원래 ‘불에 그슬리다’라는 의미인데 여기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반응이 없고 냉담하다라는 의미이다. 
불에 시뻘겋게 단 인두로 낙인을 찍으면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생기고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딱딱하게 굳어지고 무감각하게 된다. 여기서 양심에 화신을 맞은 이들은 앞서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로 이러한 거짓 교사들에게 사단이 자신의 소유라고 인을 친 것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갈 6:17)을 몸에 가졌다면 믿음을 떠난 자들은 사단의 표식을 지니고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 버린 것이다.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결국 사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이들의 삶은 외식과 거짓말일 일삼는 것이다. 스토트는 ‘외식은 의도적인 가식이며 거짓말을 의도적인 허위’라고 말했다. ‘외식함’으로 번역된 ‘휘포크리세이’의 원형 ‘휘포크리시스’는 ‘~아래에, ~로 말미암아’라는 의미의 전치사 ‘휘포’와 ‘판단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크리노’의 합성어로 ‘실제로는 가지고 있지 않은 믿음이나 자질을 가진 것처럼 하는 불성실함’을 의미한다. 외식하는 자, 위선자라는 표현은 ‘휘포크리테스’이다. 이 외식은 마치 배우가 분장하고 연기하듯이 자신의 원래 정체를 숨김으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단을 광명의 천사로 분장하고 우리를 속인다. 나아가 그들은 ‘거짓말 하는 자들’이다. 이는 ‘ 프슈돌로고스’로 ‘가짜의, 모조의’의 의미를 지닌 ‘pseudo’의 어원인 ‘프슈테스’와  ‘말’이라는 의미의 명사 ‘로고스’의 합성어로 ‘진실이 아닌 가짜의 말’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신을 속일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진리에서 벗어나는 거짓된 말들을 통해서 믿는 자들을 속이고 배교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짓말과 속임수의 대가인 마귀는 거짓 교사들을 통해서 교회에 거짓 가르침을 유포하고 믿는 이들을 미혹한다. 아담에서 아담과 하와를 거짓말로 미혹하여 타락으로 이끌었던 사단은 여전히 오늘도 교회를 쓰러뜨리려는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3절)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 이는 거짓 가르침의 일부이다.  이러한 거짓 가르침은 무엇을 부정하거나 포기하느냐로 거룩함을 평가하고 있다. 그 금하는 첫번째 내용은 혼인이고 두번째는 음식이다. 성욕과 식욕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이다. 
‘금하고’로 번역된 ‘콜뤼온톤’은 ‘막다, 금지하다’라는 의미의 ‘콜뤼오’의 현재 분사형으로 결혼에 대한 금지를 강제하는 것이다. 이어 ‘먹지 말라’로 번역된 ‘아페케스다이’는 ‘~로부터 떨어져’란 의미의 ‘아포’와 ‘가지다, 소유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에코’의 합성어로 ‘~로부터 자신을 멀리 두다’라는 의미의 ‘아페코’의 부정사형이다. 이는 음식을 멀리함으로써 금식을 추구할 것과 가능한 고기를 먹지 말라는 명령이다. 당시 이러한 성과 음식에 대한 엄격한 금지나 제자는 금욕적 성향이 강했던 ‘엣세네파’에서 두드러졌고 또한 당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과 결합하여 왕성하게 유포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는데 이들은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여겼다. 하여 육체가 영혼의 영적 탐구에 방해가 되기에 금욕을 통해 육체를 학대하였다. 그들은 극단적 금욕주의를 추구하는가 하면 반대로 극단적 방종주의를 추구함으로 육체의 쾌락을 탐닉하기도 했다. 
 
이런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바울은 음식물을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김사함으로 받을 것을 명하고 있다. ‘지으신 바니’로 번역된 ‘엑티센’은 본래 ‘창조하다’라는 뜻의 ‘크티조’의 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의 표현이다. 바울이 거짓 교훈을 판단하는 중요한 신학적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창조에 대한 교리’이다. 
골로새서 1:16
16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앞서 이미 바울은 혼인의 문제를 다루었다.(딤전 2:15; 3:2, 4, 12) 누가 감히 감사함으로 받도록 창조하신 식물을 금할 수 있는가? 그런 자는 단연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무시하는 것이고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뜻대로 창조하셔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여기서 믿는 바와 알고 알아야하는 진리의 내용이 바로 ‘창조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원래 계획(original design)이 당신이 만드신 만물에 새겨져 있는데 이를 진리로 깨닫고 믿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인간의 당연한 자세인 것이다. 
 
4절) 3절에서 바울은 음식물에 대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으로 이를 감사함으로 받을 것을 명한다. 4절은 나아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기에 이를 감사함으로 받을 것을 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호티 판 크티스마 데우’이다. 여기서' 지으신 것’에 해당되는 표현은 동사 ‘크티조’의 명사형인 ‘크티스마’로 이는 ‘피조물’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선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한 이유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증거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날들에 자신이 지으신 것들을 바라보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반복하여 선언하신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그의 기쁘신 뜻대로 지은 모든 피조물은 그 자체로 버릴 것이 없고 선하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인간의 선입견이나 편견에 의해서 왜곡될 수 없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과 사단의 앞잡이들은 이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들을 금하거나 폄하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성과 식물은 본래의 용도안에서 사용될때 선하다. 
 
5절) 거룩하여 지는 대상은 앞서 4절의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음식물’이다. 음식물이 거룩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객관적인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모든 만물이 선하다고 이미 인정하셨고 이를 받는 우리들은 이를  기도를 통해서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받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과 우리의 감사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다(존 스토트).
‘거룩하여짐이라’로 번역된 ‘하기아제타이’는 ‘거룩하게 하다, 성별하다’를 의미하는 ‘하기아조’의 현재 수동태 직설법 표현이다. 거룩함은 하나님께 구별, 헌신함으로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선하지만 이를 믿음으로 받고 기도함을 통해서 그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 거룩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부정한 것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한 성별의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4:3–5 Paul reveals some of the content of the false teaching, though he does not explain the overall view that led to these prohibitions. Questions of propriety in regard to foods and marriage were significant issues elsewhere in Paul’s letters (see Romans 14; 1 Cor. 7:25–35; 8:1–10:33; Col. 2:16–23). The false teaching seems to gauge holiness by what is denied or given up. In response, Paul affirms the goodness of everything created by God and the propriety of enjoying it as a gift from him (cf. Eccles. 9:7–9). Made holy translates Greek hagiazō (“sanctify, make holy, consecrate”). Ordinary food should be considered “made holy” by God, and Christians have the privilege of eating such “holy” food every day. The word of God is probably a reference to Gen. 1:12, 21, 25, 31 (“God saw that it was good”).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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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I hope to come to you soon, but I am writing these things to you so that, 15 if I delay, you may know how one ought to behave in the household of God, which is the church of the living God, a pillar and buttress of the truth. 16 Great indeed, we confess, is the mystery of godliness:
sHe5 was manifested in the flesh,
vindicated6 by the Spirit,7
tseen by angels,
uproclaimed among the nations,
vbelieved on in the world,
wtaken up in glory.
s John 1:14; 1 Pet. 1:20
5 Greek Who; some manuscripts God; others Which
6 Or justified
7 Or vindicated in spirit
t Luke 2:13; 24:4
u Gal. 2:2
v 2 Thess. 1:10
w See Acts 1: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전 3:14–16.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전 3:14–16.
 
디모데전서의 본론부에 해당하는 1:3-6:19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전반부는 1:3-3:16로 목회자로서 교회안의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고 복음의 진리를 지키며 교회의 질서와 조직을 바로 세우기 위한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후반부 4:1-6:19은 목회자로서 행할 현장 사역에 대한 세부 지침과 권면을 주는 내용이다. 3:14-16은 본론부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위치하여 본 서신을 기록한 이유와 복음, 경건의 비밀의 위대함을 요약적으로 밝히고 있다. 아마도 바울은 본론부의 전반부를 마치고 후반부를 새로 시작하면서 에베소 교회를 책임맡고 있는 디모데에게 본 서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면서 목회자로서 올바른 교회관과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함으로 맡겨진 목회 사역에 힘쓰게 하도록 본 단락을 기록하였다. 뿐만 아니라 앞선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언급한 후에 교회의 본질과 복음의 위대함을 밝힘으로 자신의 영적 아들 디모데뿐만 아니라 교회의 직분자들에게도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다. 
 
14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머물 것을 요청하고 마게도냐로 향했다. 그 여정 속에서 그의 마음으로는 에베소로 속히 돌아가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음으로 이 편지를 쓴 것이다. 만약에 바울의 계획대로 에베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어쩌면 목회서신인 디모데서가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당시 바울을 둘러싼 적대적인 환경까지도 사용하심으로 지금 우리에게 교회 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지침을 제공해주는 본서를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15절) 바울은 자신의 에베소 방문이 지체될 것을 우려하여 본서신을 기록했는데 그 기록 목적은 목회자인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아마도 바울은 급하게 에베소에 디모데를 남겨두고 떠나야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어떻게 운영해야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해주지 못했던 것을 보인다. 디모데서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목회 지침이라면 본 15절은 그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집,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바울이 밝히는 교회관의 첫번째는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교회이다. 이는 헬라오로 ‘오이코 데우’이다. 여기서 집으로 번역된 ‘오이코스’는 일반적으로 ‘건물 로서의 집 또는 그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로서의 가족’을 의미한다. 
 
οἶκος -ου, ὁ; (oikos), 명사. 집, 가정. 히브리어 등가: בַּ֫יִת 1 (1406). 아람어 등가: בַּ֫יִת (33), הֵיכַל (4).  인명이나 다른 존재의 이름으로 사용된 정보를 보려면,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교회.
명사 용법
1. —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가족들의 처소로 사용되는 주거지. 관련 주제: 주택 및 주거. 관련 존재 항목들: 집, 영구적 거주지, 건물; 궁전.
막 2:11|| καὶ ὕπαγε εἰς τὸν οἶκόν σου.
행 7:47 Σολομῶν δὲ οἰκοδόμησεν αὐτῷ οἶκον.
몬 2 καὶ τῇ κατʼ οἶκόν σου ἐκκλησίᾳ·
히 3:2 ἐν τῷ οἴκῳ αὐτοῦ.
벧전 2:5 καὶ αὐτοὶ ὡς λίθοι ζῶντες οἰκοδομεῖσθε οἶκος
2. 사원 ⇔ 집 — 특별히 신이 거주하는 곳으로 이해되는 신전. 관련 주제: 본당 중앙. 관련 존재 항목들: 집, 영구적 거주지, 건물; 이교도 사원; 궁전.
눅 11:51|| καὶ τοῦ οἴκου· ναί,
3. 가족 ⇔ 집 — 대개 가족, 종들, 그리고 대가족으로 이루어지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단위; 가족이 주로 거주하는 물리적 건물로 이해된다. 관련 주제: 가족; 가족 관계; 가족. 관련 존재 항목: 집, 영구적 거주지, 건물.
눅 11:17|| οἶκος ἐπὶ οἶκον
행 16:15 καὶ ὁ οἶκος αὐτῆς,
딤전 3:4 τοῦ ἰδίου οἴκου
딤전 3:15 ἐν οἴκῳ θεοῦ
딤후 1:16 δῴη ἔλεος ὁ κύριος τῷ Ὀνησιφόρου οἴκῳ,
4. 가정 — 사람의 주기적인 거주지 (특정 시간에) 관련 주제: 거주; 주택 및 주거; 집. 관련 존재 항목: 집, 영구적 거주지, 건물.
막 2:1 ἐν οἴκῳ
막 3:20 Καὶ  ἔρχεται εἰς οἶκον·
막 5:19|| Ὕπαγε εἰς τὸν οἶκόν σου πρὸς τοὺς
막 8:3 ἐὰν ἀπολύσω αὐτοὺς νήστεις εἰς οἶκον αὐτῶν,
눅 11:24|| Ὑποστρέψω εἰς τὸν οἶκόν μου ὅθεν ἐξῆλθον·
5. 조상 ⇔ 집 — 집으로 이해되는 개인의 문벌(예를 들어, ”네 아버지 집”과 같이); 아마도 가족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는 집이라는 용어의 확장일 것이다. 관련 주제: 가족 관계; 가족; 족장; 대홍수 이전의 족장들; 아브라함.
마 10:6 τὰ ἀπολωλότα οἴκου Ἰσραήλ.
마 15:24 εἰς τὰ πρόβατα τὰ ἀπολωλότα οἴκου Ἰσραήλ.
눅 1:27 ᾧ ὄνομα Ἰωσὴφ ἐξ οἴκου Δαυίδ,
눅 2:4 διὰ τὸ εἶναι αὐτὸν ἐξ οἴκου καὶ
히 8:8 καὶ συντελέσω ἐπὶ τὸν οἶκον Ἰσραὴλ καὶ
6. 집 (소유물) — 어떤 개인이 가진 유뮤형의 소유; 아마도 집들이나 토지들로 구성된 재산 관련 주제: 주택 및 주거.
눅 13:35|| ἰδοὺ ἀφίεται ὑμῖν ὁ οἶκος ὑμῶν.
여러 용어 명사 용법
1. 사원 ⇔ 집 — 특별히 신이 거주하는 곳으로 이해되는 신전. 관련 주제: 본당 중앙. 관련 존재 항목들: 집, 영구적 거주지, 건물; 이교도 사원; 궁전.
마 12:4|| πῶς εἰσῆλθεν εἰς τὸν οἶκον τοῦ θεοῦ
막 2:26|| πῶς εἰσῆλθεν εἰς τὸν οἶκον τοῦ θεοῦ
눅 6:4|| ὡς εἰσῆλθεν εἰς τὸν οἶκον τοῦ θεοῦ
히 10:21 καὶ ἱερέα μέγαν ἐπὶ τὸν οἶκον τοῦ
벧전 4:17 ἀπὸ τοῦ οἴκου τοῦ
2. 교회 ↔ 하나님의 가족 — 하나님의 권속을 이루는 가족으로 이해되는 교회.
딤전 3:15 ἐν οἴκῳ θεοῦ
명사. 명사
||  || 눅 5:24 || 마 9:6
현재 의미를 포함하여 나오는 현 원형의 모든 용례.
||  || 마 23:35
||  || 마 12:25 || 막 3:25
||  || 눅 8:39
||  || 마 12:44
현재 의미를 포함하여 나오는 현 원형의 모든 용례.
||  || 마 23:38
현재 의미를 포함하여 나오는 현 원형의 모든 용례.
||  || 막 2:26 || 눅 6:4
||  || 눅 6:4 || 마 12:4
||  || 막 2:26 || 마 12:4
현재 의미를 포함하여 나오는 현 원형의 모든 용례.
 Rick Brannan, ed., Lexham 헬라어 성경 어휘사전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20).
 
앞선 4, 5, 12절에서 ‘오이코’는 일관되게 가족의 개념으로 사용되었기에 본절에서도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가족으로서의 교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처럼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영적인 가족 관계를 이루어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는 모임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에클레시아 데우 존토스’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으로 특히 이방의 우상이 생명 없는 존재로 표현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신 6:15) 
예레미야 10:10
10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16:16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사도행전 14:15
15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구약의 선지자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신앙 고백,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보듯이 우리 기독교는 죽은 우상을 섬기는 모임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이다. 믿지 않는 이들,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자신이 주인되었고, 허탄한 신화와 끝없는 족보를 따르던 삶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스토트(J. Stott)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에 간략하 게 여호수아의 답변을 제시한다.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수 3:10). 이러한 선언은 단순히 형식적이거나 문학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은 언약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 가운데 거할 것이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와 같은 사상은 성경 언약의 근간을 이루며(출 25:8 ; 29:45-46 ; 레 26:12 ; 시 114:2 ; 겔 37:27) 특히 바울의 신학 사상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는 실제로 고후 6:16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선언한 뒤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구약 성경의 말씀을 인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교회관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큰 도전이 된다. “우리 교회는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가란 질문은 교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항상 하여야 할 심각하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질문인 것이다(옥스포드 179)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진리는 ‘알레데이아’로 부정접두어 ‘아’와 ‘숨기다’라는 의미의 동사 ‘란다노’의 합성어로 숨길 것이 없는 진실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일반적 진리(엡 4:25; 롬 9:1)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 기독교에서만 발견되는 구원의 진리를 가리킨다.(엡 4:21; 골 1:5) 나아가 진리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사용되기도 한다.(요 1:14-15; 14:6) 본문에서도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를 의미하면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터’라고 번역된 ‘헤드라이오마’는 ‘굳게 하다, 견고케 하다’라는 동사 ‘헤드라이오오’에서 파생된 명사로 건물을 견고하게 받쳐주는 대지를 의미한다. 이단이나 복음의 전파를 방해하는 세력들의 공격으로부터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진리를 확고하게 붙들어야 한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기둥’으로 번역된 ‘그튈로스’역시 ‘기둥, 원주’를 의미한다. 기둥은 건물이 머누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지하고 떠받쳐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건물의 외양을 드러냄으로 멀리서도 이를 분명히 볼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바울은 이러한 건물의 이미지를 통해서 교회가 터와 기둥이 되어서 복음 진리를 잘 지키고 전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터가 흔들리고 기둥이 약하면 건물은 흔들리고 마는 것처럼 진리의 복음을 담지한 교회는 견고하게 서야만 하는 것이다. 
In this very significant verse, Paul states his reason for writing 1 Timothy, providing one of the key NT descriptions of the church’s identity and mission. The use of household (Gk. oikos) and related words to describe the church and its ministry is common in Paul (cf. 1 Cor. 4:1; Gal. 6:10; Eph. 2:19; as well as 1 Tim. 3:4–5, 12, 15; 5:4, 8, 14; cf. 1 Pet. 4:17). It describes the church as God’s family, especially with reference to authority and responsibility within the church and the home. The stress is on God’s authority over the church and the behavior of people in the church. Church of the living God highlights the church as the gathering (Gk. ekklēsia, “assembly”) where God most clearly manifests his presence. Thus, references to God as the “living God” in Scripture often refer to his reality and presence in the community of believers (cf. Num. 14:28; Josh. 3:10; Matt. 16:16; 2 Cor. 6:16; Heb. 3:12; 9:14; 10:31). Identifying the church as a pillar and buttress of the truth is a way of saying that God has entrusted to the church the task of promoting and protecting the gospel (i.e., “the truth”; see note on 1 Tim. 2:4). The architectural imagery presents the church’s responsibility of “holding up” the gospel before a watching world, probably with a view to repelling the attack of false teaching. This picture of the church is striking. The role of advancing the gospel is divinely given to the church, not (at least not in the same way) to any other body. Parachurch organizations have value, but they must support and not supplant the church.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30.
 
16절) 본문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 경건의 비밀을 다루고 있다. 기독교 복음이 위대한 것은 바로 복음의 핵심이신 그리스도가 위대하시기 때문이다. 본절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성육신으로부터 승천까지 6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한글 성경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원문은 고도의 정형적인 시적 운율을 보이고 있다. 먼저 각 행에 등장하는 동사는 모두 직설법 3인칭 단수 부정 과거 수동태로서 ‘데’로 끝난다. 또한 모든 명사는 정관사를 갖지 않는 여격으로 되어 있고 한 절을 제외하고 모두 ‘엔’이라는 전치사를 동반하고 있다. 
이는 3연으로 구성된 6행의 시적 구조를 지닌다. A-A’은 ‘육신과 영’, B-B’은 ‘천사들과 만국’, C-C’은 ‘세상과 영광’이 각기 대응을 이루고 있다. 즉 육신과 영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육체를 입으셨으나 죄가 전혀 없으신 완전한 영이심을 보여주며, 천사들과 만국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과 신성이 각각 증명되고 전파되는 대상임을 보여주며, 세상과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받아들여졌을 뿐아니라 하늘에서도 영접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15절에서 교회관을 언급했다면 이제 복음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다. 앞선 15절의 진리(알레디이아스) 즉 복음의 진리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한다. 경건으로 번역된 ‘유세베이아스’는 일반적으로 ‘영혼의 거룩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좀더 적극적인 의미로 ‘활동적인 경건, 경건한 삶,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을 참되게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 경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비밀, ‘미스테리온’이다. 이는 신성한 비밀이라는 의미로 신이 함께 나누기로 선택한 사람들과만 관련된 비밀이라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드러난 비밀, 지금은 공개적으로 계시된 신적 비밀을 의미한다. 이는 감추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이는 신비이다. 
μυστήριον -ου, τό; (mystērion), 명사. 비밀, 신비. 아람어 등가: רָז (8).
명사 용법
1. 신성한 비밀 — 신과 신이 함께 나누기로 선택한 사람들과만 관련된 비밀; 특별히 하나님의 구속역사와 방법이나 다른 초자연적인 정보와 관련하여. 관련 주제: 비밀.
막 4:11|| τὸ μυστήριον
엡 3:3 τὸ μυστήριον,
골 1:26 τὸ μυστήριον τὸ ἀποκεκρυμμένον ἀπὸ τῶν αἰώνων
골 2:2 εἰς ἐπίγνωσιν τοῦ μυστηρίου τοῦ θεοῦ, Χριστοῦ,
살후 2:7 τὸ γὰρ μυστήριον
2. 드러난 비밀 — 지금은 공개적으로 계시된 신적 비밀
엡 3:4 ἐν τῷ μυστηρίῳ τοῦ
골 1:27 τοῦ μυστηρίου τούτου
골 4:3 λαλῆσαι τὸ μυστήριον τοῦ
딤전 3:9 ἔχοντας τὸ μυστήριον τῆς πίστεως ἐν καθαρᾷ
딤전 3:16 τῆς εὐσεβείας μυστήριον· Ὃς
명사. 명사
||  || 눅 8:10 || 마 13:11
 Rick Brannan, ed., Lexham 헬라어 성경 어휘사전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20).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 이 땅가운데 오셔서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 비밀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이 경건의 비밀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비밀이자 신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이는 ‘호모로구메노스’로 ‘부인할 수 없이, 매우 확실하게’라는 표현이다. 이는 ‘말하다, 이야기하다’라는 동사 ‘레고’와 ‘같은, 비슷한’이라는 의미의 ‘호모이오스’의 합성어인 ‘호모로게오’ ‘시인하다, 고백하다’에서 파생된 부사이다. 
 
그 복음의 핵심은 매우 단순하고 명확하다. 
1) 성육신
2) 부활을 통해 의롭다 하심
3) 천사들에게 보이심
4) 만국에서 전파되심
5)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심
6) 승천, 영광가운데 올려지심
 
The mystery of godliness refers to the entire content of God’s revealed plan of salvation (cf. note on v. 9). Next comes a poetic exposition of that great gospel message. great indeed, we confess. This introduction may implicitly   p 2331  call upon the Ephesian church to affirm this confession and therefore the ethical and doctrinal implications drawn from it throughout the letter. The exact structure of this “hymn” is debated, but the basic idea is clear. God the Son has been revealed in human flesh (resulting in the crucifixion, line 1), but he was vindicated by the resurrection (line 2) and afterward was displayed in victory before heavenly beings (line 3; cf. Eph. 1:20–21; Phil. 2:9–11; Heb. 1:3–4; 1 Pet. 3:21–22; Rev. 5:6–14). While the ESV footnote says that “vindicated” could be translated “justified,” the sense here clearly is vindication, which is a common use of the Greek verb dikaioō. Line 4 continues with the result of Christ’s life and ministry. The message of Christ has been (and continues to be) proclaimed among the nations (Gk. ethnos), that is, it has been preached specifically to the Gentiles. This preaching has been effective (believed on, line 5). Then taken up (Gk. analambanō) in line 6 would naturally be understood as a reference to the ascension (the same verb is used in Mark 16:19; Luke 24:51; Acts 1:2, 11, 22). A difficulty with this view is that line 6 does not fit chronologically. One possible explanation is that the ascension is presented as a foretaste of the ultimate exaltation of Christ.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330–2331.
 
Now Paul’s citing of part of what was surely a well-known hymn in the course of writing instructions for behavior in the church is to bring his readers to the point of corporate response. The hymn itself, like many in the New Testament, celebrates Christ’s appearance and ministry on earth. The introductory phrase is a call to consider the implications of this grand event, to evaluate our conduct on the basis of what we confess.
The introductory words, Beyond all question, the mystery of godliness is great, remind the readers of their common acceptance of the statement. And both the Greek term behind the NIV’s beyond all question (homologoumenōs; literally, “confessedly”) and the hymn piece that follows suggest that the idea of “confession”—that is, public, solemn agreement—may also be present.
But what is this great mystery of godliness? “Mystery,” as often used by Paul, denotes the appearance of Christ in history as the hidden salvation plan of God which, conceived before time, has been revealed and fulfilled in the cross and resurrection (compare 3:9). The content of the Christ-hymn in 3:16 confirms the deep theological meaning of “the mystery.”
The whole phrase the mystery of godliness needs some unpacking. It is commonly taken as the equivalent of the phrase in 3:9, “the mystery of the faith.” This would make godliness, like “the faith,” a reference to the objective content of Christianity—that is, “what” one believes. As such, the word here rendered godliness is often translated “religion.” But although “the faith” does often bear this meaning in the Pastorals, “godliness” is a more expansive, less static idea. It includes “the faith” but goes a decisive step further to link a certain Christian manner of life to it (see notes on 2:2). The context, with its focus on conduct (v. 15), supports the broader meaning of “godliness.”
Consequently, this phrase the mystery of godliness forms a connection between the appearance of Christ, which the hymn celebrates, and Christian living: the mystery is the essence of godliness. It was critical for Paul to remind the readers of this principle, for the false teachers were successfully driving a wedge between belief and behavior with damaging results. In our day of institutionalized atheism and the popular heresy of humanism, the church faces the same danger. Even if dangers of this sort seem remote, we easily forget the practical implications of what we believe and profess to be true.
The mystery is now explained in the six lines of the hymn, given in three couplets. We must remember that Paul included only part of a longer hymn and that its poetic nature prevented the making of a precise theological statement. Nevertheless, the thrust of this excerpt, to sketch a panoramic view of the outworking of God’s salvation plan, is easily seen.
1. The conception of the mystery (lines 1-2). He appeared in a body (literally, “he was manifested in flesh”) affirms the incarnation of Christ. The original term “flesh” and the passive form of the verb indicate the “mode” in which God revealed Christ to the world—in human form. Historically, the line of demarcation between the events recalled in lines 1 and 2 is the crucifixion/resurrection.
The meaning of was vindicated by the Spirit* is more problematic, but the juxtaposing of “flesh” (line 1) and “spirit” (line 2), seen elsewhere in the New Testament, provides some help. The NIV correctly shows that Christ’s “vindication” is in view. But by the Spirit is better left “in spirit” according to the original text (en pneumati). In fact, the rather widespread use of the flesh-spirit antithesis in the New Testament suggests that “in spirit” is a reference to the supernatural realm which is characterized by the activity of the Holy Spirit. It is this realm that Christ entered by his resurrection from the dead. Furthermore, as numerous biblical references show, it was this event of resurrection/exaltation that demonstrated Christ’s “vindication” before hostile powers, whether human or angelic (Acts 2:22–36; 3:11–15; Rom 1:4; 1 Cor 2:1–9; Eph 1:20–21). Contained in these two lines, then, is the acknowledgment of the truth of the gospel message, that God came among humankind and introduced a new kind of life (compare 2:3–6).
2. The communication of the mystery (lines 3-4). Was seen by angels* depicts a revelation of Christ to angelic beings, rather than the passive observation of angels. In keeping with the panoramic scope of the hymn, line 3 recalls simply the fact that at some point Christ appeared victoriously before angels. The time of this occurrence may have been after or coincident with the resurrection or perhaps coincident with the ascension—chronology is apparently not a dominant feature of the hymn. In contrast to this “appearance” of the victorious Christ in the spirit realm, line 4 tells of the proclamation of this victory, won in behalf of humankind, in the world. Lines 3 and 4 concentrate on the communication of the good news about Christ. Here is acknowledgment of the church’s responsibility to reach the world for Christ (2:1–2, 7; 3:15).
3. The conclusion of the mystery (lines 5-6). Line 5 (was believed on in the world) and line 6 (was taken up in glory)* refer respectively to the result of the preaching of the gospel (line 4) and the ascension of Jesus. Of course, this sketch of the history of redemption would be incomplete without reference to the saving effects of the gospel—the church in Ephesus was to see itself as living proof of God’s plan to save (compare 1:15–16). To acknowledge this was to accept at the same time the call to godly living (2:2, 8–10; 3:1–13, 15).
Though we might have expected mention of the return of Christ in the closing line of this salvation-hymn (as we find in many contemporary hymns), the purpose of this piece was to ground the reality and presence of salvation in the past, historical appearance of Christ. So the hymn concludes by alluding to the point that marked the close of Christ’s earthly ministry (including resurrection appearances) and the beginning of the age of the Spirit.
Consequently, Paul’s readers are reminded of their confession that the first advent of Christ introduced a new way of life in the present age. The hymn combines snapshots of important points of that past appearance (lines 1, 2, 3, 6) with references to the salvation introduced by that event (lines 4, 5). The appearance of the God-man is the essence of the new lifestyle (godliness) that, Paul urges, must characterize the church as it gathers for worship and when it relates with the world. Our confession of Christ is our acknowledgment of the call to service and godly living.
notes 2:2 Godliness (eusebeia) is an important ethical term in the Pastorals. Paul possibly borrowed it from the false teachers’ special vocabulary (1 Tim 6:5; 2 Tim 3:5) in order to correct their erroneous views about the spiritual life. From Paul’s discussions of their misunderstandings about it, it appears that for them “godliness” was largely something to be attained at the cognitive level through “knowledge” (1 Tim 6:20; 2 Tim 3:5; Tit 1:16) but that had little or no bearing upon outward behavior. Thus Paul’s use of the term stresses correct knowledge of God (1 Tim 6:3; Tit 1:1) that produces an observable Christian manner of conduct (1 Tim 2:2; 4:8; 5:4; 6:11; 2 Tim 3:12; Tit 2:12). This genuine godliness is a product of Christ’s redemptive work (Tit 2:12) and the life-changing gospel (1 Tim 6:3; Tit 1:1).
“Seriousness” (NIV holiness; Greek semnotēs), a favorite term with Greek ethicists, also contributes to Paul’s description of the observable new life of faith (2:2; 3:4, 8, 11; Tit 2:2, 7). The respectability it denotes is connected with the believer’s witness to unbelievers.
* Vindicated or “declared righteous” is the meaning consistently expressed in the Greek Old Testament by the passive form of the verb (edikaiōthē).
* The passive verb was seen (ōphthē) in line 3, meaning “self-exhibition,” came to be used as a technical reference for the manifestation of God in the Greek Old Testament (Gen 12:7; 17:1–3). This, coupled with the strong New Testament tradition of Christ’s triumphant “appearance” before angels (Eph 1:21; Phil 2:9–11; Col 2:15; Heb 1:3–4; 1 Pet 3:22; Rev 5:8–14) and the dominant New Testament use of “angel” (angelos) for spirit beings, rules out a reference to human beings (who witnessed Christ’s resurrection) in the term angels. For the same reasons, the intention of the line exceeds the references to angels present on the day of Jesus’ resurrection (Mt 28:5–7; Mk 16:5–7; Lk 24:4–7; Jn 20:11–13; but see Hendriksen 1965:140–42).
For the use of the verb was taken up (analambanō) in line 6 in reference to Christ’s ascension, see Mark 16:19; Luke 24:51; Acts 1:2; 11:22.
* In glory denotes the glorified state of the resurrected Christ. On the significance of the ascension as indicating the conclusion of Christ’s earthly ministry and the inauguration of the age of the Spirit, see Ladd 1975:128.
 Philip Towner, 1–2 Timothy & Titus, vol. 14,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4), 딤전 3:16.
 
16 Beyond all question, the mystery of godliness is great:
He appeared in a body,
    was vindicated by the Spirit,
was seen by angels,
    was preached among the nations,
was believed on in the world,
    was taken up in glory.
 
3:16 Paul’s phrase “Beyond all question” introduces an outline of Christian truth that had the unanimous consent of Christians. The clause “the mystery of godliness is great” has a triumphant ring to it, much like the cry of the Ephesians in Acts 19:28. The term “mystery” also appears in 3:9 (translated “deep truths”) and refers to truth that is now revealed. The word “godliness” (eusebeia) has the article in Greek and in this context means the godliness. This structure causes translators to see the term as a synonym for the Christian religion (Fee; Moffatt; Williams). The mystery of the Christian religion to which Paul pointed refers to God’s redemptive plan which had been kept secret but was now revealed. Paul was extolling God’s powerful actions that form the basis of the gospel and the transforming results that derive from accepting it.
Paul’s outline of the Christian religion is representative but not exhaustive. For example, it does not mention the return of Christ. It is presented in the form of an early hymn.78 The mere recitation of a creed could be cold and lifeless, but a hymn would pulsate with warmth and vigorous emotion. For example, the hymns of Martin Luther (“A Mighty Fortress Is Our God”) and Charles Wesley (“O Sacred Head Now Wounded”) spearheaded great spiritual revolutions. Paul probably did not compose this hymn but found it current in the life of the church.
The hymn contains six distinct statements with Christ as the understood subject of each line. Experts differ on the arrangement of the statements. Lenski agrees with the KJV in rendering it as a single stanza with six consecutive lines. Kelly agrees with the NIV in calling for three verses of two lines each. Fee agrees with the GNB in calling for two verses of three lines each.79 The widespread disagreement even among experts makes one cautious in dogmatically following any set rendering. Fee’s suggestions will serve as the basis for arranging this hymn, and we will analyze six distinct statements of the hymn.
The quotation of the hymn in this verse is only a sentence fragment, for it begins with a relative pronoun literally translated “who” (hos). The NIV’s translation “he” disguises the fact that the Greek lacks a main clause. The absence of a principal clause led some early exegetes to alter the text. Some inserted the neuter relative pronoun “which” (ho) in order to link the clause with the term “mystery” so that the text spoke of a “mystery … which appeared in a body.” Others placed the word “God” (theos) in the text to create a complete sentence that read, “God appeared in a body.” The best manuscripts contain the reading “who,” from which it is easy to trace the development of the other readings.
There is agreement that the first line, “He appeared in a body,” is a reference to Jesus’ incarnation. The term “body” (literally “flesh”; sarx) is a reference to all that belongs to our human nature (except sin; cf. Rom 8:3). Paul was asserting that in Christ, God himself had appeared in a human body.
There is similar agreement about the content of lines four and five. Line 4, “preached among the nations,” refers to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among the nations of the known world by early Christians. Line 5, “believed on in the world,” describes a response to the previous proclamation. Christians preached the gospel throughout the nations of the world, and commitment to Christ was the result.
This interpretation of the content of lines 1, 4, and 5 suggests that the hymn is a story of salvation, somewhat along the line of J. Wilbur Chapman’s gospel song “One Day.” If this is correct, then we can understand the more difficult lines by relating them to the story of salvation.
Line 2 speaks of Christ’s “vindication by the Spirit.” The idea of vindication or the demonstration of Christ recalls statements about the resurrection in Rom 1:4 and 1 Pet 3:18. There is disagreement among some interpreters over whether “Spirit” is a reference to the Holy Spirit (NIV; NASB) or Christ’s spiritual nature. Lenski takes “spirit” to be a reference to the vindication of Christ’s spirit of holy obedience even to the death of the cross.80 Since the first line of this hymn refers to being manifest in the realm of the flesh, it seems that the parallel in line 2 is suggesting that Christ was vindicated or declared righteous in the sphere of his spiritual nature. The resurrection becomes the means of publicly declaring this vindication. What Paul was saying is that just as Christ was manifested in human flesh, so he was proved to be what he claimed to be in the spiritual realm. The resurrection of Christ declared that he was God’s Son.81
Line 3, “was seen by angels,” lacks the Greek preposition en and instead has a Greek dative case used with angels (literally “to angels”).82 The verb “was seen” is used in the New Testament to describe Jesus’ post-resurrection appearances (1 Cor 15:5–8). The angels who worshiped Christ may have been either fallen (Col 2:15) or unfallen (Heb 1:6; 1 Pet 1:12). The expression of Paul is likely a reference to the worship given by angels to the ascended Christ.83 If this interpretation is correct, then the first three lines of the hymn express Jesus’ incarnation, resurrection, and glorification. The first stanza of three lines extols the glory of Christ in his early ministry and concludes with a word of triumph and victory.
The next two lines (4 and 5) also offer expressions of Christ’s victory, but they sing about the developing ministry of Christ in his church. The sixth line of the song, “was taken up in glory,” uses a verb that elsewhere in the New Testament describes the ascension (Acts 1:2, 11, 22). Since the ascension preceded the preaching of the gospel, we might think that it is out of order to mention it at this point. However, Jesus ordered the preaching of the gospel (Matt 28:19–20) before the act of the ascension, and it is this order that the hymn follows. “Glory” is a reference to the brightness and majesty of God’s presence in Jesus, not merely a reference to the ascension. The emphasis may relate to the glory Christ received as he was declared and accepted.
This approach to the hymn finds two stanzas of three lines each. The first stanza praises the earthly ministry of Christ and concludes with a statement of triumph. The second stanza extols Christ’s ongoing ministry and concludes with a note of victory.
Paul used this hymn as an example of the mystery of godliness the church proclaimed. This mystery relates to the incarnation and resurrection of Christ and the church’s proclamation of him. Paul probably had two purposes in mind in placing the hymn at this point. First, his emphasis on the past humiliation and present triumph of Christ probably stood in contrast with the deficient Christology of the false teachers. They apparently spiritualized the resurrection (2 Tim 2:18) and drank in other Hellenistic ideas that could corrode Christian truth. Paul’s statement served as a corrective. Second, Paul was about to return to an attack against the false teachers. His statement of the truth here prepared for the attack by providing a broad expression of glorious truth in contrast to their demonic errors.84
Summary. Two characteristics of believers stand out in the statements of Paul in vv. 15–16. First, he wrote to point out how Christians should conduct themselves as members of God’s family. Christians are to distinguish themselves by a life-style of holiness. The mere mouthing of a creed without transformation of life does not denote a believer. Believers are those whose behavior designates them as God’s children and demonstrates the reality of their faith. Second, Christians are those who do have certain fixed beliefs about Christ. The incarnation, resurrection, and exaltation of Christ appear in the hymn Paul quoted. There is an appeal for belief. Christians are not merely those who think nice thoughts about a benevolent Jesus. They are those who have committed themselves to the incarnate Son of God and risen Lord. We must affirm fixed truths about Jesus.
78 Evidence for this comes from the parallelism of each line of the hymn. Each line begins with a verb in the Greek aorist passive tense followed by a prepositional phrase introduced by “in,” “by,” or “to.” There is a deliberate assonance in Greek marked by the sound th from the aorist passive verbs. Reading the passage aloud in the Greek shows the presence of rhythm in the diction. For a similar hymn see 2 Tim 2:11–13. Some scholars think that a creed would lack the deliberate parallelism or assonance of a hymn.
79 For discussion of the arrangement of the hymn see Lenski, St. Paul’s Epistles, 607–9; Kelly, Pastoral Epistles, 88–93; and Fee, 1 and 2 Timothy, Titus, 54–58.
80 Lenski, St. Paul’s Epistles, 612. The presence or absence of the article before the word is not always a clear indicator of the referent of the word “spirit.” Sometimes a reference to the Holy Spirit is anarthrous (e.g., 2 Cor 3:3), and sometimes it is articular (e.g., 1 Cor 2:12). Sometimes a reference to the human spirit of an individual is anarthrous (e.g., 2 Cor 7:1), and at other times it is articular (e.g., 1 Cor 2:11). The fact that “spirit” in the Greek text of v. 16 is anarthrous does not settle the issue of interpretation.
81 J. H. Bernard explains the meaning of the phrase to be that “as Christ was manifested in human flesh, so in His spiritual activities, words and works, He was proved to be what He claimed to be, Son of God no less than Son of man; His personal claims were vindicated” (The Pastoral Epistles [1899; reprint, Grand Rapids: Baker, 1980], 63).
82 In form the expression could read either “was seen by angels” or “appeared to angels.” The former translation would have “angels” in the instrumental case, showing agency. The latter translation would have “angels” in the dative case, indicating to whom the appearance was made. Guidance in deciding between these options can come by observing usage elsewhere.
In Acts 9:17 Luke used the same verb, and the NIV translates it “appeared to you.” In 1 Cor 15:5–8 the same verb is again translated “appeared,” and the persons to whom the appearances occurred (“Peter, the Twelve, five-hundred brothers, James, all the apostles, Paul”) are again preceded in the NIV by the preposition “to.” These translations take the case usages in these verses as dative, showing the person(s) to whom the appearances were made. Since these passages use the dative in translation, it seems wisest to continue that usage here. No serious issue is at stake in choosing the dative over the instrumental. To say that Jesus “was seen by angels” does not differ greatly in meaning from the statement that he “appeared to angels.”
83 The term translated “angels” can also mean messengers, and it can refer to those who reported Christ’s resurrection. However, Paul was attempting to show the worship given to the glorified Christ by angelic powers, and a reference to messengers on earth during Jesus’ incarnate life would be out of place here.
84 For further discussion of the question of why Paul placed the hymn at this point, see Fee, 1 and 2 Timothy, Titus, xxii–xxiii, and 57.
 Thomas D. Lea and Hayne P. Griffin, 1, 2 Timothy, Titus, vol. 34,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2), 12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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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oTheir wives likewise4 must be dignified, not slanderers, but sober-minded, pfaithful in all things. 12 Let deacons each be qthe husband of one wife, qmanaging their children and their own households well. 13 For rthose who serve well as deacons gain a good standing for themselves and also great confidence in the faith that is in Christ Jesus.
o Titus 2:3
4 Or Wives likewise, or Women likewise
p [Titus 2:10]
q ver. 2, 4
q ver. 2, 4
r See Matt. 25:21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딤전 3:11–13.
 
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69: 대한성서공회, 1998), 딤전 3:11–13.
 
11절) ‘여자들’(귀나이카스)은 ‘귀네’의 대격 복수형으로 ‘여인, 아내’의 의미를 지닌다. 신약에서 231번 사용되는 동안 130번은 여자, 99번은 아내로 사용되었다. 이 귀네라는 단어의 다양한 용례로 본문의 ‘여자들’은 세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집사의 아내들, 2) 여자 집사들, 3) 여집사(집사를 돕되 집사와는 구별되는 여자들), 일반적으로는 문맥의 흐름상 집사의 아내들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본문이 집사들의 아내를 의미하는 것이든, 여집사 제도를 인정하는 것이든 초대교회의 상황속에서 여성도들의 역할이 요구되었던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여성들의 중요한 자격은 아래와 같다. 
‘정숙하고’로 번역된 ‘셈노스’는 ‘존경할만한, 위엄있는’의 의미를 가진다. 
 
‘모함하지 아니하며’, ‘참소하지’로 번역된 ‘디아볼로스’는 ‘고소하다, 비난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디아발로’의 명사형으로 ‘마귀, 원수, 중상자, 참소자’(엡 6:11; 딛 2:3)의 의미를 가진다. ‘~사이’의 의미를 가진 ‘디아’와 ‘던지다, 두다, 놓다’라는 의미의 동사 ‘발로’의 합성어로 ‘~사이에 던져 놓다’라는 뜻으로 ‘비방이나 중상으로 타인의 명성을 해치는’의 의미를 가진다. 
요한복음 8:44
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주님께서도 이렇게 고소나 비난, 참소를 일삼는 행위가 마귀에게서 났다는 것을 말씀해주신다. 이처럼 모함하는 자들은 마귀의 자녀들로 바울은 교회에서 남자들에게는 일구이언하지 말 것을, 여자들에게는 모함하지 말 것을 경고함으로 교회안에 혀를 잘 다스리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임을 강조한다. 
 
‘절제하며’는 ‘네팔리오스’로 ‘술취하지 않은, 절제하는’의 의미를 가진다. 영어 표현으로는 ’sober-minded, self-controlled, temperate’로 번역된다. 신약에 3번 사용된 이 표현은 바울이 교회의 직분자들의 자격을 설명하면서 술과 관련된 측면에서 절제하는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일에 충성된 자’, ‘충성된 자’로 번역된 ‘피스타스’는 ‘신실한 사람, 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특히 본문에서는 ‘모든 일(엔 파신)’에 충성됨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교회의 구제와 관련된 재정 운영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재정을 맡은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모든 일에 신실함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3:11 The word “wives” (gynē) is the same word translated “women” in 2:9–10 or “woman” in 2:11–12. The context will usually show whether the word refers to a married woman (“wife”) or is a reference to the female gender (“women”). Was Paul discussing the wives of the deacons, or was he presenting a special order of female helpers in Christian work?
In favor of viewing these as “wives” of the deacons is the fact that deacons are addressed on each side of the verse. Huther, who adopts this view, thinks the work of the deacon is of such a nature that the wives had a special role to play. Support for the view that Paul spoke of a special order of women helpers comes from a comparison of the structure of this verse to that of v. 8. The “likewise” (hōsautōs) of 3:8 appears to begin the enumeration of requirements for an office by reference to the previous requirements of 3:1–7. The same Greek word appears in v. 11 (translated “in the same way”) and seems to introduce qualifications for another office as v. 8 does. The statements of v. 8 and v. 11 are both logically dependent on “must be” of 3:2, and this further implies the presence of three categories of positions.
New Testament Greek did not have a special word for “deaconess,” but it used the same word with masculine endings to refer to both male and female helpers (see Rom 16:1, where Phoebe is described as a diakonos). Perhaps Paul’s failure to use a more specific title for these women was due to the fact that there was not one in use at that time. Paul’s use of the term “wives” or “women” implied that these were women who helped the church in some manner.
The early church did have women whose special responsibility was to work with women and children (see Titus 2:4 for an indication of the beginning of this task). They performed pastoral work with the sick and the poor and helped at baptism.73 The godly women Paul mentioned here stand in stark contrast with the gullible, immature women in 2 Tim 3:6. At 1 Tim 3:11 modern translations divide over the advisability of the translation “wives” (KJV, NIV, Phillips) or “women” (ASV, NASB, Amplified). Several versions use the term “deaconesses” (Williams, NIV margin, Montgomery). The GNB uses “wives” with a marginal alternative of “women helpers.” The term “women helpers” refers to a special order of women who had a responsibility for ministry within the congregation. Phoebe (Rom 16:1–2) may have served in this kind of role, and perhaps Euodia and Syntyche (Phil 4:2–3) held the same position.
Paul outlined four requirements for a woman helper. First, she was to be “worthy of respect,” a term used also of the deacons in v. 8. In prohibiting “malicious talking,” Paul used a word normally employed to designate the devil (diabolos, see 1 Pet 5:8). The literal meaning of the term is “slanderer,” or “accuser,” and in this sense it becomes an apt designation for Satan (Rev 12:9–10). In 2 Tim 3:3 and Titus 2:3 the word refers to people who slander or misrepresent others. Paul was prohibiting gossip and insulting usage of the tongue as he did for the deacons in 3:8 (see in 3:8 the term “sincere,” literally “not speaking a double-word” or “not being “double-tongued”).
The women are to be “temperate” by showing control or moderation in all their behavior. Paul had used the same word in 3:2 to refer to the overseer. The demand that the women be “trustworthy in everything” was an insistence on absolute reliability and faithfulness. Their trustworthiness could not be limited to a single sphere but had to be a part of all they did.
Whoever these women were, their qualifications stand in contrast to those of the women in 5:11–15 and 2 Tim 3:6–7. These women leaders were to have qualifications greatly contrasting with those who were duped by the false teachers.
Churches today that give women special places of responsibility rarely limit their work to women and children. A woman can certainly be as effective in handling finances as a man and often can be much more effective in maintaining church property. In light of the susceptibility of male leaders to moral failure in their working with women, it is sensible to look freshly at the pattern of the early church of using women to work with other women and children. The New Testament gives evidence that women who work with other women, the poor, and with children can render an important service for the cause of Christ. In taking advantage of the marvelous talents of highly trained, twentieth-century Christian women, we must be careful not to ignore special areas of natural competence in which women have long ministered effectively.
73 Ross, “A Reconsideration of the Diaconate,” indicates that from the earliest times deaconesses visited the sick, acted as doorkeepers at the women’s entrance for the church, kept order among church women, assisted in baptism for women, taught females in preparation for baptism, and acted as sponsors for exposed children (153). An insightful presentation of the role of women in the early church (including both heretics and heroines) appears in Christian History 7:17 (1988).
The early Christian writing known as the Apostolic Constitutions presents a picture of church life near the end of the third century. It outlines the work of a woman helper or deaconess as follows: “Ordain also a deaconess who is faithful and holy, for the ministrations towards women. For sometimes he cannot send a deacon, who is a man, to the women, on account of unbelievers. Thou shalt therefore send a women, a deaconess, on account of the imagination of the bad. For we stand in need of a woman, a deaconess, for many necessities; and first in the baptism of women, the deacon shall anoint only their forehead with the holy oil, and after him the deaconess shall anoint them: for there is no necessity that the women should be seen by the men” (Apostolic Constitutions 3.15).
 Thomas D. Lea and Hayne P. Griffin, 1, 2 Timothy, Titus, vol. 34,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2), 119–121.
 
12절) 이미 앞선 감독의 직분을 설명하면서 2절과 4절에서 언급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는 것과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조건을 집사의 직분에서 동일하게 반복한다. 이처럼 집사의 자격과 감독의 자격은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13절) 본 절은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 이들에게 어떤 보상이 있는지를 언급한다. 
‘아름다운 지위’에서 ‘지위’로 번역된 ‘바드몬’의 원형은 ‘바드모스’로 이는 ‘단계, 계급, 등급, 지위’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더 나은 지위를 얻게 된다는 의미로 승진, 즉 집사의 직위에서 감독으로의 승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바울 당시에도 교회의 직분에 승진이나 진급의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는 영적인 차원에서의 승진을 의미할 것인데 하나님의 교회와 주님앞에서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주님앞에서 잘했다라고 칭찬을 듣는 것일 것이다. 
‘담력’으로 번역된 ‘파르레시안’의 원형 ‘ 파레시아’는 ‘위험이나 위태로움을 수반하는 활동을 기꺼이 수행하는 특성, 특히 태도와 말에서 정직하고 직설적인 모습’을 의미한다(엡 3:12; 히 10:19). 이처럼 교회를 섬기는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게 되면 자신들의 믿음이 증진되고 이로 인해서 믿음의 담대함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은 신학적인, 교리적인 믿음 체계가 아니라 성도들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믿음의 행위를 말한다. 
 
본문에 ‘얻느니라’로 번역된 ‘페리포이운타이’는 원형 ‘피리포이에오’의 현재 중간태 직설법 표현으로 지금도 지속적으로 아름다운 지위와 큰 담력을 얻게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The use of the related verb “served” (diakoneō) so close to the noun for deacon in 3:12 suggests that Paul’s words here are primarily spoken in reference to deacons. However, the truth of the verse would apply also to overseers (3:1–7) and women helpers (3:11).
In the verse Paul explained a promise for the deacon who serves well. The present-tense verb “gain” states what the committed deacon can normally expect to get for his service.71 Paul outlined two promises. First, the servant will receive an “excellent standing” for his effective service. This standing is not an advance in ecclesiastical rank, a concern that was foreign to Paul’s mind. Nor is it likely that Paul was promising a good standing in heaven, namely heavenly rewards. The standing likely was an assurance of a good reputation or good respect from the church for a job well done, although it could also refer to a good standing with God. Second, the faithful servant receives “great assurance” (parrēsia), a term used frequently to describe access to God (see Eph 3:12; Heb 10:19). However, New Testament use of this term also refers to boldness before others (e.g., 2 Cor 3:12). It is possible that the term “assurance” could refer to an exercise of confidence both before God and those who hear the gospel. However, the prepositional phrase modifying “faith” clearly refers the noun to personal faith in Jesus. The absence of the article before “faith” in the Greek text is further support for identifying this faith as a personal response to Christ.72 It is best to see the “assurance” as a confidence before God produced in the sphere of a mature faith in Christ.
71 This is an example of the “customary” present that describes what may be reasonably expected to occur. The temporal element is remote because the promise is seen as true in the past or future, as well as the present. See H. E. Dana and J. R. Mantey, A Manual Grammar of the Greek New Testament (New York: Macmillan, 1942), 183.
72 In the Pastorals Paul frequently placed the Greek article with “faith” when he intended to designate the content of the Christian faith (1 Tim 3:9; 4:1; 5:8), and he omitted the article when he referred to the personal experiential faith of the believer (1 Tim 1:5; 6:11; 2 Tim 1:13). The presence or the absence of the article in English is not always a safe indicator of Paul’s usage (see 1 Tim 1:2, which has the article in English, lacks it in Greek, but probably describes the sphere in which Paul and Timothy were related).
 Thomas D. Lea and Hayne P. Griffin, 1, 2 Timothy, Titus, vol. 34,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2), 118–119.
 
한국 교회안에서 집사는 교회에 나오면 누구나 받게 되는 직분으로, 호칭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초대교회에서 집사에게는 대단한 성품으로서의 자격과 의무, 책무를 요청했다. 결국 이러한 직분에 충성하게 될 때 그들의 믿음은 더욱 한단계 도약하게 되고 삶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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