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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Shepherd your people dwith your staff,

the flock of your inheritance,

who dwell alone in a forest

ein the midst of fa garden land;4

let them graze in Bashan and Gilead

as in the days of old.

15  gAs in the days when you came out of the land of Egypt,

I will show them5 marvelous things.

16  hThe nations shall see and be ashamed of all their might;

ithey shall lay their hands on their mouths;

their ears shall be deaf;

17  jthey shall lick the dust like a serpent,

like the crawling things of the earth;

kthey shall come trembling out of their strongholds;

lthey shall turn in dread to the Lord our God,

and they shall be in fear of you.

God’s Steadfast Love and Compassion

18  mWho is a God like you, npardoning iniquity

and passing over transgression

nfor the remnant of his inheritance?

oHe does not retain his anger forever,

because he delights in steadfast love.

19  He will pagain have compassion on us;

qhe will tread our iniquities underfoot.

rYou will cast all our6 sins

into the depths of the sea.

20  sYou will show faithfulness to Jacob

and steadfast love to Abraham,

tas you have sworn to our fathers

from the days of old.

c Ps. 28:9; [ch. 5:4]

d Ps. 23:4

e Jer. 50:19; [Zech. 10:10]

f See Josh. 19:26

4 Hebrew of Carmel

g Ps. 78:12; See Isa. 11:16

5 Hebrew him

h [Isa. 26:11; 52:15]

i See Judg. 18:19

j Ps. 72:9; Isa. 49:23

k Ps. 18:45

l [ch. 4:1]

m See Ex. 15:11

n Jer. 50:20; See Ex. 34:7

n Jer. 50:20; See Ex. 34:7

o Ps. 103:9

p Ps. 80:14

q [Rom. 6:14]

r [Isa. 38:17]

6 Hebrew their

s [Luke 1:72, 73]

t Ps. 105:9, 10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7:14–20.

 

14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15 이르시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이적을 보이리라 하셨느니라

16 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며

17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20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7:14–20.

 

 

14절) 미가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떼를 먹여달라고,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던 것 같이 먹여달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설정하며 당신이 우리들의 목자가 되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 지팡이, 주의 백성, 주의 기업의 양 떼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한다.(시 23:1; 80:1; 74:1; 28:9, 요 15장) 미가서에서도 목자 이미지가 반복되어 사용된다.(2:12, 4:6-8, 5:4) 이처럼 목자 왕은 미가서에서 구원과 소망을 표현하는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악한 지도자를 나쁜 목자로, 오실 메시아를 선한 목자로 비유한다.(겔 34장, 요 15장) 

본문에서 당신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을 치라는 것은 그것으로 때리라는 말이 아니라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라는 말이다. 왕과 백성의 관계에서 통치자의 지팡이가 목자들의 지팡이로 대체되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바산과 길르앗’은 어떤 의미인가? 바산은 갈릴리 호수 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큰 나무(사 2;13; 슥 11:2), 풀이 풍부하여 먹음직스러운 가축(신 32:14; 시 22:12; 겔 39:18; 암 4:1)으로 유명했다. 길르앗은 얍복 강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짐승들을 먹이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민 32:1; 26) 모세는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었다.(민 21:33; 수 13:29-31) 이스라엘은 예후 시대 때 이 땅을 시리아에게 빼앗겼다가(왕하 10:33) 여로보암 2세때 되찾았다.(왕하 14:25) 그러나 선지자 미가 시대 때 다시 앗시리아에게 빼앗겼다.(왕하 15:29) 디글랏블레셀이 주전 734년에 이 지역을 차지한 것이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이 땅을 소유할 날을 기도한다. 

 

Then Micah/Zion prays that their Shepherd will once again let them feed (=will provide their “daily bread,” so to speak) in Bashan and Gilead. King comments on these two regions:

Gilead, a highland region in Transjordan, is bounded on the north by the Yarmuk River and on the south by the city of Heshbon. The land of Gilead has always been famous for its fertile land; for that reason Micah was able to say, “Let them feed in Bashan [a fertile plateau adjacent to Gilead] and Gilead as in the days of old” (Micah 7:14). The King’s Highway (“the royal way”), the well-known international caravan roadway in Transjordan extending from Damascus to the Gulf of Aqaba, passed through Gilead. Control over Gilead alternated between Israel and Aram, until it was taken by Tiglath-pileser III in 734 b.c.e.69

So this may also have been a prayer for the return of that rich and fertile land to the people of Zion (see Zech 10:10). “As in days long ago” could refer to the time of Moses and Joshua, under whom those regions were first occupied by the Israelites, or to the kingdoms of David and Solomon, when those areas were securely in their possession (cf. 4:8 and comments).

69 King, Amos, Hosea, Micah, 50.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31.

 

15절) 미가가 하나님께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실 것을 간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이적을 네게 보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시면서 베푸셨던 놀라운 은혜를 이스라엘에게 베푸셔서 그들로 보게 하시겠다라는 것이다. 미가는 이런 날이 오기를 소망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경험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순간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생명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것이다. 

 

7:15 Micah now quotes the Lord’s answer to the prayer of v. 14. God responds with “exodus theology” (see comments on 6:4). He refers to the time when his people came out of Egypt, and he showed them his “wonders” (=supernatural occurrences; see Ps 114 for the highlights of those miraculous wonders). His future mighty saving acts for them in a kind of new exodus and restoration will include numerous similar displays of his redemptive grace and power in their behalf. “You” and “them” are both collective masculine singular pronouns in the Hebrew text, referring to God’s people as a corporate solidarity (see comments on 6:6–7).70

70 For the change from second person (“you”) to third person (“them”) see comments on 6:16.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31–132.

 

16-17절)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이적을 보이실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선지자는 이를 여러나라가 보고 부끄러워하고 손으로 그 입을 막고 귀가 막힐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할 때 이를 주변에서 지켜본 이들은 두려워하였다. 그 놀라운 이적을 보며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했고 뱀과 벌레처럼 티끌을 핥고 떨었다. 고개를 뻣뻣하게 들며 하나님께 대적하며 교만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바닥에 납짝 엎드려 벌벌 떨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두려움 이후의 반응이다. 이것이 단지 구원과 관계 없는 공포가 될 것인지 아니면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구원으로 연결될지는 그들의 이후의 판단과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입성하는 도중에도 그들을 대적하여 진멸을 당한 나라들이 있었지만 일부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나아와 구원을 받은 이들이 있다. 

 

18-20절) 선지자는 먼저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라고 질문한다. 이 질문은 그러한 신은 없다라는 대답을 강조하기 위한 질문이다. 주님은 죄악과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며 진노를 오래 품지 않으신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옛적에 조상들에게 맹세하신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고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는 분이시다. 

 

미가는 이 세상에 여호와 같은 분이 없다는 것을 증언하며 하나님의 성품 몇 가지를 노래한다. 

첫째, 여호와는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자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죄가 하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어떤 죄라도 용서하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18-19절에서 세 개의 다른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하여 죄를 논한다. 죄, 죄악, 허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확실히 용서하신다는 의미에서 용서와 연관된 동사 네 개를 사용한다 ‘들다’, ‘지나가다’,  ‘복종시키다’, ‘던지다'. 미가서 7:18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들이 이사야서 53장의 수난 받는 종에게 적용되었다-들다(12절), 죄(6, 11 절), 죄악(8, 12절)-모두 다 하나님의 즐거움이(10절)(Waltke).

둘째, 하나님의 진노는 잠시이다. 인간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분노하신다. 그러나 그의 분노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의 진노가 오래가면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는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은 심판 다옴에 사랑을 베풀기를 즐거워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과 결코 뗄 수 없는 언약 관계로 맺어 있으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인애 베푸시기를 즐겨 하시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용서받은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이 동사에서 아이가 자라는 ‘자궁’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하나님께서 어미가 자궁에 있는 아이를 소중히 돌보는 것처럼 주의 백성을 소중히 돌보신다는 뜻이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용서한 죄는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죄를 발로 밟아서 바다 밑 갚은 곳으로 던지신다고 한다. ‘밟다’의 문자적 의미는 ‘복종시키다/정복하다’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 승리를 상징하기 위하여 패배한 왕의 목을 밟듯이,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의 목’을 밟으시고 그들을 자유케 하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용서한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신다. 더 이상 이 죄를 문제 삼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이 죄에 의하여 주의 백성이 계속 지배되거나 영향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른 선지자들은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 “어두운 곳에 던지신다” 등으로 같은 개념을 표현한다(렘 31:34; 50:20; 38:19; 43:25; 44:22) .

선지자가 확선을 가지고 매우 파격적인 은혜를 기대하며 노래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러한 기대가 결코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고 간증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오셨기 때문이다(20절). 이스라엘이 하나의 국가로 탄생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틀의 선조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꾸준히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은혜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의 백성들에게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추억 속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근거해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위의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여호와는 용서히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18절); (2)그는 구원의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다(19절); (3)그는 영원히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20절). 이러한 것들은 결코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의 트레이드마크이다. 그러나 그분의 가장 위대한 상표는 구속히는 주로서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점이다. 즉, 하나님의 비교할수 없는 성품( incomparability)과 인류 역사에 구세주로 개입하시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분노하신 하나님의 임째로 시작한 책이 그분의 은혜에 대한 찬양으로 끝을 맺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며 감격적이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한 것은 물론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다.(엑스포지멘터리 263)

 

20절에서 성실은 ‘에메트’, 인애는 ‘헤세드’이다.(요 1:17) 

본문은 헤세드가 하나님의 영속적이고 확실한 언약적 사랑의 중요한 표현이다. 결국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를 하나님의 언약으로부터 나오는데 그 언약의 핵심이 바로 에메트와 헤세드이다.  

7:20 Much of the theology dealing with the Lord’s attributes and actions in vv. 18–20 is ultimately derived from the great confession of faith (as part of a covenant renewal ceremony) in Exod 34:6–7. The Hebrew words for “true” (ʾĕmet) and “mercy” (ḥesed) are sometimes rendered “truth” or “faithfulness” and “grace” respectively, reminding the reader of John 1:17: “For the law was given through Moses; grace and truth came through Jesus Christ.” Of “mercy” Snaith has said, “This is typical of a large number of cases where the word [ḥesed] is used of [God’s] persistent, sure covenant-love for Israel all through the years.”85 Hillers adds, “The terms in parallel in v. 20 (‘loyalty’ [ʾĕmet] and ‘love’ [ḥesed]), with the following reference to God’s oath, must be understood specifically as the loyalty and fidelity to be displayed to a covenant partner.”86 All this is in keeping with promises the covenant Lord swore on oath to the fathers of Israel “in days long ago” (see comments on 5:2). God had sworn to Abraham (Gen 22:17) and Jacob (Gen 28:14) that their descendants would be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the dust of the earth, and the sand on the seashore; and he had promised Abraham that he would be the father of many nations (Gen 17:5; cf. Luke 1:54–55). All believers are ultimately included in this promise (Rom 4; Gal 3:6–29; Heb 11:12).

85 Snaith, The Distinctive Ideas of the Old Testament, 104.

86 Hillers, Micah, 91.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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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Rejoice not over me, O mmy enemy;

nwhen I fall, I shall rise;

owhen I sit in darkness,

the Lord will be a light to me.

pI will bear the indignation of the Lord

because I have sinned against him,

until qhe pleads my cause

and executes judgment for me.

rHe will bring me out to the light;

I shall look upon his vindication.

10  Then smy enemy will see,

and shame will cover her who tsaid to me,

“Where is the Lord your God?”

uMy eyes will look upon her;

now she will be trampled down

vlike the mire of the streets.

11  wA day for the building of your walls!

In that day the boundary shall be far extended.

12  In that day they2 will come to you,

yfrom Assyria and the cities of Egypt,

and from Egypt to zthe River,3

afrom sea to sea and from mountain to mountain.

13  But bthe earth will be desolate

because of its inhabitants,

for the fruit of their deeds.

l [Jer. 50:11; Lam. 4:21]

m ver. 10

n Ps. 37:24

o Ps. 112:4

p [Jer. 10:19]

q See 1 Sam. 24:15

r Ps. 37:6

s ver. 8

t See Joel 2:17

u ch. 4:11

v Ps. 18:42; See 2 Sam. 22:43

w [Ps. 102:13]

2 Hebrew he

y [Isa. 11:11, 16; 19:23, 24; 27:13; Hos. 11:11; Zech. 10:10]

z See Gen. 31:21

3 That is, the Euphrates

a Zech. 9:10

b ch. 6:13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7:8–13.

 

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9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10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1)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11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13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1) 히, 여자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7:8–13.

 

 

앞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는데 지금 본문의 화자는 아마도 의인화된 성읍으로 보인다. 

 

8-9절) 시온은 대적들을 향해서 자신의 무너짐으로 인해서 기뻐하지 말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고 어두운 데에 앉을 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함으로 인해서 그분이 진노를 발하시고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 결국에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셔서 광명, 빛에 이르게 하실 것이고 내가 그의 공의(미슈파트)를 보게 될 것이다. 

 

선지자는 분명하게 이스라엘이 부패로 인해서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일어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빛이 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반드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서 심판하신다. 하지만 때가 되면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변론하시고 인도하심으로 빛에 이르게 하셔서 그분의 공의를 고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며 동시에 변호자가 되신다. 

 

10절) '네 하나님이 어디있느냐?’라고 묻던 대적들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들이 거리의 진흙같이 짓밟힐 것이고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시온이 고난 당할 때 대적자들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며 조롱했다. 하지만 때가 되어 심판자이신 그분이 우리의 변호자가 되심으로 공의를 보이시게 될때 대적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본문에서 나라고 표현된 대상, 시온, 예루살렘은 심판 가운데서 자신이 결국 하나님의 공의를 또한 대적이 짓밟히게 될 것을 볼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언약을 바로 알때,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이 맺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확신할 때 비로소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심으로 성실하게 그들의 삶을 지켜보시고 인도하시는 한 그분은 이스라엘의 죄를 묵과하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충실하신 분이시기에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서 징계를 발하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재앙이 심판을 위한 심판이 아니라 용서하시기 위한 것임을 알기에 소망이 있는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믿는 우리들이 더욱 잘 되라고 징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7:9 God’s people indicate that they are willing to bear the Lord’s “wrath.” This is a metonymy of cause for effect, in which wrath is put for punishment. “Because I have sinned” provides the reason for the divine discipline, showing that the judgment is deserved (on “sinned,” ḥāṭāʾ, see comments on 1:5; on confession of sin see Prov 28:13; 1 John 1:9; on sin as the cause of God’s anger and punishment see Zech 1:2–6). Jerusalem’s people are also willing to bear God’s punishment because they know it is only temporary (“until”). The Lord will plead their case,57 that is, he will defend their cause (cf. 6:1 and comments there). He will also establish their right or, better, execute justice for them, that is, he will make things right for them (see 6:8 and comments there).

Their trust is further confirmed by their confident statement that the Lord will bring them out into the light (see comments on v. 8). Their return from Babylonian exile to the promised land will be like a new exodus. Finally, they confidently expect to see the Lord’s righteousness displayed for their advantage. That is, they will experience God’s saving acts, which will demonstrate his righteous character in that he keeps his covenant promises to them (see comments on 6:5).

57 The cognate accusative naturally features assonance: yārîb rîbî, “he pleads my case.”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27–128.

 

11-12절)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그날에는 그 지경이 넓혀질 것이다. 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 사람들이 네게 돌아올 것이다. 

성벽은 도시의 경계를 나누고, 외적으로부터 보호를 위하여 세워진다. 이 성벽이라고 표현된 단어는 히브리어 ‘가데르’로 포도원, 짐승 우리, 성전등을 오염과 부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쌓아 올리는 돌담을 의미한다. 이는 시온이 포도원이나 양들을 수용하는 양 우리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그 날에는 이렇게 성벽이 건축되고 지경이 넓어질 뿐만 아니라 그 성벽 안에, 양 우리 안에 사람들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양 우리가 양들을 보호하는 것처럼 시온 성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돌아오는 백성들은 누구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질로 잡혀갔던 곳곳에서, 앗수르와 애굽과 유프라테스와 여러 산과 바다로부터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좁게는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을, 넓게는 온 세상 모든 민족이 주님께 돌아와서 돌봄을 받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느헤미야 시대에 이루어졌다.(BC 445) 하지만 본문의 성벽 재건은 그 날, 주님의 날에 이루어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스가랴는 예루살렘이 성곽 없는 성읍으로 여호와가 우리의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실 것을 이야기했다. 

스가랴 2:4–5 (NKRV)

4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5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7:11 As King explains, “the building of your walls” is “a metaphor for the reestablishment of the Jews in the promised land.… The prophet most likely has in mind the walls of Jerusalem, though gādēr is not the common term for city walls.”60 “Your” is feminine singular in Hebrew, so Zion or Jerusalem is being addressed. The unusual use of gādēr for “walls” may point toward a metaphorical use to speak of the restoration of the Jews to Judah and Jerusalem. The Hebrew word gādēr usually refers to the stone wall around a vineyard or field. If it does refer to Jerusalem’s city walls in a literal sense, part of the fulfillment occurred about 445 b.c., when Nehemiah restored its walls. However, “In that day” (v. 12) seems to indicate an eschatological fulfillment as well. Perhaps vv. 11–13 are progressively fulfilled in at least two stages. According to Zech 2:4–5 (“Jerusalem will be a city without walls …”) “Jerusalem will become so large and prosperous that it will expand beyond its walls. Indeed, it will overflow so much that it will be as though it had no walls. Evidently many of its people and animals will have to live in the surrounding unwalled villages (cf. Ezek 38:11).”61 As Boice explains, “as the book draws to a close, he [Micah] looks beyond the deportation to another deliverance and regathering into the Promised Land. In that day the enemies of the people will be defeated, Jerusalem will be rebuilt, and the borders of the nation will be extended as they were previously.”62

60 P. J. King, Amos, Hosea, Micah—An Archaeological Commentary, 73.

61 Barker, “Zechariah,” 7:616–17.

62 Boice, The Minor Prophets, 2:49. The Hb. for “extending your boundaries” features assonance: yirḥaq ḥōq.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29.

 

13절)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온으로 돌아오고나면 그들이 떠난 그 땅은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황폐하게 되는 이유는 그 주민들의 행위의 결과이다. 거주자의 죄로 인해서 땅이 황폐하게 되는것이다. 

이스라엘은 시온 성으로 돌아와 보호를 받게 될 것인데 반하여 그들이 떠난 세상은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게 되는 때는바로 ‘그 날’이다. 주님의 날이 임하면, 주님의 재림의 때가 되면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여 완성되게 될 것이다. 그 나라의 완성은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에게는 승리의 소식이지만 하나님나라밖의 사람들에게는 심판과 저주의 소식으로 그들은 황폐한 땅에 있게 되는 것이다. 

 

7:12–13 Verse 12 further develops v. 11 (on the eschatological import of “In that day” see comments on 4:1, 6). The word “day” is utilized to signal three developments in vv. 11–12. The NIV rightly supplies “people” as the subject of the Hebrew collective singular (or impersonal) verb. For “people” will come to Jerusalem from “Assyria … Egypt … Euphrates … sea … mountain.” Allen applies these geographical terms literally to the areas from which Jewish exiles will return,63 while McComiskey understands them symbolically or figuratively for the people of all nations coming to Jerusalem.64 Parallel passages seem to support the latter view—that reference is to all believers from the whole world (4:1–5; Ps 72:8; Isa 2:1–5; Zech 9:10; 14:16–19; but cf. Isa 19:18–25).

As for the unbelievers of the world, the earth (i.e., the rest of it) will become a horrible desolation because of their evil deeds (v. 13; see Isa 24:1–6; Zeph 1:18; 3:8). Such will be the “fruit” (Hb. pĕrî) of their actions. They will bring the devastation on themselves. “In 6:16 Jerusalem was an island of ruin amidst a sea of scornful enemies. Here the picture is reversed, and it is an island of blessing amidst a sea of desolation.”65 Jerusalem and the Holy Land will be like an oasis in the desert of the earth. Allen appropriately concludes this section:

The oracle is the counterpart to the Christian doctrine of the Last Judgment. In traditional language which Israel could understand it expresses the assurance that deficits in the moral balance sheet of the world are eventually to be paid, while the kingdom of God is to be established in triumph.66

It will be a fulfillment of Gen 12:3: “I will bless those who bless you, / and whoever curses you I will curse.”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63 Allen, The Books of Joel … Micah, 397–98.

64 McComiskey, “Micah,” in EBC 7:443.

65 D. J. Clark and N. Mundhenk, A Translator’s Handbook on the Books of Obadiah and Micah (New York: UBS, 1982), 185.

66 Allen, The Books of Joel … Micah, 398.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29–130.

 

그 날에는 성벽이 재건되고, 지경이 넓혀지고, 사람들이 먼 곳에서 돌아올 것이며 또한 사람들이 돌아온 땅은 황폐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은 바로 주님의 날이다.  그날에는 회복과 파국이 동시에 임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승리의 날이 될 것이고 반대로 대적자들에게는 심판과 패배의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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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e is me! For I have become

uas when the summer fruit has been gathered,

as when the grapes have been gleaned:

there is no cluster to eat,

no vfirst-ripe fig that my soul desires.

wThe godly has perished from the earth,

and xthere is no one upright among mankind;

ythey all lie in wait for blood,

and zeach hunts the other with a net.

aTheir hands are on what is evil, to do it well;

bthe prince and cthe judge ask for a bribe,

and the great man utters the evil desire of his soul;

thus they weave it together.

The best of them is dlike a brier,

the most upright of them a thorn hedge.

The day of eyour watchmen, of your punishment, has come;

fnow their confusion is at hand.

gPut no trust in a neighbor;

have no confidence in a friend;

guard hthe doors of your mouth

from her who lies in your arms;1

for ithe son treats the father with contempt,

the daughter rises up against her mother,

the daughter-in-law against her mother-in-law;

ja man’s enemies are the men of his own house.

But as for me, I will look to the Lord;

kI will wait for the God of my salvation;

my God will hear me.

u Isa. 24:13; [Isa. 17:6]

v Hos. 9:10

w [Ps. 12:1; Isa. 57:1]

x Ps. 14:1, 3

y [Ps. 10:9; Hos. 6:8, 9]

z Isa. 9:19

a [Zeph. 3:7]

b [Ps. 82:1, 2]

c ch. 3:11

d [2 Sam. 23:6, 7; Nah. 1:10]; See Ezek. 2:6

e See Ezek. 33:2

f [ch. 3:6, 7; Isa. 22:5]

g Jer. 9:4

h [Ps. 141:3]

1 Hebrew bosom

i Ezek. 22:7; [Matt. 10:21, 35; Luke 12:53]

j Cited Matt. 10:36

k [Lam. 3:26]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7:1–7.

 

7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2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3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4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1)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1)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5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6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구원하시는 하나님

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1) 히, 너

1) 히, 너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7:1–7.

 

 

하나님께서 앞선 내용에서 예루살렘 성읍에 대한 심판을 선고하신 것에 대해서 이제 미가 선지자가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수 밖에 없었는지를 노래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총체적으로 부패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이라는 극약 처방을 사용하시는 것이며 자신은 그런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한다고 노래한다. 

 

1-4절) 부패한 사회

선지자는 자신에게 임한 재앙을 노래한다. 

여름 과일은 가장 맛이 좋다는 첫 무화과이고 이 수확이 다 끝나고 포도를 거둔 후(8월)의 시점을 말한다. 이때 먹을 포도송이가 없고 내 마음이 원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었다.(호 9:10) 

과일을 먹고 싶어서 포도원을 찾았지만 한송이의 포도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율법은 농부들에게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 나그네들을 위해서 소산물의 일부를 남겨둘 것을 명한다. 그래야 밭이나 과수원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이 추수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포도원을 싹쓰리해서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만큼 인심이 흉흉해졌고, 실제 앗수르 사람들에게 포위된 예루살렘에 먹을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남을 배려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2절과 연결되어서 본다면 경건하고 정직한 자를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다라고 말한다. 포도나무는 유다를 뜻하는데(사 5:7) 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한 이들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한 것과 같다.(창 18장) 포도원에 포도 한 송이도 남지 않았던 것처럼 유다에는 이처럼 경건하고 정직한 자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악한 이들을 충만하다. 악한 이들은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여서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고 한다. 두손으로 부지런히 악을 행한다. 

이 악한 이들은 약자를 덮치려고 노리고 있다가 이들을 공격하고 덫과 올가미로 이들을 잡는다. 이들의 악행은 다음과 같다.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한다.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서로 연합한다. 

악한 자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앞서 3장 11절은 이렇게 말했다. 

미가 3:11 (NKRV)

11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들은 서로 뒷배를 봐주며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 마치 직조를 하거나 바구니를 짜듯이 서로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4절은 이러한 지도자들의 비윤리적이고 부패한 행태를 찔레 울타리보다 심각하다고 비유한다. 가장 선한 자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 지도자들이 울타리가 되어서 사람들을 지켜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이들이 가시 울타리로 사람들을 찌르는 형태가 된 것이다. 결국 파수꾼의 날, 형벌의 날이 임하여 혼란이 임하게 될 것이다. 

 

7:2 “Micah laments the disappearance of the righteous man (7:2), reminding us of Abraham’s plea for Sodom (Gen 18:23ff.), of Jeremiah’s search in Jerusalem for a man doing justice (Jer 5:1), or of Diogenes and his lantern looking in Athens for the honest man.”45 This verse explains the figurative language of v. 1. The fruit that was gone is now identified as the “godly” or “upright man,” who is equally difficult to find in Jerusalem and Judah.46 The Hebrew for “godly” is ḥāsîd (“one who is faithful” or “one who practices faithful covenant love”). It has the same root as the word for “mercy” in 6:8 (see comments there). The “upright” are “those who maintain the moral rectitude of the covenant.”47

45 Lewis, The Minor Prophets, 34.

46 Note the repetition of the word אֵיץ / אָיִץ, “there is not,” in vv. 1–2.

47 Waltke, Micah: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in Obadiah, Jonah and Micah, by D. W. Baker, T. D. Alexander, and B. K. Waltke, TOTC (Downers Grove: InterVarsity, 1988), 200.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21–122.

 

3절)  This verse may be compared to Jer 4:22: “They are skilled in doing evil; they know not how to do good.” Such evil was done primarily by the leaders who were in control: the ruler, the judge, and the powerful (lit. “the great one”; for the sins committed here see comments on 3:11). “Demands” translates a Hebrew participle indicating that the ruler was constantly demanding gifts. The same is true of the Hebrew participle behind “dictate”: The powerful were always dictating what they desire—another illustration of the fact that power generally corrupts. As if their corruption was not bad enough individually, these power brokers would coordinate their efforts and “conspire” (lit. “weave”) together to take advantage of others by requiring “payoffs” in order to “feather their own nests.”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22–123.

 

5-6절) 파괴된 관계

형벌의 날이 임하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공동체는 엄청난 불신과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이웃을 믿지 말고,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 아내에게도 함부로 속내를 말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한다. 신뢰와 믿음이 완전히 없어진 불신의 세상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관계에서 떠난 이들은 더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기에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 

미가는 배우자 마저도 믿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결국이 신뢰의 파탄은 6절로 이어진다.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대들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사운다. 특히 고대 근동 이스라엘의 가치관속에서 가정안에서의 위계질서는 대단히 중요했다. 십계명중에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첫번째가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내용이다.(출 20:12; 21:15, 17) 그런데 부패한 사회속에서 심판이 임하자 이러한 최우선의 가치가 무너져버렸다. 가족관계의 신뢰가 무너지게 되니 집안 사람이 자기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마 10:21, 34-36). 

이스라엘은 언약 공동체로 서로가 형제, 자매와 같은 가족 공동체이다. 그런데 미가 시대에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죄없는 이웃을 착취하여 이득을 얻는 것에 혈안이 되었다. 이 일에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가장 믿을만한 집안 사람들이 원수가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Tragically many within our own society today have fractured, fragmented, and hostile families that seem bent on self-destruction. Like the old Roman Empire, we are decaying from within. Our movies, television shows, and magazines are filled with sexual immorality, divorce, drugs, violence, filthy language, and rebellion against all authority in the name of unbridled freedom. We attempt to justify the old immorality by renaming it and calling it the new morality. We claim that there are no moral absolutes, that everything is relative. Paul prophesied such a time for the last days in which we are now living (note Heb 1:2, “these last days”):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24.

 

7절) 소망

이런 어두운 상황속에서 선지자의 소망의 노래는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개역개정은 오직이라는 단어로 시작하지만 원분은 그러나(but)라는 접속사가 사용된다.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이시다. 이스라엘의 부패함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바라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나는 나의 하나님이여 나에게 귀를 기울이소서’ 

깊은 어둠이 임했지만 선지자는 더욱 간절하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어둠이 깊을 수록 빛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픔과 고통이 강렬할 수록 그 안에서 불려지는 애가는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패한 상황속에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나의 간절한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아픔을, 억울함을 토해내는 것이다. 

 

패역한 사사시대, 룻기의 기록은 어둠가운데 한줄기 빛과 같았다. 

 

7:7 The complaint (vv. 1–6) is now followed by confidence (v. 7). Just as the Book of Ruth illumines the otherwise unrelieved darkness of the period of the judges, so Micah—perhaps speaking for the righteous, faithful remnant—brings some relief to his own dark times by the light of his trust and hope in God. Such a hopeful element is actually quite common in laments.53 Psalm 55 (a psalm of individual lament and/or petition) expresses it like this: “But I call to God, / and the Lord saves me.… I cry out in distress, / and he hears my voice” (Ps 55:16–17). So Mic 7:7 probably is best construed as belonging to this pericope, though it also functions as an effective transition to the next section. The word “but” (a Hb. adversative waw) draws a sharp contrast between faithful Micah and his unfaithful contemporaries (cf. 3:8). “Watch” provides a link with v. 4 (“watchmen”), where the same Hebrew root occurs. There, however, the watching was for judgment; here it is for salvation.

In Hebrew terminology words like “hope” and “wait” belong to the semantic category of verbs like “trust,” “believe,” and “put one’s faith in” (see comments on 5:7). “I wait” translates a Hebrew verb form (cohortative of resolve) meaning “I am resolved to wait for God my Savior to act.” Mays says:

He watches the future for an act of God (Ps 5:4) as besieged men watch the horizon for the appearance of relief. He does not give up and surrender to depression, but ‘waits,’ the most powerful form of action by the helpless … who express in their waiting the knowledge that God comes to them in the form of salvation.54

“My Savior” and “my God” speak of the personal relationship between the Lord and his prophet and of Micah’s trust in and commitment to his covenant God.55 The names Joshua and Jesus have the same Hebrew root as “Savior” (lit. “salvation”), and they both mean “The Lord saves.” That is why our Lord and Savior is named Jesus: “You are to give him the name Jesus, because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Matt 1:21). “God will hear me” includes the sense of “God will respond to me by helping me and saving/ delivering me” (see comments on 1:2). Micah’s great affirmation of faith is very much like that of Habakkuk: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 /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Hab 3:18).

53 L. C. Allen, The Books of Joel … Micah, NICOT (Grand Rapids: Eerdmans, 1976), 384, 389.

54 Mays, Micah, 157.

55 For “Savior” (involving the Hb. root ישׁע) see Barker, “Deliver (Deliverance),” in ZPEB 2:89–90; for further study of Hebrew words for salvation see J. F. A. Sawyer, Semantics in Biblical Research (London: SCM, 1972), 28–88.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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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ruction of the Wicked

The voice of the Lord cries to the city—

and it is sound wisdom to fear hyour name:

“Hear of ithe rod and of him who appointed it!3

10  Can I forget any longer the treasures4 of wickedness in the house of the wicked,

and the scant measure that is accursed?

11  Shall I acquit the man jwith wicked scales

and with a bag of deceitful weights?

12  Your5 rich men are kfull of violence;

your inhabitants lspeak lies,

and mtheir tongue is deceitful in their mouth.

13  Therefore I strike you with a grievous blow,

nmaking you desolate because of your sins.

14  oYou shall eat, but not be satisfied,

and there shall be hunger within you;

you shall put away, but not preserve,

and what you preserve I will give to the sword.

15  pYou shall sow, but not reap;

you shall tread olives, but not anoint yourselves with oil;

you shall tread grapes, but not drink wine.

16  For you have kept the statutes of qOmri,6

and all the works of the house of rAhab;

and you have walked in their counsels,

that I may make you sa desolation, and your7 inhabitants sa hissing;

so you shall bear tthe scorn of my people.”

h Isa. 30:27

i Isa. 10:5; 30:32

3 The meaning of the Hebrew is uncertain

4 Or Are there still treasures

j See Hos. 12:7

5 Hebrew whose

k Amos 3:10; Hab. 1:2, 3

l Hos. 7:13

m Jer. 9:8

n ch. 7:13

o Hos. 4:10

p [Zeph. 1:13; Hag. 1:6]

q 1 Kgs. 16:25, 26; [ch. 1:13]

6 Hebrew For the statutes of Omri are kept

r See 1 Kgs. 16:30–33; 21:25, 26

s See 2 Chr. 29:8

7 Hebrew its

s See 2 Chr. 29:8

t Isa. 25:8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6:9–16.

 

9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

10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11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12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주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거짓되도다

13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병들게 하였으며 네 죄로 말미암아 너를 황폐하게 하였나니

14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항상 속이 빌 것이며 네가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15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16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 내가 너희를 황폐하게 하며 그의 주민을 사람의 조소 거리로 만들리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6:9–16.

 

 

앞부분이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참 종교가 무엇인지를 밝혔다면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언약대로 살지 못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저주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앞서 8절에서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악을 행하고 있다. 

 

9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읍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 지혜이다. 너희(예루살렘)에게는 매가 예비되었으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그에게 들으라. 

미가 6:9 (새번역)

9들어라! 주님께서 성읍을 부르신다.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다.)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한 나에게 순종하여라.

 

9절의 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마테’를 하나님의 매, 막대기, 지창이로 번역할 수도 있고 지파로 번역할 수도 있다. 막대기로 해석할 경우 이스라엘에게 부과된 형벌의 타당성을 강조하며 그 벌을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의미가 되고, 이를 지파로 해석할 경우에 ‘누가 이들을 한 지파로 불렀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들을 한 지파로 부르신 분께서 말씀하신다는 뜻이 된다. 문맥의 흐름상 전자의 의미가 타당해 보인다. 

 

10-12절) 예루살렘의 상업적, 사회적 죄

내가 악인의 집의 악한 재물과 부족한 가증한 에바를 잊을 수 있느냐? 내가 악한 저울과 속이는 저울 추를 사용하는 이를 깨끗하다 할 수 있겠느냐? 너의 부자들은 포악이 가득하였고 그 거주민들은 거짓말을 하고 그들의 입술은 거짓을 말한다. 

 

10절과 11절은 수사학적인 질문을 통해서 백성들의 죄를 지적한다. 10절은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 11절은 부정한 저울과 거짓 저울 추를 사용하여 속이는 것에 대해서 지적한다. 10절이 부피를 측정하는 일을 속이는 것이었다면 11절은 무게를 측정하는 일을 속인 것이다. 지금 예루살렘 성안에서 상인들이 부피와 무게를 속여서 곡물과 축산물, 기름등을 속여서 팔고 있다. 이 속이는 행위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 이들은 뇌물을 기득권층에게 제공하고, 약자들을 속여 착취를 일삼는 것이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기술의 한계때문에 부피를 재는 되와 무게를 재는 저울의 약간의 오차(6%)를 인정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이러한 오차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부피와 무게를 속였다. 그리고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서 이를 인준해주는 정치인과 법조인에게 뇌물을 수수했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인 부패속에서 쉽게 착취당하고 피해를 입는 이들은 힘없는 약자들이다. 그렇기에 미가는 예루살렘에 사는 부자들은 폭력이 가득하다라고 말한다. 이 부자들은 속임과 이에 대항하는 이들에게 폭력을 일삼았다.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침묵시킨 것이다.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법정에 가는데 도리어 법정의 굽은 판결은 피해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과 같다. 

 

부자들은 이처럼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부족한 에바와 거짓 저울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속였고 그들에게 강포를 행하고 거짓말로 속였다. 

6:10–12 Here begins a catalog of Jerusalem’s (and Judah’s) commercial and social sins, providing additional reasons for their coming judgment. “I” is the Lord (v. 9). He rhetorically asks whether he should forget or overlook the abuses of the wealthy wicked.34 “Wicked house” could refer to the wicked city (= people—primarily the merchants and leaders) of Jerusalem or to the literal house of the wicked, where they store up their stolen treasures. There is a wordplay between rāšāʿ (“wicked”) and rešaʿ (“ill-gotten”). They are condemned for using the short ephah (about half a bushel), which is accursed (by God). Cheating in weights and measures is prohibited in covenant law (Lev 19:35–36).

In v. 11 the Lord again rhetorically asks whether he should acquit a merchant or trader who uses dishonest scales and carries a bag of false weights, thus falsifying weights and measures (in his own favor, of course). These merchants and traders were using weights that weighed things heavier than they actually were or lighter than they really were, depending on whether they were buying or selling. They resorted to all the “tricks of the trade.” Again such evil practices were condemned in Pentateuchal law, wisdom writings, and prophetic literature (Deut 25:13–16; Prov 11:1; 20:23; Hos 12:7; Amos 8:5).

The antecedent of “Her” (v. 12) is the city of Jerusalem and its inhabitants (v. 9). The unscrupulous rich are denounced for their violence (ḥāmās). They had become wealthy through greed and fraud. Their evil, oppressive attitudes and actions had infected the general populace because Jerusalem’s “people” are characterized as liars (see comments on 2:11). They were guilty of speaking deceitfully. Not one word they uttered could be trusted. They were ripe for divine judgment, and that is what now follows.

34 The rendering “forget” assumes that הַאִשׁ is defective for (ה)הַאֶשֶּׁ, from נשׁה, “forget” (Deut 32:18; Lam 3:17; Hab 3:10). See BDB, 674.

Her Hermeneia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17–118.

 

13-15절) 이 부자들의 강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판결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을 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악에 눈을 감으실 수 없다. 이 벌이 실제적으로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남유다의 경우 바벨론의 침략에 의한 멸망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형벌을 이들의 죄로 인한 것이다. 

14-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섯가지의 형벌을 내리신다. 

 

1) 그들은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레위기 26:26을 반영하고 있다. 전쟁, 재앙, 기근 등으로 인하여 아무리 먹어도 만족스럽게 먹지 못할 것을 의미한다. 

2) 그들이 훗날사용하기 위하여 양식과 다른 일상 생활에 펼요한 것들을 아껴두어도 그것들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숨겨놓고 아껴놓은 것들이 원수들에 의하여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레 26:14-6). 신명기 28:47-57은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원수들을 불러틀이셔서 그들을 치게 하실 댄데, 그 효과가 바로 여기에 묘사된 것이다. 

3) 그들이 씨를 뿌리지만, 거두지는 못할 것이다(cf.학1:6-11). 율법은 이러한 현상을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백성들을 심판하기위하여 끌어들이는 원수틀과 메뚜기 떼가 초래하는 결과라고 한다(레 26:16; 28:38). 이곳에서는 원수들이 침략하여 그들이 추수할 것을 빼앗아 갈 것을 의미한다.  

4) 그들이 올리브로 기름을 짜도, 그 기름을 자신들을 위하여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신명기 28:40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그가 보내신 원수들 때문에 올리브를 수확하지 못할 것을 경고한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올리브 기름도 적들에게 빼앗길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을 위하여 사용할 수 없음을 뜻한다. 

5) 그들이 포도를 밟아 술을 빚어도, 그 술을 마시지 못할 것이다. 이것마저도 원수들이 빼앗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 역시 언약적 저주인 신명기 28:30, 39절의 말씀을 반영하고 있다. 부를 축척하기 위하여 비윤리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 청중들에게 선지자는 그들의 경제 원리를 점검해보라고 도전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부를 마음껏 누리도록 지켜보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과 사기에 바탕을 둔 경제는 시간이 지나면 오늘날의 다단계 판매처럼 자체의 무게 때문에 무너져 내리게 되어 있다.(엑시포지멘터리 246)

 

In vv. 14–15 several “futility curses” will be fulfilled against them, frustrating their efforts. First, they will eat but not be satisfied (or full); their stomachs will still be empty. Because of war, locust plagues, blights, and/or famine, they will not have enough to eat; so they will still be hungry. Second, they will store up food (and perhaps other things) for the future, but they will save nothing because what little they do manage to save will be destroyed by enemies (ultimately God—“I”; cf. Lev 26:14–16; Deut 28:33, 49–51). “Sword” speaks of violence and destruction in battle. It is possible to translate the last half of v. 14 like this: “You will press toward birth but not give birth, / and what you bring to birth I will give to the sword.”

Third (v. 15), they will plant seeds but not harvest the crops (cf. Hag 1:6–11). Doubtless they will suffer all this because of an enemy invasion. What the enemies (Assyrians and, later, Babylonians) will not destroy, they will use for themselves. Fourth, the people will press or squeeze olives but not be able to use the resulting oil on themselves. The Hebrew for “press” is the verb dārak (lit. “tread”). Since it is used only once here and serves for both olives and grapes, and since normally only grapes are trampled with bare feet, this may be a case where a verb is used that is appropriate for only one of the objects, namely, grapes.37 The situation is similar in Exod 20:18, where in Hebrew only the verb “saw” is used for “thunder,” “lightning,” “trumpet,” and “mountain.” Obviously only lightning and mountain are seen, whereas thunder and trumpet are heard (most English versions supply “heard” as appropriate). Fifth, as just intimated, they will crush (lit. “tread” or “trample” or “stamp”) grapes but not get to enjoy the wine. So God, in fulfillment of the covenant curses for disobedience, will turn all their blessings into curses (cf. Mal 2:2). “An economy based on fraud and violence will, like any modern-day pyramid scheme, eventually collapse under its own crushing weight, and the prophet does not even need to proclaim that God is behind it all (v. 13).”38

37 This literary feature is called zeugma. See Gen 4:20; Hos 1:2; Luke 1:64 (lit., “Immediately his mouth was opened and his tongue”).

38 W. P. Brown, Obadiah through Malachi, Westminster Bible Companion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1996), 61.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18–119.

 

16절) 예루살렘이 오므리와 아합의 집을 따랐다. 

선지서의 맨 처음 선지자들의 활동시기를 알려주면서 왕들의 이름을 나열하는데 본문에서는 이를 벗어나서 북왕국의 오므리와 아합을 언급한다. 이 왕조에서 이세벨(왕상 21장)과 아달랴(왕하 11)가 나왔다. 오므리와 그의 아들 아합은 북왕국의 왕들중에 가장 악한 왕들이었다. 이방 아내인 이세벨의 영향을 받아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고, 부정한 방법으로 사법적인 힘을 사용하여 포도원을 착취하기도 했다. 

남유다가 북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조와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는 이들이나 적극적으로 우상을 섬기고 악한 질을 골라 했던 오므리왕조나 다른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마리아가 멸망당한 것처럼 예루살렘도 황폐하게 될 것이다. 

 

6:16 The pericope concludes with a summary statement, with v. 16a perhaps corresponding to vv. 10–12 and v. 16b to vv. 13–15. God’s people are condemned for observing the statutes of Omri and all the practices of Ahab’s family and for following their traditions (cf. Ps 94:20). Omri and his son Ahab were kings of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Omri founded a dynasty as well as Israel’s capital at Samaria (1:1, 5–6; see 1 Kgs 16:23–24). “Samaria represented the policies of Omri and Ahab: political, economic, and religious dependency of the Northern Kingdom on the nations.”39 Kings Omri and Ahab did more evil than all the kings who preceded them (1 Kgs 16:25–26, 30–33; 2 Kgs 8:18). Under the influence of his pagan wife Jezebel, Ahab introduced Baalism and the worship of Asherah into the Northern Kingdom. Both kings abused their power (cf. the judicial murder of Naboth in 1 Kgs 21:1–26).40

In the last half of the verse, God announces that “therefore”—because the leaders and people of Jersualem and Judah are so much like their northern neighbors, Samaria and Israel (cf. chap. 1)—they too must suffer “ruin” (the same Hb. root as in v. 13). “The same sins which led to the demise of the Northern Kingdom will bring an end to Judah.”41 They must also be subject to derision (cf. 2:4). “Such scornful hooting is perhaps that same reaction that the secular world has to the church when the community that is supposed to be the body of Christ fails to live up to its covenant with its Lord or the degeneracy of one of its leaders is exposed.”42 Finally, they will have to bear the scorn of the nations.43 Such a judgment would be another fulfillment of a covenant curse for disobedience (Deut 28:37). Disobedience brings disaster.

39 W. A. VanGemeren, Interpreting the Prophetic Word (Grand Rapids: Zondervan, 1990), 152–53.

40 The NIV’s rendering of the third-person verb as second person (“You have observed”) is explained in the Preface to the NIV: “And though the Hebrew writers often shifted back and forth between first, second, and third personal pronouns without change of antecedent, this translation often makes them uniform, in accordance with English style and without the use of footnotes.”

41 R. L. Smith, Micah–Malachi, WBC (Waco: Word, 1984), 53.

42 E. Achtemeier, Minor Prophets I, NIBC (Peabody, Mass.: Hendrickson, 1996), 356.

43 For “the scorn of the nations” the MT has וְחֶרפַּ֥ת עַמִּ֖י, “the scorn due my people.” If this is the correct reading, then Fausset’s comment would be apropos: “The greater was my grace to you, the greater shall be your punishment for having despised it” (p. 606). Most modern English versions, however, follow the LXX here, which has the plural λαῶν, “peoples” (i.e., “nations”), instead of the singular “my people.”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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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Does the Lord Require?

b“With what shall I come before the Lord,

and bow myself before cGod on high?

Shall I come before him with burnt offerings,

with calves a year old?

dWill the Lord be pleased with1 thousands of rams,

with ten thousands of rivers of oil?

eShall I give my firstborn for my transgression,

the fruit of my body for the sin of my soul?”

He has told you, O man, what is good;

and f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but to do justice, and to love kindness,2

and to gwalk humbly with your God?

b [Hos. 5:6; Heb. 10:4]

c Isa. 57:15

d See 1 Sam. 15:22

1 Or Will the Lord accept

e 2 Kgs. 3:27; 16:3; 21:6; 23:10; [Lev. 18:21]

f [Deut. 10:12]

2 Or steadfast love

g [Gen. 5:2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6:6–8.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6:6–8.

 

 

앞서 1-5절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아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출애굽 사건과 광야 생활이후 가나안 입성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준다. 이 언약의 관계안에서 들어와 있는자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여호와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밝히고(6-7절) 그리고 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을 말하고 있다.(8절) 

 

6-7절) 본문은 백성중 한 사람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묻고 있다. 

첫번째 질문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라는 내용이다. 이는 높으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주요 절기가 되면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 때마다 제물을 드려야 했다.(출 23:14-15; 34:18-20; 신 16:16-17)

두번째 질문은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요?’라는 것이었다. 번젬루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드리던 제물이다.(레 2) 이 번제로 드릴 수 있는 짐승은 소, 양, 염소, 비둘기 등이었다. ‘일 년 된 송아지’는 번제물(레 12:6; 23:12; 6:14)매일 드리는 제물(출 29:38; 46:13), 속건제(민 6:12, 절기 때 드리는 제물(출 12:5;  23:18, 19; 민 28-29), 속죄제(레 9:3), 제단을 헌사할 때 드리는 제물(민 7:17) 이 일

년 된 양이나 소여야 한다는 규례를 상기시킨다.

세번째 질문은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였다. 이는 엄청난 양의 재물을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소 22,000마리와 양 120,000마리를 드렸다(왕상 8:63) 수천마리의 숫 양과 수만의 강줄기를 채울만한 기름을 드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양이다. 

네번째 질문은 크게 둘로 나눠지는데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라고 묻는다. 유다의 아하스 왕이 아틀을 제물로 불살라 바친 기록이 있다(왕하 16:3; 대하 28:3). 암몬 족들은 자신들의 신 몰렉에게 아이들을 바치곤 했다(레 20:2-5; 왕상 11:5). 성경은 아이들을 번제로 바치는 행위를 율법으로 금하고 있지만(레 18:21; 20:2-5; 12:31; 18:10), 예레미야가 이러한 행위를 강력하게 비난하는 것으로 보아(렘 7:31; 19:5; 32:32), 이스라엘에서 아하스의 야만적인 행동이 종종 행해졌던 일이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 대표자가 이 질문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상대로제기하신 소송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스라옐은 하나님께 자신들의 모든 것을 드렸다 하지만, 또 그들이 많은 제물은 드렸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요구하신 한 가지(예, 그들의 마음)는 드리지 않았다.

이 질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 질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형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 과할 정도로 드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 예배를 받으시는 분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는 예배일 뿐이다. 

 

The people begin by asking what they should bring12 to the Lord to please him when they come to worship him. They correctly recognize that he is the “exalted God” (cf. Ps 46:10). Then they make some specific suggestions in reply to their opening question. Shall they bring burnt offerings? They think ritual alone is a solution when in reality it is part of the problem. No mere ceremony is ever sufficient. “False worshipers think God’s favor, like theirs, can be bought” or earned. They “offer the Lord everything but what he asks for: their loving and obedient hearts.”13 “Offerings … are no substitute for obedience to God’s will.”14 The burnt offering was wholly consumed and was intended to express one’s devotion, commitment, and complete surrender to God. Yet such total commitment is the one thing the offerers were still withholding from the Lord. Calves a year old were regarded as the best sacrificial animals at the right age (Lev 9:3).

In v. 7 the worshipers “up the ante,” so to speak, by wondering whether a greater quantity of offerings would please the Lord. “Thousands” and “ten thousand” are examples of hyperbole, though King Solomon did offer 22,000 cattle and 120,000 sheep and goats as fellowship (traditionally “peace”) offerings at the dedication of the temple (1 Kgs 8:63)—obviously impossible for average Israelite worshipers. Rams were common sacrificial animals (Lev 5:15), and olive oil was a common sacrificial substance (Lev 2:1, 4, 15).

Finally, the worshipers hypothetically wonder whether sacrificing their firstborn children would atone for their sins (on “transgression” and “sin” see comments on 1:5). This, in fact, is what King Ahaz did (2 Kgs 16:3; 2 Chr 28:3). The Ammonites sacrificed their children to their god, Molech (Lev 20:2–5; 1 Kgs 11:5). The detestable practice spread to Phoenicia, Canaan, and even to the Israelites themselves on occasion. For God’s people to engage in child sacrifice would only increase their sins because God expressly prohibited it (Lev 18:21; Deut 18:10). Jeremiah condemned such a horrible ritual (Jer 7:31; 19:5; 32:32; for the biblical teaching on redeeming the “firstborn” see Exod 13:2, 13; 22:29; 34:20). Since the people of God’s covenant community were willing to bring any of these sacrifices to the Lord, they doubtless believed that he was bringing unjust charges against them. What the Lord really wanted most of all, however, was not the offerings but the hearts, allegiance, and obedience of the offerers (cf. Rom 12:1; Heb 10:4). “They would offer everything (even what God forbade) excepting only what alone he asked for, their heart, its love and its obedience.”15 The truth taught in this passage is basically the same as that expressed in 1 Sam 15:22; Pss 40:6–8; 50:8–15, 23; 51:16–19; Isa 1:11–15; Jer 6:19–20; 7:22–23; Hos 6:6; Amos 5:21–24; Zech 7:4–10.

12 “Come before” translates קדם, a denominative verb related to קֶדֶם, “front, before, earlier, east.” It refers to an act resulting in being in front of something, either spatially or temporally. It is often used in the negative sense of confronting (e.g., Ps 18:5 [6], 18 [19]; 2 Kgs 19:32; Amos 9:10; Job 30:27). It can describe God bringing blessings to someone (Pss 21:3 [4]; 59:10 [11]; 79:8). It is also used of prayer and worship, as here (e.g., Pss 88:13; 95:2; 119:147). See also Deut 23:4 [5]; Job 41:11.

13 B. K. Waltke, “Theology of Micah,” in Evangelical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 ed. W. A. Elwell (Grand Rapids: Baker, 1996), 527.

14 H. Vorländer, “Gift, δῶρον,” NIDNTT 2:42.

15 E. B. Pusey, The Minor Prophets: A Commentary, 2 vols. (Grand Rapids: Baker, 1950), 2:82.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12–113.

 

8절)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네게 보이셨다. 개역개정은 보이셨다라고 표현하지만 원문을 말씀하셨다, 알게하셨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하신다. 

8절의 보이셨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나갓’이다. 

 נָגַד 나갓. nagad, tell, declare, utter, has showed, 알렸느냐, 창(Gen) 3:11, 말하지, 창(Gen) 12:18, 보이심이니이다, 창(Gen) 41:25, 선포하며, 렘(Jer) 4:5, 누설하지, 수(Jos) 2:14.

 맹용길, 스트롱 맹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 원어 사전 (맹용길, 2016).

이는 말씀하시고 보이심으로 알게 하다라는 의미인데 본문은 완료형으로 이미 하나님께서는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스라엘에게 분명히 알게 하셨다. 8절은 그 하나님께서 보이시고 구하신 것이 정의, 인자, 겸손이라고 말한다. 

 

선지자는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언약적인 충성을 보여야 하는 근거를 4-5절에서 제시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굉야 생활을 꿀내고 가나안에 입성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온갖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보호에 의해 존재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분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신 적이 없으며, 그분의 모양과 형상에 따라 창조된 모든 사람이 당연히 추구해야 할 것을 바라실 뿐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창조된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미 ‘선’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선에 대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은 인간에게 선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이름다운 창조 질서에 따라 선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선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바라는 선이 무엇인가를 간략하게 정의하기도 하고(사 1:17; 5:20; 5:14f.), 두 세 가지의 예를 들어 설명하곤 한다(사 5:7; 5:24; 4:1; 6:6; 13:7). 여호와께서 바라시는 선은 그분께 많은 제물, 유창한 감사기도, 혹은 화려한 찬양을 드리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서로에게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통행하는 것”이다. 공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단순히 공의에 대하여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공의(미슈파트)를 행한다는 것은 각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적절한 보응/보상을 해준다는 의미이며, 핍박하는 자를 징계하고, 박해 받는 자들을 자유케 한다는 뜻이다. 인자(헤세드)를 사랑한다는 것은 언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

다. 그러므로 인자를 베푼다는 것은 서로 간에 맺은 언약의 세부 조항대로 보호하고 책임져준다는 뜻이다. 함께 한 공동체로 묶인 사람들은 서로의 평안에 대하여 책임을 느껴야 한다. 또한 사랑하다(아하바)는 동사가 감성과 영적인 헌신과 각오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주의 백성들은 정열적으로 인자를 추구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들에게 언약으로 묶여 있었다.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신중히 그분이 원하시는 것에 따라 산다는 것을 뭇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공의를 실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자를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공의를 실천하고 인자를 사랑하라는 요구는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자비로워야 하며 공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같은 언약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들에게 의로워야 하며, 인자를 베풀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공의와 인자는 항상 함께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비가 없는 공의는 매정할 수 있으며, 공의가 없는 인자는 동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의와 인자는 박해당하는 자를 구원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구제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구제할 때는 행동이 강조되며, 박해당하는 자를 구원하는 데 있어서는 자세가 부각된다. 이것이 바로 선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본분을 다하는 것이요 또한 겸손히 하나님과 통행하는 것이다. ‘겸손히’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차나으)는 ‘지혜롭게, 신중하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과 의롭게 사는 것을 구별한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이 두 가지가 결코 나누어질 수 없음을 강조한다. 미가 선지자도 본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주 안에서 형제, 자매 된 자들에게 공의와 인지를 행하는 것과 한가지로 간주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가장 기본적인 성향은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배와 윤리는 서로 나누어질 수 없다. 이 두가지는 같은 동전의 양면일뿐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세 가지 성향을 지닌다~ (1)다른 사람들을 공명과 정의로 대하는 것; (2)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선을 행하겠다는 각오와 노력; (3)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며 사는 삶을 위한 부지런함. 우리는 오늘날에도 믿음 공동체에 속한 사람틀에게 이러한 참 종교 행위를 행할 책임을 안고 있다(고전 13:4; 고후 6:6; 3:12; 1:26-27; 벧 1:2; 5:5).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며, 이 언약의 조건인 율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렘 31:33; cf. 히 10:14-17). (엑스포지멘터리 239)

 

6:8 The Lord desires the primary forms of love—justice (do justice), mercy (love kindness), and faithfulness (walk humbly)—as the expressed response of his people to his redemptive acts (Matt. 23:23; cf. Deut. 10:12–13; 1 Sam. 15:22; Isa. 1:11–17; Hos. 6:6). On the meaning of “justice,” see notes on Isa. 42:1; Jer. 22:3; Amos 5:7. your God. The complement to “my people” (Mic. 6:3, 5).

6:8 Sacrifices cannot replace the need for justice and kindness. The focus on real righteousness anticipates Jesus’ teaching (Matt. 5:23–24; 9:13; 15:10–20) and is fulfilled in Jesus’ own righteousness (Acts 3:14; Rom. 8:1–4).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05.

 

6:8 “This verse stands as the motto of the alcove of religion in the reading room of the Congressional Library in Washington.”16 Politicians have quoted it often in their election campaigns (if only more would practice it!). Numerous accolades have been showered on it. For example, von Rad says, “This is the quintessence of the commandments as the prophets understood them.”17 J. M. P. Smith calls it “the finest summary of the content of practical religion to be found in the OT.”18 And Boadt observes, “The rabbis who commented on this verse in the early centuries of the Christian era called it a one-line summary of the whole Law.”19

The Lord through Micah now announces to Israel (Judah) what he does require (“man” here represents corporate Israel). He does not desire ritual sacrifices divorced from a changed life—a life given over completely to the covenant Lord. Rather, his people must change their ways and actions (Jer 7:3, 5–7). Furthermore, he had already revealed what he requires and “what is good.” Where? In passages like Deut 10:12–13:

And now, O Israel, what does the Lord your God ask of you but to fear the Lord your God, to walk in all his ways, to love him, to ser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to observe the Lord’s commands and decrees that I am giving you today for your own good.

Three requirements are specified in v. 8. First, they must “act justly” (see comments on 3:1). Boice points out, “To act justly is most important, for it does not mean merely to talk about justice or to get other people to act justly. It means to do the just thing yourself.”20 Second, they must “love mercy.” The Hebrew for “mercy” is ḥesed, which essentially and primarily means “faithful covenant love.”21 Third, they must “walk humbly” with their God (“your God” is relational covenant terminology and is the counterpart to “my people” in v. 3). “Walk” means to “live” in a certain way, but the Hebrew for “humbly” is difficult because it is not the usual word for humility. It almost certainly does not mean “humbly.” Probably the NIrV is as accurate as any version. Here is its rendering of the entire verse: “People of Israel, the Lord has shown you what is good. / He has told you what he requires of you. / You must treat people fairly. / You must love others faithfully. / And you must be very careful to live / the way your God wants you to.” So “walk humbly” would be better rendered “walk carefully (with your God),” which ultimately means “be careful to live the way your God wants you to.”22

The Lion Encyclopedia summarizes the meaning and application of this great text: “Micah is repelled by sacrifices and worship which are not matched by just dealing and real spirituality. His central concerns are for social justice and true religion.”23 So does A. R. Fausset: “Without love, holiness of heart, and righteousness of life, flowing from faith in Christ, all our church-goings, forms of prayer, and almsgivings profit us nothing.”24 J. P. Lewis adds: “Worship and morality cannot be divorced from each other. They are two sides of the same coin.”25 C. L. Feinberg provides this summary: “The piety that God approves consists of three elements: a strict adherence to that which is equitable in all dealings with our fellowmen; a heart determined to do them good; and diligent care to live in close and intimate fellowship with God.”26 And T. E. McComiskey maintains: “The standards of this verse are for those who are members of the covenantal community and delineate the areas of ethical response that God wants to see in those who share the covenantal obligations. These standards have not been abrogated for Christians, for the New Testament affirms their continuing validity. We are still called to the exercise of true religion, to kindness, and to humility (1 Cor 13:4; 2 Cor 6:6; Col 3:12; Jas 1:26–27; 1 Pet 1:2; 5:5). Christians are in a covenant relationship with God in which the law (torah) has been placed within their hearts (Jer 31:33; cf. Heb 10:14–17), not abrogated.”27

Jesus probably had this verse in mind when he said (Matt 23:23):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give a tenth of your spices—mint, dill and cummin. But you have neglected the more important matters of the law—justice, mercy and faithfulness. You should have practiced the latter, without neglecting the former.

Here he regards justice, mercy, and faithfulness as “the more important matters of the law.”

What, then, is Micah’s (and the Lord’s) point? Here is how Kaiser concludes his study of vv. 6–8 (see above for his introduction):

Thus this saying is not an invitation, in lieu of the gospel, to save oneself by kindly acts of equity and fairness. Nor is it an attack on the forms of sacrifices and cultic acts mentioned in the tabernacle and temple instructions. It was instead a call for the natural consequence of truly forgiven men and women to demonstrate the reality of their faith by living it out in the marketplace. Such living would be accompanied with acts and deeds of mercy, justice and giving of oneself for the orphan, the widow and the poor.28

As the Lord said to Shallum, King Josiah’s son, “Did not your father have food and drink? He did what was right and just, so all went well with him. He defended the cause of the poor and needy, and so all went well. Is that not what it means to know me?” (Jer 22:15b–16). Two applications of this passage are offered by Stuart:

1. Faithful participation in worship is not enough. It must be accompanied by faithful, proper living.

2. A good look at the past reminds us of God’s loyalty, and of our responsibility to be loyal to him in return.29

16 G. L. Robinson, The Twelve Minor Prophets (1926; reprint, Grand Rapids: Baker, 1967), 100.

17 G.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trans. D. M. G. Stalker, 2 vols. (New York: Harper & Row, 1965), 2:186–87; also in his book, The Message of the Prophets (London: SCM, 1968), 155.

18 J. M. P. Smith,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Books of Micah, ICC (Edinburgh: T & T Clark, 1911), 123.

19 L. Boadt, Reading the Old Testament (New York: Paulist, 1984), 336.

20 J. M. Boice, The Minor Prophets, 2 vols. (Grand Rapids: Kregel, 1996), 2:44.

21 For further study of חֶסֶד see Barker, “False Dichotomies between the Testaments,” JETS 25 (1982): 6–11; see also the references cited there, particularly N. H. Snaith, The Distinctive Ideas of the Old Testament (New York: Schocken, 1964), 94–142.

NIrV New International Reader’s Version

22 The verb צנע occurs only here. The root occurs elsewhere only in Prov 11:2. W. J. Dumbrell notes that the word “has in recent commentaries been interpreted as ‘walk wisely,’ largely based on the Qumran Manual of Discipline rendering and the use of the root in Ecclesiasticus” (“צנע,” NIDOTTE 3:822).

23 P. Alexander et al., eds., The Lion Encyclopedia of the Bible (Batavia: Lion, 1978), 98.

24 A. R. Fausset, “Jeremiah–Malachi,” in A Commentary Critical, Experimental and Practical on the Old and New Testaments, 6 vols., by P. Jamieson, A. R. Fausset, and D. Brown (Grand Rapids: Eerdmans, 1967), 4:606.

25 J. P. Lewis, The Minor Prophets (Grand Rapids: Baker, 1966), 36.

26 C. L. Feinberg, The Minor Prophets (Chicago: Moody, 1976), 179.

27 McComiskey, “Micah,” EBC 7:436–37.

28 Kaiser, Hard Sayings, 228.

29 Stuart, Favorite Old Testament Passages, 130.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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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wthe remnant of Jacob shall be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like dew from the Lord,

like showers on the grass,

which delay not for a man

nor wait for the children of man.

And wthe remnant of Jacob shall be among the nations,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like a lion among the beasts of the forest,

like a young lion among the flocks of sheep,

ewhich, when it goes through, treads down

and tears in pieces, and there is none to deliver.

Your hand shall fbe lifted up over your adversaries,

and all your enemies shall be cut off.

10  And gin that day, declares the Lord,

hI will cut off your horses from among you

and will destroy your chariots;

11  iand I will cut off the cities of your land

and throw down all your strongholds;

12  and I will cut off jsorceries from your hand,

and kyou shall have no more tellers of fortunes;

13  and lI will cut off your carved images

and myour pillars from among you,

nand you shall bow down no more

to the work of your hands;

14  and I will root out your oAsherah images from among you

iand destroy your cities.

15  And in anger and wrath pI will execute vengeance

on the nations that did not obey.

w [See ver. 3 above]

w [See ver. 3 above]

e [Hos. 5:14]

f Isa. 26:11

g [ch. 4:1, 6]

h Zech. 9:10; [Isa. 2:7; Hag. 2:22]

i ver. 14; Isa. 17:9; 27:10; [Hos. 8:14; Zech. 2:4]

j [2 Kgs. 9:22]

k Deut. 18:10; [Isa. 2:6]

l Zech. 13:2

m Hos. 3:4

n [Isa. 17:8]

o Ex. 34:13; See Deut. 16:21

i [See ver. 11 above]

p [ver. 8; Ps. 149:7; 2 Thess. 1:8]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5:7–15.

 

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8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9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심판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이르러는 내가 네 군마를 네 가운데에서 멸절하며 네 병거를 부수며

11 네 땅의 성읍들을 멸하며 네 모든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것이며

12 내가 또 복술을 네 손에서 끊으리니 네게 다시는 점쟁이가 없게 될 것이며

13 내가 네가 새긴 우상과 주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멸절하리니 네가 네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는 섬기지 아니하리라

14 내가 또 네 아세라 목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빼버리고 네 성읍들을 멸할 것이며

15 내가 또 진노와 분노로 순종하지 아니한 나라에 갚으리라 하셨느니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5:7–15.

 

 

7-9절)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는데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이슬과 같고 풀 위에 소나기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중에 수풀의 짐승 중의 사자와 같고 양떼 가운데에 있는 젊은 사자 같아서 그가 지나가면 밟고 갈기갈기 찢으리니 아무도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다. 네 손이 너의 대적들 위에 들려져서 네 모든 원수들이 진멸될 것이다. 

 

본문은 야곱의 남은 자들을 이슬과 단비로 비유한다. 이는 이 땅에 생명과 생기를 더하는 것들이다. 인간은 생명을 위해서 생수가 필요하고 이 땅의 모든 식물이나 동물들 또한 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물을 저장하고 샘을 파서 물을 끌어올리지만 지속되는 가뭄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세상 만민들에게 주시는 은혜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며 가나안 땅에서는 이슬과 비의 형태로 내렸다. 

7절은 이방인중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따르는 이에게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생명을 주는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되겠지만 8절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사자와 같이 그들을 짓밟고 찢어버리는 죽음의 사자가 될 것임을 말한다. 이는 야곱의 남은 자들이 이 세상에 생명을 줄 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죽음을 줄 수도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복음과도 같은 기능을 한다. 복음은 이를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이를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나쁜 소식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앗수르와 애굽의 왕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사자로 묘사했다. 앗수르의 사르곤 2세는 ‘화난 사자’로 묘사되었고 산헤립, 에살하돈, 아수르바니발 등도 모두 사자로 묘사되어 있다. 이들은 주의 백성인 양들을 찢었다. 이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목자가 필요하다. 이 목자가 오셔서 이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이제 상황이 반전되어 주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찢던 사자들을 사자가 양을 찢듯이 찢을 것이다. 상황이 완전히 반전된 것이다. 

 

5:7 The survivors of persecution are called the “remnant of Jacob” because they will represent all twelve sons (tribes) of Jacob (see comments on 2:12; 4:6–8). “Peoples” is synonymous with “nations” (v. 8). The similes (“like dew … like showers”) speak of life, renewal, refreshment, and fertility. Thus Israel will be a blessing to the other nations and people groups of the world, as her covenant Lord intended originally. Just as dew and showers do not depend on humankind to perform their refreshing influence, so Israel will trust in her Lord. The Lord himself will make his people just such a blessing (cf. Ps 72:6, 16–19). It would be preferable to translate the Hebrew verb rendered “linger for” as “depend on” or “trust or hope in.”114 Mays and Wolff understand the similes differently, but the interpretation offered here seems more natural for this context.115

114 Waltke, “Micah,” 713. For similar uses elsewhere cf. 1 Sam 10:8; 13:8; Pss 31:24; 33:18, 22; Isa 42:4; 51:5; Mic 7:7.

115 See Mays, Micah, 122–23; Wolff, Micah, 156.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03–104.

 

5:8 “Remnant of Jacob,” “in the midst of many peoples,” and the double simile are links to v. 7. The relationship, however, is one of contrast. The remnant’s positive influence was emphasized in the previous verse. Here its negative effect is stressed: Israel will also be a source of death. Just as a lion mauls and mangles sheep and other animals, so Israel will overcome all her foes. (Judas Maccabeus is compared to a lion in 1 Macc. 3:4.) Her covenant Lord will enable her to be invincible, so that her ultimate victory is inevitable. No one will be able to withstand her. The Messiah’s kingdom must triumph over all opposition. The principle of vv. 7–8 is essentially that of Zech 8:13 and 2 Cor 2:14–16. Perhaps there is also an implied warning here against antisemitism.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04.

 

10-11절) 그 날에 이르러는, 그 날은 바로 메시아가 통치하는 시대, 주님이 오셔서 이땅을 심판하시는 날이 이르면이라는 의미이다.(4:1, 6) 그 날이 이르면  하나님께서 군마를 멸절하며 병거를 부수며 성읍들을 멸하고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실 것이다. 

10-11절은 물리적인 것들을 멸절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멸하다라는 표현은 영어로는 ’cut off’이며 히브리어로는 ‘카라트’라는 표현으로 9-13절까지 연속해서 5번에 걸쳐서 사용되고 있다. 이는 물리적으로 자르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언약을 세우다라는 표현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창 15장, 21장에서 언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제물을 자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표현은 경건치 못한 사람을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거하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 행위는 제거를 당하는 자에게는 심판을 의미하지만, 공동체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본문에서 이 단어는 멸절을 통해서 없앰으로 공동체를 순결하게 하는 행위이다. 경건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의 삶속에 들어와 우리의 삶을 더럽힐 때 이것을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 

10-11절에서 말하는 군마와 병거, 견고한 성은 군사력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야 하는데 하나님보다 자신의 힘을 믿으려는 그러한 행태를 잘라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너무 강한 군사력을 가지려고 하지 말것을 경고하셨다.(신 17:16) 자신에게 주어진 힘이 너무 강해지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왕이 없고 군사력이 약하기 때문이기에 왕을 세우고 군사력을 증강하고 성벽을 강하고 높게 세우면 안전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우리의 왕이 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불성곽이 되어주실 것을 약속하신다.(슥 2:1-5)

시편 20:7 (NKRV)

7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5:10–11 Now Micah quotes the Lord as speaking directly to his people. “In that day” has occurred previously in 2:4; 4:1, 6. “Declares the Lord” is also used to announce God’s word in 4:6. In v. 9 the promise was given that all Israel’s enemies would be destroyed. The repetition of “I will destroy” identifies the ultimate agent of destruction as the Lord himself—Israel’s covenant Lord; but here the destruction is directed against his own covenant nation. Israel had often trusted in horses and chariots, but the Lord will obliterate them so that his people will trust in him alone for success (see Deut 17:16; Ps 20:7; Isa 2:7; 31:1; Zech 9:10). The Lord will also destroy their cities (v. 11) and strongholds (probably referring to fortified cities; cf. Jer 5:17). So all military power will be removed (see the exposition of 1:13).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05.

 

12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술을 끊으시고 점쟁이가 없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흉패나 법궤, 에봇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도구들을 주셨다. 선지자나 제사장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대언하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 국가들로부터 다양한 이방의 풍습을 받아들였다. 짐승을 잡아 간의 모양을 보고 점을 치고, 새를 날려보내며 점을 치고 별의 움직임을 보면서 점을 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복술을 제거하실 것이다. 

 

13-14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긴 우상과 주상을 멸정함으로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 섬기지 못할 것이다. 아세라 목상을 빼버리고 성읍들을 멸할 것이다. 

우상을 제거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주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엉뚱하게 돌과 나무로 만든 우상을 바라보았다. 본문에서 미가는 하나님께서 제거하실 대표적인 우상으로 아세라 목상을 말한다. 아세라는 바알 신의 아내로 자주 등장하는데(삿 3:7; 왕상 18:19) 이를 뽑아버리신다는 것이다.(왕하 17:16; 대하 33:3)

14절 본문은 아세라 목상을 빼버리면서 성읍들을 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우상들의 영향력이 가득한 이스라엘의 도성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이 성읍이라는 표현이 우상을 의미하는 우가릿어를 의미한다고 하여 이 성읍들을 우상숭배와 연결된 기구나 신전의 뜰로 해석하기도 한다. 

The last reference, here rendered idols, is a more general word. Its form is the same as that of cities in v. 11,85 and it has sometimes been supposed that the whole line is a summary of the foregoing indictment of military resources and religious makeshifts. However, the use of a new and specific term in the first half of v. 14 suggests rather that the prophet is not summarizing but continuing the religious aspect of his indictment. Then the last noun is to be taken not as cities, which would be out of place at this point, but as a cultic term parallel to Asherim. Recourse is often had to emendation,86 but it is probable that the Hebrew language possessed a homonym of its word for “city” with a meaning like “idol.”87

85 Heb. ‘ārê, v. 11(10)—‘āreyḵâ, v. 14(13).

86 E.g., BHS suggests that either atsabbeyḵā or tsīreyḵā be read. G S V T support MT.

87 T. H. Gaster, JTS 38 (1937), pp. 163f., refers to an Ugar. text where ǵr occurs in parallelism with psl, which is the first term in v. 13(12). G. R. Driver, Canaanite Myths and Legends (1956), p. 142, n. 26, renders the Ugar. term “blood-daubed stone” in light of an Arab. cognate word. Dahood, Pss 1, pp. 55f., renders the Heb. word “your gods,” relating it to an Ugar. and Heb. root ‘îr, “protect.” Cf. T “enemies,” interpreting the Heb. as an Aram, homonym which occurs in Dan. 4:16 (cf. 1 Sam. 28:16; Ps. 139:20), doubtless judging a repetition of “cities” unsuitable.

 Leslie C. Allen, The Books of Joel, Obadiah, Jonah, and Micah,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76), 359–360.

 

15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와 분노로 순종하지 아니한 나라, 불순종한 열방을 심판하실 것이다. 열방을 심판하심이 바로 시온의 회복과 연결된다. 이렇게 시온의 회복은 열방의 심판과 잇닿아 있다. 

 

 

 

 

 

728x90

1 Now muster your troops, O daughter2 of troops;

siege is laid against us;

with a rod pthey strike the judge of Israel

on the cheek.

3 qBut you, O Bethlehem Ephrathah,

who are too little to be among the clans of rJudah,

from you shall come forth for me

one who is to be sruler in Israel,

twhose coming forth is ufrom of old,

from ancient days.

Therefore he shall give them up vuntil the time

when she who is in labor has given birth;

then wthe rest of his brothers shall return

to the people of Israel.

And he shall stand xand shepherd his flock yin the strength of the Lord,

in the majesty of the name of the Lord his God.

And they shall dwell secure, for now zhe shall be great

to the ends of the earth.

And he shall be atheir peace.

bWhen the Assyrian comes into our land

and treads in our palaces,

then we will raise against him seven cshepherds

and eight princes of men;

they shall shepherd the land of Assyria with the sword,

and the land of dNimrod at its entrances;

and he shall deliver us from the Assyrian

bwhen he comes into our land

and treads within our border.

1 Ch 4:14 in Hebrew

2 That is, city

p See 1 Kgs. 22:24

3 Ch 5:1 in Hebrew

q Cited Matt. 2:6; [John 7:42]

r [Heb. 7:14]

s [Gen. 49:10; Isa. 9:6, 7; Jer. 30:21; Zech. 9:9]

t Hos. 6:3

u Ps. 90:2; [Prov. 8:22, 23; John 1:1]

v [ch. 4:9, 10]

w [ch. 4:7]

x Isa. 40:11; [ch. 7:14]

y See Isa. 11:3–5

z Ps. 72:8; Isa. 52:13; Luke 1:32

a [Isa. 9:6; Zech. 9:10; Eph. 2:14]

b [2 Kgs. 18:13]

c [Isa. 3:2, 3]

d Gen. 10:8, 10, 11

b [See ver. 5 above]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5:1–6.

 

5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베들레헴에서 다스릴 자가 나오리라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1)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3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1) 히, 천천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5.

 

 

본문 미가 5:2은 가장 미가서 본문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고 인용되는 본문이다. 성탄절이 되면 항상 이 본문을 묵상한다. 이는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한 본문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에 대한 예언은 가깝게는 다윗에게서, 이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다 이 베들레헴은 다윗의 가족이 살았던 곳이고 다윗이 태어난 곳이다.(삼상 17:12) 이는 마 2:6에 인용되었고 눅 2:1-7; 마 1:18-25에서 실제로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위대한 다윗이시다. 

 

1절) 한글 본문에는 Now, 이제라는 표현이 빠져 있다. 앞서 4:9, 11에 사용되었던 표현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압제를 당하고 고통을 받는 때를 말한다.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는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딸 군대여 너는 군대를 모을지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문을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본문 처음을 시작하는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라는 이 표현은 최소한 세가지로 해석된다. 

1) 군대의 도성아, 군대를 모아라.

2)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아, 너 성벽을 튼튼하게 하여라.

3) 슬픔 속에 자신을 베라. 

앞선 두개의 해석은 이스라엘을 포위하여 대적하는 이들에게 항거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라면 세번째 해석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슬픔속에 좌절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개역 개정에서 ‘모을지어다’라고 표현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가닷’으로 일차적으로는 '자신을 베다, 소집하다’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7번 사용되었는데 5번은 자르다, 분리하다(신 14:1, 왕상 18:28, 렘 16:6, 렘 41:5, 렘 47:5)로 사용되었고 1번은 소집하다(미 5:1), 나머지 한번은 무리지어 이동하다(렘 5:7)로 사용되었다. 

다음 구절이 대적들이 이스라엘의 재판관의 뺨을 막대기로 때리는 것의 표현과 연결지어서 본다면 절대적 무기력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슬픔의 표현으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금한다.(신 14:1) 하지만 이는 실제로 그런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슬픔의 표현의 방식으로 그 절박함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적자들이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뺨을 때리는 사건은 언제를 의미하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으로 보는 이들은 이것이 히스기야 때로 701년이라고 말하고 또한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의 침략으로 보는 이들은  유다왕 시드기야로 586년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어떤 주석가들은 이것이 메시야가 고난당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1절이 이렇게 무기력과 절망의 극심함을 표현한다면 이제 2절은 그 어둠을 가르고 놀랍게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인다. 

 

3. The use of the hitpol. of גָּדַד in Mic 5:1 [4:14] and Jer 5:7 is understood as belonging to גָּדַד, throng together. Otherwise, it is difficult to understand Mic 5:1, according to which the people of Jerusalem are advised to cut themselves in pagan rituals of mourning when the nations gather against them (4:11–12), especially since Jerusalem is favored by God for ultimate triumph (4:13; 5:1ff). The NIV takes the vb. as a homonym (גָּדַד, throng together, marshal): “Marshal your troops, O city of troops.”

hitpol. hitpolel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820.

 

5:1 Micah, representing the people (“us”), continues to address Jerusalem (see 4:13b). The opening words of the Hebrew text are open to at least three readings. The first is in the main text of the NIV: “Marshal your troops, O city [lit. ‘daughter’] of troops.”82 This analysis is defended by Waltke and others and is the view preferred here.83 The second is in the NIV footnote as an alternative translation: “Strengthen your walls, O walled city.” But this reading involves changing the Hebrew verb root from gādad to gādar.84 Longman favors a third reading: “Now gash yourself, daughter of marauder!” (a common meaning of the Hb. verb gdd). He explains, “The act of cutting oneself was a well-known expression of mourning in the nations surrounding Israel. Israel, however, was forbidden to engage in this practice (Deut 14:1), thus giving the command a sarcastic tone.”85

The “siege” against the citizens of Jerusalem could refer to that of King Sennacherib’s Assyrian army in 701 b.c. But it more likely refers prophetically to that of King Nebuchadnezzar’s Neo-Babylonian army 588–586 (cf. 4:9–10). If so, the ultimate reference of Israel’s (i.e., Judah’s) “ruler” probably would be to Zedekiah, the last king of Judah, whom Nebuchadnezzar blinded by having his soldiers quite literally “strike Israel’s ruler on the cheek with a rod” (see 2 Kgs 25:7; Jer 39:6–7; 52:10–11). Although “some suggest this ruler was Christ because (a) Christ was struck on the head (Matt 27:30; Mark 15:19) and face (John 19:3) and (b) He is referred to in Micah 5:2,” Martin argues that the ruler is Zedekiah:

(1) The first part of verse 1 refers to the Babylonian attack on Jerusalem. (2) The word “ruler” translates šōpēṭ (“judge”), whereas the word for ruler in verse 2, which does clearly refer to Christ, is mōšēl. Šōpēṭ forms an interesting wordplay on the similar-sounding word for “rod,” šēbeṭ.) (3) Christ was not smitten by troops of an enemy nation while Jerusalem was besieged. However, Nebuchadnezzar did capture Zedekiah and torture him (2 Kgs 25:1–7). (4) A soon-coming event, not a distant-future one, seems to be suggested by the Hebrew word for “but now” in Micah 5:1 (not trans. in the NIV). This is followed by the distant future in verses 2–6. This pattern of present crisis followed by future deliverance is also seen in 4:11–13 in which the present (4:11) is introduced by “but now” and the distant future is discussed in 4:12–13.86

The pattern just referred to (present or soon-coming distress followed by later deliverance) also is seen in 4:9–10 (see previous comments on those verses).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82 Note the assonance in the Hb. text between תִּתְגֹּדְדִ֣י, “marshal your troops,” and גְּד֔וּד, “troops.”

83 See, e.g., B. K. Waltke, “Micah,” in The Minor Prophets, 3 vols., ed. T. E. McComiskey (Grand Rapids: Baker, 1993), 2:701–2. He explains that although the hit. of גדד normally means “cut oneself,” the meaning “throng together” is required in Ps 94:21 and Jer 5:7. HALOT, 177, treats this as a secondary root, a denominative of גְּדוּד, “band, troop.” The syntactical use of the verb here is imperfect of injunction (IBHS, 509).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84 The LXX has νύν ἐμφραχθήσεται θυγάτηρ Εφραιμ ἐν φραγμῷ, “Now the daughter of Ephraim will be completely walled in.”

85 T. Longman III, “Micah,” in Evangelical Commentary on the Bible, ed. W. A. Elwell (Grand Rapids: Baker, 1989), 655–56. HALOT, 177, likewise reads גדד, “make incisions upon oneself” but emends בַת־גְּד֔וּד to הִתְגּוֹדַד, the infinitive, yielding an emphatic construction. Waltke, “Micah,” notes, however, that גְּדוּד occurs in Jer 48:37 with the meaning “cuttings upon the hands as a sign of mourning” and in Ps 65:11 [10] as “furrows” (2:701). See also Clines, DCH 2:316–17.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86 J. A. Martin, “Micah,” in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ed. J. F. Walvoord and R. B. Zuck (Wheaton: Victor, 1985), 1486.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95–96.

 

2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중에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절망의 깊음 속에 이들에게 갑작스럽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메시야가 오실 것을 선포한다. 메시야는 유다에 속한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태어나실 것이다. 이곳은 다윗이 태여난 곳이며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은 곳이다.(삼상 16:1-13) 에브라다는 성경 안에서 베들레헴을 뜻하는 지역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대상 4:4은 에브라다가 베들레헴의 아버지였다고 하고 룻 1:2은 나오미의 일가가 유다에 속한 베들레헴에 살던 에브라다 집안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역대상 4:4 (NKRV)

4그돌의 아버지 브누엘과 후사의 아버지 에셀이니 이는 다 베들레헴의 아버지 에브라다의 맏아들 훌의 소생이며

룻기 1:2 (NKRV)

2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베들레헴의 의미는 ‘빵집’이며 에브라다의 의미는 ‘풍요로움’이 되는데 메시아가 오시면 굶주리고 고통당하는 이들을 풍요로움으로 이끄시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메시아의 기원은 상고에, 영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윗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기에 그 언약에 따라서 다윗의 자손들이 영원히 다스릴 것이 성경안에 언급되어있다.(삼하 23:5; 시 89:29, 37) 메시아의 오심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우신 계획, 섭리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은 태초에 이미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5:2 But you. Both here and in 4:8, these words signal renewed kingship. Ephrathah is the name of the district in which Bethlehem is located and David was born (1 Sam. 17:12). too little. The unlikely choice of David as king foreshadows the unlikely choice of Bethlehem as the hometown of the greater David. Matthew 2:6 (combining this with Mic. 5:4) shows that Jewish scholars of Jesus’ day read this as a prediction of the Messiah’s birthplace (cf. John 7:42). The Messiah’s reign is at God’s behest (for me), and his coming forth (or “origins”; plural of Hb. motsa’ah, “coming out”) is from of old, from ancient days. This has been taken to indicate either an ancient (Davidic) lineage or eternal (and therefore divine) origin of the predicted Messiah. The first time-related expression (“from of old”; Hb. miqqedem) generally refers to ancient historical times (e.g., Neh. 12:46; Ps. 77:5, 11; 78:2; 143:5; Isa. 45:21; 46:10) but can also refer to eternity past (e.g., Ps. 74:12; Hab. 1:12). The second time-related expression (“from ancient days”; Hb. mime ‘olam), however, refers to ancient historical times both in Micah (7:14; cf. 7:20) and elsewhere (Deut. 32:7; Isa. 63:9, 11; Amos 9:11; Mal. 3:4); thus this text is referring to the Messiah’s ancient Davidic lineage, confirming that the ancient covenantal promises made to David still stand.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03.

 

3-4절)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그들을 붙여두시겠고 그 후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도 돌아올 것이다.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다.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칠 것이다. 

구세주가 오시기 전까지 주의 백성들은 대적들의 손에 붙잡혀 있을 것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다스릴 자를 낳는 여인은 누구인가? 1)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2)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태어날 베들레헴, 3) 이스라엘 혹은 시온을 의미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세번째 해석을 따르는데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에게서 메시아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분은 분명히 고통당하는 이들 중 한분이신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분은 태초부터 계신 분이시다. 그분이 오시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다. 

그 분, 다스릴 자, 메시아는 여호와의 능력과 위엄을 의지하여 서실 것이다. 이 ‘아마드’라는 표현은 움직이거나 흔들릴 수 없는 확고함(시 112:3)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마치 왕이 대관식을 통해서 능력과 권위, 통치권을 위임받아 서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백성이 포위당하여 수모를 당하는 상황가운데 자신의 백성을 든든히 보호할 자가 능력과 위엄을 가지고 왕으로 자리를 잡고 세워지는 것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오즈)를 받는다. 또한 능력(가온)을 받는다. 메시야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는 이시기에 누구도 그분을 대적할 수가 없다. 

메시야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가장 먼저 하는 사역은 무찌르고 파괴하는 사역이 아니라 서서 목축하며 거주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메시아의 통치를 목자가 양떼를 먹이고 돌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본문에 목축하다라는 표현은 ‘라아’로 목자가 풀을 먹이고 인도하고 다스리는 의미하는 것이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힘으로 양떼에게 가장 좋은 것을 입히고 보살필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기에 그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메시야가 오심으로 다스리실 때 이스라엘은 다시금 풍요와 안전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She who is in labor” has been interpreted in at least three ways: (1) It refers to the mother of the Messianic Ruler promised in v. 2 (Mary):

In view of the fact that Bethlehem must eventually produce the glorious Ruler, it follows that the judgment threatened in 3:12; 4:10; and 5:1 must in some sense continue until the day of his appearing. The fact that Messiah would be born in Bethlehem and not in Jerusalem, the city of David, presupposes that the family of David would have lost the throne. Such could only be the case if Israel had been overrun by her enemies.… God’s abandonment of Israel would only be temporary. Israel’s oppression would continue until the birth of Messiah. “She who is with child” must be the virgin who would conceive and bear a son called Immanuel (Isa 7:14). The Immanuel promise was uttered about thirty years prior to the present passage. Thus the future king’s birth would signal the beginning of the end of the nation’s oppression (5:3a).103

(2) It refers to Bethlehem, out of which Israel’s Ruler would come (v. 2).104 (3) Most commentators (including this one) construe it as a reference to Israel (Judah) or, more particularly, Zion (Jerusalem). Thus it would echo 4:9–10. God’s chosen people (the covenant nation), then, would bring forth the Messianic Ruler. The Ruler’s “brothers” (=his people) would return from exile to join the other Israelites in Judah and Jerusalem as a restored, reunified, complete covenant nation again. Probably the believing, faithful, righteous remnant is in view in the “brothers.” Although such prophecies “receive a fulfillment in the immediate future, and in Messiah’s first advent, they also look forward to their exhaustive fulfillment in the final consummation of all things at Messiah’s second advent in glory.”105 The principle of progressive fulfillment is at work again. For the final, complete stage in the progressive fulfillment of the whole in the future, see Isa 11:10–16; Ezek 16:53–63; Hos 3:4–5; Zech 10:9–12.106

103 J. E. Smith, The Minor Prophets (Joplin, Mo.: College Press, 1994), 332.

104 McComiskey, “Micah,” 7:428.

105 Fausset, “Jeremiah–Malachi,” 603.

106 For a final, complete restoration of elect Israel in the future, not only to their land but also to their Messiah, see Barker, “The Scope and Center of Old and New Testament Theology and Hope,” in Dispensationalism, Israel and the Church, ed. C. A. Blaising and D. L. Bock (Grand Rapids: Zondervan, 1992), 304, 318–28; L. R. Helyer, Yesterday, Today and Forever: The Continuing Relevance of the Old Testament (Salem, Wis.: Sheffield, 1996), 324–44.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99–100.

 

5:4 Virtually everyone agrees that the antecedent of “He” is the coming Ruler of v. 2, namely, the Messianic Son of David. After his people return to him (v. 3), here is what the Messiah will do for them. First, he will begin his rule over them (“will stand” probably meaning something like “will be installed as King”; cf. Ps 2:6 for the concept). Alternatively, the sense may be that his reign will endure or last forever. Second, he will be their Shepherd-King—feeding, leading, and protecting them—essentially taking good care of them (see 2:12 and 4:8 and comments; cf. 2 Sam 5:2; 7:8; Pss 23:1; 95:7; 100:3; Isa 40:11; Jer 23:2–6; 31:10; Ezek 34:11–16, 23–24, 31; Zech 10:3; Matt 2:6; John 10:11; Heb 13:20; 1 Pet 5:4). Such a shepherding ministry was a royal function in the ancient Near Eastern world.107 Van Groningen makes this comparison between the Messianic King and his ancestor David:

As David was a shepherd (Pss 23; 78:70–72), so his antitype, the royal Shepherd, will lead, feed, protect, and exercise authority over his own. As a Shepherd, he will be invincible: David protected his flock from the lions and bears; the ruling Shepherd will be endowed bĕ ʿōz yhwh (with the strength of Yahweh), exercising divine strength to protect the flock.108

The Lord himself will enable the Shepherd-King to do his work (“in the strength of the Lord”; cf. “Mighty God” in Isa 9:6 and “Spirit of … power” in Isa 11:2; see also Isa 61:1). The promised Ruler will carry out his ministry in the “majesty” (=regal authority and power) of the “name” (=the Lord himself or his manifested character) of the Lord “his God” (speaking of the special, intimat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The language here may echo that of the Shepherd-King’s ancestor David, who also was a shepherd-king: “I come against you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whom you have defied” (1 Sam 17:45; cf. Mic 4:5).

As a result of the above, the royal Shepherd’s people (“flock”) will live securely. The Hebrew for “live securely” means simply “live,” “dwell,” or “sit”; but the ultimate sense is doubtless what the NIV has (so it is a pregnant or elliptical construction). The picture evoked is that of 4:4, where the Hebrew for “sit” is the same verb used here. “For” further explains how all these accomplishments are possible. “Then” is literally “now,” but it refers to the future time when all these things would come true. Finally, the Messianic Shepherd will be so great that his rule will be universal (cf. 4:1–5; Pss 2:8–9; 72:8–11; Zech 9:10; Luke 1:32–33). That is why he can accomplish all the preceding.

107 J. A. Soggin, “רעה rʿh to tend,” TLOT 3:1248; Barker, “Zechariah,” 664–65.

108 Van Groningen, Messianic Revelation in the Old Testament, 505.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00–101.

 

5-6절) 이 사람, 메시아는 평강이 될 것이다. 앗수르가 우리 땅에 들어와 우리의 궁을 칠 때에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칠 것이다.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과 니므롯 땅의 입구를 다스릴 것이며 앗수르 사람들이 우리의 지경을 들어와 우리를 밟을 때 그가 오셔서 우리를 그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이다. 

 

이 사람, 메시야는 평강, 샬롬(사 9:6; 슥 9:10; 엡 2:14)이 될 것이다. 실제 미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대적들의 위협속에서 두려움가운데 살았다. 하지만 메시아그 오시면 샬롬이 임하게 될 것이다. 앗수르로 대변되는 대적들, 원수들이 우리의 지경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의 메시아께서 적절하게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키심으로 그들을 치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공격하던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실 것이다. 주위의 어떠한 공격에도 메시아께서 적적하레 대처해주심으로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다. 메시아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침략자들로부터 구원해내실 뿐만 아니라 승리를 이루어내신다.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과 싸워 이긴 적이 없지만 메시아가 오시면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게 될 것이다. 침략을 당하던 자가 승리자가 될 것이다. 

6절에서 칼로 앗수르 땅과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신다라고 표현되었는데 이 황폐하게 하다라는 표현은 영어로 shepherd, 히브리어로 ‘라아’이다. 이는 다스리다, 인도하다라는 것이다. 앞서 4절에서 메시아가 오셔서 목축하실 것이다라는 표현이 다시 이 앗수를 땅을 치시며 다스릴 것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본문 5장 4, 5, 6절에서 지속적으로 목자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이스라엘의 보호자, 목자이신 메시아는 양들에게는 보호자가 되실 것이지만 이 양들을 공격하는 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 5:5-6  The logical and most natural antecedent of “he” is the Messianic Shepherd-Ruler of vv. 2–4. The opening colon could be rendered, “And he will be the one of peace.”111 The Davidic Messiah would be “our peace” (cf. Eph 2:14). In Isa 9:6 he is called “Prince of Peace.” In addition to denoting peace in the sense of the absence of war and hostility, šālôm also connotes security, prosperity, general well-being, and at times even internal, spiritual peace (Isa 53:5; 54:10; cf. Luke 2:14). I have attempted to bring out the fuller semantic range of the term here by translating it “peace and security” (see above).

111 IBHS, 337–38.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02.

 

 The “land of Nimrod” may refer to Assyria or Babylonia (Gen 10:8–12): Babylonia was subordinate to Assyria at the time of Micah’s ministry—but see comments on “Assyrian” in v. 5. The first “He” refers to the ruler of vv. 2, 4a, while the second “he” refers to “the Assyrian.” God will enable his people and their leaders to triumph over his and their enemies (cf. Matt 16:18).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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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why do you cry aloud?

bIs there no king in you?

cHas your counselor perished,

that dpain seized you like a woman in labor?

10  eWrithe and groan,2 O daughter of Zion,

like a woman in labor,

for fnow you shall go out from the city

and dwell in the open country;

you gshall go to Babylon.

There you shall be rescued;

hthere the Lord will redeem you

from the hand of your enemies.

11  Now imany nations

are assembled against you,

saying, “Let her be defiled,

and jlet our eyes gaze upon Zion.”

12  But kthey do not know

the thoughts of the Lord;

they do not understand his plan,

that lhe has gathered them as sheaves to the threshing floor.

13  Arise and thresh,

O daughter of Zion,

for I will make your horn iron,

and I will make your hoofs bronze;

you shall beat in pieces many peoples;

and mshall devote3 ntheir gain to the Lord,

their wealth to othe Lord of the whole earth.

b Jer. 8:19

c [Isa. 3:3]

d Jer. 6:24

e [John 16:20, 21]

2 Or push

f [ch. 2:13]

g Isa. 39:6, 7

h See Isa. 44:22, 23

i Zech. 12:3

j ch. 7:10; Obad. 12

k [Isa. 10:7]

l [Joel 3:13; Hab. 3:12; Matt. 3:12; Luke 3:17]

m Lev. 27:28

3 Hebrew devote to destruction

n Isa. 23:18

o Ps. 97:5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4:9–13.

 

9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10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11 이제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며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12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의 계획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 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13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무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네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주께 돌리리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4:9–13.

 

 

앞서 4:6-8은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약속을 말했다. 하지만 이제 예루살렘이 받을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선지자는 유다가 이제(now) 겪게될 고통과 그때(then) 누리게될 회복의 영광을 대조하고 있다. 이는 훗날 하나님께서 이루실 회복을 기대하며 지금 닥칠 고난을 이겨내라고 말하는 것이다.

9, 10, 11절은 반복적으로 ‘이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상황의 전환을 나타낸다.  

 

9-10절) 왕이 없어졌고 모사가 죽었으므로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속에 부르짖느냐? 딸 시온은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 것이다. 이제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베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 

 

9절 본문에서 왕과 모사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본문은 달리 해석된다. 먼저 왕과 모사를 하나님으로 볼 수도 있고 이스라엘의 리더십으로 볼 수 도 있다. 전자로 본다면 하나님이 죽지 않았는데 네가 왜 울부짖느냐라는 질문이며 후자로 볼 경우 산헤립에게 공격을 받아 지도자를 잃고 방황하게 될 예루살렘의 처참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회복의 미래를 노래한 이후에 다시 임박한 암울한 현실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왕을 잃는다는 것은 온 국민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제 10절에서 선지자는 시온에게 해산하는 여인처럼 진통할 것을 요구한다. 새시대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해산의 고통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9절이 절망의 부르짖음이라면 10절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소망의 부르짖음이 된다. 10절에서 ‘힘들여 낳을지어다’라는 표현은 산파들이 아이를 낳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산모들을 격려하는 말이다.   

10절에서 회복은 3단계로 진행된다. 1) 성읍에서 나가서, 2) 들에 거주하며, 3)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게 된다. 

1) 성읍에서 나간다는 것은 예루살렘 도성을 떠나는 것을 뜻한다. 

2) 들에 거주한다는 것은 광야에서의 삶을 연상시킨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년동안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전에 광야에서 머물렀던 것처럼 광야에서 인내와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함을 말해준다. 

3) 바벨론에 들어간다는 것은 유다 사람들이 본국을 떠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감이 도리어 그들에게 구원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가오는 이스라엘의 앞날이 고통스럽고 두렵지만 이 포로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실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바벨론의 포로생활은 고난이요 심판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고난의 시기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아픔인 것이다. 

 

4:9 This verse can be understood in two ways (or even in one or two additional ways, according to a few commentators). First, anticipating the results of the prophesied Babylonian exile of v. 10, Micah asks rhetorical questions concerning the loss of a Davidic king in Jerusalem. He pictures its citizens as lamenting their forthcoming loss of the kingdom of Judah and its king. “The loss of the king was a much more painful thing for Israel than for any other nation, because such glorious promises were attached to the throne, the king being the visible representative of the grace of God, and his removal a sign of the wrath of God and of the abolition of all the blessings of salvation which were promised to the nation in his person.”71 (Cf. Lam 4:20.) King Jehoiachin would be taken prisoner to Babylon by Nebuchadnezzar, king of the Neo-Babylonian empire. Nebuchadnezzar would also have King Zedekiah’s eyes put out. Zedekiah too would be taken captive to Babylon. “Counselor” here is simply another word for “king.” In fact, counseling was one of the functions of ancient Near Eastern kingship. (See Isa 9:6–7 for the Messiah as both king and counselor par excellence.) The pain of Jerusalem’s people over such deprivation will be so intense that it is compared to that of a woman in labor and about to give birth (cf. Jer 4:31; 6:22–24).

Second, “king” and “counselor” can be taken as references to God (in that case, they should be capitalized). There is considerable support for this understanding. In v. 7 it is the Lord who is the King. In v. 12 he is presented as Counselor. In Jer 8:19 similar rhetorical questions are asked with God as the referent: “Is the Lord not in Zion? Is her King no longer there?” In this second interpretation of the verse, facing the Assyrian threat at that time, Micah is rebuking his people for their panic and failure to trust in God, their heavenly King. This second view is held by B. Waltke (who follows B. Renaud), H. Wolff, and E. Pusey.

The first view, on the other hand, is preferred by L. Allen, D. Hillers, W. Kaiser, C. Keil, J. Mays, T. McComiskey, C. Naegelsbach, J. Smith, and R. L. Smith (see the Bibliography for the bibliographical data on all these authors). Three primary reasons are usually cited for that preference: (1) If the second view is correct, it seems strange for Micah to rebuke the people’s pain like a “woman in labor” (v. 9), then to command them to writhe in agony “like a woman in labor” in the next verse. (2) Again assuming the second interpretation, ʾābad (“perished,” v. 9) appears to be inappropriate for deity. (3) The first view provides a more natural, unified reading of the text in the immediate context, for then the prophesied event and time frame would be the same in both verses. All things considered, the first understanding seems slightly favored. Incidentally, the contention of some that melek (“king”) is not used in this book of a human king is demonstrably incorrect, since it is used of Balak in 6:5.

71 Keil, Minor Prophets, 1:464–65.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90–91.

 

10절에서 속량하다라는 단어는 ‘가알’이다. 이는 구속하다, 복수자의 의미를 지닌다. 

Even though the people of Judah would be thus exiled, the Lord would rescue and “redeem” them from the Babylonian captivity in a new exodus (cf. Isa 41:14; 48:17, 20). So the deliverance would come not at Jerusalem but “there” (in Babylon), repeated for emphasis. The Hebrew verb for “redeem” here is gāʾal. It is familiar to many Christians in its participial form, commonly Anglicized as goel (“kinsman-redeemer”). The Old Testament picture of such a redeemer is that of an obligated family protector. The role of Yahweh as Goel (Redeemer) is one of the motifs of Micah’s contemporary, Isaiah. The Lord is portrayed in the Book of Isaiah as the perfect Family Protector of Israel. (1) He is related to Israel as Father (63:16; 64:8) and Husband (54:5). (2) He redeems their property, for he regathers them to their land (54:1–8). This function is applicable here in Mic 4:10. (3) He redeems their freedom (35:9; 43:1–4; 48:20; 52:11–12), also applicable here in Micah. (4) He avenges them against their tormentors (47:3–4; 49:25–26; 64:4), also applicable here (see the next pericope). (5) He secures their posterity for the future (61:8–9).72 Judah’s redemption and restoration to their land here would be effected through Cyrus the Great, king of Persia (Isa 44:24–45:7). The ultimate Goel, of course, is Christ the Redeemer.73 Through his redemptive work people are brought from distress to an even greater deliverance.

72 For a complete study of Hebrew words for “salvation,” see J. F. A. Sawyer, Semantics in Biblical Research (London: SCM, 1972), 28–88.

73 See NIVSB, Introduction to Ruth: Theme and Theology; see also Ruth 2:20 n.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91–92.

11-13절)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며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보기 원한다라고 한다.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의 게획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으셨으며 딸 시온에게 일어나서 칠지어다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시온을 강하게 하심으로 여러 백성을 치게 하실 것이다. 이로 인해 탈취물을 여호와께 드리게 될 것이다.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사건은 무엇인가? 많은 이방 사람들이 시온을 더럽게 하는 이 사건을 586년의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멸망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701년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용병을 이끌고 유다를 공략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한 사건으로 해석한다. 

시온을 공격하여 이를 더럽히는 열방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는 것이다. 자신들이 역사의 중심이어야 하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을 용납할 수가 없다. 자신들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이 하나님을 대적한 이들이 결국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의해서 깨뜨려지게 될 것을 선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적들이 주님의 백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한 행동이 도리어 자신들의 심판을 가속화 시키게 된 것이다. 열방에 의한 시온의 침략은 하나님의 큰 그림 속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침략군에게 대항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틀을 짓밟아 승리하도록 그들의 ‘뿔’을 쇠 같게 하시고 그틀의 굽’을 놋쇠 같게 하실 것이다(13 절). 뿔은 고대 근동 예술과 문헌들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힘을 상정한다(신 33:17; 삼상 2 :10; 삼하 22:3; 시 22:21; 75:10; 132:17; 48:25; 2:3). 하나님께서 시온의 뿔을  같게 하신다는 것은 주의 백성이 그 누구도 대적할 없는 막강한 능력을 갖게 될 것을 뜻한다(cf. 왕상 22:11). 굽은 보통 달리는 힘이나 짓밟는 력을 뜻하는데 (cf. 사 5:28; 햄 47:3; 젤 26:11), 하나님께서 이들의 굽올 놋쇠로 만드신다는 것은 시온의 강인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쇠 뿔과 농쇠 굽은 시온의 무적을 상징한다. 이처럼 시온은 소가 타작 마당에서 곡식을 짓밟듯이 열방을 짓밟을 것이다. 이처럼 시온은 자신들에게 두려움을 선사했던 이들에게 두려움을 선사한다. 이어 대적들이 폭력을 써서 탈취했던 재물을 약날하여 그것을 여호와께 제물로 바친다. 

본문 13절에 사용된 ‘여호와께 드리며’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헤렘’이라는 명사의 동사형으로 진멸하다, 파괴하다, 봉헌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시온을 더럽혔던 이방이 이스라엘을 약탈하여 자신의 신들에게 바쳤던 것을 다시금 여호와께 바칠 것을 명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온전히 바치는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이시다. 요셉의 삶이 그러했고 십자가위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로 그러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사단은 자신들이 승리했다라고 생각했지만 도리어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이 성취된 것이다. 

 

4:11 This is the second of three consecutive oracles of judgment and salvation introduced by ʿattâ (“Now”). Opinions are divided concerning the “many nations.” Some refer them to mercenaries from many nations in King Sennacherib’s Assyrian army (701 b.c.). Others argue for the same, but in King Nebuchadnezzar’s Neo-Babylonian army (588–586). Still others support the period of the Maccabees. It is possible that all these could be typological stages in the progressive fulfillment of the whole prophecy. The final, complete stage, however, seems to be what Micah had primarily in view, namely, an eschatological onslaught against the Jews akin to the apocalyptic scene depicted in such passages as Isa 29:5–8; Ezek 38–39; Joel 3:1–3, 12–17; Zech 12:1–9; 14:1–5, 12–15; Rev 16:12–21.74 The intent of the hostile nations is to “defile,” pollute, desecrate, or profane God’s holy city (“you”), holy land, and holy people by trampling on them with pagan feet. Those who are unholy desire to render the holy also unholy, like themselves, then to gloat over it.75 But those who devastate Zion and its people will in turn be devastated (vv. 12–13).

74 For more details see Barker, “Zechariah,” 680–82, 688–91, 694.

75 The verb rendered “gloat” is חזה, “see.” It may express the act of gazing at something with enjoyment or disdain (Ps 27:4; Song 6:13 [7:1]; J. A. Naudé, “חזה,” NIDOTTE 2:57). The nations will enjoy the sight of defiled Jerusalem. For the use of the singular verb (וְתַ֥חַז) with the dual subject (עֵינֵֽינוּ) cf. GBH § 150d.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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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shall come to pass oin the latter days

that the mountain of the house of the Lord

shall be established as the highest of the mountains,

and it shall be lifted up above the hills;

and peoples shall flow to it,

and many nations shall come, and say:

“Come, let us go up to the mountain of the Lord,

to the house of the God of Jacob,

that he may teach us his ways

and that we may walk in his paths.”

For out of Zion shall go forth the law,1

and the word of the Lord from Jerusalem.

He shall judge between many peoples,

and shall decide disputes for strong nations far away;

and they shall p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more;

qbut they shall sit every man under his vine and under his fig tree,

rand no one shall make them afraid,

sfor the mouth of the Lord of hosts has spoken.

For tall the peoples walk

each in the name of its god,

but uwe will walk in the name of the Lord our God

forever and ever.

The Lord Shall Rescue Zion

vIn that day, declares the Lord,

wI will assemble the xlame

and gather those who have been driven away

and those whom I have afflicted;

and the lame I will make ythe remnant,

and those who were cast off, a strong nation;

and zthe Lord will reign over them ain Mount Zion

from this time forth and forevermore.

And you, O tower of the flock,

hill of the daughter of Zion,

to you shall it come,

the former dominion shall come,

kingship for the daughter of Jerusalem.

o For ver. 1–3, see Isa. 2:2–4

1 Or teaching

p [Joel 3:10]

q See 1 Kgs. 4:25

r Isa. 17:2

s See Isa. 1:20

t [Jer. 2:11]

u [Zech. 10:12]

v [ver. 1]

w See Ezek. 11:17

x Ezek. 34:16; Zeph. 3:19

y ch. 2:12; 5:7, 8; Joel 2:32; Zeph. 2:7

z Isa. 24:23; [Dan. 7:14; Luke 1:33]

a Ps. 2:6; Heb. 12:2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4:1–8.

 

4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5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오리라

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7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하셨나니

8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4:1–8.

 

 

앞선 1-3장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혹독한 비난과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3장 12절에서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가 된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 끝날에 예루살렘 성전은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이 곳으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 

 

미가 4:1-3은 이사야 2:2-4과 비슷하다. 누가 누구의 것을 인용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이사야 2:2–4 (NKRV)

2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서에서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이방인보다 올바르게 살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책망하는데 사용된다. 반면 미가서에서는 이 말씀을 이스라엘과 열방을 차별화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열방은 자신들의 우상을 섬기지만 다윗 왕조에 속한 왕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기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 섹션은 바로 앞에서 선포된 메시지 (3 :9 -12)로부터 매우 드라마틱하게 전환하고 있다. 예루살렘이 순식간에 폐허에서 가장 숭고한 자리로 부상한다. 매우 가혹하기만 했던 분위기에서 구원에 대한 기대로 메시지를 듣는 대상이 부패한 예루살햄의 지도자들이었던 것으로부터 신실한 남은 자들로 변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앞 섹션과 구체적인 연결 고리들도 있다. 첫째, 앞의 메시지에서는 시온이 죄로 물들었으므로 (3:10) 완전히 파괴될 것(3:12)이 선포되었지만, 본문에서는 시온이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으로 가득찬 곳이 될 것이다(4:2). 둘째, 성전의 산은 광야와 같이 되었지만(3: 12), 그날이 오면 여호와 전의 산이 세상에서 가장 으폼이 되는 산이 될 것이다(4:1). 셋째,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들’의 악행은 세상에서 으뜸이었지만( 3: 9,11), 시온은 세상의 모든 산들의 ‘꼭대기’가 될 것이다 (4:1). 넷째, 비록 이스라엘은 시온을 죄인들의 소굴로 만들었지만(3:10),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자신의 가르침의 중심지로 삼으실 것이다( 4:1-2). 다섯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뇌물을 수수하여 부당한 판결을 일삼았지만, 여호와의 통치는 공명하고 합리적이어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것이다(4:2-3). 이러한 대조는 주의 백성이 갈멍해야 할 진정한 통치자는 오직 여호와이심을 강조하고 었다. 본문이 예언히는 여호와의 통치는 선지자의 메시지를 듣고 었던 자들에게는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먼 미래의 마지막 날’에 있을 일이다(1 절).(엑스포지멘터리 194)

 

1-2절) 끝날에 이르러서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언덕들위로 들려지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방 나라들이 가며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라 할 것이다. 

 

본문의 끝날이 종말의 날인지 단순히 미래의 날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메시야가 도래할 날 이러한 놀라운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1절에서는 시온이 물리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여호와의 전의 산이 높임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 메시야,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곳을 무시학 파괴하던 이방이 이제 시온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심을 보고 여로와의 도를 배우기 위해서 달려나오게 될 것이다. 

고대 근동에 신전이 있는 산은 그 높이나 규모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이 있기에 구별되었다. 이는 그 산이 여러 종교적인 상징을 지니기 때문이다. 1) 신이 그의 백성과 함께 함, 2) 신의 혼돈에대한 지속적인 군림, 3) 신의 하늘 처소로 가는 관문, 4) 신이 다스리는 영토에서의 주권. 이 시온의 위대함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함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존귀한 이유는 바로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하며 역동하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백성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본문 1절에서는 사람들(암)이 몰려갈 것이고, 2절에서는 많은 이방 사람들(고이)들이 와서 여호와를 경배할 것을 말한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의 모든 나라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것은 열방의 선택이다. 이처럼 열방이 여호와를 왕으로 섬긴다는 것은 주인 바꾸기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신들이 숭배하던 신들에게서 왕관을 벗겨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일ㅇ르 위해서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와야 한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나아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의 고향, 본거지를 떠나야 한다. 떠나지 않고서는 새로운 곳에 도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익숙하고 편안한 자리를 벗어나야만 새로운 것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1절은 민족들이 여호와의 전의 산이 있는 곳으로 몰려갈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이 표현은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곳을 묘사하는 것으로 파생 명사는 강을 의미한다. 지금 그들은 범람하는 강물이 밀려오듯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 율법에 대한 경외로 그들은 단숨에 예루살렘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2절에서는 많은 이방 사람들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간다. 본문의 야곱의 하나님의 전, 올라가다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으로 순례를 위해서 나아갈 때 자주 사용하던 제사적인 표현이다. 열방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그들이 있던 곳에서 떠나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이 있는 곳으로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받기 위해서 광야를 지나 하나님의 산이 시내산에 오른 것처럼, 열방이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오르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었던 놀라운 특권이 온 열방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 전에 이르면 그분이 그분의 도를 가르치실 것이고 우리가 그의 길을 행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은 필연적으로 이를 듣고 행하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맘씀을 듣고도 여전히 죄악의 자리에서 앉아 있다면 그는 말씀을 제대로 들은 사람이 아니다. 들은바 말씀은 행함으로 연결되게 된다. 

 

The time of the prophecy’s fulfillment is set in “the last days.” The phrase can refer to the general or undetermined future (e.g., Gen 49:1; Num 24:14; Deut 31:29, “in days to come”), but in contexts like this one it usually appears to have in view the Messianic age. “In a real sense the last days began with the first coming of Christ (see Acts 2:17; Heb 1:2) and will be fulfilled at his second coming.”41

“The mountain of the Lord’s temple” is equivalent to “the temple hill” (i.e., Mount Zion/Moriah) in 3:12. It was first exalted when David brought the ark of the covenant there (symbolizing the throne of King Yahweh among his kingdom people) and when Solomon built “the Lord’s temple” there. But the time will come when it will be even more exalted as the most important mountain of all (cf. Ps 48:1–3, 8).42 Is “be raised above the hills” to be understood literally or figuratively? In view of the topographical changes prophesied in passages like Zech 14:4–5, 10, Delitzsch argues for both. He insists that “it is not merely an exaltation of the temple mountain in the estimation of the nations that is predicted, but a physical and external elevation also.”43 Thus Mount Zion and its temple will be elevated probably both physically and in prominence. Finally, the verse indicates that “peoples will stream to it.” Doubtless “peoples” is to be understood here in the same essential sense as the Isaiah parallel: “all nations.” The Hebrew for the verb “stream” has the same root as the Hebrew word for “river.” The picture is that of people from “many nations” (v. 2) rushing like a great river toward Jerusalem. This is elucidated further in the next verse.

41 NIVSB, Isa 2:2 n. Hill adds, “According to some, the phrase connotes those ‘latter days’ when God fulfills the prophecies concerning the restoration of Israel, the judgment of the nations,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messianic kingdom” (A. E. Hill, “אַחֲרִית,” in NIDOTTE 1:362).

42 The “as” in “as chief” (בְּרֹ֣אשׁ) represents beth of essence, identity, or equivalence in the Hebrew text (cf. IBHS, 198).

43 F. Delitzsch, Biblical Commentary on the Prophecies of Isaiah, 2 vols., trans. J. Martin (1877; reprint, Grand Rapids: Eerdmans, 1965), 1:114.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3–84.

 

3-4절)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판결하실 것이다. 무리가 갈을 보습으로, 창을 낫으로 만들 것이다. 이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인데 왜냐하면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미가는 산과 작은 산(언덕), 민족과 이방, 도와 길, 칼과 창, 보습과 낫의 쌍을 이루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앞서 말씀을 들은 이들은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이루어 낸다.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는 것으로 그런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는 이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농기구로 바꾸어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간다. 미가가 꿈꾸는 세상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다스리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손의 칼을 내려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자신들의 칼과 창을 농기구인 보습과 낫으로 만들고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곳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갈망하는 곳이라면 교회의 본질은 공평과 정의여야 한다. 연약한 자들이 보호받고 그 안에서 안전과 평안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4절에서 미가는 각 사람이 자신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라고 표현한다. 포도와 무화과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세 흔히 재배되던 열매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했고 무화과 역시 이스라엘의 삶에 중요한 실과였다. 이것들은 땅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이 풍요로움은 사치스러운 것은 아니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풍성하게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찌보면 지금 현대를 관통하는 소비주의를 극복하게하는 표현이다. 이 시대는 남들이 소유하지 않은 특별한 아이템을 소유해야만 행복할 것이라고 광고한다. 그래서 명품을 입고 사용해야만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날이 이르면 검소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그네로 이땅을 살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 그리스도인으로 궁상을 떨며 살 필요는 없지만 가난으로 인해서 두려워하거나 사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궁핍에 처해서도, 풍요에 처해서도 일체의 자족함의 비결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 3절)  The result of the Lord’s action in vv. 2–3a is next stated, so that the waw consecutive prefixed to the Hebrew perfect tense could be translated “So” or “Then”: “So they wi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Because of the Lord’s direct intervention, weapons of warfare will become useless. “Here is synecdoche where the abandonment of two weapons—swords and spears—stands picturesquely for total disarmament.”51 The arms race will be over. Precisely the opposite picture is portrayed in Joel 3:10.52 “What is here called a plowshare was actually an iron point mounted on a wooden beam. Ancient plows did not have a plowshare proper.”53 The verse closes with the prophecy that one nation will not use its weapons (“sword”) against another nation. People will not even train for war anymore. The “West Points” of the world will no longer be necessary. Instead of learning the art of war, the nations will learn the art of peace. When they all submit to “our Lord and his Christ” (Rev 11:15; cf. Ps 2:1–3, 10–12), peace (Shalom) will break out.

This is a description of Messianic, and even millennial, conditions. Yet how different the situation will be until then, with wars and rumors of wars and nation rising against nation (Matt 24:6–7)! Although this vision of universal peace (v. 3b) is the United Nations’ motto, in a world of sin, fallenness, and depravity there can be no lasting external peace until the Prince of Peace returns to establish his Davidic kingdom fully and forever and rule it himself (cf. 2 Sam 7:12–16; Ps 89:3–4, 19–29, 33–37; Isa 9:6–7; Ezek 34:23–24; Dan 7:13–14, 27; Zech 9:9–10; 14:9; 1 Cor 15:20–28; Eph 1:9–10; Heb 2:5–9; 10:12–13; Rev 19:11–20:6). Such rule rightfully belongs to him, and one day the obedience of the nations will be his (see Gen 49:10; Ezek 21:27). However, that does not mean that we should not do everything in our power in the meantime to bring about as much external peace (in addition to personal, internal peace) as is humanly possible (see Matt 5:9; Rom 12:18; 1 Tim 2:1–8; Jas 3:17–18).

51 A. B. Mickelsen, Interpreting the Bible (Grand Rapids: Eerdmans, 1963), 187.

52 See D. A. Garrett (Hosea, Joel,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7], 385), who interprets the expression there as “a proverbial call to arms.”

53 NIVSB, Isa 2:4 n.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5–86.

 

4:4 The vine and the fig tree are intended to picture proverbially the security, prosperity, and contentment of God’s peaceable kingdom (1 Kgs 4:25; Zech 3:10; cf. Isa 11:6–10; 16; 65:20–25). Fear will be a thing of the past (Zeph 3:13). “Fig trees were valued for their fruit and for their shade. Like the vine, fig trees became a symbol of security and of prosperity.”54 Embry adds “personal peace” to the symbolism.55 And all this will happen because the Lord Almighty has spoken it. “The Lord Almighty” is a good rendering of Yahweh Sabaoth (traditionally “the Lord of hosts”). Equally good would be “the Lord who rules over all.”56

54 R. Gower, The New Manners and Customs of Bible Times (Chicago: Moody, 1987), 118.

55 E. M. Embry, “Tree, Plant, Root, Branch,” in NIDNTT 3:865–66.

56 See my chapter, “The Lord Almighty,” in The Making of the NIV, ed. K. L. Barker (Grand Rapids: Baker, 1991), 107–8, 161.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6.

 

5절) 만민이 각각 자기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세상은 각자 자신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살아간다. 자기의 배를 신으로 섬기기도 하고, 돈을 맘몬으로 섬기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성공과 권력, 성과 쾌락을 추구한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반드시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안에 거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고 불가능한 일이다. 

 

6-8절) 그날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는 자를 모으시고 쫓겨난 자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으실 것이다. 발이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시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고 여호와께서 시온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실 것이다. 

 

6절의 '그 날에는이라는 표현은 앞서 1절의 ‘끝날에’를 상기시킨다. 본문은 메시야가 도래하셔서 통치사히는 그 날에 누가 하나님나라에 거하게 될 것인지, 누가 메시야 왕국의 백성이 될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6-7절은 저는 자, 쫓겨난 자, 환난 받게 한자. 발이 저는 자와 같이 가장 소외당하고 약한 자들을 불러내시고 그들을 남은 자, 강한 나라가 되게하시겠다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결단을 표현하는 의지형의 표현을 사용하고 계신다. 이렇게 연약한 자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될 때 세상의 강한 자들보다 더 강한 자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오해할 수 있는 것은 연약한 자들을 불러모으는 행위가 강한 자들에 대한 의도적인 배제, 혹은 배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강한 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남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연약한 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가장 쉽게 희생당하고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그 날에 메시야의 다스림과 통치가 임하게 될 때에는 ‘저는 자, 쫓겨난 자, 환난 받게 한 자, 발을 저는 자’와 같은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7절에서 여호와께서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하나님 나라의 백성, 소외된 자들)을 다스리실 것임을 선포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다. 이는 칼빈이 주장한 성도의 견인’이다. 

8절에서 돌아올 것에 대한 약속은 시온의 회복과 연관되어 있다. 실제로 당시의 백성들은 이방의 압제로 멸망의 위협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온이 회복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시온과 예루살렘이 황폐해지고 멸망을 경험할 것이지만 그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이다. 

 

이 회복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저는 자들과 쫓겨난 자들을 모으실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 그들을 강한 나라가 되게 하시고 시온 산에서 다스리실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의 나라가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그분이 일하셔야만 우리의 인생이 반전이 가능하다. 그래야만 인간의 구원이 가능한 것이다. 결국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4:6 In context “In that day” probably is generally equivalent to “In the last days” (v. 1).65 “Jerusalem,” “mountain,” and “Zion” are mentioned in both the preceding salvation oracle and this one, linking the two oracles quite closely in theme and motifs. Micah quotes the Lord directly in vv. 6–8, using “declares the Lord” to stress that the origin of his message is God himself, thus giving divine authority to the prophetic utterance. God’s people are portrayed as weak, wounded, scattered sheep in exile among the nations without a shepherd. Although he is the one who, because of their sin, afflicted them and brought them to such grief (for the meaning of the Hb. root used here, see 1:12; 2:3), as the good royal Shepherd he will rescue, gather, and restore them (cf. 2:12; Isa 40:10–11; 54:7; Jer 23:3–4; 31:7–14; Ezek 11:16–17; 20:34–44; 34:11–16, 23–24; Zeph 3:19–20; Zech 10:8–12). Although the word “exiles” may reflect the Assyrian and Babylonian captivities as background, it has primarily in view the Diaspora (dispersion of the Jews) that followed the Roman destruction of Jerusalem in a.d. 70. Thus the restoration in view probably is the final, future one.66 Fausset makes a contemporary application of the principle: “Affliction is the discipline appointed to train the believer for coming glory.”67 So the best is yet to come for the faithful remnant of Israel (Rom 11:26).

65 For a discussion of “In that day” see Barker, “Zechariah,” 619–20 (on 2:11–12).

66 Ibid., 672.

67 Fausset, “Jeremiah–Malachi,” 599.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8–89.

 

4:7 The Lord promises to make the “lame” of v. 6 into a faithful remnant (for “remnant” see comments on 2:12). Indeed, he will make them into a “strong nation,” though “strong” also could mean “populous” (see comments on v. 3). The weakling of v. 6 will be able to say, “I am strong!” (Joel 3:10; cf. 1 Cor 1:26–31). Micah may be the speaker in the second half of the verse (note the change from first person to third), yet it is not uncommon for the Lord to refer to himself in the third person. The Lord will rule over the restored faithful remnant and strong (or populous) nation in Mount Zion, the site of the temple that contained the ark of the covenant, representing the Great Shepherd-King’s earthly throne. According to Zech 14:9 he will reign not just over “them” but also over “the whole earth.” The last colon of the verse indicates that his reign will never end (cf. Ps 146:7–10). So the Messiah (God’s “Anointed” King) will rule over a universal and eternal kingdom (see also Isa 9:6–7; Dan 7:14, 27; Luke 1:32–33; Rev 11:15).68

68 For “The Lord will rule” see comments on Zech 2:10 in Barker, “Zechariah,” 619.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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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ear this, you heads of the house of Jacob

and rulers of the house of Israel,

cwho detest justice

and make crooked all that is straight,

10  dwho build Zion with blood

and Jerusalem with iniquity.

11  eIts heads give judgment for a bribe;

fits priests teach for a price;

gits prophets practice divination for money;

hyet they lean on the Lord and isay,

“Is not the Lord in the midst of us?

jNo disaster shall come upon us.”

12  Therefore because of you

kZion shall be plowed as a field;

Jerusalem lshall become a heap of ruins,

and mthe mountain of the house na wooded height.

b See ch. 1:2

c [ver. 2]

d Jer. 22:13; Ezek. 22:27; Hab. 2:12

e ch. 7:3; Isa. 1:23

f See Jer. 6:13

g [ver. 5; Ezek. 22:25]

h Isa. 48:2

i Jer. 7:4; [Amos 5:14]

j [Jer. 23:17; Amos 9:10]

k Cited Jer. 26:18

l [ch. 1:6]

m ch. 4:2

n [Luke 13:35]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미 3:9–12.

 

9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10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미 3:9–12.

 

미가는 앞서 8절에서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재판 신탁 양식을 취하는데 청종하라는 권면(9절), 고발(10-11절), 판결(12절)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지주들, 재판관들, 선지자들을 비난했다면 여기에서는 제사장들을 추가하고 있다. 

 

9절)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은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심판을 외치신다. 

이들은 정의를 미워하고 나아가 곧은 것을 굽게 만들었다. 이는 통치자들의 왜곡된 사법적 판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정직한'은 히브리어 ‘야사르’로 의로운, 정직한, 직선의, 바른의 의미를 지닌다.(2:7; 7:2, 4)  

 

10-11절) 지도자들은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였다. 그들의 구체적인 죄를 나열해보면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고

제사장들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선지자들은 돈을 위하여 점을 쳤다. 

그러면서 여호와를 의뢰하며 여호와께서 우리중에 계시지 아니하냐라고 하면서 자신들에게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당시 예루살렘은 번성하고 풍요로왔다. 통치자들이 백성들로부터 약탈하고 빼앗은 재물들로 넘쳐났고 그렇게 드려진 제물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이 풍요로움에 감탄할지 모르지만 착취당한 이들의 고통과 눈물이 그 풍요로움 이면에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아품을 보셨다. 실제로 지금 세계의 문화유산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경우에 수 많은 이들이 이로 인해서 경탄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고생하고 죽어간 수많은 노예들과 백성들의 피흘림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에 대해서 심판의 메시지를 내린다. 

하박국 2:12 (NKRV)

12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실제로 산헤립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히스기야왕은 성벽을 강화했고 히스기야 터널을 만들었다. 이는 실제 고고학적인 발견을 통해서 밝혀진 내용인데 이러한 대규모의 공사를 신속하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백성들의 피와 땀이 필요했을 것이다.

In this oracle Micah specifies the injustice of politicians who build Jerusalem without concern for the cost of human life (3:10). The archaeological discoveries of Hezekiah’s Broad Wall in the Jewish Quarter of the walled city (ca. 24 feet wide) and Hezekiah’s Tunnel (2 Chron. 32:3–5, 27–30) in the Kidron Valley, plus new storage areas, testify to the expansion of Jerusalem and the need to protect and provide for many people within the city. These enormous construction projects would require thousands of man-hours of hard physical labor to cut and move tons of rock.20 Since the large army of Sennacherib may soon threaten the city’s existence, there is no time to waste. These leaders do not worry too much about who gets trampled in the process; they are intent on getting the job completed. Consequently many people die.

20 Jer. 22:13–14 complains of a similar problem in the reign of Jehoiakim a hundred years later (cf. also Hab. 2:12).

 Gary V. Smith, Hosea, Amos, Micah,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2001), 493.

여기의 우두머리들은 재판을 하는 지도자들로 그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였다. 이럴 경우 필연적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구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사법의 영역만이 아니라 정치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게 된다. 이는 권력을 가진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과 권력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사용하는 순간 판결이 굽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벌어지는 LH사태나 사법부의 가까운 인척들에 대한 불기소 처분, 재벌들의 일감몰아주기 등이 바로 이런 것이다. 

 

특히 3장에서는 지도자들-재판관들(1-4절)에 대해서, 선지자들(5-8절)에 대해서 지적했는데 이제 이 본문에서는 제사장이 추가되어 부패의 삼위일체가 완성되고 있다. 

 

제사장은 삯을 받고 교훈을 한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역할을 해야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돈을 받고 가르쳤다. 필연적으로 진리가 아닌 것으로 가르침이 왜곡된 것이다.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쳤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심판을 대언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또한 돈을 받고 신탁을 내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이들의 부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구조를 가지고 점점 더 악이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만들고, 제사장들은 이들의 판결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선지자들은 이들의 권세가 하나님께로 온 것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달랜다. 이런 거짓된 가르침과 신탁을 통해서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이런 부정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기에 자신들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을 독점하고, 하나님은 자신들만의 하나님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임을 알지 못했다. 이들에게 분명히 믿음은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을 부여잡고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살 생각은 하지 않고, 뻔뻔하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이며 위선이다. 

 

3:11 The heads … priests … prophets (all the main groups of leaders) give desired results in exchange for compensation. lean on the Lord. Profession of faith without justice is lifeless (James 2:14–18). No disaster. There is no basis for their confidence that they will escape that which the Lord has appointed (Mic. 1:12; 2:3).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01.

 

3:11 All classes of leaders are now included in Micah’s scathing denunciation. Prophets, priests, judges, and other governmental rulers alike betrayed their trust. Jerusalem’s (and Judah’s) leaders judged favorably for a bribe (see 7:3). Like Samuel’s sons (1 Sam 8:3), they were the opposite of Samuel (1 Sam 12:3). Such perversion of justice through bribery was explicitly prohibited in Pentateuchal law (Exod 23:8; Deut 16:19; cf. Isa 1:23; 5:23). The priests made their teaching ministry a source of gain. It was their duty to teach the law and decide controversies (Lev 10:11; Deut 17:9, 11), not to enrich themselves beyond their tithes by charging extra for their services. And the false prophets sold their oracles or divinations, divorcing what should have been a spiritual ministry from ethics, morality, and integrity (see v. 5). “The love of money is a root of all kinds of evil” (1 Tim 6:10). Boice comments:

What troubled Micah (and God far more) was the sin in the courts, palaces, and temple. All three branches of government were corrupt. Worse yet they worked hand in hand. The politicians got their way in the courts, and the judges were paid for their destruction of justice. The prophets also benefited from this arrangement and supported the government in turn.32

Yet the leaders claimed to “lean upon” (= trust in) the Lord because of their mistaken temple theology (cf. Jer 7:4, 8, 12–15). They reasoned that Jerusalem was inviolable because the Great King’s earthly throne (the ark of the covenant) was located there in the temple (see Introduction, p. 27). It was inconceivable to them that Jerusalem and the Lord’s temple would ever be destroyed. How wrong they were! Just such a “disaster” (see comments on 2:3) was predicted in the next verse—and fulfilled (though, thanks to godly King Hezekiah, Jerusalem did not fall until a little over one hundred years later). Allen asks a pertinent question: “If the most sacred institution was not serving its purpose but in the hands of religious perverts was acting as a barrier to God, of what further use could it be to him?”33 Corrupt leaders who use their positions of power and influence for self-aggrandizement will be judged severely (v. 12).

32 J. M. Boice, The Minor Prophets, 2 vols. complete in one edition (Grand Rapids: Kregel, 1996), 2:28.

33 L. C. Allen, The Books of Joel, Obadiah, Jonah and Micah, NICOT (Grand Rapids: Eerdmans, 1976), 255.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0–81.

 

12절) ‘이러므로’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억울한 자들의 피로 가득찬, 백성들의 신음이 가득한 이곳, 시온과 예루살렘, 성전을 그냥 두실 수가 없었다. 시온은 쟁기로 갈아 엎어 밭이 되게 하시고, 예루살렘은 폐허의 무더기가 되고 성전은 야산으로 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피흘리는 자의 신원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도성을 세운 자들로 인해서 이 도성의 파괴가 촉진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부정한 이들의 보호자가 아니심을 또한 하나님께서 성전에 갇혀계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자신을 거절하고 불순종하는 이들을 떠나실 수 있다. 

 

Micah interrupts this series of accusations with a powerful “therefore” (Mic. 3:12), signaling the beginning of an unequivocal announcement of the removal of Jerusalem from the ancient Near Eastern map. In pointed style, Micah identifies the cause of Jerusalem’s problems. It is “because of you” leaders that Zion will be devastated. God holds you accountable for your actions; therefore, Micah’s audience will lose everything—their power, money, beautiful homes, stately buildings, even the walls of Jerusalem. Parts of the city will be leveled into a field for plowing, and the temple site will be a grove of trees and underbrush. There is no ambiguity in this statement. It is a powerful claim, warning of the end of Jerusalem. This action will prove that God is not a protector of unjust people and that he is not imprisoned in the temple. God is free to leave if his people reject him (see Jer. 7 for a repeated emphasis on these points).

 Gary V. Smith, Hosea, Amos, Micah,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2001), 494.

 

3:12 This verse is quoted in Jer. 26:16–19. because of you. As the leaders had built Jerusalem with injustice and violent acts (Mic. 3:10), so they are responsible for its “unbuilding.” mountain of the house. This sets up a contrast with “mountain of the house of the Lord” (4:1). The temple without the Lord’s presence becomes simply a structure on a hill.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01.

 

3:12 “Therefore,” because of the sins and disobedience of the leaders just delineated, Zion/Jerusalem and the temple would be devastated. The destruction occurred in 586 b.c. Micah 3:12 was quoted a century later in Jer 26:18. The next verse in Jeremiah indicates that Micah’s preaching may have been instrumental in the revival under King Hezekiah (see 2 Kgs 18:1–6; 2 Chr 29–31).

Lamentations describes the awful fulfillment of this prophecy (see Introduction, p. 30).34 It is ironic that those who thought they were the builders of Zion (v. 10) actually turned out to be, in a sense, its destroyers. The Lord, because of their breach of covenant, used King Nebuchadnezzar’s Neo-Babylonian army to raze Jerusalem and its temple. They were reduced to a “mound of ruins” (translating the Hb. word ʿîyyîn35) similar to an archaeological tell and to Ai (see also comments on 1:6), foreshadowing the Roman destruction of a.d. 70. Jerusalem became a place suitable only for wild animals. And the temple mount that thronged with worshipers became as deserted as when Abraham almost offered Isaac there on Mount Moriah (Gen 22:2, 14).

34 Cf. Lam 1:1, 4, 6, 18–19; 2:2, 6, 9–10, 20; 5:17–18, etc.

35 Note the Aramaic plural ending on עִיִּיץ (ʿiyyîn) but the Hebrew plural on the parallel in Jer 26:18.

 Kenneth L. Barker,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vol. 20,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9),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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