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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So Israel took his journey with all that he had and came to gBeersheba, and offered sacrifices hto the God of his father Isaac. And God spoke to Israel iin visions of the night and said, “Jacob, Jacob.” And he said, “Here I am.” Then he said, “I am God, jthe God of your father. Do not be afraid to go down to Egypt, for there I will kmake you into a great nation. I myself will go down with you to Egypt, and I will also lbring you up again, and mJoseph’s hand shall close your eyes.”

Then Jacob set out from Beersheba. The sons of Israel carried Jacob their father, their little ones, and their wives, in the wagons nthat Pharaoh had sent to carry him. They also took their livestock and their goods, which they had gained in the land of Canaan, and ocame into Egypt, Jacob and all his offspring with him, his sons, and his sons’ sons with him, his daughters, and his sons’ daughters. All his offspring he brought with him into Egypt.

pNow qthese are the names of the descendants of Israel, who came into Egypt, Jacob and his sons. rReuben, Jacob’s firstborn, and the sons of Reuben: Hanoch, Pallu, Hezron, and Carmi. 10 The sons of Simeon: Jemuel, Jamin, Ohad, Jachin, Zohar, and Shaul, the son of a Canaanite woman. 11 The sons of sLevi: Gershon, Kohath, and Merari. 12 The sons of tJudah: Er, Onan, Shelah, Perez, and Zerah (but uEr and Onan died in the land of Canaan); and the sons of vPerez were Hezron and Hamul. 13 wThe sons of Issachar: Tola, Puvah, Yob, and Shimron. 14 The sons of Zebulun: Sered, Elon, and Jahleel. 15 These are the sons of Leah, xwhom she bore to Jacob in Paddan-aram, together with his daughter Dinah; altogether his sons and his daughters numbered thirty-three.

16 The sons of Gad: Ziphion, Haggi, Shuni, Ezbon, Eri, Arodi, and Areli. 17 yThe sons of Asher: Imnah, Ishvah, Ishvi, Beriah, with Serah their sister. And the sons of Beriah: Heber and Malchiel. 18 zThese are the sons of Zilpah, awhom Laban gave to Leah his daughter; and these she bore to Jacob—sixteen persons.

19 The sons of Rachel, Jacob’s wife: Joseph and Benjamin. 20 And bto Joseph in the land of Egypt were born Manasseh and Ephraim, whom Asenath, the daughter of Potiphera the priest of cOn, bore to him. 21 And dthe sons of Benjamin: Bela, Becher, Ashbel, Gera, Naaman, Ehi, Rosh, Muppim, Huppim, and Ard. 22 These are the sons of Rachel, who were born to Jacob—fourteen persons in all.

23 The son1 of Dan: Hushim. 24 eThe sons of Naphtali: Jahzeel, Guni, Jezer, and Shillem. 25 fThese are the sons of Bilhah, gwhom Laban gave to Rachel his daughter, and these she bore to Jacob—seven persons in all.

26 All the persons belonging to Jacob who came into Egypt, who were his own descendants, not including Jacob’s sons’ wives, were sixty-six persons in all. 27 And the sons of Joseph, who were born to him in Egypt, were two. hAll the persons of the house of Jacob who came into Egypt were seventy.

g ch. 21:31, 33; 26:33; 28:10

h ch. 26:24, 25; 28:13; 31:42

i ch. 15:1; Job 33:14, 15

j ch. 28:13

k ch. 35:11; [ch. 12:2; Ex. 1:7, 9; Deut. 26:5]

l ch. 15:16; 28:15; 48:21; 50:24; Ex. 3:8

m ch. 50:1

n ch. 45:19, 21, 27

o Josh. 24:4; Ps. 105:23; Isa. 52:4; Acts 7:14, 15

p For ver. 8–11, see Ex. 6:14–16

q Ex. 1:1–5

r Num. 26:5; 1 Chr. 5:1–3

s 1 Chr. 6:1

t 1 Chr. 2:3; 4:21

u ch. 38:3, 7, 10

v ch. 38:29; 1 Chr. 2:5

w 1 Chr. 7:1

x See ch. 29:32–35; 30:1–21

y 1 Chr. 7:30

z See ch. 30:10–13

a ch. 29:24

b ch. 41:50–52

c ch. 41:45

d See Num. 26:38–40; 1 Chr. 7:6–12; 8:1

1 Hebrew sons

e 1 Chr. 7:13

f See ch. 30:5–8

g ch. 29:29

h Ex. 1:5; Deut. 10:22; [Acts 7:1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46:1–27.

 

46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6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8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야곱과 그의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9 르우벤의 아들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요

10 시므온의 아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스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요

11 레위의 아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12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13 잇사갈의 아들은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14 스불론의 아들은 세렛과 엘론과 얄르엘이니

15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난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삼십삼 명이며

16 갓의 아들은 시뵨과 학기와 수니와 에스본과 에리와 아로디와 아렐리요

17 아셀의 아들은 임나와 이스와와 이스위와 브리아와 그들의 누이 세라며 또 브리아의 아들은 헤벨과 말기엘이니

18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레아에게 준 실바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육 명이라

19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 곧 요셉과 베냐민이요

20 애굽 땅에서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요셉에게 낳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21 베냐민의 아들 곧 벨라와 베겔과 아스벨과 게라와 나아만과 에히와 로스와 뭅빔과 훕빔과 아릇이니

22 이들은 라헬이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사 명이요

23 단의 아들 후심이요

24 납달리의 아들 곧 야스엘과 구니와 예셀과 실렘이라

25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라헬에게 준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칠 명이라

26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27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창 46:1–27.

 

 

1-4절) 야곱(이스라엘)의 가족들은 헤브론(37:14)에서 출발하여 브엘세바로 내려간다. 이 브엘세바에서 이전에 아버지 이삭이(26:23-33) 그리고 할아버지 아브라함이(21:22-34) 살았었다.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던 중 이곳 브엘세바에서 희생제사를 드리고 있다. 전에 벧엘에서 나타나셨던 하나님께서 이곳에서도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그가 약속의 땅을 떠나는 상황에서 처음 이곳을 떠났을대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밤에 이상중에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을 부르시고 야곱에게 말씀하신다.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지시하셨었다.(26:1-5) 그리고 그 전에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겪었던 일을(12:10-20)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에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허락하고 계신 것이다. 이를 두고 하나님의 뜻이 수시로 바뀐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분의 시간표 속에서 운영하고 계심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이제 이것을 허락하고 계신 것이다. 이삭의 때에는 애굽으로 내려가서는 안되는 때였고, 이제 야곱의 때에는 애굽으로 내려가야하는 때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일행을 애굽으로 내려보내시기 위해서 먼저 요셉을 보내셔서 그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 것이다.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을 재 확인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을 약속하셨고(12:2) 이것을 야곱에게 다시금 말씀하신다. 또한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을 말씀하신다. 실제로 야곱은 애굽에서 죽지만 아브라함과 이삭과 더불어 가나안땅에 묻히게 된다. 

족장들(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이것에 대한 성취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약속을 믿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고 그것은 약속대로 성취된다. 

 

헤브론에서 브엘세바는 약 36km정도의 거리였다. 브엘세바는 이삭과 리브가가 살던 곳이었으며 야곱이 에서의 분노를 피해서 약속의 땅을 떠났을 때 그의  여정이 시작된 곳이었다.(28:10) 

 

4절 하반절에서는 요셉이 야곱의 눈을 감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장자나 가장 사랑하는 자가 죽어가는 어른 곁에 앉아있다가 그분이 임종하면 살며시 눈을 감겨주는 것은 유대인들의 아름다운 풍습이다. 요셉이 자신의 눈을 감길 것이라는 망을 들으며 야곱의 마음은 뭉클해졌을 것이다. 

 

5-7절)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애굽으로 내려갈때 바로가 보낸 수레에 아버지 야곱과 자신들의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태우고 그들이 소유한 가축들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고 내려갔다.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다. 

 

 8-27절)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들의 명단

르우벤의 아들 : 하녹, 발루, 헤스론, 갈미

시므온의 아들 : 여무엘, 야민, 오핫, 야긴, 스할, 사울(가나안 여인의 아들)

레위 : 게르손, 그핫, 므라리

유다 : 엘, 오난, 셀라, 베레스(헤스론, 하물), 세라 

잇사갈 : 돌라, 부와, 욥, 시므론

스불론 : 세렛, 엘론, 얄르엘

- 레아의 자손들, 디나를 합하여 33명 / 실제로는 디나를 포함하면 34명이 된다. 하지만 유다의 자손중 엘과 오난은 이미 죽었고, 베레스의 자손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높기에 이 숫자가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갓 : 시뵨, 학기, 수니, 에스본, 에리, 아로디, 아렐리

아셀 : 임나, 이스와, 이스위, 브리아(헤벨, 말기엘), 세라

- 실바의 자손들, 16명

 

요셉 : 므낫세, 에브라임(41:45)

베냐민 : 벨라, 베겔, 아스벨, 게라, 나아만, 에히, 로스, 뭅빔, 훕빔, 아릇

- 라헬의 자손들 : 14명

다른 계보들과는 달리 라헬의 자손에 대해서는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이라는 설명으로 시작되며 20절에서 요셉의 아내인 아스낫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요셉에게 낳은 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단 : 후심

납달리 : 야스엘, 구니, 예셀, 실렘

- 빌하의 자손들 : 7명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66명이었다.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2명이나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70명이었다. 

 

26절에서는 66명, 27절에서는 70명이라는 숫자가 언급된다. 앞서 야곱의 네 아내, 레아, 실바, 라헬, 빌하의 자손들의 숫자를 모두 더하면 33+16+14+7로 70명이 된다.(신 10:22) 이 70이라는 숫자에는 야곱의 아내와 며느리들, 그리고 대부분의 딸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한 요셉의 아들들은 애굽에 있었고, 유다의 아들중에 엘과 오난은 이미 사망했기에 실제의 숫자와 차이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에는 요셉에게서 태어난 아들을 둘에서 아홉으로 늘린다. 또한 사도행전에서는 요셉이 친족 75명을 청했다고 나온다. 

사도행전 7:14 (NKRV)

14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간 사람들은 며느리들을 뺀 직계자손이 66명(26절)이었다. 야곱을 포함하면 67명이 되고 애굽에 있던 요셉과 그의 두 아들을 포함하면 70명이 된다. 그러나 70인역은 목록에서 요셉과 야곱을 빼고 요셉의 아들을 2명이 아닌 9명으로 표기함으로 75명이라고 기록한다. 그래서 스데반이 사도행전에서 75명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마소라 사본보다 70인역에 더 익숙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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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When Abimelech went to him from Gerar with Ahuzzath his adviser and sPhicol the commander of his army, 27 Isaac said to them, “Why have you come to me, seeing that you hate me and thave sent me away from you?” 28 They said, “We see plainly that the Lord has been with you. So we said, let there be a sworn pact between us, between you and us, and let us make a covenant with you, 29 that you will do us no harm, just as we have not touched you and have done to you nothing but good and have sent you away in peace. uYou are now the blessed of the Lord.” 30 So he made them a feast, and they ate and drank. 31 In the morning they rose early and vexchanged oaths. And Isaac sent them on their way, and they departed from him in peace. 32 That same day Isaac’s servants came and told him about the well that they had dug and said to him, “We have found water.” 33 He called it Shibah;5 therefore the name of the city is wBeersheba to this day.

34 When Esau was forty years old, he took xJudith the daughter of Beeri the Hittite to be his wife, and Basemath the daughter of Elon the Hittite, 35 and ythey made life bitter6 for Isaac and Rebekah.

s ch. 21:22

t ver. 16

u ch. 24:31

v ch. 21:31

5 Shibah sounds like the Hebrew for oath

w ch. 21:31; 22:19

x [ch. 28:9; 36:2, 3]

y ch. 27:46

6 Hebrew they were bitterness of spirit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26:26–35.

 

 

26-31절) 이삭이 장막을 치고 생활하던 곳에 아비멜렉이 그의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을 데리고 그랄에서 찾아왔다. 이삭은 나를 미워하여 떠나라고 한때는 언제고 왜 찾아왔느냐라고 물었고 아비멜렉의 일행은 우리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보았기에 너와 계약을 맺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 계약의 내용은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않고 선한 일만 하여 너를 평안히 가게 하였으므로 너는 우리를 범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의 근거는 이삭이 여호와께 복을 받은자 이기 때문이다. 이삭이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평안히 돌아갔다. 

 

앞서 26:1 이하에서는 이삭이 아비멜렉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제 아비멜렉이 조언자와 군대장관을 대동하고 이삭을 찾아왔다. 이 둘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앞서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 이삭이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면 이제 아비멜렉이 평화조약을 맺기 위해서 방문한 것이다. 특히 근대장관 비골은 앞서 21:22에도 등장하는데 이 둘이 동일 인물인지 아니면 비골이라는 호칭이 이름이 아니라 군대장관을 부르는 이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앞서 아비멜렉은 이삭이 번성함을 보고 시기하여 그를 쫓아냈다. 이렇게 쫓아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아비멜렉은 계속해서 부와 세력이 번성하여지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일반적이지 않고 강력한 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복을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되어서 평화 조약을 맺으려고 하는 것이다. 옛적에 이미 아브라함이 그러한 언약을 맺었었다.(21:22-32)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바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 풍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삭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도 인식하게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비멜렉에게는 군사적인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의인이었고(10절),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심을 알았고(28절), 그의 선조가 아브라함과 맺은 조약에 대한 이해도 있었을 것이다.(21장) 그래서 그는 이삭과의 평화 조약을 맺기 원했던 것이다. 이렇게 이들은 서로 맹세를 했고 한 상에서 먹고 마심으로 언약을 유효하게 했다. 이삭이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은 그가 우위에 있는 자로서 이 계약에 임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정치적인, 군사적인 힘을 가지지 않은 이삭이 당시 가나안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지닌 왕과 동등한 자격을 초월해 더 우위에서 동맹을 맺은 것이다.

 

First it was Isaac who visited Abimelech in Gerar. Now it is Abimelech, accompanied by two of his chief advisers, who visits Isaac in Beer-sheba.14 The roles of guest and host have shifted.

The reason for Abimelech’s visit is clear. He realizes that God has blessed Isaac with both material power (vv. 13–14) and manpower (vv. 14, 16). Beer-sheba is not far from Gerar, and in any future dispute Isaac and his entourage are too close for comfort. Accordingly, Abimelech seeks a more solid footing for security purposes, viz., a covenant of peace.

Abimelech does not travel alone to meet with Isaac. He brings with him Ahuzzath, his main civilian officer, and Phicol, his main military officer (cf. the Phicol who accompanied Abimelech in the latter’s negotiations with Abraham, 21:22). No reason is given why they accompany their king. If they are there to make Abimelech’s position seem more impressive (i.e., there is strength in numbers and in appearances), they do not succeed—Isaac is not intimidated. Indeed, neither Ahuzzath nor Phicol does anything or says anything (except by implication—vv. 28, 29). They are just there, silent observers of the pact between Abimelech and Isaac. Whatever the (foreign) etymology of Phicol may be,15 in Hebrew it means “mouthful”; yet he utters not even a syllable!16

14 Cf. the three “men” who came to Abraham at Mamre (18:1).

15 The suggestions range from Egyptian (M. Noth, History of Pentateuchal Traditions, p. 155 n. 443; W. F. Albright, “Egypt and the Early History of the Negeb,” JPOS 4 [1924] 138–39) to Anatolian (J. D. Ray, “Two etymologies: Ziklag and Phicol,” VT 36 [1986] 355–59). See above, p. 86 n. 1.

16 Y. T. Radday, “Humour in Names,” in On Humour and the Comic in the Hebrew Bible, ed. Y. T. Radday and A. Brenner, JSOTSup 92 (Sheffield: Almond, 1990), pp. 64–65. On Ahuzzath, see J. D. Safren, “Ahuzzath and the Pact of Beer Sheba,” ZAW 101 (1989) 184–98.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205–206.

 

28–29  Abimelech begins the conversation more diplomatically than Isaac. He starts with a testimony to the effect that he indeed knows that Yahweh is with Isaac (cf. 21:22). Abimelech’s confession may be compared with that of Jethro (Exod. 18:10–11), Rahab (Josh. 2:9–11), or Namaan (2 K. 5:15), all recognitions by Gentiles of the power and presence of Yahweh with his people. There is no evidence, however, that Abimelech became a follower of Yahweh.

This acknowledgment now made, Abimelech asks Isaac to enter into a treaty (berîṯ) and to make it binding by swearing (wayyiššāḇeʿû, v. 31) a solemn oath.17 Isaac’s relationship with Abimelech now provides three parallels with Abraham’s relationship with the earlier Abimelech. The first parallel is the wife-sister deception (20:2–18 and 26:1–16); the second is the dispute over wells (21:25–26 and 26:15–22); the third is the treaty with the Philistine king (21:27–34 and 26:28–31).

17 ʾālâ may not be an oath itself but rather an adjuration, a challenge to the parties involved to swear an oath. See G. R. Driver’s comments in his review of Brichto, The Problem of “Curse” in the Hebrew Bible, in JSS 10 (1965) 94.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206–207.

 

32-33절) 아비멜렉과 맹세를 한 바로 그 날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해서 이삭에게 와서 알렸고 그 이름을 세바라 하였다. 그래서 그 성읍의 이름을 브엘세바라 하였다. 

 

앞서 이삭의 종들은 우물을 찾는데 선수들이었다. 이미 3번에 걸쳐서 우물을 찾았고 이제 네번째 우물을 찾는데 성공한 것이다. 본문은 ‘그날에’라고 표현하면서 이삭의 종들이 바로 그날 우물을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전날 이삭이 아비멜렉과 맺은 평화 조약을 기념하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토록 분쟁하면서 소유하기를 원했던 물을 얻게 된 것이다. 이삭은 그 우물을 세바라고 이름했는데 이것의 의미는 ‘일곱, 맹세’의 의미이다. 

 

33  In response to his servant’s announcement, Isaac names (renames?) the city Shibah. This word (Heb. šiḇʿá) is most likely the feminine form of the numeral “seven” (masc. šeḇaʿ; fem. šiḇʿá), which is frequent in the Hebrew Bible.23 This suggests that Isaac is simply reaffirming the name given to this site by Abraham (21:31), and there is therefore no reason for the repeated emphasis on “seven” as there was in ch. 21. Thus Isaac follows his father at two points: in making an alliance of peaceful coexistence with a Philistine King, and in naming a city.

If one does not accept šbʿh as the numeral “seven,” then one has three ways of integrating the etymology of Beer-sheba in ch. 21 with that given here in ch. 26. (1) One can opt for one of the other readings, especially LXX; then “seven” has nothing to do with the name at all, and Beer-sheba means (in both places) “well of oath.”24 (2) One may resort to literary sources and attribute the story in ch. 21 to sources E and Jb, and that in ch. 26 to JR.25 (3) Instead of appealing to sources, one may appeal to an earlier tradition of the story in which Beer-sheba was connected with “oath,” and a later tradition in which the name was connected for more explicit purposes with “seven.”26

masc. masculine

fem. feminine

23 Some of the ancient versions read something other than “seven” for šiḇʿâ, LXX hórkos suggests šeḇuʿâ, “oath.” Pesh. and Vulg. (abundantiam) read the Hebrew word as śiḇʿâ, “abundance,” which is certainly a possible reading, and would follow nicely after v. 32. Isaac calls the name of the place where water was found “Well of Abundance.” See Long, Problem of Etiological Narrative, pp. 34–36.

LXX Septuagint

24 So Speiser, Genesis, p. 202.

25 So Gunkel, Genesis, pp. 233–36.

26 See Y. Zakovitch, “A Study of Precise and Partial Derivations in Biblical Etymology,” JSOT 15 (1980) 34–36.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208–209.

 

34-35절) 에서는 40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이는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 

 

에서가 결혼한 나이는 아버지 이삭이 결혼한 나이와 같았다. 이삭이 40세에 결혼하여 에서와 야곱을 60세에 낳았기 때문에 에서가 결혼한 때는 이삭이 100세가 되는 해였다. 그런데 에서의 결혼은 부모에게 근심을 가져다 주었다. 앞서서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가나안땅에서 얻지 않기 위해서 멀리 밧단아람까지 종을 보내어 어머니 리브가를 데려왔는데 지금 에서는 이방의 헷 족속에서 아내를 얻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정서와는 다르지만 당시는 자녀의 결혼을 부모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주선했는데 에서는 본인이 이방의 헷 족속중에 아내를 얻었고 또한 두명의 아내를 취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볼때 에서는 세가지 측면에서 부모들을 근심되게 했다. 1) 그는 스스로 자신의 결혼을 주선했다. 2) 동족 결혼의 전통을 버리고 가나안 사람, 헷 족속에서 아내를 취했다. 3) 일부일처제가 아니라 일부다처제의 전통을 따라 라멕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그의 결혼은 부모의 근심이 되었고 이는 이후의 야곱이 장자권을  빼앗는 사건의 정황속에서 에서가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인물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이 여인들의 이름의 뜻은 유딧(찬양하다, 칭찬하다)이고 바스맛(향기)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은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내지 못했다. 

 

앞서 아비멜렉과의 조약은 이들을 평화의 시대로 이끌었다면 헷 족속의 여인을 아내로 들인 것은 이들 가족에게 근심이 되었다. 

 

Why is the account of Esau’s wives placed here? Could it be because of the similarity in sound between Beeri and the Hebrew word for “well” (beʾēr), a word that is prominent in the preceding narrative? Does its placement here “soften the bad impression created by the ruthless and unscrupulous conduct portrayed of Rebekah and Jacob in chapter 27”?3 Or is Esau’s relationship with Judith and Basemath to be contrasted with Isaac’s relationship with Abimelech? Alliances of a political nature with outsiders are condoned, but marital alliances with outsiders bring grief to the husband’s parents. Sarna has suggested that the placement of these two verses here reinforces the unworthiness of Esau to be his father’s heir. Esau’s errors are threefold. He has contracted the marriage himself, thus bypassing his parents; he married exogamously rather than endogamously; he has gone against the honor of his clan group by intermarrying with the native women.4 Thus in several important ways the marriage of Isaac to Rebekah (ch. 24) contrasts with the marriage of Esau to Judith and Basemath.5

Chapters 26 and 27 provide several contrasts. In ch. 26 Isaac and Rebekah weep (v. 35). But in ch. 27 Esau weeps. If in ch. 26 a son by his conduct embitters a mother, in ch. 27 a mother by her conduct embitters a son.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incidents is that in ch. 26 the mother (Rebekah) is fully aware of her son’s (Esau) activities, whereas in ch. 27 the son (Esau) is unaware of his mother’s (Rebekah) involvement in and contribution to his distress.

3 See Vawter, On Genesis, p. 297.

4 Sarna, Genesis, p. 189. Sarna’s suggestion is along the lines of Vawter’s.

5 However much a source of grief Esau’s choice of wives may have been to his parents, each of the daughters-in-law bears a beautiful name. Judith, like Judah, is probably connected with the Hophal of yāḏâ, “to praise,” thus “praised one.” Basemath is connected with bōśem, “spice, balsam” and translates as “perfume.”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2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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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At that time cAbimelech and Phicol the commander of his army said to Abraham, d“God is with you in all that you do. 23 Now therefore swear to me here by God that you will not deal falsely with me or with my descendants or with my posterity, but eas I have dealt kindly with you, so you will deal with me and with the land where you have sojourned.” 24 And Abraham said, “I will swear.”

25 When Abraham reproved Abimelech about a well of water that Abimelech’s servants fhad seized, 26 Abimelech said, “I do not know who has done this thing; you did not tell me, and I have not heard of it until today.” 27 So Abraham took sheep and oxen and gave them to Abimelech, and the two men gmade a covenant. 28 Abraham set seven ewe lambs of the flock apart. 29 And Abimelech said to Abraham, “What is the meaning of these seven ewe lambs that you have set apart?” 30 He said, “These seven ewe lambs you will take from my hand, that this3 may be a witness for me that I dug this well.” 31 Therefore hthat place was called Beersheba,4 because there both of them swore an oath. 32 So they made a covenant at Beersheba. Then Abimelech and Phicol the commander of his army rose up and returned to the land of the Philistines. 33 Abraham planted a tamarisk tree in Beersheba and icalled there on the name of the Lord, jthe Everlasting God. 34 And Abraham sojourned many days in the land of the Philistines.

c ch. 20:2; [ch. 26:1, 26]

d [ch. 26:28]

e ch. 20:14

f [ch. 26:15, 18, 20–22]

g ch. 26:31

3 Or you

h ch. 26:33

4 Beersheba means well of seven or well of the oath

i ch. 4:26; 12:8

j Isa. 40:28; [Ps. 90: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21:22–34.

 

 

22-23절)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나서 그가 자라가던 때에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아브라함 네가 무슨일을 하던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을 알고 있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후손들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않기를 하나님으로 맹세하라. 내가 너를 선대한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을 선대하라. 

 

앞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속인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경고를 듣고 그들을 선대하였다. 이후 사래가 아들을 낳고 살아가는 것을 그는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방(그랄) 땅에서 그들은 번성하였고 이로 인해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인정하였고 이제 더 나아가서 그들과 충돌하지 않고 화목하게 지낼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비멜렉의 모습은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을 축복함으로서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이 축복을 받기 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가나안 사람들도 축복의 기회가 있었고 이를 얻은 사람들도 있지만(라합과 기드온) 결국 그들이 이스라엘과 반목하고 죽게 된 것은 그들의 선택의 결과였다. 아비멜렉은 어떻게 아브라함을 향해서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앞선 사래와의 사건 이후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삶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아비멜렉 그가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번성하는 아브라함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꿈에 나타났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삶을 보고 ‘하나님께서 저 사람과 함께 하신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요셉의 예) 

 

24-31절)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의 말을 듣고 내가 맹세하겠다라고 말하고 나서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해서 아비멜렉을 책망하자 아비멜렉은 이 일에 대해서 내가 들은 적이 없고 너도 나에게 알리지 않아서 내가 알지 못했고 오늘에야 알았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언약을 세웠다. 또한 아브라함이 암양 새끼 일곱을 따로 놓았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이 우물 판 증거로 아비멜렉에게 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 두사람이 거기서 맹세하였는데 그곳의 이름을 브엘세바라고 하였다. 

 

아비멜렉이 평화 조약을 제안하자 아브라함은 이전에 자신이 당한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사막지역으로 물이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목축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이렇게 우물의 소유권을 놓고 자주 다툼이 일어났는데 이방인인 아브라함의 종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잦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비멜렉은 자신은 이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다. 이에 아브라함은 보답으로 암양 새끼 일곱마리를 선물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아비멜렉은 선물의 의미를 물었고 아브라함은 이 선물은 자신이 이 우물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고 아비멜렉은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 그의 제안을 수용한 것이다. 본문을 보면서 의아한 것은 피해자인 아브라함이 가해자인 아비멜렉에게 선물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당한 억울함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매우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양과 소, 암양 일곱을 준 것은 우물이 아브라함의 것이라는 증거이다. 브엘은 ‘우물’이라는 의미이고 히브리어로 ‘세바’는 일곱이라는 의미와 맹세(세브아)라는 단어와 거의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브엘세바는 '7개의 우물’ 이라는 의미와 ‘맹세의 우물’이라는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앞서 아브라함이 일곱 마리의 암양을 준 것으로 보아 일곱개의 우물을 의미할 것이다. 브엘세바는 네게브 지역의 북부에 위치하는 도시로 이스라엘의 최남단 경계선으로 유명하다. 

또한 본문속에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이름이 정확히 일곱 번씩 사용되었고 암양도 일곱 마리가 언급된다. 브엘세바라는 이름에서 사용된 맹세하다라는 단어도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In light of Abraham’s gift to Abimelech, the name Beersheba probably means “well of seven”; however, given that the Hebrew words for “seven” (sheba‘) and “oath” (shebu‘ah) are similar, it could also mean “well of the oath.” Perhaps the name was chosen because it embraced both concepts. Given Abraham’s seminomadic lifestyle and the need for him to dig a well, no settlement probably existed at this location in his time. When a permanent settlement was later established in this area, the name of the well was given to it (see 26:33). The town of Beersheba, located in the northern Negeb, became famous as marking the southern boundary of Israel (e.g., Judg. 20:1; 1 Sam. 3:20).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87.

 

שָׁבַע (šābaʿ), q. pass. be sworn with (only once); ni. swear, make an oath, bind oneself by an oath; hi. cause to swear, adjure (#8678); שְׁבוּעָה ebûʿâ), nom. oath (#8652).

ANE The consonantal root is identical to the word meaning “seven.” In that sense, it has cognates in several ANE languages, including Akk., Arab., Nab., Eth., and Aram.

OT 1. Derivation. Since the consonants are equivalent to the term used for the significant number seven, some writers hypothesize an early relationship between the number seven and the practice of oath-taking. In Gen 21:22–34, Abraham seals an oath concerning the use of a well by giving to Abimelech seven ewe lambs. The well is then called Beersheba, “Well of the Oath.” If there was a time when the number seven was an integral part of oath-making, the connection is lost in most of the OT.

2. Form and function. In OT life, swearing had nothing to do with foul language and everything to do with the assurance that one would faithfully keep his or her word. OT oaths consist of a promise that is strengthened by the addition of a curse, with an appeal to a deity (or even a human king) who could stand as the power behind the curse.

In BH, oaths have the basic form “Thus and more may God do to me/you, if I/you do/do not so and so …” When Eli adjured Samuel to recite his night vision, he said “May God deal with you, be it ever so severely, if you hide from me anything he told you” (1 Sam 3:17). When Israel’s king swore to do away with Elisha in 2 Kgs 6:31, he also used this typical form: “May God deal with me, be it ever so severely, if the head of Elisha son of Shaphat remains on his shoulders today.”

Note that the oath may relate to one’s own behavior or to that of another. On the surface, oath statements seem conditional, but it is the curse—not the promise—that is conditional. There is no question of the speaker’s intent to live up to his or her obligation: the “if” is only a reminder that God’s wrath has been invoked in the event of failure.

In the OT, any promise of God is tantamount to an oath. For example, Yahweh’s promises to establish David’s line on the throne (2 Sam 7) are recorded as simple declarative statements, but later the psalmist insists that Yahweh has “sworn to David my servant” (Ps 89:3 [4], cf. 132:11; Acts 2:30). People swore by the deity, but Yahweh had no reason to call on a higher power: he could swear by himself (Isa 45:23; Jer 49:13; 51:14), by his holiness (Ps 89:35 [36]), by his right hand (Isa 62:8), or by his great name (Jer 44:26). When God spoke, it was unthinkable that his word would not come to pass; it was implicit that he had sworn by himself in every promise to and covenant with his people.

This was not the case with ordinary humans, for whom the addition of a curse with an appeal to the deity was an essential part of the oath. However, over a period of time, oath-taking became so stereotyped in ancient Israel that the first clause (“thus and more may God do to me/you”) was commonly dropped by convention, being understood (if not actually present) before the “if you” clause. This apocopated form is found in Gen 14:23; Num 14:23; 1 Sam 3:14; 19:6; 2 Kgs 2:2; 3:14; Job 6:28; Ps 132:3–4; Isa 22:14. The oath character of these texts is rarely revealed in modern translations because the Heb. preposition עִם followed by an expressed or implied oath is routinely translated as an emphatic negative (BDB, 50a; implied in GKC, par. 149d–e). For example, while Gen 14:23 literally says “If I take …,” it is translated “I will not take,” obscuring the underlying Heb. form.

Translation problems such as this can lead to a confusion of vows and oaths. Ps 132:2–5 contains a multipart oath that is often confused with a vow, primarily because the text itself says in v. 2 that David “swore an oath to the Lord and made a vow to the Mighty One of Jacob.” The poet’s attempt at synonymous parallelism runs aground on the fact that Heb. has no exact equivalent for שָׁבַע, so נָדַר, vow, was employed as the closest available approximation. The actual assertion in vv. 3–4 contains no less than three typical “if I …” clauses, and is clearly an oath, not a vow. In the OT, a vow is a promise made to God on the condition that God should first fulfill the worshiper’s request (cf. Gen 28:20–22; Num 21:2; Judg 11:30–31; 1 Sam 1:11; 2 Sam 15:8), and it should not be confused with biblical oaths.

3. Rules for oath-taking. The taking of oaths was a serious matter. Num 30:2, 9, 10–11, [3, 10, 11–12] was emphatic in stating that all oaths and vows must be fulfilled, with one exception—fathers and husbands had the power to cancel the vows and oaths of their daughters and wives, as long as they did so on the same day they learned of them. Independent women such as widows and divorcees were under no such restrictions. The importance of keeping one’s word was also implicit in the very form of the oath, for every oath-maker invoked a curse upon himself/herself in the event that the oath was broken.

4. Significance. The making of oaths as a religious institution was widespread and of considerable importance in Israel, because everyone from the lowliest peasant to the strongest king could call on the name of God to validate his or her word. Oaths could be made to affirm a statement of fact (1 Sam 20:3), to attest one’s innocence (Exod 22:11 [10]), to assure certain behavior (Gen 24:37; 50:24), to confirm a peace treaty (Josh 9:15), to express one’s loyalty or love to another person (1 Sam 20:17; Neh 6:18), or even to demonstrate one’s commitment to God (2 Chron 15:14). Israel believed that God himself had made oaths to his chosen people in order to underscore the surety of his word (Gen 24:7; 26:3; Exod 13:11).

P-B Rabbinic writings such as the Mishnah reveal that, in time, the boundaries between oaths and vows grew increasingly vague. Even a casual reading of the tractates Nedarim and Šebuʿot makes it clear that the rabbis made little real distinction between the two. The effective power behind the making of oaths was also watered down by a myriad of casuistic circumstances that were introduced to void oaths and make them no longer binding.

q. qal

pass. passive

ni. niphal

hi. hiphil

ANE Ancient Near East(ern)

ANE Ancient Near East(ern)

Nab. Nabatean

BDB F. Brown, S. R. Driver, and C. A. Briggs,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T, Oxford, 1907; repr. with corrections, 1953

GKC Gesenius’ Hebrew Grammar, ed. E. Kautzsch, tr. and ed. A. E. Cowley, Oxford, 19102 (ET of W. Gesenius, Hebräische Grammatik, ed. E. Kautzsch, Halle, 190928)

par. parallel(s)/and parallel passages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32–34.

 

32-34절)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비골은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엘 올람’, 영원하신 여호아의 이름을 불렀고 그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다.  

- 에셀 나무는 이 나무를 지칭하는 히브리어 단어를 그대로 음역한 것으로 영어로는 tamarisk로 알려진 나무로 우리 말로는 위성류라고 한다. 이는 뿌리가 깊이 뻗는 나무로 모래가 많이 섞인 땅이나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이다. 낙엽성 나무로 6미터까지 자라며 나뭇잎은 작고 소금알갱이 같은 분비물을 분출한다. 나무는 주로 숯를 만들거나 건축재료로 쓰였고 나무의 껍질은 가죽을 다루는데 사용되었다. 유목민들은 무더위를 막아줄 그늘을 얻고 나무의 줄기를 짐승들에게 먹이로 제공하기 위해 이 나무를 많이 심었다. 아브라함이 이곳에 이 나무를 심은 것은 아비멜렉과의 언약 체결을 상징한다. 생명력을 산출하는 나무와 같이 그들의 미래가 왕성해지기를 바라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엑스포지멘터리 387)

 

영원하신 여호와는 히브리어 ‘엘 올람’이다. 엘은 하나님, 올람은 영원한이라는 의미이다. 

In Hebrew ’El is the common Semitic term for “God,” followed by the attribute “of everlastingness” (Hb. ‘Olam). See note on 14:18.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87.

“God Most High” in Hebrew is ’El ‘Elyon. ’El is the common Semitic term for “God.” To this is added the attribute ‘Elyon, meaning “Most High.” Elsewhere in Genesis other attributes are added to ’El (e.g., in Gen. 16:13 “God of seeing” translates ’El Ro’i; in 17:1 “God Almighty” translates ’El Shadday; in 21:33 “Everlasting God” translates ’El ‘Olam). These different names highlight different aspects of God’s natur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76.

 

아브라함은 이곳 브엘세바에서 지내면서 억울한 일들을 많이 당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이 억울함이 해결되었다. 우리도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살아가게 된다. 억울한 일들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으로 인해서 부당하게 대우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그 고난에 동참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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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 child grew and was weaned. And Abraham made a great feast on the day that Isaac was weaned. But Sarah usaw the son of Hagar the Egyptian, whom she had borne to Abraham, vlaughing.2 10 So she said to Abraham, w“Cast out this slave woman with her son, for the son of this slave woman shall not be heir with my son Isaac.” 11 And the thing was very displeasing to Abraham on account of his son. 12 But God said to Abraham, “Be not displeased because of the boy and because of your slave woman. Whatever Sarah says to you, do as she tells you, for xthrough Isaac shall your offspring be named. 13 And I will make ya nation of the son of the slave woman also, because he is your offspring.” 14 So Abraham rose early in the morning and took bread and a skin of water and gave it to Hagar, putting it on her shoulder, along with the child, and sent her away. And she departed and wandered in the wilderness of zBeersheba.

15 When the water in the skin was gone, she put the child under one of the bushes. 16 Then she went and sat down opposite him a good way off, about the distance of a bowshot, for she said, “Let me not look on the death of the child.” And as she sat opposite him, she lifted up her voice and wept. 17 And God heard the voice of the boy, and the angel of God called to Hagar from heaven and said to her, “What troubles you, Hagar? Fear not, for God has heard the voice of the boy where he is. 18 Up! Lift up the boy, and hold him fast with your hand, for I will make him into a great nation.” 19 Then aGod opened her eyes, and she saw a well of water. And she went and filled the skin with water and gave the boy a drink. 20 And God was with the boy, and he grew up. He lived in the wilderness band became an expert with the bow. 21 He lived in the wilderness of Paran, and his mother took a wife for him from the land of Egypt.

u ch. 16:1, 15

v [Gal. 4:29]

2 Possibly laughing in mockery

w Cited Gal. 4:30

x Cited Rom. 9:7; Heb. 11:18

y ver. 18; ch. 16:10; 17:20

z ver. 31

a Num. 22:31; 2 Kgs. 6:17, 18, 20; [Luke 24:16, 31]

b ch. 16:12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21:8–21.

 

 

8-9절) 이삭이 자라 젖을 떼는 날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다. 아마도 2-3살 정도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근동 지역에서는 보통 만 3세까지 젖을 먹였고 이스라엘도 이러한 관습을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이가 젖을 먹는 동안은 임신확률이 낮아진다고 하여 4-5세로 연장을 권하는 문헌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때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다. 본문에 사용된 ‘사하크’는 웃다, 농담하다, 희롱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단어는 이삭의 이름에 얽힌 언어유희의 일부이다. 사하크라는 단어에는 웃다라는 의미와 동시에 부정적인 의미로 비웃고 희롱하다라는 의미도 존재한다.(19:14; 출 32:6; 삿 16:25) 신약에 와서 이것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다.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라디아서 4:29, NKRV)

바울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박해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 이스마엘의 나이가 16살 정도의 청소년으로 볼때 남동생을 놀리고 있었다라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아마도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역할을 놀려 댔을 것이다. 

 

צָחַק (ṣāḥaq), q. laugh; pi. play, joke, insult, indulge in revelry (#7464); nom. צְחֹק (ṣeḥōq), laughter, derision (#7465).

ANE There are cognates in Ugar. (ṣḥq and ẓḥq), Akk. (ṣâḫu), and Arab. (ḍaḥika), with the basic meaning laugh.

OT The term is used both positively and negatively.

1. Laughter can be associated with a positive change of fortune brought about by God for an individual. The aged Sarah reacted to the birth of Isaac by declaring “God has brought me laughter,” a laughter of joy that others would share with her (Gen 21:6; for the interpretation of v. 6b see Westermann, 333–34). There is a play on the name “Isaac” (יִצְחָק).

2. It is one of the ironies of the Samson narratives that his God-appointed work as judge to deliver Israel from the Philistine oppressors (Judg 13:5) was accomplished by the entertainment he was forced to provide, which led to their destruction (16:25).

3. In Exod 32:6 the vb. is used in connection with the worship of the golden calf (NIV indulge in revelry). This usage may correspond to that of שָׂחַק (#8471) for religious celebration (cf. Sasson, 152), but more likely it refers to a sexual orgy (Hvidberg, 148; Brenner, 47, 51; cf. Gen 26:8; 39:17).

4. There are instances of a negative connotation. In Gen 17:17 the vb. refers to Abraham’s incredulous reaction to God’s miraculous promise of a son, to which the name “Isaac” (17:19) would bear witness. In Gen 18:12, 13, 15 Sarah’s laughter seems to reflect a more reprehensible measure of doubt and disbelief. (Abraham/Abram)

NT NIDNTT 2:429–36.

q. qal

pi. piel

ANE Ancient Near East(ern)

Ugar. Ugaratic

Akk. Akkadian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NIDNTT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ed. C. Brown, 4 vols., Grand Rapids, 1975–1978 (ET of Theologisches Begriffslexicon zum NT, ed. L. Coenen et al., 4 vols., Wuppertal, 1965–1971)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796–797.

 

본문에서 놀리다라는 표현은 희롱하다와 같은 성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과 관련된 표현은 창 39: 14, 17에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이 자신을 희롱하려고 했다라고 모함할 대 사용되었다. 

playing. It has long been a source of curiosity as to what Ishmael was actually doing. It was serious enough to enrage Sarah, as her words in the next verse reveal. As already noted in the translation, the LXX and Vulg. added “with her son Isaac” after “playing.” A number of modern translations (e.g., RSV, JB) accept this addition into the text. Even if we accept the addition, the question arises whether Ishmael was playing innocently with Isaac, or whether he was abusing him. If it is the first, then Sarah’s anger is prompted only by the impropriety of her child associating with a child from a lower social class (see von Rad). In the NT Paul goes the second route with his suggestion (Gal. 4:29) that Ishmael was “persecuting” (edíōken) Isaac. Such abuse could have been verbal or physical/sexual.20

An examination of the verb used here (the Piel participle of ṣāḥaq) may indicate that the ancient versions unnecessarily added the prepositional phrase. The Qal of ṣāḥaq appears only in Genesis, and always in connection with Isaac (17:17; 18:12, 13, 15 [2 times]; 21:6). The Piel of this verb is found in 19:14; 21:9; 26:8; 39:14, 17; Exod. 32:6; Judg. 16:25. To capture the stronger sense conveyed by the Piel we translated the root as “clowning” in Gen. 19:14. In 26:8 it refers to Isaac “playing” with his wife Rebekah (ṣāḥaq followed by the preposition ʾēṯ). Does this connote sexual activity (RSV “fondling”), as I am inclined to believe, or something as innocent as “horsing around”? In 39:14, 17 the verb is followed by the preposition b and is used by Potiphar’s wife. She says that her husband brought a Hebrew to their house leṣaḥeq bānû, “to insult us” (RSV), “to make love to us” (Speiser), “to make sport of us” (NAB). But one could argue that Potiphar’s wife is claiming: “Look! He brought us a Hebrew fellow to sport in our presence; (instead) he tried to bed me but I screamed my head off.”21 If we apply the simple meaning “playing, sporting” to 21:9, it may mean that Sarah spotted Ishmael performing athletic feats, something for which Ishmael had quite a reputation (16:12; 21:20). Such activities would be considered unacceptable by Sarah, performed as they were at the feast celebrating Isaac’s weaning. Is Ishmael, in Sarah’s understanding, trying to draw attention away from Isaac?

One can understand “playing” in other ways, without the additions of LXX and Vulg. For instance, Jub. 17:4 states that “Sarah saw Ishmael playing and dancing, and Abraham rejoicing with great joy, and she became jealous of Ishmael.” Thus, Sarah was riled by Ishmael’s enjoying himself and playing happily on an occasion when the spotlight should be exclusively on her son. “Playing” could also have a sexual sense: to play with oneself, to masturbate.22 It has long been noted that meṣaḥēq is a Piel participle of the verb ṣāḥaq, from which the name “Isaac” is formed. Thus, Sarah observes Ishmael playing/sporting and “Isaac-ing.” Perhaps she sees Ishmael doing something to make himself like Isaac, setting his sights on a familial position equal to that of Isaac.23

LXX Septuagint

Vulg. Vulgate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JB Jerusalem Bible

20 On Paul’s use of edíōken in Gal. 4:29 see H. Ridderbos, The Epistle of Paul to the Churches of Galatia, tr. H. Zylstra,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53), p. 181; H. D. Betz, Galatians,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79), pp. 249–50; F. F. Bruce,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NIGTC (Grand Rapids: Eerdmans, 1982), pp. 223–24.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NAB The New American Bible

21 See J. M. Sasson, “The Worship of the Golden Calf,” in Orient and Occident, Fest. C. H. Gordon, ed. H. A. Hoffner, AOAT 22 (Kevelaer: Butzon und Bercker;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1973), p. 155. S. McEvenue (“A Comparison of Narrative Styles in the Hagar Stories,” Semeia 3 [1975] 74) prefers the MT as the lectio difficilior. He claims that the addition deliberately destroys the subtlety intended by the text.

LXX Septuagint

Vulg. Vulgate

22 Trible mentions briefly this possibility in “Other Woman,” p. 244 n. 46.

23 See Jo Ann Hackett, “Rehabilitating Hagar: Fragments of an Epic Pattern,” in Gender and Difference in Ancient Israel, ed. Peggy L. Day (Minneapolis: Fortress, 1989), pp. 20–21.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78–79.

 

10-13절) 그런데 문제는 그 놀리는 것을 사라가 보았던 것이다. 이스마엘은 사라가 몸종을 통해서라도 대를 잇겠다라고 본인이 몸종 하갈을 남편에게 들여보내서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사라는 당장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을 것을 남편에게 요청했다. 이 종의 아들인 이스마엘과 내 아들 이삭이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아브라함은 이 일로 말미암아 매우 근심하고 있었다. 이삭이 그의 아들인것 처럼 이스마엘도 그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일부일처제를 따르지 않은 사람이 아내들로 인해 겪을 수 있는 고민인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인해 근심하지 말고 네 아내인 사라의 말대로 하라라고 명하신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두가지를 확인하신다. 첫째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둘째로 여종의 아들도 네 씨로 하나님께서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매우 근심되게 한 것은 바로 가정에서 아내의 성화였다. 사랑하는 아내가, 그것도 노년에 자신에게 아들을 낳아준 여인이 남편에게 졸라대자 아브라함은 이도저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큰 근심과 혼란에 빠져 버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내의 말을 들어줄 것을 이야기하시면서 하지만 여전히 이스마엘도 너의 씨로 한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비록 이스마엘이 이삭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이삭이 이스마엘보다 우선권을 지니게 될 것을 확인하신다.(17:19, 롬 9:7; 히 11:18) 

 

14-18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했다. 말하자면 사라의 요구대로 집에서 내쫓은 것이다. 여기서 한 부대는 약 12리터 정도의 양이다. 물과 약간의 떡외에는 그녀에게 허락한 것이 없었다. 매우 매정해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을 알았고 또한 이렇게 내보내는 것은 이제 그 여종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하갈이 가출했을 때는 애굽을 향해 갔었는데 이제는 아브라함의 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쪽에 위치한 브엘세바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본문에서 방황하다라는 단어는 ‘타아’로 비틀거리다. 방황하다. 길을 잃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머물 곳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적이 드문 곳에 홀로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가죽부대의 물이 다 떨어지게 되어 하갈을 이 황량한 들판에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그녀는 그 자식을 관목덤불 그늘 아래에 두고 화살 한 바탕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아 하나님앞에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라고 소리내어 울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하갈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하나님께서 저기에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일어나 아이를 일으키고 너의 손으로 그를 굳게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라고 하셨다. 

 

앞서 창 16:10-12을 통해서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고 위기 가운데 하갈과 이스마엘을 구원하신다. 16절의 아이라고 번역된 ‘엘레드’는 10대 후반의 소년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37:30에서 요셉을 가리킬때도 사용된다. 

본문속에 흥미로운 것은 하갈이 울부짖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마엘의 이름의 뜻이 ‘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뜻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혹은 하갈이 옆에서 하나님께 울부짖을 때 수풀 그늘 밑에서 아이가 목말라 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9-21절) 이 천사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밝히셨다. 이에 그녀가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 이스마엘과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고 그가 바란 광야에서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해서 애굽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다. 

 

본문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하갈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없던 샘물을 만들어주신 것일까 아니면 원래 샘이 있었는데 하갈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것인가? 어떤 상황이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브엘세바는 이후 31절에서 ‘맹세의 우물’로 이름하는 곳인 것을 볼때 이곳은 이미 샘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하갈을 우물을 근처에 두고도 그녀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곳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피할길을 주시고 마실 수 있는 우물을 준비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에 압도되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절망하고 한탄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다. 

이스마엘을 광야에서 하나님의 보호가운데 장성하여 활쏘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 이사야 21:17절은 이렇게 말한다.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사야 21:17, NKRV)

본문에서 게달은 이스마엘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창 25:13) 바란 광야는 이후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는 곳으로 가나안 남쪽과 시내 광야의 북쪽이 만나는 곳에 위치했다. 

이스마엘은 종의 아들로 태어났고, 약속의 땅 밖에 거했으며, 무력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이방 애굽 여인과 결혼하였다. 사라의 말대로 이스마엘을 절대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스마엘의 어머니 하갈은 여종으로 매우 드라마틱한 인생을 경험한다. 어쩌면 본인이 원하지 않았는데 여주인의 요청으로 아브라함의 후처가 되어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낳자 여주인을 멸시하기 시작했고 사라가 남편에게 이를 고하고 도리어 하갈을 학대했고 하갈은 도망쳤다.(16:6) 이때도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샘에서 하갈을 만나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샘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나를 살피시는 살아계신 이의 우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제 사라가 이삭을 낳고 나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이제 두번째로 아들과 함께 쫓겨나게 되고 이때에도 천사가 나타나서 그들을 구원해주었다. 이때에도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긴급한 필요를 채워주신다.(21:19) 그 샘의 이름은 ‘브엘세바’로 ‘맹세의 우물’이었다. 이처럼 성경에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출현을 두번이나 경험하고 그분께 은혜를 입은 사람은 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그분의 약속, 아브라함과 그와 관계된 이들을 축복하시겠다라는 약속을 놀랍도록 완벽하게 이루고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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