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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his reason I, Paul, oa prisoner of Christ Jesus pon behalf of you Gentiles— assuming that you have heard of qthe stewardship of rGod’s grace that was given to me for you, show the mystery was made known to me tby revelation, uas I have written briefly. vWhen you read this, you can perceive my insight into wthe mystery of Christ, which was not made known to the sons of men in other generations as it has now been revealed to his holy apostles and prophets by the Spirit. This mystery is1 that the Gentiles are xfellow heirs, ymembers of the same body, and zpartakers of the promise in Christ Jesus through the gospel.

aOf this gospel I was made ba minister according to the gift of cGod’s grace, which was given me dby the working of his power.

o ch. 4:1; Acts 23:18; Phil. 1:7; [ch. 6:20]

p ver. 13; Col. 1:24

q ch. 1:10; Col. 1:25; 1 Tim. 1:4

r ver. 7; ch. 4:7; See Acts 11:23; Rom. 1:5

s Acts 22:17, 21; 26:16–18

t [Dan. 2:29]; See Rom. 16:25; 2 Cor. 12:1

u [ch. 1:9, 10]

v [2 Cor. 11:6]

w Col. 4:3

1 The words This mystery is are inferred from verse 4

x See Gal. 3:29

y ch. 2:16

z ch. 5:7

a Col. 1:23, 25

b See 2 Cor. 3:6

c See ver. 2

d [ver. 20]; See ch. 1:19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엡 3:1–7.

 

 

본문은 그 계시가 그리스도안에서 나타난 비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나 이방인의 구원이 진짜 핵심은 아니다. 도리어 바울의 메시지는 좀더 높은 목적을 가지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이다. 하나님은 계시자이면서 동시에 계시되어지시는 그분이시다. 2,3,5,8 절에서 사용된 수동태는 신적 수동형으로 하나님의 행동을 묘사할때 사용된다. 

M. Barth viewed 3:2–13 as commentary on 3:1, but they are more a digression than a commentary.3 The niv has placed verse 7 with verses 8–13 for convenience, for these verses explain verse 7. Considerable overlap exists between verses 2–7 and 8–13, for both focus on grace and revelation. Even though the revelation focuses on the mystery made known in Christ (vv. 4 and 8), neither Christ nor the salvation of the Gentiles is the real focus. Rather, Paul’s message here has a higher purpose, the revelation of God himself. God is both the revealer and the One who is revealed (vv. 2–3, 8, 10). Note the use of the passive voice in verses 2, 3, 5, and 8, all of which are “divine passives” (the passive voice used to describe an action of God).

3 Barth, Ephesians, 1:359–60. This section explains the character of Paul’s whole ministry, not just his imprisonment.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58.

 

1절) 이러한 이유로, 그러므로라는 표현은 앞선 2장 11-22절의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생명을 주는 이 복음은 바울이 행하는 모든것의 지침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이방인들을 위하여 갇힌 상태라고 말한다. 만약 바울이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복음이 필요하고 주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셨다는 것에 동의하고 동참하지 않았다면 그는 감옥에 갇힐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주님이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셨고(롬 1:5) 이 복음이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복음을 전했고 그러한 이유로 갇힌 자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본문 1절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2절) 은혜의 경륜, 본문에서 경륜이라고 표현된 단어는 ‘오이코노미아’라는 단어로 집안을 관리하다라는 의미이다. 바울의 직무는 이방인을 포함한 하나님의 권속, 집안 식구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단어가 ‘오이코노모스’로 청지기라는 단어이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청지기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만야겡 그의 직무가 실패한다면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은혜의 경륜은 비밀의 계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륜(오이코노미아)은 엡 1:10, 3:2, 3:9에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오이코스’(가정)과 ‘네모’(관리하다)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오이코노모스’는 관리자, 집사, 청지기라는 의미의 명사이다. 오이코노모스의 역사는 신적인 오이코노미아(경륜)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세상적인 생각과 아이디어에 사로잡혀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경륜에 기초해야 한다. 

 

The most distinctive NT use of οἰκονομία is its application to God’s plan of salvation. This meaning, related to salvation history, prob. arose on the basis of the breadth of meaning of the Gk. word (see above, GL), which can denote such things as order in writing narrative, mental processes, and even the measures through which the help of heavenly powers can be obtained (e.g., in the magical papyri; cf. TDNT 5:152). In Ephesians we read of ἡ οἰκονομία τοῦ μυστηρίου, “the administration of the mystery,” i.e., God’s purpose of salvation, which had been hidden from eternity in God (Eph 3:9), but which now, in the fullness of time, has been realized and revealed in Christ (1:10; see μυστήριον G3696). The soteriological sense of the concept figured alongside other uses in the later patristic lit. (e.g., Justin Dial. 30.3; 45.4; Iren. Haer. 1.10.3; 4.33.7; see G. W. H. Lampe, A Patristic Greek Lexicon [1961], 940–43).

NT New Testament

prob. probable, probably

Gk. Greek

GL General (Greek) Literature

e.g. exempli gratia (for example)

cf. confer (compare)

TDNT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ed. G. Kittel and G. Friedrich, transl. G. W. Bromiley, 10 vols. (1964–76)

i.e. id est (that is)

lit. literal(ly), literature

e.g. exempli gratia (for example)

Iren. Irenaeus

 Moisés Silva,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and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4), 468.

 

3절) 비밀음 ‘미스테리온’으로 바울의 서신에 21번 등장한다. 그런데 에베소서에서는 6번 등장한다. (1:9; 3:3, 4, 9; 5:32; 6:19)

이 비밀이라는 헬라어 표현은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셈족 정황에서는 오직 하나님이 계시하여야 알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는 6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안에서 동일하게 그 계시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골 1:26)이지만 그 다음 구절은 그 초점이 이방인을 위한 복음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나서 골 2:2-3절에서 그 신비는 그리스도 자신에게로 축소된다. 우리는 그 신비가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모일 것이라는 그 계시, 특히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모일 것이라는 계시를 의미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는 신비를 이해하는 핵심이며 그 문구는 이중 연합 즉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분 안에서 유애인들과 이방인들이 연합하는 것을 가리킨다. 

Mysterion occurs twenty-one times in the Pauline letters, six times in Ephesians (1:9; 3:3, 4, 9; 5:32; 6:19). As indicated above,9 this term does not refer to something unknown. Rather, in a Semitic context it refers to what is known only because God revealed it. More specifically here, it refers to the revelation that the Gentiles are included in Christ as equals (see esp. 3:6). In Colossians 1:26 the mystery is the word of God,10 though the next verse shows the focus there too is on the gospel for the Gentiles. Then in Colossians 2:2–3 the mystery is reduced to Christ himself, “in whom are hidden all the treasures of wisdom and knowledge” (cf. mysterion in Eph. 1:9, which focused on all things being brought together in Christ). We may conclude that mystery refers to the revelation that all things will be brought together in Christ, and specifically that Jews and Gentiles are brought together.11 “In Christ” is key in understanding the mystery, for that phrase points to a double union—union with Christ and union of Jews and Gentiles in him.12

9 See comments on 1:9, p. 53.

10 Cf. Romans 16:25–27; 1 Corinthians 2:1; Ephesians 6:19; Colossians 4:3.

11 See Chrys C. Caragounis, The Ephesian Mysterion, especially 118.

12 Similar to the double reconciliation in 2:16 between God and humanity and between Jews and Gentiles. See Stott, God’s New Society, 117.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59–161.

 

본문에서 먼저 간단히 기록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본 에베소서 이전에 보낸 다른 서신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의견과 본문 3장 앞부분의 1-2장의 내용, 좀더 세부적으로 말하면 2:11-22의 내용을 말한다고 보기도 한다. 

 

4절) 본문의 '그리스도의 비밀’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인지 혹은 그 비밀이 그리스도이다라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골 4:3은 전자를 지지한다. 그 계시는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엡 3:6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되는데 그리스도의 중요성에 좀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약안에서 복음은 계시의 복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신다. ‘사람의 아들’이 예수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면 ‘사람의 아들들’은 복수로 모든 인류를 언급하는데 쓰인다. 

 

 

5절) 이러한 비밀은 이전 세대, 그때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성령으로 알리셨다. 

사도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복음의 중요성에 대한 통찰을 받고 그것을 전할 책임을 받은 자들이다. 본문의 선지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라기 보다는 신야그이 선지자들로 계시를 받아 어떻게 복음을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지에 대해 도움을 주는 이들이다. 

The niv wording “men in other generations” (v. 5) is a questionable translation of an unusual phrase, actually a double plural: “children [sons] of humans [men]” (cf. Mark 3:28, the only other occurrence of this phrase in the New Testament). While “son of man” can refer to humanity in general or to select individuals (esp. Jesus),19 the plural refers to all humanity. This verse does not deny that in the Old Testament Gentiles were included in God’s purposes,20 but no previous revelation focused on the Gentiles being accepted by God on equal footing with Jews. The contrast heightens the significance of the eschatological revelation that has come “by the Spirit.”

But while the revelation extends to all Christians (1:9), the foundational revelation has come only to certain select individuals. “Apostles” refers to the founding apostles who saw the risen Christ and were given insight about the significance of the gospel and the responsibility for handing it on.21 “Prophets,” clearly New Testament prophets, does not refer generally to prophets in the early church, but to those who had received revelation that helped frame how the gospel was to be understood and lived.22 These people laid out the perimeters within which faith moves. Paul had a unique call, even though others worked among the Gentiles, but he was not unique in receiving revelation (see Acts 15:6–29; Gal. 2:1–10). Ephesians 3:5 suggests a significant number of people received revelation from God’s Spirit, some of which may be reflected in hymns and confessional statements Paul adopted from the early church.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19 See lxx of Psalm 8:5 and Ezekiel 2:1 respectively.

20 See Genesis 12:3; Deuteronomy 32:43; Isaiah 2:2; 11:10; 49:6.

21 Because “holy” comes before “apostles” and “his” (niv, “God’s”) comes immediately after, some think only the apostles are called holy (see Lincoln, Ephesians, 179; Schnackenburg, Ephesians, a Commentary, 133–34). This is an unnecessary conclusion. The niv rightly takes “by the Spirit” with “revealed” rather than with “prophets.”

22 See the discussion of this issue at 2:20, pp. 136–37.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61.

 

6절) 6절본문에서는 함께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이러한 표현은 그 비밀의 독특한 틀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전에는 강조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이방인들은 상호 동등하게 교회안에서 유대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구약 창 12:3에 이미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가 선포되었지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연합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됨을 온전히 선포하기까기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은혜에 대해서 우리에게 우리가 친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은혜의 경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하나님의 능력의 일하심을 따라서 은혜로 종이 되었고 이방인에게 선포하기 위해서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보통 은혜를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로 제한하지만 이 본문은 우리에게 그 은혜가 사역을 위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강요한다. 그 선물은 항상 과제로서 온다. 은혜는 언제나 책임을 가져온다. 그것은 결코 특권이 아니다. 바울은 자신을 은혜의 관리자, 청지기로 보았다. 이방인에 대한 그의 사역은 독특했으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은혜의 관리자들이 되어야 한다. 은혜를 받은 모두는 이를 다른 이들에게 확장시켜야 한다. 은혜를 받는 것이 그것의 섬김으로 드러나야 한다. 은혜는 연결하고 참여하고 힘을 부여한다. 그것은 우리가 수동적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교회가 회복해야만 하는 은혜의 신학이다. 

A theology of grace for ministry. Paul speaks of grace in ways unfamiliar to us. He says he was given responsibility for the “administration” of grace, became a servant by grace through the working of God’s power, and was given grace to preach to the Gentiles. Whereas we usually limit grace to God’s gift of salvation, this text forces us to realize that grace is also the gift of ministry. The gift always comes as a task. Grace always brings responsibility; it never is merely privilege. This was already present in 1:4, but now we are told how it worked in Paul’s life.

Paul viewed himself as a manager of grace. His ministry to the Gentiles was unique, but all Christians are to be managers of grace. All who have received grace should extend it to others (see also 4:7; esp. 1 Peter 4:10, which instructs all Christians to administer God’s grace faithfully). To receive grace is to be taken into its service. Grace connects, enlists, and empowers. It will not allow us to be passive, for it is God’s power at work in us (cf. also 1 Cor. 15:10). This is the theology of grace the church must recover.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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