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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의 원제는 “How I Changed My Mind About Evolution”이다. 번역하면 '나는 어떻게 진화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었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판의 제목은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이다. 아마도 조금더 도전적인 제목이 되기를 원해서 이렇게 이름을 붙인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진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지적 여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둘 중에는 전문 과학자, 신학자, 목회자등 다양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 모두가 진화라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 자신의 신앙과 크게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지적 여정중에 그런 갈등의 시기를 통과한 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과 자연이라는 책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 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서로 다르다. 그렇기에 성경을 읽는 독법과 자연을 읽어내는 독법이 같을 수 없다. 각각의 분야의 전문가로 우리는 그것을 읽어내는 방법을 배우고 연구하고 또 새로운 내용을 찾아내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선포한다. 이제 그 창조의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고 진행되었는지를 밝혀내고 설명하는 것은 과학의 역할이다. 성경은 누가, 왜 세상을 창조했는지를 밝힌다면 과학은 언제, 어떻게 세상이 창조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창조에 대해서 성경과 과학이 서로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갈등처럼 보이는 여러 삶의 영역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아플때 하나님의 신유의 능력을 의지하여 기도하면서 동시에 병원에 가서 의상의 진찰을 받고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는다. 아프면 오로지 기도만 해야한다거나, 병원을 가야만 한다는 배타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것처럼 성경과 과학은 서로 상호 보완적이다. 

 

25명의 저자들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내용은 영국의 톰 라이트가 쓴 “영국인이 본 미국의 진화 논쟁”이라는 부분이었다. 미국에서는 1925년 스콥스 재판 이후에 ‘창조와 진화’의 대결구도가 본격화되었다. 물론 유럽도 진화론의 공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그 강도가 특별히 컸던 것이다. 이러한 근본주의의 발흥은 미국의 남북전쟁의 첨예한 편가르기의 경험이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톰 라이트는 미국 사회에서의 창조와 진화 논쟁은 단지 이 주제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이전의 역사 속에서 축적된 노예제도의 정당성, 미국 흑인들의 사회적 위상과 관련된 상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곪아 있다가 과학 대 종교 혹은 진화대 성경의 논쟁으로 촉발된 것으로 본다. 이러한 논점은 한국적 상황과 맞닿아 있다. 전세계적으로 젊은 지구론의 세력이 가장 강한 나라가 미국과 한국이라고 한다. 한국도 일제 치하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남과 북,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보수와 진보로 편가르기를 강요하는 시대적인 문화속에서 자연스럽게 전투적인 젊은 지구론, 창조론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톰 라이트의 미국에 대한 문제의식을 한국적인 상황에 적용해서 연구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논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서에 등장하는 모든 저자들이 표면적으로 혹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사상은 바로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성경의 주장과 과학의 주장이 갈등하는 것 같아도 그 갈등의 이유는 각각의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의 한계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학문을 하는 과정에서 '겸손과 상호의존'이라는 자세를 견지해야만 한다. 학문은 반드시 반증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학문이라기 보다는 도그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감추어진 하나님의 진리를 밝혀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반대하고 거부하기보다 정말로 그러한가 상고하여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진화에 대한 내 생각도 한걸음더 나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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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교전 수칙

교리의 해석학 : 우리는 교리들과 교리들의 명제, 발전, 논박, 재진술 등을 그 당시의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당연히 교회적이고 신학적인 환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59p)
예를 들면 16-17세기의 위대한 신앙고백서들은 당시 상황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고, 복음과 교회 모두가 그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세계 모두에 적절한 영향을 끼치게 하고, 중세 카톨릭 교회 안에 존재했던 너무나 명백한 실수들을 피하려는 아주 거대한 투쟁으로부터 등장한 것이다.(60p)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원칙중의 하나는 바로 단어와 용어에 대한 모든 연구는 그 역사적 맥락(정황)속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There&then의 말씀을 now&here의 말씀으로 해석하고 읽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성경 해석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읽을때 1세기, 근동지역에 사는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해석해내고 이후에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적용해 가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 본문을 읽을때 결코 백지 상태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립적인 일상적인 해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기이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다양한 전통에서 자라나온 다양한 해석들이 있고, 그 해석들은 신학적인 검토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주해적인 면에서도 검토를 받아야 한다. … 서구 개신교 전통에서 일상적인 해석으로 간주되어 온 많은 해석들이 바울이 실제로 기록한 내용에 대해서는 정말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왔다는 사실이다.”(66p) - 톰은 개혁주의자들의 일상적인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교전 수칙 : “무엇보다도 주해를, 그것도 역사적인 도구를 총동원해서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목적인 본문이 원래 갖추었던 모양에서 병형되는 방식으로 본문을 왜곡하거나 압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 민감하고, 본문의 주장에 민감하며, 본문의 뉘앙스에 민감한 해석을 지원하고 조명하려는데 있어야 한다.”(67p) - 이후 톰은 NIV 성경이 개신교와 복음주의 전통에서 바울이 말했다고 광범위하게 이야기하는 내용을 바울이 실제로 말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목적에서 번역되었다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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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Justification : God’s plan and Paul’s vision

이 책은 서문에서 톰 라이트가 밝힌대로 존 파이퍼가 “칭의 논쟁”이라는 제목으로 톰라이트가 펼친 칭의 관련 내용을 비판하는 책에 대한 응답의 일환으로 쓰여졌다. 개혁주의자들의 집중포화가 이 톰 라이트가 펼친 주장에 떨어지고 있는데 이는 지금까지 개혁주의 전통속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칭의 교리에 대해서 “바울의 새 관점”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문제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논란은 구원의 성격과 범위, 구원의 수단, 칭의의 의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제 1장. 칭의는 무엇에 관한 내용이며, 왜 중요한가?
톰은 파이퍼의 주장을 상당히 강력하게 비판한다. 파이퍼의 주장이 마치 천동설과 지동설의 논쟁과 같다고 비유한다. 파이퍼가 톰이 주장한 내용중에 바울에 대해서 틀린 내용을 주장하며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교리들을 고수해야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마치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으니 너(톰)의 지동설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 

톰은 칭의에 대한 논의가 개인의 구원에 한정되는 것을 경계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논쟁에서 정말로 중요한 점은, 인류의 구원이 아무리 중요할지라도, 더 큰 목적의 일부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파선된 세계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과 함게 뒤로 물러나 편하게 앉아서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목적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만약 종교개혁 전통이 바울 서신들만큼 복음서를 중요하게 취급했다면 이러한 실수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30p)

톰은 ‘새 관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용어의 사용이 의도된 것은 아니었는데 샌더스, 던, 톰 라이트에 의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것은 기존의 바울 신학의 관점과는 다른 새로운, 신선한 관점으로 바울을 읽자라는 목적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기존의 주장과 논란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의 주장과 샌더스의 주장이 서로 다르며 새관점을 뛰어 넘어 다양한 측면에서 바울을 좀더 정당하게 다룰 수 있는 관점이 개발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톰은 기존의 성경 읽기가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바울의 교리에서 핵심적인 요소들이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하나님께서 그와 맺으신 언약,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 부활과 새 창조,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됨, 역사를 통해 지속된 하나님의 목적이 이끄는 계획이라는 의미에서 종말론, 그리고 특별히 성령과 기독교적 인격의 형성이다.”(41p) 또한 바울의 신학을 읽을때 단일한 연속된 내러티브로서 이스라엘과 전 세계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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