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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erefore when we could bear it no longer, we were willing dto be left behind at Athens alone, 2 and we esent Timothy, four brother and God’s coworker1 in the gospel of Christ, to establish and exhort you in your faith, 3 that no one be moved by these afflictions. For you yourselves know that gwe are destined for this. 4 For when we were with you, we kept telling you beforehand that we were to suffer affliction, hjust as it has come to pass, and just as you know. 5 For this reason, iwhen I could bear it no longer, iI sent to learn about your faith, jfor fear that somehow kthe tempter had tempted you and lour labor would be in vain.
d Acts 17:15, 16
e See Phil. 2:19
f 2 Cor. 1:1; Col. 1:1; Philem. 1; Heb. 13:23
1 Some manuscripts servant
g See Acts 9:16; 14:22
h See ch. 2:14
i ver. 1, 2
i ver. 1, 2
j [1 Cor. 7:5; 2 Cor. 11:3]
k Matt. 4:3
l See Phil. 2:16
3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1절) 본문의 처음은 ‘이러므로’라는 단어 ‘디오’로 시작된다. 앞선 2장 17-20절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다시 방문하려고 시도했지만 사단의 방해로 무산되었으나 여전히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이제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본인이 다시 가기를 가지 원하지만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디모데를 파송하여 그들의 소식을 듣고 그들을 위로하기 원했다. 이 내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본절에 ‘우리’는 바울과 디모데, 실라(실루아노)를 말한다. 본 내용에 해당되는 행 17:15-18:5을 보면 베뢰아에서 아덴으로 온 사람은 바울 한 사람이고 거기에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렸으나 그들을 만났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른 후에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와 바울과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본절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아덴에서 데살로니가로 파송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사도행전의 기록이 선교 여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바울이 아덴에 있을 때에 실라와 디모데가 베뢰아에서부터 아덴으로 왔고 거기에서 바울과 실라는 디모데를 먼저 데살로니가로 보내고 이후에 실라는 빌립보로 보낸 이후 바울은 홀로 고린도로 떠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후 고린도에 있는 바울에게 실라와 디모데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 Although Acts reports Paul’s stay in Athens it is of no help since it does not indicate that Timothy or Silvanus (Silas) was ever in Athens with Paul. According to Acts 17:15 Paul went to Athens alone but sent word back to Timothy and Silvanus in Macedonia to join him there. Acts 18:5 suggests, however, that they only rejoined Paul after he had moved on to Corinth. Thus at this point the narrative of Acts exhibits either a lack of knowledge concerning the precise details of the missionaries’ movements in Greece or a tendency to condense the narrative, thereby sacrificing an exact account in the process. Clearly, 1 Thes. 3:1 must be taken as historically correct over against the Acts narrative at this point, though I favor the view that the plurals of 3:1–4 should be taken as epistolary rather than genuine and thus that Paul was left alone in Athens. Unfortunately information is not available to indicate the whereabouts of Silvanus if he was not with Paul. Perhaps he had remained at Beroea. This possibility would have some credibility if (1) Silvanus was sent with Paul to missionize among Jews as the representative of Jerusalem and (2) the Acts report is accurate in indicating a positive response to the mission work among the Jewish community at Beroea (Acts 17:10–11).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127.
바울과 일행은 자신들만 아덴에 머무는 것을 참지 못했다.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헤어져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는 상황에 대해서 견딜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더이상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본문에 '참지 못하여’라는 표현은 ‘메케티 스테곤테스’로 ‘우리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참다, 숨기다, 견디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스테고’는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불쾌감이나 어려움을 견디다 또한 물, 공기, 빛 아무것도 관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를 견디지 못하여 디모데를 보낸 것이다.
- An uncommon verb (also in v. 5) that refers to substances that do not allow themselves to be penetrated by water, air, light, fire, or anything else. Paul evokes an image in which he is so full of emotion for the Thessalonians that he can no longer stop his deep affection for them from leaking out. left by ourselves in Athens. Silas and Timothy rejoin Paul in Athens from Berea (Acts 17:15) but are sent back to Macedonia: Timothy to Thessalonica (vv. 1–5) and Silas perhaps to Philippi.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vv. verses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53.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에서 머물다라는 단어는 ‘카탈레이포’로 사람을 다른 곳으로 떠나 보내고 뒤에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본문에서는 수동태 부정사의 형태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바울이 자의가 아니라 어떤 외적 상황으로 인해서 어쩔수 없이 남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2:18)
2절)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 이 표현은 디모데를 얼마나 신뢰하는 지를 보여주는 대단한 표현이다. 이는 대단히 놀랍고 존귀한 칭호이다.(고전 3:9) 바울은 자신이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신뢰하는 디모데를 보내면서 혹시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디모데를 업신여길까봐 그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정서를 교정하기 위해서 디모데가 얼마나 탁월한 인물인지, 적임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디모데는 자신과 동행했던 영적 아들로 어린 사역자 였지만 이제 바울은 그를 자신의 동료로 인정하면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일꾼으로 번역된 ‘쉬네르곤’은 ‘~와 함께’라는 전치사 ‘쉰’과 ‘일’이라는 ‘에르곤’의 합성어로 ‘함께 일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라고 말할 때 디모데는 바울과 실라에게 있어서 동역자이며,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복음의 동역자라는 의미이다. NRSV는 이를 co-worker for God, ‘하나님을 위해 함께 일하는 자’로 번역하였다.
- co-worker in God’s service. A strikingly lofty title used to stress Timothy’s credentials; although Paul could not return to Thessalonica personally, he sent Timothy, who is no mere junior apostle but a co-worker of Paul and even of God. to strengthen … you in your faith. Paul sent Timothy back to Thessalonica specifically to strengthen their faith in the midst of opposition from their fellow citizens (cf. 2:14).
cf. compare, confer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2153.
한글 성경은 2절의 동사인 ‘에펨프사멘’을 ‘보내노니’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보내다라는 의미인 ‘펨포’의 부정과거형으로 우리가 보냈다라는 의미이다. 즉 데살로니가전서는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 다녀온 직후 바울이 고린도에서 쓴 편지이고 실제로 바울이 디모데를 보낸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아덴에 있을 때이므로 과거형이 쓰인 것이다.
2절 하반절과 3절 상반절은 디모데를 보낸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굳건하게 하고 믿음에 대하여 위로하는 것이었다. 또한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먼저 ‘굳건하게 하고’로 번역된 ‘스테릭사이’의 원형 ‘스테리조’는 건축을 할 때 버팀목과 지주로 건물을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이처럼 신약 성경에서는 거의 상징적 의미로 사람의 마음과 신앙을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히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눅 22:32, 롬 1:11, 살후 3:3, 약 5:8)
두번째 목적은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이다. 위로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된 ‘파라칼레오’는 ‘옆으로’라는 의미의 ‘파라’와 ‘부르다’라는 동사 ‘칼레오’의 합성어로 ‘옆으로 부르다’라는 문자적 의미인대 대부분 가까이 불러 말로써 격려함으로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 On his previous visit, Timothy’s role had been to confirm (στηρίξαι) the Thessalonians in their new convictions (cf. the use of στηρίξαι in Rom. 16:25) and to encourage (παρακαλέσαι) them for the benefit (ὑπέρ) of their faith, so that their faith might increase. Paul was particularly concerned that this pastoral function should take place, given the pressures that the Thessalonians had been put under by their fellow citizens after their conversion. Quite apart from the external pressure mentioned in v. 3, however, Paul was aware of the pressing need to continue the process of resocialization to the new Christian way of life and to further inculcate the new beliefs and values the Thessalonians had received when they accepted the gospel of Christ. Failure to do so could result in his work among them being in vain (see 2:18). If in fact Timothy was to return to the Thessalonians yet again, this would undoubtedly be his continuing task.
2 Thes. 2:17, in which both παρακαλέσαι and στηρίξαι occur, indicates that when 2 Thessalonians was written Paul was concerned that the Thessalonians receive consolation or encouragement and that their Christian way of life become established. Since Paul’s prayer request for the Thessalonians in 2 Thes. 2:17 corresponds to the role Timothy was assigned when he returned to the church on Paul’s behalf as indicated in v. 3, this lends support to the view that Timothy carried our 2 Thessalonians with him on that occasion (see pp. 37–46 above on the sequence of the letters).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128–129.
3절) 세번째 목적은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었다. 본문에서 언급된 ‘이 여러 환난’은 앞서 1:6과 2:14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동족들로부터 받은 많은 핍박을 가리킨다. 이러한 핍박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나라를 들어가려면 반드시 겪어야할 필연적 과정이다.(행 14:22) 본문에 ‘흔들리다’라는 의미의 동사는 ‘사이노’라는 동사로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을 묘사하는 것으로 아첨하고 알랑거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교도들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핍박할 때 성도들에게 동요가 있었고 그 기회를 틈타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이 아첨하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돌고 그들을 꾀어서 복음을 버리고 유대교를 받아들이도록 유혹했을 때 이에 흔들리지 않도록 디모데를 보낸 것이다.
- Timothy’s work of confirming and encouraging the Thessalonians in their new faith had an important purpose, namely, helping them to face and endure the oppression that they experienced as a result of their conversion to the Christian faith. In his concern that not one of his converts be lost Paul had sent Timothy back to Thessalonica. This point is made by the infinitive clause in v. 3a, which is final in character.
The meaning of σαίνεσθαι (“to disturb”), however, is somewhat problematic. The verb occurs only here in the Greek Bible. The term originally was used of the wagging of a dog’s tail and then metaphorically of fawning or cringing by humans. Earlier commentators took the passive form of the verb to mean “be beguiled” in this passage (e.g., Frame, 128). In contrast to this interpretation, all of the ancient versions as well as the Greek interpreters of the passage without exception understood the verb to mean “move, disturb, or agitate” (BAGD, 740; F. Lang, TDNT VII, 55f.). This meaning fits well with the context and lexicographers have been able to adduce several other instances where σαίνειν seems to have this sense (see Lang; Bammel, “Preparation”). In one, taken from a papyrus text that reports a discussion between Origen and Bishop Heraclides, Origen states, “τὰ μὲν περὶ πίστεως ὅσα ἔσηνεν ἡμᾶς συνεξετάσθη” (“all questions of faith that unsettled us have been tested”; the text is quoted by Bruce, 62). In another instance it is reported of a crowd after Pythagoras’s reputed account of his journey to Hades that οἱ σαινόμενοι τοῖς λεγομένοις ἐδάκρυον (“those who were agitated cried at the things that were being spoken”; Diog. Laert. 8, 41, quoted by BAGD, 740).
Using this last text as a point of departure Bammel (“Preparation,” 91–100) argues that σαίνεσθαι is the reaction of people faced with an extreme situation. He then proceeds to argue that one finds a striking similarity between στηρίξαι, σαίνεσθαι, and θλῖψις in 1 Thes. 3:2f. and the language employed in Jewish apocalyptic texts for extreme situations and experiences. From this he deduces that σαίνεσθαι in 3:3 has its place in the eschatological perspective of the whole letter and that Paul was worried about the possibility that the Thessalonians would be disturbed in the eschatological situation of tribulation preceding the return of Christ. According to Bammel, Paul sought to establish (στηρίξαι) his converts as a precaution against the possibility of any of them being disturbed by the tribulations of the end—the so-called “messianic woes” of Jewish apocalyptic writings. Bammel’s thesis merits consideration. It highlights the eschatological character of the situation as perceived by Paul and makes clear that the Thessalonians’ sufferings were part of the necessary experience of the Christian before the coming of Christ.
BAGD Walter Bauer, William F. Arndt, F. Wilbur Gingrich, and Frederick Dank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2 1979.
TDNT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ed. Gerhard Kittel and Gerhard Friedrich; tr. Geoffrey W. Bromiley. Ten volumes; Grand Rapids: Eerdmans, 1964–76.
Diog. Laert. Diogenes Laertius
BAGD Walter Bauer, William F. Arndt, F. Wilbur Gingrich, and Frederick Dank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2 1979.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129–130.
이어 ‘세움을 받다’는 ‘케이마이’로 ‘놓여있다, 정해져 있다’라는 의미로 운명으로 정해진이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 ‘알리라’는 표현도 한글은 미래형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현재완료 시제로 ‘너희 자신이 이미 친히 알고 있다’라는 의미이다. 환난중에 흔들리지 않는 이 일을 위해서 세움을 받은 것임을 이미 알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의 묵시 사상에서 의인은 새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고난을 겪게 될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믿는자들에게 고난의 고통은 신적 선택과 임박한 구속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다.
- Therefore suffering of affliction is actually a proof of divine election and of the imminence of redemption for the people of God. This idea was taken over from Jewish apocalyptic thought, where it was maintained that the righteous were destined to undergo affliction or tribulation before the emergence of the new age (see Dn. 12:1; Jub. 23:13f.; 2 Bar. 70:2–10; 2 Esdr. 5:1–12; 13:30f.; 14:16f.), and it became part of the earliest Christian tradition, as Mk. 13:7f. shows. In the context of 1 Thessalonians Paul’s reminder serves the parenetic function of encouraging the recipients of the letter to persevere in their new Christian way of life.
Jub. Jubilees
2 Bar. Syriac Apocalypse of Baruch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130.
4절) 바울은 과거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함께 있었던(3주간의 안식일 강론) 기억을 상기시키면서 자신이 강조했던 가르침, 미리 가르쳤던 내용인 ‘장차 받을 환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미리 말하였다’라는 표현인 ‘프로엘레고멘’은 ‘프롤레고’의 미완료 과거 시제로 장차 받을 환난에 대해 몇번이고 거듭 말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환난이 있을 것을 확신했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 Paul reminds the Thessalonians that while he was still with them (ὅτε πρὸς ὑμᾶς ἦμεν) he forewarned them about the inevitability of their suffering as Christians. The imperfect verb προελέγομεν indicates that Paul had told them about the ineluctability of their suffering on a number of occasions, and thus the verb should be translated “we used to tell you beforehand.” The choice of the words μέλλομεν θλίβεσθαι is significant. The verb μέλλειν with the present infinitive is frequently used in the NT to indicate an event or action resulting from a divine decree (BAGD, 501; for other examples of this usage in Paul see Rom. 4:24; 8:13). In other words, μέλλομεν θλίβεσθαι reiterates what was said in the previous verse with κείμεθα, and refers to the eschatological suffering preceding the end of the present age.
BAGD Walter Bauer, William F. Arndt, F. Wilbur Gingrich, and Frederick Dank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2 1979.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130–131.
5절) 바울은 1, 2절에서 언급했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고 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난을 당한 것으로 인하여 그들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 디모데를 보냈음을 말하고 있다. 본절은 디모데를 보낸 또다른 네번째 목적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은 환난 중에 교인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소식 듣기를 간절히 바랬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보낸 것이다.
본문의 '시험하는 자’는 ‘페이라조’라는 단어로 사단을 지칭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는 마 4:3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존재였다. 사단은 동족 핍박자들이 핍박할 때 주변에 있던 유대인들을 통해서 간교와 아첨하는 말로 핍박받게 만드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에서 떠나라고 부추겼을 것이다.(3절) 고전 7:5에 따르면 사탄은 그리스도인을 시험하는 자로 앞선 2:18절에서는 바울의 걸음을 막기도 했다. 본문에서 ‘시험하여’라는 표현은 ‘에페이라센’으로 ‘페이라조’ 부정과거 능동태 형태로 과거에 단회적으로 발생한 역사적 사실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는 실제로 과거에 데살로나가 교인들을 시험하는 일이 있었고 이에 대한 결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이에 흔들려서 넘어가 버린다면 바울이 복음을 전한 수고가 헛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즉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알기 위하여 디모데를 보낸것이다.
‘헛되게’라는 말 ‘케논’은 아무런 열매도 거두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그 열매를 기다리는 이에게 시험하는 자의 유혹을 통해서 아무런 열매를 거둘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지금 바울은 그런 안타까움과 초조함속에서 디모데를 보낸 것이다.
- μὴ πως, also written as one word, μήπως, is dependent on the verb ἔπεμψα and expresses the genuine mood of apprehension felt by Paul when he sent Timothy back to Thessalonica (see BDF §370.2). As was suggested in the Introduction, this may to some degree explain the character of 2 Thessalonians if it is the letter Paul sent in his anxiety. His concern was that “the tempter might have tempted” the Thessalonian Christians,” so that his and his coworkers’ work would be “in vain” (ἐπείρασεν ὑμᾶς ὁ πειράζων καὶ εἰς κενὸν γένηται ὁ κόπος ἡμῶν). That is, in the difficult situation the Thessalonians had faced without their spiritual mentors, they might have renounced their Christian beliefs and way of life. According to 1 Cor. 7:5 Satan is the one who tempts Christians, and this is who Paul has in mind here as well (cf. 2:18). The aorist ἐπείρασεν is written from the perspective of Paul before Timothy went back to Thessalonica. His apprehension had been that his readers might already have succumbed to Satan’s testing of them before Timothy was able to return to strengthen and encourage them. If this had happened, then the missionaries’ hard labors among the Thessalonians (cf. 2:9) would have proved useless or to no purpose (εἰς κενόν).
The imagery of Satan as the tempter of Christians was derived from Paul’s apocalyptic framework in which Satan was viewed as the archadversary of God (see Beker, Paul the Apostle, 188 and the comments above on 2:18). Paul went so far as to call him “the god of this age” who “has blinded the minds of unbelievers” in order to prevent them from accepting the gospel of Christ (2 Cor. 4:4; cf. 2 Thes. 2:9–12). Within his apocalyptic understanding of the two ages, Paul saw Satan as the one who has “usurped God’s authority” to become the ruler of the present age but who will be overthrown when God establishes his dominion in the age to come (Barrett, Second Corinthians, 130).
It is no wonder then that Paul also portrayed Satan as seeking to destroy the fruits of the Christian mission (cf. 1 Cor. 7:5; 2 Cor. 2:10f.; 11:13–15; 1 Thes. 2:18). In the context of 1 Thes. 3:5, Paul implicitly demonizes those who afflict the Thessalonians because they are by implication the agents of Satan’s temptation. This certainly must have had the effect of heightening the separation between the new and struggling Christian community at Thessalonica and the social world from which its members had removed themselves. This in turn fits in with his parenetic intention throughout the letter because it strengthens the identity of his readers as Christians.
BDF F. Blass and A. Debrunner, A Greek Grammar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r. and rev. Robert W. Funk.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1961.
Charles A. Wanamaker, The Epistles to the Thessalon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B. Eerdmans, 1990),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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