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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s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wall the host of them. And x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that he had don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that he had done. So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made it holy, because on it God rested from all his work that he had done in creation.

w Deut. 4:19; Ps. 33:6

x Ex. 20:8–11; 31:17; Deut. 5:12–14; Heb. 4:4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Ge 2:1–3.

 

일곱째날 하나님께서는 마치시고, 안식하시고,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본 2장 1절은 1장 1절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창 1:1, 개정)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2:1, 개정)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https://m.blog.naver.com/nuctom/221386971689

 

1절) 본절은 앞선 1장에 등장하는 6일간의 창조가 다 이루어졌음을 선언한다. 

일곱째날의 내용은 앞서 6일간의 창조의 패턴과는 차이를 보인다. 

1-6일의 창조 기록의 첫 표현은 항상 “하나님이 이르시되”이고 마지막 표현은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니 이는 ~째 날이니라”인데 반하여 제7일의 시작 표현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이며 마지막 표현은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이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일곱째 날이니라”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일곱째날의 이 기록을 2장으로 분류하기 보다 1장의 마지막에 기록하는 것이 더 좋아보인다. 이는 히브리 문학의 전형적인 inclusio, 봉투 구조에 해당한다. 창 1:1에서 하나님은 창조 사역을 시작하시고 2:1에서 창조 사역을 마치신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마치고 쉬며 안식일을 재정한다. 이렇게 창조는 완전한 원을 형성하고 있다. 세상은 하나님 편에서 창조 행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가 안식일에 쉼과 예배를 통해 그에게로 돌아간다. 이 안식일에 인간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즉 인간 자신을 위한 창조 활동을 멈춤으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더욱 빛나게 한다.71) 그 인간이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넷째 날의 발광체들이 하게 된다. 넷째 날 발광체와 여섯째 날 인간 그리고 일곱째 날 안식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4일 – 안식일 징조

               7일 – 안식일

    6일 – 안식일 지킴이

동사 ‘이루니라’(כָלָה 카라)는 창조와 관련된 모든 과정과 행위가 끝났다는 말이다. 2:1은 하늘과 땅의 창조가 이루어진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에 속한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음을 말한다. 명사 ‘챠바’(צָבָא)는 주로 군대, 전쟁, 그리고 천사들을 나타낼 때 사용되며, 해와 달과 별들 같은 천체를 주로 지칭하는 말이다. 2:1에서 ‘챠바’는 창조 과정을 통해 잘 정리된 하늘과 땅의 군상들을 의미한다.

71) Jeph Holloway, “From the Beginning: The Moral Vision of Genesis 1–11,” Southwestern Journal of Theology 44 (2001): 90–91.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76–77.

 

2-3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창조 사역이 다 이루어짐에 따라 이제 일곱째날 안식하셨다. 그리고 그 일곱째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으로 인해서 지치셨기 때문에 쉼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2절에서 그가 하시던이라는 표현에서는 ‘아사’가, 3절에서 ‘창조하시며 만드시던’이라는 표현에서는 ‘바라’가 히브리어 동사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안식”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대 근동의 창조 신화인 에뉴마 엘리쉬에 의하면 젊고 어린 신들은 나이 많은 신들을 섬기는 노예였다. 마르둑이 신들의 원수였던 악의 신인 티아매트를 죽여 하늘과 땅을 만들었을 때 젊은 신들은 마르둑에게 그들의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마르둑의 명령에 따라 신들은 티아매트의 부하 킹구를 죽여 그 피로 인간을 만들고 자신들의 노동을 떠맡긴다. 인간들은 신들의 안식을 위해 수고하는 노예로 탄생된 것이다. 이어서 신들은 티아매트와 벌인 전쟁과 창조 때문에 피곤해진 마르둑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그리고 마르둑과 자신들의 안식을 위해 벽돌로 신전을 높이 쌓아 만든다. 그리고 그 신전의 이름을 바빌론이라고 붙이고, 그 신전에서 쉬며 잔치를 벌여 먹고 마신다.72)

제7일에 하나님이 쉬었다는 것은 에뉴마 엘리쉬의 신들의 안식과 같은 차원일까? 창조라는 엄청난 일을 하느라 피곤해진 몸을 쉼을 통해 재충전하는 것일까? 창세기 2:1–3에서는 이런 사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창세기 2:3에 의하면 하나님은 제7일에 쉬고 거룩하게 구별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7일을 축복하였다(와에바렉 엘로힘 에트–욤 하스비이וַיְבָ֤דֶךְ אֱלֹהִים֙ אֶת־י֣וֹם הַשְּׁבִיעִ֔י). 거룩하게 한 것은 제7일을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특정한 날로 구별한 것을 말한다. 그럼 하나님이 제7일을 복주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이 공간 속에 우주를 질서정연하게 창조하고 그 다스리는 것들을 만든 것처럼, 시간을 초월해 있으면서 시간을 질서정연하게 만들고 제7일을 1–6일보다 우월한 날로 만든 것을 의미할까?73) 그래서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을 더 높인 것처럼 영적인 의미에서 제7일을 높인 것을 의미할까?74) 안식일을 축복하였다는 말의 의미는 본문의 배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1–6일간의 창조에서 하나님의 축복은 모두 세 번 사용되었다(창 1:22, 28, 2:3). 창세기 1:22와 1:28에서 축복은 공통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 지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축복에서는 이에 더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다른 구약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은 항상 사람이나 사람의 소유 그리고 생명체에 한정되며, 축복의 내용은 창세기 1:22과 1:28처럼 번영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와 관련 있다.75) 그렇다면 하나님이 제7일을 축복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할까? 제7일에 대한 축복은 모세 오경의 안식일 규정들 전체의 배경에서 살펴 보아야 한다. 레위기 26장은 안식일을 비롯한 하나님의 언약의 규정들을 지킨 자에게 언약의 복을 주고 어긴 자에게는 언약의 저주를 내린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저주를 받는 그 자가 자기 기업에서 쫓겨나 포로로 끌려간 사이에 땅은 안식을 누리게 된다.76) 신명기 15:9–10에서 제7년 안식년 또는 면제년 규정에서도 같은 신학 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안식년에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종을 해방시켜 주면 하나님이 범사에 복을 준다고 한다(신 15:9–10, 18). 그러므로 안식일을 복준다는 것은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키는 그 사람을 축복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72) ANET 68. “Blood I (Marduk) will mass and cause bones to be. I will establish a savage, ‘man’shall be his name. Verily, savage–man I will creat. He shall be charged with the service of the gods that they might be at ease!… Ea answered him (Marduk), speaking a word to him, giving him another plan for the relief of the gods. … Out of his blood (Kingu) they fashioned mankind. He imposed the service and let free the gods.”

73) Nahum M. Sarna, Genesis, 15.

74) U. Cassuto, Genesis, 65.

75) Claus Westmann, Genesis 1–11 (Minneapolis: Augsburg, 1984), 172–173. Gordon J. Wenham, Genesis 1–15 (Waco: Word Books, 1987), 36. Terence E. Fretheim, Genesis, NIB (Nashville: Abingdon, 1994), 347. NICOTTE, 1:757–767.

76) Howard N. Wallace는 창세기 2:1–3의 안식에는 땅의 안식도 포함되어 있으며, 안식일 지킴에 땅의 안식을 포함시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기독교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Howard N. Wallace, “Rest for the Earth? Another Look at Genesis 2:1–3,” The Earth Story in Genesis, eds. Norman C. Habel & Shirley Wurst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2000), 49–59.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78–80.

 

하나님은 일곱째날 안식일을 제정하심으로 본인이 안식하시며, 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심으로 그 안식으로 초청하신다. 하나님은 그 안식일에 손을 놓고 계신 것이 아니다. 어떠면 가장 중요하고 큰 일을 하고 계시는데 바로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들이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바로 그 안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과 거룩에 동참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의 설화속에서 인간들은 신들의 안식을 위해 수고하는 존재, 노예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신들의 안식을 위해서 신전을 만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의 안식일에서는 하나님께서 안식하셨을뿐만 아니라 그 피조물들도 그 안식에 동참하도록 촉구하고 계신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하나님이 제정하신 안식일을 지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때 가장 풍요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안식일은 주님께서 부활과 승천하심으로 성취하신 쉼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후에 영화 가운데 완전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삶속에서 완전한 안식의 그림자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후에 하나님께서 안식을 명하시고 거룩하게 하심으로 시작된 안식은 마지막때에 하나님나라의 완전한 도래로 완성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거주할 장소를 주시고자 우주를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전으로 사용하시려고 우주를 만드셨다. 

그분이 창조하시는 환경은 그분이 창조한 사람들에게 안식을 제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비록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신학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안식을 마련하고 계시는데 , 그 안식은 완성된 우주에 의해서 제공되는 휴식이다. 그분이 안식하는 장소에 거하신다는 것은 곧 보좌에 앉아 계신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즉 우주의 주권적인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성전은 단지 이 개념에 상징적인 실체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다. 시편 104:24에서는 이것을 우주의 요소들이 여호와의 통치를 위한 관리자들로서 섬기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The environment he creates is not intended to provide rest for the people he has created (though that becomes a significant piece of theology as time goes on).8 Rather, he is making a rest for himself, a rest provided for by the completed cosmos. Inhabiting his resting place is the equivalent to being enthroned—it is connected to taking up his role as sovereign ruler of the cosmos. The temple simply provides a symbolic reality for this concept. Psalm 104:2–4 captures this as the elements of the cosmos serve as functionaries for Yahweh’s rule.

8 The land is given to Israel for their rest in the theology of the historical narratives; see the discussion in Laansma, I Will Give You Rest, 18–38.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148.

 

창조에 대한 기록과 광야에서의 성막 건축에 대한 설명 사이에 일련의 중요한 동사가 사용된다. ‘마치매’,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모세기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축복하였더라’. 이처럼 성막 건축이 세계 창조의 이미지로 제시되었으며 창조 때 시작된 과정의 연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Indeed, as Martin Buber long ago noted, a series of key verbal parallels exists between the account of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the description of the building of the tabernacle in the desert (compare Genesis 1:31; 2:1; 2:2; 2:3 with Exodus 39:43; 39:32: 40:33; and 39:43, respectively). Thus, “Moses saw all the work” which the people “did” in constructing the tabernacle; “and Moses completed the work” and “blessed” the people for all their labors.

… Manifestly, then, the building of the tabernacle has been presented in the image of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signified as an extension of a process begun at the creation.10

10 M. Fishbane, Text and Texture (New York: Schocken, 1979), 12, The function of Genesis 1 and Exodus 40 as an inclusio around Genesis and Exodus show the text’s self-awareness of the connection between cosmos and sanctuary. I am grateful to my colleague Andrew Schmutzer for bringing Fishbane’s comments to my attention.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1), 149.

 

아래의 성경 구절은 “인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한다. 

(마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막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눅 6: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우리들은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그 주인이신 분이 안식을 제정하셨고 친히 안식하셨으며 우리에게 안식을 명하신 것이다. 

(레 19:30, 개정)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내 것이라고, 그러므로 나의 성소를 귀히 여기라고 명하신다. 이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안식일과 성소가 서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우주를 주관하고 계심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전은 일종의 소우주적인 모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만드시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의 활동에서 손을 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이신론의 하나님) 도리어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주를 운행하고 이끌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안식일과 시간과의 관계는 성전과 공간의 관계와 같다.” 결국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인간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나의 삶의,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믿음의 고백이 바로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한주간 가운데, 6일동안 자기들의 존재를 이끌어왔던 자기중심적 필요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리셋 버튼(reset button)을 누르는 것과 같다. 컴퓨터의 작동에 문제가 생길때 우리가 흔히 하는 행동이 바로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는 것이다. 안식일은 바로 그와 같다. 

(사 58:13-14, 개정)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안식일은 이처럼 자기 쵀락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안식일에 무엇을 해야할지 거의 말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시한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 감사, 존경을 표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라.(현충일에 무엇을 할 것인가? 얼마나 그들을 기념하며 존경하는지, 사랑하는지에 달려있다. 어떤 이들은 행진을 하고, 어떤 이들은 국립묘지를 방문해 분향을 하거나 꽃다발을 가져다 놓기도 한다. 하루를 쉬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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