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으로 드리는 예배
* 생각해볼 질문 : 당신은 ‘예배’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그랜드 캐넌-맥도날드 햄버거, 수영장
예술 작품을 알면 들여다보고 감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렇듯 무엇이든지 알면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아 진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가? 그림에 대해, 음악에 대해 모르면 그것을 누릴 수 없다.
1)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또 그분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알아가면서 그분에 대해서 감탄하는 것, 그분께 몰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8–9 (NKRV)
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본문에는 예배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고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그분과 보내며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적을 베푸시는 현장에도 함께 있었고 그분이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는 현장에도, 그분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현장에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했고 승천하신 예수님도 뵈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교인들은 주님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초대 교인들이 예수님을 본 일이 없는데도 그분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표현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행위가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초월적인 존재로 우리에게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고, 그분을 생각하면 너무나 영광스러운 기쁨이 마음속에 가득 차는 그런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미술 작품을 모르는 사람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데려다 놓으면 그보다 더 큰 고통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미술관 보다 공원의 벤치, 멋진 카페가 더욱 좋습니다. 하지만 정말 미술 작품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루브르 박물관에 보내준다면 최고의 영광이고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예배는 고역이지만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배는 말할수 없는 영광이자 즐거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2) 예배가 어떻게 가능한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한1서 3:1, NKRV)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서 앉아 있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란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것에 대한 감격의 표현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죄악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사랑을 베푸심으로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해주셨습니다. 그 감격과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에게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달이 빛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태양이 빛을 비추면 달이 그 빛을 반사함으로 밟게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 그분께 비추는 것이 바로 예배 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크고 놀라운 사랑앞에 감격하며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예배속에 감격이 없다면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나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3) 예배의 중요한 두 기둥
우리가 하나님앞에 진정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두가지 중요한 요소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4, NKRV)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그분을 예배할 때 우리는 영과 진리로(worship in spirit and truth)로 예배 해야 합니다. 영이란 하나님을 경험하고 누리고 느끼는 주관적인 부분이라면 진리는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진실들입니다. 이처럼 예배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객관적 진리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면서 그 내용을 실제로 체험하고 경험하는 영적인 부분도 동시에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예배 드릴 때 진리파와 영파로 나뉘어집니다. 진리파는 진리만 이야기하고 영적 체험은 없는 경우입니다. 내용에 충실한 교리주의자들인데 뜨거움이 없습니다. 영파는 내용을 살펴보면 성경적이지도 않고 자기 주관적인 내용들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면서 신비로운 느낌이나 체험을 강조합니다. 열정과 뜨거움은 있는데 내용이 없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불붙은 논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지성이 필요합니다.
4) 예배의 축복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NKRV)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그분앞에 나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나아가십니까? 군대에서 사단장앞에서 신고할 때 신임 장교들도 긴장을 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두렵고 떨림으로 하지만 담대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품에 안길 때 그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시고 인격적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지쳐서 진이 빠져있을 때에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새힘을 얻게 됩니다. 한국 교회가 정말 회복해야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배 입니다.
2. 세 가지 형태의 예배
* 생각해볼 질문 : 당신은 언제, 어디서 예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아가고 경탄하고 그분께 몰입하는 예배의 세가지 형티
1) 개인의 찬미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브리서 13:15, NKRV)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개인 차원의 예배가 풍성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순간 순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한 번도 하나님 앞에서 혼자 노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단순한 노래, 악보 없이도 할 수 있는 노래를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불러 보십시오. 반드시 곡조가 있는 노래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앞에 개인적으로 아뢰고 고백하는 나의 이야기가 찬송의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식후연초 불로장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들이 하는 말입니다. 식후에 한 대, 쉬는 시간에 한 대, 커피 한 잔을 마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대신에 ‘찬양 한 대’, ‘찬양 한 잔’을 해야 합니다. 일하다가 쉬는 쉬간에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듯이 옥상에 올라가서 찬양을 한 곡 부르고 내려오면 어떨 까요?
2) 공동체적인 예배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로새서 3:16, NKRV)
이 말씀을 공동체적으로 드리는 예배의 세가지 차원을 이야기합니다. 먼저는 하향적인 차원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수평적인 차원으로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상향적인 차원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동체적인 예배는 위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내려오고, 우리끼리 서로 권고하고 가르치며, 우리에게서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노래와 찬양이 있습니다. 개인이 홀로 드리는 예배도 중요하지만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그분을 예배할 때 더욱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공동체적인 예배는 문화에 따라 그 형태가 다양한데 간단하게 구분해보면 예전적 예배, 은사주의적 예배, 관상적 예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예전적 예배는 순서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예배 스타일로 가톨릭이나 정교, 전통 장로교의 예배 스타일입니다. 은사주의적 예배는 오순절 계통이나 아프리카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로 예배 내내 일어나서 찬양하며 매우 열광적으로 예배합니다. 관상예배는 침묵하며 묵상하는 예배입니다. 이중에 어떤 예배 형태가 가장 좋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개인이 선호하는 형식이 있을 수 있지만 공동체는 이 다양한 방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삶으로 드리는 예배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NKRV)
우리가 드릴 정말로 합당한 예배는 바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 입니다. 다른 말로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와서 드리는 예배만이 예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커피를 내리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공부를 하면서, 고객과 상담을 하면서 나에게 주신 재능을 활용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이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하여 드려질 때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3. 사랑으로 드리는 기도
* 생각해볼 질문 : 당신은 기도를 몇 분 정도 합니까?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 금세 지나갑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조금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지식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자녀로서 이야기하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1) 기도의 자세와 축복
빌립보서 4:6–7 (NKRV)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7절에는 기도가 어떤 축복을 가져다주는지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위탁하고 기도하면 ‘그대로 응답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이렇게 기도하면 우리의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다스릴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 램프의 요정, 지니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킴으로 그분의 뜻에 우리의 시선을 맞추고 튜닝하는 것입니다.
2) 기도에 대한 오해들
⓵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끌어낸다고 생각,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여김으로 정성을 다한다. 에베소 사람들이 ‘크다 아데미여’라고 외치며 기도했고 바알 선지자들은 ‘바알이여 바알이여’하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며 기도했다. 이렇게 노력하면 정성을 봐서 응답을 해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금식기도, 철야기도
⓶ 보험성 기도, 기도를 미리미리 해놓지 않으면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다고 생각.
⓷ 하나님을 가르치며 교육하는 기도, ‘하나님이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지금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까 당신이 이렇게 응답하셔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⓸ 비인격적인 기도, 하나님과 쌍방향의 의사소통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뒤돌아서는 기도이다. 마치 뭔가 문제가 있다고 교장선생님 방에 신입 교사가 들어가서 한참을 소리치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나서 이제 교장선생님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듣지 않고 '이제 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하고 나가버리는 것이다. 기도에는 반드시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
3) 기도 누리기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에 의지해서 사랑으로 드리는 기도를기뻐하십니다. 이러한 건강한 기도는 사실 우리의 상황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바꿉니다. 이런 인격적인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언어로 기도해야 합니다. 남을 의식해서 현학적인 단어나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4. 사랑으로 드리는 순종
* 당신이 하나님을 순종하며 따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특징
우리는 에배와 기도로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또다른 특징은 바로 순종입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복음 14:21, NKRV)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예배나 찬양 시간에 입술로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했다면 그 다음에는 목숨 걸고 우리의 원수 까지 사랑해야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섬겨야 하고, 우리 주위의 소자들을 섬겨야 합니다.
예배는 열심히 드리고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다른 사람을 섬기고 희생하는 일에 매우 인색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런 이들은 영적 어린아이들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뜻대로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2) 순종의 방해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4, NKRV)
예수님께서 자신의 라이벌로 인정하신 존재, 대상이 있는데 바로 재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재물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돈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돈으로 존경도 사고 건강도 사고 교육도 사고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상식으로 통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 진정한 가치와 기쁨, 안전을 가져다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금은 돈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인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돈을 버느라고 가족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시간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결국 돈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에 내가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임을 기억하고 이를 주장해야 합니다.
3) 10-10-10의 습관
하루에 10분씩 세 번 하나님을 만나는 습관을 가지라. 아침에 일어나서 10분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루 일과 중에 10분을 하나님께 드리고, 잠자리에 들기전에 10분을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가 왜 이런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까? 예배와 기도, 순종은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보이는 반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특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순종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지 사랑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더 얻어낼 사랑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희생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을 누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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