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erefore, ma prisoner for the Lord, urge you to nwalk in a manner worthy of othe calling to which you have been called, 2 with all phumility and qgentleness, with rpatience, sbearing with one another in love, 3 eager to maintain the unity of the Spirit in tthe bond of peace.
m See ch. 3:1
n Col. 1:10; 2:6; 1 Thess. 2:12; [Phil. 1:27]
o See Rom. 8:28
p Acts 20:19; Phil. 2:3; Col. 3:12; 1 Pet. 3:8; 5:5; [Col. 2:18, 23]
q Gal. 5:23
r Col. 1:11
s Col. 3:13
t Col. 3:14; [Acts 8:23]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엡 4:1–3.
앞선 2:10에서 본 것처럼 바울의 윤리적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표현중에 하나가 행하다(walk), ‘페리파테오’라는 단어인데 4:1부터 5:21절까지 윤리적인 가르침이 이 동사를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4:1 :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4:17 :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
5:2 :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5:8 :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5:15 :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라.
4:1-16절은 이어지는 4:17-6:20절의 틀과 특정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No passage is more descriptive of the church in action than Ephesians 4:1–16. Verse 1 marks a transition from the prayerful description of God’s grace and salvation in the first three chapters to an explanation of the consequences of grace in chapters 4–6. As noted in our discussion of 2:10,1 Paul’s ethical instruction in Ephesians centers largely on the metaphor “walk” (Gk. peripateo; niv, “live”). From 4:1 to at least 5:21 the ethical teaching is structured around this verb. Note the following:
4:1: “walk worthy of the calling with which you have been called”
4:17: “walk no longer as the Gentiles walk”
5:2: “walk in love”
5:8: “walk as children of light”
5:15: “Therefore be careful how you walk, not as unwise, but as wise”
To a large extent, 4:1–16 provides the framework and specific theological basis for what follows in 4:17–6:20.
1 See pp. 94, 96, 115.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94.
바울의 서신서의 특징중 하나는 대부분 그의 서신 전반부는 교리적, 신학적인 내용이라면 후반부는 삶의 적용, 윤리적 명령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사실은 윤리적 명령, 삶에의 적용은 반드시 신학적인 교훈에 기초해야한다는 것이다. 순종은 언제나 은혜에 대한 반응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시고 인근은 그에 반응한다. 선포로서의 케리그마와 교훈으로서의 디다케를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직설법과 명령법을 분리할 수 없다. 이 두가지는 같은 텍스트에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명령은 복음을 설교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운리적 진술은 전체 복음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Throughout the New Testament, ethical imperatives are based on theological indicatives. Obedience is always a response to grace. God acts first, and humans respond. Just as kerygma (proclamation) and didache (instruction) cannot be separated, neither can the indicative and the imperative. Often the two blend together in the same text. The imperative can be a means of preaching the gospel, for ethical statements can contain the whole gospel2 (cf. 5:1–2). In the passage before us, 4:4–16 provides theological support for the imperative in 4:1–3.
2 Barth, Ephesians, 2:453–57.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94.
1절) 주 안에서 갇힌 나.
앞서 3:1에서도 “그리스도 예수의 갇힌 자”라고 표현하는데 본절에서는 “주안에서 갇힌”이라고 표현한다. 주라는 표현이 에베소서에서 26번 사용되는데 4-6장에서 20번 사용된다. 바울은 주로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구원에 대해서, ’주’라는 표현은 윤리와 관련해서 사용해왔다.
본문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은 1-3장의 구원에 대한 기술, 특별히 1:3-14절의 송영을 떠오르게 한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크다면, 그의 구원이 그렇게 강력하다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화해를 허락하셨다면 신자들은 그에 따라서 살아가야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것에 의해서 형성될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가치있게 여겨야 한다.
With the translation “the calling you have received,” the niv loses the text’s double emphasis on election (lit., “the calling with which you were called”). Paul reminds the reader of the description of salvation in chapters 1–3 and especially of the doxology in 1:3–14. If God’s love is so great, if his salvation is so powerful, if God has granted such reconciliation, then believers should live accordingly. They should value God’s love enough to be shaped by it. Note that “calling” is used of the salvation and responsibility of every Christian, not of the “professional ministry” or an elite group. This one call is for all Christians to live in accord with what God has done.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96.
주안에서 갇힌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서 명령하는 것은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합당하게 행하기 위해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한다.
먼저 겸손은 바울 서신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필수 요소이다. 당시 헬라 문화에서 겸손은 추구해야할 덕목이 아니었다.
In several other letters he links humility and unity at the precise point he starts drawing ethical conclusions (e.g., Rom. 12:3–8; Phil. 2:1–11; Col. 3:12–15).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96.
온유(프라우테스)와 겸손은 주님의 특성으로 바울이 강조하는 덕목중 하나이다.
오래참음(마크로티미아). 오래참음은 오랜 시간을 걸친 괴롭힘과 고난을 견뎌낼수 있는 넓은 영혼의 연습이다.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함.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른 사람을 참아주는 삶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으로 즐거워하지만 즐거움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행동이다. 이것은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된 것으로 언제나 댓가가 지불된다. 그리스도안에서 경험된 사랑은 다른 이들에게 확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아가페적 사랑은 인간의 동기에 기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서로(one another)는 바울서신에 40번이나 등장하는 중요한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서로의 일부분이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 섬기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세워주고 서로의 짐을 지고 서로 복종하고 서로 격려해야 한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방향을 정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정의하시고 타자지향적인 종교이다. 오직 우리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방향, 자리에서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The focus on “one another” is significant. This word occurs forty times in Paul’s letters. Christians are part of each other and are to receive one another, think about one another, serve one another, love one another, build up one another, bear each other’s burdens, submit to each other, and encourage each other. Christianity is a God-directed, Christ-defined, other-oriented religion. Only with such direction away from self do we find ourselves.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97.
3절에서 하나됨은 성령이 주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됨은 우리가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하는 하나님의 성령안에서의 하나됨은 그리스도의 화해케하시는 사역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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