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God dremembered Noah and all the beasts and all the livestock that were with him in the ark. And eGod made a wind blow over the earth, and the waters subsided. 2 fThe fountains of the deep and fthe windows of the heavens were closed, the rain from the heavens was restrained, 3 and the waters receded from the earth continually. At the end gof 150 days the waters had abated, 4 and in the seventh month, on the seventeenth day of the month, the ark came to rest on the mountains of hArarat. 5 And the waters continued to abate until the tenth month; in the tenth month, on the first day of the month, the tops of the mountains were seen.
d ch. 19:29; 30:22; Ex. 2:24; 1 Sam. 1:19
e Ex. 14:21
f ch. 7:11
f ch. 7:11
g ch. 7:24
h 2 Kgs. 19:37; Isa. 37:38; Jer. 51:27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Ge 8:1–5.
1절) 하나님께서 노아와 방주 안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셨다. 이 홍수 사건의 반전은 바로 이 하나님의 기억하심에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혹은 당신이 누군가와 맺은 언약을 기억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행복, 복지를 위하여 행동하기 시작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멈추시고 남은 자들을 위하여 시작하신 행동은 바로 바람을 땅위에 불게하심으로 물이 줄어들게 하신 것이었다.
(창 9:15, 개정)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창 19:29, 개정)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창 30:22, 개정)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출 2:24, 개정)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출 32:13, 개정)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시 25:6-7, 개정)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시 74:2, 개정)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계 16:19, 개정)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삼상 1:19-20, 개정)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 - 창세기 6:9–9:19 내용에 따른 홍수 기사 분해
A. Transitional introduction (6:9–10)
B. Violence in creation (6:11–12)
C. First divine speech: resolve to destroy (6:13–22)
D. Second divine speech: “enter ark” (7:1–10)
E. Beginning of flood (7:11–16)
F. The rising flood (7:17–24)
G. God remembers Noah (8:1)
F’ The receding flood (8:1–5)
E’ Drying of the earth (8:6–14)
D’ Third divine speech: “leave ark” (8:15–19)
C’ God’s resolve to preserve order (8:20–22)
B’ Fourth divine speech: covenant (9:1–17)〈–〉 6:18
A’ Transitional conclusion (9:18–19)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홍수 기사의 정점은 8:1이다. 8:1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탄 모든 짐승들을 기억하였다. ‘자칼’(זָכַר, 기억하다)은 잊고 있던 것을 갑자기 생각해 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칼’은 종종 하나님이 자신이 한 언약과 약속에 신실함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다. 출애굽기 6:4에서 하나님은 이집트 땅에서 노예 생활하며 고통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였다고 한다.4) 이 말씀과 함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는 은총을 베풀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8:1의 ‘자칼’은 하나님이 창세기 6:18–20에서 한 약속을 신실하게 실천하는 것을 나타낸다.5)
4) 창세기19:29에서하나님은아브라함을기억하고롯을소돔과고모라의멸망으로부터구해주며, 창세기30:22에서는라헬을기억하고요셉을잉태하게해준다.
5) Victor P. Hamilton, Genesis 1–17, 299. Kenneth A. Mathews, Genesis 1–11:26, 382–383.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269–270.
기억하다, 권념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자칼’이다. 특히 기억하는 주체가 누구이냐가 중요한데 하나님이 이 기억하심의 주체가 되었을때 심판과 은혜가 베출어지는 단초가 되어진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혹은 우리가 그 기억의 주체가 될때 무엇을 기억하느냐가 중요한데 이 기억함이 바로 우리의 예배의 본질이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신다.
“기억하라 예수의 산같은 믿음을”
6. Remembering God is often a dynamic phenomenon that leads to the situation of the believer or the believing community being transformed, especially in the Psalms. Recalling God’s past saving work becomes a bridge from a grim present to a blessed future. In Ps 77:11 [12] his saving activity at the Exodus is seen to be relevant to Israel’s disastrous situation and an implicit promise that the God who saved them will save again. In 143:5 the recollection of God’s past salvation changes despair into hope and prayer. Jonah, at death’s door, remembered God and turned to him in a prayer for rescue (Jon 2:7 [8]). In Ps 78:35 seeking God in repentance is triggered by memories of God as Savior. Similarly, in Isa 63:11, after sinning and being punished, Israel is represented as recalling the Exodus and turning back to God, while in Zech 10:9 those of Israel still in exile were to remember God and turn to him again in faith, as a prelude to their return to the land. Many of these examples focus on the Exodus not simply as an event in history but as a window through which to glimpse God’s redemptive will for his people and individual believers in every generation. To this end the Exodus was to be personally remembered in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Exod 13:3; Deut 16:3).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1102–1103.
그렇다면 바람을 땅위에 불게 하신것은 어떤 의미인가? 물을 물러가게 하거나 증발시키기 위해서 바람을 불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이 본문을 읽으면서 창 1:2을 떠올리게 된다.
(창 1:2, 개정)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본문에 부는 바람과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영은 모두 ‘루아흐’라는 히브리어의 번역이다. 땅이 혼돈한 상황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수면위에 운행하심으로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난것처럼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하시자 물에 잠겨버려 혼돈가운데 있던 지구에 물이 줄어들어 산봉우리가 드러나게 되었다.
- 놀랍게도 하나님은 땅에 ‘루아흐’(רוּחַ)를 보내는데, 이는 영 또는 바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길가메쉬와 아트라하시스에서도 남풍이 등장한다. 남풍이 강렬하게 불자 산들이 물에 잠기게 되고 폭풍이 몰아친다. 제7일에 남풍이 수그러들자, 바다는 잠잠해 지고 홍수는 멈추게 된다.6)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홍수에서 바람은 자연 현상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루아흐’는 단순한 바람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을까? 하나님이 보낸 바람을 일반적인 자연 현상으로 이해한다면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 바람 때문에 폭풍이 일어나고 지구를 덮고 있는 물은 광란의 춤을 추어야 한다.7) 그러나 하나님이 보낸 ‘루아흐’는 메소포타미아 홍수 설화에 있는 그런 자연 현상을 일으키지 않고, 물이 감소하게 만들었다. 이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사칵’(שָׁכַךְ)은 ‘줄어들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잠잠해지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물이 감소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이 방주에 있는 피조물들에게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리라고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억함과 물의 감소는 노아의 방주를 아라랏 산에 도착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렇듯 창세기 8:1의 하나님의 기억함과 하나님의 바람 또는 신은 파멸과 재앙의 수단이 아닌 살아남은 피조물의 회복의 출발점이며,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낸다.
흥미롭게도 창세기 8:1은 창세기 1:2의 지구의 상태를 연상시킨다. 창세기 1:2에서 지구가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음이 그 위에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신(루아흐, רוּחַ)이 수면 위에 운행하였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8:1의 지구는 대홍수로 인하여 혼돈한 상태이며 방주를 제외하고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한 상태이며, 그리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물이 지구를 뒤덮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이 ‘루아흐’(רוּחַ)를 보낸다. 창세기 1장의 둘째 날 창조에서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고 있던 물이 한 곳에 모여 뭍이 드러났던 것처럼, 창세기 8:1에서는 하나님이 루아흐를 보내자 물이 감소하여 산봉우리들이 드러나게 만든다. 이러듯, 창세기 8:1의 ‘루아흐’는 하나님의 신 또는 성령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창세기 1:2의 하나님의 신처럼 새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능력의 표출임에는 틀림이 없다.8)
6) ANET, 94.
7) 수메르 홍수 설화에서 영웅 지우수드라가 탄 배는 폭풍에 의해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고 있다(ANET 44).
8) Kenneth A. Mathews, Genesis 1–11:26, 384.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270–271.
2-5절)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서 150일 후에 줄어들었다. 일곱째달 17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고 이후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 열렸던 것(7:11)들이 닫힘으로 홍수가 마쳐지고 있다.
- ‘닫다’의 히브리어 ‘와이사케루’(וַיִּסָּֽכְרוּ)는 동사 ‘사칼’(סָכַר)의 닢알 수동형이다. 창세기 7:11에서 깊음의 샘이 터지고(닙케우, נִבְקְעוּ֙)하늘의 창이 열리는(닢타후, נִפְתָּֽחוּ)것을 묘사하는 동사들도 닢알 수동형으로 사용되었다. 홍수의 시작과 종료에서 모두 수동형 동사를 사용하여, 홍수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9) 창세기 8:3은 창세기 7:24를 이어가고 있다. 물이 150일 동안 땅에 창일한 후 마침내 물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9) Victor P. Hamilton, Genesis 1–17, 300.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271–272.
- 창세기 8:4은 물이 감소하기 시작하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방주가 아라랏 산에 도착한 7월 17일은 홍수가 시작되었던 2월 17일(창 7:11)로부터 정확하게 5개월 후의 일이다. 아라랏 산은 고대 앗시리아 문헌에서 우라르투(Urartu=Ararat)로 기록되어 있다.10)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는 우트나피스팀이 인류의 멸망을 슬퍼하는 동안 갈대배가 니느웨에 있는 니무쉬 산에 도착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라르투 산은 터키와 러시아 이란 3개국의 접경에 위치해 있는 빅 아리 다(Byk Ari Da) 산으로 본다. 이 산은 높이가 약 5,185m이며,11)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의 발원지에 인접해 있다.12) 하지만 이 산을 아라랏 산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성경은 방주가 도착한 곳을 아라랏의 산들(하레 아라랏, הָרֵ֥י אֲרָרָֽט)이라고 한다. 성경은 방주가 도착한 곳을 아라랏 지역에 있는 산들이라고 아주 포괄적인 지역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13)
‘안착하다’의 히브리어 ‘와타나흐’(וַתָּ֤נַח)는 동사 ‘누아흐’의 칼 능동형이며, 안식일 규정에서 ‘쉬다’의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창세기 8:4에서는 방주가 홍수의 격랑으로부터 아라랏 산에 안전하게 정박하였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안식을 염두에 둔 듯하다. 그 이유는 방주가 아라랏 산에 도착한 600년 7월 17일은 쥬빌리 달력에 따르면 금요일이다.14) 금요일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는 것을 고려할 때 동사 누아흐의 사용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동사 누아흐(נוּחַ)는 노아(נֹח)의 이름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10) Kenneth A. Mathews, Genesis 1–11:26, 385–386.
11) 아라랏 산은 열왕기하 19:37, 이사야 37:38, 예레미야 51:27에서도 언급되며, 토비야 1:21도열왕기하19:37처럼산헤립의자식들이아버지를살해한후도망간장소로언급되고있다.
12) Sarna, Genesis, 57.
13) Jubilees 5:27은 방주가 도착한 산을 아라랏의 산들 중에 하나인 루발 산 꼭대기에 도착했다고한다.
14) 쥬빌리 카렌다는 안식일을 고정시키기 위해 일년을 7×52로 계산하여 일년을 52주 364일로 만든달력이다. 쥬빌리달력은매7년마다추가로한주를더하여그레고리안달력의365을기준으로 볼 때 부족한 하루를 7년마다 해소시켰다. S. Najm and Ph. Guillanume, “Jubilee Calendar Rescued from the Flood Narrative,” Journal of Hebrew Scriptures 5–1 (2004): 1–11. Gordon J. Wenham, Genesis 1–15, 184.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272–273.
하나님의 기억하심으로 이제 반전이 시작되었다. 150일동안 홍수는 이제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2월 17일 시작된 홍수는 7월 17일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무른 것을 기점으로 150일동안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홍수가 줄어드는데 있어서 인간일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물을 물러가게 하셨고 인간을 이를 기억하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 다른 홍수의 설화와는 달리 창세기의 기록에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대상은 노아(인가)만이 아니라 모든 들짐승과 가축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자연은 총체적인 타락을 경험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총체적인 구원을 이루어내고 계신 것이다. 홍수를 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홍수를 물러가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우리들이 바랄 것은 바로 하나님의 기억하심속에 붙들리는 것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바랄때, 온전히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님으로 인해서 기뻐할 때 하나님을 우리를 기억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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