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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Israel saw Joseph’s sons, he said, “Who are these?” Joseph said to his father, f“They are my sons, whom God has given me here.” And he said, “Bring them to me, please, that gI may bless them.” 10 Now hthe eyes of Israel were dim with age, so that he could not see. So Joseph brought them near him, iand he kissed them and embraced them. 11 And Israel said to Joseph, j“I never expected to see your face; and behold, God has let me see your offspring also.” 12 Then Joseph removed them from his knees, and he bowed himself with his face to the earth. 13 And Joseph took them both, Ephraim in his right hand toward Israel’s left hand, and Manasseh in his left hand toward Israel’s right hand, and brought them near him. 14 kAnd Israel stretched out his right hand and laid it on the head of Ephraim, who was the younger, and his left hand on the head of Manasseh, lcrossing his hands (for Manasseh was the firstborn). 15 And he blessed Joseph and said,

“The God mbefore whom my fathers Abraham and Isaac walked,

the God who has been my shepherd all my life long to this day,

16  nthe angel who has oredeemed me from all evil, bless the boys;

and in them let pmy name be carried on, and the name of my fathers Abraham and Isaac;

and let them qgrow into a multitude3 in the midst of the earth.”

17 When Joseph saw that his father rlaid his right hand on the head of Ephraim, it displeased him, and he took his father’s hand to move it from Ephraim’s head to Manasseh’s head. 18 And Joseph said to his father, “Not this way, my father; since this one is the firstborn, put your right hand on his head.” 19 But his father refused and said, r“I know, my son, I know. He also shall become a people, and he also shall be great. Nevertheless, shis younger brother shall be greater than he, and his offspring shall become a multitude4 of nations.” 20 So he blessed them that day, saying,

“By you Israel will pronounce blessings, saying,

t‘God make you as Ephraim and as Manasseh.’ ”

Thus he put Ephraim before Manasseh. 21 Then Israel said to Joseph, “Behold, I am about to die, but uGod will be with you and will bring you again to the land of your fathers. 22 Moreover, I have given to vyou rather than to your brothers one mountain slope5 that I took from the hand of the Amorites with my sword and with my bow.”

f [ch. 33:5]

g ch. 49:25, 26; Heb. 11:21; [ch. 27:4]

h [ch. 27:1]

i ch. 27:27

j [ch. 37:33; 45:26]

k ver. 17

l ver. 19

m ch. 17:1; 24:40

n ch. 28:15; 31:11, 13, 24; Ex. 23:20

o Isa. 44:22, 23; 49:7; 63:9; [2 Sam. 4:9; Ps. 34:22; 121:7]

p Amos 9:12; Acts 15:17

q [Num. 26:34, 37]

3 Or let them be like fish for multitude

r ver. 14

r [See ver. 17 above]

s Num. 1:33, 35; 2:19, 21; Deut. 33:17

4 Hebrew fullness

t [Ruth 4:11, 12]

u ch. 46:4; 50:24

v Josh. 24:32; John 4:5

5 Or one portion of the land; Hebrew shekem, which sounds like the town and district called Shechem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48:8–22.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1)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1) 또는 한몫을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48:8–22.

 

 

8-11절) 이스라엘(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들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야곱이 나이가 많아(147세) 시력이 쇠퇴하여 이들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전에 이삭이 눈이 어두워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축복하였었다.(27:1) 이에 요셉은 이들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아들들임을 밝히자 야곱은 손자들을 축복하기를 원하여 나아오게 했고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고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자 야곱에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았다. 야곱은 손자들을 안은 상태에서 요셉을 축복한다. 요셉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손자들 까지 보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다.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보면서 이들이 누구냐라고 물은 것은 육체적으로 시력이 나빠져서 일 수도 있고, 법적인 입양 절차를 시작하면서 이들의 신분과 순서를 확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에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아들들이라고 말하며 입양식을 시작했고 야곱이 그들을 안고 입맞추며 요셉을 축복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 손자들이야말로 야곱에게 있어서, 또한 요셉에게 큰 선물이었다. 야곱은 자신의 생애에 다시금 요셉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또한 지금 자신 앞에 두 손자를 데리고 나아온 것이다. 야곱은 이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야곱은 이 입양식을 위해서 자신의 무릎에 이 두아이를 앉히고 입맞추고 안고 있는데 이는 사랑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에 의하면 ‘내아들들이다’라는 상징성을 지녔다고 한다. 말하자면 야곱이 이 손자들을 아들들로 입양했음을 뜻하는 행동인 것이다. 

 

10  In the later years of his life Jacob has the same problem as did Isaac his father—failing eyesight (27:1). Therefore, Joseph brings his sons right up to Jacob, within arm’s reach, so that he may bless them. Jacob, first the subject of blessing (47:7, 10), then the object of blessing (48:3), is again the subject of blessing. Before Jacob blesses his grandchildren he shows his affections for them by kissing and embracing them. (These two verbs were used in 33:4 when Esau and Jacob were united with each other after a long separation.) Jacob may be losing his eyesight, but he is not losing his emotional attachment to his family.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verbs in 33:4 and 48:10 is their sequence. In 33:4 the sequence is “embraced” (wayeḥabbeqēhû), then an intervening verb, then “kissed” (wayyiššāqēhû). The same sequence for these two verbs occurs in 29:13, when Laban greeted Jacob and embraced and kissed him. 48:10 reverses this sequence. The embrace is a sequel to the kissing, not a prelude, indicating Jacob’s desire to hold his grandsons in his embrace for an extended period.26

26 Both sequences occur in the Ugaritic texts: y[ḥb]q wynšq, “he embraced and kissed (her)” (UT, 1 Aqht [= CTA, 19].63–64, 70–71); bm nšq whr bḥbq ḥmḥmt, “from kissing and conception, from the embrace of pregnancy” (UT, 52 [= CTA, 23].51, 56); bm nšq aṯth bḥhqh ḥmḥmt, “in the kissing of his wife [she’ll conceive], in his embracing became pregnant” (UT, 2 Aqht [= CTA, 17].I.40–41). These Ugaritic passages are cited by Avishur, Stylistic Studies of Word-Pairs, p. 356.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34.

 

12-20절) 입양식이 끝나자 요셉은 아이들을 할아버지 야곱의 무릎에사 나오게 하고는 아버지 야곱에게 엎드려 절했다. 입양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행동이었다. 이어서 요셉은 첫째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손에, 둘째 에브라임을 야곱의 왼손에 오도록 이끌고 세웠다. 그런데 야곱이 자신의 손을 어긋나게 하여 오른손으로 둘째 에브라임을, 왼손으로 첫째 므낫세를 축복하였다. 

야곱은  이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축복했던대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구했다. 이 복은 이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며 합법적인 자식들임을 선언함과 동시에 세상에서 번성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오른손으로 둘째 에브라임을 축복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아서 아버지을 옮기려고 했으나 야곱이 이를 거절한다. 자신도 이를 알고 있는데 이렇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아우가 장자보다 더 큰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이미 이스마엘과 이삭의 관계에서, 에서와 야곱의 관계에서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16절에서 야곱은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본문의 번식되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다가’로 수가 늘어나다. 증가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물로기와 연관되어 사용되는 단어로 성경에서 여기에 단 한번 등장하는 단어이다. 이 야곱의 축복은 실제로 훗날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통해 증명된다.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생활을 시작되는 시점에 이 두 지파의 성인 남자의 수는 72,700명(민 1:32-35)이었는데 끝날때는 85,200명(민 26:28-37)에 달했다. 이와 비교했을때 르우벤과 시므온 지파에 속한 장정들의 숫자는 105,800명에서 65,930명으로 줄었다. 

 

14절에서 야곱은 팔을 어긋나게해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다. 이는 그의 눈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영성은 어두워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요셉은 아버지가 눈이 보이지 않기때문에 아버지를 도와 친절하게 오른손에 첫째 므낫세가 오도록, 왼손에 둘때 에브라임이 오도록 위치하고 아버지께서 축복하도록 했지만 지금 야곱은 애써서 팔을 어긋나게 해서 축복을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야곱이 듣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에 순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가인, 이스마엘, 에서, 르우벤의 경우에는 그들의 행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그 축복을 넘기셨다면 본문에서 므낫세가 특별히 그의 장자권을 빼앗길 만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4  To the surprise of everybody, Jacob crosses his hands and places his right hand on the younger boy and his left hand on the older boy. From this action of Jacob comes the eventual precedence of Ephraim over Manasseh. Jacob may be losing his sight, but he is not losing his insight. For some undisclosed reason Jacob ignores the law of primogeniture. Manasseh thus joins a long list of firstborn in Genesis who for one reason or other are passed by—Cain, Ishmael, Esau, Reuben, and Zerah. The text is strangely silent about the stimulus for Jacob’s surprise move. How does he know to cross his hands and bless with the right hand the younger boy? Is he guided by “a supernatural impulse”?30 Does he do a right thing inadvertently?31 In any case, “the blind patriarch shows an insight into the future denied to his clear-sighted (and occasionally clairvoyant) but for once earthbound son.”32

In the case of Ishmael and Isaac, God told Abraham directly that Isaac was to be his “firstborn” (21:12). In the case of Esau and Reuben, they forfeited their firstborn position because of their behavior. Here, however, Manasseh has done nothing to lose his position, and Jacob has received no revelation of Ephraim’s elevation. Perhaps we have here another instance from the Ancient Near East of a (grand)father’s right to disregard the law of primogeniture, and choose his own “firstborn.”33 (If such was practiced in Canaan, it was later prohibited by law—see Deut. 21:15–17.)

The act of hand imposition in this incident is conveyed by the verb šîṯ (vv. 14, 17) and by the verb śîm (v. 18), both of which mean “put, place.” In contrast, throughout priestly literature, wherever there is a laying on of one hand (Lev. 1:4) or of both hands (Lev. 16:21), the verb that is consistently used is sāmaḵ. It is possible that šîṯ/śîm and sāmaḵ are synonyms. But it is also possible that šîṯ/śîm may refer to laying one’s hands on the head of another lightly, while sāmaḵ implies the use of more pressure.34 If this distinction can be maintained, then we have a Jacob who earlier “embraced” Ephraim and Manasseh (i.e., a strong, sustained, physical touch), but who now lightly places his hands on their head in an act of blessing. Through placing his hands on Joseph’s children, Jacob simply engages in an act by which he designates who the recipients of blessing are, and an act by which the actual blessing is bestowed.35

30 So Skinner, Genesis, p. 505; cf. Speiser, Genesis, p. 360.

31 Cf. Brueggemann, Genesis, p. 363.

32 Sternberg, Poetics of Biblical Narrative, p. 353.

33 See I. Mendelsohn, “On the Preferential Status of the Eldest Son,” BASOR 156 (1959) 38–40.

34 The distinction is made by J. Milgrom, Leviticus 1–16, AB (New York: Doubleday, 1991), pp. 150–51, on the basis of a few passages in the OT where śāmaḵ (yaḏ) means “to lean on/against” (Judg. 16:29; Amos 5:19), i.e., exert pressure, and on postbiblical Jewish traditions. For a contrary view, see D. P. Wright, “Hands, Laying on of,” ABD, 3:47–48.

35 See C. W. Mitchell, The Meaning of BRK “To Bless” in the Old Testament, SBLDS 95 (Atlanta: Scholars, 1987), p. 84.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36–637.

 

15-16절을 보면 야곱은 두 아들에게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의 복을 빌어주었다. 나를 기르신 하나님은 영어로 ’the God who has been my shephard’라는 표현으로 주의 백성들을 목자가 양을 돌보듯 돌보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평생을 목자로 살았던 야곱이 하나님께서 이들의 참 목자가 되어주시기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라는 표현은 ’the angel who has redeemed me from all evil’이라고 표현되어있다. 이는 천사들이 자신을 모든 환난, 악으로부터 구원할 구원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백성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구원자,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 가운데 역사하셨던 천사들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이 손자들에게도 있기를 빌어주고 있는 것이다. 

 

본문의 목자는 ‘로에’, 천사는 ‘말락’, 건지다, 구원하다는 ‘고엘’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창세기에서 천사는 여러번 등장한다. 광야의 하갈에게,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든 아브라함에게, 다른 나라로 주인의 명을 받아 떠난 종에게,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를 만났다. 

Jacob does not continue his testimony with “and the God before whom I walked.” Rather, when he comes to this autobiographical section he shifts the emphasis from himself and anything he has done to God and what he has done for Jacob. If Abraham and Isaac walked before God, God has walked before Jacob. When describing his fathers’ behavior before God, Jacob uses a verb form that conveys completed action (hiṯhalleḵû), which is what one expects. But when Jacob describes God’s behavior toward Jacob, he uses participles, which express continuous action, either in present time or in past time, and here are an equivalent to a relative clause. God has shepherded (rōʿeh) him, and delivered (gōʾēl)36 him. From Rebekah’s womb to his deathbed in Egypt, Jacob testifies that God has been there with him, leading him, liberating him.

In one breath Jacob refers to God (v. 15b) and in the next breath to The angel (v. 16a). In the Genesis narratives an angel, or heavenly messenger, appears at moments fraught with danger and turmoil—Hagar alone in a desert (16:7–11); Hagar with a near-dead son in the desert (21:17); Abraham holding a knife over Isaac (22:11–18); a servant making a long journey to another country (24:7, 40); Jacob preparing to leave his father-in-law (31:11); Jacob alone by a river, running from Laban and frightened by the prospects of meeting Esau (32:25–31 [Eng. 24–30]). No wonder then that Jacob would here speak of the angel who delivers him from every distress (mikkol-rāʿ).37

36 This is the only occurrence of the root gʾl in Genesis. As one would expect, it is used frequently in the Psalter in laments and songs of thanksgiving, but much more frequently in collective psalms than in individual ones. Gen. 48:16 is a rare instance of this verb used by an individual about himself. See N. P. Lemche, Early Israel, VTSup 37 (Leiden: Brill, 1985), pp. 344–48.

37 Some commentators have drawn a parallel between Jacob’s threefold invocation of deity (“God … God … angel”) with the prayer of Aaron: “May Yahweh bless … May Yahweh make … May Yahweh lift up” (Num. 6:24–26). See Westermann, Genesis, 3:189. The correspondence shows “the link between patriarchal tradition and the liturgy of Israel.”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37–638.

 

21-22절)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복을 빌어준 야곱은 이제 요셉에게 자신이 이제 죽겠지만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심으로 너희를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요셉에게 세겜 땅을 줄 것을 약속한다. 

본문의 세겜 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고유명사로소의 세겜 인지 아니면 한 몫, 어깨라는 의미인지 말이다. 

 

- 야곱은 마지막으로 요셉에게 무언가를 주겠다고 하는데 (22절), 그가 무엇을 주겠다고 하는지가 정확하지 않다. 이 구절을 형성하고 있는 히브리어 텍스트가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야곱이 요셉에게 주겠다는 ‘세캠’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이 단어는 도시 세캠을 뭇히는 고유명사 해석될 수 있고, 어깨를 뭇히는 일반 명사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말 번역본틀 중에는 개역개정과 새번역과 공동번역이 고유명사 세캠으로 번역했다. 반면에 개역성경은 야곱이 요셉에게 형제들보다 ‘일부분[한 몫]’ 더주었다고 번역했다. 주요 영어 번역본들은 모두 ‘어깨/몫’으로 번역했다-(NlV;NAS; NRS ; TNK). 이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최소한 세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Waltke) 

(1) 야곱이 형제들보다 더 우위인 요셉에게 세캠과 딸린 모든 샘을 주고 있다; 

(2) 야곱이 요셉에게 약속의 ‘땅의 어깨/등성(산악지대)을 주고 있다; 

(3) 야곱이 요셉에게 다른 형제보다 한 몫을 더 주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들 가장 유력한 것은 세캠을 고유명사로 취급하는 첫 번째 해석이다. 이 해석이 가장 자연스러우며, 세캠은 야곱과 요셉에게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cf. Mathews).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의 만행으로 인해 세캠에서 야밤에 도주해야 했고, 훗날 요셉의 뼈는 이곳에 묻히게 된다'(cf 24:32)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는 야곱이 형제들보다 더 우위인 요셉에게 세캠을 주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셉은 이 약속이 먼 훗날 그의 후손들에게서 실현될 것을 기대하고 믿을 뿐 현실적인 중요성은 별로 없었다. 우리는 아주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확실하게 붙잡기 전까지는 결코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Calvin).

야곱은 세캠을 칼과 활로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라고 한다(22b). 그러나 이때까지 창세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야곱은 이곳을 쳐서 정복한 적이 없다. 야곱이 하몰의 아들들로부터 이곳에 땅을 산 적은 있었다(33 : 19). 그러므로 이 말은 그가 시므온과 레위의 만행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그의 아들들의 칼과 창으로 그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을 이렇게 표현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Waltke). (엑스포지멘터리 805)

 

22  To conclude, Jacob gives to Joseph a piece of property (šeḵem) above and beyond what he is giving to his other sons. Part of the enigma of this verse is the qualifying phrase which I captured from the Amorites with my sword and bow. It was equally a conundrum for the targumists. Thus Targ. Jonathan reads, “which I took from the hands of the Amorites when you entered it [i.e., Shechem], and I stood by and helped you with my sword and with my bow.” Targ. Neofiti I is most interesting: “and I took it from the hands of my brother Esau neither with my sword nor with my bow, but rather with my merits and my good deeds.”21 The targumists were well aware of the fact that Jacob had looked with disgust on his sons’ raid on Shechem (34:30; 49:5–7). How then could this passage be read as attributing bellicosity to Jacob in seizing šeḵem? We do know of military adventures by Abraham (ch. 14), but none by Jacob.

Historians have tried to recover the incident to which this verse refers. For example, de Vaux points to Abimelech’s conquest of Shechem as the only conquest of Shechem by Israelites mentioned in the OT (Judg. 9). He sees the verse as a legitimation for Abimelech’s action.22 Gottwald sees in 48:22 a reference to an original Josephite seizure of land around Shechem. By contrast, Gen. 34 describes an earlier ʿapiru or proto-Israelite contact with Shechem.23 It is very unlikely that Gen. 48:22 is to be connected with 33:19 (cf. Josh. 24:32) which tells us about some property in Shechem Jacob bought from the locals for one hundred pieces of money.24 It is impossible to be certain about the event to which the last half of this verse refers. It has not been recorded in Genesis. In the light of the fact that the OT has no other record of a conquest of Shechem, and that Joshua supervised a covenant renewal service there (Josh. 24) but never had to conquer it, Gen. 48:22 may be a crystallized reference to a pre-Mosaic conquest of Shechem.25

In a chapter given over to a narration of the preferential status of of Ephraim over his brothers, the concluding note is one about Joseph’s preferential status over his brothers. Joseph is to his eleven brothers as Ephraim is to Manasseh. Although the family is miles away from Canaan, Jacob deeds a bit of it to Joseph. Jacob started a lot of problems by an extra gift to Joseph—the multicolored coat, which created friction. For a second time Jacob gives to Joseph an extra gift: one mountain slope.26 We know how the brothers reacted to the coat. We do not know how they reacted to the gift of real estate.

Targ. Targum

Targ. Targum

21 See M. Klein, “Converse Translation: A Targumic Technique,” Bib 57 (1976) 525–27. M. Aberbach and B. Grossfeld (Targum Onkelos to Genesis [New York: Ktav, 1982], pp. 278–79) note that some versions of Targ. Onqelos read the last phrase as “by my prayer and my supplication” by connecting beqaštî, “my bow,” with the verb bāqaš (to seek, request [in prayer from God]). The authors also note that “during the Talmudic age purely military exploits, which had signally failed to overcome Roman domination of Palestine, were discredited, and even the glorious victories of the Hasmoneans are virtually ignored in the Talmud” (p. 279).

22 De Vaux, Early History of Israel, pp. 637–38.

23 Gottwald, Tribes of Yahweh, pp. 541–42, 551–52.

24 Noth (History of Pentateuchal Traditions, pp. 83–85) believes that 48:22 and 33:19 do refer to the same piece of land. While in the present context the story in 48:22 takes place in Egypt, according to Noth this context is wholly artificial. In the “original” story Jacob died in Canaan surrounded by his descendants, and the setting is probably Shechem.

25 See G. E. Wright, Shechem: The Biography of a Biblical City (New York: McGraw-Hill, 1965), pp. 131–32; Sarna, Genesis, p. 330; R. G. Boling and G. E. Wright, Joshua, AB (Garden City, NY: Doubleday, 1982), p. 252. There are other explanations. For example, Lowenthal (Joseph Narrative, p. 143) cites the medieval Jewish commentator Abrabanel and his view that Jacob is here speaking sarcastically, esp. in reference to his sons. Jacob’s own “sword and bow,” by contrast, were ways of peace. It has also been suggested that the claim in 48:22 is purely fictional, concocted in circles that reacted against the idea of purchasing property from Canaanites (Gen. 33:19ff.). Josh. 24:12 (“it was not by our sword or bow”) would be a theological reaction against the militaristic and self-congratulatory statement of Gen. 48:22 and a harmonization with Gen. 33:19ff. Cf. E. Nielsen, Shechem: A Traditio-Historical Investigation (Copenhagen: Gad, 1959), pp. 283–86. Nielsen also suggests, but not too strongly, that lāqaḥ mîyaḏ means “to receive from one’s hand, to buy,” elsewhere (2 K. 5:20; Prov. 31:16), and if one understands the preposition be to mean “in exchange for, in return for,” a possible reading would be “which I have received from the hand of the Amorite by placing in return my military capacity at his control.”

26 It is possible to connect Jacob’s gift to Joseph with § 165 in Hammurapi’s Code, which speaks of a gift that a father makes to ablišu, “his heir,” as a sign of his special favor. While the translation in ANET, p. 173, identifies the heir as the firstborn, G. R. Driver (The Babylonian Laws, 2 vols. [Oxford: Clarendon, 1952–55], 1:345–46) thinks otherwise. He identifies ablišu as the favorite son, who may or may not be the firstborn. The law states that the gift is of landed property alone (as in Gen. 48:22). It cannot be movable property; it must be “a field, orchard, or house.”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64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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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Abram went, as the Lord had told him, and Lot went with him. Abram was seventy-five years old when he departed from qHaran. And Abram took Sarai his wife, and Lot his brother’s son, and all their possessions that they had gathered, and the people that they had acquired in Haran, and they set out to go to the land of Canaan. When they came to the land of Canaan, Abram rpassed through the land to the place at Shechem, to sthe oak4 of tMoreh. At that time uthe Canaanites were in the land. Then the Lord appeared to Abram and said, v“To your offspring I will give this land.” So he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who had appeared to him. From there he moved to the hill country on the east of wBethel and pitched his tent, with Bethel on the west and Ai on the east.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the Lord and called upon the name of the Lord. And Abram journeyed on, still going toward the Negeb.

q ch. 11:31

r [Heb. 11:9]

s ch. 13:18

4 Or terebinth

t Deut. 11:30; Judg. 7:1

u ch. 13:7

v ch. 13:15; 17:8; Ex. 33:1; Ps. 105:9–12; [Num. 32:11]; Gal. 3:16

w ch. 28:19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Ge 12:4–9.

 

4절) 앞선 부르심의 명령에 아브람은 순종했다. 이후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아브람의 순종에 대해서 믿음으로 나아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히 11:8, 개정)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다. 이렇게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가 75세였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고 즉각적으로 순종했다. 그런데 본문은 롯도 함께 갔다라고 말하고 있다. 롯의 아버지 하란이 죽은 후에 아브람은 조카 롯을 보호할 책임을 지고 있었을 것이다.(11:27-28) 하지만 아브람과 떠날 당시 롯이 어린 아이가 아니라 이미 상당한 양과 소를 소유한 성인이었다.(13:5-6) 이를 통해 볼때 롯이 억지로 아브람을 따라 나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를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창 13:5-6, 개정)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5절)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나서는 이 여정에는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래,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여기에 함께 한 많은 사람들은 그의 목축업을 함께 했던 목자들이었을 것이다. 

(창 13:7, 개정)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창 14:14, 개정)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창 17:12, 개정)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위 본문들에서 보는 것처럼 아브람과 롯에게 각각 목자들이 여럿 있었고 집에서 훈련된 병사들도 318명이나 있었다. 또한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들도 그의 휘하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들은 소유한 모든 것들, 재산과 양과 소를 거느리고 여러 사람들을 이끌고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 하란으로부터 가나안 땅을 향해서 나아간 것이다. 

 

6절)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Moreh) 상수리나무에 이르렀는데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고 있었다. 

세겜은 아브람의 하란을 떠난 아브람의 여정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첫번째 가나안 지역의 지명이다. 발굴을 통해서 알려진 바로는 이곳에 주전 1900년 전후로 많은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족장 시대에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고 한다. 이집트의 문서에도 이 세겜이 언급된다. 아브람은 목축을 했기에 도시의 중심부 보다는 도시 인근의 외관 지역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리고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다는 언급은 이후에 이들과의 갈등은 암시한다. 

 

 

아브람은 목축업을 하며 많은 식솔들을 거느리며 이동을 했기에 그들이 텐트를 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꽤 넓은 지역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도 그가 거주했던 곳들은 상수리 나무가 있는 지역들이었다. 

(창 13:18, 개정)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그리고 그는 이렇게 이동하며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약속하셨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그 곳에서 제단을 쌓았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게 현현하신 것은 처음이다. 이후에 이런 현현이 나타나는 경우는 특별한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된 경우들이다. 이 약속을 받는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아브람에게 자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 당시 아직 중앙 성소가 없는 시대였고 이후 애굽을 탈출하고 나서야 성막이 건축되었다. 여기 아브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된다. 

 

the Lord appeared. This is the first of a number of manifestations of God to the patriarchs. These are often associated with divine promises. On this occasion God promises the land to the descendants of Abram, although he is still childless. In response, Abram builds an altar to the Lord. A number of altars are constructed by the patriarchs at different locations (see 13:18; 22:9; 26:25; 33:20; 35:7). They are a common feature of the patriarchal period because no central sanctuary existed before the exodus from Egypt. Before the construction of the tabernacle, God was not perceived as ordinarily dwelling on the earth. These altars are places where God may be encountered in worship (Ex. 20:24).

God’s promise has a short-range fulfillment when the nation of Israel conquers Canaan under Joshua (Josh. 21:43; see 1 Kings 4:21). Ultimately the offspring narrows down to Christ (Gal. 3:16), whose dominion extends not only over the land of Canaan but over all the world (Matt. 28:18). The land of Canaan prefigures the eternal inheritance of the world in Christ (Heb. 4:1–11; 11:10, 13–16). In Christ believers are the offspring of Abraham (Gal. 3:7, 29).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72.

 

8-9절) 세겜으로부터 이제 아브람은 서쪽으로는 벧엘(하나님의 집), 동쪽으로는 아이가 있는 지역에 장막을 치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이후 점점 남방(네게브)로 옮겨 갔다. 

이후 아브람은 기근으로 애굽으로 내려가는데 그 이전에 벧엘 인근에 잠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built an altar. The religious practices of the patriarchs predate the construction of the tabernacle and later the temple. The altars built by the patriarchs anticipate a future time when God will dwell on the earth permanently. Although they did not view God as residing at these altars, they could encounter him there (Exod 20:24). Their existence served as reminders of the patriarch’s special relationship with God and the promise of land.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45.

 

 

 

하란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는 약 800킬로미터로 천천히 이동한다면 한달 이상이 걸리는 상당히 먼 거리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세겜이나 벧엘은 이스라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장소들이다. 7절에서는 제단을 쌓았다고만 기록하고 있지만 8절에서는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겜은 현재의 '텔 발라타'로 알려져있는데 이는 예루살렘 북쪽 5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인접한 곳으로 세겜은 성소로 오랜 역사를 지닌다. 이 두 산 사이에 위치한 세겜은 전략적인 위치로 중요한 무역 중심지였다. 벧엘은 예루살렘 북쪽 16킬로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한 ‘베이틴’으로 알려져있다. 이곳은 아이의 유적지로 여겨지는 ‘엣 텔’과 서쪽으로 약 2.4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그곳에는 청동기 중기 시대 커다란 성곽도시가 있었는데 성곽의 두께가 3.5미터나 되었다고 한다. 

The trip from Haran to Canaan is about five hundred miles and takes the better part of a month even if Abram travels at normal caravan pace (about twenty miles per day). The stops indicated by the text, Shechem and Bethel, both become major sacred sites in later Israelite history. At each one Abram builds an altar. What function do these altars serve? It is of interest that the text makes no specific reference to offering a sacrifice at either site (though that may be implied in his calling on the name of Yahweh in 12:8). Would someone build an altar without offering a sacrifice on it?

A. Pagolu observes that the notes in the text associated with the building of altars do not consistently indicate theophany, moving his tent, or sacrifice. He accepts the suggestion of R. Albertz that the building of the altars was a way of establishing a claim on the land.5 We may ask whether this was a way of claiming land for Abram or a way of claiming land for Yahweh. But perhaps we have presumed too much already. Is it not possible that the altar is simply built so that the clan can conduct their worship during the time they remain there? There is no reason to assume that Abram’s itinerary represents constant or regular movement. He may have remained at Shechem or Bethel for some time before moving on. When he builds the altar at Hebron in 13:18, its purpose seems simply to service his worship needs while he is there.

Shechem and Bethel are both located in the central hill country. The site of Shechem has been identified with Tell Balatah, just east of modern Nablus and thirty-five miles north of Jerusalem. Perhaps because of its proximity to two nearby peaks, Mount Gerizim and Mount Ebal, it has had a long history as a sacred site. The strategic position of Shechem, at the east entrance to the pass between these mountains, also made it an important trading center. Nearly continuous occupation is evidenced through the second and first millennia. As early as the Middle Bronze I Period, Shechem is mentioned in the Egyptian texts of Pharaoh Sesostris III (1880–1840 b.c.). Excavations have revealed an apparently unwalled settlement in Middle Bronze IIA (about 1900 b.c.) with the development of fortifications in Middle Bronze IIB, about 1750.

Bethel is usually identified with Beitin just over ten miles north of Jerusalem, about a mile and a half west of et-Tell, the traditional site of Ai. There was a major fortified city on the site during the Middle Bronze Age that was destroyed in the mid-sixteenth century. It was grandly rebuilt in the Late Bronze Age, and there is evidence of two destructions during that period (1550–1200 b.c.). Some contest whether Beitin is Bethel because it has been difficult to find a satisfactory adjoining site for Ai. The main alternative is Bireh, a mile or two south of Beitin.

5 A. Pagolu, The Religion of the Patriarchs (Sheffield: JSOT Press, 1998), 54.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39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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