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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트렌드 2025(규장)

 

1. 유반젤리즘(You-vangelism)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유튜브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 이전에도 유튜브는 많은 사람 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진 콘텐츠 가 있다면 단연 유튜브이다. 유튜브는 기독교인들의 일상에서도 익숙한 콘텐츠가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유튜브로 CCM을 듣고 설교를 듣는다. 이른바 유튜브 에반젤리즘(Youtube Evangetsm), 유빈 젤리즘(Your vangelsm)의 시대가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홀로 부흥회를 할 수 있다. 혼자 유튜브로 성경말씀 낭독을 듣고 목회자들의 설교를 들으며 은혜를 받는다. 다양한 단체와 개인이 부르는 찬양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유튜브로 바로 검색하고 성경공부도 한다. 유명한 성지순례 장소도 단번에 갈 수 있다. 과거에는 특정 장소를 직접 가야만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핸드폰 하나면 언제든 방문이 가능하다. 검색 한 번으로 성경의 배경이 되는 땅과 당시 문화를 생생히 알 수 있다. 예배는 이제 유튜브 하나로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유반젤리즘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반젤리즘 시대에도 효과적인 목회가 가능할까? 유튜브로 대체할 수 없는 교회의 기능과 사역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왜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가? 유반젤리즘 시대에 우리가 물어야 하는 질문들이다. 이제 유반젤리즘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익숙한 현상들과 그것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더불어 이런 변화가 목회 현장에 어떤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지 모색해본다.

 

 

2. 멘탈 케어 커뮤니티(Mental Care Community)

급격한 기술발전과 글로벌화, AI의 발달, 고도화된 경제시스템 등은 현대 사회의 특징을 이루며 유토피아를 꿈꾸게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한 경쟁과 사회적 불평등, 노동시장의 급변으로 인한 일자리의 불안정, 불공정한 사회 시스템과 부조리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수많은 역기능적 결과를 초래한다. 정신건강의 문제는 그 대표적 증상이다. 특히 한국 사회 속에서 스트레스와 우울, 불안 같은 정신적 문제는 이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급속한 경제 성장 속에서 무한 경쟁하며 살아가는 삶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담을 만든다. 일과 학업, 가족과 사회적 관계에서의 성공과 성취, 자아실현 등을 향한 추구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있으며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 정신건강에 있어서 한국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신자들에게는 정신건강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놓여 있다. 건강한 정신심리적 상태를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건강한 신앙생활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이 장에서는 개신교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교회의 사역을 일곱 가지로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교회는 교인들이 삶의 스트레스에 압도되지 않도록 성숙한 신앙적인 삶의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교회는 교인들이 정신건강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셋째, 교회는 정신건강 지원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교회는 특정 세대와 특정 사안별로 정신 건강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교회는 정신건강에 관련된 편견, 낙인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교회는 교 회 내에 정신건강 관련 특정 이슈의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작은 공동체를 구성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여건이 된다면 사회를 향한 활동에까지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일곱째, 교회는 자살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3. 포텐셜 레이어티(Potential Laity)

지역 교회 부교역자를 구할 수 없어 평신도를 활용한 사역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교회학교 부교역자나 교육전도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나오면서 그 빈 자리를 평신도로 채우는 것이 최근 중소형 교회를 대상으로 활발하다. 경험과 은사를 가진 성도를 선발해 일정 수준의 훈련과 교육을 거쳐 그 역할을 감당케 하는 것이다. 평신도들이 교역자를 대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교회 부교역자 사역 기피 현상과 신학교 지원자 감소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신학교 지원자가 감소하는 데다가 지원자들도 시니어 세대 졸업생이어서 일선 교회 교육전도사로 청빙을 받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렇게 부교역자 구인난이 심각해지자 일선 교회들은 영성과 전문성을 가진 평신도를 교역자화해 사역에 투입하고 있다. 평신도 사역자화는 부교역자를 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 비롯됐지만 평신도는 본질적으로 교회와 사회에 파송된 사역자요 선교사라는 목회자들의 인식 변화도 그 이유로 꼽힌다. 평신도 사역은 이미 고 옥한흠 목사의 (평신도를 깨운다, 국제제자훈련원)를 비롯해 폴 스티븐스의 (참으로 해방된 평신도),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 IVP) 등의 저서가 소개되면서 교회 안의 평신도 사역을 비롯해 세상 속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소명이 강조된 바 있다. 하지만 일부 교회를 제외 하고 평신도 사역은 요원했다. 여전히 평신도는 목회적 돌봄을 받는 수동적 위치에 머문 채 교회와 세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 속에 살았다. 평신도는 주체적으로 교회 사역에 참여하지 못하고 목회자 위주의 교회 사역이 주를 이뤘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 교회의 지속적인 침체와 위기는 평신도를 교회 사역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코로나19는 그 전환점이었다.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 가정예배와 온라인 예배, 소그룹 활동이 빛을 발하면서다. 이를 통해 목회자들이 평신도에 대한 중요성을 절실하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교회 사역 전반에서 평신도들을 활용하고 있다. 교육전도사 역할을 비롯해 심방, 새신자 양육, 성경공부, 기도회 등 그 영역은 다양하다. 봇물 터진 평신도 사역의 큰 흐름은 어디로 흘러갈 것 인가, '한국 교회 트렌드 2025 조사’에서는 그 양상을 목회자와 평신도를 통해 직접 확인했다. 그 결과 이제 포텐셜 레이어티(Potenital Laity)의 흐름은 거부할 수 없게 됐다.

 

 

4. 오소프락시(Orthopraxy)

오늘날 양극화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부의 양극화, 이념의 양극화, 심지어 대형 교회와 소형 교회의 양극화까지. 여기에 기독교인의 신앙 양극화라는 새로운 과제가 떠오르고 있다. 신앙의 양극화는 다른 양극화와는 결이 약간 다르다. 대부분 양극화는 골치 아픈 부정적, 극단적 현상인데 반해 신앙 양극화는 부정적 차원을 내포하는 동시에, 기회와 방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탈교회화와 가나안 성도 현상은 수년 전부터 한국 교회가 마주한 과제였다. 이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이탈하기 때문에 양극화의 부정적 축이 분명하다. 그런데 신앙의 양극화는 하향평준화가 아니다. 다른 반대 축에서는 신앙의 깊이와 진정성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 다. 따라서 신앙 양극화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마치 먹구름 속의 한 줄기 빛과 같다. 기독교 교세의 약화에도 불구하고 영적 필요에 대한 갈망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국 교회 트렌드 2025 조사에서는 신앙 양극화의 긍정 축인 신양의 깊이를 추구하는 흐름을 포착했다. 전체적인 신앙생활이나 교회 활동에서 신앙의 깊이와 수준에서 의미있는 움직임이 있다. 조사에서는 신앙이 깊어진 이들의 가장 두드러진 참여 활동이 소그룹과 지역 사회 봉사로 나타났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신앙 양극화의 초점은 '오소프락시’라는 신앙의 정통 실천으로 향하고 있다.

 

 

5. 패밀리 크리스천(Family Christian)

한국 교회의 가족 종교화 현상이 뚜렷하다. 다른 종교에 비해 개신교는 배우자 및 자녀와의 종교 일치율이 더 높다. 개신교인이 배우자와 종교가 일치하는 비율은 71.6%로 가톨릭(59.3%), 불교(58.3%)보다 높고 자녀와의 일치도 67.2%에 달한다. 이는 가톨릭(57.6%), 불교(35.1%)보다 높은 수치다. 20년 전 일치율이 90% 안팎이었던 것에 비하면 많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다른 종교에 비하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구주 배우자를 기준으로 보면 가족 간 종교 일치율은 더 높다. 대다수 가정의 가구주가 남성이라고 볼 때 어머니가 개신교일 경우 가족 전체가 개신교일 확률이 더 높은 것이다. 자녀 기준으로 보면 현재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청소년이나 청년 상당수는 개신교인 가정에 속해 있다는 것이 더 뚜렷해진다. 기독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모태신앙이 52.9%였고, 초등학교 입학 전 교회에 나온 비율은 64.6%로 3분의 2에 가까웠다. 기독 청소년들의 경우 가족 종교화 현상은 더욱 심하다. 모태신앙이 60.4%로 나타났고, 초등학교 입학 전 교회를 나온 비율은 79.9%로 다수를 차지했다. 이것은 개신교 역사가 길어지면서 개신 교인 가족 안에서 신앙 계승이 이루어지고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신앙이 일치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영향으로 교회에 나가게 된 사람들,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개신교의 가족 종교화는 자녀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장점도 있으나, 어려서부터 본인의 의지보다는 부모의 의지로 갖게 된 신앙이 성인이 되어서는 오히려 약화될 수도 있다는 단점도 있다. 이와 함께 교회에서는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니지 않는 교인들을 더 배려하고 살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기도 한다. 가족 중교회는 개신교의 확장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족들끼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교인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은 전도를 통해 새로 유입되는 전입 신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비개신교인 가족 중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비율은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한국 개신교는 그들만의 종교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6. 스피리추얼 Z세대(Spiritual Gen Z)

Z세대는 1995년 이후 출생한 소위 20대 청년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로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세대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나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접하며 성장했다. Z세대는 대한민국 인구 전체의 13.8%를 차지하며 전 세계 소비자의 40%를 구성한다. 이들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경제, 사회,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하다. Z세대는 공정하지 않은 사회와 미래의 경제적 풍요에 대해 비관적이며 ‘나' 중심의 행복을 추구한다. 이들은 디지털을 통해 사회문제와 이슈를 접하고 착한 소비와 독특한 경험에 관심이 많다. 취미 활동, 일, 진로 고민, 자아성찰 등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한편 크리스천 Z세대는 신앙생활을 중시하며 디지털 매체를 통해 신앙적인 자료에 접근하고 교회와 사회적 가치관을 조화시키려 한다. 스피리추얼 Z세대인 것이다. 그들은 인생에서 행복한 가정, 건강, 신앙생활, 경제적 부를 중요하게 여긴다. 주요 고민으로 진로와 연애, 결혼이 있으며, 고민 해결 방법으로는 혼자 해결, 기도, 친구와 상의 순으로 나타났다. 신앙적 방법보다 개인적 방법으로 고민을 해결하려 한다. 교회 내 이성 교제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고 결혼에 긍정적이며 자녀 계획도 적극적이 다. 처음 교회에 나온 시기는 대부분 초등학교 이전이며 신앙생활에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교회 활동에서 교제와 소그룹 활동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한다. 목회자 및 어른에게 실망한 경험이 많고 위선적인 모습에 가장 실망한다. Z세대는 오프라인 예배를 선호하며 교회는 이에 따라 Z세대 의견 수용, 수평적 의사소통, 전통적 예배 형식의 변화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Z세대와의 소통을 위해서는 이들의 특성과 관심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경청과 공감이 중요하다. 둘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소통해야 한다. 셋째, 멘토링과 관계 구축을 통해 개인적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넷째, 투명성과 진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다섯째,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해야 한다.

 

 

7. 싱글 프렌들리 처치(Single Friendly Church)

싱글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공부하고 일하고 교회활동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새 30대 중반, 40대이 들어서게 됐다 말한다. 그런데 이들은 교회에서 자신의 삶의 고민이나 어려움에 대해 터놓고 대화할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목회자들도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느낀다. 싱글들이 목회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교회에는 싱글들을 결혼 대기자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고 싱글에 대한 편견도 강한 편이다. 이 상황에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싱글로 있는 사람들은 현재 삶에 어떻게 대처할지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교회는 이들의 어려움을 깊이 인지하지 못하거나 관심 밖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싱글라이프는 현재 결혼 상태에 있지 않은 싱글에만 해당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 그리고 결혼을 했더라도 이혼하거나 사별하게 되면 다시 싱글 상태로 돌아간다. 모든 사람에게 싱글라이프는 삶의 주기 가운데 상대적으로 길거나 짧거나 하는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사람의 삶의 여정의 일부이다. 따라서 싱글라이프는 나와 상관없는 삶이 아니라 현재 결혼 상태에 있더라도, 언젠가 내가 다시 맞이할 삶임을 기억해야 한 다. 이에 따라 싱글들과 함께 삶을 공유하고 이들을 배려하는 교회 분위기와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싱글 인구의 증가 주세를 볼 때 결혼하지 않고 평생 싱글로 살거나 늦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중가하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도 이제 싱글들의 삶을 존중하고 이들을 섬기는 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싱글들의 삶과 교회생활, 싱글들이 교회에 기대하는 것, 그리고 교회에서 이들을 어떻게 섬기면 좋을지, 더 나아가 싱글친화적인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그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8. 시니어 미니스트리(Senior Ministry)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른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2025년 초고령 사회진입 후에는 더 빠른 고령화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일본을 30년 내에 추월해 OECD 최고령 국가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초고령사회와 같이 고령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시대는 고령화 문제를 개인이나 가족 차원에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고령화 문제를 활동적 노화(active aging), 즉 적극적 노화의 개념으로 전적인 방향 전환을 하지 않고서는 해결되기 힘들다는 것이 국제 사회의 결론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국제 사회는 고령화 시대에 최적화된 대안 패러다임으로 '고령친화성(age friendliness)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는 '고령친화도시와 지역 사회(age-frendy cities and communities)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고령친화대학 국제네트워크(age friendly university global network)가 연령 통합을 추구하는 새로운 대학으로 그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심각한 고령화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교회는 지속가능한 성장 및 고령화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위해 본격적으로 '고령친화성’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선교적 교회 모델로서 고령친화교회(age friendly church)의 토대를 갖추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향후 10년 내에 고령자의 다수를 차지하게 될 활동적 노화를 추구하는 엑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강점과 노인의 취약성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고령친화교회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른다면 초고령사회는 한국 교회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고령화는 한국 교회의 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령친화교회는 초고령사회에 활동적 노화를 위해 교회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될 것이다.

 

 

9. 솔트리스 처치(Saltless Church)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우스갯소리 같은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이러한 말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목회자를 포함한 성도와 교회를 둘러싸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불미스러운 일들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채 세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맛을 잃은(Saltless) 교회와 같다. 한국 교회 일련의 세속화 현상은 심화하고 있으며 더 강화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세속화란 사회와 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현상이다. 세속화는 제도적 측면 외에도 개인적 측면이 존재한다. 즉 개인의 종교적 신념과 실천이 약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준점을 잃어버리고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교회 공동체가 거룩성을 지녀야 할 대안 공동체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채, 세상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세속화란 성도와 교회가 세상의 영향을 받아 그 본연의 비전을 상실해가는 현상인 동시에 세상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직면한 세속화 환경(다원주의, 물질주의, 이성주의 등의 환경)이 강해질 수록 개신교 역시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에 영향을 받게 되었고 이제는 개신교 신앙 고유의 정체성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구별이 점점 사라지는 ‘교회 세속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교회 세속화’란 신앙인의 믿음이 약화되고 선한 삶의 열매가 사라지는 것, 교회가 세상에 목소리를 발신하지만 세상이 듣지 않으며,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이 감소하는 것, 교회의 교회됨을 상실하고 세상과 같아지는 것 등을 의미한다.

 

 

10. 미션 비욘드 트래디션(Mission Beyond Tradition)

선교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최근 30년간 국제 사회 전반에 일어난 변화의 정도와 범위는 그 유래를 찾기 어렵다. 선교도 예외일 수 없다. 세계화, 도시화, 인구이동, 기술발전 그리고 세계 기독교 시대 등의 다양한 영향,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변화의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세계 선교 상황도 급변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환경은 한국 교회 선교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뜨거운 열정의 한국 교회였지만 지금은 적절한 변화와 선택이 필요한 시대를 맞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는 오늘의 환경을 이해하고, 마주한 상황을 적절하게 판단하고 반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대적 필요와 요청 가운데 부상하는 선교의 영역들을 준비하고 수행해나가야 한다. 한국 교회 선교가 과거의 빛나는 유산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변화를 기꺼이 감내할 용기와 함께 미래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미션 비욘드 트래디션(Mission Beyond Tradition)이 시급하다. 이번 '한국 교회 트렌드 2025 조사’에서 선교사들은 한국 선교의 향후 전망에 대해 낙관보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또 젊은 선교사일수록 한국 선교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한국 교회는 어떻게 어두운 미래 선교 전망을 다시 희망으로 바꾸어 갈 수 있을까? 성도와 목회자 그리고 현장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가 속한 시대 환경을 살펴보고 지역 교회가 참여하고 준비할 사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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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인문주의에서 답을 찾다(배덕만-대장간)


이 책은 지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서 한 기독교 역사학회에서 배덕만 교수가 진행한 기조 강의의 내용이다. 
먼저 그 주제가 ‘헬조선과 개독교 시대에 읽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역사’인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우리 한국 사회의 현 상황속에서 어떻게 하면 다시금 500년전 종교개혁과 같은 개혁, 부흥을 다시금 맞이할 수 있을까 라는 바램을 담은 책이다. 

헬조선은 '지옥(hell)같은 조선’이라는 의미인데 한국의 청년들이 우리 나라를 자조적으로 부르는 명칭이다. 이것과 아울러서 3포, 5포, 7포, N포 세대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미래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젊은이들, 최근의 땅콩 회항이나 갑질 논란속에서 보듯이 흙수저, 금수저 논란등이 이 시대를 부르는 말이다. 

한국 교회는 개독교라는 호칭을 얻었는데 이는 이 땅의 소망이 되어야 하는 교회가 이 시대 지탄의 대상이 되고 걱정거리가 되어버린 현실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시대의 양심이 되고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돈과 섹스와 권력의 문제에 얽혀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책 속에서는 이러한 실패의 원인으로 한국 교회안에 팽배한 혼합주의, 현실과의 타협, 신학의 실종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적 영성의 회복, 종교 본연의 초월적 가치 추구, 치유와 회복을 위해 한국 교회의 생태계를 재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종교개혁의 배경이 된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한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도와 라틴어 텍스트를 복원하는 운동이었는데 고전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중세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왜곡된 인간의 위치를 회복시키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고전 연구는 인쇄술의 발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인문주의운동의 선구자로 에라스무스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네델란드 로테르담에서 사제의 사생아로 태어나서 고전어를 공부하여 고대 문헌을 교정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성경과 고전, 교부들의 작품을 발굴해서 편집, 주석하는데 생을 바쳤다. 에라스무스는 이런 작업을 통해 텍스트의 오류를 바로잡고 본래의 순수한 진리를 복원하여 자기 시대의 타락을 막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65) 이러한 일환으로 그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판했고 새로운 라틴어 번역을 소개했으며 ‘불가타’의 오역을 지적했다. 또한 시대를 풍자한 ‘우신예찬’을 쓰기도 했다. 그는 인간의 전적 부패를 강조했던 루터와는 달리 인간의 창조성과 존엄성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인간의 전적 부패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다.(67) 에라스무스는 자신이 신약성경을 출판했던 일차적 이유를 “시골 사람이 쟁기 끝에서, 방직하는 사람들이 베틀에서, 여행하는 사람이 자기의 여행 중에 성경을 노래하는 것을, 심지어 여자들도 성경 본문을 읽게 되는 것을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식과 믿음, 자유와 경건, 개인과 교회가 조화와 평화를 이루는 세상이 이성과 교육을 통해 건설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의 믿음은 카톨릭과 종교개혁의 진영 모두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기독교 인문주의자들과 종교개혁자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고전어, 성경, 그리고 교부들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반면에 차이점으로는 인문주의자들은 교리에 관심이 적었던 반면 종교개혁자들은 참다운 교리를 확립하는데 일차적 관심을 두었다.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은 기독교의 본질을 순수한 신앙과 도덕적 실천에서 찾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그런 것보다 성경에 근거한 참다운 교리를 우선시 했다. 또한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은 종교개혁자들에 비해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훨씬 더 낙관적, 긍정적인 이해를 갖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이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루어와 에라스무스 사이에서 한사람을 선택해야 했을때 그들은 에라스무스 대신 루터를 선택했다.(74-6)

교회는 인간에 대한 인문주의적 가치에 주목하며, 이 지옥같은 현실을 향해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라고, 인간을 상품이 아니라 생명체, 인격체로 존중하라고 선언해야 한다. 성경이 인간의 죄성과 한계를 언급한다고 해서 교회가 인간의 가치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성경이야말로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을 균형있게 조명하면서, 인간의 가치를 강력히 선포하기 때문이다. 

‘개독교’ 현상은 중세 말의 타락한 가톨릭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죽음의 공포를 토대로 연옥교리와 면죄부 판매를 정당화 했고, 교황이 황제와 세속의 권력을 다투며, 교회가 종교적 목적을 앞세워 십자군을 동원했다. 재정적 탐욕에 의해 성직이 매매되며, 성직자들에 의해 사생아들이 무수히 양산되었고, 재물-치유-출산을 목적으로 뮤물과 성지순례가 성행했다. 이를 위해 신학자들이 성경과 무관한 교리를 만들고 신학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야말로 성경과 상관없는 종교가 된 것이다. 500여년전의 카톨릭 시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문제의 해법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교리와 관행 위에 성경을 두는 것이다. 성경 앞에서 모든 것을 상대화하여 이교적 세속적 요소를 제거하고, 교회안에서 주인 행세 하는 우상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진지하고 정직한, 그리고 철저한 연구와 묵상을 수행하고 이를 가르쳐야 한다. 

저자는 기독교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을 그리고 이시대 한국교회를 연관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를 위해서 헬조선, 개독교라는 단어를 극복할 것을 이시대 교회에 요청하고 있다. 앞서 1-4부는 5부를 선포하기 위한 서론이라고 여겨진다. 5부의 각 주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1장. ‘헬조선’을 향해 인간의 가치를 선포하라
2장. 근원으로, 성경으로 돌아가라
3장. 단절된 세상과 소통하라
4장. 신학자여, 저항하는 지식인으로 발언하라

앞서 말한 것처럼 저자는 이 내용을 역사 신학회의 기조 연설로 준비했기에 마지막 부분에 신학자들을 향해서 저항하는 지식인이 될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는 학문을 하는 신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역자, 목회자들을 향해 요청되는 메시지일 것이다. 

저자는 이책의 말미 5부 4장 “신학자여, 저항하는 지식인으로 발언하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문주의자들은 대학과 교회를 지배하던 스콜라주의를 당당하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교회의 전통이란 미명하에 성경적 진리를 억압, 왜곡하던 당대의 교회를 향해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다. 성경과 초대교회를 토대로, 성직자와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용감하게 지적하며 저항했다. 이를 위해 대학의 강단이나 교회의 고위직에 연연하지 않고, 당시에 빠르게 발전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쇄소를 중심으로 학문과 지성을 통해 시대와 싸웠다. (중략) 그야말로, 인문주의자들, 특히 종교개혁자들은 비판적 지식인, 행동하는 지성, 저항하는 인텔리겐치아였던 것이다. 반면, 현재 한국의 신학자들은 철저하게 교권에 종속되어 있다. 교파와 신학의 차이를 떠나, 대부분의 교단신학교는 교단의 통제 아래 놓여 있으며, 학문의 자유나 교수의 신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교단의 전통적 입장에 대한 일체의 비판적 성찰이 불가능하며 신학적 실험도 거의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신학자들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면서 다수의 신진 학자들이 신학교에서 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다양한 명목의 비정규직 신분에 놓여 있기 때문에 학교 내의 갑을 관계도 극복하기 어렵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내며 한국교회를 위해서 외친 저자의 외침은 이시대 신학자들과 사역자들을 향한 사자후처럼 들린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상실해 버린 시대에, ‘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를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상식이 기적이 되어 버린 교회’속에서, 개독교라는 비판을 달게 받으며 우리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혁을 외치고 이를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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