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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교민 연합집회 

2015년 5월 23일(토), 밴쿠버 순복음교회 





주님의 교회(행 13:1)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을 넘어서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야한다. 

주님을 나의 주어로 삼고 내가 동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 동사가 주어를 콘트롤하는 법은 없다. 동사는 주어에 종속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교회는 주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모임. 에클레시아이다. 

건물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를 이루고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 동사가 주어를 조종하려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엘리야, 예레미야, 세례요한 모두 가난했다. 

새상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천명하셨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 장로, 집사, 헌금 많이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주어로 모신 주님의 동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조의 교회의 정의. 
하나의, 거룩한, 사도적, 보편적 교회이어야 한다. 

1. 하나의
- 교회의 갯수가 아니다. 믿음의 대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분이시다.(엡 4:4-6) 우리를 부리는 주어는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러개의 동사는 하나의 주어를 위한 것이다. 주어가 두개라면 동사는 갈라지게 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교회를 섬기지만 한분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의 교회가 될 수있다. 
- 하나됨의 증거. 그 증거는 우리의 몸을 보면 알수 있다. 우리는 한몸에 여러 지체를 이루고 있다. 제 뇌가 명령하는대로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지체들끼리 서로를 섬기고 돕는다는 것이다. 배고플때 입이 음식을 삼켜준다. 정상적인 지체라면 상호 봉사하게 되어있다. 
- 한 공동체를 이룬 지체를 위해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럴때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아니라 어른이 된다. 
- 사람에 대한 호칭 : 영유아, 청소년, 청년, 장년, 이후에 노인과 어른으로 갈라진다.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노인이 된다. 노인의 특징은 자기만 안다. 자기에게만 맞춰주기를 원하는 사람들. 어른은 이전에 알지못하고 품지 못했던 사람을 품고 자신의 것을 나누고 다른이들의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이 어른이다. 어른은 절대로 절로 되지 않는다. 이 갈림은 봉사에 있다.  봉사하고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산 사람이 5-60을 거치면서 어른이 되는 것이다. 봉사의 아름다운 마지막 단계은 밑 가지가 되어주는 것이다. 
- 요 15장. 포도나무와 가지. 아버지가 농부이심. 중요한 원칙. 교회론을 보여준다. 줄기의 첫번째 가지는 항상 가장 밑에 위치한다. 다음 가지는 그 위에 붙는다. 제일 여린 가지가 윗자리를 차지한다. 겨울이 지나고 다음해에 새로운 가지가 윗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면 그 나무는 죽은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밑가지가 되는 삶. 이 반대의 상황이 되면 나무는 부러진다. 목사, 장로, 창립멤버는 이렇게 밑거지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문제는 기득권을 주장하고 서로 윗가지가 될려고 하기에 분쟁이 일어난다. 

2. 거룩한 교회
-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성도로 부르셨다.(고전 1:2)
- 우리는 추악한 죄인임에도 그분의 피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쳐주셨다. 주어가 거룩하기에 동사로 부름받은 우리도 거룩해야할 의무가 있다. 주어에 동원되는 동사는 거룩해져야 한다.(난봉꾼의 동사는?)
- 세상은 동사인 우리를 보고 주님을 알게된다. 교회의 힘은 교인의 머리수로 나타나지 않눈다. 헌금 액수로 나타나지 않는다. 교회의 힘은 거룩에서 나타난다. 거룩은 구별이다. 
- 제네바 콩쿨 : 자유곡과 지정곡, 예선과 본선은 피아노만. 결선은 오케스트라가. 어떤 이의 소리는 오케스트라를 뚫고 들린다. 행사의 규모를 키우기 위함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는지를 보기 위함이다. 공동 1위 이후에 2위. 왜소한 한국 여성. 이유는 오케스트라와는 다른 파장을 지닌 사람들이다. 한국의 판소리 명창들이 폭포를 뚫고 나가는 훈련을 한다. 득음을 위해. 다른 파장을 얻는 것이다. 
- 예수님은 한번도 유학을 계획하지 않으셨다. 살아생전에 팔레스타인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분의 메시지가 로마의 힘을 압도했다. 이사야의 고백.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 산상수훈. 바리새인들을 질타하실 때에도 지극히 절제된 음성으로 또박또박 말씀하셨을 것이다. 진리의 파장. 영원, 빛의 파장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 교회가 돈으로 승부한다면 빌 게이츠를 이길수 없다. , 권력의 파장. 교회는 거룩의 파장을 가져야 한다. 교회의 힘은 거룩함에 있다. 그 거룩은 구별된 삶으로 드러난다.

3 사도적 교회
-  엡 2:20 사도와 선지자의 터위에 세워진 교회. 
- 동사의 삶은 피상적 삶이 아니다. 교회의 머리,주춧돌, 주어되시는 주님. 주님의 말씀으로만 사도적 교회를 이룰수 있다. 
-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완독하신 분. 주님을 믿는 것은 말씀을 믿는 것이다.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주님과 무관한 것이다. 결혼을 위해 서로 만나서 알아가야 한다. 
- 성경의 말씀을 지키는 삶, 요 14:22. 이것이 주님을 주어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대상만을 드러내기위해 나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말씀이 나의 삶을 통해서 인카네이션하면 그 말씀이 우리를 지킨다. 
- 동아일보 이종찬의 회고록. 존슨 대통령의 방한. 환영 만찬. 1960년대. 만찬 석상에서 정전이 됨. 모두의 시야가 캄캄해짐. 부스럭 소리. 존슨 대통령이 없어짐. 정전되는 순간 화장실로 대피시킴. 경호원이 경호원 다웠는가?? 레이건 대통령을 향해 몸을 날림. 자기를 위해 몸을 던진 경호원을 레이건 대통령은 살려내지 못했다. 
-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드린다고 착각한다.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나는 망한다. 허사인 것이다. 녹이 쇠를 갉아먹듯이 우리의 욕망이 우리를 망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경호원이 될때 그 말씀이 우리를 지킨다. 

4. 보편적 교회
- 라틴어로 기록. 콘스탄티노플 신조. 캐톨릭 처치가 되어야 한다. 1517년 개신교에서는 univesal church로 바꾸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함께 어우러지는 교회. 
- 2000년전은 계급사회였다. 예배당안에서 귀족과 노예가 함께 보편적 교회를 이룬다는 것 거의 불가능했다. 
- 앞의 세가지는 개인적 영성과 관련된 것이다. 보편적 교회는 인간 관계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가 어렵다. 
- 밴쿠버에서 한인교회를 이룬다는 것. 그런데 이곳에서 보편적인 교회를 이루고있는가? 왜 보편적 교회를 이루어야 하는가? 우리의 주어이신 주님께서 만민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이다. 나도 보편적 동사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주님의 주위에 특정 계층의 사람만이 있지 않았다. 열심당원 시몬뿐만 아니라 세리 마태도 있었다. 예수님 곁에는 무식한 베드로와 아리마대 요셉. 창기와 니고데모가 함께 있었다. 예수님이 없었다면 함께 할 수 없던이들이 함께 할 수 있게 되렀다. 
- 보편적 교회가 됨으로 이 세상의 가치와는 다른 거룩한, 사고적, 하나의 교회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신앙고백. 거룩한 공회를 믿는 것이다. 내가 속한 교회가 어디이든지 보편적 교회임을 믿는다. 
- 우리 한사람이 보편적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런 보편적 교회.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교회가 인간의 역사에 존재했는가? 
- 안디옥 교회의 구성 : 당회원 명단. 레위인 출신의 전통 유대인 바나바. 니그로 흑인인 시므온 노예출신, 무명의 존재 구레네 사람 루기오. 헤롯의 젓동생(마나엔, 친형제이거나 죽마고우-매국노), 교회를 짓밟던 폭도 바울
- 지중해 전도를 위해 예루살렘교회를 사용하지 않고 안디옥교회를 사용하신 이유. 현실속에서 이런교회가 존재했는가? 
- 양화진 : 무어 선교사, 교회와 학교를 세움. 봉주리의 마을 백정의 아들. 아버지가 장티푸스에 걸림. 고종의 의사 애디슨을 데리고 백정을 고쳐주기위해 옴. 무어선교사가 그 백정의 이름을 박성춘이라는 이름을 지어줌. 양반들의 항의. 따로 좌석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했고 교회를 나가서 따로 교회를 세움. 이에 백정들에게 전도를 함. 나갔던 양반들이 돌아옴. 이 두교회가 다시 합하여 승동교회를 이룸. 아들은 의사가 되어 교수가 되었고 백정은 장로가 되었다. 그리고 왕손출신 이재형?이 장로가 되었다. 함께 당회를 이룸 
- 무어 선교사 한분이 보편적 교회를 이루었을때 조정이 백정을 인간으로 인정했다. 
- 우리가 보편적 교회를 이룰 때 주께서 당신의 교회를 이루실 것이다. 
- 주님을 믿는다면 참된 주님의 사람이 되자. 하나의, 가룩한, 사도적, 보편적 교회룰 이루는 주님의 교회가 되자. 우리 주님은 살아계시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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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람(시 39:5-6)





밴쿠버 교민연합집회

2015년 5월 22일(금), 밴쿠버 순복음교회



다윗의 수명 : 70세. 당시 굉장히 장수했다. 70을 살고 그의 삶을 한뼘이라고 말한다. 히브리어 테파흐(손바닥) 다윗에게 70인생은 그렇게 짧았다. 인생은 오래 살수록 짧게 느껴진다. 


그마저도 하나님 앞에서는 없는것 같다. 100년전의 조상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든든히 서있다.(나차브, 인생의 최전성기) 로마, 바벨론의 영광은 허사이다. 

첼렘, 환영-그림자. 있는것 같은데 실은 없는것, 얼마나 많은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200만 밴쿠버, 200명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할때 99.99%가 우리에게는 그림자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헛된 일(헤벨, 공허한 숨) 으르렁거리는 삶을 묘사하는 동사(하마), 진리를 위해 으르렁 거리며 살지 않는다. 

절대 권력자 : 박정희(72)
이병철 : 돈병철(78), 재산이 그들의 삶을 책임져주지 못한다. 
어머니(86세)까지 사셨다. 
우리가 더 으르렁 거리며 살면 더 모을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부모 재산 놓고 싸우는 자식들. 

세월이 흐른뒤에 그렇게 모은 재산이 누구의 재산이 될지 알지 못한다. 휘트니 휴스턴의 2000만불이 그녀의 18살(바비 크리스티나) 딸에게 물려졌는데 현재 21살에 엄마와 똑같은 상태로 호텔 욕조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되었다.(동거남, 남편, 친정 어머니의 진흙탕 싸움)

GE만이 130년을 견뎠다. 
삼성과 엘지만 남아있다. 
세계 경제사. 남아있는 기업이 얼마 없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하나님앞에서 없는것과 같고 다른이에게 환영과 같고 재산이 누구것이 될는지 일지 못한다. 
- 솔로몬의 헛되다(헤벨) 헤벨의 5제곱
- 매우 덥다. 덥다 덥다는 히브리어 표현

인생이 이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
시 39:7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인생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허사로 끝나기에 우리의 소망을 주께두는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는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때 주체가 내가 된다(주님을 콘트롤하려한다) 내가 주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럴때 주체(주어)가 주님이 되는 것이다. 고통스러워도, 불이익이 예상되고 모함을 당해도 주님의 사람이라면 그길을 갈 수 있다. 

내가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1. 테바(방주)의 사람이 되는 것.
- 홍수 심판 가운데 노아를 부르심. 창 6:15절. 방주의 사이즈를 알려주심 32800톤. 큰 페리호가 3000톤 정도이다. 테바는 거대함의 상징이다. 
- 애굽이 히브리인의 장자를 죽임. 출 2:3. 갈대상자안에 아기를 두고 나일강에 띄움. 이 갈대상자가 테바이다. 
- 축구장 vs 갈대상자. 하나님의 테바의 특징은 무동력에 있다. 제어시스템이 없다. 방향, 석도, 멈춤 찰저하게 하나님께 맞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의한 구원의 테바. 
- 테바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인셍의 방향, 속도, 멈춤. 하나님께 끌려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지족과 자족 : 지금 나의 삶이 족함을 아는 것. 웅덩이와 가시덤불이 내 인생에 필요함을 알고 인정하는 것. 족한 줄 모른다. 과거에 비해 우리가 얼마나 잘 사는가? 우리의 행복지수는 어떤가? 교회에서 지족의 싦을 가르치지 않고 욕망의 삶을 부추긴다. 
- 요셉 : 채색옷에 만족하지 못하던 삶. 광야 웅덩이에 빠짐. 창 37:22-24 하나님이 예비하신 웅덩이. 물이 없었다.(익사) 이 웅덩이가 그에게 테바였다. 하나님의 도구로 준비됨
- 아브라함 : 모리아산. 가시덤불, 창 22:13 수풀(세바크, 가시덤불) 이 장애물이 수양을 준비한 것이다. 
- 나는 지금 웅덩이에 빠져 있는가? 그럼에도 테바의 사람이 되라. 

2. 엑소도스의 사람이 되는 것
탈출의 의미. 엑소 밖으로, 도스 그길. 이집트는 죄와 어둠과 사망의 상징이었다. 홍해를 열어주셔서 건너가게 하셨다. 
갈라진 홍해가 갈라진 채로 있지 않았다. 애굽로 돌아갈 길을 차단하신 것이다. 되돌아갈 길이 없어진 것이다. 
-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이다. 벗어나게 하신것이 은혜라면 성화의 삶은 우리의 의지이다. 
- 광야에서 헤벨이 되었다. 애굽으로 돌아가려던, 미련을 가진 히브리인. 
- 아이스호도스, 주님의 길을 가야한다. 
- 퇴장의 의미가 있다. 연극 무대의 배우들. 인생이라는 무대도 마찬가지다. 밤에 화장을 지운다. 인생의 화장을 지울때가 온다. 인생의 스폿라이트를 받을때가 있지만 안젠가 꺼진다. 가장 어리석은 인간. 천년만년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
- 퇴장을 아는 사람이 최선을 다한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기 원했던 내일이다."
- 오늘도 평생 처음 맞는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무의미한 삶을 살겠는가. 
- 변화산의 모습 : 모세와 엘리야. 이 대화의 내용이 무엇인가 눅 9:29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심. 이 죽음이 엑소도스다. 엑소도스의 세번째 의미. 왜 이 메시지를 주시는가? 내가 십자가에 죽지만 이 죽음이 끝이 아니다. 저 모세와 엘리야가 내려온 하늘의 출입문이다. 
- 외과의사 : 예수믿는 사람일수록 안죽으려한다. 기를 쓰고 안죽으려한다. 입에 발린 영생이 아니라 죽음이 영원과 접속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죽음을 통해서만 천국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 믿음이 없다면 바울이 어떻게 참수형을 당할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진짜 믿지 않는다. 

3. 에네의 사람이 되는것 
시 19:8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눈을 밝게 한다.  이세상을 바로 보게하는 눈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에메. 눈들이다. 
- 우리말은 단수로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개의 눈을 주셨다. 이세상은 평면이 아니다. 
- 문명의 발달과 역사의 미래를 볼줄 아는 두눈이 필요하다. 
- 본질이 아니라 외형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두눈이 필요하다. 두눈을 가진 사람은 어둠 속에서 새벽을 본다. 폭풍속에서 정적을. 모함 속에서 진실을 본다. 
본질을 꿰뚫어 봐야한다. 두눈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속에서 있음을 본다. 유럽의 몽블랑 4807미터. 3842미터. 케이블카. 1905년시작. 1,2차 대전으로 중단. 알프스의 눈덮힌 산. 노약자, 장애인들도 오를 수 있다. 110년전에 보았다. 몽블랑에서 없음에서 있음을 보았다. 
수에즈 운하 192킬로미터. 150년전에. 두눈을 가진 사람들이 이 청년들의 제안을 도왔다. 
- 교회는 이런 청년들을 키우고 밀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두눈을 가진 청년들을 외눈박이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 미국의 독립. 1776년. 하와이(미국 동부에서 8500키로)?
- 1897년 일본이 유큐왕국을 합병했다. 4000키로. 
- 역사의 두눈을가지고 미국과 일본은 자신들의 땅을 넓히던 시대에 조선땅에서는 부정부패로 땅을 일제에게 빼았겼다. 
- 한국의 청년들은 두눈을 가져야 한다
- 두눈을 가진 사람만 주님의 사람이 될수 있다. 변화산에서 십자가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라고 보여주는데 베드로는 외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님을 꾸짖고 있다. 외눈을 가진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심. 
- 롯과 아브라함. 먼저 선택하게 함. 롯이 보니 소돔과 고모라가 에덴 동산 같았다. 한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인다. 멋지고 화려해 보였다. 
- 바울의 고향 다소. 소위 바울의 생가라는 유적터. 우리가 주목하는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 눈에 보이는 것은 쇠퇴하고 사라진다. 건축하는 순간 쇠퇴가 시작된다. 인생은 가는 것이다. 

테바, 엑소도스, 에네의 시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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