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For this reason I bow my knees before the Father, 15 from whom wevery family3 in heaven and on earth is named, 16 that according to xthe riches of his glory yhe may grant you to be strengthened with power through his Spirit zin your inner being, 17 aso that 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through faith—that you, being brooted and cgrounded in love, 18 may have strength to dcomprehend with all the saints what is the breadth and length and eheight and depth, 19 and to know the love of Christ fthat surpasses knowledge, that gyou may be filled with all hthe fullness of God.
20 iNow to jhim who is able to do far more abundantly than all that we ask or think, kaccording to the power at work within us, 21 lto him be glory in the church and in Christ Jesus throughout all generations, forever and ever. Amen.
w See ch. 1:10, 21
3 Or from whom all fatherhood; the Greek word patria in verse 15 is closely related to the word for Father in verse 14
x See ver. 8
y 1 Cor. 16:13; [ch. 6:10; Phil. 4:13; Col. 1:11]
z See Rom. 7:22
a [ch. 2:22]
b Col. 2:7
c Col. 1:23
d [John 1:5]
e Rom. 8:39; [Job 11:8, 9]
f [Phil. 4:7]
g Col. 2:10
h ch. 1:23
i Rom. 16:25; Jude 24
j [2 Cor. 9:8]
k [ver. 7]
l See Rom. 11:36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엡 3:14–21.
본문은 에베소 교인을 향한 바울의 기도로 세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먼저는 인사말(14-15절), 간구(16-19절), 송영(20-21절)이다. 간구의 내용은 능력과 사랑과 영적인 성숙이다.
14-15절) 하늘과 땅의 각 족속이라는 표현은 모든 가족, 계보라는 의미이다. ESV는 ‘every family’로, NIV는 ‘his whole family’로 번역했다. 한글에서는 여기서 사용된 가족과 아버지라는 단어에서 사용된 ‘word play’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가족은 ‘파트리아’로 ‘파터’, 아버지라는 단어에서 나온 단어로 아버지의 계보에서 나온 가족을 의미한다. 이는 가정에 대한 아버지의 머리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본문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든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땅에있는 인간들과 피조물에게 이름을 주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만물에 이름을 부여하신 분이다.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의미이다.
The Greek for “family” (patria) is derived from the Greek for “father” (patēr; see NIV text note on v. 15), reinforcing the headship of a father over a family. By addressing God as the “Father” who names (i.e., defines the identity of) every group of angelic beings (“in heaven”) and humanity (“on earth”), Paul affirms God’s greatness (cf. Ps 147:4; Isa 40:26). God brings into existence and exercises dominion over all creation.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i.e. that is
cf. compare, confer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404.
성경안에서 다양한 모습의 기도가 나온다. 본문에서는 무릎을 꿇고, 마 26:39에서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눅 10:13에서는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눅 18:11에서는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고, 눅 13:1에서 세리는 멀리 서서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했다. 왕상 18:42에서 엘리야는 자신의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기도했다. 이러한 표현, 모습은 각각의 의미를 가지는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존경과 순종의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사 45:23절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사 45:23, 개정)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바울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다시금 강조한다. 그는 42번 그의 서신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는데 에베소서에는 8번 이 표현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바’라고 가르치셨다. 좁은 의미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넓은 의미로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시다. 에베소서에서의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게서 우주적인 아버지로서의 이해에 기초하여 우주적인 그리스도와 우주적인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다.
Paul again emphasizes God as Father. He refers to God as Father forty-two times in his letters, of which eight are in Ephesians.10 No other description of God is used so frequently in the New Testament. No doubt this goes back to Jesus’ teaching his disciples to address God as Abba, the Aramaic word for “father” used by both children and adults but considered by Jews to be too familiar to use without qualification in relation to God.11 God is the Father of believers, but both a narrower and a broader use of “Father” also occurs. More narrowly God is viewed as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ich marks out the uniqueness of Jesus’ relation to the Father.12 In 3:15 (and 4:6) the broader sense occurs: God as the Father of all humanity.13 The emphasis in Ephesians on a cosmic Christ and a cosmic role for the church is based in an understanding of God as a cosmic Father. The anticipation that all things will be brought together in Christ (1:10) presupposes that God is the Father of all.
10 See 1:2, 3, 17; 2:18; 3:14; 4:6; 5:20; 6:23.
11 See Mark 14:36; Romans 8:15; Galatians 4:6; cf. John 5:18. See the classic treatment of this expression by J. Jeremias in The Prayers of Jesus (Naperville, Ill.: Allenson, 1967). Jews did refer to God as “Father,” but usually with a qualifying genitive such as “Father of lights” or “Father of mercy.”
12 See Romans 15:6; 2 Corinthians 1:3; 11:31; Ephesians 1:3; Colossians 1:3.
13 See also 1 Corinthians 8:6. Both this verse and Ephesians 4:6 draw on the Shema (Deut. 6:4), the primary confession of the Old Testament and Judaism that only one God exists.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79.
하나님 아버지는 하늘과 땅의 모든 그분의 가족, 족속들에게 이름을 주신 분으로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비는 것은 본 서신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연합, 하나됨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분이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이름을 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16-19절)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을 아는 능력을 구하는 기도
바울은 우리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기를(16),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기를(17), 우리가 사랑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되기를(18),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해지기를(19)를 간구한다.
바울이 기도하는 중요한 의도는 분명하다. 그는 그의 독자들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강건해짐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리스도의 임재와 사랑을 친밀하게 알기(경험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다른 모든 것들을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이후 4-6장에 나오는 가지, 내용은 이 기도에 기초한다. 본문의 간구와 이후 송영(20-21)에서 능력과 영광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그래서 성경안에는 능력과 성령을 동의어로 사용한다. 우리의 삶의 순간, 개인의 존재속에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시고 영향력을 발휘하시면 우리는 그것을 보게되고 알게 될 것이다.
본문에 속사람이라는 표현은 새사람과는 다른 의미이다. 이 표현은 마음과 같은 표현으로 삶을 이해하고 선택을 하는 통제 센터로서의 마음을 의미한다.
“Power” and “Spirit” are so commonly associated in both Testaments that they are virtually synonymous. The Spirit is the power of God at work in people.16 Paul prays for his readers that the Spirit will be so strong an influence at the controlling center of their being that their lives will show it. “Your inner being” (v. 16) is not the same as the “new being” in 2:15 or 4:24. This is an unusual expression, occurring elsewhere only at Romans 7:22 and 2 Corinthians 4:16. The former might well be paraphrased “in the depths of my being,” while the latter contrasts “outer being” and “inner being.” The expression is synonymous with “heart,” the controlling center from which life is comprehended and choices are made.17
16 In 1:13–14 Paul emphasized that all believers are sealed with the Holy Spirit as a mark of their salvation and future hope. In 1:17–19 he prayed that the Spirit would make known how great God’s power is.
17 Cf. Romans 5:5; 8:9–11; 2 Corinthians 1:22; Galatians 4:6; Ephesians 1:17–18. The attempt by Barth (Ephesians, 1:392) to understand “the inner man” as Christ is misguided.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80.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내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의 내주가 성령의 역사를 가능하게 한다. 17절은 16절을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안에 거하신다. 성령의 임파워링 혹은 내주 그리고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은 서로 분리된 일이 아니다. 앞선 2:20-22절에서 교회는 ‘그의 성령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불렸다. 이렇게 교회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제 구원을 경험한 신자 개인에게 내주하신다. 바울은 이처럼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모든 존재들에게 스며들기를 기도한다. 이는 이후 5:18절에 성령으로 충만케하라는 명령과 같다.
Although the niv begins verse 17 with “so that,” the indwelling of Christ does not result from the Spirit’s strengthening; it is the manner in which the Spirit strengthens. In other words, verse 17 explains verse 16. Christ indwells us through the work of the Spirit. The Spirit’s empowering or indwelling and the indwelling of Christ are not separate things.18 In 2:20–22, the church was called “a dwelling in which God lives by his Spirit.” This lofty description of the church is now paralleled by an equally lofty description of the individual believer, who has experienced salvation and transformation. By the Spirit’s work Christ takes up residence in the person. Paul prays here that Christ will permeate one’s whole being. It is the equivalent of the command in 5:18 to be continually filled with the Spirit.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18 Note that the Spirit can be called the Spirit of God or the Spirit of Christ (e.g., Rom. 8:9).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80.
바울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17절안에서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은 바울 서신에 오직 5번 등장한다. 이중 갈 4:19의 표현이 본문 17절과 가장 유사하다.
(갈 4:19, 개정)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We know Paul preferred to speak of our being in Christ rather than of Christ being in us. Ephesians 3:17 is one of only five Pauline texts that speak of Christ being in us (the others are Rom. 8:10; 2 Cor. 13:5; Gal. 2:20; 4:19).19 Of these Galatians 4:19 is closest to Ephesians 3:17: Like a woman in childbirth Paul endured labor pains until Christ was formed in them.
19 See comments above, pp. 56–57.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80.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는 표현은 식물학적인 건축학적인 이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골 2:7, 개정)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1:23, 개정)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뿌리가 얼마나 깊숙히 튼튼하게 박혀 있는지는 생물의 생존과 열매 맺는 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절대적인 요소이다. 뿐만 아니라 터가 굳게 세워지는 것은 건물의 안전에 있어서 절대적이다. 평상시에는 알지 못하지만 지진이나면, 혹은 비바람이 불면 알게 된다. 이렇게 신자들이 사랑안에 기초해있을때 그들은 그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된다. 이렇게 사랑을 알아감을 통해서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충만해진다. 따라서 사랑은 원천이자 목표이다. 사랑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그들은 사랑을 알게 되고 변화된다.
God’s love is the wellspring from which believers are nourished and the foundation on which they find stability. Being rooted and established in love enables them to perceive love, and from knowing love they are filled with the fullness of God. Love is both the source and the goal. When Christ permeates people, they know they are rooted in his love. From the experience of love they know love and are transformed.21
21 Note also Romans 5:5, where the Spirit pours the love of God into our hearts.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81.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광대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은 사랑으로 변화되고 하나님의 충만으로 확장시킨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충만함과 그분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한다. 이러한 충만을 경험함을 통해 그들은 스스로 그리스도로 충만해진다. 그리스도가 내안에 거주하시고 그분의 임재와 그분이 부으시는 사랑으로 충만해질 수로 우리를 그분을, 하나님을 닮게 된다.
(골 2:9-10, 개정)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9절에서 말하는 앎은 ‘기노스코’라는 단어로 지적인 앎뿐만 아니라 경험적인 앎을 의미한다.
20-21절) 송영
에베소서와 신약 전체를 통해 사용된 영광이라는 표현은 매우 환상적이다.
The doxology brings the first half of Ephesians to a close at the place it began in 1:3, in giving praise to God. Doxologies in the form “glory to God” are frequent in the New Testament, though most are much briefer.25 The use of “glory” in Ephesians and throughout the New Testament is fascinating. God is a God of glory (1:17; Acts 7:2), and his glory reveals who he is (John 1:14; Rom. 6:4; Heb. 1:3). God gives glory to Christ (John 17:22; Acts 3:13; 1 Cor. 2:8; 1 Peter 1:21) and people (Rom. 2:10; 8:30; 1 Cor. 2:7). Christians are transformed from glory to glory (2 Cor. 3:18). People are to do everything for God’s glory (1 Cor. 10:31) and are to give glory back to God (Eph. 1:6; Phil. 1:11). In the eschaton further glory will be revealed (Rom. 8:18). “Glory” is a word that virtually encompasses the whole of Christianity. Here the focus is on the praise and honor that should be given God for his saving work.
25 Romans 16:25–27 and Jude 24–25 also begin “To him who is able” and are similar in length. All three doxologies begin identically in Greek (for other doxologies, see Luke 2:14; Rom. 11:36; 16:27; Gal. 1:5; Phil. 4:20; 1 Tim. 1:17; 2 Tim. 4:18; Heb. 13:21; 1 Peter 4:11; 2 Peter 3:18; Rev. 1:6; 5:13; 7:12; cf. also Luke 17:18; John 9:24; Acts 12:23; Rom. 4:20; Rev. 16:9).
Klyne Snodgrass, Ephesia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6), 182.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간구나 생각을 뛰어넘는다. 20절에서 능히하실 이에게라는 표현은 ‘두나마이’이고 능력은 ‘두나미스’라는 단어이다. 이는 다이나마이트의 어원으로 능력, 가능성, 힘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이 송영은 이 서신서의 앞 절반을 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이 행하신 놀라운 일로 인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바울의 초점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행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능력이 이미 우리안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의 한계에 제한되지 않으신다.
(사 55:8-9, 개정)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성경묵상 > 에베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엡 4:4-6 하나됨의 고백 (0) | 2019.09.03 |
---|---|
엡 4:1-3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0) | 2019.08.30 |
엡 3:8-13 이 은혜를 주신 이유 (0) | 2019.08.28 |
엡 3:1-7 그리스도의 비밀 (0) | 2019.08.26 |
엡 2:19-22 하나님의 처소인 하나님의 백성들 (0) | 2019.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