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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now, yO priests, zthis command is for you. aIf you will not listen, if you will not take it to heart to give honor to my name, says the Lord of hosts, then I will send bthe curse upon you and I will curse cyour blessings. Indeed, I have already cursed them, because you do not lay it to heart. Behold, dI will rebuke your offspring,1and espread dung on your faces, the fdung of your offerings, and you shall be taken away with it.2So shall you know that I have sent gthis command to you, that hmy covenant with Levi may stand, says the Lord of hosts. My covenant with him was one of life and ipeace, and I gave them to him. jIt was a covenant of fear, and he feared me. He stood in awe of my name. kTrue instruction3was in his mouth, and no wrong was found on his lips. He walked with me in peace and uprightness, and he lturned many from iniquity. For mthe lips of a priest should guard knowledge, and people4should seek instruction from his mouth, for he is the messenger of the Lord of hosts. But you have turned aside from the way. nYou have caused many to stumble by your instruction. You have corrupted othe covenant of Levi, says the Lord of hosts, and so pI make you despised and abased before all the people, inasmuch as you do not keep my ways but qshow partiality in your instruction.” 
ych. 1:6
zver. 4
aLev. 26:14; See Deut. 28:15
b[ch. 3:9]
c[Ps. 69:22]
d[Joel 1:17; Hag. 2:17]
1Hebrew seed
eNah. 3:6
f[Ex. 29:14]
2Or to it
gver. 1
hver. 8; Num. 25:12, 13; Neh. 13:29; [Num. 3:45]
iSee Isa. 54:10
j[Lev. 16:2]
k[Deut. 33:10]
3Or law; also verses 7, 8, 9
l[Dan. 12:3; James 5:20]
mDeut. 17:9; See Lev. 10:11
4Hebrew they
n[1 Sam. 2:17; Jer. 18:15; Ezek. 22:26]
oSee ver. 4
p[1 Sam. 2:30]
qDeut. 1:17; 16:19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말 2:1–9.

본문은 앞선 두번째 논쟁에 있어서 제사장들에 대한 추가적인 경고의 내용이다. 

1절) 제사장들에 대해 명령하시는 하나님
여기서 명령은 ‘미쯔바’라는 단어로 권고, 명령이라는 의미인데 이 명령의 내용은 4절에서 나오는 레위 언약으로 보인다. 말라기의 이 명령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는 것, 그의 언약을 지키는 것, 야곱에게(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 여호와의 제단에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신 33:9-10) 이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면서 레위를 향하여 한 축복이다. 
(신 33:9-10, 개정) 『[9] 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2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제사장들을 고소하시는 내용
제사장들이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할 것이다. 하나님게서 이미 저주하셨나니 이는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 동사 듣다는 ‘순종하다’는 의미에서 ‘경청하다’ 혹은 ‘듣다’를 의미한다(NJPS, 신 28:15 참조). 관용어구 마음에 두다는 학개, 스가랴, 말라기 전집에서 여섯 번 등장한다(학 1:5, 7; 2:15, 18 [2번]; 말 2:2 [2번]). 이 표현은 감정이 아닌 의지(will)의 문제를 가리킨다(‘결심하라’ NLT; ‘신실하게 결단하라’ NJB; ‘결단하라’ NIV 2001). 듣다의 동사 형태는 성취를 위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조건절을 가리킨다(제사장 편에서의 절박한 회개, 3:7 참조).
단어 저주는 구약 성경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단어이다(오직 신 28:20; 잠 3:33; 28:27; 말 2:2; 3:9에만 등장한다). 보내다는 동사와 결합하여 사용된 이 구문은 말라기가 신명기 28장의 저주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저주로 인하여 제사장적인 축복이 위협받음으로써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축복의 기도(민 6:24–27)39)와 성전 봉사에 대하여 제사장이 물질적인 형태로 받게 되는 보상, 이 두 가지 복이 위협을 받게 된다.40)
NJPS New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5
NLT New Living Translation, copyright © 1996[2004, 2007]. Anglicized version, copyright © 2000
NJB New Jerusalem Bible, copyright © 1985 by Darton, Longman & Todd Ltd and Doubleday, a division of Bantam Doubleday Dell Publishing Group, Inc.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copyright © 1973, 1978, 1984
39)Keil (1975:442–443).
40)Rudolph (1976:265).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20–421.

3절) 희생 제물의 똥을 그들의 얼굴에 바르고 제사장들이 똥과 함께 제함을 받게 될 것이다.
꾸짖다라는 단어는 ‘가아르’로 책망하다, 비난하다라는 의미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가라’로 수정하여 분리하다, 제거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본문의 똥은 ‘페레스’는 찌거기, 배설물, 거름등의 의미로 도살당한 희생 제물의 내장 혹은 쓸모없는 부분(소화되지 않은 위의 내용물)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구약에 의하면 희생제물을 드리는 중에 제물의 구성물, 고기와 가죽과 정강이와 내장과 똥, 곧 송아지 전체를 진영 밖에 내다 버려 불태우도록 했다. 이는 제사장들이 저주를 받아 이렇게 내침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마치 이스라엘의 희생 제물이 받아들여졌고 속죄가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복을 뻔뻔하게 빌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의 복을 저주하실 것이다. 메튜 헨리는 “하나님을 존귀케 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비행보다 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 Because they “polluted” God (1:7), he will figuratively pollute and disqualify them for service at the altar by spreading on their faces the dungtaken from their rejected sacrifices (2:3). Since that dung was to be taken away from the sanctuary and burned (e.g., Ex. 29:14; Lev. 4:11ff.), so they too will be taken away. Because they presumed to bless the people of   p 1776  God, as if Israel’s sacrifices had been accepted and atonement made, God will now cursetheir blessings. As Matthew Henry put it, “Nothing profanes the name of God more than the misconduct of those whose business it is to do honor to it.”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5–1776.

- dung.The dung or entrails of the sacrificial animals that were burned outside the camp along with the hide and flesh (cf. Exod 29:14; Lev 8:17; 16:27). Since the priests had defiled God (1:7), he will figuratively defile and disqualify them for priestly ministry. The humiliating act of God rubbing dung on the faces of the priests rendered them unfit for temple service since they were ritually unclean (cf. Lev 4:11; 8:17; Num 19:5–7). Like the dung taken away from the sanctuary and burned, they too will be carried off (e.g., Exod 29:14; Lev 4:11–12, 21).
cf. compare, confer
cf. compare, confer
e.g. for example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5.

4절)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
이는 이후 5절의 “생명과 평강의 언약”인데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바알 브올에 가담하여 음행한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인을 창으로 죽인 비느하스의에게 하나님께서 평화의 언약을 주셨다.(민 25:1-13)
- my covenant with Levi.Perhaps an allusion to the “covenant of life and peace” (v. 5) between Yahweh and Phinehas for his zeal in defending God’s honor against those involved in idolatry and immorality at Baal of Peor (Num 25:1–13; cf. Num 3:12–13; Jer 33:21) or more generally to the blessing of Levi by Moses (Deut 33:8–11). The ancient priestly ideal is contrasted with the disgraceful reality of an irreverent priesthood.
v. verse in the chapter being commented on
cf. compare, confer
 D. A. Carson, ed.,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1886.

- 여호와와 레위 지파 제사장의 조상인 레위 사이에 언약을 세운 것에 대한 언급이 없다(비록 느 13:29에 레위 지파와 제사장의 언약을 또한 언급하지만). 하지만 구약 성경은 그러한 언약에 대한 ‘암시’는 갖고 있다. 즉 출애굽기 32:26–29(시내 산에서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레위의 아들들이 우상숭배자들을 살해한 것에 대한 반응에서),46)민수기 25:11–13(바알 브올에서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머물 때에 비느하스가 영웅적으로 행동한 후에),47)신명기 33:8–11(모세가 레위 지파를 축복하는 시에서),48)예레미야 33:20–21(레위 지파와의 언약에 대한 반성 [즉 모세 언약?]).49)비록 공식적으로 언약으로 확인되지 않을지라도 말라기의 언어는 레위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과 비슷하다(신 33:8–11).50)
46)Baldwin (972:254).
47)Glazier-McDonald (1987:79–80).
48)Verhoef (1987:245)도 같은 의견이다.
49)ABD4:294–295.
50)Stuart (1998:1305).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23–424.

5졀)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다.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레위에게, 제사장들에게 준 것은 그들로 하여금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생명(하임)과 평강(샬롬)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가져오는 은혜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복은 아론의 촉복을 통해 이스라엘로 확대된다.(민 6:24-26)
(민 6:24-26, 개정)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6-7절) 제사장들의 역할
제자상들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들이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한다. 왜나하면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이기 때문이다. 
본문에 법, 율법으로 표현된 단어는 ‘토라’로 교훈을 의미하는데 이는 모세 율법안에 뿌리를 둔 제사장의 법적이고 교육적인 기능을 말한다. 말그대로 제사장은 하나님의 규훈, 율법을 전하고 가르침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죄로부터 돌이켜 구원에 이르게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런 제사장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그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묻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자라는 단어는 ‘말라크’로 제사장이 하나님의 계시의 역할을 담당하는 천사나 선지자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 단락(2:6–8)은 세 절로 된 시인데 2:5에서 시작된 레위 지파 제사장의 역사적인 의무에까지 확장된다.58)단어 교훈(토라, tôrâ)은 모세 율법 안에 뿌리를 둔 레위 지파 제사장의 법적이고 교육적인 기능을 가리킨다(신 33:9–10; 렘 18:18; 겔 7:26 참조). 이 언약에 기초한 가르침은 구전과 기록으로부터 이끌어 왔을 것이다. 이 가르침은 종교의식이 요구하는 사항에 대한 교훈과 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규칙들 곧‘바른 삶을 위한 안내서’를 포함했을 것이다.59)레위의 참된 교훈(‘진리의 법’ 개역개정-역주)은 많은 사람들이 죄 짓도록(2:8) 하게 하는 말라기의 동시대 레위 지파의 가르침과 대조되는 것이다.
나와 동행하며라는 표현은 신학적으로 ‘하나님을 인간의 중심에 모시는’60)언약에의 순종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나의 언약이 그와 함께 있었다(2: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 개역개정-역주)와 그가 나와 동행하였다(6절)라는 표현이 나란히 있는 것은 여호와와의 언약 관계에서 상호성의 사상을 아주 잘 묘사한다.61)화평함(샬롬, šālôm)은 ‘하나님의 의지와의 완전한 조화’를 가리키며, 정직함(‘정의’ JNB)은 ‘그들(즉 제사장들)의 행위와 행동의 도덕적인 정직성’을 가리킨다.62)NJPS는 이 두 단어 화평함과 정직함을 이사일의(hendiadys)를 가리키는 말로, 즉 레위 지파 제사장들의 입장에서 ‘완전한 충성’으로 이해한다.
단어 돌이켜(슈브, šûƅ)는 회개를 가리킨다(아래의 3:7의 논의를 보라). 모세 율법에 근거한 제사장들의 교훈은 백성들로 하여금 악행을 그만두게 했으며(‘많은 사람을 불법을 삼가게 했다’ NJPS) 하나님께로 그들을 돌아가게 했다(‘개심했다’ NJB).63)
58)Stuart (1998:1320).
59)Glazier-McDonald (1987:70).
60)TDOT3:395.
61)Glazier-McDonald (1987:71).
62)Verhoef (1987:249); ‘왜냐하면 그가 나에게 순종했고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CEV.
NJPS New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5
NJPS New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5
NJB New Jerusalem Bible, copyright © 1985 by Darton, Longman & Todd Ltd and Doubleday, a division of Bantam Doubleday Dell Publishing Group, Inc.
63)Verhoef (1987:249).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26–427.


8절) 그러나 너희 제사장들은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을 거스르게 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는데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다. 
앞서 제사장들이 행해야하는 의무와 반하여 이들은 그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많은 사람을 율법의 말씀으로 이끌어야할 이들이 그 율법을 거스르게 만든 것이다. 
언약의 부패는 새로운 언약과 완전한 제사장을 필요로 한다.
- The corruption of the covenant shows the need for a new covenant (Heb. 8:8–13) and a perfect priest (Heb. 7:11–8:6).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776.

앞서 본 것처럼 제사장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율법, 토라, 교훈을 바르게 전할 때 그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반대로 제사장들이 옳은 길에서 떠나서 잘못된 교훈을 가르칠때 많은 이들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에 실패할 수 밖에 없고 그것에 거스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9절) 제사장들이 주님의 길을 지키지 않고 율법을 편파적으로 적용하였기에 하나님께서도 제사장, 너희들을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다. 
필연적으로 제사장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율법을 바르게 적용하지 않을때 생명과 평강이 아니라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될 것이다. 

- 슬프게도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건전한 가르침을 마련하지 못했으며 여호와를 예배하는 데 있어서 고결한 모범도 되지 못했다. 대신에 그들은 모세 율법에서 벗어났으며 백성들이 길을 잃도록 인도했다(8절). 그런 부패한 제사장들에 대한 말라기의 치유책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었다(7절). 그런 가르침은 합당한 예배를 일으키며 의로운 삶을 회복시킨다(5–6절). 영적부흥이 올 때까지 심고 거둠의 윤리는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즉, 제사장들은 멸시받고 굴욕당하였다. 게다가 제사장들도 자신들의 공식적 역할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명령하신 하나님까지 멸시했다(9절; 1:13 참조).
III. 세 번
 힐앤드류E., 학개·스가랴·말라기, ed. 백승현 and 정희연, trans. 유창걸, 초판., vol. 28,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43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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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Curses the Fig Tree
12 wOn the following day, when they came from Bethany, xhe was hungry. 13 yAnd seeing in the distance a fig tree in leaf, he went to see if he could find anything on it. When he came to it, he found nothing but leaves, for zit was not the season for figs. 14 And he said to it, “May no one ever eat fruit from you again.” And his disciples heard it.

12-21절 사이에 마가는 무화과 나무와 성전 청결, 무화과 나무의 이야기를 제시한다. 
The way in which Mark organizes his material in these verses (fig tree/cleansing of temple/fig tree) suggests a connection between the cleansing of the temple and the cursing of the fig tree.
본문의 무화과 나무 사건과 이후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는 사건은 불신앙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임박한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언적인 행동이다. 
The cursing of the fig tree and the expulsion of the merchants from the temple (11:15–19) are prophetic actions that symbolize the same thing, the coming judgment on unfaithful Israel by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nd its temple. Israel, like the fig tree, appeared to be thriving; but the appearances were deceiving because Israel and the fig tree were bearing no fruit. The magnificence of the temple masked the corruption and false security associated with it. Just as the fig tree was cursed and withered, so Israel was about to be condemned and decline in importance. Just as the merchants were expelled from the temple, so the religious establishment that authorized the merchants was about to be expelled from its favored place.
Both the cursing and the expulsion are acted or dramatized parables in the tradition of the Old Testament prophets. Compare Isaiah’s walking around naked and barefoot to symbolize the “stripping” of Egypt (20:1–6), Jeremiah’s retrieving a rotten waistband to symbolize the humiliation of Judah (13:1–11), Jeremiah’s breaking of an earthen jar to symbolize the “breaking” of Judah (19:1–3, 10–11), and Jeremiah’s wearing a yoke around his neck to symbolize enslavement to the king of Babylon (27:1–15; 28:10–17; see also 2 Chr 18:10 and Ezek 4–5).
The fig tree symbolizes faithless Israel. It is so used in the Old Testament: Jer 8:13; 29:17; Hos 9:10, 16–17; Joel 1:6–7; Mic 7:1. The fig tree is an object of judgment in Isa 34:4 and Hos 2:12.

12절) 앞서 군중들의 환호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은 전날 성전을 둘러보신 후에 이틑날 베다니에서 나와 성전을 향하고 계셨다. 이때에 주님께서 시장하셨다 

13-14절) 이때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그것에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하여 나가셨지만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셨는데 왜냐하면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주님께서 그 무화과 나무에게 영원토록 열매가 나지 않을 것을 저주하셨다. 
Since the fruit of the fig tree begins to appear about the same time as the leaves (or a little after), the appearance of leaves in full bloom should have indicated that fruit (in the form of green figs) was already growing. Jesus’ actions here have symbolic importance, signifying the hypocrisy of all who have the appearance that they are bearing fruit but in fact are not. The specific reference, though, is to Israel, since in the OT the fig tree often serves as a metaphor for Israel and its standing before God (e.g., Jer. 8:13; Hos. 9:10, 16; Joel 1:7). Here the cursing of the fig tree signifies the judgment of God on the “fruitless” Jewish people (cf. Mark 7:6), who had turned away from God into empty ritual and legalism (cf. Hos. 9:10–17). It is a visual parable to signify Jesus’ unrequited search for the true fruit of worship, prayer, and righteousness in the Jewish nation and its religious practices.

당시 일반적으로 6-11월 정도에 무화과 열매를 얻을 수 있었다. 이사건은 유월절에 발생한 것으로 4월정도니까 2-3개월정도 이른 시점에 예수님께서 열매를 요청하신 것이다. 예외적으로 4월에도 덜 익은 무화과를 먹을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제 철이 아니다.
 - Leaves are found on Palestinian fig trees except for the three winter months, and ripe figs are present from June until November. Therefore the event must have taken place during March, April, or May. Of course the Passover usually came in April. According to some, small green figs, which in an emergency could be eaten but ordinarily were not, appear in March even before the leaves; but it is doubtful that anything should be made of this. Mark’s parenthetical statement “it was not the season for figs” alerts the reader/ hearer to look for symbolic meaning (such parenthetical statements are another element of Markan style; cf. 1:16; 5:42; 7:3–4; 13:14). The statement may be an allusion to Mic 7:1 and/or Jer 8:13. If so, it could mean that at the time Jesus spoke Israel was not producing the fruit God expected. Israel, like the fig tree, was barren when Jesus came to it. This understanding would ease some of the difficulty.

이 열매 없는 무화과를 향해 저주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저주임을 알았을까?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면서 당신의 사람들에게 열매를 요구하시는데 정말 필요한 때에 열매를 맺지 못할때, 열매가 없을때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열매들을 저주하셔서 더이상 열매를 얻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만 백성을 향한 구원의 방주의 역할을 요구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소망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행하지 않는 당신의 백성들을 향해 심판을 향하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25절을 통해서 기도할 것을 요청하신다. 
  • Jesus’ statement in the first part of the verse indicates that Israel would not again be the primary instrument of accomplishing God’s purpose. The statement that the disciples heard him means that they grasped the truth. Although Mark did not record it, they must have been horrified. Mark felt a need to present the encouraging statements of vv. 22–25 because later disciples were also perplexed about the fate of Israel.

성전 청결을 하시는 주님, 그 주님께서 이 사건을 설명하시면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고 계신 것이다. 어쩌면 무화과 나무로서는 너무 속상한 것이다. 아직 때가 아닌데 자신에게 열매를 요구하시고 열매를 맺지 못하신다고 나무를 말라죽게 하시니 말이다. 하지만 사건의 핵심은 바로 성전 청결에 있다. 당시 로마는 절대 강국으로 모든 도시에 신당을 세우고 그 신당에 우상을 섬기도록 했다. 메베소, 아테네, 고린도, 알렉산드리아에 가이사의 상이 서 있었고 사람들은 그 우상앞에 절하는 것이 너무나 일상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만은 달랐다. 구약에 따라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혐오했고 우상을 섬기지 않으려는 시도를 유대인들은 했다. 이런 신앙적인 이유로 이방땅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여 예배드릴때 이런 편의를 돕기 위해서 성전에서는 희생 제물을 판매하고 동전을 바꿔준 것이다. 당시 각국에서 발행되는 화폐에는 황제의 상이 그려져 있어 이것이 우상으로 여겨져 성전에 직접 드려지는 것을 꺼려했기에 성전에서는 동전을 바꿔주는 일을 한 것이다. 처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때는 온전히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기위한 의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도리어 본래의 의도를 망각하고, 아니면 전혀 의식하지 못하면서 본질을 놓치게 된 것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통렬하게 지적하고 계신 것이다. 
The cursing of the fig tree is a disturbing event (Anderson 1976:265), especially so because Mark clearly states that figs were out of season. Some try to soften this story by claiming that Jesus expected to find first fruits on the tree, the few figs that would have appeared in advance of the full crop which would come later (Gundry 1993:636). While the story might be read in that way, the unqualified statement because it was not the season for figs cannot be reconciled with this line of interpretation. The plain implication of this simple statement is that there was nothing wrong with the fig tree. The fig tree, then, is a sign or symbol of something else, and Mark’s intercalation points to the temple.
The setting for what Jesus did in the temple is the days leading up to Passover, perhaps during the Festival of Sukkoth. Both Passover, which celebrates God’s deliverance of the Jewish people from Egypt, and Sukkoth, which commemorates God’s provision in the wilderness, were celebrations of national pride. In the first century when the Jewish people lived under the administration of Rome, these festivals were also a flash point for patriotic hopes. They brought out the deepest religious and patriotic feelings of the people, yet as Jews from around the world streamed into Jerusalem to celebrate their day of liberation, foreigners held the reigns of power in the Promised Land.
There was one place, however, where the Jewish people were still in control—the temple. Caesar permitted them to practice their religion unhindered by the politics of Rome. In Ephesus the temple of Artemis housed statues of the goddess Roma and Caesar Augustus. Temples in Athens, Corinth and Alexandria held similar statues. Throughout the Mediterranean world, houses of worship displayed tokens of their allegiance to Rome, but it was not so in Jerusalem. The temple in Jerusalem housed no statues of any kind. It was unpolluted by the trappings of foreign gods, and the keepers of the temple were committed to keeping it pure.
Rome’s tolerance and a Jewish commitment to keep the temple pure help to explain the presence of the moneychangers. Church governing boards and pastors often cite what Jesus did in the temple as a reason to prohibit the sale of anything on church patios on Sunday mornings. There is very little in this Gospel to support such a prohibition. Despite efforts to prove otherwise (Anderson 1976:266), Mark contains no hint that the animals offered for sacrifice were overpriced or that the rate of exchange was artificially inflated. In fact, an argument might be made that the sellers and moneychangers were providing an important service. The pilgrims who streamed in from all parts of the Roman Empire to celebrate Passover needed a ready supply of animals to sacrifice, and the money they brought with them was typically inscribed with the image of a god or goddess. It would not do to have pious Jews purchase sacrifices for the one true God with idolatrous currency, so the temple authorities authorized the striking of money that contained no offensive symbols. Those who came to Jerusalem to worship were required to use this currency to purchase their sacrifices.

본문의 무화과나무 사건은 다음에 등장하는 성전 청결과 반드시 연결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성전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들을 향한 통렬한 심판을 무화과 나무로 예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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